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71 - 챕터 80

660 챕터

제71화 나쁜 놈

송재이는 오늘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그녀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수록 왠지 모르게 더 불쌍해 보였다.설영준이 고개를 들었다.“유리 씨는 먼저 가서 쉬어요. 오늘 저녁은 내가 남아 있을 테니까.”“네.”남자의 품에 안겨 옴짝달싹 안 하는 송재이를 보자 서유리는 그녀가 설영준을 꽤 많이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생각에 속으로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그러나 굳이 캐묻지는 않고 뒤돌아서 룸을 나섰다.방 안에는 송재이와 설영준만 남았다.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얼굴에 눈물 자국 범벅인 그녀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깨질듯한 유리처럼 위태위태했다.설영준은 단단한 팔로 송재이의 다리를 들어 자기 허벅지 위로 앉혔고, 마치 아이를 달래듯 넓은 품에 끌어안았다.그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넘겼다.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남자에게 대부분 여자는 반하기 마련이다.이처럼 안정적인 느낌을 경험한 게 대체 얼마 만이지?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녀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마저 잃어버렸다.그동안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밤을 지새운 적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하고 싶은 말, 억울한 일을 당해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고, 이 세상에 오로지 그녀뿐이었다.마치 외딴섬 같은 무력감은 너무나도 두려운 경험이다.그녀는 설영준이 좋았다. 든든한 가슴도 그렇고, 더욱이 매일 아침 넓은 품에 안겨 눈을 뜨는 그 순간이 제일 행복했다.햇살, 연인, 모닝 키스.하지만 나중에 그가 결혼하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만의 남자가 아니었다.그녀는 홀로 제자리에 남겨져 또다시 버려질 운명에 직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결국 설영준이 자신을 버리기 전에 먼저 떠나가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하지만 사실 그녀를 좌지우지하는 버튼은 결국 설영준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깨닫게 되었다.송재이는 마치 밖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온몸이 다치고 진흙투성이가 된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남자의 따뜻한 품은 그녀에게 모든 위험과 혼란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쉼터였다.설령 찰나의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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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누가 감히 쉬쉬거려

송재이는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지민건의 마수에서 벗어났더니 설영준에게 딱 걸릴 줄이야.심지어 맹수의 먹잇감이 된 느낌이었다.유난히 거칠고 난폭한 모습은 단순히 사랑을 나누는 게 아니라 뒤로 갈수록 일종의 증오를 표출하는 방식에 가까웠다.하지만 대체 왜 화가 났고, 또한 어떤 것에 대한 분풀이인지는 몰랐다.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헤어진 후에도 매달리지 않았다고 자부했다.심지어 실수로 임신했을 때도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주현아와 지민건만 아니었다면 끝까지 함구하고 홀로 아이를 낳고 키웠을 것이다.그녀는 결코 성가시게 구는 전 와이프는 아니라고 여겼다.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송재이는 눈물을 흘렸다.옆으로 돌아누운 그녀는 어깨가 훤히 드러났고 이따금 부르르 떨렸다.단지 뒷모습만 보더라도 사뭇 불쌍하게 느껴졌다.그가 대체 왜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설영준은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결국 송재이는 울다가 지쳐서 곤히 잠들었다. 오늘은 경주로 돌아가는 날이며, 그녀는 오전 10시에 잠에서 깼다.눈을 떠보니 찬란한 햇살 아래 뒤돌아서서 넥타이를 매고 있는 설영준의 뒷모습이 보였다.하루아침에 3년 전으로 돌아간 듯싶었다. 마치 첫 관계를 가졌을 그때처럼...그날도 오늘처럼 햇살이 포근했다.침대에 돌아누워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자 그녀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등 뒤의 인기척을 느낀 설영준은 고개를 돌려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깼어?”당분간 그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송재이는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그러나 남자는 억지로 이불을 젖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송재이는 눈살을 찌푸렸다.“뻔뻔한 자식!”“나도 어쩔 수 없었거든?”당시 치사하다는 둥, 나쁜 놈이라는 둥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던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났다.하지만 정작 본인은 너무 억울한 상황이었다.화가 난 그녀는 주먹을 쥐고 남자의 가슴을 마구 때렸지만 단번에 제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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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그녀가 창피해서

송재이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설영준은 일부러 그녀와 맞서려는 듯 작정하고 뽀뽀하려고 했다.놀란 송재이는 이리저리 피하기 바빴다.결국 그녀는 설영준이 진짜 무서워서 우물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가도 돼요. 그 전에 먼저 샤워해야 해요.”말을 마친 후 호텔 슬리퍼를 신고 욕실로 쪼르르 달려갔다.설영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었다....여기서 마린 월드까지 차로 한 시간 거리이다.아니나 다를까 이런 곳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가족 세 식구였다.그밖엔 젊은 커플들이 전부였다.한 여자애가 티켓팅 게이트에서 고양이 귀 머리띠를 사고 손에는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신이 나서 퐁퐁 뛰는 모습이 유난히 귀여웠다.설영준과 송재이는 이곳을 지나갈 때 무심코 한 번 훑어봤다.그는 점포 매대에 놓인 머리띠를 보다가 앞에서 걸어가는 송재이를 바라봤다.그녀가 별 흥미가 없는 것 같아 설영준도 더 말하지 않았다.이리로 올 때만 해도 송재이는 억지로 끌려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하지만 정작 놀기 시작하니 그녀는 곧장 심취했다.이곳은 대형 놀이공원에 가까웠다.인파들과 함께 걷다 보니 진주에서 가장 유명한 바다 세계로 들어갔다.설영준이 입구에서 두 사람 티켓을 구매했다.전동 스쿠터를 타면 터널 안으로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십여 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그들 차례가 됐다.작은 차 한 대에 관광객 스무 명 좌우가 앉을 수 있었다. 설영준과 송재이는 나란히 차에 올라탔다.차에 탈 때 송재이는 잔뜩 흥분하여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그녀 옆엔 또 다른 부부가 앉았는데 엄마가 남자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있었다.송재이가 자리에 앉을 때부터 남자아이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송재이도 꽤 재미있어서 고개 돌려 아이를 바라봤다.“너 나 알아?”송재이가 웃으며 물었다.남자아이는 머리를 내저으며 손에 쥔 막대사탕을 먹었다.“누나 너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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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그 여자를 쏙 빼닮은 모습

설영준은 그녀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그 눈빛에 송재이는 온몸이 불편했다.그는 차가운 미소를 날리며 손을 저었다.“아니야, 아무것도.”송재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설영준의 속마음을 좀처럼 알아맞힐 수가 없다.한편 송재이는 그가 진주에 출장 온 줄로 줄곧 여겼었다.하여 진주에 며칠이나 더 머무를 거냐고 무심코 물었다.설영준은 말을 얼버무리며 사나흘 정도 있을 거라고 했다.다만 송재이가 티켓을 끊고 돌아간 다음 날, 그도 잇따라 돌아갔다.설영준은 진주에 업무가 있어서 온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그녀의 생일을 함께하려고 일부러 온 것도 아니다.최근 1년간 그는 거의 매일 업무에 절어있어 가끔 휴식도 필요했다.이번에 진주로 온 것도 저 자신에게 휴가를 내준 셈이었다.하지만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것들은 결국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일 뿐, 마린 월드 같은 곳은 한 번이면 족했지 두 번은 절대 갈 일이 없다....송재이는 진주에서 돌아온 후 민효연한테서 카톡을 받았다.[송 선생님, 오늘 있을 피아노 수업 다른 날로 변경해야 할 것 같아요. 연우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거든요. 오늘 연우 아빠가 연우 데리고 할아버지 뵈러 갔어요.]민효연이 말끝마다 ‘연우 아빠’라고 호칭하는 걸 보니 도정원과 사이가 좋아진 듯싶었다. 송재이가 처음 봤을 때처럼 살벌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그녀가 답장했다.[네, 그럼 다음에 다시 수업 시간 정해요.]문자를 보낸 후 송재이는 문득 지난번에 묘원에 가서 엄마에게 제사를 지낼 때 마침 제사를 마치고 나오는 도정원과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그때 도정원은 황급히 움직이며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제 막 도정원 아버지의 상황이 어떤지 여쭈려고 머뭇거릴 때 휴대폰이 대뜸 울렸다.뜻밖에도 도정원에게 걸려온 전화였다.송재이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송 선생님, 저희 아버지가 병원에 있는데 흉터가 갑자기 감염돼서 오늘 밤에 아버지 옆을 지켜드려야 할 것 같아요. 연우가 줄곧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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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도경욱

아니나 다를까 도경욱은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하지만 그는 최대한 담담한 척하며 몸을 등받이 쿠션에 기댔다.“그래요? 올해 있은 일이에요?”송재이는 비록 처음 도경욱을 만났지만 왠지 모르게 오랜 지인처럼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하여 엄마에 관한 일도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네, 돌아가신 지 반년 정도 됐어요. 편히 가셨어요.”“그렇군요... 송 선생님 어머님은 저랑 나이가 비슷할 것 같군요. 이 나이가 되면 생사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어요.”도경욱은 감개무량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저희 엄마는 토끼띠에요. 아저씨보다 조금 어리실 겁니다.”도경욱은 반듯하게 누워있다가 송재이가 토끼띠라고 말하는 순간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송 선생님 어머님 사진을 한 번 봐도 될까요?”도경욱은 끝내 차분함을 잊고 불쑥 질문했다.그의 요구에 송재이도 마냥 놀랄 따름이었다.‘사진을 보겠다고?’그녀는 의아한 눈길로 도정원을 쳐다봤다.도정원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빠에게 되물었다.“아빠, 대체 왜 이러세요?”한편 도경욱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사코 고집했다.“송 선생님 휴대폰에 어머님 사진 있죠?”송재이는 입을 살짝 벌렸다. 도경욱이 처음부터 친근하게 느껴져서 그런 건지, 또 혹은 그의 눈빛이 너무 진실되고 절절해서 그런 건지 그녀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녀는 확실히 휴대폰 갤러리에 엄마 사진을 많이 저장해두고 있다.벚꽃나무 아래 앉아 그네를 타는 독사진도 있고 모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으며 물론 그녀가 아주 어릴 때 한 가족 세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그때 송재이는 지금 이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란 걸 전혀 몰랐다.그렇다면 그녀의 친아빠는 대체 누구일까?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송재이는 끝내 휴대폰 갤러리를 도경욱에게 보여줬다.도경욱은 송재이 엄마의 사진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그는 꼭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화면 속 온화한 여자에게 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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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아주 당연한 일이죠

송재이는 자신의 친아빠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은 게 결코 아니다.단지 엄마가 남겨준 단서가 너무 적어 도통 조사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그녀 엄마는 일부러 숨기는 게 뻔했다. 송재이가 그 남자의 정체를 아는 걸 정말 원치 않은 듯싶었다.‘어쩌면 엄마는 엄마만의 고려가 있었겠지.’송재이가 단순한 삶을 살길 바라신 듯싶다.그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되면 오히려 송재이에게 번거로움만 안겨준다.만약 송재이의 친아빠가 바로...그렇다면 그녀와 도정원의 관계 또한...송재이는 식당에 앉아서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다고 생각됐다.도경욱이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스스로 이렇게 많은 연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송재이는 참지 못하고 고개 숙여 피식 웃었다.지금 그녀는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하다.식당 조명이 너무 눈부셔 그녀의 머리가 지끈거렸다.도정원은 연우와 함께 맞은 편에 나란히 앉았다.연우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송재이를 한참 쳐다보더니 그녀에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송재이는 흠칫 놀랐다.“연우 선생님이랑 같이 앉고 싶어?”아이는 아무 말 없이 의자에서 뛰어내려 제멋대로 송재이 옆에 다가왔다.여태껏 그 누구도 송재이에게 이토록 기댄 적이 없다.작고 귀여운 아이가 이토록 순수하게 다가오다니.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계략 없이 온전히 그녀에게 기대고 있다.순간 송재이의 마음은 얼음이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그녀는 연우를 안아서 옆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두 사람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죄송해요, 선생님.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선생님을 따를 줄은 몰랐어요.”도정원이 그녀에게 사과하며 가볍게 웃었다.송재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도 연우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특히 오늘 도경욱을 만난 이후로 아이가 더 소중해졌다.만약 그녀의 추측이 다 맞아떨어진다면 도정원과 연우와의 관계도 더 가깝고 친근해질 것이다.송재이는 연우를 보다가 맞은 편에 앉은 도정원도 살펴보았다.나 홀로 외딴섬에서 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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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한때 아이가 있었어

잠시 후 송재이는 배불리 먹고 딴 곳으로 주의를 돌렸다.그녀는 옆에 있는 연우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주며 즐겁게 놀았다.설영준은 마침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송재이는 자신을 쳐다보는 느긋하면서도 거침없는 그의 눈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줄곧 머리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바로 이때 설영준이 대뜸 테이블 밑에서 그녀의 다리를 휘감았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낯부끄럽게 이게 무슨 짓이야?’송재이는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그녀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머리를 들어 그를 째려봤다.다만 그는 도정원과 얘기를 나누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마치 테이블 아래에서 엉큼한 짓을 벌이는 사람이 본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송재이는 울화가 치밀었다!...설도영은 옆에 앉아 줄곧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원래 입을 꾹 닫고 일을 벌이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이 나이대 아이들은 가끔 구경거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이들 중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오직 설도영만 송재이와 설영준이 한때 연인 사이란 걸 알고 있다.설도영은 오지랖도 넓은 편이고 또한 송재이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 설영준과 꼭 잘 되길 바랐었다.인제 드디어 어렵게 기회를 찾았으니 일을 벌이고 싶었다.“재이 쌤, 연우랑 참 다정하게 지내시네요? 쌤에게도 아이가 있다면 분명 더 예뻐하실 텐데. 제 말 맞죠?”설도영은 턱을 괴고 무심코 말을 내뱉은 양 감개무량하게 말했다.송재이는 고개 돌려 그를 쳐다봤다.이에 설도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쌤, 애들 외모는 부모님 유전이래요. 나중에 쌤 결혼하고 아이 낳으려면 절대 못생긴 남자 찾으면 안 돼요. 적어도 우리 형처럼 잘생겨야 한다고요! 두 분이 아이를 낳으면 대체 얼마나 이쁠까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네요.”그는 순진무구한 말투로 설영준과 송재이를 부추겼다.말하는 사람은 별 뜻 없어도 듣는 이는 가슴이 쿡쿡 찔렸다.설도영의 이 한마디에 뜻밖에도 설영준과 송재이 모두 동시에 안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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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송재이와 애 낳을 생각 없어

지난번에 청주에서 지민건이 송재이를 성폭행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다행히 제때 경찰에 신고하여 현행범으로 잡혔다.송재이는 경찰 협조하여 사건기록을 남겼다.경찰서에서 나오기 전에 상대방은 송재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으니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했다.며칠 후, 송재이는 지민건이 1년 4개월의 판결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다.이 소식을 듣고 난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하지만 지민건의 입장에서는 이 결과가 오히려 나았다.지금도 많은 빚쟁이가 지민건을 찾아오기에 오히려 판결을 받으면 화를 피면 하기 때문이다.지금 감옥에 들어가면 적어도 1년이 넘는 시간을 조용히 피신할 수 있을 것이다.송재이는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웃음을 금치 못하며 고개를 저었다.지민건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중간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송재이는 저도 모르게 차창 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창밖의 빛이 쏟아져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송재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일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 세상이다. 그 변화를 누가 알겠는가?지민건이 판결을 받자마자 박윤찬은 설영준에게 전화하여 이 일을 알려주었다.전화를 받은 설영준은 담담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통화하며 박윤찬은 설영준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음을 알아냈다.“왜 그래요?”“괜찮아, 바빠서 이만 끊을게.”설영준은 말을 마치고는 휴대전화를 꺼버렸다.설한 그룹은 해성병원의 주주이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하여 돈만 충분히 주면 설영준은 한 사람의 진료 기록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설영준은 송재이의 병력을 보았다. 송재이가 처음 병원에 와서 진행한 임신 검사 결과와 초음파 사진도 있었다.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 되다 보니 콩알만 한 까만 덩어리가 보일 뿐이었다.설영준은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또 송재이와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송재이의 진료 기록을 받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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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설영준, 너무해

송재이는 온종일 심란했다.낮에 지민건의 판결 결과를 알았고 저녁에는 또 민효연의 집에 가서 연우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연우를 보며 송재이는 또 도정원과 도경욱이 생각났다.송재이는 연우에게 도씨 부자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민효연이 옆에 있어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민효연과 설영준은 모두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그들의 앞에서 송재이는 언제나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초등학생처럼 영혼마저 털린 듯 비밀이 없어진다.민효연의 의아스러워하는 눈빛에 그녀는 주눅이 들어 뒤로 물러났다.피곤한 송재이는 집에 가서 샤워하고 자려 했다. 그런데 설영준의 차가 그녀의 아파트 건물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지난번에 설영준이 그녀를 끌고 차 안에서 한 짓을 생각하면 너무 창피하여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느꼈다.“여긴 왜 왔어?”송재이는 자신의 차를 세우고는 설영준의 차 옆으로 걸어가서 창문을 두드렸다.설영준은 진작 송재이를 보았으나 차에서 내리지 않고 오히려 여유만만하게 그녀가 먼저 내리기를 기다렸다.그리고 그녀가 그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설영준은 두 손을 머리 뒤로 기대고 여유롭고 편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재이 씨 방금 데이트했어? 왜 이렇게 예쁘게 꾸몄어?”설영준은 무심한 듯 덤덤하게 물었다.송재이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힐끗 보았다.‘평소와 같은 차림새일 뿐, 별거 없어.’“나 수업 끝났어.”송재이가 말했다.“민효연 사장님 댁에서 돌아온 거야?”설영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응.”“도정원 대표님도 만났어?”송재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아니.”설영준은 덤덤하게 송재이의 표정을 눈여겨보았다.그러다가 조수석에서 크라프트 백을 불쑥 들어 올렸다. 꽤 큰 봉지였다.“자, 네 거야!”봉지 안에는 송재이가 앞서 장하 별장에 남겨둔 옷가지가 담겨있었다.당시 그녀는 캐리어 공간이 부족해서 물건을 다 가져오지 못했다.나머지 것들은 가질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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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증명할 수 없어

또 보름이 지났다. 오케스트라는 섣달 그믐날이 되어서야 마침내 쉬기 시작했다.송재이는 일찍 일어나 물건을 사서 어머니의 묘소로 차를 몰고 갔다.철이 들었는지 이제는 울지 않고 웃으며 엄마한테 좋은 말을 했다.돌아오니 거리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모두 기쁨에 겨워 새해맞이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따금 멀지 않은 곳에서 새 해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고 이웃들도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었다.이렇게 떠들썩한 날에 송재이는 오히려 홀로 있었다. 작년에는 병실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기에 쓸쓸했지만 외롭지 않았다.하지만 올해는...갑자기 도정원과 연우가 생각났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이 둘은 나의 가족일까?’송재이는 알고 싶었으나 감히 증거를 찾지 못했다.송재이는 집으로 돌아온 후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텔레비전을 켰다.텔레비전에서는 설날 특집이 한창이었다.그녀는 집안의 쓸쓸한 분위기를 깨려고 볼륨을 좀 높였으나 줄곧 딴생각하고 있었다.이때 유은정이 전화를 걸어왔다. 유은정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했다.유은정은 송재이가 혼자 설 쇠는 것을 알고는 외로워할까 봐 집으로 초대했다.송재이는 동정과 연민을 받고 싶지 않아 유은정의 성의를 거절했다.“괜찮아, 설날 특집 보다가 일찍 씻고 잘 거야.”유은정은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래, 심심하면 언제든지 놀러와. 우리 엄마 아빠 모두 너를 환영해.”“그래!”전화를 끊자 송재이의 웃음도 사라졌다.그녀는 답답한 듯 한숨을 쉬고는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고 했다.무심코 텔레비전을 힐끗 보니 광고가 방송되고 있었다.다섯 식구가 나란히 모여 떡국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떡국! 송재이는 예전에 엄마에게서 떡국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었기에 솜씨가 좋았다.도씨 부자를 찾아갈 핑계가 없었는데 마침 떡국을 만들어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저번에 도경욱이 입원했을 때도 가봤으니 억지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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