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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1화

다음 날 아침, 유월영은 윙윙거리는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4~5시 돼서야 잠을 청한 그녀는 간신히 눈꺼풀을 뜨며 휴대전화를 찾았다.그러다 발신인이 연재준인걸 본 그녀는 순식간에 졸음이 가셨다. 그녀는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고, 침대 탁자 위의 옅은 노란색 편지봉투를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그 일들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는 길게 숨을 내쉰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연재준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자 유월영은 자기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뭐 하고 있어?”“자고 있어요...”“어디서?”남자의 목소리는 금세 가라앉았다.“내가 지금 당신 방에 있어. 사람이 안 보이는데 어디서 자고 있는 거야?”그의 말투는 마치 그녀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유월영은 멍하니 있다 이내 정신 차리고 물었다.“내 방에 있다고요? 지성에 나 찾으러 갔어요?”"어제 마지막 출근이었잖아. 당신과 같이 신주시에 돌아가려고 데리러 왔어.”연재준은 끈질기게 물었다.“그래서 어디서 잤는데?”유월영은 이불을 둘러쓰고 시간을 봤다. 겨우 일곱 시였다.“이렇게 이른 시간에요? 설마 밤새 차를 몰고 지성에 간 건 아니죠?”"어젯밤에 일 끝나고 왔어.”연재준은 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왜 이리저리 말을 둘러대?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어디길래 내가 알면 안 되는 데야? 윤영훈이야? 아니면 신연우인가? 당신 도대체 누구랑 같이 있어!” 유월영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연재준은 전화를 끊었다.그녀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영상통화가 울렸다. 이 남자가 진짜..연재준은 정말 현장을 잡으려고 결심한 듯했다. 유월영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전화를 받았다. 연결되자마자 남자의 청초하고 날카로운 미간이 화면에 나타났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유월영은 그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봉현진의 집에 있어요.”유월영은 카메라를 이동시켜 보여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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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재준은 고개를 숙여 키스를 퍼부었다.거칠게, 누구에게도 그녀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주위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은 채, 그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받히고 혀끝이 입안을 밀고 들어왔다. 유월영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그의 양복을 꽉 움켜쥔 채 말했다.“재,재준 씨.”연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동안 키스를 한 후에야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헐떡이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는 왠지 모르게 관능적으로 비춰졌다.“시작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그는 유월영의 손을 잡고 그녀가 알아채기도 전에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유월영의 눈이 커졌다.연재준은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자기, 구청도 지금은 문 닫았으니 연휴 끝나고 출근하면 그때 혼인신고 하러 가.”뭐, 뭐라고?잠깐만!그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유월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그가 다시 헛소리할까 봐 황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다가 다시 반지를 벗으려고 했다. 하지만 반지의 다이아몬드 부분은 역 V로 짜여져 끼우기는 쉬운 데 빼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반지의 치수가 꼭 맞아서 아예 벗을 수 없었다.“...”유월영은 급한 마음에 화가 났다. “내, 내가 언제 대답했어요? 난 단지 우선 시작해 보면 좋겠다는 뜻이었다고요. 같이 지낼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자는 거였다고요!”그러다 안 맞으면 헤어져야지! 이 남자는 왜 그냥 프러포즈...…아니, 프러포즈도 아니라, 이건 그냥 결혼이잖아!결혼...연재준과의 결혼이라니?유월영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가 연재준과 사귀고 그가 남자 친구라고 말하면, 말을 하면 조서희의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만약 그녀가 연재준과 결혼한다고 그녀에게 말하면...맙소사, 아마 조서희는 즉시 고향에서 날아와 그녀를 의사나 무당에게 데려가서 그녀의 머리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귀신에 씌운 건 아닌지 물어볼 것이다. 두 사람은 한때 그렇게 관계를 감추려 했었지만, 지금은 갑자기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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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회색 시멘트벽은 햇빛을 받아 약간 뜨거웠다. 유월영은 옷을 사이에 두고 열기가 느껴졌다. 유월영은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난 아무것도 대답한 적이 없어요. 당신 마음대로 정하지 마세요.”연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처음 방문하면서 빈손으로 가면 안 되는데. 나랑 같이 마을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부모님께 맞는 선물을 같이 골라주면 되겠다.”“...”“자기. 처음 부모님 뵙는 자리인데, 나 좀 도와줘.”“...”유월영은 가만히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자기야 소리에 마음이 동했는지, 아니면 그가 고개를 숙여 바라보는 모습에 정신 차리지 못한 건지, 그녀는 얼떨결에 그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래도 관광지인지라 마을에는 고급 브랜드들이 들어선 백화점이 있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기 전, 연재준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를 대할 때처럼 그렇게 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유월영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핸드폰 액정을 보았지만, 그는 이미 전화를 끊은 후였다. 그리고는 4천만 원 이체해 주면서 말했다. “자기. 우선 네가 좀 골라줘, 전화 좀 받고 올게.”“그래.”유월영은 돌아서서 백화점에 들어가면서, 그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연 회장님 전화네.’혼자 백화점에 들어간 유월영은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그냥 돌아보기만 했다. 그러다 반지를 빼내려고 시도했지만 빠지지 않았다.그녀는 명품 매장에 가서, 어머니를 주려고 작은 지갑을 샀다. 그러고는 매장 직원에게 혹시 이 반지를 어떻게 빼야 되는지 아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매장 직원은 반지를 보자마자 놀라 소리 질렀다.“어머! 이게 얼마 전 실시간 검색에까지 올랐던 그 비싸게 팔린 ‘에로스’잖아요!”유월영은 멍하니 있었다.‘ 뭐?’매장 직원은 소문으로만 듣던 반지의 실물을 보고, 유월영이 가격을 모르는 눈치이자 감탄을 하면 설명했다.“모르세요. 이게 ‘에로스’인데, 며칠 전 홍콩 크리스티즈 경매장에서 600억에 낙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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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백화점에서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길은 겨우 십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유월영은 줄곧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갑자기 결혼하게 된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부모에게 말을 꺼낼까? 그들의 딸은 집을 나서기 전에는 싱글이었다가 30분 후에 집에 돌아와서는 곧 결혼하게 된다고. 계속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아 유월영은 연재준을 데리고 골목 주변을 빙빙 돌았다.연재준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못생긴 며느리도 언젠가는 시부모를 만나야 하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못생긴 정도는 아니지 않아?”유월영은 그가 너무 잘나서, 그녀의 부모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런 거라고 했다.연재준의 눈썹이 약간 치켜 올라가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유월영은 그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아침에 외출한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유월영의 어머니는 딸이 친구를 그것도 남성 친구를 데려온 걸 알게 되자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딸이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가정부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저번에 집에 왔던 그 총각이 아닙니까!”유월영의 어머니는 의아해서 물었다. “지난번에 왔다고요? 언제요?”가정부는 입을 가린 채 웃었다."아가씨가 지난번에 집에 왔을 때, 이 친구분이 다락방에서 내려오던 것을 제가 봤거든요. 그때 아가씨가 그냥 친구라고 했어요!”이번에 유월영은 평범한 친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딸을 잘 아는 유월영의 엄마는 바로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았다.그녀는 연재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몸에서 자연스레 나는 귀티까지 맘에 들었다.다만, ‘처음 방문한 사위'로서 열성스럽지 않은 태도와 쉽게 다가가기 힘든 카리스마 돋보이는 모습에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유월영 어머니는 처음에 놀라움에서 흡족한 마음이 들다가, 또 어딘가 우려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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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유월영 어머니도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연재준이 비록 차분히 대답했지만, 그의 이런 고급진 분위기는 돈 좀 있다고 키울 수 있는게 아니라는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요, 3년 동안 사귀면서 서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아봤을 텐데 내가 괜히 물어봤어요.”연재준도 빙빙 돌리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유월영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도 월영에게 프로포즈 했어요. 월영이도 대답해 줬고요.”유월영 어머니는 안색이 변하더니 기쁜 내색을 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결혼은 큰 일인데, 우리가 아직 재준씨에 대해 잘 모르고 또 부모끼리 만난적도 없네요. 적어도 한번 시간을 정해서 두 집안 어른끼리 앉아서 한번 얘기를 해보고 의논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요.”연재준은 차를 들어 코끝에 댔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의 안색도 좋지 않아보였다. 유월영은 그를 너무 잘 알았다. 아마 차가 입에 맞지 않고 또 유월영 어머니의 말에 그도 불쾌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와 같은 사위를 예비 장모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은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연재준은 어딜가나 모두 떠받들었으며 이런 ‘푸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유월영은 조금 후회되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갑자기 찾아오게 하는게 아니었는데. 적어도 그녀가 자신의 엄마에게 넌지시 귀뜸을 했었어야 했다.유월영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재준 씨, 차가 마을 입구에 주차되어 있어서 길을 좀 막은것 같아요. 아니면 골목 어귀에 차를 대는게 나을거에요.”유월영 어머니도 거들었다."그래요. 마을 어구에는 주차 금지에요. 관광객 출입에 지장을 주면 견인될 수 있어요. 재준 군, 차를 우리 집 앞에 대요, 그래야 안심되지요.”연재준은 당연히 유월영 어머니가 그가 없는 자리에서 유월영과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고분고분 고개를 그떡이고 집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마자 유월영 엄마는 딸의 옆에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러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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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식사 시간이 되어도 유현석이 돌아오지 않자, 가정부는 나가서 찾기 시작했다. 딸이 수저를 놓는 걸 도와주려 하자 이영화는 예비 사위가 혼자 앉아 있기 불편할까 봐 가서 챙겨주라고 떠밀었다. ‘설마 그럴 리가.’하늘이 무너져도 연재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유월영은 마지못해 거실로 다가갔다.연재준이 2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유월영은 옆에 있는 소파로 다가갔지만 이내 연재준의 손에 잡혀 옆에 함께 앉았다.그가 귓가에 속삭였다.“어머님과 무슨 얘기를 했어?”유월영은 귀가 예민하여 살짝 피했다.“별말 안 했어요.”“별말 안 했는데 나에 대한 태도가 그렇게 변했다고?”연재준은 그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내가 눈치 못 챈 줄 알아? 방금 어머님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잖아. 내가 어디가 장모님 눈 밖에 날 게 있어?”연재준의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그가 지나치게 우월한 조건에서 기인했지만, 자식을 돈으로 여기는 부모가 아니라면, 결혼할 때 상대방의 인품을 제일 우선시하는 게 당연했다.유월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남녀 사이가 확실시 않는데 그러면 탐탁해하겠어요?”연재준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유월영도 기왕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서로 솔직해야 하고 못 물어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연재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머님이 스위스에 계신다고 했잖아요. 백유진도 스위스로 보낸 건, 어머님과 벗이 될 수 있도록 보낸 건가요? 무슨 신분으로?”연재준은 그녀의 손가락으로 장난치면서 웃었다.“그건 어머님이 맘에 안 들어 하신 거야? 아니면 당신 마음에 안 든 거야?”유월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왜 말을 돌려요? 대답하기 많이 어려운 문제인가요?”“말투는 나를 따라 하는 건가?”연재준은 그녀를 와락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유월영은 서둘러 그의 가슴을 밀치고 나서야 품에서 빠져나왔다. “엄마가 아직 부엌에 있다고요!”그녀는 부모님 앞에서 껴안고 애정 행각을 할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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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유월영은 인제야 백유진과 연재준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를 보면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은 생각으로 이어졌다.남자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으며 연재준 같은 남자는 더욱 그랬다. 여자가 그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백유진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자신 곁에 올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자신을 좋아해도 된다는 걸 묵인한 셈이다. 작년 설날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녀에게 불만이 있었고, 그녀에게 계속 냉랭하게 대했다. 그가 백유진을 곁에 둔 건 그녀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변심’해서일지도 몰랐다. 유월영은 씁쓸한 듯 말했다.“재준 씨 어머님, 백유진 씨를 맘에 들어 하시겠죠? 재준 씨보고 백유진이랑 결혼하라고 하지 않으세요? 서정희 말로는 연 회장님께서 백유진을 받아들였는데 왜 갑자기 또 허락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연 회장님이 백유진과 재준 씨 어머님 사이를 아셨던 게 아닐까요?”유월영은 연씨 가문의 집안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연 회장이 전처의 일에 대해 꺼린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연재준은 그녀의 턱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유 비서님, 당신은 비서이지 탐정이 아니야.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없어.”그녀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알았다. 작은 단서라도 눈에 띄면 그녀는 전체 자초지종을 알아챘다. 유월영은 연재준의 손을 피하면서 말했다.“그럼 재준 씨 나랑 결혼하면 어머님이 반대하지 않으세요? 마음속의 며느리는 백유진을 점찍어 두신 것 같은데.”“어린애들이나 부모님 말씀 잘 따르지.”유월영은 마음이 심란해져서 다시 반지를 빼느라 안간힘을 쓰면서 중얼거렸다. “꼭 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손에 박힌 것도 아니고 왜 안 빠지지.”연재준은 지금 그녀의 감정이 매우 잘 느껴졌다.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으며, 그게 무엇 때문이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차분하게 설명했다.“아직도 내 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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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남편이 돌아온 걸 듣고서 이영화도 막 음식을 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그럼 밥 먹을 준비해요. 오늘 월영이 재준 군을 데려오면서 미리 말을 안 해서, 아무것도 준비 못 했어요. 모두 집에서 만든 음식이라 재준 군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연재준은 일어나서 유월영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쓱 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미리 찾아뵙겠다고 월영이한테 얘기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월영이도 미리 얘기를 못 드렸을 거예요. 월영이 탓 아닙니다.”유월영 어머니는 사위가 보면 볼수록 맘에 들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져서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재준 군, 우리 월영이 너무 오냐오냐하지 말게.”그리고는 이내 또 잊지 않고 딸의 편을 들어줬다. “하긴 우리 월영이 이렇게 착한데 오냐오냐하면 뭐 어때요.”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두 식탁에 앉고, 유월영 어머니는 연재준에게 우선 국을 떠줬다. 그러고는 계속 그의 밥 위에 반찬을 집어 줬다. “재준 군, 이걸 먹어봐요. 굴비가 아주 토실해요.”“그리고 이 불고기도 얼른 먹어봐요. 월영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에요.”“밥 다 먹으면 저기 과일도 먹어요. 월영이 좋아하는 신 귤도 있고.”연재준은 유월영을 보며 물었다.“신 걸 좋아해?”유월영 어머니가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그래요. 오늘도 한 박스 사다 놨어요.”“참, 재준 군 생년월일 아직 모르는데. 여기서 결혼하려면 사주도 봐야 하고 그에 맞는 결혼할 날짜도 골라야 해요.”“물론 이건 우리가 재준 군 아버지를 만난 후에 다시 의논해도 돼요.”잉이영화의 열정적인 태도에 비해 유현석은 무뚝뚝하게 앉아 있었다.하지만 유월영과 이영화의 관심은 모두 연재준에게 쏠렸던 터라, 누구도 유연석이 줄곧 아무 말 없이 음식은 손에 대지도 않은 채 긴장한 기색으로 앉아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마치 누군가가 신경에 거슬리는 듯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연재준은 시종일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이영화의 모든 질문에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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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유월영은 연재준의 이 엉뚱한 생각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연재준이 농담할 기분이라도 되니 유월영은 마음이 놓였다. “반지가 빠지지도 않는데 내가 어떻게 결혼 물리겠어요? 전 600억 배상할 돈이 없네요.”“응. 그게 내 목적이야. 뺄 수 없는 반지로 널 납치하는 거지.”연재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아까 아버님께 손가락질받을 때는 좀 화가 났었는데, 당신이 잘 달래줘서 괜찮아졌어.”‘누가 달랬다고 그래. 여전히 왕자병이야.’유월영이 물었다.“재준 씨, 소은혜에게서 또 무슨 수를 배운 거예요?”이건 또 무슨 장난이람?“내가 남한테서 배울 게 뭐 있어?”연재준은 시치미를 뗐다.“연 대표님께서 윤영훈 흉내 내던 걸 기억나게 도와드릴까요?”연재준은 그녀의 입술에 세게 입을 맞춘 후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 나갔다. 유월영은 웃음을 참으며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문을 채 열기도 전에 가정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사모님! 괜찮으세요?”유월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영화는 가정부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기대어 두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가정부는 급히 혈압계를 꺼내 혈압을 측정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높았다. 유월영은 급히 혈압약을 찾아 그녀 입에 물려주었다. 한참 후에야 이영화는 깨어나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유월영은 심각한 얼굴로 가정부와 같이 어머니를 침대에 부축해 눕혔다. 이영화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네 아버지 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요즘 좀 무슨 일로 불안한가 봐. 계속 이랬다저랬다 하지, 술도 많이 마시고 툭하면 집에도 안 들어오고 물어보면 화부터 내고...”자주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온다는 건 가정부한테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자주 어머니에게 화를 내신다고요? 가정부가 왜 저에게 안 알렸죠?”이영화는 남편에게 완전히 실망한 듯 말했다.“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네가 걱정할까 봐. 아버지 말 듣지 않아도 돼. 내가 보기에 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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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 유월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유현석도 자기가 딸에게 손찌검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손을 대게 된 이상 주먹을 꽉 쥐고 호통을 쳤다.“난 네 아버지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해. 내가 그 자식과 결혼하지 말라 했으면 하지 마! 그 자식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유월영은 손을 내려놓고 차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예전에 날 빚보증용으로 바쳤던 그 채권자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어?”유현석은 그 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유월영은 뒤끝이 심한 사람이 아니었다.연재준이 예전에 그녀에게 했던 속상했던 일들, 그리고 유현석과 이영화가 그녀를 팔아버리려고 했던 일들도 전부 용서했고 “과거는 그냥 과거일 뿐”이라는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하지만 오늘 유현석은 유월영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렸다.“당신은 먼 옛날부터 날 버리려고 작정해 놓고선 이제 와서 아버지의 신분으로 날 압박하고 공제하려 하지 마.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날 다스릴 자격이 없어. 당신이 다시 어머니를 화나게 하면 난 어머니를 모셔갈 거야.”말을 마치고 유월영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얼굴에 날린 그 귀싸대기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얼얼했고 꿀꺽 군침을 삼킨 후, 유월영은 결국 골목을 뛰쳐나갔다.하지만 뜻밖에도 골목 입구에서 그 마이바흐를 보게 되었다.연재준은 차에 기대어 서 있었고 햇빛이 그의 온몸을 살포시 비추어 따뜻함을 한층 더해주었다.유월영은 천천히 다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아직도 안 갔어요?”연재준은 한눈에 유월영의 오른쪽 얼굴에 찍힌 붉은 손바닥 자국을 발견했고 급기야 시선이 어두워졌다. “내가 왜 안 갔겠어? 여기 와 봐.” 떠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월영과 유현석이 티격태격하다가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질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유월영은 연재준 앞으로 걸어갔고 연재준은 주머니에서 두 손을 꺼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 손바닥은 난로처럼 따뜻했다.“뭐 하는 거예요?” 유월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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