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1021 - 챕터 1030

1402 챕터

제1021화

그러다 발을 헛디뎌 첨벙 소리와 함께 지아의 얼굴에 물보라가 튀었다.“누구야?”지아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대자로 뻗어있는 도윤을 발견했다.지아는 그를 놀리고 싶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도윤은 당황한 얼굴로 물속을 더듬으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지아야, 어디 있어? 괜찮아?”그렇게 불쌍한 도윤을 보니 갑자기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도윤 씨, 난 괜찮아.”지아의 목소리를 들은 도윤은 급히 물속을 헤엄쳐 그녀에게 다가가 단숨에 품에 끌어안고 횡설수설했다.“지아야, 어디 있었어? 날 놀라게 하지 마, 힘들게 찾았는데.”동굴 안에는 지아가 가져온, 그리 밝지 않은 빛을 내는 작은 태양열 램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저 하늘에서 비추는 달빛만 있었다.지아는 걱정으로 가득 찬 도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순간의 감정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 순간 목이 메었다.그토록 고고하고 강인했던 도윤이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자 지아는 꿈을 꾸는 듯 어색했다.“지아야, 왜 말을 안 해? 무슨 일인데? 나 앞이 안 보여, 놀라게 하지 마.”도윤은 짜증이 나서 감고 있던 눈의 붕대를 잡아당겼다.“난 왜 앞이 안 보이는 거야. 지아야, 뭐라고 말 좀 해봐...”지아는 도윤을 밀어내고 차분하게 말했다.“도윤 씨, 무슨 일이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돌에 부딪혀 상처가 난 도윤의 손바닥을 지아가 붕대를 감아주었는데 조금 전 힘을 준 탓에 상처가 찢기며 새빨간 피가 물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거즈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온몸이 흠뻑 젖은 도윤의 머리카락을 타고 물방울이 한 방울씩 흘러내려 눈앞의 물 위로 떨어지며 파문을 일으켰다.“도윤 씨, 이럴 필요 없어.”도윤은 개의치 않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지아야, 네가 괜찮기만 하면 난 괜찮아.”지아의 마음은 폭우가 쏟아진 듯 축축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어떤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와 걷잡을 수 없이 휩싸여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괜히 짜증이 난 지아가 도윤을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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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2화

물에 젖은 두 사람이 한데 얽혔고 도윤은 엉망진창이 된 채 일어나려고 허둥대다가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원래는 침착하고 자제력이 뛰어난 남자였지만, 지아만 보면 침착함이나 자제력이 모두 사라졌다.조심하면 할수록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움직이지 마, 내가 할게.”지아는 힘없이 말했다.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으니까.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어떻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괜히 도윤이 상황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까 일단 그를 다독인 뒤 지아는 깨끗한 옷을 그의 손에 건넸다.“여기 옷과 바지야. 알아서 갈아입을 수 있지?”“응, 그런데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야?”“됐어, 내가 할게.”어차피 남자의 몸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지아는 체념하고 손가락으로 허리에 묶인 끈을 잡아당겨 가운을 벗겼다.남자의 탄탄한 등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3년 전 지아를 구하느라 남은 흉터였다.지금도 지아는 그때의 처참한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벌써 이렇게 지났다니, 시간이 참 무섭다.지아는 깨끗한 수건으로 도윤의 얼굴과 몸에 묻은 물기를 부드럽게 닦아주었고, 도윤은 얌전한 대형견처럼 그녀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전에는 이럴 때가 있었나?도윤은 워낙 강한 남자였고,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는 데 익숙했다.과거 도윤과 만날 때 그는 일부러 자신의 마음을 숨겼고, 지아는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를 전혀 몰랐다.살결이 부딪힐 때에야만이 비로소 도윤의 존재를 살짝 느낄 수 있었다.도윤이 자신의 마음을 전부 꺼내 지아에게 보여주어도 보는 척도 하지 않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지난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턱에는 수염이 두툼하게 자랐고 머리카락도 조금 더 길어졌다.게다가 중독된 탓에 사람이 무척 초췌해졌다.도윤은 눈을 가린 붕대를 뜯어내자 지아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지금 지아의 시선도 하늘의 달빛처럼 부드러운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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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3화

도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지아의 몸에 밀착하고 다시는 헤어지지 못하게 영혼 깊은 곳에 새길 기세로 그녀를 몇 번이고 품에 끌어안았다.전에는 지아에게서 그런 약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가 느껴졌다.게다가 지금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몸의 모든 감각이 증폭되었다.원래는 적당히 가볍게 입만 맞추려 했는데, 홍수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손가락이 지아의 머리 뒤쪽 비녀에 닿아 부드럽게 당겨졌고 풍성한 머릿결이 쏟아지며 그의 손가락을 휩쓸고 지나갔다. 부드럽고 가벼운 그것은 은은한 향기까지 풍겼다.적당히 흘러가는 분위기에 지아도 거절하는 것을 잊은 듯했다.도윤의 손은 점점 더 거침없어졌고 아이를 하나 더 낳은 탓인지 지아는 예전보다 몸매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지아는 앞가슴이 서늘해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 개자식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자신은 악마에게 홀린 듯 그의 손에 휘둘리고 있었다.이성이 돌아온 지아는 도윤을 밀어내며 말했다.“선 넘지 마!”도윤도 그제야 꿈에서 깨어나며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걸 상기했다. 자칫 이 작은 새가 놀라서 도망이라도 가면 또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우연한 사건으로 지아의 마음속에 아직 자신이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 충분했다.도윤은 어린 시절 좋아하는 무언가를 사기 위해 힘들게 한 푼 두 푼 모으며, 이따금 유리창 앞에 엎드려 기쁨과 동경이 가득한 채 물건을 집에 가져갈 때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는 지아를 놓아주었다.“미안해, 지아야, 너만 보면 나도 모르게 그만.”지아는 매섭게 말했다.“한 번만 더 손대면 경훈 씨한테 맡길 거야.”도윤은 곧바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안돼, 경훈이는 너무 딱딱해서 사람을 잘 돌보지 못해.”“그럼 얌전히 있어.”도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얌전히 있을게.”혀를 내미는 대형견 사모예드처럼 아무런 공격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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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4화

아니, 이 개자식이 아예 다른 사람이 됐네?이게 정말 예전과 같은 사람이 맞나? 캐릭터가 전혀 다른데.하지만 아내에 비하면 이미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도망간 마당에 무슨 품위가 필요하겠나.지아의 대답을 듣지 못한 도윤은 곧바로 다시 말을 돌렸다.“미안, 너무 무례한 부탁이지. 못 들은 걸로 하고 얼른 쉬어. 난 혼자서도 괜찮아.”지아는 도윤이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단 걸 알았지만 눈이 멀고 독에 걸리고 뱀굴에 빠진 건 전부 사실이었다.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결국 체념한 듯 이불과 담요를 끌어안고 도윤의 옆자리에 다가가 자리를 폈다.“내가 왔으니까 이제 자도 돼.”“고마워, 지아야.”잠시 후 지아가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옆 사람에게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오지 마.”지아는 눈을 떴다.“왜 그래?”그 순간 남자가 이불 속으로 들어왔고, 지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며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지아가 화를 내기도 전에 도윤이 먼저 말했다.“지아야, 뱀, 뱀이 너무 많아.”그 말이 분노의 불길을 잠재우는 비가 되어 지아는 꾹 참고 말했다.“다 지나갔어, 괜찮아.”“하지만 뱀이 기어 오던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어... 지아야, 나 좀 안아주면 안 돼? 네가 안아주면 너만 생각할 테니까.”지아는 할 말을 잃었다.“일부러 그러는 거지?”도윤은 천진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나 무서워.”지아는 의심스러웠지만 도윤이 계속 이렇게 뒤척이면 자신도 잠을 제대로 못 잘 것 같아 조금 더 다가온 뒤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고 손을 등에 올려놓았다.“이제 됐지?”“응.”‘너무 좋지.’지아는 도저히 도윤과 실랑이할 힘이 없어 웅얼거리며 말했다.“빨리 자.”지아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익숙한 품이 왠지 모르게 안정감을 주었다.도윤은 품에 안긴 여자의 호흡이 평온해지자 입꼬리가 미치도록 올라가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뱀을 무서워해?허, 죽음도 무섭지 않은데 그딴 걸 무서워할 리가.처음부터 끝까지 도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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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5화

그날 밤 도윤은 잠을 전혀 이룰 수 없었다.지아를 안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알기에 도윤은 당연히 보물을 놓을 수 없었다.지아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눈을 감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두 팔을 감싸안았고, 그의 눈에는 깊은 사랑이 가득했다.지아는 날이 밝을 때까지 푹 잠을 잤다.눈을 뜨자 초점 없는 도윤의 눈을 마주한 지아는 바로 깜짝 놀랐다.“밤새운 거야?”도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뱀만 생각하면 무서워서. 그리고 네가 나한테 꽉 매달리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었어.”지아가 시선을 내리자 문어처럼 두 손과 두 발로 그를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서둘러 도윤을 밀어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일부러 그런 거라도 괜찮아.”도윤은 미소를 지으며 지아를 바라보았다.“난 상관없어.”지아는 손을 뻗어 도윤의 눈앞에서 흔들었고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도윤은 어젯밤보다 눈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지아의 이목구비 위치가 어렴풋이 보였고, 여전히 흐릿했지만 시력이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었다.“이제 좀 쉬어도 돼. 날이 밝으면 위험한 것도, 뱀도 없으니까.”“지아야, 나 배고파.”지아는 어이가 없었다.“알았어, 아침 만들어줄게.”제대로 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해 이 나이 먹고 어린이로 살 생각인지.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애지중지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지아는 간과했다.척박하던 마을에 지아가 와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농사와 축산 기술을 가르쳐서 지금은 매우 잘살게 되었다.처음 며칠 동안은 죽이나 과일만 먹다가 이제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자 도윤이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지아는 좁쌀 한 줌으로 죽을 만들고, 밭에서 갓 딴 옥수수를 갈아 전을 부친 다음, 직접 담근 작은 장아찌를 잘게 썰었다.이런 건 도윤이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것들이었다.“지아야, 요리 실력이 늘었네.”“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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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6화

끼익-문이 열리고 약을 들고 온 지아는 침대에 누워 있는 도윤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왜 저래요?”경훈은 차마 사실을 들킬까 봐 도윤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가 알려준 대로 말했다.“보스가 요즘 밤에 잠을 못 자요, 눈만 감으면 그날 밤이 떠올라서. 푹 쉬지 못하니 회복도 더뎌요.”지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요 며칠 도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약을 배달하는 것 외에는 어떤 접촉도 하지 않았다.“아직도 밤에 잠이 안 와?”지아는 도윤의 짙어진 다크서클을 바라보았다.도윤은 매일 밤 지아를 생각했고 다음 날 바로 지아에게 쫓겨날까 걱정하며 잠 못 이룬 탓에 다크서클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도윤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응, 눈만 감으면 그 생각이 떠오르네.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잠 못 잔다고 큰일 나지는 않으니까, 흠.”“이대로는 안 돼. 일단 약 먹어.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도윤은 분명 트라우마로 수면장애가 유발된 것이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는 게 말이나 되나?약을 마시던 도윤은 오늘 감기라도 걸릴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하지만 이곳은 사계절 내내 따뜻하고 밤에도 최저 기온이 10도 안팎이라 감기에 걸리기는 너무 힘들었다.오후가 되자 지아는 도윤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도윤은 처음 지아의 방으로 들어왔다.방에는 은은한 약 냄새가 났다.그는 며칠 동안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이렇게 물었다.“무무는?”지아는 도윤 앞에서 무무를 언급하는 것을 꺼렸고, 정체를 밝힌 뒤엔 다른 사람에게 잠시 무무를 맡겼다.괜한 걱정이 아니라 도윤은 그만큼 계산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과거 지아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줄 알고 강제로 낙태까지 시키려 했는데, 무무가 다른 사람 아이라는 걸 알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지금은 자신의 상황 때문에 무무를 건드리기 어려워도 몸을 회복하고 나서 무무에게 손을 대면 지아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무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무무를 도윤에게서 떼어놓을 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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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7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지아가 몸을 더 굽히자 마침 도윤의 이마에 닿았다.부드럽다.도윤은 눈을 감고 속으로 끊임없이 애국가를 제창했다.다행히 면도는 금방 끝났고 도윤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지아는 손을 깨끗이 씻고 오일을 발라 머리를 눌러주는데 예전보다 훨씬 더 섬세한 손길이었다.전혀 잘 기미가 없었던 도윤은 마사지해 주는 지아의 손길과 좋은 향기에 저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잠든 그를 보며 지아는 안도했다.지아가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달력을 보니 도윤의 몸속 독이 90%가 빠져나가기까지 길어야 일주일 정도 남았고, 그 뒤엔 도윤 스스로 몸을 회복해야 했다.지아는 이 남자가 쉽게 떠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가 가지 않으면 자신이 떠나야 한다.한참을 의학 서적을 읽어도 도윤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아도 씻고 쉴 준비를 했다.도윤은 물소리에 잠에서 깼다.오랫동안 잠든 사이 방안의 향초는 다 타버린 지 오래였고 남은 잔향이 사람의 마음을 간질였다.금방 깨어나 머리가 다소 아팠던 도윤이 눈을 깜박이자 전보다 훨씬 나아진 걸 발견했다. 이젠 거의 400도 근시안과 비슷해져 플라스틱 커버의 작은 글자를 제외하고는 방 전체의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도윤의 시선이 병풍으로 향했다. 방에 조명이라곤 촛불만 켜져 있었고, 빛은 미약했지만 병풍에 드리운 지아의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딱 좋았다.막 목욕을 마친 지아는 욕조에서 나와 무심코 가운을 집어 입고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그녀는 도윤을 신경 쓰지 않고 옆에 있던 수건으로 목에 있던 물기를 닦았다.그러고는 침대 앞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운을 벗었고, 뒷모습일 뿐이었지만 그 모습이 오롯이 도윤의 눈에 담겼다.오랜만에 지아의 몸을 본 도윤은 코피가 났다.허둥지둥 처리하려던 그는 자신의 뺨을 때려 기절시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쓸모없는 놈!’쿵 소리와 함께 도윤이 침대에서 떨어졌고 고개를 돌린 지아는 그제야 앞 못 보는 누군가도 방에 있음을 의식했다.고개를 돌리자마자 도윤이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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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8화

직설적인 질문에 도윤은 심장이 입 밖으로 뛰쳐나올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력을 되찾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당연히 도윤은 인정하지 않았다!“지아야, 나도 하루빨리 시력을 되찾아서 너한테 폐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그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움직이지 마, 종이 가져올게.”“그래.”도윤은 지아가 무심하게 가운을 걸치고 베개 밑에서 단검을 꺼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자신의 얼굴에 고정된 지아의 시선은 무언가 알아내려는 듯했다.도윤이 그런 지아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지아는 이미 의심하고 있다.자신을 속이기 위해 앞을 못 보는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아가 알게 된다면 그 끝은 상상만으로 알 수 있었다.도윤은 마음속으로 불안했지만 감히 얼굴에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코피가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둔 채 그는 바보처럼 물었다.“지아야, 어디 있어? 돌아왔어?”지아는 도윤에게 다가가 휴지를 내려놓으며 평소처럼 말했다.“왔어.”지아는 휴지를 뽑는 순간 갑자기 칼을 뽑았고, 칼날이 도윤의 눈을 스쳐 지나가더니 안구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도윤은 눈을 깜빡이지도, 조금도 물러서지도 않았다.칼끝이 그의 눈을 똑바로 조준하고 있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반응이었던 터라 지아는 자신이 괜한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하지만 지아는 등 뒤에 있던 도윤의 손가락을 보지 못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도윤은 날카로운 통증으로 단검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을 참았다.지아가 아무리 독해도 도윤보다는 아니었다.도윤은 일부러 몸을 움직이기까지 했다.“지아야, 종이 어디 있어?”지아는 서둘러 단검을 치웠다.“여기.”그녀는 그 순간 도윤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이 일로 도윤의 출혈도 기적적으로 멈췄다.피투성이가 된 도윤을 보자 다시 물을 받아 씻기기도 귀찮았다.“내가 방금 샤워해서 물이 아직 따뜻할 텐데, 안 더러우면 가서 씻어.”“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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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9화

이 세상에 도윤이 못해낼 일은 없다. 게다가 아직 지아와 그 사이엔 네 명의 아이가 있으니 서두르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꽁꽁 얼린 얼음도 하루아침에 녹지 않는데, 자신과 지아 사이의 응어리를 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방금 전 진심을 다해 웃는 지아의 미소를 떠올리며 도윤은 진심으로 진심을 맞바꿀 계획을 세웠다.“지아야, 목욕 타월 어디 있어?”셔츠와 바지가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입을 수 없었던 터라 지아는 경훈에게 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도윤을 피하기 위해서 지아는 방에서 나와 경훈더러 옷을 입히게 했다.“보스, 사모님께서 옷 입히고 방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어요.”도윤의 얼굴이 잔뜩 서늘하게 굳었다. 지아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하지만 태생이 반골인 도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도윤은 더 주저하지 않고 경훈을 따라 나갔다.아직 며칠이 남았는데 그사이에 지아와 진전이 없다면 전처럼 밤낮으로 상사병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하늘에 뜬 보름달을 바라봤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야 했다.지아는 도윤이 자신을 귀찮게 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틀 동안 도윤은 그녀를 일부러 찾지 않았고 오히려 조원주와 가까워졌다.조원주는 도윤이에게 쪼개진 옥수수를 알맹이로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는 등 할 일을 던져주고, 옥수수를 수확할 때는 경훈과 함께 일꾼으로 데려가기도 했다.며칠 만에 도윤은 옥수수밭에 서서 바지 다리를 걷어 올리고 낫을 더듬으며 줄기를 자르는 등 농사일에 익숙해졌다.속도는 느리지만 체력이 좋았다!조원주는 도윤의 손을 당기며 말했다.“자네, 태생이 옥수수 농사를 지을 인재인데 여기 남아서 날 도와 농사나 짓지 그래?”도윤은 숨기지 않았다.“좋죠, 할머님만 괜찮으시다면요.”조원주는 도윤을 직접 보기 전까지 그가 거칠고 위압적이고 배신자에 나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부지런하고 건장하고, 농사를 짓고 몸이 튼튼한 사람으로 바뀌었다.생각만큼 미운 행동도 하지 않고 지아를 향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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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0화

지아는 소달구지에 올가미를 매고 있었다. 마을의 교통수단은 소달구지 아니면 말이었고 생활 조건이 조금 악랄해도 지아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 행복했다. 서로 물고 뜯는 대도시의 삶보다 훨씬 좋았다.“도윤이랑 같이 가. 둘이 가면 더 빠르니까.”경훈은 침을 맞고 약을 바르느라 당분간 움직이지 못했고, 두 사람을 이어주고 싶었던 조원주의 마음을 잘 알았기에 지아는 거절할 수 없었다.도윤과 지아는 덜컹거리는 소달구지에 나란히 앉았고 이따금 몸이 마구 흔들렸다.도윤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았다.“왜 웃어?”“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재미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넌 소달구지를 몰고 난 옥수수를 뜯고, 이런 일상도 나쁘지 않네. 평화롭고 소박하고, 심지어 평생 여기서 너와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어.”지아가 미간을 찌푸렸다.“난 싫어.”아직 끝내지 못한 일,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경훈을 볼 때마다 젊고 아름다웠던 미연이 자신의 심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려다 결국 눈앞에서 생을 마감하던 게 떠올랐다.지아는 2년 동안 이를 갈았다. 이제 그 사람에게 미연이 겪은 것의 백배를 갚아주는 일만 남았다!미연에게 빚진 걸 한꺼번에 다 갚을 생각이었다.도윤은 그저 웃으며 중얼거렸다.“그냥 내 희망 사항이라고 생각해.”밭에 도착하자 지아는 도윤을 옥수수밭으로 이끌었다.“여긴 당신이 베, 내가 나중에 정리할게.”“알았어.”도윤의 눈은 완전히 나았지만 지아 앞에서 계속 아픈 척을 해야 했다.적어도 이렇게 손이라도 잡을 수 있으니까.도윤은 한 번 자를 때마다 지아를 한참이나 쳐다봤다.지아는 마을에서 항상 수수한 옷을 입고 민첩하게 일을 했다.짧은 시간에 밭에서 많은 양의 벼를 베내는 지아는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잘하는 사람이었다.그런 천재가 자신의 무지로 인해 미래를 잃을 뻔한 것이다.도윤도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옥수수 줄기를 잘랐다. 7시간 넘게 연달아 일하니 체력 좋은 도윤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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