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고이서는 목소리를 한층 부드럽게 가다듬고, 이서를 바라보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이서가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고이서는 안심한 듯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너는 윤씨 가문의 딸인 윤이서이고, 나는 어릴 때부터 너랑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야.”고이서는 이서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이서가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고이서는 안도하며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이서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이서를 바라보았는데, 그 말에 고이서는 속으로 기뻐하며 곧장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의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노인성 치매와 유사한 증상입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이서는 재빨리 대답했다. “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검사받겠습니다.” 의사는 이서를 힐끗 바라보았고,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고서야 미소를 지었다.“환자분도 동의하셨으니, 먼저 수납부터 진행해 주시죠.” 의사는 고이서에게 진료비 명세서를 건넸는데, 명세서를 본 고이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6천 400만원이요...?”‘단순히 치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검사가 6천 400만원이나 한다고?’고이서는 순간 마음이 불편했지만, 곧 윤씨 가문과 이서가 소유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사가 떠올랐다. ‘그래, 윤씨 가문을 차지하려면 이 정도 돈은 투자해야 해. 어차피 나중에 회삿돈으로 메우면 되는 거니까.’ 마음을 다잡은 고이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지금 바로 수납할게요.” 고이서가 수납처로 향하자, 의사는 고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수납하실 때 서명도 잊지 마세요!” “네!” 고이서는 걸음을 서두르며 대답했다. 수납처로 향하는 고이서의 구두 굽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이서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이서는 수납을 마치고 돌아왔고, 이서는 검사받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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