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줄 몰라 하는 이경빈과 달리 탁유미는 매우 평온해 보였다.“앞으로 찾아오지 마. 이 말 하려고 왔어.”그녀의 말에 이경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그, 그냥 멀리서 보고만 있을게.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게. 그래도 안 돼...?”“응, 그러지 마. 우리한테 어울리는 끝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거야. 진작에 그래야 했어.”이경빈은 순간 심장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너무나도 아파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나도 알아. 내가 너한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거... 하지만 유미야, 나한테 기회를 줘. 어떻게든 갚을게. 무슨 수를 써서든 만회할게.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멀리서만이라도 널 보게 해줘. 그것만은 빼앗아가지 말아줘...!”이경빈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애원했다.늘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을 것 같은 남자가,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남자가 지금은 제발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너무나도 애절하게 빌고 있다.하지만 그런 그의 애원에도 탁유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고 너랑 나 사이의 일도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이제 더는 여기로 오지 마.”“싫어. 못해... 유미야, 내가 널 얼마나 사...”“그만.”이경빈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려는 순간 탁유미는 단호하게 잘라버렸다.“더 이상 말하지 마.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마. 소름 끼치니까.”이건 진심이었다.탁유미는 할 수만 있으면 이경빈을 사랑했던 과거의 기억을 전부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이경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과거의 멍청하고 바보 같았던 스스로가 떠올라 참을 수 없었다.이경빈은 탁유미의 말에 몸을 휘청였다.“너와 너의 집안이 윤이와 만나는 것까지는 뭐라고 안 할게. 아빠 노릇이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하지만 거기까지야. 나한테까지는 넘어오지 마. 네가 이렇게 얼쩡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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