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그날 밤의 모든 챕터: 챕터 91 - 챕터 100

1265 챕터

제91화

그녀는 이 남자가 전에 건물에서 잔인하게 밀어뜨린 기억이 생생했다.“송연아 씨.”강세헌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7월 6일 저녁에 하나병원에 있었어요?”송연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그 당시 저는 하나병원의 의사였는데 병원에 있는 게 뭐가 잘못됐나요?”송연아는 목이 바짝 마른 채로 그에게 되물었다.강세헌이 왜 그날 밤을 언급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러니까 그날 밤에 병원에 있었다는 거네요. 연아 씨 근무가 아닌데 최지현 씨를 대신하여 출근한 거 맞아요?”강세헌은 이미 최지현한테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송연아에게 다시 한번 묻는 건 일말의 오차가 없길 바라서였다.송연아는 입술을 앙다물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맞아요. 그날 밤은 나랑 세헌 씨가 결혼한 첫날 밤이라 여느 때보다 기억이 생생해요. 세헌 씨는 별장에 가지 않았고 나는 지현이가 잠시 일이 생겨서 대신 근무해달라는 문자를 받고 병원에 갔어요...”“그날 밤 상처를 입은 남자를 봤었죠?”“세헌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송연아가 그의 말을 가로채고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내 뒷조사해요?”“묻는 말에만 대답해요. 봤어요 못 봤어요?”강세헌은 흥분한 기색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송연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숨김없이 다 털어놓기로 했다. 어차피 강세헌은 모든 걸 다 알게 됐으니 그녀가 남김없이 말하면 강세헌이 그녀를 증오하게 될 것이고 덩달아 통쾌하게 이혼해 줄 테니 그땐 멀리 떠나기만 하면 된다.“맞아요, 상처 입은 남자를 만났어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았는데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구분이 안 됐어요. 나를 납치했지만 해치진 않았어요. 그래서 나도 좋은 사람일 거로 믿고 구해주기로 했죠. 구하던 과정에 그 사람이 내게 탐욕을 보였고 난 거부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내 남편도 날 싫어하는데 눈앞의 남자랑 관계가 발생하면 신혼인 남편이 나를 역겨워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과 신혼 첫날밤인 그 밤에 딴 남자랑 관계를 맺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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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강세헌이 곧장 병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 송연아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침대 옆에 엎드려 있었다.그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뭐 하는 거예요?”강세헌은 재빨리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는 차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그녀에게 물었다.“다리가 이 지경이 됐는데 아직도 도망치려고요?”송연아가 가볍게 머리를 내저었다. 지금 그녀는 다리가 멀쩡하다 해도 도망칠 기운이 전혀 없다.젖이 불어서 가슴이 마비될 지경이니까.“목이 말라서요.”강세헌은 그제야 바짝 마른 그녀의 입술이 갈라 터져 핏기가 어린 걸 발견했다.그는 송연아를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물 따라줄게요.”송연아는 침대에 다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물었다.“세헌 씨, 대체 왜 날 안 놓아주는 거예요?”강세헌은 물을 따르다가 흠칫 손이 떨렸다. 그는 송연아에게 호감이 있다.다만 그녀에게 딴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강세헌은 워낙 자존심이 강하니까.호감이 있어도 마음을 꾹 억누를 뿐이었다.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그날 밤 그 여자가 송연아라는 걸 알게 됐고 남자관계가 복잡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강세헌은 더 이상 그녀를 향한 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다.그는 컵을 들고 침대 머리맡에 와서 앉아 송연아를 부축했다. 그녀는 가녀린 몸에 힘이 축 처져 강세헌의 품에 기댄 채 물을 마셨다.송연아는 입을 벌리고 물 한 컵을 조금씩 천천히 다 마셨다.“더 마실래요?”강세헌이 묻자 그녀는 졸린 듯 머리를 내저었다.강세헌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품에 안고서 그날 밤 일을 떠올렸다...송연아의 몸에 밴 기운이 늘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그 익숙함이 어디서 왔는지 인제 드디어 알게 됐다.그녀가 바로 강세헌을 주체하지 못하게 했던 그 여자였다.강세헌은 자신을 매료시키는 이런 기운이 너무 좋았다.송연아는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그녀는 원래 강세헌이 병실을 나가면 간호사의 휴대폰을 빌려 한혜숙에게 연락하려고 했는데 그가 줄곧 나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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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강세헌은 그녀의 다리를 힐긋 바라보며 해명했다.“그땐 내가 홧김에 그랬어요.”홧김에 그녀를 밀쳤다고 한다.송연아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니까 그녀의 죽음을 무릅쓰고 건물에서 밀쳐낼 수 있다는 말인가?“내가 떨어져서 죽으면요?”“그럴 리는 없어요.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기껏해서 장애인이 돼요.”강세헌이 죽 한술 떠서 호 불며 식힌 후 그녀의 입가에 갖다 댔다.송연아는 그런 강세헌이 실로 불편할 따름이었다.“죽에 독 탄 건 아니겠죠?”그녀가 예민한 게 아니라 강세헌의 태도를 진짜 헤아릴 수가 없었다.강세헌은 그녀를 몇 초 동안 빤히 쳐다봤다.‘너의 마음속에서 내가 그토록 용서할 수 없는 나쁜 놈인 거야?’“연아 씨를 계속 내 옆에 두고 못살게 굴어야죠. 당분간 죽일 생각 없어요.”강세헌이 일부러 악독하게 말을 내뱉었다.그 모습에 송연아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그래, 이게 바로 세헌 씨지.’송연아는 입을 벌려 죽을 한 입 먹었다.강세헌은 인내심 있게 그녀에게 죽 한 그릇을 전부 다 먹였다.오은화가 닭국까지 끓여왔다. 강세헌이 국을 떠주려 하자 송연아가 손사래 쳤다.“나 배불러요.”너무 많이 먹으면 젖이 더 불까 봐 걱정됐다.그러면 가슴이 부풀어 올라 엄청 아플 것이다.강세헌이 그녀에게 물 한 컵 따라주었다.송연아는 두어 모금 마시고 자리에 누우려 했다.강세헌이 부축해주다가 부주의로 그녀의 가슴을 다쳤다.“스읍.”송연아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왜 그래요?”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는 이불을 덮고 얼굴만 내민 채 담담하게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다만 강세헌은 바로 눈치챘다. 그녀가 가까이 기댈 때 가슴이 엄청 딱딱했고 옷도 다 젖어 있었다.강세헌은 잘 알진 못해도 얼추 알고는 있었다. 이제 막 출산한 그녀가 젖이 부풀어 올라 힘들어한다는 것을.“의사 선생님 불러올까요?”강세헌이 물었다.“아니요, 괜찮아요.”송연아가 대답했다.그녀는 의사라서 며칠만 참으면 나아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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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심재경은 더 따져 묻고 싶었지만 강세헌 때문에 이쯤에서 멈췄다. 그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강세헌은 심재경 때문에 송연아가 제대로 휴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너 따라 나와.”심재경이 풀이 죽은 채로 따라갔다.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그에게 건넸다.“바보같이 왜 그래?”심재경이 곧바로 반박했다.“그래, 너 잘났다. 연아가 도망치면 사방으로 쫓아다니고 말이야. 세상에 널린 게 여자이고 널 좋아하는 여자들도 엄청 많은데 뭣 하러 연아 때문에 못 죽어 안달이야?”그는 원망을 다 늘려놓기 전에 한기를 느껴 대뜸 말을 멈췄다.강세헌은 그의 휴대폰이 삭제한 통화기록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해주려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심재경은 그의 마음만 후벼팠다!강세헌은 휴대폰을 거두어들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넌 산부인과 의사도 아니니 여기 있을 필요 없어. 당장 꺼져.”말을 마친 후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심재경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알아채고 곧바로 해명했다.“미안해. 나도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 화 풀어, 응?”강세헌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병실 문을 열었다. 안달이 난 심재경이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자 강세헌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이거 놔!”심재경은 바로 손을 놓으며 배시시 웃었다.“한 번만 봐줘. 이것 하나만 물을게. 너 그때 어디서 연아를 찾았어?”송연아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그녀가 숨어 지내는 곳이 어쩌면 안이슬이 숨어 지내는 곳일 수도 있다.어쨌거나 안이슬은 전에 송연아와 제일 친한 사이였으니까.심재경은 나름대로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빨리 돌았다.강세헌은 문을 닫고 복도 끝의 창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심재경도 뒤따라갔다.“너 연아 씨랑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어? 연아 씨에 관한 얘기 좀 해봐.”강세헌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곧게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라인이 어우러져 바닥에 비춘 그림자마저 눈부시게 빛났다.심재경은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다.‘연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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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강세헌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제 아이까지 잃고 말았다.대가가 너무 커 감당할 수가 없었다.“연아 씨 아이는... 없어. 앞으로 연아 씨 앞에서 아이에 관한 말은 하지 마. 또 가슴 아파질라.”강세헌은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심재경은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쌍둥이는 한 명이 유산되면 다른 한 명도 지켜내기 힘들어. 연아가 필사적으로 지켜내긴 했지만 감염될 위험이 너무 커. 유산할 때 아무리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라 해도 자궁에 상처 주지 않는다는 보장은 못 해.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 것도 정상적인 일이야. 그래도 난 잘됐다고 생각해. 애 낳지 말라고 진작 권유했거든. 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낳아서 혼자 키우는 게 말이 돼? 걔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강세헌은 그의 말을 들으니 더 괴로워졌다.그가 송연아를 극도로 미워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지켜내고 싶어 했으니, 그녀가 얼마나 강인하고 용기 있는 여자인지 가히 보아낼 수 있었다.“난 할 말 다 했어. 그래서 넌 대체 어디서 연아를 찾았는데? 제발 좀 얘기해줘.”심재경은 자신의 궁금증을 잊지 않았다.강세헌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마음을 추스른 후 겨우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통화기록을 복원하면 연아 씨가 방금 건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어.”심재경이 흥분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그는 휴대폰을 가져와 재빨리 다뤘다. 잠시 후 통화기록이 복원되고 방금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려던 순간, 그는 흠칫 놀라더니 호흡이 가빠졌다.심재경은 애써 심호흡하며 전화를 내걸었다....안이슬은 송연아와 통화할 때 심재경의 목소리를 듣고 눈가에 망연한 기색이 스쳐 지났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넋 놓고 있었다.통화를 마쳤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목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안이슬은 여전히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익숙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응애...”이때 침대에 누워있던 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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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심재경은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하고 싶은 말이 굴뚝 같은데 정작 목이 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안이슬은 송연아가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한번 물었다.“연아야?”심재경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나 연아 아니야.”안이슬은 흠칫 놀라더니 곧장 전화를 꺼버렸다.그녀는 휴대폰을 꼭 쥐고 어쩔 바를 몰랐다.한혜숙은 그녀의 수상한 낌새에 잔뜩 걱정하며 물었다.“왜 그래? 연아가 위험하대?”안이슬은 강세헌이 이미 송연아를 용운시로 데려간 줄 몰랐다. 연아가 아직도 고훈의 손에 있는 줄로 여겼다.안이슬이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그런데 왜...”한혜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이 또다시 울렸다.안이슬은 전화를 안 받고 발신자 번호만 뚫어지라 쳐다봤다.한혜숙은 의아한 눈길로 그녀에게 물었다.“왜 전화를 안 받아?”안이슬이 대답했다.“연아 아니에요.”그녀는 말하면서 문밖을 나섰다.거실을 지나 발코니에 왔지만 벨 소리는 여전히 끊기지 않았다. 안이슬도 잇달아 마음이 심란했다.심재경은 그녀가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 기세였다.한참 고민하던 안이슬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심재경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끊지 마.”안이슬은 잠시 침묵하다가 질문을 건넸다.“연아는 좀 괜찮아?”“나 너랑 연아 얘기 하려는 게 아니야.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너 지금 어디야?”심재경이 초조한 마음으로 물었지만 안이슬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이에 심재경은 흥분 조로 쏘아붙였다.“그때 한마디 말도 없이 잠수 이별하고 내 눈앞에서 사라졌어. 내가 널 얼마나 찾아 헤맨 줄 알아? 우리 사이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너 나한테 뭐라도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이슬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우린 안 맞아...”“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집어치워. 지금 만나, 너 어디야? 그것만 말해!”심재경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안이슬은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재경아, 널 떠나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우리 사이는 끝났어. 인제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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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안이슬이 웃으며 답했다.“그래요. 저를 너무 어렵게 대할 필요 없어요. 연아처럼 생각해주세요.”한혜숙은 아기를 안고 가볍게 토닥거리며 잠을 재웠다. 그녀는 안이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연아도 애를 낳았으니 너도 이젠 슬슬 결혼해야지. 가짜 결혼 말고 제대로 된 결혼 말이야.”안이슬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그녀는 전혀 한혜숙이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안이슬의 엄마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혜숙과 똑같은 말을 했었다.다만 이젠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다.안이슬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심재경은 가장 빠른 속도로 청양시에 도착했다.도착하니 아직 날이 밝지 않아 해 뜰 때까지 기다려서야 곧바로 안이슬과 약속한 장소로 달려갔다.약속 시간이 되자 안이슬이 찬이를 안고 그의 앞에 나타났다.밤새 한숨도 못 잔 심재경은 낯빛이 어둡고 눈앞이 캄캄했다.안이슬이 아기를 안고 왔지만 그는 별생각이 없었다.오직 그녀에게만 모든 신경이 쏠렸다.‘살 빠졌네, 전보다 훨씬 많이 빠졌어.’심재경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며 애틋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이슬아.”안이슬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심재경은 그녀를 다시 보게 되니 마냥 기뻤다. 별다른 이유 없이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그거 알아? 네가 날 떠난 동안 매 순간 널 그리워했어.”안이슬은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다만 그녀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차갑게 쏘아붙였다.“나 결혼했어. 이 아이는 내 아기야.”심재경은 순간 방망이로 머리를 처맞은 기분이었다!그제야 그녀 품에 안긴 아기에 시선이 쏠렸다.그는 짙은 두 눈으로 정색하며 물었다.“뭐, 뭐라고? 너... 결혼했어?”심재경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소리로 외쳤다.“난 안 믿어, 못 믿어!”안이슬은 그를 사랑하기에 절대 딴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을 리가 없다.설사 그의 옆을 떠났다고 해도 그건 안이슬만의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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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대문짝만하게 적힌 고훈이란 이름을 본 순간,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고훈이 갤러리 전시회를 열어? 게다가 나한테 일부러 초대장까지 주는 거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의도가 뭐야?’송연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무슨 생각 해요?”이때 강세헌이 문을 열고 들어와 송연아의 손에 쥔 물건을 보더니 덥석 가져갔다.“뭐에요?”송연아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고훈 씨가 보내온 거예요.”고훈이란 두 글자에 강세헌의 낯빛이 확 돌변했다.그는 미간을 구기며 초대장을 열어 내용을 읽어보았다.“가고 싶어요?”송연아는 아직 고훈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녀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강세헌을 자극해 하루빨리 이혼해주고 그녀를 놓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말했다.“네, 가고 싶어요.”강세헌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송연아가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지만 그야 당연히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고훈은 몇 번씩이나 그녀를 갖고 싶어 했으니까.이번에 전시회를 연 것도 아마 송연아를 위해서겠지.고훈은 비록 명문대 출신이라 지적이긴 하지만 예술 쪽으론 문외한이다!강세헌은 왠지 고훈이 다른 의도를 품고 갤러리 전시회를 여는 것 같았다.“지금은 산후조리 기간이라 푹 쉬어야 해요.”강세헌은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하지만 송연아는 매우 단호했다.“나 갈 거예요.”강세헌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녀는 더 하고 싶어진다.그에게만 청개구리 기질을 보이는 듯싶다.남쪽으로 가라고 하면 그녀는 한사코 북쪽으로 간다.강세헌은 말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송연아는 그의 시선을 회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나 무조건 갈래요.”“알았어요.”강세헌은 송연아가 전혀 뜻을 굽힐 기미가 없다는 걸 보아냈다.“나랑 함께 가요. 혼자 보내는 건 내가 마음이 안 놓여요.”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세헌 씨 엄청 바쁘잖아요. 가서 볼일 보세요. 저는 아주머니랑 함께 가면 돼요. 걱정 말아요, 이번엔 절대 안 도망칠 테니까. 세헌 씨가 나랑 이혼해줘야 나도 시름 놓고 떠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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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그녀의 차가운 표정을 본 강세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추워요?”“아니요.”송연아가 단답형으로 대답했다.그에게 한 글자도 더 말하기 싫은 듯했다.강세헌은 싸늘한 그녀의 말투에 기분이 살짝 가라앉았지만 더 헤아려주고 보듬어주기로 했다.그녀는 아이를 잃고 산후조리 중인 데다가 강세헌이 건물 아래로 밀쳐버렸으니 그를 미워해도 이해됐다. 충분히 원망할 짓을 했으니까.강세헌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그는 다른 쪽 차 문을 열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갤러리 전시장에 도착한 후 기사가 먼저 내려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가져왔다.강세헌도 차에서 내려 송연아를 안고 휠체어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녀의 다리에 얇은 담요도 덮어주었다.송연아는 고개 들어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고훈은 장소 선택이 참 탁월했다. 용운시 옛 성문은 나라의 보호를 받는 고대 건축물이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여기 서서 봐도 역사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강세헌이 휠체어를 밀면서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문 앞엔 수많은 차들이 세워졌다.오늘 고훈은 적잖은 사람들을 초대했다.전시장에 들어선 후 송연아는 벽에 걸린 그림을 보더니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고훈이 왜 갤러리 전시회를 열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전에 그녀는 청양시에서 화실을 열었는데 나중에 고훈이 전부 폐쇄해버렸고 흔적조차 말끔히 지웠다. 목적은 바로 강세헌이 조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그 안에는 그녀의 그림이 엄청 많았다.이번에 갤러리 전시회를 주최한 의도가 강세헌을 엿 먹이기 위해서인가?송연아는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마음대로 하라지 뭐. 세헌 씨가 이 일로 나랑 이혼해주면 오히려 잘된 일이잖아.’“강 대표.”고훈은 그들을 보자 하던 얘기를 마치고 재빨리 이쪽으로 걸어왔다.“너도 왔어? 나 너한테 초대장 안 보낸 것 같은데?”그의 전시회는 강세헌에게 보여주기 위해 주최한 것이다.강세헌이 무조건 올 거란 보장이 있었다.하여 고훈은 일부러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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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고훈은 그에게 대놓고 자랑질하며 도발했다!송연아는 이상하게 마음이 찔렸다.그녀도 대체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오늘 고훈이 초대한 사람들은 전부 상류층 인사들이라 장내가 매우 화려했다!다만 보통 갤러리 전시회는 유명한 화가들만 열 수 있다.듣도 보도 못한 작은 인물이 그린 그림을 대체 누가 감상할까? 심지어 거액을 들여 그림을 사는 건 더 말할 가치도 없다.전시회장의 그림들은 전부 서명이 되어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에게 질의하듯이 물었다.“고훈 씨, 이 그림들 다 어디서 구했어요? 왜 서명도 없죠?”고훈이 웃으며 답했다.“다들 조급해하지 말아요. 잠시 후에 이 그림들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여러분께 알려드릴게요.”“저희를 실망시키지 말아요. 그림은 참 괜찮지만 화가의 서명이 없어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고훈이 웃으며 답했다.“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는...”그의 시선이 강세헌에게 쏠렸다.강세헌은 아예 그를 거들떠보지 않은 채 벽에 걸린 그림만 지켜봤다.예술은 모르지만 이 그림들은 감상할만했다.마치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하객들이 다 도착하자 고훈이 무대 위에 올라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오늘 전시회를 압도할 그림은 두 폭입니다. 한 폭은 경매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마음에 드신다면 얼마든지 경매해도 돼요. 두 번째 그림은 오늘 전시회의 보물급 명화이니 감상할 순 있지만 판매는 사절입니다.”“잔말 말고 빨리 보여주기나 해요!”누군가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고훈은 직접 빨간 천을 내렸다.곧이어 사람들 눈앞에 명화가 나타났고 유명 화가 K의 서명도 있었다.다들 명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한 소녀의 초상화였는데 창가 쪽에 곧게 서 있는 소녀는 흰 가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발목까지 드리워진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배가 살짝 불러나온 걸 보아 임산부의 초상화가 틀림없었다.미인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드리워지고 또렷한 눈매에 모성애가 저절로 차 넘쳤는데 마치 저 하늘의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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