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과 가격 다툼을 벌이게 할 사람을 구했다!고훈은 반드시 강세헌한테서 크게 한턱 받아내야 한다!같은 남자로서 그는 누구보다 강세헌을 잘 이해한다.강세헌이 송연아에게 감정이 있든 없든 절대 제 아내의 그림이 외부에 새어나가는 걸 지켜볼 자가 아니다. 강세헌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송연아는 딴 남자의 아이를 가졌으니 이 그림으로 그에게 망신을 주면 된다. 송연아는 딴 남자를 만났었고 임신까지 했었다! 강세헌에게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을 것이다!‘분명 이 그림을 사가서 갈기갈기 찢어버리겠지!’고훈이 제멋대로 예측했다.장내는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전시회장에 온 사람들이 부자인 건 맞지만 다들 무작정 돈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그림 한 폭이 이유 없이 수백억에 팔리다니, 다들 마냥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강세헌은 비즈니스 업계에서 칼같이 단호하고 단 한 번도 손해 본 적이 없다.그런 그가 지금 수백억을 들여 한 폭의 그림을 사려 하다니, 사람들은 그 그림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강세헌은 고훈의 꼼수를 훤히 꿰뚫었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가격은 그에게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이 그에게 주는 큰 의미였다.강세헌의 아이가 한때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걸 뜻하니까.그는 곧바로 가격을 외쳤다.“1000억.”장내에 탄식이 울려 퍼졌다.이는 거의 모든 이의 예상을 초월했다. 660억도 가치가 없다고 느꼈으니 말이다.그의 말을 들은 송연아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고개 돌려 강세헌을 쳐다봤다.“이 그림, 그만한 가치가 없는 그림이에요.”강세헌이 입술을 앙다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 상대에게 달려있다.강세헌에게 이 그림은 값을 매길 수 없다.그는 돈에 인색하는 자가 아니다!고훈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도 슬슬 이해할 수 없었다.강세헌이 이 그림을 살 거란 보장은 있지만 그의 예측 가격은 800억 좌우였다.하여 미리 불러온 사람에게도 60억만 더 올려 강세헌에게 여지를 주라고 했
아니나 다를까 고훈은 이 일을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 그때 그림을 다 그린 후 그는 송연아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었다.“우리 저쪽 가서 얘기할까요?”고훈은 송연아가 그와 같은 편일 거라고 여겼다.송연아는 강세헌에게 밀려 건물에서 떨어졌고 다리도 깁스하고 있으니 분명 그를 원망할 것이다.지금 강세헌에게 거액을 갈취했으니 송연아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한다.“그냥 여기서 하시죠.”송연아도 강세헌이 돈을 뜯기는 건 아무 의견이 없다.다만 고훈이 지금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이 돈은 그녀도 한 몫 받아야 한다.전에는 돈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지만 이젠 수입도 없고 아이와 부모까지 책임져야 하니 돈 쓸 곳이 너무 많다.그녀는 아이와 부모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훈도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강세헌 앞에서 대놓고 돈 계산을 했다.“3대7로 나누는 건 어때요?”그는 강세헌에게 너무 많은 돈을 손해 봤고 이 전시회도 강세헌을 위해 기획했다.하여 그가 좀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송연아는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 고훈의 입에서 3대7이라는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다.그녀는 단지 고훈한테서 조금이라도 돈을 받아 한혜숙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엄마랑 찬이가 적어도 먹고 지내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야 하니까.“만족스럽지 못해요?”그녀가 아무 말 없자 고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너무 많이 욕심냈나?’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송연아가 말했다.“만족해요.”그녀의 예상 범위를 훨씬 뛰어넘었다.강세헌은 송연아의 뒤에 서서 뜻밖의 기색을 드러냈다.‘두 사람 지금 날 호구로 아는 거야? 아직 돈도 안 줬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어? 심지어 내 앞에서 대놓고 이렇게?’다만 송연아가 일부를 챙겨간다는 사실에 강세헌은 내심 흐뭇했다.‘내가 돈을 쓴 보람이 있네.’“아직 한 작품이 더 남았는데 어때 강 대표? 더 볼 의향 있어?”고훈이 실실 쪼개며 물었다.강세헌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은 채 송연아의 휠체어를 밀면서 다
그녀는 피아노와 무용, 의술까지 섭렵하고 있는데 그림도 그린다는 말인가?강세헌은 살짝 믿어지지 않았다.그도 그럴 것이 송연아는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또 분야마다 정점을 찍는다.보통 한 사람이 한 두 가지 재능을 지녀도 아주 대단하다.고훈은 강세헌이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니 저도 몰래 기분이 들떴다.‘내가 알고 있는 걸 너는 모르네?’고훈은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듣기로 누군가를 좋아해야만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다던데 강 대표는 어떻게 생각해? 이 그림을 그려준 사람, 날 좋아하는 게 맞지?”송연아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고훈 씨가 강제로 날 그리게 했잖아요. 난 고훈 씨 안 좋아한다고요...”그녀는 문득 하던 말을 멈췄다.‘나 지금 변명하고 있어? 아니야, 지금은 세헌 씨가 날 미워해야 해. 그래서 나랑 이혼해야 한다고.’그녀는 의도치 않게 말을 바꿨다.“비록 고훈 씨가 강요했지만 나도 이 그림 그려주고 싶었어요.”그녀는 자신이 고훈을 좋아하는 걸 인정한 거나 다름없다.비록 가식적이지만 듣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고훈은 흠칫 놀라더니 기쁜 내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강세헌을 쳐다보며 기고만장하게 웃었다.“강 대표 지금 배신당한 거야? 아하하...”이전까진 강세헌도 다 참을 수 있지만 고훈의 그 한마디에 제대로 울화가 치밀었다.송연아를 배려하고 싶었지만 좀 전의 그녀의 말에 분노가 차올랐다.제멋대로 굴 수도 있고, 강세헌을 미워하고 원망할 수도 있지만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강세헌의 마지노선은 송연아가 딴 남자랑 썸 타거나 혹은 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다.그는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 않았다.‘고훈, 너 절대 가만 안 둬. 자꾸 도발하지? 내가 잠자코 있으니 진짜 바보로 보여?!’강세헌은 송연아의 휠체어를 밀면서 밖으로 나갔다.“강 대표, 이대로 가려고? 더 구경하지 그래?”고훈이 계속 불난 집에 부채질해댔다.강세
강세헌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연아 씨보다 더 아파요.”그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강세헌은 자상하게 그녀의 눈가에 맺힌 뜨거운 눈물을 닦아주었다.“나랑 결혼한 이상 연아 씨는 내 사람이에요. 우린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평생 아내의 본분을 지켜야 해요.”예전의 강세헌은 인연 따위 안중에도 없었고 전혀 믿지 않았다.하지만 이젠 송연아가 옆에 있으니 부부의 연을 믿게 됐다.그날 신혼 첫날밤, 비록 그녀를 보러 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 밤에 부부가 되었고 관계도 맺었었다!하늘이 정해준 운명인 듯싶었다!송연아가 눈물을 훌쩍거렸다.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강의건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강세헌이 자신을 좋아하든 아니든, 그녀에게 잘해주든 아니든, 이 혼약은 끝까지 지켰을 것이다.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는 아이를 한 명 낳았고 이 아이는 강세헌의 애가 아니다.이 사실을 강세헌이 안다면, 그의 성격상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그녀에게 이혼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각자의 삶에 충실히 하는 것이야말로 서로에게 다 좋은 결말이다.“알다시피 난 순결한 여자가 아니에요. 이런 내가 치욕스럽지도 않나요?”송연아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강세헌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했다.“아니요, 전혀.”송연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세헌 씨답지 않게 왜 이래? 늘 고고하던 세헌 씨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그녀에게 남자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강세헌의 혐오에 찬 눈빛이 아직도 그녀 눈앞에 아른거렸다.“머리가 잘못됐어요?”‘그게 아니면 어떻게 이런 허튼소리를 내뱉지?’“나 아주 멀쩡해요.”강세헌이 그녀를 쳐다보며 경고장을 날렸다.“앞으론 고훈 멀리해요. 전에 그 자식한테 진짜 마음이 흔들렸든 아니든 상관없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연아 씨는 내 사람이에요. 딴 남자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요.”강세헌은 이번 생에 가장 비겁한 말을 내뱉었다.송연아는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이 없었다
“진짜 용건이 있단 말이야. 나 지금 속 터져 죽을 것 같아.”심재경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강세헌은 잠시 고민하다가 허락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재경은 감히 앞으로 다가오진 못하고 문 앞에 서서 송연아를 바라봤다.“연아야, 이슬이가 날 떠난 이유가 정말 딴 남자가 생겨서야?”송연아도 물어본 적 없고 안이슬도 말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했다.“그건 잘 몰라요.”심재경은 그녀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다.송연아와 안이슬은 줄곧 연락하며 지냈는데 어떻게 안이슬의 근황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나 너한테 잘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왜 날 숨겨?”송연아가 말했다.“진짜 숨긴 거 없어요.”심재경은 여전히 안 믿으며 문에 기댄 채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았다.송연아는 그런 심재경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그는 누구보다 밝은 사람인데 왜 이토록 침울해진 걸까? 송연아는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심재경은 참 좋은 사람이고 그녀에게도 너무 잘해줬다.전에 안이슬과 함께 있을 때 이슬에게도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했다.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다른 여자들을 일절 거절하며 안이슬에게 무한한 안정감을 주었다.사실 송연아도 안이슬이 왜 갑자기 그를 떠났는지 궁금했다.말하지 못할 그녀만의 이유가 있겠지.다만 어떤 이유든 딴 남자랑 눈 맞아서 심재경을 떠났다는 건 송연아도 믿을 수 없다.아마 안이슬에게 말하기 힘든 비밀이 있을 듯싶었다.그래서 말없이 심재경을 떠난 거고... 송연아는 이렇게 생각했다.“이슬이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심재경은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송연아는 그를 위로하고 싶지만 어떤 말로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지 몰랐다.어쩌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해줄 말 같은 건 없는 듯싶었다.힘든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 따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그 고통과 절망감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참지 말고 다 토해내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예요.”심재경이 어깨를 두어 번 떨더니 저
하지만 강세헌이 그녀의 말을 들을 리가 있을까.그는 걸어가서 그녀의 침대 가장자리에 앉더니 곧바로 누웠다.송연아는 할 수 없이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내줘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몸이 그에게 눌렸을 것이다.“침대가 너무 작아서 두 사람이 같이 누워서 잘 수 없어요.”송연아는 속삭였다.강세헌은 몸을 돌려 그녀를 끌어안고 머리를 그녀의 품에 묻었다.“부부는 한 침대에서 자야 해요.”송연아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의 몸은 긴장해서 빳빳해졌고 감히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강세헌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피부가 밀착되어 그녀의 몸은 불에 구워지는 것처럼 붉고 뜨거웠다. 숨결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가 귀 뒤쪽의 민감한 부위를 자극시켜 그녀는 매우 긴장되었다.점점 목이 말라가는 그녀는 속삭였다.“이제 그만 놓아주겠어요?”강세헌은 그녀의 목덜미에 대고 중얼거렸다.“안돼요.”말을 마치고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송연아는 생각했다.‘잠든 건가?’하지만 그녀는 잠들 수가 없었다.침대의 크기가 작아서 벗어날 수 없었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이어서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하며 거듭 자신을 정신적으로 진정시켰다.그리고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그녀가 잠들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모른다.그러나 그녀가 잠이 들었을 때 강세헌이 눈을 떴다. 그의 눈은 방금 깨어난 것 같은 흐릿한 상태가 전혀 없이 맑고 밝았다.잠을 자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그의 속눈썹은 굵고 길었다. 그는 송연아가 잠든 틈을 타서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고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입가의 미소가 번졌다.이 여자는 아마 잠들었을 때만 이렇게 고분고분하고 그의 손길에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다음 날 아침, 그녀가 깨어났을 때 강세헌은 그 자리에 없었다.그녀는 강세헌이 언제 떠났는지 몰랐다.강세헌이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오히려 안도했다.그녀가 일어나려고 할 때 오은화는 음식을 가져다주면
안이슬은 말하려다가 말았다.그녀는 말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입을 열기 어려웠다.송연아는 인내심을 갖고 재촉하지 않았다.그녀는 안이슬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벽에 걸린 시계가 똑딱거렸다!시간은 계속 흘러갔다.“연아야, 너 재경이 집에 대해 알고 있잖아. 우리 두 집안은 차이가 많이 나. 재경이 어머님이 나와 재경이가 사귀는 것을 알고 나를 찾아왔었어.”송연아가 물었다.“선배 어머님이 헤어지라고 하셨나요? 티비에서처럼 돈을 던지신 건 아니죠?”송연아도 심재경의 집안이 대단한 집안인 걸 알고 있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원래 안이슬의 기분은 침울했었는데 송연아의 말에 그녀는 오히려 긴장이 많이 풀렸다!“돈을 던지지는 않으셨어. 그런데 어머님은 재경이를 도울 수 있는 사람과 재경이가 결혼하길 바라셔서 주승 그룹의 따님이 마음에 드셨대. 그 여자의 집안은 재경이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래서 최고의 신붓감이라고 할 수 있지. 아마 너는 모르지만 재경이 아버지에게 연인이 있으셨고, 그래서 재경이에게 배다른 동생이 있어. 그 동생이 심 씨네 집안의 상속권을 탐냈고 재경이는 가족끼리 싸우는 걸 싫어했어. 어머님은 상속권을 빼앗길까 봐 두려웠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 말고 집안이 좋은 며느리가 필요하신 거야. 우리 아빠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엄마는 얼마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셨어. 나는 일개 법의학자일 뿐이고, 재경이랑 함께 있어도 나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어. 내가 재경이한테 말을 안 한 건 나 때문에 재경이와 어머님이 싸우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 생각에 어머님은 재경이를 무척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걱정하시는 걸 거야. 내 말 알아듣겠어? ”송연아는 이해가 안 돼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만약 이런 일이 그녀에게 일어난다면 그녀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할 수 없었다.안이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녀는 자신의 처지와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임지훈이 말했다.“강 대표님께서 이렇게 지시 내리셨습니다.”고훈은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원래 합의를 봤던 그림 값은 1800억인데 지금은 600억밖에 안 된다.그는 화가 잔뜩 난 채로 강세헌을 찾아가서 따졌다.그러나 마침 강세헌은 이 대표와 이야기를 끝마쳤다.이 대표는 그를 보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떴다.그는 고훈보다 강세헌과 함께 일하고 싶었던 것이다.고훈은 그렇게 불쾌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는 위반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비지니스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어색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그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이 대표가 멀리 가자 고훈은 입을 열었다.“강 대표, 이렇게 약속을 어길 거야?”강세헌은 사무실로 걸어갔고 고훈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그때 가격을 정한 건 너인데, 이제 와서 600억만 주는 건 무슨 뜻이야?”임지훈은 손에 든 그림을 보다가 고훈을 쳐다보고 눈을 크게 뜨고 생각했다.‘이딴 그림에 600억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는 강세헌이 이 그림을 왜 사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이 그림은 그만큼한 가치가 없었다!강세헌은 사무실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옷깃을 잡아당기고 고개를 들어 고훈을 쳐다보았다.“너랑 송연아가 3대7로 나누기로 하지 않았어? 송연아의 몫은 내가 줄 테니까 너에게 주는 건 맞지 않아?”고훈이 할 말을 잃었다.“...”“아니...”고훈은 해명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자신이 그림 전시회를 계획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결국 송연아가 혜택을 받고 강세헌이 착한 일을 한 격으로 된 것 같았다.강세헌이 송연아에게 돈을 주면 송연아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할 것이 아닌가?그럼 강세헌 좋은 꼴이 되는 거 아닌가?!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불편했다.“3대7은 맞는데 내가 7이고 송연아가 3이야.”고훈이 강조했다.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1200억을 갖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세헌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