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61 - Chapter 70

916 Chapters

제61화

서재 안, 이영철은 화가 난 나머지 찻잔을 쾅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백채영은 대체 뭐 하는 거야? 결혼을 앞둔 사람이 이렇게 큰 말썽을 부려? 내가 화 나서 죽는 꼴 보고 싶어?! 정수야, 목걸이 건네주기 전에 얼른 다시 가져와.”오정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를 마치고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실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회장님, 선우 일가에서 이미 목걸이를 받았다고 합니다.”이는 사실 백아영한테서 훔친 목걸이인데 선우 일가를 상징하는 징표였다. 따라서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걸이를 선물함으로써 선우 일가에서 백채영을 인정하게끔 할 작정이었는데, 지금은...띠리링!이때, 이영철의 개인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개인 연락처까지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기에 하필이면 타이밍까지 공교로워 누군지 굳이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이영철은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그냥 모른 척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안 그래도 만나기 힘든 선우 일가를 이번에 연락이 닿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므로 지금 전화를 끊게 된다면 다시 접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결국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이영철 씨? 안녕하세요, 전 선우소훈이라고 합니다.”휴대폰 너머로 부드러우면서도 다급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영철 씨께서 보내주신 목걸이를 잘 받았습니다. 저희 손녀딸의 목걸이가 확실한데, 혹시 지금 이영철 씨랑 같이 있나요?”이영철은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목소리만큼은 차분하고 여유가 넘쳤다.“맞아요.”“이름이 뭐예요?”이영철이 느긋하게 말했다.“선우소훈 씨, 어린 손녀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서 보고 싶기는 한데 어색하기도 하죠? 지금 그녀에 대해 알려준다고 해도 보여주기식 정보에 불과할 뿐, 선우소훈 씨께서 직접 남원에 오셔서 손녀딸을 만나는 것보다 못하지 않겠어요?”사실 그는 선우 일가 사람을 남원으로 불러들일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상봉하게 해야만 어떤 상황은 통제하기 훨씬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다만 이제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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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이른 아침, 사촌 동생 구민기는 와인을 들고 부리나케 별장으로 달려가 이성준의 방으로 곧장 향했다.“형...”밤새워 뒤척이던 이성준은 안 그래도 늦게 잠들었는데 날이 밝기도 전에 다시 눈을 뜨게 되자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며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이내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싸늘한 눈빛으로 구민기를 쏘아보았다.“중요한 일만 아니면 넌 죽었어.”잔뜩 날이 선 이성준의 모습에 구민기는 그가 백채영의 일 때문에 속상한 줄 알고 마음이 더더욱 안타까웠다.어쨌거나 모태 솔로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백채영은 이성준의 마음을 빼앗은 유일한 사람이지 않겠는가! 이성준이 결혼하고 싶어 한 여자는 백채영뿐인데, 그녀의 진면목을 알고 나서 혼사가 무산되었으니 당연히 힘들어하기 마련이다.그는 침대 옆에 걸어가서 앉더니 손에 든 와인을 흔들었다.“형, 모든 걱정은 술로 잊어버려. 술을 마시면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거야.”이성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내가 괴롭다고 한 적이 있어?”구민기는 어리둥절했다.“실연했는데 아무렇지 않아? 형은 감정이 없어? 아니면...”구민기는 이성준을 빤히 쳐다보며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채영 씨를 좋아한 게 아닌가?”이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백채영 때문에 가슴이 설렜던 그날 밤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정작 백채영과 지내기 시작한 이후로 따분하고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었다.심지어 그녀와 파혼하면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는데...“민기야.”이성준은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혹시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설렜던 여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미건조해진 적이 있어?”구민기는 고개를 저었다.“형, 나 어떤 놈인지 알잖아.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데, 과연 날 설레게 했던 여자가 있을까?”이성준은 어이가 없었다. 저 자식한테 물어볼 정도면 아직 잠이 덜 깨긴 했나 보네.“이제 그만 꺼져줄래?”구민기는 재빨리 머리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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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백아영은 마음이 착잡하긴 했지만 진동하는 술 냄새 때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말문이 막힌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이내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성준에게 다가가 말했다.“이성준, 침놓아 줄 테니까 혼자 옷 벗고 누울 수 있겠어?”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이성준이 고개를 들었다. 잘생긴 얼굴은 핏기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창백했고, 잔뜩 찌푸린 미간은 그가 고통을 얼마나 힘들게 참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술에 취해 눈동자가 살짝 풀렸지만, 백아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글이글 타올랐다.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잡아먹을 듯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소름이 돋은 백아영은 했던 말만 되풀이했다.“혼자서 옷 벗고 누울 수 있겠어?”“옷을 벗어?”이성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곱씹더니 이내 몸을 틀어 소파에 누웠다.“네 소원이라면 이뤄줄게.”내 소원을 이뤄주다니? 마치 그녀가 본인이 옷 벗는 모습을 보기 위해 먼 길 찾아온 것 같은 말투는 뭐지?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 곧이어 이성준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고, 하얗고 탄탄한 피부가 눈앞에 점점 더 많이 나타나더니 목젖부터 복근까지 훤히 드러났다.완벽한 라인과 이성을 마비시킬 듯한 달큰하고 진한 와인향까지 더해 ‘유혹적인 옴므파탈’의 매력을 물씬 풍겼다.그녀는 주변의 공기마저 후끈 달아오른 느낌에 입이 바짝 말랐는데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이내 머릿속으로 떠오른 엉큼한 상상을 재빨리 떨쳐 버리고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은침을 꺼냈다. 그러고 나서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는 다시 뒤돌아서 침놓는 데 집중했다.하지만 이성준은 술에 취했는지 평소와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의 저돌적인 시선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이라 백아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땀을 흘렸다.그런데 하필이면 진지한 표정으로 말까지 걸다니!“집중하는 모습 보기 좋네.”백아영은 화들짝 놀란 나머지 손까지 떨려서 자칫 급소를 잘못 찔러 그를 골로 보낼 뻔했다.그녀의 귀가 문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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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진동하는 술 냄새와 공격적인 입맞춤으로 백아영은 정신이 아득했다.이내 머리가 윙윙거렸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넋을 잃고 말았다.이성준이 또다시 술 마시고 그녀에게 키스하다니! 어떻게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린단 말인가?백아영은 황급히 발버둥 치며 남자를 밀어냈지만, 컨디션을 회복한 이성준은 되려 치료해 준 은인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그녀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히고는 위로 올라타서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었다.게다가 키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는 이성준 때문에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백아영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전류가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참기 힘들 지경이었다.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았다.이성준의 손놀림은 점점 대담해졌고, 일촉즉발에 이르기 직전 백아영은 그가 자신의 목에 키스하는 틈을 타서 황급히 말했다.“이성준, 그만! 나 임산부야, 임산부라고!”거침없이 움직이던 이성준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이내 잘생긴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노골적인 눈빛은 마치 백아영을 집어삼킬 듯 이글이글 타올랐다.백아영은 또다시 그를 자극할까 봐 꼼짝할 수 없었다.“이만... 놔줘.”놔달라고?“싫어.”이성준은 타오르는 욕망을 힘겹게 억누르며 백아영의 옆에 누웠고, 그녀가 마치 곰 인형이라도 되는 듯 탄탄한 팔로 꼭 끌어안았다.사실 그는 침착하기는커녕 날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통제 불능의 지경까지 이르렀다.다만 이런 상황에서 자제력을 되찾음으로써 그녀를 향한 마음이 단지 육체적인 욕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마치 그녀에게...이성준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머리로 그녀의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백아영은 이성준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규칙적으로 변하자 잠이 들었다는 생각에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벌렁거리던 심장도 그제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그러나 남자의 품에 안겨 숨결을 오롯이 느끼는 상황에서 그녀는 마음이 심란했고, 온몸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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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그러나 어젯밤의 일 때문에 백아영은 더는 그와 엮이기 싫었고, 눈에 닿지 않은 곳에서 죽을 때까지 모른 척 살고 싶었다.한참 동안 대답이 없는 그녀를 보자 이성준은 짜증이 난 듯 목소리가 가라앉았다.“싫어?”백아영이 대답했다.“알았어.”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의사의 사명감을 떠올리며 자신을 위로했다. 어차피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대답한 이상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이성준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3일 뒤에 다시 찾아와.”...며칠 사이에 백채영의 검거 소식이 들불처럼 번졌다.당시 피해자의 자해를 강요한 장본인은 백채영이며, 백아영은 누명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온라인에서는 각종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경찰이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만 기다렸다.이제 더는 야유를 보내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이 없기에 백아영은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이틀을 여유롭게 보낸 3일 차 오후, 이성준을 위해 준비한 보양식을 들고 이성그룹을 찾아갔다.이성그룹 프런트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부모님을 발견했다.불과 며칠 사이에 두 사람은 열 살이나 더 늙은 것 같았다. 그동안 열심히 관리를 받은 박라희마저 흰 머리가 몇 가닥이 생겼고, 얼굴에 주름이 언뜻 보였다.백채영이 감옥에 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꽤 큰 충격인 듯싶었다.그동안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두 사람은 이제 자존심 따위 내려놓고 프런트 여직원에게 몇 번이고 굽신거리며 애원했다.“이보세요, 단지 대표님 뵈러 왔다니까요? 한 번만 들여보내 주면 안 될까요?”프런트 여직원이 말했다.“죄송하지만 대표님께서 만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이만 돌아가세요.”“대표님한테 다시 여쭤봐요. 우리 채영을 구해줄 사람은 대표님뿐이라서 꼭 만나야 한다고요.”이 광경을 지켜보던 백아영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기분이 씁쓸했다. 당시 그녀가 억울하게 감옥에 갔을 때 부모님이라는 작자는 인맥의 도움을 받아보겠다고 이토록 사정한 적이 어디 있었는가?그녀는 매정하게 한 마디 중얼거렸다.“죄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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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백아영은 속으로 늘 친부모님을 그리워했다. 특히 백채영이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는 걸 볼 때마다 자기도 친부모님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하지만 갓난아이가 되자마자 보육원 입구에 버려지지 않았는가?그렇다, 그녀는 버려진 아이였다.친부모님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돈도 안 되는 낡아빠진 목걸이 하나만 챙겨줬을 뿐 지금은 목걸이마저 잃어버렸다.따라서 남은 인생은 친부모님과 엮일 일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넌 버려진 게 아니라 인신매매범한테 납치당했어. 그때 경찰이 한창 인신매매 사건들을 조사하던 중이라 인신매매범이 자기도 붙잡힐까 봐 널 보육원 입구에 버리고 도망갔거든. 널 감싸던 포대기 안에 목걸이를 제외하고 복주머니도 있었는데, 거기에 부모님이 널 위해 손수 쓴 편지가 들어 있었어. 오로지 너에 대한 기대와 사랑으로 가득했고, 주소까지 적었는데 이 주소를 찾아가면 아마 네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거야.”박라희의 말을 듣자 백아영은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거짓말이죠? 진짜 편지가 들어 있었다면 왜 진작에 주지 않았어요?”“내가 진작에 줘야 할 이유라도 있어?”박라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편지를 가지자마자 도망칠 게 뻔한데, 너도 자기 입으로 얘기했잖아. 내가 널 입양한 이유는 단지 채영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고. 네가 도망가면 난 다른 아이를 또 입양해야 하는데 얼마나 귀찮겠어?”백아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박라희의 뻔뻔스러움에 극도로 분노하고 원망했다.알고 보니 그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버려진 고아가 아니었다. 원래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단지 눈앞의 이기적인 두 사람 때문에 미처 누리지 못했을 뿐이다.박라희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친부모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그 편지의 도움을 받아야 해. 백아영, 네가 채영을 감옥에서 꺼내줄 수만 있다면 그 편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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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그녀는 턱을 괴며 창밖을 바라보았고 뭔가 걱정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속눈썹에 맺힌 마르지 못한 눈물방울은 햇빛에 반짝이며 진주처럼 빛났다.이성준이 약선을 먹자마자 백아영은 침을 놓기 시작했다.침을 맞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비록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색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무사히 끝났다.침을 뽑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떠날 준비를 마쳤다.“성준아, 3일 뒤에 또 올게. 안녕.”황급히 자리를 뜨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성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사장님, 회의 준비 끝났으니 자리를 옮기셔도 됩니다.”백아영이 떠나자마자 마침 위정이 사무실로 들어왔다.그 시각 이성준은 창가에 서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비 오네.”여태껏 날씨에는 신경조차 안 쓰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니 위정은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직업정신을 발휘하며 말을 이었다.“회의는 사내에서 진행되니 비가 와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이성준의 시선은 빗물에 가득 젖은 아래층 길바닥을 향했다.몇초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외투를 집어 들더니 사무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회의 취소해.”“네?”그 말은 들은 위정은 어리둥절했고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사장님, 어디 가십니까?”“따라오지 마.”그는 서둘러 뒤따라갔지만 놓치고 말았다.이성준이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찼다.‘급한 일이라도 있나? 그런데 급한 일이면 따라오라고 했을 텐데...’올 때까지만 해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였는데 이제는 비가 오고 있었다. 백아영은 어쩔 수 없이 지하철 타려던 생각을 접고 이성 그룹 건물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던 중 웬 낯익은 마이바흐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유리창을 내리자 잘생긴 이성준의 얼굴이 나타났다.“타.”그는 명령하듯이 말했고 백아영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성준아, 나한테 볼일 있어?”그들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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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성준아, 나 받아들일 준비 됐으니까 할 말이 있는 거면 그냥 해.”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그의 행동에 백아영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이성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불편함을 감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신세 지고 싶지 않아. 너는 날 치료해 주고 내가 널 데려다주면 서로 빚진 게 없잖아.”“...”역시 이성준답게 신세를 갚는 방식이 참 독특했다.“사실 넌 나한테 신세 진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예전에 네가 날 여러 번 도와줬잖아. 널 치료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이렇게 데려다 줄 필요까지는...”“지금 날 가르쳐?”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더니 불쾌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주소!”화를 내려고 하는 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은 겁을 먹어 쭈뼛대며 주소를 말했다.보육원은 꽤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차로 한 시간이나 달려서야 도착했다.“고마워, 성준아.”백아영은 예의를 갖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차에서 내리려던 찰나 이성준이 입을 열었다.“우산은 뒷좌석 사물함에 있어.”창밖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녀는 마다하지 않고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우산을 펴고 차 문 옆에 서서 조심히 들어가라고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고 순간 거대한 몸집이 비를 뚫고 다가왔다.그는 큰손으로 우산을 건네받더니 그녀와 함께 빗속에 서 있었다.빗방울은 우산에 부딪혀 ‘똑딱똑딱’ 소리를 냈고 순간 표정이 굳은 백아영은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성준아, 안 가?”“내가 그런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여?”그의 질문에 놀란 백아영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순식간에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어딘가 이상했다!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바엔 같이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함께 보육원 입구로 향했다.오랜 시간이 지난 보육원은 건물이 낡아 지저분해 보였고 큰 철문조차 녹이 슬었다.경비실에는 백발로 가득한 어르신 한 분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백아영이 조심스럽게 창문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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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잔뜩 부풀었던 기대는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했다.그녀는 이곳에서 부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실례했습니다.”풀이 죽은 채 자리에서 떠나려는 그녀를 이성준이 가로막았고 그는 원장을 보며 말했다.“방금 들어오면서 보니까 안 그래도 불에 탄 흔적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부금을 내고 다시 한 채 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헛걸음을 한 것 같네요.”그의 말에 원장은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건물을 한 채 새로 지으려면 엄청난 금액이 필요했고 이런 물주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재빨리 머리를 굴려 말을 이었다.“비록 자료는 다 타버렸지만, 당시 아이들을 관리했던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아이들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분이라 틀림없이 기억할 겁니다! 만나러 가보시죠.”백아영은 원장의 간절한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었고 돈의 힘이 크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건 결국 이성준의 돈이고, 자신을 위해 건물 한 채를...“보육원에 기부하는 건 자선 사업이야. 이번이 아니었더라도 기부했어.”이성준은 차가운 말투로 말하며 원장을 따라갔고 그의 도도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아영은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따듯해졌다.원장은 그들을 데리고 20년 전의 선생님을 찾았다. 어느덧 60여 세가 된 선생님은 백발이 가득했고, 퇴직했지만 여전히 보육원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기억력이 좋은 덕분에 백아영을 기억하고 있었다.“네가 그 아기구나. 어릴 때도 엄청 예뻤는데 역시 지금도 이쁘네. 네가 하도 이쁘고 귀여워서 사람들이 널 데려가고 싶어서 다툰 적도 있었어. 참 시끌벅적했었지.”선생님의 자상한 말에 백아영은 마음 한편이 씁쓸했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백씨 일가는 힘들게 그녀를 빼앗아 지금껏 이용만 한 뒤 무자비하게 버렸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선생님, 혹시 당시 포대기에 있었던 물건들 기억하세요?”“기억하지. 목걸이와 비단 주머니 하나가 있었는데, 그 주머니 속에는 부모님이 너한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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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그는 무뚝뚝하게 답했다.“불쌍해서.”“...”그의 답에 백아영은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보육원에서 나오자 어느덧 비는 그쳤고 하늘도 어둑어둑해졌다. 백아영은 오늘 많은 걸 도와준 그에게 예의상 한마디 물었다.“성준아, 내가 저녁 살까?”“그래.”당연하다는 듯 답을 한 이성준은 차에 올라타 운전했다.“어디 가고 싶어?”그가 흔쾌히 답할 줄 몰랐던 백아영은 어리둥절하며 답했다.“근처 아무 데나 가자.”보육원은 교외에 있었고 지리적으로 시내와 너무 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번화한 곳도 아니었다.그래서 근처에는 길거리 음식집 서너 집밖에 없었고 맵고 짠 비위생적인 음식을 대접하기에는 민망했다.그런데 시내로 돌아가려면 한 시간이나 걸리고 그 시간 동안 배고픔을 견디기엔 힘들었다.그녀가 어쩔 줄 몰라 우울해하고 있을 때 마침 정교하게 장식된 고급 레스토랑 「로맨틱 스카이」가 눈에 들어왔다.백아영은 구세주라도 만난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여기서 먹자!”이성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백아영이 다시 물었다.“너 여기 싫어?”“난 상관없어.”이성준은 입술을 깨물더니 레스토랑 앞에 주차했다.“안녕하세요. 「로맨틱 스카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분 혹시 커플이신가요?”종업원은 친절하게 물었다.당황해서 어리둥절한 백아영의 모습에 종업원은 이런 상황을 자주 접하는 듯 익숙하게 설명했다.“저희 「로맨틱 스카이」는 테마 레스토랑이라 커플이신 분들한테만 제공하고 있습니다.”“...”세상에 정말 별의별 레스토랑이 다 존재한다는 생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방금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 걸 보니 이성준은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백아영은 난처하고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 레스토랑을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웬 튼실한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그의 남자다움과 싸늘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백아영을 덮쳤고 깜짝 놀란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담담한 어조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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