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아, 나 받아들일 준비 됐으니까 할 말이 있는 거면 그냥 해.”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그의 행동에 백아영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이성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불편함을 감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신세 지고 싶지 않아. 너는 날 치료해 주고 내가 널 데려다주면 서로 빚진 게 없잖아.”“...”역시 이성준답게 신세를 갚는 방식이 참 독특했다.“사실 넌 나한테 신세 진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예전에 네가 날 여러 번 도와줬잖아. 널 치료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이렇게 데려다 줄 필요까지는...”“지금 날 가르쳐?”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더니 불쾌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주소!”화를 내려고 하는 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은 겁을 먹어 쭈뼛대며 주소를 말했다.보육원은 꽤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차로 한 시간이나 달려서야 도착했다.“고마워, 성준아.”백아영은 예의를 갖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차에서 내리려던 찰나 이성준이 입을 열었다.“우산은 뒷좌석 사물함에 있어.”창밖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녀는 마다하지 않고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우산을 펴고 차 문 옆에 서서 조심히 들어가라고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고 순간 거대한 몸집이 비를 뚫고 다가왔다.그는 큰손으로 우산을 건네받더니 그녀와 함께 빗속에 서 있었다.빗방울은 우산에 부딪혀 ‘똑딱똑딱’ 소리를 냈고 순간 표정이 굳은 백아영은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성준아, 안 가?”“내가 그런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여?”그의 질문에 놀란 백아영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순식간에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어딘가 이상했다!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바엔 같이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함께 보육원 입구로 향했다.오랜 시간이 지난 보육원은 건물이 낡아 지저분해 보였고 큰 철문조차 녹이 슬었다.경비실에는 백발로 가득한 어르신 한 분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백아영이 조심스럽게 창문을
잔뜩 부풀었던 기대는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했다.그녀는 이곳에서 부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실례했습니다.”풀이 죽은 채 자리에서 떠나려는 그녀를 이성준이 가로막았고 그는 원장을 보며 말했다.“방금 들어오면서 보니까 안 그래도 불에 탄 흔적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부금을 내고 다시 한 채 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헛걸음을 한 것 같네요.”그의 말에 원장은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건물을 한 채 새로 지으려면 엄청난 금액이 필요했고 이런 물주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재빨리 머리를 굴려 말을 이었다.“비록 자료는 다 타버렸지만, 당시 아이들을 관리했던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아이들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분이라 틀림없이 기억할 겁니다! 만나러 가보시죠.”백아영은 원장의 간절한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었고 돈의 힘이 크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건 결국 이성준의 돈이고, 자신을 위해 건물 한 채를...“보육원에 기부하는 건 자선 사업이야. 이번이 아니었더라도 기부했어.”이성준은 차가운 말투로 말하며 원장을 따라갔고 그의 도도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아영은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따듯해졌다.원장은 그들을 데리고 20년 전의 선생님을 찾았다. 어느덧 60여 세가 된 선생님은 백발이 가득했고, 퇴직했지만 여전히 보육원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기억력이 좋은 덕분에 백아영을 기억하고 있었다.“네가 그 아기구나. 어릴 때도 엄청 예뻤는데 역시 지금도 이쁘네. 네가 하도 이쁘고 귀여워서 사람들이 널 데려가고 싶어서 다툰 적도 있었어. 참 시끌벅적했었지.”선생님의 자상한 말에 백아영은 마음 한편이 씁쓸했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백씨 일가는 힘들게 그녀를 빼앗아 지금껏 이용만 한 뒤 무자비하게 버렸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선생님, 혹시 당시 포대기에 있었던 물건들 기억하세요?”“기억하지. 목걸이와 비단 주머니 하나가 있었는데, 그 주머니 속에는 부모님이 너한테
그는 무뚝뚝하게 답했다.“불쌍해서.”“...”그의 답에 백아영은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보육원에서 나오자 어느덧 비는 그쳤고 하늘도 어둑어둑해졌다. 백아영은 오늘 많은 걸 도와준 그에게 예의상 한마디 물었다.“성준아, 내가 저녁 살까?”“그래.”당연하다는 듯 답을 한 이성준은 차에 올라타 운전했다.“어디 가고 싶어?”그가 흔쾌히 답할 줄 몰랐던 백아영은 어리둥절하며 답했다.“근처 아무 데나 가자.”보육원은 교외에 있었고 지리적으로 시내와 너무 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번화한 곳도 아니었다.그래서 근처에는 길거리 음식집 서너 집밖에 없었고 맵고 짠 비위생적인 음식을 대접하기에는 민망했다.그런데 시내로 돌아가려면 한 시간이나 걸리고 그 시간 동안 배고픔을 견디기엔 힘들었다.그녀가 어쩔 줄 몰라 우울해하고 있을 때 마침 정교하게 장식된 고급 레스토랑 「로맨틱 스카이」가 눈에 들어왔다.백아영은 구세주라도 만난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여기서 먹자!”이성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백아영이 다시 물었다.“너 여기 싫어?”“난 상관없어.”이성준은 입술을 깨물더니 레스토랑 앞에 주차했다.“안녕하세요. 「로맨틱 스카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분 혹시 커플이신가요?”종업원은 친절하게 물었다.당황해서 어리둥절한 백아영의 모습에 종업원은 이런 상황을 자주 접하는 듯 익숙하게 설명했다.“저희 「로맨틱 스카이」는 테마 레스토랑이라 커플이신 분들한테만 제공하고 있습니다.”“...”세상에 정말 별의별 레스토랑이 다 존재한다는 생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방금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 걸 보니 이성준은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백아영은 난처하고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 레스토랑을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웬 튼실한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그의 남자다움과 싸늘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백아영을 덮쳤고 깜짝 놀란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담담한 어조로
“오빠, 고마워요.”여자아이는 신이 나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꽃을 사면 서비스로 사진을 찍어 드려요. 언니랑 오빠같이 앉으면 제가 사진 찍어 드릴게요.”사진이 정말 필요 없었던 백아영은 어색한 마음에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이성준이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장미꽃 한 다발을 그녀의 품속에 넣었다.향기로운 꽃향기는 코를 찔렀고 이와 함께 느껴지는 남자의 차가운 분위기가 그녀의 신경을 자극해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여자친구인데 협조해야지.”이성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고 너무 가까이 앉은 탓에 호흡 소리마저 생생하게 느껴졌다. 백아영은 몸이 굳은 채 뻣뻣하게 앉아 있었다. 완벽한 사진 구도에 로맨틱한 분위기는 그대로 연출됐고 이성준도 훤칠하고 잘생겼다. 오직 백아영만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언니, 오빠 너무 잘 어울려요. 앞으로도 행복하게 이쁜 아이 낳아서 서로 사랑하며 백년해로하세요!”여자아이는 사진 두 장을 뽑아 한 사람당 한 장씩 건네줬다.백아영은 ‘커플 사진’을 힐끗 보고선 그대로 테이블에 덮어놓았다.“난 여기가 이런 곳인 줄 정말 몰랐어. 사진 줘, 내가 버리고 올게.”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사진을 지갑에 넣었다.“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알아서 처리한다는 말에 백아영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졌고 음식이 나오자,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먹는 데만 집중했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먹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갑자기 어디선가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별똥별이다!”백아영은 재빨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고 별로 가득 찬 밤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기다란 꼬리를 그리며 눈부시게 빛났다.‘얼른 소원 빌어야지!’그녀는 두 손을 모아 눈을 감더니 마음속으로 묵묵히 빌었다. 아기가 건강하기를, 부모님을 만날 수 있기를, 더 이상의 슬픔과 고통 없이 앞으로 행복하기를...이성준은 별똥별을 힐끗 보고선 시선을 저도 모르게
다음 날 오후, 백아영은 이성준한테서 온 문자를 받았다.「준비하고 있어, 이따가 데리러 갈게.」편지 받으러 백씨 일가로 간다는 생각에 백아영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차 서둘러 가방을 챙겨 외출 준비를 했다.그 순간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이 떨어져 나왔고 바로 어젯밤 이성준과 함께 찍은 ‘커플 사진’이었다.어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잠을 잔 그녀는 사진을 버린다는 걸 깜빡했다.휴지통에 버리려 했지만, 이성준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선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결국 핸드폰 케이스에 사진을 숨겼고 자리에 앉아 이성준을 기다렸다.그런데 금방 온다던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이성준은 평소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거나 길에서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백아영은 초조해하며 전화를 걸었다.통화 연결음이 오랫동안 울렸지만, 누구도 받지 않았고 위정조차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교통사고를 당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백아영은 더욱 조마조마해졌고, 급히 택시를 잡아 이성 그룹으로 향했다.이성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회사 비서가 제일 먼저 알게 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가영을 찾아갔다.그녀는 백아영한테 조금의 호감도 없었다. 처음에 백아영을 내연녀라고 오해해 못마땅하게 여겼고, 나중에 그녀가 사장님의 부인이라는 걸 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한 모습에 백아영도 문제가 있다며 단정 지었다. 그녀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가영은 싸늘하게 답했다.“사장님 병원에 계세요.”그 말에 백아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왜요? 무슨 일 있어요?”“그건 그쪽이 직접 가서 확인하세요. 성안 병원이요.”“감사합니다.”백아영은 서둘러 성안 병원을 향해 달렸다.가는 동안 그녀는 이성준이 병원에 갔을 온갖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가족이나 친구 병문안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몸이 아파서...가 됐든 백아영은 지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조마조마했다.그녀는 이성준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원
“법은 임산부에게 관용을 베풀어도 죗값에 대해서는 그런 게 아니거든요. 이 일은 제가 끝까지 지켜볼 거예요!”말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돌아섰다.그녀는 자신이 무너질까 봐 이 숨 막히는 곳에서 일초도 머물 수 없었다.이성준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더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백아영.”이성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말 못 할 착잡함과 심란함을 느꼈고 별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성준 씨!”백채영은 흥분하여 큰소리로 이성준을 불렀으나 그는 전혀 신경도 안 쓴 채 병실을 나섰다.그녀는 급히 뒤쫓아가려 했으나 몸이 연약해서 그런지 일어나자마자 넘어질 뻔했다.“채영아, 움직이지 마.”박라희는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너 지금 완벽하게 회복한 게 아니잖아. 유산할 위험도 있으니까 얼른 누워.”백채영은 초조해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성준 씨가 백아영 따라 나갔잖아요. 왜 이렇게까지 아영이를 신경 쓰는 거죠? 성준 씨를 빼앗기면 어떡해요?”“그럴 리 없어!”박라희는 차분하게 답했다.“너 지금 성준이 아이를 임신했잖아. 성준이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어서 이 상황에 아영이랑 어떻게 하지는 않을 거야.”“그런데...”백채영은 아랫배를 감싸며 불안에 떨었다.“성준 씨는 절 거절한 적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 후회할까 봐 걱정돼요. 게다가 이 애도 성준 씨 아이가 아니니까...”백아영 배 속에 있는 아이야말로 이성준의 핏줄이라는 생각에 더욱 불안했다.왜 백아영은 이성준의 아이를 임신할수 있고 자신은 쓰레기 같은 인간의 아이를 임신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우리가 잘 숨기기만 한다면 성준이는 영원히 모를 거야!”박라희는 침착하게 그녀를 달랬다.“채영아, 넌 지금 아이라는 무기가 있으니까 이제 죄를 벗을 방법만 생각하면 돼. 성준이한테 네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만 한다면 전처럼 널 사랑해 줄 거야. 백아영은 신경 쓰지 마. 설사 둘 사이에 뭔가 있어도 절대 널 이기지는 못해.”이성준은 병원 입구까지 백아영을
병원에서 나온 뒤로 백아영과 이성준은 서로 연락을 끊었다.그녀는 이틀 동안 앓아누웠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의사의 본분을 지키며 약초를 달여 이성준의 회사로 향했다.비록 개인적인 원한 관계로 이성준과 어떠한 일로도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에 도착해서는 평소대로 행동했다.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공교롭게도 대표사무실 앞에서 비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백채영이 보였다.백아영을 발견한 그녀의 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에 경계심이 드러났다.“백아영,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집주인처럼 묻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가슴이 막혀오며 기분 잡쳤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여유롭게 답했다.“침 놔주러...”“그 보온병은 뭐야? 설마 음식 싸서 온 거야?”백채영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날카로운 말투로 밀어붙였다.“백아영, 넌 정말 뻔뻔하구나! 나랑 성준 씨 사이에는 애가 있고 우리 곧 결혼할 사이인데 왜 아직도 매달리는 거야?”말을 하며 백채영은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갔고 보온병을 빼앗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보온병이 깨졌고 안에 있던 액체들은 바닥에 쏟아졌다.“백아영, 네가 아무리 염치없게 굴어도 매달릴 기회조차 주지 않을 거야. 성준 씨는 내 남자니까 그 사람한테 손댈 생각 마.”백채영은 비서들을 보며 명령했다.“뭘 보고만 있어, 얼른 내쫓아! 이제부터 백아영은 이성 그룹에 한 발짝도 들여서는 안 돼. 들어오는 순간 무조건 내쫓아!”가영을 포함한 네 비서는 이미 백채영이 사장의 부인인 걸 알아챘고 아이까지 임신했으니, 전부인 백아연보다 더 위엄이 있을 거로 판단됐다.그들은 지금 누구 편에 서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가영이 앞장서자, 비서 네 명이 백아영을 둘러쌓더니 서슴없이 그녀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가영은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힘껏 그녀를 끌었고 피부가 긁혀버린 백아영은 아파하며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치며 피했다.“이거 놔.”혼자서 네 명을 상대하기엔 한없이
이 말을 듣고 난 비서들은 백아영이 두 달 동안 사모님이 된 이유가 모두 백채영한테서 훔친 것임을 깨닫고선 그녀를 경멸했다.백아영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고 추운지 으슬으슬 떨고 있는 모습은 몹시 안타까워 보였다.잘못된 결혼에 대해 전혀 해명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 백채영이 명백한 사모님이었다.“고작 그게 네가 사람을 내쫓고 밀친 이유야?”이성준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질책했다.“백아영은 날 치료해 주러 온 거야. 네가 쏟은 국이 내 약이라고!”그 말에 백채영은 놀라서 어리둥절해졌고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쏟은 게 약이라는 죄책감보다 사람들 앞에서 전혀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는 게 더 컸다.그의 말과 태도 전부 백아영을 감싸주고 있다...그녀는 당황해하며 내키지 않는다는 듯 반박했다.“약 뿐만 아니라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어서 성준 씨한테 접근하는...”“백채영!”이성준은 호통을 치며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근거도 없이 함부로 남을 의심하고 모함하는 게 너란 사람이야?”백채영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아니야...”“이렇게 권력에 취해 제멋대로 행동하라고 사모님 권한 주는 게 아니야.”이성준은 비서한테도 싸늘하게 말했다.“앞으로 백채영의 명령을 듣는 사람은 바로 이성 그룹에서 쫓아낼 거야.”이 말인즉 그녀의 모든 권한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백채영은 난처하고 당황해하며 이성준이 화나서 저번처럼 결혼을 취소할까 봐 두려웠다.“성준 씨...”연약한 척하며 애원하려는 그녀의 모습에 이성준은 고개를 돌렸고 백아영을 보며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했다.“약은 다시 만들어야겠다. 별장으로 가자.”백아영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이성준이 자신을 감싸고 편들어 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순간 뭔지 모를 감정이 밀려왔고 쓰라리면서도 혼란스러웠다.함께 떠나려는 이들을 보며 불안에 떨던 백채영은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