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611 - Chapter 620

916 Chapters

제611화

한창 추측하고 있는 와중에 어둠 속으로 시커먼 인영이 입구에서 걸어 들어왔는데, 다름 아닌 선우경진이었다.캐리어를 끌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던 그는 백아영을 맞닥뜨리자 흠칫 놀라면서 제 발 저린 듯 동공이 흔들렸다.“네가 왜 내 방문 앞에 있어?”소식을 전해 들은 선우경진은 백아영에게 들통나기 전에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면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아쉽게도...“왜 저한테 거짓말했죠?”멀쩡한 팔을 보며 백아영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았다.선우경진은 뻘쭘한 표정으로 손을 바꿔서 캐리어를 끌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혹시 누가 강요했어요?”백아영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화가 잔뜩 난 모습을 보니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어려운 듯싶었다.선우경진은 속으로 이성준에게 미안하다고 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응, 한태윤.”깜짝 놀란 백아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녀가 알기로 한태윤과 선우경진은 만난 적도 없고,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닐 텐데 어찌 원한이 있겠냐는 말이다.오히려 선우경진이 허튼소리 하면 몰라도...“진짜야, 맹세할게.”선우경진은 경건한 자세로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백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왜요? 오빠를 강요할 이유가 없잖아요.”선우경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유가 왜 없어? 바로 너야.”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당시 그녀는 한태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선우경진에게 치료를 부탁하고 한씨 일가에서 나왔다.그래서 그는 부랴부랴 달려갔었다.하지만 선우경진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백아영은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이어갔고, 한태윤은 버젓이 그녀의 옆방을 차지하게 되었다.만약 굳이 자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물론 당시는 그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쳐도 어디까지나 남자의 정복욕에 불과할 뿐, 이미 각자의 길을 떠난 이상 아무런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백아영의 시선이 점점 싸늘해지더니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세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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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아영아.”이때, 연구실 문이 열리면서 온유성이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곧이어 이현무를 바라보더니 다정하게 말했다.“현무야, 할아버지가 엄마랑 할 말이 있는데 먼저 나가서 혼자 좀 놀고 있을래?”이현무는 고분고분 자리를 피했다.온유성은 그제야 백아영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안쓰러운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성준 씨도 맞고소했어.”서류를 건네받던 백아영의 손이 우뚝 멈췄다.비록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접해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쓸쓸한 감정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아영아, 잘 생각해. 성준 씨랑 진짜 소송까지 갈 거야? 법정 싸움까지 간다면 그동안 쌓았던 정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거야.”백아영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비록 한 달이 지났지만, 이성준은 그녀의 심장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였다. 매번 떠올릴 때면 마음이 슬프고 힘들었고, 기분이 너무나도 쉽게 좌지우지 당했다.사실 그 누구보다도 법정까지 가기 싫었고,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과거를 회상하는 건 더더욱 두려웠다.하지만...백아영은 이현무가 앉아 있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비하면 그런 상처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저한테는 선택권이 없어요.”...저녁이 되어서도 백아영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울적한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마치 묵직한 돌이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그녀는 무려 6번째로 손을 찧게 되었다.‘아프네...’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시퍼렇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약재를 빻기 시작했다. 이때, 커다란 손바닥이 불쑥 튀어나와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곧이어 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손을 다쳤잖아요. 그만 해요!”백아영은 흠칫 놀라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내 익숙한 반쪽짜리 가면이 눈앞에 나타났다.“당신...”그녀의 목소리는 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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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약재를 빻아준 사람이 나타난 덕분에 오늘 예상했던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끝났다.이성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뭉친 근육을 스트레칭했다. 창밖에는 달이 높이 떠 있었고, 잔잔한 달빛 아래에서 동네가 유난히 고요했다.“고생했어요.”백아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제 일인데요, 뭘.”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이성준 때문에 오히려 백아영이 뻘쭘한 느낌이 들었다.이성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혹시 먹을 거 있어요?”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네?”“아직 저녁을 못 먹었거든요.”그는 도착하자마자 약재부터 빻았으니 벌써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야식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미안해요! 얼른 준비할게요.”백아영은 자신을 탓하며 이마를 툭 치더니 서둘러 뛰어나갔다. 집주인으로서 손님을 접대하지도 않았다니.이성준은 흐뭇한 얼굴로 허둥지둥 뛰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밥을 먹고 나니 시계는 마침 새벽 12시를 가리켰다.이성준은 고상한 몸짓으로 입가를 닦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치고 나서 옆에 있는 캐리어를 챙겼다.백아영은 흠칫 놀랐다. 그제야 한태윤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선우 일가로 왔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심지어 오로지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서 말이다.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백아영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지금 집에 가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피곤할 텐데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잘래요?”이 말을 들은 이성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래요.”그의 대답은 망설임이 일도 없었다.웃음기를 머금은 시선을 마주하자 그제야 정신이 든 백아영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야심한 밤에 애매한 관계의 남자에게 하룻밤 묵고 가라니!순간, 그녀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이성준을 손님방으로 안내한 다음 백아영은 도망치듯 빠져나왔다.새근새근 자는 이현무를 안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뒤죽박죽 했고, 머릿속이 어지러운 반면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달콤한 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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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그러나 상대가 한태윤이라면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물론 반감이 들거나 싫은 건 아니고 진심으로 환영하지만, 단지...백아영은 머뭇거리며 서 있었고, 본인마저 이런 자신이 답답했다.“안 돼요!”백아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현무가 철벽을 쳤다.“다른 남자가 엄마 집에 묵으면 아빠가 화낼 거예요. 어쩌면 내일 절 데려갈지도 몰라요.”지난번에 백아영이 성무열의 집에서 잠깐 지내겠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성준이 직접 찾아와서 훼방을 놓지 않았는가?그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훤한 듯했다.집에 가기 싫다고 시위하는 이현무의 얼굴을 보며 백아영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가면 너머로 이성준의 득의양양한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이내 싸늘한 시선으로 이현무를 노려보며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였다.‘저 자식이!’“엄연히 따지면 현무 탓은 아니죠. 이게 다 성준 씨의 자업자득이니까.”옆에 서 있던 선우경진이 두 사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빈정거렸다.이성준은 차가운 얼굴로 그를 흘겨보았다.“엄마랑 떨어져 있기 싫어요. 집에 가면 아빠가 저 흠씬 두들겨 팰 수도 있어요. 엉엉... 너무 무서워요.”이현무는 울고불고 떼를 쓸 기세로 백아영의 다리를 꼭 끌어안고 애처롭게 말했다.“엄마, 제 목숨을 위해서라도 태윤 아저씨는 절대 남아 있으면 안 돼요.”백아영은 다리에 매달려 세상 서럽게 울고 있는 아들을 안아 들었고, 가슴이 미어진 나머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태윤 씨, 미안해요.”이성준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고, 포크가 당장이라도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비록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온화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회사에서 숙소를 마련해줬어요.”아빠의 라이벌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 이현무는 신이 나서 이성준에게 자랑했다.“아빠, 저 태윤 아저씨를 쫓아냈어요! 엄마의 옆자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죠.”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아들의 기쁜 목소리에 차를 탄 이성준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만약 녀석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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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다음 날 백아영은 이현무를 씻기고 함께 아침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앞치마를 두른 채 식탁에 아침밥을 차리는 한태윤을 발견했다.식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한식이 푸짐하게 세팅되어 있었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메뉴는 식욕을 자극했다.이렇게 많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시간 전에 도착했을 것이다.백아영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여기에는 왜...”“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요?”이성준은 느긋하게 앞치마를 벗고 부드러운 말투로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여기 앉아요.”백아영은 꼭두각시처럼 쭈뼛쭈뼛 다가가 그가 빼준 의자에 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음식의 향연에 식욕이 폭발함과 동시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이내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다.백아영은 이런 느낌을 즐기면서도 예의상 거절했다.“프로젝트 초반에는 태윤 씨도 바쁠 텐데 굳이 요리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돼요.”이성준이 미소를 지었다.“어젯밤에 급한 일은 처리해서 오늘은 여유 있어요.”웃음기를 머금은 시선으로 그윽하게 쳐다보는 남자 때문에 왠지 모르게 데이트 신청하는 건 아니냐는 착각마저 들었다.결국,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차마 거절하기도 민망했고 어디 갈 건지 저절로 묻고 싶었다.찰나의 순간 머릿속으로 남원의 여행지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오늘을 통째로 빼려고 어젯밤에 그렇게 늦게까지 일한 거예요? 태윤 씨, 애썼네요.”선우경진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유유히 걸어오며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아영아, 너 대신 약재까지 빻아준다는데 성의를 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백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럼 운암 바위 보러 갈래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넋을 잃고 말았다.선우경진은 어리둥절했다. 뜬금없이 갑자기 놀러 가자니?백아영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태윤이 약재를 빻아주기 위해 시간을 비웠다는 뜻이지, 엉뚱한 데이트 신청이 아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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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그만해요!”백아영은 화가 나서 선우경진에게 약재 한 움큼을 집어던졌고 마침내 그를 쫓아냈다.고개를 돌리자 곧바로 이성준과 눈이 마주쳤고 의미심장하게 웃는 그의 표정을 보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그... 헛소리하는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이성준은 여전히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날씨도 좋은데 저녁에 산책하러 갈까요?”백아영은 애써 쌓아 올린 방어 기제가 한순간에 무너진 듯 멋쩍게 답했다.“좋아요...”생각보다 잘 지내는 백아영과 이성준의 모습을 본 선우경진은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밖으로 걸어갔다.그런데 마침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온유성과 마주쳤다.“고모부, 왜 그러세요?”선우경진이 다급하게 말렸다.“이성준 그 개자식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온유성은 이를 갈며 울분을 토해냈다.“그 자식이 양육권 소송을 공론화했어. 권력을 이용해서 선우 일가와 백아영을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우리 아영이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려는 게 틀림없어. 아영이가 누구 때문에 수십조의 빚을 졌는데! 다 이성준 때문이잖아. 결혼을 안 했어도 바람을 피운 사람이라면 적어도 양심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지?”선우경진은 이를 악물며 답했다.“성준 씨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이미 언론에 다 뿌려져서 선우 일가와의 협력을 중단하겠다는 기업이 수두룩해. 이래도 이성준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도 안 돼.”온유성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고 당장이라도 이성준을 죽일듯한 기세를 보였다.“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일은 내가 개입할 수 없다만 우리 아영이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건 절대 지켜볼 수가 없구나!”분노가 치밀어올라 어마어마한 살기를 뿜어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선우경진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지금도 연구실에서 백아영을 도와 약재를 갈고 있는 사람이 이성준인데 어찌 그리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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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백아영이 넘어지려는 순간 길고 튼실한 팔이 나타나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넓은 품으로 끌어당겼다.차가운 바람과 달리 그의 품은 포근하고 따뜻했으나 백아영은 그대로 온몸이 얼어붙었다.이성준은 품에 안긴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봤고 활활 타오르는 눈빛에 억압된 감정은 마치 맹수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팔을 꽉 조여 백아영을 품 안 깊숙이 안고 싶다는 욕구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나지막하게 물었다.“다친 곳 없어요?”“괜찮아요.”순간 정신이 번쩍 든 백아영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고마워요. 덕분에 살았네요.”“다 저 때문이에요.”눈빛은 여전히 그윽했으나 그는 자책하고 있었다.“제가 갑자기 다가가는 바람에 아영 씨가 놀라서 발을 헛디딘 거잖아요.”말하던 그는 거리를 두기 위해 옆으로 두 걸음 물러섰다.백아영은 상처받은 듯한 그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져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태윤 씨가 다가오는 건 괜찮아요.”이성준은 눈이 반짝 빛나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며 물었다.“그럼... 걱정거리가 들키는 게 싫은 거예요? 실례인 줄도 모르고 제가 함부로 물어봤네요...”줄곧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우아한 도련님이 자신을 원망하며 자책하자 백아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성과 감성이 전부 무너지는 순간이다.“실은 남자랑 산책해 본 적이 없어서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아요...”백아영은 자포자기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래서 조금 떨려요...”이성준은 행복함을 드러내며 숨김없이 활짝 웃었다.백아영이 지금 고개를 들었다면 이 모든 게 그의 ‘계산’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모든 일에는 다 처음이 있는 법이죠. 많이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이성준은 멀지 않은 산기슭을 바라보며 말했다.“데려다줄게요.”그를 산기슭까지 바래다주고 차를 태워 보낼 계획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응? 다시 올라간다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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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할 말을 잃은 선우경진은 백아영에게 경고했다.“올라가면 다시 내려오지 마!”백아영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그렇게 이성준은 백아영을 별장까지 바래다준 후 서둘러 선우경진과 함께 떠났다.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아영은 운전해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는데 표정은 차분하고 진지했다.선우경진이 직접 찾으러 왔다는 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뜻했기에 그녀는 한태윤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그러던 중 선우경진이 운전한 차는 이성그룹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고 백아영은 직원이 아니라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밖에 차를 주차해 놓고 고개를 들어 건물을 보자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했다.불과 한 달 만에 백아영은 이곳에 대해 격세지감을 느꼈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밀려왔다.그러나 한태윤이 걱정된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차에서 내려 이성그룹의 입구로 향했다.그런데 뜻밖에도 프런트 직원이 예약 없이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예전에 이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던 건 이성준이 그녀에게 준 특권이어서 아무도 막지 않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생각에 잠긴 백아영을 보고 프런트 직원이 비꼬듯이 말했다.“아영 씨, 사장님 고소할 때는 이런 생각까지 못 하셨나 봐요? 선우 일가가 보이콧을 당하고 궁지에 몰리니까 이제 와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으신 거예요? 빌어도 소용없으니까 그만해요. 작은 도련님을 뺏으려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까 포기하고요. 그리고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요? 선우 일가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이만 단념하고 돌아가요.”어려운 단어를 내뱉은 것도 아닌데 백아영은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하게 프런트 직원을 바라봤다.그녀는 한참이 지나도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했다.“보이콧을 당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설마 아직 몰라요?”프런트 직원은 이상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인터넷에 기사로 도배됐는데 못 봤어요?”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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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이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본적인 방법을 취해야 한다.변호사의 말을 듣고 있던 백아영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피가 쏟아졌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사람 자체가 혼란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주위에 오가는 차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차에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백아영은 엉덩이가 배길쯤 시동을 걸어 이성준의 별장으로 향했다.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차는 어느덧 별장 앞에 멈춰 섰다. 한때 영원히 살 줄 알았던 이 집은 오늘날 마치 안에 괴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두렵고 불편하게 만들었다.백아영은 다시는 여기에 발을 들여놓기를 원치 않았고 더욱이 이곳에서 새로운 사모님인 앤니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현무의 양육권을 위해서라면 별수 없다.백아영은 심호흡하고 한참 동안 마음을 가다듬은 후 용기를 내어 힘겹게 초인종을 눌렀다.고요한 밤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뚱보 아줌마가 문을 열었고 아직 잠들지 않은 듯 활기차게 나온 그녀의 등 뒤로 맛있는 밥 냄새가 풍겨왔다.“아영 씨?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뚱보 아줌마는 깜짝 놀라더니 곧이어 얼굴에 기쁨이 드러났다.“얼른 들어와서 앉아요. 도련님 곧 오실 거예요.”그녀가 이성그룹을 떠날 때만 해도 선우경진과 한태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이성준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오랫동안 회사에 머무른 이유는 아마도 이성준과 협상 중인듯하다. 한번 결정한 일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인데 괜히 헛수고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니 백아영은 가슴이 미어졌다.“들어가기 불편해요.”백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야식을 준비하고 있으니 안에는 앤니가 있는 게 분명했고 들어가서 괜히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할 바엔 차라리 밖에서 찬 바람을 맞는 게 훨씬 나았다.뚱보 아줌마는 백아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안에 아무도 없어요. 앤니 씨는 한 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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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집안 구석구석까지 전부 다 아는 익숙한 환경이었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져 숨 쉴 때마다 숨이 막혔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백아영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이성준과 가장 멀리 떨어진 소파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성준, 말도 없이 갑자기 불쑥 찾아온 건 일단 사과할게. 난 네가 부모로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현무는 너랑 같이 집에 가는 걸 너무 무서워해. 그런 상황에 오랫동안 있으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마저 병들어서 성장에 엄청 해로울 거야. 솔직히 현무는 나랑 있는 걸 훨씬 더 좋아하니까 잘 자랄 수 있게 내가 성심성의껏 돌볼게. 너랑 앤니 씨 사이에 곧 아이도 생길 텐데 너에게는 현무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잖아. 그러니까 현무는 나에게 맡겨줘.”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나랑 앤니까 애를 낳는다고?”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이 담겨있었다.“지금껏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역겹지도 않아?”그의 얼굴에 나타난 반감과 혐오를 백아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의아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본 이성준은 가슴에 못이 박힌 듯 숨이 막혔고 한참이 지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랑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난 언론에 기사를 퍼뜨린 적도 없고 선우 일가를 보이콧하라고 이성그룹에 명령내린 적도 없어. 선우 일가가 피해받을까 봐 걱정하는 모양인데 이미 해명문을 내라고 요청했으니까 모든 게 곧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이성준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하지만 소송은 이미 공공연한 일이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어. 그래서 말인데...”그는 심연 속으로 끌어당길 듯한 그윽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소송 취하할 생각은 없어?”이성준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하자 백아영은 몸 둘 바를 몰랐다.순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윽한 시선과 빠져들 것 같은 두 눈이 한태윤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치밀어 오르면서 마음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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