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아.”이때, 연구실 문이 열리면서 온유성이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곧이어 이현무를 바라보더니 다정하게 말했다.“현무야, 할아버지가 엄마랑 할 말이 있는데 먼저 나가서 혼자 좀 놀고 있을래?”이현무는 고분고분 자리를 피했다.온유성은 그제야 백아영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안쓰러운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성준 씨도 맞고소했어.”서류를 건네받던 백아영의 손이 우뚝 멈췄다.비록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접해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쓸쓸한 감정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아영아, 잘 생각해. 성준 씨랑 진짜 소송까지 갈 거야? 법정 싸움까지 간다면 그동안 쌓았던 정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거야.”백아영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비록 한 달이 지났지만, 이성준은 그녀의 심장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였다. 매번 떠올릴 때면 마음이 슬프고 힘들었고, 기분이 너무나도 쉽게 좌지우지 당했다.사실 그 누구보다도 법정까지 가기 싫었고,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과거를 회상하는 건 더더욱 두려웠다.하지만...백아영은 이현무가 앉아 있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비하면 그런 상처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저한테는 선택권이 없어요.”...저녁이 되어서도 백아영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울적한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마치 묵직한 돌이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그녀는 무려 6번째로 손을 찧게 되었다.‘아프네...’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시퍼렇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약재를 빻기 시작했다. 이때, 커다란 손바닥이 불쑥 튀어나와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곧이어 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손을 다쳤잖아요. 그만 해요!”백아영은 흠칫 놀라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내 익숙한 반쪽짜리 가면이 눈앞에 나타났다.“당신...”그녀의 목소리는 의
Last Updated : 2024-01-0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