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백아영은 이현무를 씻기고 함께 아침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앞치마를 두른 채 식탁에 아침밥을 차리는 한태윤을 발견했다.식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한식이 푸짐하게 세팅되어 있었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메뉴는 식욕을 자극했다.이렇게 많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시간 전에 도착했을 것이다.백아영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여기에는 왜...”“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요?”이성준은 느긋하게 앞치마를 벗고 부드러운 말투로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여기 앉아요.”백아영은 꼭두각시처럼 쭈뼛쭈뼛 다가가 그가 빼준 의자에 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음식의 향연에 식욕이 폭발함과 동시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이내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다.백아영은 이런 느낌을 즐기면서도 예의상 거절했다.“프로젝트 초반에는 태윤 씨도 바쁠 텐데 굳이 요리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돼요.”이성준이 미소를 지었다.“어젯밤에 급한 일은 처리해서 오늘은 여유 있어요.”웃음기를 머금은 시선으로 그윽하게 쳐다보는 남자 때문에 왠지 모르게 데이트 신청하는 건 아니냐는 착각마저 들었다.결국,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차마 거절하기도 민망했고 어디 갈 건지 저절로 묻고 싶었다.찰나의 순간 머릿속으로 남원의 여행지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오늘을 통째로 빼려고 어젯밤에 그렇게 늦게까지 일한 거예요? 태윤 씨, 애썼네요.”선우경진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유유히 걸어오며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아영아, 너 대신 약재까지 빻아준다는데 성의를 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백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럼 운암 바위 보러 갈래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넋을 잃고 말았다.선우경진은 어리둥절했다. 뜬금없이 갑자기 놀러 가자니?백아영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태윤이 약재를 빻아주기 위해 시간을 비웠다는 뜻이지, 엉뚱한 데이트 신청이 아니었다.
“그만해요!”백아영은 화가 나서 선우경진에게 약재 한 움큼을 집어던졌고 마침내 그를 쫓아냈다.고개를 돌리자 곧바로 이성준과 눈이 마주쳤고 의미심장하게 웃는 그의 표정을 보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그... 헛소리하는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이성준은 여전히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날씨도 좋은데 저녁에 산책하러 갈까요?”백아영은 애써 쌓아 올린 방어 기제가 한순간에 무너진 듯 멋쩍게 답했다.“좋아요...”생각보다 잘 지내는 백아영과 이성준의 모습을 본 선우경진은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밖으로 걸어갔다.그런데 마침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온유성과 마주쳤다.“고모부, 왜 그러세요?”선우경진이 다급하게 말렸다.“이성준 그 개자식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온유성은 이를 갈며 울분을 토해냈다.“그 자식이 양육권 소송을 공론화했어. 권력을 이용해서 선우 일가와 백아영을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우리 아영이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려는 게 틀림없어. 아영이가 누구 때문에 수십조의 빚을 졌는데! 다 이성준 때문이잖아. 결혼을 안 했어도 바람을 피운 사람이라면 적어도 양심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지?”선우경진은 이를 악물며 답했다.“성준 씨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이미 언론에 다 뿌려져서 선우 일가와의 협력을 중단하겠다는 기업이 수두룩해. 이래도 이성준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도 안 돼.”온유성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고 당장이라도 이성준을 죽일듯한 기세를 보였다.“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일은 내가 개입할 수 없다만 우리 아영이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건 절대 지켜볼 수가 없구나!”분노가 치밀어올라 어마어마한 살기를 뿜어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선우경진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지금도 연구실에서 백아영을 도와 약재를 갈고 있는 사람이 이성준인데 어찌 그리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백아영이 넘어지려는 순간 길고 튼실한 팔이 나타나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넓은 품으로 끌어당겼다.차가운 바람과 달리 그의 품은 포근하고 따뜻했으나 백아영은 그대로 온몸이 얼어붙었다.이성준은 품에 안긴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봤고 활활 타오르는 눈빛에 억압된 감정은 마치 맹수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팔을 꽉 조여 백아영을 품 안 깊숙이 안고 싶다는 욕구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나지막하게 물었다.“다친 곳 없어요?”“괜찮아요.”순간 정신이 번쩍 든 백아영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고마워요. 덕분에 살았네요.”“다 저 때문이에요.”눈빛은 여전히 그윽했으나 그는 자책하고 있었다.“제가 갑자기 다가가는 바람에 아영 씨가 놀라서 발을 헛디딘 거잖아요.”말하던 그는 거리를 두기 위해 옆으로 두 걸음 물러섰다.백아영은 상처받은 듯한 그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져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태윤 씨가 다가오는 건 괜찮아요.”이성준은 눈이 반짝 빛나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며 물었다.“그럼... 걱정거리가 들키는 게 싫은 거예요? 실례인 줄도 모르고 제가 함부로 물어봤네요...”줄곧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우아한 도련님이 자신을 원망하며 자책하자 백아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성과 감성이 전부 무너지는 순간이다.“실은 남자랑 산책해 본 적이 없어서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아요...”백아영은 자포자기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래서 조금 떨려요...”이성준은 행복함을 드러내며 숨김없이 활짝 웃었다.백아영이 지금 고개를 들었다면 이 모든 게 그의 ‘계산’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모든 일에는 다 처음이 있는 법이죠. 많이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이성준은 멀지 않은 산기슭을 바라보며 말했다.“데려다줄게요.”그를 산기슭까지 바래다주고 차를 태워 보낼 계획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응? 다시 올라간다고?
할 말을 잃은 선우경진은 백아영에게 경고했다.“올라가면 다시 내려오지 마!”백아영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그렇게 이성준은 백아영을 별장까지 바래다준 후 서둘러 선우경진과 함께 떠났다.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아영은 운전해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는데 표정은 차분하고 진지했다.선우경진이 직접 찾으러 왔다는 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뜻했기에 그녀는 한태윤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그러던 중 선우경진이 운전한 차는 이성그룹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고 백아영은 직원이 아니라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밖에 차를 주차해 놓고 고개를 들어 건물을 보자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했다.불과 한 달 만에 백아영은 이곳에 대해 격세지감을 느꼈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밀려왔다.그러나 한태윤이 걱정된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차에서 내려 이성그룹의 입구로 향했다.그런데 뜻밖에도 프런트 직원이 예약 없이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예전에 이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던 건 이성준이 그녀에게 준 특권이어서 아무도 막지 않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생각에 잠긴 백아영을 보고 프런트 직원이 비꼬듯이 말했다.“아영 씨, 사장님 고소할 때는 이런 생각까지 못 하셨나 봐요? 선우 일가가 보이콧을 당하고 궁지에 몰리니까 이제 와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으신 거예요? 빌어도 소용없으니까 그만해요. 작은 도련님을 뺏으려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까 포기하고요. 그리고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요? 선우 일가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이만 단념하고 돌아가요.”어려운 단어를 내뱉은 것도 아닌데 백아영은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하게 프런트 직원을 바라봤다.그녀는 한참이 지나도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했다.“보이콧을 당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설마 아직 몰라요?”프런트 직원은 이상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인터넷에 기사로 도배됐는데 못 봤어요?”백
이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본적인 방법을 취해야 한다.변호사의 말을 듣고 있던 백아영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었고 피가 쏟아졌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사람 자체가 혼란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주위에 오가는 차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차에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백아영은 엉덩이가 배길쯤 시동을 걸어 이성준의 별장으로 향했다.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차는 어느덧 별장 앞에 멈춰 섰다. 한때 영원히 살 줄 알았던 이 집은 오늘날 마치 안에 괴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두렵고 불편하게 만들었다.백아영은 다시는 여기에 발을 들여놓기를 원치 않았고 더욱이 이곳에서 새로운 사모님인 앤니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현무의 양육권을 위해서라면 별수 없다.백아영은 심호흡하고 한참 동안 마음을 가다듬은 후 용기를 내어 힘겹게 초인종을 눌렀다.고요한 밤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뚱보 아줌마가 문을 열었고 아직 잠들지 않은 듯 활기차게 나온 그녀의 등 뒤로 맛있는 밥 냄새가 풍겨왔다.“아영 씨?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뚱보 아줌마는 깜짝 놀라더니 곧이어 얼굴에 기쁨이 드러났다.“얼른 들어와서 앉아요. 도련님 곧 오실 거예요.”그녀가 이성그룹을 떠날 때만 해도 선우경진과 한태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이성준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오랫동안 회사에 머무른 이유는 아마도 이성준과 협상 중인듯하다. 한번 결정한 일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인데 괜히 헛수고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니 백아영은 가슴이 미어졌다.“들어가기 불편해요.”백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야식을 준비하고 있으니 안에는 앤니가 있는 게 분명했고 들어가서 괜히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할 바엔 차라리 밖에서 찬 바람을 맞는 게 훨씬 나았다.뚱보 아줌마는 백아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안에 아무도 없어요. 앤니 씨는 한 달
집안 구석구석까지 전부 다 아는 익숙한 환경이었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져 숨 쉴 때마다 숨이 막혔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백아영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이성준과 가장 멀리 떨어진 소파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성준, 말도 없이 갑자기 불쑥 찾아온 건 일단 사과할게. 난 네가 부모로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현무는 너랑 같이 집에 가는 걸 너무 무서워해. 그런 상황에 오랫동안 있으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마저 병들어서 성장에 엄청 해로울 거야. 솔직히 현무는 나랑 있는 걸 훨씬 더 좋아하니까 잘 자랄 수 있게 내가 성심성의껏 돌볼게. 너랑 앤니 씨 사이에 곧 아이도 생길 텐데 너에게는 현무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잖아. 그러니까 현무는 나에게 맡겨줘.”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나랑 앤니까 애를 낳는다고?”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이 담겨있었다.“지금껏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역겹지도 않아?”그의 얼굴에 나타난 반감과 혐오를 백아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의아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본 이성준은 가슴에 못이 박힌 듯 숨이 막혔고 한참이 지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랑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난 언론에 기사를 퍼뜨린 적도 없고 선우 일가를 보이콧하라고 이성그룹에 명령내린 적도 없어. 선우 일가가 피해받을까 봐 걱정하는 모양인데 이미 해명문을 내라고 요청했으니까 모든 게 곧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이성준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하지만 소송은 이미 공공연한 일이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어. 그래서 말인데...”그는 심연 속으로 끌어당길 듯한 그윽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소송 취하할 생각은 없어?”이성준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하자 백아영은 몸 둘 바를 몰랐다.순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윽한 시선과 빠져들 것 같은 두 눈이 한태윤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치밀어 오르면서 마음이
이성준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핑계를 생각한 후 차분하게 답했다.“응. 위 때문에.”“또 위경련이 일어난 거야?”백아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걱정스레 그의 맥을 짚으려 손을 뻗었다.“봐봐.”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이 맥을 짚기도 전에 단숨에 이성준에게 붙잡혔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층 더 가까워졌고 그에게 잡힌 채 좌석에서 꼼짝할 수 없었던 백아영은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느꼈다.이성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날 가까이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해. 감당할 수 있겠어?”좁은 공간은 순간 불이라도 난 듯 후끈 달아올랐다.백아영은 그가 연인 간의 사랑보다 남자로서의 본능이 앞서는 스타일인 걸 알고 있어서 잡아먹을 듯한 기세를 하는 그를 익숙하게 바라봤다.“놔. 사람들이 오해해.”“누가 오해하는데?”이성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머릿속에 한태윤이 떠올랐지만 백아영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밖에서는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차 안은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너무 조용해서 심장 박동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였다.이성준은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수많은 감정은 마치 포효하는 짐승처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키스하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간신히 참으며 차분하게 말했다.“앤니는 맨빌로 돌려보냈어. 다시는 남원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다시는?백아영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어 더 놀라고 뜻밖이었다.어쩌면 상황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으나 앤니가 정식으로 그와 사귀었든,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든 그건 두 사람 사이의 일이라서 백아영은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요동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입술을 깨문 채 창밖을 바라보며 침묵을 유지했다.청순하고 매력적인 그녀의 옆모습에는 다가가기 힘든 냉철함이 배어 있다.백아영의 무관심을 견딜 수 없었던 이성준은 당장이라도 두
‘쿵!’백채영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화를 내며 테이블을 뒤집었다.“헤어지고 소송까지 진행하는 마당에 왜 아직도 백아영을 지켜주고 있냐고! 왜, 도대체 왜 아직도 백아영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거야?”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린 백채영은 이성준의 심장을 꺼내 짓밟아 버리고 싶었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건 백아영도 절대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야, 이번에는 무조건 백아영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고 자부하지 않았어? 신동이라며? 왜 번번이 멍청하게 실패하냐고!”백승구는 무표정한 얼굴로 미쳐가는 백채영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싸늘함을 뿜어냈다.“이건 애피타이저에 불과해요.”그의 눈빛은 사악하게 돌변했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백아영이 50조의 빚을 졌다는 걸 터뜨릴 거예요.”그때가 되면 이성준의 해명 한마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소송과 50조의 빛. 이것들이 언론에 폭로된다면 백아영은 대중들의 신뢰를 잃게 되고 선우 일가도 나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이른 아침. 백아영은 평소처럼 연구실에서 연구에 전념했고 이성준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그녀의 곁에서 약을 빻았다.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오늘따라 백아영이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처럼 집중하지 못했다.“무슨 생각 해요?”백아영은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으나 한태윤의 두 눈을 바라본 순간 저도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며 마음이 심란해졌다.그날 이후로 머릿속에는 수시로 이성준이 떠올랐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으나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맴돌았다.지금 한태윤의 곁에 있음에도 말이다...백아영은 자신이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바람둥이처럼 느껴졌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 수치스러움을 느끼는지 몸 둘 바를 몰랐다. “배가... 배가 아파서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가는 백아영의 뒷모습을 보고 이성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아영아...”신약을 가져온 선우경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