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 Chapter 391 - Chapter 400

916 Chapters

제391화

이도하는 다리를 다쳤으나 뼈가 부러진 건 아니라서 치료를 받고 나니 목발을 짚고 걸을 수는 있었다.결국 사흘째 되는 날에 침대에서 내려와 절뚝거리며 숲속으로 걸어갔다.그는 불법 약물을 빌미로 심씨 일가와 거래할 예정이었다.아줌마를 최대한 빨리 구해내야만 백아영에게 한시라도 일찍 귀띔해 줄 수 있지 않은가?그러나 숲속으로 들어선 그는 원래 잘 숨겨뒀던 불법 약물이 전부 감쪽같이 사라진 걸 발견하고 넋을 잃었다.이도하는 아연실색하더니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요 며칠 선우 일가에서 불법 약물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딱히 없었기에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들켰을 것이다.즉, 범인은 심씨 일가일 가능성이 컸다.그러나 심씨 일가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준 적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빼돌렸냐는 말이다. 게다가 선우 일가 별장까지 잠입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옮겨가다니?장소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심은아뿐이다.다만 그녀가 자기 몰래 심씨 일가 사람에게 알렸을 리가 없었다.설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또 협박을 당했단 말인가?이런 생각에 이도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급히 방으로 돌아갔다.이번에 그는 조심조심 문을 열었는데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빼꼼 열린 문틈 사이로 베란다에서 통화하는 심은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도하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고, 두 눈에 독기가 차올랐다. 빌어먹을 심씨 일가 같으니라고! 역시나 심은아를 협박하고 있던 것이다.하지만 귀에 들린 거라고는 불쾌한 듯 꾸짖는 심은아의 목소리뿐이었다.“이런 쓸모없는 것들! 백아영의 행방을 알아내는데 꼬박 하룻밤을 새워? 벌써 강원에 도착하고도 남았겠네. 당장 육씨 가문한테 연락해서 백아영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해. 아니야, 차라리 들여보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독 안의 든 쥐를 잡는 거지! 죽음을 자초하기 위해 혼자서 강원에 찾아간 이상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할 테니까.”이도하는 창백한 얼굴로 문 앞에 멍하니 서서 두 귀를 의심했다.차라리 꿈을 꾸고 있는 거로 믿고 싶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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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백아영이 도착하는 즉시 붙잡으라고 전해.”육씨 가문 사람은 즉시 인원을 배치하여 그녀를 체포하기만 기다렸다.그러나 긴긴 기다림 끝에 무려 이틀이나 지났지만, 차량은 물론 사람마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시간상 기차를 타고 온다고 해도 도착하고 남았을 것이다.육홍렬은 화가 치밀어 올라 물컵을 내동댕이치며 욕설을 퍼부었다.“설마 심씨 일가에서 나한테 장난친 건가?!”방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육홍렬은 강원의 ‘왕’이다. 성격이 불같고 성질까지 더러워 화가 난다면 피를 보기 마련이기에 결코 한두 명이 연루되는 게 아니었다.이때,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문이 벽에 ‘쿵’하고 부딪히면서 살얼음판 같던 방 안의 분위기가 한층 가라앉았다.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겁도 없이 10cm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최신 컬렉션 공주풍 원피스를 입은 채 구시렁거리며 걸어왔다.“아빠, 집에도 안 계시고 공항도 픽업 오지 않고 뭐 하는 거예요? 여기서 다른 여자랑 살림 차린 건 아니죠?”말을 마친 그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방을 두리번댔다.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육홍렬은 딸을 보자 얼굴이 환해지면서 웃음꽃이 피었다.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 공주 뿐이지! 다 아빠 탓이야. 정신이 없어서 네가 오늘 돌아온다는 것도 잊어버렸네. 파리에서 재미있게 놀았어?”“아니요.”육채원은 소파에 앉아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괜찮은 남자를 한 명도 못 만나서 짜증 나요. 헛걸음질했네요.”귀여운 외모와 달리 육채원은 남자라면 환장했다.그중에서도 잘생긴 남자를 제일 좋아하는데, 남자친구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여행을 가는 목적도 남자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육홍렬은 딸바보인지라 딸을 위해서라면 간이고 쓸개고 빼줄 수 있기에 선 따위 지킬 줄 모른다. 딸아이만 좋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그동안 잘생긴 남자를 납치해서 그녀의 침실까지 보낸 적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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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유리문 너머로 훤칠한 키에 흐릿한 남자의 모습을 보며 백아영은 마음이 심란했다.곧이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육채원인 척 잠입 성공한 이상 이 타이밍에서 절대로 신분을 노출할 수는 없었다.오늘 밤만큼은 어떻게든 얼렁뚱땅 넘어가야 했다.그녀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몸에 지니고 있던 은침을 꺼냈다. 고자를 만들어 버릴 각오로 이따가 기회를 봐서 공격할 작정이다.남자에게 들킬지도 모르는 리스크가 따랐지만,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해야만 했다.백아영은 은침을 들고 용기를 끌어내 마치 전쟁터에 나서듯 욕실 문을 벌컥 열었다.그러나 밖으로 나가기 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아까만 해도 굳게 먹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그는 다름 아닌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일품 중의 최상품이자 볼 때마다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는 이성준이다.대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심지어 육홍렬이 딸을 위해 보낸 남자이지 않은가?!정말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다.백아영은 혹시 이성준의 잃어버린 쌍둥이는 아닌지 싶은 의심마저 들었다.그러나 싸늘한 눈빛과 온몸을 뒤덮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분위기, 차마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아우라는 이성준 본인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백아영은 마음이 심란했다. 이성준이 무슨 영문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성준은 싸움도 잘하고 반응도 빨라서 발기부전이 되게 하려고 몰래 은침을 놓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정체가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성준과 하룻밤을 보낸다?현재의 신분과 상황에서 백아영은 차라리 정체가 폭로되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이성준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육채원을 바라보며 표정이 점점 바뀌더니 짜증으로 가득했다.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 때문에 절 부르신 거죠?”백아영은 깜짝 놀랐다. 자기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른단 말인가?머리를 빠르게 굴린 그녀는 찰나의 순간 혹시나 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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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어처구니가 없었다.“전 그런 망나니가 아니에요. 아버님께서 착각하신 듯싶은데,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떠나갔다.방문이 닫히자 백아영은 그제야 온몸에 힘이 탁 풀리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그녀의 추측이 맞았고, 이성준도 속아서 떠밀려 온 것이다. 게다가 워낙 깔끔을 떨어서 낯선 사람과 함부로 몸을 섞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가까스로 위험천만한 순간을 면한 백아영은 마냥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육채원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결코 평범하지는 않아서 육홍렬이 이성준의 실패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면 내일 또 다른 남자를 보낼지 모른다.따라서 매번 속임수로 얼렁뚱땅 넘어가기는 힘들었다.그녀는 서둘러 육홍렬과 심씨 일가가 불법 약물을 거래한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이에 백아영은 가운을 걸치고 육홍렬을 찾으러 방을 나섰다.그러나 복도를 지나 아래층을 내려가기도 전에 거실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육홍렬과 이성준을 발견했다.육홍렬은 소파에 앉아 싸늘한 눈빛으로 이성준을 노려보며 적나라한 살의를 드러냈다.“우리 딸아이와 함께한다는 자체로 영광인 줄 알아야지, 감히 우리 딸을 거부해?”이성준은 허리를 펴고 꼿꼿이 서 있었다. 비록 지금은 한낱 경호원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당당해 보였다.“전 회장님의 목숨을 구해서 인정받은 대가로 육씨 가문의 경호원이 된 겁니다. 게다가 경호를 제외한 시중 드는 일은 일절 하지 않겠다고 이미 약속드렸을 텐데요?”이현무가 육씨 가문에 갇힌 것까지 알고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 감금당했는지는 모른다.육씨 가문은 워낙 규모도 크고 사업 범위도 넓다. 게다가 경비도 삼엄해서 몰래 잠입해 사람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그래서 이성준은 일부러 계략을 꾸며 육홍렬을 구해주고 그의 인정을 받아 경호원 신분으로 몰래 들어왔다.그러나 육씨 가문에 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이현무의 행방을 알아내기도 전부터 여자 시중을 들게 될 줄은 몰랐다.육홍렬은 절대로 은혜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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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백아영은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초조함에 이를 악물었다.다만 이는 한순간에 불과할 뿐, 애써 냉정함을 유지한 채 육채원 본인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그러고 나서 육홍렬의 팔을 홱 뿌리치면서 씩씩거렸다.“세상에 널렸다고요? 그럼 당장 찾아서 보내줘요! 찾지도 못하고 큰소리만 치면 그동안 내 지루함은 어떻게 달래줄 건데요? 지금 저 남자가 마음에 들어서 갖고 싶은데, 기어코 죽이겠다면 다시는 아빠랑 아는 척하지 않을 거예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홍렬의 안색이 돌변하더니 서둘러 육채원의 손을 붙잡고 한풀 꺾인 목소리로 달래주기 바빴다.“우리 공주, 착하지? 네 말대로 할 테니까 그만 화 풀어. 죽이지 않으면 되잖아? 그치?”“여기! 저놈을 가둬라!”육채원의 안색이 그제야 밝아지면서 환하게 웃었다.“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예요!”이성준은 고분고분 항복했다.두 경호원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순간 육채원을 살피는 그윽한 눈빛은 의혹으로 가득했다.방금 그는 육채원의 당황하는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어쨌거나 남자를 장난감 취급하면서 무법천지가 따로 없는 응석받이 공주님이 아무리 찰나의 순간이라고 해도 당황한 티를 내비칠 리가 없었다.이성준이 끌려가는 걸 바라보며 가슴이 조마조마하던 백아영도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다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일부러 토라진 척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아빠가 준비한 선물이 오늘 저녁 날 만족시켜 주지 못했으니 보상해 주세요.”육홍렬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래. 보상해 줄게, 뭐 필요한데?”“생각해보면 모르겠어요? 꼭 제가 말해야 알아요?”백아영이 새침하게 받아쳤다. 하지만 태도가 아무리 건방지더라도 육홍렬은 전혀 불쾌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밑도 끝도 없이 예뻐하고 떠받들어줬다.“아빠가 최근에 괜찮은 액세서리를 꽤 많이 선물 받았는데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있을 거야. 아빠랑 서재에 가서 같이 고르자.”육홍렬은 육채원을 데리고 서재로 향했고, 워낙 은밀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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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그녀는 기회를 봐서 혼자 다시 서재를 다녀가야만 했다....올빼미족 육채원의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백아영은 다음날 곧바로 움직이는 대신 잠에서 깨어나도 침대에 누워 자는 척했다.결국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가 느긋하게 방에서 나와 배를 채우려는 순간 복도 창문 너머로 익숙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했다.‘백채영?’ 백채영은 건물 밖에서 육홍렬과 대화를 주고받았다.백아영의 동공이 살짝 커지면서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 이성준이 경호원인 척 육씨 가문에 나타난 건 둘째 치고 백채영까지 찾아오다니?백채영이 왜 여기 있단 말이지?둘이서 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지 알 수 없었다.생각에 빠진 백채영은 문득 육홍렬과 시선이 마주쳤다. 싸늘하던 육홍렬의 표정은 순식간에 부드럽고 인자하게 변했고, 얼굴에 햇살처럼 화창한 미소가 떠올랐다.이내 큰 소리로 말했다.“우리 공주, 일어났어? 아빠랑 같이 밥 먹자.”곧이어 그는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아직 할 말이 남은 백채영은 황급히 그를 쫓아갔다.“육홍렬 씨, 제가 말씀드린 일은...”“안 돼.”육홍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고 백채영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거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백채영이 따라가려고 했지만, 문밖에서 경호원에게 제지당했다.그녀는 짜증이 섞인 얼굴로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먼 길을 떠나 이현무를 찾아온 이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서 이현무를 데려가 이성준과 결혼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육씨 가문의 경비가 워낙 삼엄한 탓에 비록 방문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현무를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그래서 육홍렬에게 이현무와 함께 밖에서 산책 좀 하게 해달라고 부탁할 작정이었다. 일단 육씨 가문을 벗어난다면 기회를 틈타 이현무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지만, 육홍렬은 이런 사소한 요구도 들은 체하지 않았다.백채영은 어쩔 수 없이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생각이었다.백아영은 방 안에서 점점 멀어지는 백채영의 뒷모습을 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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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그녀는 이성준을 감금시켰더니 고문까지 당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꼬박 하루가 지났는데 왜 아직도 도망가지 않았냐는 말이다.설마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인 건가?원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주려고 했으나 이제 와서 오히려 해를 끼친 꼴이 되었다.마음이 심란한 백아영은 죄책감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나 겉으로는 차마 내색할 수 없기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맷집이 좋을수록 나중에 맛볼 때 더 환상적이지 않겠어요? 전 남는 게 시간이라 천천히 기다릴 수 있어요.”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날 밤 백아영은 육홍렬 몰래 이성준이 수감되어 있는 건물을 찾아갔다.작은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호원 2명을 제외하고 내부에도 2명이 보였는데, 창문과 대문은 쇠창살에 가로막혀 굳게 닫혀 있었다.이성준이 갇힌 방도 이 중의 하나였다.커튼이 쳐진 방은 불도 켜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고, 주변에 꿉꿉한 냉기로 가득했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쾌했다.“채원 씨, 안에 지저분하니까 들어가지 마세요.”입구를 지키던 경호원이 흠칫 놀라면서 말했다. 육채원이 찾아올 줄 알았더라면 미리 청소했을 텐데 말이다.백아영은 심장이 마치 커다란 돌에 짓눌린 듯 굳은 얼굴로 손을 뻗어 불을 켰다.조명이 비추자 방안의 광경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졌다. 텅 빈 방에는 찬물과 얼음이 가득 담긴 투명한 나무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통 안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성준이다.수위가 워낙 높아서 아무리 키가 크다고 해도 까치발을 들어야만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는 그는 안색이 창백하고 초췌했는데, 보아하니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물고문당한 듯싶었다.숨이 멎는 것 같은 백아영은 심장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얼른 물에서 꺼내지 않고 뭐해?”눈을 감고 물속에 있던 이성준은 소리를 듣자 천천히 눈을 뜨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육채원을 훑어보았다.그녀의 어조에 담긴 초조함과 걱정은 정말 그럴싸했다.“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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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그녀는 한 경호원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키를 꺼내 이성준의 손을 잡고 자물쇠를 풀어주었다.‘찰칵’하고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쪽이랑 잠자리하고 싶거나 죽일 생각 없으니까 우리 아빠가 발견하기 전에 얼른 도망쳐.”백아영이 다급하게 말했다.이성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이내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날 풀어주면 당신이 위험할 텐데요?”“네 알 바 아니야!”꿈쩍도 안 하는 남자를 보자 백아영은 발끈했다.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찬물에 너무 오래 있어서 정신이 잘못된 걸까?그녀는 아예 이성준을 끌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방을 나서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육홍렬을 마주쳤다.그는 건물 로비에 서서 굳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의혹이 가득한 눈빛은 싸늘하지 그지없었다.“육채원, 왜 저 남자를 살려주려는 거지?”육홍렬은 더는 그녀를 우리 공주라고 부르지 않았고, 다정했던 말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왜냐하면 지금의 육채원은 평소 성격과 전혀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딸은 이유 불문하고 아버지 몰래 이바람을 살려주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눈앞에 있는 육채원이 정녕 그의 딸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넌 대체 누구야?”육홍렬은 살의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캐물었다.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제 자리에 서 있는 백아영은 등골이 서늘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서 육홍렬이 찾아와 정면으로 맞닥뜨릴 줄이야!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다니!진짜 육채원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을 저질렀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이성준은 팔목을 잡은 여자의 자그마한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간 걸 느꼈다.온몸이 잔뜩 긴장한 채 제 발 저린 듯 조마조마한 표정까지 너무나도 낯이 익었다.그녀가 아니라면 또 누가 있겠는가?이내 그는 희미한 눈웃음을 지었다.그러고 나서 쌀쌀맞게 육채원의 손을 뿌리치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비아냥거렸다.“하! 연기 그만하시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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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다음 날.백아영은 걱정이 태산이지만, 어쩔 수 없이 오후 4시까지 ‘자고’ 일어났다.곧 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서둘러 일 처리하기로 마음먹고 나섰다.마침 육홍렬도 오늘 일 때문에 바빠서 밥 먹으러 오지 않았기에 백아영은 짬을 내서 서재로 향했다.서재는 꽤 넓었고, 책과 서류로 가득했다.물론 밖에서도 중요한 서류를 찾아볼 수 있지만, 기밀문서는 아닌 듯싶어서 백아영이 찾으려는 증거와 거리가 멀었다.낱낱이 뒤져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금고를 바라보았다.불법 약물과 관련된 서류는 금고 안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하지만 홍채 인식을 진행하려면 육홍렬을 제외하고 육채원 본인이 필요했다.그러나 다 큰 성인을 어찌 모든 사람의 눈을 피해 데려올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육채원의 성격이 워낙 통제 불능이라 부하들이 두손 두발을 들었다고 했다.설령 억지로 끌고 온다고 해도 꽁꽁 묶어서 데려와야 할지 모른다.백아영은 심란한 마음에 아무 책이나 두 권 집어서 심란한 얼굴로 서재를 떠났다.“채원 씨, 왜 그래요? 기분이 안 좋아요?”서재 입구에서 백아영을 발견한 도우미 담당자가 서둘러 물었다.물론 백아영은 그녀에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담당자인 만큼 아는 것도 많다고 여겨 마침 백채영이 왜 찾아왔는지 물어보려고 했다.그리고는 일부러 태연한 척 말했다.“어제 1층에서 봤던 여자는 아빠가 새로 데려온 애인인가?”“그럴 리가요. 애인을 집에 데려온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도우미 담당자가 히죽 웃었다.“남원에서 온 여자라는데 만나고 싶은 사람이...”“우리 공주, 한참을 찾아다녔잖아. 왜 여기 있어?”육홍렬은 부리나케 달려와 도우미 담당자의 말을 끊었다.백아영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가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무슨 일인지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그러나 백아영도 재빨리 기분을 추스르고 손에 든 책 두 권을 육홍렬에게 던져주며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서재에 재미있는 책 좀 두면 안 돼요? 내용이 하나같이 진부하네요.”육홍렬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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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백아영은 할 말을 잃었다.낯뜨거운 상황에 차라리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결국 제 발 저린 탓에 이성준의 눈도 쳐다보지 못했다.“효과로 볼 때 양초보다 좋은 건 없어. 통증은 남자의 본능을 일깨워 주거든.”육홍렬은 초에 불을 붙이고 백아영의 손에 쥐여주었다.“우리 공주, 얼른 가 봐.”촛불을 들고 있는 백아영은 마치 불덩이라도 만진 듯 최대한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육홍렬은 제정신이 아닌 게 확실했다. 어떻게 친딸한테 이런 짓을 가르쳐줄 수 있단 말이지?‘미치광이가 따로 없네!’그러나 속으로 아무리 거부하고 싫다 한들 백아영은 어쩔 수 없이 눈 딱 감고 침대로 다가가 옆에 앉았다.일렁이는 불꽃이 쌀쌀맞은 이성준의 잘생긴 얼굴을 은은하게 비췄다.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치심을 난도질했다.“얼른 해! 효과 만점이니까 아빠만 믿어.”신이 난 육홍렬이 옆에서 재촉했다.백아영은 양초를 부러뜨릴 기세로 꽉 움켜쥐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이성준의 상의를 살짝 끌어 내렸다.손끝이 차가운 피부에 닿자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이성준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곧이어 양초가 옆으로 기울더니 촛농 한 방울이 피부에 톡 떨어지면서 따끔한 느낌이 전해져왔다.이성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그윽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쳐다보았고, 두 눈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이글이글 타올랐다.고개를 든 백아영이 남자의 시선을 맞닥뜨린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다.“거 봐, 아빠가 효과 있다고 했지? 흔들린 게 분명해!”육홍렬은 이내 채찍을 가져와 신이 나서 백아영에게 건넸다.“정신을 못 차리게 계속해.”“...”그녀는 차라리 울고 싶었다.낯뜨거워서 차마 더는 지켜볼 수 없는지라 채찍을 얼른 건네받고 육홍렬을 문밖으로 밀어냈다.“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으니까 아빠는 방해하지 말고 먼저 나가 계세요.”자신을 쫓아내기 급급한 딸의 모습을 보며 육홍렬은 흡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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