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자리를 피한 백아영은 사람이 없는 복도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괴로움을 드러냈다.그녀는 주먹을 쥔 채 가슴팍을 두드리며 심장이 터질듯한 괴로움과 답답함을 없애려고 애썼다.이성준을 거절할 때부터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그 느낌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한참이 지나서야 백아영은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온몸에 가시덤불이 박혀도 씩씩하게 걸어가야 한다.그녀는 이영철의 서재로 들어갔고 백아영을 발견한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수 차를 따랐다.“올해 봄에 딴 용정차야. 한번 마셔봐.”가슴에 큰 바위가 짓눌러 있는 듯한 느낌에 목이 메었지만, 예의상 한 모금 마시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할아버지, 저 이도하 도련님이랑 결혼해요. 아직 서로 안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데 어릴 때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려고 찾아왔어요. 도와주실 수 있죠?”이영철을 차 한 모금을 마시더니 흔쾌히 답했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도하 방으로 가자. 몇 년 동안 돌아온 적 없어서 방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지내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거야.”이도하의 방은 매우 컸고 럭셔리한 인테리어는 귀공자인 게 티 날 정도였다.하지만 물건은 아주 적고 평범했다. 백아영은 세 번이나 훑어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고 그 모습에 이영철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도하 부모님은 어릴 적에 사고로 돌아가셨어. 비록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지만 많은 괴롭힘을 당했고 난 그 당시 너무 바빠서 미처 챙겨주지 못했지. 아마 그런 일들로 인해 차가운 성격을 갖게 됐을 거야. 자신을 보호하려고.”부모의 사망, 가족들의 무관심, 친구들의 괴롭힘, 이런 요소들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백아영은 그제서야 이도하가 왜 이성준을 배신했는지 알 수 있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성준이 내뿜는 빛에서 그림자로 살아왔고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최신 업데이트 : 2023-10-15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