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291 - 챕터 300

916 챕터

제291화

그시각 이도하는 병원 밖에 서 있었고 화를 내며 떠나는 이성준의 모습을 보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이성준과 백아영 이제 끝났어.”“좋아!”전화기 너머의 제갈연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당장 백아영이랑 그 아이를 데리고 나와.”이도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은 안돼. 이성준이 보낸 사람들이 아직 있어.”백아영을 보호하기 위해 병실 입구뿐만 아니라 병원 안팎에는 수많은 경호원이 있었다.지금 바로 백아영을 데리고 떠난다면 이성준이 무조건 의심하게 되고 경호원들도 그를 막을 게 분명하다.“백아영이 널 선택한 상황에 아직도 지켜주고 있다고? 이씨 가문은 정말 사랑에 목숨을 거네.”제갈연준은 비꼬듯이 말했다.“이성준은 잠깐이나마 백아영을 보호할 수 있는데 미션에 실패하면 네가 사랑하는...”“그 여자한테 손대지 마!”이도하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핸드폰을 꽉 쥐었고 손등에는 핏줄이 튀어 올랐다.“일주일만 시간을 줘. 내가 백아영이랑 결혼하고 신혼 여행을 빌미로 함께 떠날게. 그럼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야.”제갈연준은 못마땅했다.“간단한 결혼식은 3일이면 될 텐데.”“안돼, 무조건 떠들썩할 정도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야 내가 얼마나 백아영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성준이 알게 될 거야. 그래야 완전히 마음 놓고 백아영을 넘겨주지.”이도하는 맹세하며 말했다.“일주일 후 무조건 백아영을 넘겨줄 테니까 그 사람 돌려줘!”...병실안에서 백아영은 분노한 표정으로 이도하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말했다.“승구 더는 지체하면 안 돼요. 하루 만에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내일 당장 수술해요. 당신이랑 결혼할게요. 걱정되면 내일 혼인신고 하러 가요.”결혼하기로 마음먹으면 끝난 줄 알았는데 일주일 후에 결혼식을 올리고 식이 끝나야 골수 이식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일주일도 버티지 못한다면 그냥 아이 팔자가 안 좋다고 생각해.”이도하는 단호했고 눈빛에서는 냉정함이 느껴졌다.“백아영, 난 그럼 결혼식 준비하러 갈게.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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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선우소훈은 자신의 혈연을 끔찍하게 아끼는 사람이다.백아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승구가 급성 백혈병에 걸렸어요. 골수 이식이 필요한데 선우 일가에 맞는 골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이번 일을 도와주신다면 앞으로 필요한 건 뭐든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승구가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고?”선우소훈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병약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니, 참 바보같네. 경진아, 얼른 선우 일가 모두 불러들여서 맞는 골수가 있는지 알아봐!”“네!”선우경진은 서둘러 알아보러 나갔다. 그는 일을 아주 효율적으로 해냈고 2시간 만에 남원와 인근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았다.전 세계에 걸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혈액 샘플을 헬기로 운송해서 보내왔다.피를 뽑기 위해 줄을 선 선우 일가를 바라보며 백아영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고 그제서야 버팀목이 되는 가족들이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선우 일가의 모든 사람이 긴급 소환되는 바람에 그들이 주도하던 뇌 연구 프로젝트는 그 자리에서 중단됐고 이성준도 이 일에 대해 제일 먼저 알게 되었다.위정은 불안한 듯 물었다.“선우 일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죠?”제갈연준이 눈에 안 보이는 어두운 곳에서 독사처럼 돌아다니고 있으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금 바로 선우 일가로 가자!”이성준은 급히 선우 일가로 향했고 수백 명이 줄을 서서 피 뽑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매우 이상한 상황에 혼란스러운 듯 앞으로 걸어 나간 그는 백아영과 선우경진이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거리가 멀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백아영을 보자 이성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고 싸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그 시각 선우경진은 백아영에게 선우 일가의 검사 기구를 소개하고 있었다.“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골수 검사 장비는 최소 3일이 걸리는데, 이건 12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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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아영은 말을 잘랐다.“선우 일가에서 건강 검진 받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제안했어.”백승구의 병은 조사하면 바로 알아낼 수 있었기에 오래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끌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이성준이 이 일을 모른다면 흔들리거나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고 골수 이식만 마무리 된다면 모든 일이 밝혀져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선우경진은 이성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 백아영을 의아하게 바라봤다.이성준의 눈빛은 더욱 차가웠다. 다른 가문이 피를 뽑아 건강 검진을 한다면 믿기라도 할 텐데 의술이 뛰어난 선우 일가는 맥만 짚어도 모든 걸 알 수 있는데 굳이 피를 뽑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뭔가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확실했다. 예전의 이성준이라면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 지금은...이성준은 싸늘하게 비웃으며 말했다.“네가 선우 일가에 돌아왔으니까 이제부터 이씨 가문과의 동맹 관계는 여기서 끝이야.”“뇌 연구 프로젝트는 선우 일가에서 계속하세요. 앞으로 저희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말은 마친 이성준은 곧바로 뒤돌아서 자리를 떴고 싸늘함을 내뿜는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갔다.백아영은 가슴이 뭔가에 짓눌린 듯 괴로워하며 우울함을 느꼈다. 이성준은 정말 말한 대로 단번에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이제는 백아영으로 ‘물든’ 선우 일가마저도 원하지 않았다.선우경진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아영아, 설마 싸웠어?”백아영은 고개를 저으며 마음속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했다.“이게 저랑 이성준이 맞이하는 가장 좋은 결말일 거예요.”이성준과 함께 자리를 뜬 위정은 차에 오르자마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사장님, 아영 씨가 갑자기 선우 일가로 돌아간 건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한데 제가 한번 알아볼까요?”이성준은 곁눈질로 차창 밖 선우 일가를 바라봤고 눈빛은 한없이 싸늘했다.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백아영이 놓아달라며 애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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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백아영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이도하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괜찮아요, 넘어진 것뿐이에요.”그녀는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났다.경호원들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다시 나갔고 문이 닫히자마자 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미쳤어요?”이도하는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벽에 밀치더니 손으로 으깨버릴 듯이 힘껏 그녀의 턱을 잡았다.“백아영, 네가 선우 일가에 골수 찾으러 간 거 모를 줄 알았어?”힘은 점점 더 세졌다.“선우 일가에 단 한 명도 없는 게 아쉽네. 백승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이도하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고 턱도 아팠지만 두려움 없이 반박했다.“지금 바로 수술을 한다면 승구를 구할 사람이 당신밖에 없겠지만 일주일 후에는 아닐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넓은데 골수가 맞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당신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인간이 될 거예요.”표정이 미세하게 바뀐 게 느껴졌지만 이도하는 또다시 오만한 태도를 보이며 비웃었다.“이 넓은 세상에서 골수가 맞는 사람을 찾는 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나 다름없는데? 7일 내에 찾는 건 꿈도 꾸지 마. 네 엄마와 아빠라면 맞을 확률이 그나마 높을 텐데 그 사람들은 평생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무서운 곳에 갇혀있으니까 희망 품지 말고 얌전히 신부가 될 준비하고 있어!”백아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우리 부모님이 갇혀있는 곳을 알아요?”이도하는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표정이 바뀌더니 ‘우지끈’ 소리와 함께 재빨리 그녀의 턱을 내쳤다.“이건 시작에 불과해. 얌전하게 있지 않으면 다음에는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이도하는 싸늘한 표정으로 문을 쾅 닫았고 백아영은 탈구된 턱을 잡은 채 두 눈이 반짝이더니 마음속에 휘폭풍이 몰아쳤다.‘엄마랑 아빠 아직 살아있어! 죽은 게 아니라 갇힌 거야!’찾는다면 그들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승구도 구할 수 있다!그녀의 마음에는 희망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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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세상에 무서운 곳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도하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일반적으로 성인이 된 후 처음 맡게 된 일을 수행할 때 알게 된 진짜 위험하고 무서운 곳, 아니면 어릴 때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곳 두 가지로 나뉜다.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모두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백아영은 선우경진에게 이도하가 전에 일했던 곳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이도하의 어린 시절을 알아보기 위해 이씨 가문의 본가로 향했다.이도하와의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 건넨다는 핑계를 빌미로 찾아가기에 아주 적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낯익은 마이바흐 한 대가 다가왔다.이성준의 차다.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고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이 복잡해졌다.차 문이 열리자 그의 긴 다리와 우월한 자태가 보였고 검은 수트를 입고 있는 모습은 차가우면서도 고급스러웠다.몇 번을 보아도 이성준은 항상 그녀를 놀라게 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백아영을 발견했고 그 눈빛은 차갑고 무관심했다.백아영은 어색한 듯 과일 바구니를 움켜쥐고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손을 흔들려던 찰나 이성준은 다시 차로 돌아갔다.곧이어 가느다란 팔이 자연스럽게 이성준의 넓은 손바닥에 얹혔고 이성준은 허리를 굽힌 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그녀를 부축했다.백채영의 얼굴은 창백했고 기운이 없는 사람처럼 이성준의 몸에 기댄 모습은 그의 품에 안겨있는 것만 같았으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손을 내밀며 그녀를 부축하는 모습에 백아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심장이 뭔가에 찔린 듯 온몸의 신경이 찌릿했다.머릿속에서는 백채영이 보내준 영상이 떠올랐고 그동안 병원에서 그녀를 돌봐준 이성준의 모습이 상상되었다.‘설마 다시 만나는 건가...’충격받은 듯한 백아영의 모습에 백채영은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백아영,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그녀의 말투는 마치 자기가 사모님이라는 듯 당당했다.마음이 불편해진 백아영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면서 애써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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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이성준은 줄곧 괜찮다고만 말했을 뿐 이현무가 다쳤다는 건 입밖에 내지 않았다.그를 보러 가지 못한 게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이를 악문 채 아무런 변명 없이 이현무에게 다가가 애처롭게 그의 다리를 바라봤다.“많이 다쳤어? 아직도 아파?”이성준에게 안겨 백아영한테 다가갈 수 없었던 현무는 애교를 부렸다.“아영 아줌마가 호해주면 안 아파요.”말하던 그는 다리를 올렸고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난감하던 백아영은 그의 활발함을 보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그녀 역시도 이현무를 무척이나 아끼고 있었기에 곧바로 머리 숙여 깁스한 그의 다리를 불어줬다.백아영은 이현무를 대할 때 가장 온화했고 몸에서는 알 수 없는 빛이 나오면서 그 아름다움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그러나 그녀가 했던 무정한 말이 생각난 이성준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그는 이현무를 끌어안고 옆으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백아영과 거리를 뒀다.“아영 아줌마는 돌봐야 할 아들이 있으니까 앞으로 귀찮게 하지 마. 네 엄마도 이미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어. 이번에 널 구해주고 돌봐준 것도 엄마니까 앞으로 지금처럼 계속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아영 아줌마를 엄마로 생각하면서 지내지 마.”이현무는 멀리 떨어져 있는 백아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억울하고 서운했다. 그동안 백채영이 그를 구해주고 보살펴 준 것도 맞고 엄청 잘해주며 엄마에 대한 모든 기대와 환상을 만족시켰지만 이상하게 백채영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이현무는 백아영을 원하고 있다.“아빠, 싫어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채영이 잘랐다.“성준 씨, 계속 서 있으니까 피곤하네. 우리 들어가자.”이성준은 전보다 창백해진 백채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백아영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오늘은 가족 저녁 식사니까 아영 씨는 나중에 다시 와.”거리감을 유지하며 ‘아영 씨’라고 부르는 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은 심장이 뭔가에 쏘인듯했다. 그녀는 괴로움과 고통으로 가득 차서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나...“할아버지한테 볼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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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서둘러 자리를 피한 백아영은 사람이 없는 복도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괴로움을 드러냈다.그녀는 주먹을 쥔 채 가슴팍을 두드리며 심장이 터질듯한 괴로움과 답답함을 없애려고 애썼다.이성준을 거절할 때부터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그 느낌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한참이 지나서야 백아영은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온몸에 가시덤불이 박혀도 씩씩하게 걸어가야 한다.그녀는 이영철의 서재로 들어갔고 백아영을 발견한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수 차를 따랐다.“올해 봄에 딴 용정차야. 한번 마셔봐.”가슴에 큰 바위가 짓눌러 있는 듯한 느낌에 목이 메었지만, 예의상 한 모금 마시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할아버지, 저 이도하 도련님이랑 결혼해요. 아직 서로 안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데 어릴 때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려고 찾아왔어요. 도와주실 수 있죠?”이영철을 차 한 모금을 마시더니 흔쾌히 답했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도하 방으로 가자. 몇 년 동안 돌아온 적 없어서 방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지내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거야.”이도하의 방은 매우 컸고 럭셔리한 인테리어는 귀공자인 게 티 날 정도였다.하지만 물건은 아주 적고 평범했다. 백아영은 세 번이나 훑어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고 그 모습에 이영철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도하 부모님은 어릴 적에 사고로 돌아가셨어. 비록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지만 많은 괴롭힘을 당했고 난 그 당시 너무 바빠서 미처 챙겨주지 못했지. 아마 그런 일들로 인해 차가운 성격을 갖게 됐을 거야. 자신을 보호하려고.”부모의 사망, 가족들의 무관심, 친구들의 괴롭힘, 이런 요소들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백아영은 그제서야 이도하가 왜 이성준을 배신했는지 알 수 있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성준이 내뿜는 빛에서 그림자로 살아왔고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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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백아영은 이영철과 함께 방에서 나와 한참을 걸어서 본가 뒷마당에 있는 외딴 산으로 향했다.그가 버튼을 누르자 웬 문이 열렸고 이영철은 앞장서서 먼저 들어갔다.어두컴컴한 내부를 바라보며 경계심이 생긴 백아영은 손에 은침을 쥔 채 안으로 들어섰다.그녀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 이성준이 나타났고 그의 눈빛은 매우 깊고 싸늘했다.그는 이영철이 이곳에 비밀스러운 장소를 숨겨놨다는 걸 몰랐고 그가 백아영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게 의심스러워 조용히 뒤를 따랐다.백아영은 이영철을 따라서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어느 문 앞에 멈춰 섰다.이곳은 지하에 있어 에어컨을 틀지 않았어도 으슬으슬 추웠다.내려온 후부터 이영철의 표정은 심각했고, 심지어 조금 긴장한 모습을 보이며 심호흡을 한 후 문을 열었다.바깥과 달리 내부는 따뜻했다.햇빛이 느껴지는 것처럼 따뜻하고 넓은 방 안에는 다양한 기구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침대 위의 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다.노인 한 명이 누워있었다.백발에 주름이 가득한 모습은 70, 80대의 여성으로 보였고 온몸에 각종 기구와 튜브를 꽂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마저 힘겹게 느껴졌다.호흡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숨을 유지한 채 조용히 그곳에 누워있었는데 상태는 많이 나빠보였다. 삑삑거리는 의료 장치가 없었다면 죽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였다.“내 와이프야. 십 년 전에 실수로 넘어진 후로 지금껏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람들은 이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실은 내가 숨겼어. 지금은 이렇게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이영철은 침대로 걸어가 앉더니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내의 손을 잡으며 바라봤고 평소에 유지하고 있던 위엄은 지금 이 순간 다 사라졌다.그 모습은 아내를 위해 슬퍼하는 노인에 불과했다.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떨고 있었다.“건강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이제 이런 기구들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야.”이영철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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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백아영은 이영철이 그녀와 거래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런 거래가 될 줄은 몰랐다.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철한 이영철이 마음속 깊은 곳에 이런 애틋함을 갖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노인은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을 자아내는데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이성준의 할머니다.살릴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던 백아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선우 일가에 한 번 시도해볼게요.”백아영이 몸을 돌린 순간 눈앞에 서 있는 이성준과 마주쳤다.그는 우뚝 솟은 소나무처럼 꼿꼿이 서 있었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애틋하게 병상 위에 누워있는 어르신을 바라봤다.10년 전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셈이니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슬펐다.생기없이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이영철은 갑자기 나타난 이성준을 보며 조금 놀랐지만 곧바로 받아들이고 한숨을 내쉬었다.“성준아, 할아버지가 널 속였다고 원망하지 마. 네 할머니의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우리의 약점이 될 거야.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이용당하며 상처받고 싶지 않았어. 이제 구할 기회가 생겼으니 네가 알아도 무방하니까, 이참에 아영이랑 같이 선우 일가에 가서 신약 받아와.”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이성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더니 먼저 앞장서서 걸어갔고 백아영은 곧바로 뒤를 따랐다.때마침 뒤에서 이영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준이 아빠도 일찍 돌아갔고 엄마도 건강이 안 좋아서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 밤낮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앓았던 사람이야.”이성준이 할머니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신약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이성준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백아영은 이영철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노력해 볼게요.”곧바로 백아영은 이성준의 차를 타고 떠났고 2층 창문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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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곧 두 사람은 선우 일가의 저택에 도착했고 백아영은 이성준과 함께 선우소훈을 만나러 갔다.도움을 청하러 온 것도 모자라 가보로 여겨지는 보물을 구하러 왔으니 민망한 감정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모든 일을 듣게 된 선우소훈은 주름이 한결 짙어졌다.“아영아, 네가 말한 그 약은 선우 일가의 가보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권력을 상징하고 있어. 너한테 주려고 지금까지 남겨뒀어. 넌 선우 일가에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야. 이 약을 갖게 된다면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능력이 향상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장을 할 거야.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고 수많은 사람이 꿈꿔왔던 일이야. 이게 바로 너의 미래라고.”모든 말은 그녀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가문의 영광을 선택할지, 목숨이 간신히 붙어있는 노인을 선택할지, 빛나는 미래를 선택할지 모든 건 백아영에게 달려있다.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후자를 선택할 게 분명하다.이성준은 손가락을 움츠린 채 진지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다가 희망을 잃었는지 곧바로 어두워졌다.자신의 미래를 버리고 희생할 필요는 없었으니까...“할아버지, 이 약 받을게요.”백아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단을 내린 건 부모를 찾아 자신과 백승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또한 미래는 만들어 갈 수 있더라도 이성준 할머니의 목숨은 단 한 번뿐이었다.이성준은 의아한 눈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쳤다.선우소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어이없다는 듯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바보 같은 놈. 네가 결정한 이상 약은 줄 수 있는데 할아버지도 부탁이 있어.”선우소훈은 긴장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선우 일가로 돌아와서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으렴.”백아영도 아무런 대가 없이 약을 가져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조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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