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영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이도하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괜찮아요, 넘어진 것뿐이에요.”그녀는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났다.경호원들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다시 나갔고 문이 닫히자마자 백아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미쳤어요?”이도하는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벽에 밀치더니 손으로 으깨버릴 듯이 힘껏 그녀의 턱을 잡았다.“백아영, 네가 선우 일가에 골수 찾으러 간 거 모를 줄 알았어?”힘은 점점 더 세졌다.“선우 일가에 단 한 명도 없는 게 아쉽네. 백승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이도하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고 턱도 아팠지만 두려움 없이 반박했다.“지금 바로 수술을 한다면 승구를 구할 사람이 당신밖에 없겠지만 일주일 후에는 아닐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넓은데 골수가 맞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당신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인간이 될 거예요.”표정이 미세하게 바뀐 게 느껴졌지만 이도하는 또다시 오만한 태도를 보이며 비웃었다.“이 넓은 세상에서 골수가 맞는 사람을 찾는 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나 다름없는데? 7일 내에 찾는 건 꿈도 꾸지 마. 네 엄마와 아빠라면 맞을 확률이 그나마 높을 텐데 그 사람들은 평생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무서운 곳에 갇혀있으니까 희망 품지 말고 얌전히 신부가 될 준비하고 있어!”백아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우리 부모님이 갇혀있는 곳을 알아요?”이도하는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표정이 바뀌더니 ‘우지끈’ 소리와 함께 재빨리 그녀의 턱을 내쳤다.“이건 시작에 불과해. 얌전하게 있지 않으면 다음에는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이도하는 싸늘한 표정으로 문을 쾅 닫았고 백아영은 탈구된 턱을 잡은 채 두 눈이 반짝이더니 마음속에 휘폭풍이 몰아쳤다.‘엄마랑 아빠 아직 살아있어! 죽은 게 아니라 갇힌 거야!’찾는다면 그들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승구도 구할 수 있다!그녀의 마음에는 희망의 불
세상에 무서운 곳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도하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일반적으로 성인이 된 후 처음 맡게 된 일을 수행할 때 알게 된 진짜 위험하고 무서운 곳, 아니면 어릴 때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곳 두 가지로 나뉜다.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모두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백아영은 선우경진에게 이도하가 전에 일했던 곳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이도하의 어린 시절을 알아보기 위해 이씨 가문의 본가로 향했다.이도하와의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 건넨다는 핑계를 빌미로 찾아가기에 아주 적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낯익은 마이바흐 한 대가 다가왔다.이성준의 차다.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고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이 복잡해졌다.차 문이 열리자 그의 긴 다리와 우월한 자태가 보였고 검은 수트를 입고 있는 모습은 차가우면서도 고급스러웠다.몇 번을 보아도 이성준은 항상 그녀를 놀라게 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백아영을 발견했고 그 눈빛은 차갑고 무관심했다.백아영은 어색한 듯 과일 바구니를 움켜쥐고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손을 흔들려던 찰나 이성준은 다시 차로 돌아갔다.곧이어 가느다란 팔이 자연스럽게 이성준의 넓은 손바닥에 얹혔고 이성준은 허리를 굽힌 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그녀를 부축했다.백채영의 얼굴은 창백했고 기운이 없는 사람처럼 이성준의 몸에 기댄 모습은 그의 품에 안겨있는 것만 같았으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손을 내밀며 그녀를 부축하는 모습에 백아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심장이 뭔가에 찔린 듯 온몸의 신경이 찌릿했다.머릿속에서는 백채영이 보내준 영상이 떠올랐고 그동안 병원에서 그녀를 돌봐준 이성준의 모습이 상상되었다.‘설마 다시 만나는 건가...’충격받은 듯한 백아영의 모습에 백채영은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백아영,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그녀의 말투는 마치 자기가 사모님이라는 듯 당당했다.마음이 불편해진 백아영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면서 애써 자신의
이성준은 줄곧 괜찮다고만 말했을 뿐 이현무가 다쳤다는 건 입밖에 내지 않았다.그를 보러 가지 못한 게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이를 악문 채 아무런 변명 없이 이현무에게 다가가 애처롭게 그의 다리를 바라봤다.“많이 다쳤어? 아직도 아파?”이성준에게 안겨 백아영한테 다가갈 수 없었던 현무는 애교를 부렸다.“아영 아줌마가 호해주면 안 아파요.”말하던 그는 다리를 올렸고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난감하던 백아영은 그의 활발함을 보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그녀 역시도 이현무를 무척이나 아끼고 있었기에 곧바로 머리 숙여 깁스한 그의 다리를 불어줬다.백아영은 이현무를 대할 때 가장 온화했고 몸에서는 알 수 없는 빛이 나오면서 그 아름다움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그러나 그녀가 했던 무정한 말이 생각난 이성준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그는 이현무를 끌어안고 옆으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백아영과 거리를 뒀다.“아영 아줌마는 돌봐야 할 아들이 있으니까 앞으로 귀찮게 하지 마. 네 엄마도 이미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어. 이번에 널 구해주고 돌봐준 것도 엄마니까 앞으로 지금처럼 계속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아영 아줌마를 엄마로 생각하면서 지내지 마.”이현무는 멀리 떨어져 있는 백아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억울하고 서운했다. 그동안 백채영이 그를 구해주고 보살펴 준 것도 맞고 엄청 잘해주며 엄마에 대한 모든 기대와 환상을 만족시켰지만 이상하게 백채영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이현무는 백아영을 원하고 있다.“아빠, 싫어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채영이 잘랐다.“성준 씨, 계속 서 있으니까 피곤하네. 우리 들어가자.”이성준은 전보다 창백해진 백채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백아영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오늘은 가족 저녁 식사니까 아영 씨는 나중에 다시 와.”거리감을 유지하며 ‘아영 씨’라고 부르는 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은 심장이 뭔가에 쏘인듯했다. 그녀는 괴로움과 고통으로 가득 차서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나...“할아버지한테 볼일이
서둘러 자리를 피한 백아영은 사람이 없는 복도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괴로움을 드러냈다.그녀는 주먹을 쥔 채 가슴팍을 두드리며 심장이 터질듯한 괴로움과 답답함을 없애려고 애썼다.이성준을 거절할 때부터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그 느낌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한참이 지나서야 백아영은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온몸에 가시덤불이 박혀도 씩씩하게 걸어가야 한다.그녀는 이영철의 서재로 들어갔고 백아영을 발견한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수 차를 따랐다.“올해 봄에 딴 용정차야. 한번 마셔봐.”가슴에 큰 바위가 짓눌러 있는 듯한 느낌에 목이 메었지만, 예의상 한 모금 마시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할아버지, 저 이도하 도련님이랑 결혼해요. 아직 서로 안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데 어릴 때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려고 찾아왔어요. 도와주실 수 있죠?”이영철을 차 한 모금을 마시더니 흔쾌히 답했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도하 방으로 가자. 몇 년 동안 돌아온 적 없어서 방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지내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거야.”이도하의 방은 매우 컸고 럭셔리한 인테리어는 귀공자인 게 티 날 정도였다.하지만 물건은 아주 적고 평범했다. 백아영은 세 번이나 훑어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고 그 모습에 이영철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도하 부모님은 어릴 적에 사고로 돌아가셨어. 비록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지만 많은 괴롭힘을 당했고 난 그 당시 너무 바빠서 미처 챙겨주지 못했지. 아마 그런 일들로 인해 차가운 성격을 갖게 됐을 거야. 자신을 보호하려고.”부모의 사망, 가족들의 무관심, 친구들의 괴롭힘, 이런 요소들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백아영은 그제서야 이도하가 왜 이성준을 배신했는지 알 수 있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성준이 내뿜는 빛에서 그림자로 살아왔고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백아영은 이영철과 함께 방에서 나와 한참을 걸어서 본가 뒷마당에 있는 외딴 산으로 향했다.그가 버튼을 누르자 웬 문이 열렸고 이영철은 앞장서서 먼저 들어갔다.어두컴컴한 내부를 바라보며 경계심이 생긴 백아영은 손에 은침을 쥔 채 안으로 들어섰다.그녀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 이성준이 나타났고 그의 눈빛은 매우 깊고 싸늘했다.그는 이영철이 이곳에 비밀스러운 장소를 숨겨놨다는 걸 몰랐고 그가 백아영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게 의심스러워 조용히 뒤를 따랐다.백아영은 이영철을 따라서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어느 문 앞에 멈춰 섰다.이곳은 지하에 있어 에어컨을 틀지 않았어도 으슬으슬 추웠다.내려온 후부터 이영철의 표정은 심각했고, 심지어 조금 긴장한 모습을 보이며 심호흡을 한 후 문을 열었다.바깥과 달리 내부는 따뜻했다.햇빛이 느껴지는 것처럼 따뜻하고 넓은 방 안에는 다양한 기구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침대 위의 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다.노인 한 명이 누워있었다.백발에 주름이 가득한 모습은 70, 80대의 여성으로 보였고 온몸에 각종 기구와 튜브를 꽂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마저 힘겹게 느껴졌다.호흡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숨을 유지한 채 조용히 그곳에 누워있었는데 상태는 많이 나빠보였다. 삑삑거리는 의료 장치가 없었다면 죽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였다.“내 와이프야. 십 년 전에 실수로 넘어진 후로 지금껏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람들은 이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실은 내가 숨겼어. 지금은 이렇게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이영철은 침대로 걸어가 앉더니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내의 손을 잡으며 바라봤고 평소에 유지하고 있던 위엄은 지금 이 순간 다 사라졌다.그 모습은 아내를 위해 슬퍼하는 노인에 불과했다.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떨고 있었다.“건강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이제 이런 기구들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야.”이영철이 어떤
백아영은 이영철이 그녀와 거래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런 거래가 될 줄은 몰랐다.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철한 이영철이 마음속 깊은 곳에 이런 애틋함을 갖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노인은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을 자아내는데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이성준의 할머니다.살릴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던 백아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선우 일가에 한 번 시도해볼게요.”백아영이 몸을 돌린 순간 눈앞에 서 있는 이성준과 마주쳤다.그는 우뚝 솟은 소나무처럼 꼿꼿이 서 있었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애틋하게 병상 위에 누워있는 어르신을 바라봤다.10년 전에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셈이니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슬펐다.생기없이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이영철은 갑자기 나타난 이성준을 보며 조금 놀랐지만 곧바로 받아들이고 한숨을 내쉬었다.“성준아, 할아버지가 널 속였다고 원망하지 마. 네 할머니의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우리의 약점이 될 거야.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이용당하며 상처받고 싶지 않았어. 이제 구할 기회가 생겼으니 네가 알아도 무방하니까, 이참에 아영이랑 같이 선우 일가에 가서 신약 받아와.”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이성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더니 먼저 앞장서서 걸어갔고 백아영은 곧바로 뒤를 따랐다.때마침 뒤에서 이영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준이 아빠도 일찍 돌아갔고 엄마도 건강이 안 좋아서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 밤낮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앓았던 사람이야.”이성준이 할머니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신약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이성준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백아영은 이영철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노력해 볼게요.”곧바로 백아영은 이성준의 차를 타고 떠났고 2층 창문에서 그
곧 두 사람은 선우 일가의 저택에 도착했고 백아영은 이성준과 함께 선우소훈을 만나러 갔다.도움을 청하러 온 것도 모자라 가보로 여겨지는 보물을 구하러 왔으니 민망한 감정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모든 일을 듣게 된 선우소훈은 주름이 한결 짙어졌다.“아영아, 네가 말한 그 약은 선우 일가의 가보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권력을 상징하고 있어. 너한테 주려고 지금까지 남겨뒀어. 넌 선우 일가에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야. 이 약을 갖게 된다면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능력이 향상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장을 할 거야.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고 수많은 사람이 꿈꿔왔던 일이야. 이게 바로 너의 미래라고.”모든 말은 그녀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가문의 영광을 선택할지, 목숨이 간신히 붙어있는 노인을 선택할지, 빛나는 미래를 선택할지 모든 건 백아영에게 달려있다.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후자를 선택할 게 분명하다.이성준은 손가락을 움츠린 채 진지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다가 희망을 잃었는지 곧바로 어두워졌다.자신의 미래를 버리고 희생할 필요는 없었으니까...“할아버지, 이 약 받을게요.”백아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단을 내린 건 부모를 찾아 자신과 백승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또한 미래는 만들어 갈 수 있더라도 이성준 할머니의 목숨은 단 한 번뿐이었다.이성준은 의아한 눈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쳤다.선우소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어이없다는 듯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바보 같은 놈. 네가 결정한 이상 약은 줄 수 있는데 할아버지도 부탁이 있어.”선우소훈은 긴장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선우 일가로 돌아와서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으렴.”백아영도 아무런 대가 없이 약을 가져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조건일
백아영이 이도하를 위해 ‘애를 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성준이 말하자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 괜히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하기도 전에 이성준이 시동을 켰고, 차가 붕 앞으로 나가는 순간 무방비 상태의 백아영은 등받이에 쿵 하고 부딪혔다.그뿐만 아니라 곧이어 급커브 하는 바람에 안전벨트도 미처 하지 못한 백아영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 이성준의 허벅지에 엎드리는 꼴이 되었다.이내 흠칫 놀라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이성준은 꼿꼿이 앉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싶었고, 이내 그녀의 머리 위로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하긴, 그래도 제 가족이 좋지 않겠어? 현무도 이젠 백채영을 받아들였으니까 나중에 완치하면 날짜 잡아서 백채영과 결혼식을 올리고 현무한테 완벽한 가정을 만들어 줄 거야.”그는 완벽한 가정이라는 말을 유난히 힘주어 말했는데, 마치 대못처럼 백아영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빨갛게 달아오른 볼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약을 챙겨서 지하실에 가져가 노인한테 먹이자 숨결이 규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약효가 점차 퍼지면서 그녀의 몸은 점점 좋아질 것이며 심지어 다시 깨어날 가능성도 있다.이영철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백아영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은인이라고 불렀다.약이 효능을 발휘하자 백아영도 한시름을 놓았다. 곧이어 이영철한테 이도하에 관해 물었다.이영철은 이번에 숨김없이 털어놓았다.“도하는 성격이 쌀쌀맞지만 정이 많아, 혹시 약의 신 심씨 일가를 알고 있어?”백아영은 예전에 선우경진과 사담하면서 심씨 일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뛰어난 약재 재배술을 갖춘 가문으로 전통 약재는 물론 극히 드물고 귀한 약재도 재배할 수 있는데 전부 일품에 속했다.따라서 그동안 선우 일가와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선우 일가에게 약재를 공급해줬다.20년 전에 선우 일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자취를 감추면서 심씨 일가와도 자연스럽게 관계가 끊겼다.심씨 일가는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