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짐승을 길들이는 법의 모든 챕터: 챕터 191 - 챕터 200

916 챕터

제191화

남원 교외.리사는 제갈연준과 함께 소파에 앉아 빔프로젝터에서 나오는 실시간 모니터링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방금 백아영과 이성준 사이에 일어난 일을 두 사람도 동시에 확인했다.리사는 옆으로 돌아앉아 제갈연준을 바라보았고,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도련님, 아무리 봐도 백아영이 일부러 이성준에게 붙잡힌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죠?”제갈연준은 마치 결과를 예상이라도 한 듯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이현무를 구하려나 봐.”일부러 붙잡혀서 협박당하는 것도 전부 보여주기식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야만 그녀의 아들에게 벌을 내릴 명분도 없을 테니까.게다가 ‘강요에 못 이겨’ 사람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은가?고작 이런 얕은 수법을 어찌 모른단 말이지?“다른 의도가 있는 게 확실해요. 도련님, 절대로 그녀의 목적을 이루게 해서는 안 돼요. 지금 당장 가서 붙잡아 올게요.”리사가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며 백아영을 붙잡으러 가려고 했지만, 제갈연준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제갈연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모니터링 화면을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좋은 일 하고 싶다는데 그냥 놔둬. 다만 좋은 일이 지나고 나면 결국 악몽으로 변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리사는 즉시 깨달은 듯 말했다.“이에는 이, 눈에는 눈인가요? 이미 계획을 다 마쳤나 본데요?”제갈연준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모니터링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그 먹잇감은 바로 백아영이며, 그녀에게 도망칠 구석은 없었다....백아영은 이씨 가문 본가로 끌려갔다.4년이 지난 지금, 설마 이런 일 때문에 이곳을 다시 찾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울적함과 씁쓸함으로 가득했다.다만 표정만큼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만방자한 모습으로 태연한 척 이성준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이현무의 방에 도착하자 오미란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이 여자가 현무에게 독약을 먹인 사람이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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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물론 이런 기회를 만들 생각조차 없었다.“경진 씨 도착했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가 까치집이 된 채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선우경진이 빠른 발걸음으로 뛰어왔다.“여기요, 저 여자가 현무를 건드리지 않게 내가 해독해줄게요.”네 사람은 그제야 방으로 들어섰다.침대가 커서 그런지 이현무는 유난히 작아 보였다. 잠자코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백아영은 마치 돌덩이가 심장을 짓누르는 듯 가슴이 먹먹했다.이현무를 내려다본 이성준은 서늘한 기운을 내뿜더니 목소리마저 쌀쌀맞았다.“어떻게 침질할 건데? 말해!”백아영은 제갈연준의 사람인지라 그녀가 직접 이현무에게 침을 놓게 해줄 수는 없기에 단지 침질하는 방법만 알아내면 끝이다.안 그래도 이현무가 고통받기를 원치 않던 백아양은 침질하는 방법을 술술 털어놓았다.그녀의 말이 끝나고 나서 이성준은 선우경진을 바라보았다.“맞아요?”선우경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네,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짜 냈는데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갈 일가는 독에 능할뿐더러 해독술도 훌륭하네요.”역시 독을 다루는 데 있어서 선우 일가가 제갈 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선우경진을 보자 이성준은 어이없는 듯 말했다.“그래서 알 것 같아요?”선우경진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니요?”그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침술은 문제없는데, 침을 놓는 수법이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당장은 확신이 안 서요.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현무의 목숨이 위험할 거예요. 능숙하게 다루려면 적어도 일주일이란 연습 기간이 필요해요.”이현무의 컨디션으로 일주일까지 버틸 리가 없었다.이는 백아영이 예상했던 상황이다. 어쨌거나 난이도가 있는 침술은 장시간의 연습을 거쳐야만 환자한테 직접 시도할 수 있다.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그녀는 오늘을 위해 밤낮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독성이 억제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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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사모님, 방금 이성준이 얘기했다시피 감히 꼼수를 부리면 목숨을 잃는 사람은 저예요. 전 살고 싶지, 사모님이 애지중지하는 손자와 함께 죽을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백아영은 빨간색 입술로 호를 그리며 이성준을 도발적으로 바라보았다.“이성준, 나랑 거래할래? 저 자식을 해독해주면 날 풀어주는 거야, 어때?”“왜? 이제 와서 겁을 먹은 건가? 내기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성준아, 저년이 일부러 널 자극하는 거야. 그냥 무시해!”오미란은 백아영의 말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현무의 건강에 영향 주는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목숨은 확보할 수 있잖아. 일단 살고 봐야지 미래를 논하지 않겠어?”이성준은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이현무를 바라보았다.비록 지난 3년 동안 떨어져 있은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현무는 어디까지나 그의 아들이자 소중한 가족이기에 아들의 목숨으로 거래하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아들을 대신해서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생각도 없었다.잠깐의 침묵을 끝으로 이성준은 마치 백아영의 목을 겨누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협박했다.“치료하지 못하기만 해 봐!”그가 대뜸 말했다.조마조마하던 백아영도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이성준이 그녀에게 침을 놓게 해줘서 천만다행이었다.오미란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를 말렸다.“성준아, 현무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함부로 결정하면 어떡하니!”“엄마, 제가 알아서 할게요.”이성준이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이제 비켜주세요.”오미란은 이성준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한 번 마음 먹은 이상 아무리 설득해도 그는 듣지 않았다.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그녀는 결국 이를 바득바득 갈며 경고했다.“고분고분 해독만 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우리 현무가 자칫 잘못된다면 아주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까!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똑똑히 보여줄게.”어쨌거나 교양을 먹고 사는 귀부인으로서 이 정도로 위협적인 말을 한다는 자체가 오미란이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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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할머니, 스파이 누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아세요? 절 구해준 사람이 바로 누나예요.”이현무는 힘없고 쉰 목소리로 애써 목청을 높여 백아영을 옹호했다.아이의 순수한 눈동자 속에는 그녀를 향한 믿음과 신뢰로 가득했다.그러나 오미란은 더더욱 화가 났다. 백아영이 이현무에게 독약을 먹인 것도 모자라 속이기까지 했단 말인가? 정말 너무 괘씸했다.“성준아, 꿍꿍이밖에 없는 이 여자가 현무 주위에 얼쩡거리지 않게 얼른 끌고 가!”이현무의 말을 들은 이성준도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다. 아마 당시 이현무에게 독약을 먹이려고 거짓말했을 가능성이 컸다.아무것도 모르고 의식을 잃은 아이는 두려움을 느낄 틈마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제갈연준은 무자비하기로 소문났고, 중독되고 난 사람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제일 좋아할 텐데, 이현무만 마수에서 벗어났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이성준은 백아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고 밖으로 끌어냈다.백아영은 이현무와 제일 멀리 떨어진 방에 끌려갔다.이성준은 새로운 수갑을 꺼냈는데, 중간에는 가늘고 긴 쇠사슬로 이어졌고 한쪽은 그녀의 손목에 다른 한쪽은 철창에 채웠다. 그녀의 활동 범위는 고작 3m에 불과했고, 우리에 갇힌 동물 신세가 따로 없었다.백아영이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었다.“이렇게까지 해야 해? 밖에 경호원이 깔려서 도망칠 수도 없구먼.”이성준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곧이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백아영은 어디 있어?”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넋을 잃은 백아영은 이내 납득이 갔다. 어쨌거나 지난 4년 동안 이성준이 그녀를 찾아 헤맸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않았는가?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당최 이해가 안 갔다.4년 전, 비록 관계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도 없는 사이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보통 친구에 불과할 텐데 아무리 제갈연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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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그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싶지 않았다.“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며칠 뒤에 밝혀질 거야. 어차피 당신한테 붙잡힌 이상 만약 며칠 뒤에도 백아영을 못 찾으면 그때 다시 죄를 물어도 늦지 않았잖아?”백아영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제갈연준이 절대로 그녀가 이성준 곁에 머물도록 놔둘 리가 없으니 무조건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려갈 거로 확신했다.며칠 뒤면 이성준이 제갈연준을 붙잡든지 제갈연준이 그녀를 구출하든지 할 테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심문을 피할 수 있었다.이성준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는데, 그녀의 말을 믿었는지 알 수 없었다.곧이어 이성준이 방에서 나갔다.홀로 남은 백아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지친 몸을 이끈 채 침대에 누웠다.마음을 졸인 하루가 드디어 지났고, 이현무가 제때 치료를 받아서 천만다행이었다....한밤중, 이현무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아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듯 얼굴이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생기가 넘쳤다. 곁에서 잠든 오미란을 확인하자 살며시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비록 할머니가 스파이 누나랑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백아영이 보고 싶었다.방에서 나온 이현무는 이미 알아본 대로 백아영이 갇힌 방으로 걸어가 미리 준비한 키로 방문을 열었다.30분 뒤, 비몽사몽 잠에서 깬 오미란은 잠결에 이현무에게 이불을 덮어주려고 하다가 손을 뻗는 순간 침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현무야?!”그녀는 아연실색하며 순식간에 잠에서 깼다. 이내 벌떡 일어나 이현무를 찾았지만, 방안을 샅샅이 뒤져도 코빼기가 보이지 않았다.“성준아, 현무가 사라졌어!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밖에 경호원이 지키고 있으니 나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우선 CCTV부터 확인해보죠.”이성준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오미란을 데리고 CCTV를 확인하러 갔다.이내 복도 CCTV에서 스스로 문을 열고 백아영이 갇힌 방을 향해 걸어가는 이현무의 모습이 나타났다.“현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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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어렴풋한 달빛 때문인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 이성준의 눈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낮과 사뭇 달랐다.더 이상 가시 돋친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은은하게 피어난 한 송이의 우담화처럼 순백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백아영처럼...“이 악독한 계집애 현무한테 손댄 건 아니지?”다급하게 뒤쫓아 온 오미란의 불안한 목소리는 착잡해하던 이성준의 생각을 끊었다.그는 꿈에서 깨어난 듯 침대 위 여인의 섬세하고 고혹적인 이목구비를 살펴보았으나 백아영과 닮은 점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방금 전에는 환각임이 틀림없었다.이성준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대 옆으로 가서 이현무를 안았다. 비록 잠에서 깨지 않았지만 고사리 같은 손은 백아영의 옷깃을 꽉 움켜쥐면서 놓으려 하지 않았다.눈빛이 흔들렸던 이성준은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현무한테 무슨 짓 했어?”백아영은 어이가 없었다.‘잠자고 있는 사람한테 달라붙은 건 저 녀석인데 왜 나한테 뭐라는 거야?’억울한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무슨 짓 한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매력이 많은가 봐.”그녀의 표정에 혐오감을 느낀 이성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옷깃을 잡고 있던 현무의 손을 떼어내며 그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방문이 또다시 닫히자, 방안에는 백아영 홀로 남았고 줄곧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은 그제야 무너져 내려 순식간에 무기력해졌다.그녀는 이현무가 잠들었던 자리를 바라보면서 뭔가를 잃은 듯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비록 백채영이 낳은 아이지만 그녀와 달리 사랑스럽고 귀여울 뿐만 아니라 품에 안았을 때는 너무 부드러워 목숨 걸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환심을 사로잡았다.‘내 아들도 이런 느낌이겠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안아볼 수 있을까?’다음날.잠에서 깬 이현무는 백아영이 보이지 않자,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서러워하며 물었다.“스파이 누나는요?”이현무의 질문에 그 일이 생각난 오미란은 화가 났지만 애써 참으며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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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백아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현무를 바라봤다.“너 이 녀석, 여기는 왜 또 온 거야?”이현무는 문옆에 서서 수줍게 새끼손가락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스파이 누나랑 같이 놀고 싶어요.”이성준이 데려간 지 하룻밤 만에 다시 찾아온 거 보면 몰래 도망친 게 틀림없다.더 이상 이성준한테 혼나고 싶지 않았던 백아영은 마지못해 말했다.“너 이제 푹 쉬어야 해. 현무 말 잘 듣지? 얼른 가서 자...”“저 엄청 많이 잤어요. 방안은 너무 답답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스파이 누나 나랑 놀아줘요. 네?”눈을 동그랗게 든 채 불쌍한 눈빛으로 간절하게 바라보는 이현무의 모습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1초 만에 마음이 흔들려 버린 백아영은 마지못해 그를 향해 손을 저었다.“이리 와, 뭐 하고 싶어? 그런데 누나랑은 방안에서만 놀아야 돼.”그녀는 여전히 갇힌 상태였고 이현무는 그녀의 손목에 묶인 쇠사슬을 바라보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문밖에서 모든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이성준은 의외인 듯 깜짝 놀랐다.‘정말로 현무가 직접 이 여자를 찾아온 거야?’이성준은 살며시 방문을 열어 문틈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백아영의 맞은편에 앉아 손뼉 치며 즐거워하는 이현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이성준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였다. 그는 그제야 현무가 한창 뛰어다니며 놀아야 할 세 살짜리 아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그러나 그와 백채영은 한 번도 이런 행복을 이현무에게 준 적이 없었다.이성준은 입술을 깨물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방문을 열었고, 문이 열리자 방안에서 들려오던 즐거운 웃음소리는 순식간에 멈췄다.갑자기 나타난 그의 모습에 표정이 굳어버린 이현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빠...”“가자.”이성준은 성큼성큼 다가가 이현무를 끌어올렸다.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반항할 수 없었던 이현무는 마지못해 얼굴을 찌푸린 채 아쉬워하며 백아영을 바라봤고, 서러움으로 가득차 입을 삐쭉 내민 모습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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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세 살이 되도록 이성준한테 부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이번이 처음이었다.이성적으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면 안 됐지만 이성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기분이 좋아진 이현무는 활짝 웃었다.“아빠 최고!”웃던 와중에 그는 이성준은 아이들이 웃는 걸 가장 싫어한다는 백채영의 말이 문뜩 떠올라 재빨리 입을 가리고 다시 소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이성준은 위정의 제안으로 이현무와 연날리기에 도전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선택임을 깨달았고 당장이라도 위정을 죽이고 싶었다.왜냐하면... 다재다능한 이성준은 유일하게 연날리기 경험이 없었고 아무리 시도해도 떠오르지 않는 연을 보며 그저 멀뚱멀뚱 잔디 위에서 서로 멋쩍은 눈빛만 주고받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이성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 다른 거 놀까?”“좋아요...”이현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이 드러났고 그 모습에 이성준은 가슴이 미어졌다.“연날리기 딱 좋은 날씨네. 내가 도와줘?”수갑을 푼 백아영은 별장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어슬렁거리다가 마침 정원에서 연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이성준과 이현무를 발견했다.연을 손에 든 채 쩔쩔매는 이성준의 모습에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자신의 약점을 들켰다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아진 그는 도움 필요 없으니 당장 나가라고 말하려 했다.그러나 마침 이현무가 싱글벙글 웃으며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좋아요! 스파이 누나가 현무 도와줘요!”거절하고 싶은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신이 난 이현무를 바라보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이성준의 싸늘한 시선을 뒤로하고 백아영은 침착하게 다가가 연을 집어 이현무의 손에 넣었다.“현무야, 여길 잡고 있어. 누나가 놓으라고 할 때 놓으면 돼.”이현무는 큰소리로 답했다.“네!”마침 연날리기 최적화된 계절인 봄이었고 거기에 백아영의 경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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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고마워!”백아영은 재빨리 정신을 차려 이성준의 품에서 벗어났고 이런 상황에 불편함을 느꼈다.이현무는 손에 있던 연을 놓고 걱정스럽게 달려왔다.“스파이 누나,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백아영은 시선을 돌려 쭈그리고 앉아 이현무를 안았다.“누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품 안이 텅 비자 이성준은 왠지 모를 허탈감이 들었고 방금 느꼈던 이상한 기분과 감정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 그녀와 백아영은 전혀 다른 두 사람임이 분명했지만, 그 찰나 느껴졌던 익숙한 느낌은 마치 백아영을 안고 있는 듯했다.자신을 바라보는 이성준의 시선에 저도 모르게 죄책감이 든 그녀는 머리 위에 큰 칼이 놓인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백아영은 차마 이성준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고, 이현무와 함께 연을 날려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어머, 연이 날아갔네!”줄마저 끊겨있었다.“혹시 다른 연 있어?”이현무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발을 바라보더니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누나 발 삐끗한 거 아니에요? 잘 걷지도 못하잖아요.”발목을 접질린 건 맞지만, 자신의 가벼운 부상 때문에 이현무한테 피해 주고 싶지 않아 애써 웃으며 답했다.“정말 하나도 안 아파. 누나 지금 뛰어도 돼.”이현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백아영을 잡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아빠가 아프면 뛰어다니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그랬어요. 누나 이제 다 나으면 같이 연 날려요.”“그래도...”백아영은 아직 이른 날씨를 바라봤다.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러 왔다가 괜히 부자의 오붓한 시간을 망친 듯한 느낌에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망쳐버린 시간을 어떻게 보상할지 고민하던 찰나 이성준이 입을 열었다.“현무야, 도우미 이모한테 들었는데 너 피크닉 가고 싶다며?”사실 이현무는 피크닉에 관심이 없었다. 그한테는 집에서 먹으나 밖에서 먹으나 별다른 거 없이 그저 똑같은 지루한 식사일 뿐이었다.세 식구가 함께 피크닉 가는 걸 백채영이 너무 원했기에 어쩔 수 없이 ‘체험’ 해야만 한다.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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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음식들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절대 많이 먹지 않았다.총 8가지의 음식이 있었는데 정말 여덟 입만 먹었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누가 봐도 배불리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도인데 입을 닦더니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세 살배기 아이의 식탐과 활발함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너무 마른 이현무의 모습이 의아한 듯 백아영은 상냥하게 물었다.“현무야, 배불렀어?”이현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성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몸에는 소심함과 신중함이 배어있었다. ‘무서워하는 거야? 설마 이성준이 정한 규정인가?’이성준이 정했다고 하기에는 누가 봐도 이현무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고 고작 음식으로 가혹하게 대할 사람은 아니었다...의혹투성이가 너무 많았지만 사사건건 참견할 수 없었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직 많이 남았잖아. 음식 낭비하는 건 안 좋은 거야. 더 먹어.”그녀는 이현무가 치킨을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 몇 조각 집어 앞접시에 놓았다.이현무는 치킨을 보더니 침을 삼켰고 먹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조심스럽게 이성준을 바라봤다. “아빠, 더 먹어도 돼요?”이씨 가문의 도련님으로서 모든 음식은 한 입만 먹을 수 있고 절대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교육한 사람은 백채영이었다. 많이 먹으면 아빠가 싫어한다는 말에 이현무는 지금껏 한 끼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었다.이성준의 시선은 줄곧 백아영에게 머물러 있었고 이현무의 식습관 같은 건 눈치채지 못한 채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다행이다. 많이 먹어도 아빠는 날 미워하지 않았어!’이현무는 곧바로 활짝 웃으며 치킨 한 조각을 집어 이성준에게 건넸다.“아빠도 같이 먹어요.”이성준은 치킨처럼 우아하게 맛보기 힘든 음색은 질색이었는데 기대에 찬 이현무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녹아 자연스럽게 받았다.이성준의 고귀한 손에 기름진 음식이 들린 걸 처음 본 백아영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이성준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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