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눈에 들어온 거라고는 비상계단 안으로 쏙 사라지는 백아영의 모습뿐이었다.자기를 부를 땐 언제고, 본인이 먼저 가버린단 말인지?순간 욱하고 화가 난 이성준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그녀를 붙잡으러 가고 싶었다.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그는 비상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한편, 비상구 너머로 백아영은 입이 틀어막힌 채 꽉 붙잡혀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귓가에는 제갈연준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미 알고 있나 보네요? 감히 내 계획을 망치려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군.”백아영은 소름이 끼쳤다. 자비 따위 없는 제갈연준의 손에 들어간 이상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초조한 눈빛으로 비상구를 향해 가까워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속으로 이성준이 얼른 제갈연준을 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눈앞까지 다가온 이성준의 그림자가 비상구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고 문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성준아, 너랑 어울리지도 않은 백채영과 기어코 결혼하고 싶다면... 둘이 행복하길 바랄게.”비록 제갈연준이 말을 했지만, 목소리는 백아영과 똑같았다.깜짝 놀란 백아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등골이 오싹했다. 제갈연준이 성대모사에 능할 줄이야!‘망했다!’그녀는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가 우뚝 멈추는 게 보였다.이성준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문고리를 잡은 손은 마치 철까지 뭉그러트릴 만큼 힘이 잔뜩 들어갔다.행복하길 바란다고?‘포기 하나는 참 빠르군, 아주 잘하는 짓이야!’어쩌면 그녀에게 기대한 자체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결국 화가 나서 쌩하니 뒤돌아선 이성준은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고, 온몸에서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잽싸게 따라나선 백채영이 능청스럽게 말했다.“성준 씨, 그만 화 풀어. 백아영은 원래 그래. 항상 날 질투해서 뭐든 빼앗으려고 애를 쓰지. 그냥 무시하고 쫓아내는 게 답이야.”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다. 비상구를 바라보는 백채영의 얼
Last Updated : 2023-09-1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