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Chapter 2071 - Chapter 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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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1화

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차미주가 머리를 쥐어뜯더니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한성우랑 잠자리를 가져서 임신하면 결혼하고 임신이 안 되면 그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어차피 난 이번 생은 한성우로 정했어. 내가 개자식과 만나는 것 때문에 엄마와 갈등을 빚고 싶지 않아. 나 키우느라 너무 많이 고생하셨잖아.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절충안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본인의 커리어가 있는 탓일까, 차미주의 어머니는 딸이 남편 될 사람을 고르는 것에 꽤 자신이 있었다. 한현진은 심지어 차미주의 어머니는 단순히 차미주와 한성우에게 아이가 생겨야 결혼을 시키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이 기회를 빌려 한성우를 테스트하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욱하며 성질을 부리던 한성우는 곧 화를 가라앉히고 강한서가 도착한 후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한현진은 한성우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대충 자꾸 혼자 추측하지 말고 차미주와 얘기를 많이 나눠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한현진은 은근히 차미주의 어머니가 아이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흘리며 그가 눈치채기를 바랐다. 한현진의 옆에 앉아 힐끔 문자 내용을 확인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데 이렇게 비굴해 보이는 말투로 문자를 하는 거야?”한현진이 대답했다. “전에 그쪽으로 안 된다고 미주 속였었잖아. 지금 아주머니께서 성우 씨가 정말 그쪽으론 영 아닌 줄 아시고 미주가 임심해야 두 사람 결혼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셨거든. 미주가 워낙 쑥스러움이 많아서 성우 씨에게 직접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데 남인 내가 어떻게 그 얘기를 꺼내겠어. 그래서 운동 열심히 하고 엽산 좀 먹어두라고 그랬지.”“그랬더니 성우 씨가 내가 돈이라면 눈이 멀어서 인정사정도 없이 친구인 미주를 해치라고 떠민다고 오해하고는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있는 중이야. 네가 안 왔으면 아마 저녁 내내 날 무시했을 거야.”강한서가 놀란 눈을 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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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2화

곧 한현진은 강한서가 준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란 것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강한서는 한현진에게 입을 맞추는 것 말고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너도 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지!’심지어 강한서는 내내 한현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줄곧 강한서는 그쪽으론 꽤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코스튬에 이상한 집착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황에선 이루 말할 수 없이 신사적이었다. 도가 지나친 행위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현진이 꺼낸 간접 성교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그녀를 혼내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날 밤, 강한서는 과감히 자신의 틀을 깨고 한현진에게 입을 맞추며 스스로 욕구를 해소했다. 촉촉하게 젖은 눈빛, 사람을 미치게 하는 그의 행위에 얼굴을 붉힌 한현진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강한서가 낮게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현진아, 내가 왜 한복 입은 네 모습을 좋아하는지 알아?”강한서가 내뱉은 숨소리에 한현진은 목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쩐지 머리도 어지러운 것 같은 기분에 그녀가 되물었다. “왜 좋아하는데?”강한서는 한현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귓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입맞춤은 마치 물 위에 떨어진 먹이 순식간에 퍼지듯 그녀의 귓불은 순간 빨갛게 물들였다. 그는 다른 한 손을 뻗어 한현진의 목덜미를 감쌌다. 슬며시 한현진의 피부를 매만지며 그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넌 부끄러워할 땐 이렇게 귓불부터 여기까지 빨갛게 물들거든. 연기력이 아무리 좋아도 남자 배우들과 촬영할 땐 표정은 마치 진짜처럼 연기할 순 있어도 여긴 빨개지지 않아. 하지만 나와 있을 땐 이렇게 달아오르잖아.”잠시 말을 멈춘 강한서가 다시 강조하며 말했다. “나와 있을 때만.”그는 한복을 입은 한현진의 모습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에게만 진심이라는 사실을 계속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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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3화

한현진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강 대표님, 연구원이시니까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계시겠죠? 정확하게 작성하셔야지, 데이터를 위조하시면 어떡해요?”입을 파르르 떨던 강한서가 냉소 지었다. “또 헛소리하면 비교 실험을 진행해서 데이터를 다시 한번 수집할 거야.”그 말에 한현진은 비록 입을 꾹 다물었지만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깜박거렸다. 강한서는 손을 뻗어 한현진의 눈을 막고는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눈 감고 잠이나 자.”피식 웃음을 흘린 한현진이 강한서의 팔을 베고 그를 꼭 끌어안았다. 의식이 흐릿해지며 잠이 들려던 그때, 한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한서가 한현진를 톡톡 두드렸다. “왜 무음으로 안 해 놓은 거야?”“깜빡했어.”휴대폰을 가져온 한현진이 무음 모드로 전환하려던 그때, 주강운이 그녀에게 카톡을 보내왔다.[현진 씨, 정설희 씨 알아요?]메시시지 아래에는 사진이 한 장 있었다. 문자를 확인한 한현진이 갑자기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란 강한서가 눈을 뜨고는 물었다.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주 변호사님이 어릴 적 친구에 관해서 물으시네.”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친구인데 이 저녁에 너에게 묻는 거야?”한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어봐야겠어.”주강운이 보낸 사진 속 여자 아이의 이름이 바로 정설희였다. 한현진의 대학 동기였다. 대학교 시절엔 꽤 사이가 좋았었다. 청순한 외모의 정설희는 대학교 3학년이 되던 그해, 한 제작사의 눈에 띄어 로맨스 한 편을 찍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정설희는 여러 드라마에 캐스팅되었고 당시 제일 핫한 라이징스타가 되었다. 바쁜 스케줄과 일을 시작하면서 겪은 심경의 변화로 인해 점차 연락이 줄었지만 연락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었다. 드라마로 인한 인기는 순식간에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그 인기는 곧 거품처럼 사라졌다. 정설희의 소속사는 수익을 위해 전부 비슷한 느낌의 대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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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4화

“...”한현진이 강한서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답장을 하는 거야?”강한서가 한현진을 품에 꾹 누르며 말했다. “너 전에 나한테 약속했던 거 잊었어?”“뭘?”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강한서가 말했다. “내 내연녀에겐 네가 대신 답장하고 네 내연남에겐 내가 대신 답장하기로 했잖아.”한현진이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강운 씨는 내 내연남이 아니야.”강한서가 냉소 지었다. “그럼 송가람은 내 내연녀라는 거야?”한현진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힐끔 한현진을 쳐다본 강한서는 갑자기 휴대폰을 한현진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시선을 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 말은 못 들은 거로 해. 네가 해, 답장.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 너에게 상처 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네가 날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내가 주제도 모르고 내가 널 믿는 것처럼 너도 날 믿어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였어.”말을 마친 강한서는 몸을 돌려 한현진을 등졌다. 덤덤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서 전화 받아.”“...”한현진에 대한 질책은 단 한마디도 없었지만 말하면 할수록 그가 점점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한현진은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녀는 강한서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 안 믿은 거 아냐.”강한서는 말이 없었다. 한현진이 또 말을 이었다. “네가 방금 보낸 메시지 좀 봐. 너무 예의가 없잖아. 내 말투가 전혀 아니라고.”강한서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려 하지 않았다. 이를 악문 한현진이 휴대폰을 강한서에게 건넸다. “내가 답장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잖아. 자, 휴대폰.”강한서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굳이 내가 답장하고 싶어서 널 강박하려는 게 아니야. 네가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돼.”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대표님. 비꼬지 마. 봐. 네가 보고 답장하면 될 거 아냐?”좋은 건 안 배우고 가스라이팅으로 사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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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5화

강한서는 아무 말없이 사진을 확대했다. 주강운이 보낸 건 정설희의 최근 사진인 것 같았다. 누런 피부에 거친 머리결, 움푹 들어간 눈덩이와 툭 튀어나와 보이는 광대까지. 누가 봐도 초췌한 모습이었다.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강한서는 은연중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말이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강한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현진아. 만약 강운이가 물어볼 게 있다고 만나자고 하면 깔린느로 찾아오라고 해. 둘이 따로 밖에서 만나지 말고. 언제 강운이를 만나든 꼭 네가 잘 알고 익숙한 곳에서 만나. 아니면 박 비서와 같이 가.”한현진이 입을 삐죽였다. “난 박 실장님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송가람과 동창인 데다 사이도 꽤 좋아보이던데.”강한서가 웃음을 흘렸다. “민준이를 믿어.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을 네 곁에 붙였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입술을 짓이기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알겠어.”한현진의 휴대폰을 가져간 강한서가 주강운에게 답장했다. [할 얘기 있으면 내일 다시 해요. 제가 피곤해서요.]주강운이 답장했다. [네.]휴대폰을 침대 협탁에 올려둔 강한서가 한현진을 끌어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꾹 눌렀다. “이제 자.”한편. 시선을 내려 대화창을 한참 내려다보던 주강운이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을 들어 올렸다. 한 클럽의 룸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어두운 불빛 아래 많은 사람이 자리에 있었다. 남녀가 뒤섞인 사진 속, 정설희는 카메라와 제일 가까운 곳에서 브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사람들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는 주강운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강한서였다. 사진이 촬영된 시간은 6년 전이었다. 주강운은 사진을 서류봉투에 넣었다. 그리곤 다른 자료들과 함께 서류 가방에 넣었다. 다음날 대학 동기의 그룹 채팅방에는 정설희가 입원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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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6화

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또 문자를 보냈다. [내일 내가 데려다줄게.]한현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외적으론 넌 아직도 기억상실이거든. 자제 좀 해. 내일 주 변호사님도 병원에 있을 것 같아. 넌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야.]정설희의 부활은 만약 주강운이 한현진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면 뭔가 또 다른 음모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일부러 한현진을 유인하려는 수작일지도 몰랐다. 동기들과 함께 가기로 했으니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강운의 목표가 자신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그녀의 예상대로 함정이라고 해도 지금의 상황에선 주강운은 그녀에게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다.오히려 강한서가 병원에 간다면 한현진이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그는 아직 기억을 잃은 척 해야 했다. 변변찮은 강한서의 연기력으론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 지 몰라도 주강운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한현진의 고집을 꺾지 못한 강한서는 결국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똑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송가람이 서류를 한가득 안고 들어왔다. 그녀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진 씨. 현진 씨가 사인해 줘야 할 서류들이에요.”한현진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가져와요.”서류를 한현진 앞에 올려둔 송가람은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한현진의 사무실 책상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위에는 책 한 권도 없었고 그저 노트 하나와 연필 하나가 전부였다. 노트에는 뭔가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송가람이 슬며시 걸음을 옮겨 뒤꿈치를 살짝 들고 힐끔 노트를 훑었다. 내용을 확인한 송가람이 눈썹을 씰룩였다. 노트에는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고 거북이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송가람은 또 힐끔 한현진의 컴퓨터 화면을 훔쳐보았다. 그녀의 모니터에는 지뢰 찾기 게임이 켜져 있었고 게임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먹다 남은 과일이, 종이 위에는 뱉어놓은 과일 씨가 잔뜩이었다. ‘엄마는 이런 병 X 같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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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7화

송가람이 화를 내며 물었다. “한 대표님께서 사인하지 않으셔서 계약을 위반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요?”“이 계약을 책임졌던 사람이 지셔야죠. 경력이 몇 년인데, 출하일 하나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이 계속 말을 이으려고 하자 한현진이 손을 가로저었다. “송 팀장님, 다른 일 없으면 먼저 나가보시죠.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어요.”송가람이 끓어오르는 화를 꾹 눌러 참았다. 그녀는 결국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계약서를 손에 든 채 사무실을 벗어났다. 송가람이 사무실을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서해금이 그녀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지 않은 한현진은 휴대폰 벨소리가 끊긴 후에야 휴대폰을 들어 송병천에게 전화했다. “아빠, 재밌으세요?”잔뜩 흥분한 송병천은 이틀 사이 있었던 일을 한현진에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회포를 다 풀고 나서야 송병천이 말했다. “현진아, 나중에 네가 오면 아빠와 스쿠버다이빙하러 가. 열대어 구경도 하고 말이야.”한현진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전 스쿠버다이빙할 줄 모르잖아요.”“아빠가 가르쳐줄게. 엄청 쉬워.”잠시 말을 멈춘 송병천이 한현진에게 물었다. “회사에선 요즘 좀 어때? 일은 할 만 해?”“괜찮아요. 저 첫출근하던 날 아주머니 비서께서 일부러 회사 전직원을 로비로 불러 모아 절 직원분들께 소개해 줬어요. 다들 잘 챙겨주세요.”송병천이 멈칫했다. “성 비서가 전직원을 불러 로비에서 널 맞이했다고?”“그렇다니까요. 아주머니께서도 참,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지.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있다가 조금 뻘쭘했 거든요.”송병천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 역시도 사업가였으니 한현진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송병천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어 나락으로 보내는 건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작이었다. 한현진이 원하는 건 바로 송병천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었다. “얘기는 이쯤 해요, 아빠. 재밌게 즐기시고 돌아오실 땐 잊지 말고 전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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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8화

송가람은 비록 조향팀의 부장이 아니었지만 회사 대표인 서해금의 딸이었다. 서해금이 송가람을 회사의 제일 중요한 핵심 부서에 입사시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송가람이 바로 조향팀의 세 번째 부장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송가람이 퇴근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사람도 감히 퇴근할 수 없었다. 조향팀은 업무 특성상 바쁠 땐 새벽까지 야근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가할 땐 휴가를 보내고 돌아와서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설 연휴 후엔 대부분 공장이 출하일을 맞추기 위해 한창 바쁜 시기였고 조향팀은 상대적으로 한가한 편이었다. 하지만 직장인의 퇴근 시간은 대부분 직장 상사에 맞추는 것이 기본이었다. 특히 송가람처럼 새로 온 상사일수록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으니 더 눈치를 봐야 했다. 상사보다 먼저 퇴근했다가 괜히 불똥이 튀어 나중에라도 흠잡을 핑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송가람은 8시가 지난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야근했다. 2팀의 몇 명이 먼저 퇴근한 것을 제외하면 조향팀 전 직원 대부분이 회사에 남아있었다. 송가람은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심지어 서류를 비서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복사해서 나눠줘요. 시간 있을 때 작성하셔서 내일 아침 제출하세요.”자리에 있던 직원들이 어리둥절해졌다. 송가람의 비서에게서 양식을 건네받은 직원들은 턱, 말문이 막혔다. 얼마나 중요한 업무인가 했더니 직원의 신상 정보를 작성하는 양식이었다. 작성할 내용은 이력서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고 그동안의 이력을 보겠다는 것이 주요한 의도였다. 이제 막 팀장을 맡은 송가람이 직원들의 기본 정황을 알아보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송가람은 인사팀에 부탁하면 그만인 자료를 굳이 새로 작성하라고 했다. 심지어 수기로 말이다. ‘이제껏 야근한 이유가, 고작 이딴 것 때문이라고?’‘서 대표님 딸이라는 인간이 다른 건 모르겠지만 처세만 봐서는 대표님보다 훨씬 뒤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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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9화

“두 사람 내 말 듣고 있어?”카드를 섞은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한 장 뽑으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강민서의 말에 대답했다. “애쓰네.”강한서가 한현진에 손에 들린 카드를 쓱 훑더니 한 장 뽑았다. 카드를 확인하니 그의 손에 있는 카드와 맞는 짝이 없었다. 한현진이 순간 흥분하며 말했다. “계좌 이체, 계좌 이체.”강한서는 손에 들린 스페이드 A를 꼭 잡고 미간을 찌푸렸다. “너 혹시 나 몰래 카드 바꿔치기한 거야?”강민서가 목소리를 높였다. “송가람이 지금까지 야근했다니까. 아직도 게임이 하고 싶어?”이번엔 강한서와 한현진 모두 그녀를 무시했다. 한현진은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뭐야,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거야?”강한서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했다. “내 휴대폰 줘. 계좌 이체해 줄게.”한현진이 얼른 몸을 일으켜 충전 중인 휴대폰을 가져왔다. 그러자 그녀가 엉덩이에 깔고 앉았던 하트 3 한 장은 순간 몸을 숨길 곳을 잃고 말았다. 그 카드를 가져온 강한서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카드 게임마저 밑장빼기 하는 거야?”보기 좋게 증거물을 들킨 한현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1억만 보내도 돼.”강한서가 한현진을 노려보았다. “일원 반 푼어치도 없어.”한현진이 높은 소리로 강한서를 불렀다. “여보.”강한서가 말했다. “200만 원.”한현진이 또 그를 불렀다. “오빠.”“2000만 원.”“우리 여보 최고! 우리 여보가 돈 보내주면 난 여보랑 같이 잘지.”강한서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알겠어. 주면 되잖아.”강민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주방으로 들어가 칼을 가져오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벼락 맞아 죽을 커플.’‘강한서 머리로는 여우 같은 한현진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두 사람이 장난을 멈추고 나서야 강한서는 드디어 강민서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말했다. “너 민 실장과 데이트한다며? 여기서 서서 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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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0화

강한서가 고개를 들었다. “뭔데?”한현진이 카드를 정리하며 말했다. “나 수능 보던 날, 마침 유현아도 고등학교 진학 시험이었거든. 난 그때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고 2주에 한 번, 어떨 때는 3주에 한 번 정도 집에 갔었어. 학교에서 대부분은 시간을 공부하면서 보냈던 터라 집에 갈 땐 그냥 쉬고만 싶어서 아무 학습지도 가져가지 않았거든. 하지만 유현아는 아니었어.”유현아는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 참고서와 학습지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왔었다. 식사를 끝내고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 학습지를 풀어고 매일 아침 날이 밝으면 그녀의 방에서는 단어를 외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현아는 유상수에게 한현진을 따라 배워 꼭 한주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 유현아의 모습에 유상수는 입이 귀에 걸려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이번엔 또 전교 몇 등을 했다며 자랑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한현진에 대해서는 유상수가 하는 말은 늘 똑같았다. “방학만 되면 놀 생각만 하지 학습지는 가져오지도 않아.”물론 처음엔 반박하던 한현진도 나중에 그저 그러려니,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명은 열심히 노력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놀기만 했으니 시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험이 성적이 나오자 유상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기만 하던 아이는 수능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고 열심히 노력하던 아이는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유현아는 유상수가 인맥을 동원해 뇌물까지 쥐여주며 겨우 입학시킬 수가 있었다. “정말 노력하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굳이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 그런 사람은 오히려 조용하게 자기 할 일에만 집중해. 성공하지 못할까 봐, 괜히 웃음거리가 될까 봐. 책 한 권을 봐도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게 유난인 사람일수록 보여주기식인 경우가 많아. 그냥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다는 걸 나타내려는 거지.”송가람의 인스타그램은 전부 강한서에게 보여주기 위해 업로드한 것이다. 의도부터가 불순하니 한현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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