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의 모든 챕터: 챕터 1631 - 챕터 1640

2287 챕터

제1631화

한현진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녀는 멍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송민준은 침대 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한현진의 발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차미주는 멀지 않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한현진은 고개를 돌려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등불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꿈속의 어두컴컴한 모습이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가 아파져 왔고 뼈 사이사이로 한기가 느껴졌다. 창가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송민준을 보며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오빠.”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한현진마저도 깜짝 놀랐다. 잔뜩 쉰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마치 썩은 풀물질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마침 그 목소리에 송민준은 움찔 행동을 멈추더니 휙 고개를 들었다. “현진아, 깼어? 어때?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아파? 목은 안 말라? 배는 안 고파?”송민준은 잔뜩 흥분해 횡설수설하기까지 했다. 잠깐 졸고 있던 차미주도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그녀는 하마터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현진아. 드디어 깨어났어. 정말 깜짝 놀랐잖아.”한현진은 목이 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차미주는 얼른 컵을 건넸고 한현진은 두 모금 마시더니 컵을 옆으로 밀었다. 송민준이 다정하게 말했다. “먼저 좀 쉬고 있어. 내가 의사 불러올게.”그러나 한현진이 송민준을 불러세웠다. “오빠, 강한서는요? 강한서는 어떻게 됐어요?”송민준이 고개를 숙이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너보다 많이 다쳐서, 군도 쪽으로 보내졌어.”한현진의 입술은 새하얗게 질려있어 너무도 허약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강단 있게 빛났다. 한현진은 송민준을 몇 초간 빤히 쳐다보더니 곧 차미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차미주는 송민준처럼 연기력이 좋지 않았다. 마음에 찔린 그녀가 한현진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했다. “민준 오빠, 현진이랑 잠깐 계세요. 제가 가서 의사 부를게요.”말을 마친 차미주가 도망쳤다. 한현진의 시선이 다시 송민준에게 향했다. “오빠, 내 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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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2화

어떤 일은 감추느니 차라리 얘기하는 편이 더 나았다. 지금 한현진을 속이더라도 나중에 그녀가 알게 되면 그들을 원망할 것이었다. 송민준은 눈을 감고 한현진의 어깨를 감쌌다. “현진아, 진정하고 내 얘기 잘 들어. 강한서... 아직 못 찾았어.”한현진이 순간 발버둥을 멈췄다. 그녀는 로봇처럼 고개를 돌려 송민준을 쳐다보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못 찾았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송민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떨어졌었던 그 강, 인양대가 이미 두 번이나 찾아봤지만 한서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어. 인양대가... 인양대가 그러는데, 다른 곳으로 떠내려갔을 가능성이 있대. 지금은 수색 범위를 넓혀서 찾고 있지만 이미 세날이나 지났어...”‘아직도 살아있을 리가 없어.’뒤의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한현진의 얼굴이 잠깐 사이 핏기가 싹 가셨다.송민준은 한현진이 정신없이 통곡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범인은 찾았어요?”송민준이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바로 발견됐어.”잠시 멈칫하던 송민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미 죽어있었어.”그 말은 결국 강한서는 아직도 찾지 못했으니 아마 희망이 적다는 뜻이었다. 수영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한현진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갑자기 울지도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필 그 냉정함이 송민준을 불안하게 했다. 한참 만에야 한현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와 강한서는 강의 상류에서 오랫동안 멈춰있었어요. 범인도 찾았는데 왜 강한서는 찾지 못한 거예요?”그 말에 송민준이 멈칫했다. 그 점은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인양팀의 경험이 많은 한 수색대원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익사한 후 일반적으로 3일에서 7일이 지나야 수면으로 떠오른다고 했다. 겨울엔 그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수 있고 상하류에 진흙이 많아 무엇인가에 걸려 강 밑으로 가라앉았을 수도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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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3화

의사가 놀라며 물었다. “어떤 증상이 있나요?”송민준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증상을 들은 의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가족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현진 씨는 더 잘 이겨낼 수도 있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가족분들이 옆에 함께 있어 주셔야 해요.”송민준은 걱정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현진은 강한서가 살아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매일 시간 맞춰 끼니를 먹고 적극적으로 재활 치료를 했다. 그리고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친구가 병문안을 와도 한현진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곁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불안해졌다. 그러나 아무도 한현진에게 감히 강한서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직 한현진만이 매일 송민준에게 사람 찾는 일은 어떻게 됐는지 물을 뿐이었다. 차미주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이틀 전 강에서 강한서의 시계와 구두 한 쪽을 찾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거의 확인할 수 있었다. 사, 오십 명에 달했던 인양팀도 강씨 집안에서 철수시켜 이제 여섯, 일곱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비록 한성우나 주강운 같은 친구들이 따로 적지 않은 사람을 고용해 계속 수색하고 있지만 강씨 집안의 행보는 이미 충분히 그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들도 이미 강한서가 익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계속 수색을 이어가는 것은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르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이고 그다음은 살아남은 가족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한현진은 수색 결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집스레 누군가가 강한서를 구했고 어느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미주는 속상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강한서의 죽음이 속상했고 한현진이 충격으로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한현진은 그런 차미주의 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틈이 나면 대본을 보거나 심지어 기사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한현진은 유현아가 사망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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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4화

주강운은 유머 있는 말로 듣는 사람을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미주는 주강운이 눈에 거슬렸다. 주강운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한 강한서와 강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일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는 한현진을 떠올리기만 하면 차미주는 주강운에게 호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주강운을 보자마자 차미주는 바로 고개를 돌려 들어가 버렸다. 머뭇거리던 주강운은 차미주를 따라 들어오며 손을 들어 문을 닫았다. “현진 씨.”주강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현진의 이름을 불렀다. 멈칫하던 한현진이 고개를 들어 주강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주강운은 오늘 연한 회색의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한현진도 강한서에게 사준 적이 있는 옷이었다. 비슷한 체형에 한현진은 순간 멍해졌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오늘은 좀 어때요?”주강운의 말은 순식간에 한현진을 환상 속에서 끄집어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감정을 추스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많이 좋아졌어요. 강운 씨 일도 바쁠 텐데 일부러 올 필요 없어요. 저 며칠 있으면 곧 퇴원이에요.”“사무실 여기서 가까워요. 가는 길에 들르는 것뿐이에요.”주강운은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책 두 권을 한현진에게 건넸다. “지난번에 현진 씨가 말했던 책 가져왔어요.”한현진이 손을 뻗어 책을 받았다. 그녀의 손 마디마디는 아직도 빨갛게 부어있었다. 동상으로 인해 남겨진 흔적이었다. 멈칫하던 주강운은 한현진에게 건네던 책을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았다. “손 아직 아파요?”손의 상처를 보며 한현진이 떠올린 것은 마지막 힘을 짜내 어떻게든 자신을 살리려 고정해 주던 강한서의 모습이었다. 강한서는 분명 한현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현진이 주먹을 움켜쥐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안 아파요.”속삭이듯 내뱉은 그 말은 어쩐지 주강운에게 대답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강한서에게 하는 말 같았다. “오늘 날씨 좋은데, 나가서 좀 걸을래요?”한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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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5화

한현진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대화 주제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한현진이 물었다. “할머니는 어떠세요?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요.”주강운이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요즘 몸조리하고 계세요. 아직 사람을 만나실 수는 없대요.”주강운과 한성우는 강한서가 사고를 당한 후 몇 번이나 강한서의 본가로 갔었다. 매번 그들을 반긴 것은 신미정이었고 매번 변명도 똑같았다.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한서에게 사고가 난 후 당연히 그를 걱정해야 하는 가족들은 수색 상황엔 관심도 없으면서 오히려 저택에서 정인월만 지키고 있었다. 그 상황은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해 주었다. 그건 바로 강씨 집안에 변고가 생겼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앞날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이나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낸 후 한현진이 입을 열었다. “강운 씨, 컵 가져다주시겠어요? 목이 좀 말라서요.”주강운은 한현진의 외투를 여미었다. “조금 뜨거운 것도 괜찮아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강운이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이때 차미주는 한성우와 통화하며 주강운의 흉을 보고 있었다. “말이 돼? 강한서가 사고를 당하자마자 현진이에게 와서 왜 다정한 척하고 인심을 베푸는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 기회를 노리겠다는 거야?”한성우는 전처럼 차미주와 함께 상대방을 욕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직접 한현진에게서 주강운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강한서도 놀라지 않는 눈치였었다. 눈치가 있다 자부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사실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쪽으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강한서가 아직 살아있다면 뭐라고 귀띔이라도 하겠지만 지금 강한서는 없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였다. 그가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한 말 듣고 있어?”한성우가 아무 말이 없자 차미주가 작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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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6화

CCTV에는 한현진이 병원 입구를 나간 뒤 인파 속으로 사라진 모습이 찍혀있었다. 한현진이 실종되었다. 휴대폰도 두고 심지어 환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렇게 병원을 벗어났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송민준은 주강운을 보자마자 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송민준은 이를 악물고 호통쳤다. “너 이 새끼, 현진이한테 무슨 얘기를 한 거야?”송민준이 있는 힘을 다해 주먹으로 내리쳤던 탓에 주강운은 뒤에 있던 선반에 부딪히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깜짝 놀란 차미주가 얼른 앞으로 달려와 송민준을 말렸다. “민준 오빠, 이번 일은 주 변호사님 탓이 아니에요. 현진이는 아마 이 문자를 받고 나간 것 같아요.”말하며 차미주는 한현진의 휴대폰을 송민준에게 건넸다. 변호사 측에서 보내온 문자였고 한현진에게 약속한 날짜에 참석해 강한서의 유서를 읽으라는 내용이었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유산 상속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자는 어젯밤 보낸 것이었고 문자 화면은 줄곧 켜져 있는 상태였다. 한현진은 몇 번이고 문자를 곱씹어 보았다. 너무도 냉정했던 탓에 차미주는 전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차미주는 죄책감이 드는 동시에 화가 났다. “이 변호사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아직 사람을 찾지도 못했는데 왜 이런 문자를 보내?”주강운은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강씨 가문에서 한서의 사망 신고를 하러 간 것 같아. 유언 공증처에서는 그 소식을 알고 한서의 유언에 언급된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한 거겠지.”차미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 집 인간들은 미친 거야? 강한서가 실종된 지 이제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급히 사망 신고를 해?”송민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강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한현진은 강한서가 죽지 않았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강한서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강한서가 한현진을 주요 상속인으로 지정했으니 한현진의 성격에 무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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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7화

9인승 승합차가 길 내내 흔들리고 있었다. 엔진 오일 냄새와 여러 음식 냄새가 섞여 멀미를 안 하던 사람도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여자는 18개월이 조금 넘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기가 너무 울고 있어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어떤 사람이 바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만 좀 울 수 없어? 시끄러워 죽겠네.”아기 엄마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최대한 가리며 조심스레 옷을 벗어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불편한 듯 시선을 돌렸고 또 어떤 사람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젊은 여자라 품에 안은 아이는 그녀의 첫아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주변 사람의 반응에 그녀는 창피함을 느껴야만 했고 따라서 눈시울도 붉어졌다. 바로 그때, 아기 엄마의 어깨 위로 옷 한 벌이 걸쳐졌고 공공장소에서 젖을 물리고 있던 여자의 수치심을 덜어줬다. 움찔하던 아기 엄마는 고개를 돌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옆에 앉아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평범한 차림의 여자는 주변 사람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자 아래에 반짝이는 예쁜 두 눈이 어두운 눈빛을 하고 있어 생기가 없을 뿐이었다. 여자는 그저 조용히 옷을 아기 엄마의 어깨에 걸쳐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행동 하나에 아기 엄마의 마음은 따뜻해졌다. 아기 엄마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무명지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어루만졌다. 배를 채운 아기가 드디어 조용해졌다. 엄마 품에 안겨 동글동글한 눈을 뜬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관찰했다. 아기 엄마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는 한현진에게 돌려주었다. 반지를 어루만지는 행동을 본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결혼하셨어요?”한현진이 “네.”라고 대답했다. ‘하려고 했었죠.’“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아기 엄마가 또 물었다. 한현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가 느닷없이 질문한 것 같아 아기 엄마가 먼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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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8화

한현진은 갑자기 동해에서 생일을 보냈던 그날 밤, 자신이 강한서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강한서가 35살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었다. 너무 늦어지면 아이의 학부모회에 지팡이를 짚고 갈 수밖에 없다며 말이다. 강한서는 한현진이 험한 말을 한다며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한현진과의 아이가 있고 난 뒤의 삶을 상상했다.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모든 동경이 새해 첫날 전부 끝나고 말았다. 그녀와 함께 미래를 그리던 사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그 강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슬픔은 소리 없이 조용하게 다가왔지만 마음속에는 폭풍우가 내리고 있었다. 한현진은 눈을 감더니 한참 만에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남편은... 사라졌어요.”그 말에 멈칫한 아기 엄마는 사라졌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싸워서 연락이 안 된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여자와 도망간 건가?’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한현진이 말을 이었다. “물에 빠졌어요. 12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고요.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해요. 변호사 측에서도 어젯밤 저에게 유언을 읽으러 오라는 문자를 보냈고요.”한현진이 이런 대답을 할 줄은 몰랐던 아기 엄마가 순간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기 엄마가 나지막이 위로를 건넸다. “유언에 아내를 적다니, 정말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네...”한현진이 중얼거렸다. “사랑하죠...”늘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진심은 마음 깊숙이 숨기는 사람이었다. 강한서보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한현진을 가엽게 여긴 아기 엄마가 한현진을 위로하며 말했다. “유호촌 산에 절이 하나 있어요. 거기서 어느 신을 모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영험하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저희 시아버지께서도 간암을 진단 받으셨는데 저와 시어머니가 그곳에 가서 하루빨리 낫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며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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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9화

주강운은 버스를 타고 왔지만 한현진은 카드도 없으니 차를 얻어 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주강운보다 늦게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주강운은 어르신 댁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어르신은 집에 손님이 오자 매우 기뻐하며 주강운이 있을 곳을 마련해주고 음식을 해주기도 했다. 온통 한현진 걱정으로 가득 찬 주강운은 매일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주강운은 어르신 댁에서 이틀이나 있었지만 한현진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그는 악몽에서 벌떡 깨어났다. 그동안 주강운의 꿈은 늘 꺼지지 않는 불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날 그의 꿈속에 나타난 것은 한현진이 망설임 없이 강한서를 따라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었다. 주강운은 식은땀을 흘리며 번쩍 눈을 떴고 머리 위의 낡은 신문을 빤히 쳐다보다 한참 만에야 서서히 꿈속에서 빠져나왔다. 이미 3일이 지났다. 어떻게 오든 3일이면 도착해야 했다. 아니면 애초부터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주강운은 짐을 정리하고 어르신께 인사하러 갔다. 어르신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젠 연세가 많아 잠이 적어지셔서 깨어나면 다시 잠이 들기 어려웠다. 그러니 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에 산책하러 가신 것이다. 주강운은 이곳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워낙 잘생기고 부드러운 이미지인 데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말투 덕에 며칠 만에 이웃들은 그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르신을 찾는다는 말에 이웃들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주강운은 곧 마을 회관 마당에서 다른 사람이 운동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어르신을 발견했다. 어르신에게로 다가가려는데 운동을 마치고 쉬고 있던 할머니들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며칠 전 절에 향을 피우러 갔다가 또 누가 그 산길로 올라가는 걸 봤어. 아이고, 깜짝 놀랐다니까. 그렇게 좁은 길을 대체 간이 얼마나 커야 갈 수 있는 거야.”“다른 지역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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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0화

가짜 스님이 깜짝 놀라며 부인하려 했다. “전... 전 그쪽이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악!”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팔이 비틀어졌다. 찌릿하게 전해지는 고통에 가짜 스님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두 번 묻게 하지 마.”차디찬 목소리에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아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람을 속여 사기나 치는 놈에게 호기로운 모습 같은 건 없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전부 이실직고했다. 3일 전, 여자 한 명이 절에 향을 피우러 오긴 했었다. 평범한 옷차림에 얼굴을 꽁꽁 감추기는 했지만 손이 큰 여자였다. 헌금을 한 번에 몇십만 원씩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헌금을 한 후 바로 돌아갔지만 그 여자는 오래도록 꿇어앉고 일어나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어려운 일에 처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의 돈일수록 사기 치기 쉬운 법이었다. 그러니 가짜 스님은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계속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산꼭대기에 왕생석이라는 돌에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꺼내고 나서야 여자는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며 그에게 그 돌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을 너무 많이 봐 온 가짜 스님은 그런 사람의 돈을 사기 치는 일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한현진은 가지고 있던 현금은 물론 하고 있던 목걸이까지 전부 그에게 줬다. 가짜 스님은 한현진 손가락에 끼워진 다이아 반지를 탐냈지만 그것만큼은 한현진은 죽어도 주려 하지 않았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 가짜 스님을 노려보는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에 그는 움찔 몸을 떨었다. “본... 본인이 주고 싶어서 준 거예요. 제가 훔친 것도 뺏은 것도 아니라고요. 고집스레 꼭 어떻게 올라가냐고 알려달라고 했어요. 제가 위험하다고 얘기했지만 듣지도 않고...”“그래서?”“그래서라뇨? 나중의 일은 저도 모르죠. 다만… 다만 내려온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앞장서.”굳은 얼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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