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명의 왕비 / Chapter 3001 - Chapter 3010

All Chapters of 명의 왕비: Chapter 3001 - Chapter 3010

3033 Chapters

제 3001화

하지만 원경릉은 그런 이리봉청을 달랠 수 밖에 없어 자리에 앉아 우선 베개를 꿰매기 시작했다.베개에는 땟국물이 얼마나 절었는지 바늘도 잘 안 들어가고 안에 들어있는 솜은 옅은 검푸른 색으로 더러워져 있었다.이리봉청은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원경릉이 베개를 꿰매는 걸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베개를 보는 눈빛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의 눈빛으로, 그저 한없이 바라보며 손을 반쯤 허공에 두고 있었다. 원경릉은 바늘을 찌를 때 혹시라도 아이가 다칠까 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이리봉청을 보니 부드러우면서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리고손을 뻗어 베개를 쓰다듬었다. “아가, 내꺼.”“네, 알아요!” 원경릉은 가슴이 쓰라렸다. 천천히 꿰매느라 베개 전체를 한 바퀴 돌아가며 다 꿰매고 동작은 최대한 느리게 했다. 이리봉청과 같이 앉아 있을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만들어 두어 마디라도 더 하려고 했다.원경릉은 흥분했다. 전에 가정했던 것을 전부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이리 봉청과 이리 나리의 철천지원수를 갚을 수 있고 모자도 상봉할 수 있다. 진정한 상봉 말이다.이런 생각에 미소가 번지는데 원경릉의 미소가 꽤 따스했는지 이리봉청은 이제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듯 했다. 조금씩 원경릉 곁으로 다가오더니 더이상 베개를 뚫어지게 노려보지 않았다. 그렇게 안심하고 원경릉에게 진심을 보여주었다. 이 베개는 이리봉청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제나 보배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유일한 버팀목이되었다. 그런 물건에서 손을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리봉청이 원경릉에게 가지는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이건 아마 원경릉이 이리봉청의 과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텔레파시란 정말 오묘한 게 아닐 수 없다.원경릉은 베개를 다 꿰맨 뒤 이리봉청에게 건네주자 이리봉청은 기쁘게 받아 들고 품에 꼭 끌어안으며 원경릉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원경릉은 순순한 그녀의 미소를 보니 가슴이 쥐어짜듯 아파와 눈물이 차오르는 걸 멈출 수가 없
Read more

제 3002화

하지만 이리 나리는 여전히 고통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고집스럽게 이리봉청을 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은 오히려 이리 나리를 안심시켰다. 지금 이 순간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니…!하늘이 불쌍히 여겨 살려두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리 나리 목에 흐르는 선혈을 보고 이리봉청은 조금 정신이 들었다. 미쳐 날뛰던 것이 조금씩 잦아들고 피비린내를 맡자 막연한 의문의 눈빛이 떠올랐다.이리 나라가 천천히 이리봉청을 놔주며 그녀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봤다. 이리봉청의 눈빛에서 망연자실함을 느끼고 이리 나리는 가슴이 미어졌다. 허리를 숙여 베개를 집어 이리봉청의 품에 두자 이리봉청이 꽉 안고 얼른 달아나 의자에 가서 앉더니 아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 우리 아가!”이리 나리는 천천히 이리봉청 앞에 꿇어앉았다. 이리봉청이 손가락으로 베개를 쓰다듬는 것을 보자 눈물이 다시 앞을 가렸다. 가슴에 비통함을 간신히 누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이리봉청이 멈칫했다. 잠깐 정지한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보고 두 손으로 여전히 베개를 꽉 껴안고 놓지 않으면서도 이리 나리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가 천천히 깨지고 있었다.이리봉청은 떨면서 손을 내밀어 이리 나리의 얼굴을 덮었다. 솟아나는 눈물이 차가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이리봉청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그러자 이리봉청은 손을 거두고 손등의 눈물을 한없이 바라봤다.“아가?” 이리봉청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의구심이 든 탓에 눈이 빠르게 깜박였다.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는 베개가 스르륵 무릎에서 떨어져도 신경 쓰지 않고 자세히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는 눈물을 머금으며 방긋 웃어 보였다. 이리봉청이 자기 얼굴을 매만지는 손을 잡고 목이 메어 거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 입니다..!”이리봉청이 두 손바닥을 위로 하고 천천히 펼치더니 뭔가를 껴안는 동작을 취하
Read more

제 3003화

이리나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안 아픕니다!”그제서야 이리봉청이 안도하며 부끄러운 듯 가볍게 웃었다.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이 풀린듯 싶어 시험 삼아 이리봉청의 베개를 가져갔는데, 바로 적의가 가득해지며 이리 나리의 손을 뿌리치더니 얼굴빛이 다시금 냉정해졌다.이리 나리가 살짝 한숨을 쉬더니 일어나서 이리봉청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문호와 원경릉 쪽으로 갔다.세 사람은 산바람이 꽤 거센 쪽에 있어서 옷이 날리며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리 나리는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원경릉에게 물었다. “광증에 걸렸는데 낫게 할 수 있습니까?”원경릉이 대답했다. “천천히 해도 돼요. 서두르지 말고.”“어찌 됐든 낫게 해주시오.” 이리 나리가 굳은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겁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낫게 해주세요.”원경릉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반드시 최선을 다할 겁니다.”이리 나리가 그제서야 조금 안도한 듯 했다. “예, 그럼 전 이제 그녀를 데리고 하산하겠습니다!”원경릉이 이리 나리 손을 붙들었다. “아니요, 우선 하산하지 마세요.”이리 나리가 미간을 찡그렸다. “산꼭대기에 남겨 둘 수 없어요. 반드시 데리고 내려갈 겁니다.”“사부님, 제 말 들으세요.”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짓했다. “자기는 먼저 늑대파 사람을 전부 철수 시켜줘. 적어도 여기 남아있으면 안 돼. 여기는 원래대로 보존해 주고.”우문호은 원경릉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둘이 마저 얘기나눠.”우문호가 내려가며 멸지를 한쪽으로 끌고 가 몇 마디 상의했다.이리 나리는 의혹의 눈길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원경릉은 손수건을 꺼내 이리 나리에게 건넸다. “목에 피부터 닦고 얘기 해요.”이리 나리가 손수건을 받아 대충 닦더니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원경릉을 바라봤다. “아시다시피 뭐라고 하시든 전 그녀를 여기 혼자 남겨 두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집이 있으니까요.”“알아요,
Read more

제 3004화

더 과거로 돌아가 상상해 보자 성루에 매달린 여동생의 시체를 보고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싶었다. 이리 나리는 도망가는 길에 일가가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무슨 힘으로 풍도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전에 한때는 행복한 사람이라 믿었고, 자신을 깊이 사랑하며 깊이 사랑하는 부군 또한 곁에 있었다.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어째서 이 모든 짐이 지워진 것일까?이제와 복수를 한다 한들 이리 나리가 만족할 수 있을까?설령 이리봉청이 36년간 고통받는 게 운명이라고 쳐도, 어찌 연놈들이 36년의 값을 치르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이전에 이리 나리 인생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이리봉청이 곁에 있다. 이리봉청은 3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궂은 비와 찬바람에 자신을 내맡기며 혼자 견뎌왔다. 죄업이 하늘을 찌르는 인간들은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러야 마땅했다.이리 나리가 원경릉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계획을 말해 보시지요.”원경릉은 배수의 진을 치고 굳은 각오로 말했다. “스승님 어머니와 배기가 저주를 옮기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걸 저와 주지 스님이 알게 되었어요. 그때 어머님이 주지 스님께 영석을 깨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주지 스님이 깨트리지 못했죠. 전 36년 전으로 돌아가서 직접 영석을 깰 거예요.”“36년 전으로 돌아간다고요? 만약 영석을 깬다고 해도 국면이 어떻게 바뀌죠?” 이리 나리가 경악했다.“영석의 힘의 일부가 소여쌍의 몸에 남아 있어요. 소여쌍의 몸에 남은 일부 능력은 영석이란 몸체가 없으므로 견디기 힘들어서 소여쌍은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고통을 당하게 되죠.”이리 나리는 마치 물밑에서 공기가 새어 나오듯 원경릉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정말입니까?”“주지 스님의 말에 따르면 확실히 그렇다고 해요.”“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요?”“약간의 위험이 따르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원경릉이 가볍게 말했다.하지만 사실 36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 리스크가 적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저기 이
Read more

제 3005화

원경릉과 우문호은 일단 산에서 내려왔다. 방안이 정해졌으니 원경릉은 최대한 빠른 해결을 위해 얼른 돌아가 안풍 친왕비와 상의하고 싶었다. 안풍 친왕비는 시간을 왕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원경릉은 이번 일의 위험 정도에 대해 우문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반드시 자신이 대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우문호는 뭐라고 입장을 표하기에 애매했다. 본인이 위험한 거면 두말하지 않고 갈 게 틀림없지겠만 이런 상황은 낯설었다. 게다가 본인이 돕지도 못하기에, 그저 두 눈 멀쩡히 뜨고 원 선생이 위험을 무릅쓰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우문호 손을 잡고 위로했다. “우리가 그동안 돌파해 온 난관이 어디 좀 컸어? 이건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냐. 그리고 안풍 친왕비께서도 도우신대. 안풍 친왕 부부께서 현대랑 여기를 얼마나 빈번하게 왔다 갔다 하셨는지 알지? 분명 요령을 파악하고 계실 테니까 안심해.”우문호 본인도 생각해 봤는데, 원 선생을 못 가게 하면 이 일로 괴로워할 게 분명했다. 비단 원 선생뿐 아니라 이 일을 아는 사람이면 모두 괴로워할 것으로, 그 또한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안지여를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풀리지 않을 정도이다. “기왕 당신이 정한거니 가도록 해. 하지만, 이 모든 건 당신의 안전을 전제로 했을 때야. 정말 위험하면 안돼. 우겨도 소용없어!”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 혹시라도 위험하다면 우기지 않을게. 절대 억지로 강행하지도 않기로!”우문호가 원경릉에게 속삭였다. “당신이 성공하고 돌아오길 기다릴게…!”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날리며 눈늑대봉은 점점 뒤로 멀어져 갔다.원경릉은 바로 숙왕부로 안풍 친왕비를 찾아갔다. 이리봉청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주지 스님이 방법을 알려준 것을 얘기하며 협조를 구했다.안풍 친왕비는 이리봉청이 죽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상상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가슴 아픈 것보다 기쁨이 앞섰다. “이리율 인생에 있어 늘 한 가지 미
Read more

제 3006화

안풍 친왕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 그들이 다 현대로 갔으니, 우리가 몸을 빼는 데 성공했던 거야. 그리고 일부 봉쇄가 풀려서 시공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어. 36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고 50년 전 적성루로 그들을 보러 갈 수도, 심지어는 작년, 재작년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심지어 너랑 내가 얘기하는 지금 사방을 잘 살펴보면 미래의 내가 어딘 가에 숨어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원경릉은 그런 생각이 들자 오싹해졌다. “그건 마마께서….”왕비가 웃으며 원경릉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너 지금 내가 이미 그들의 죽음을 겪은 뒤에 시간을 넘어 그들이 아직 죽지 않은 지금으로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마마께서 전에 그렇게 오래 실종되셨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셨으니….” 원경릉은 여기까지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안풍 친왕비는 차를 들고 그윽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런 상황이 반드시 생기겠지. 난 그들을 떼놓지 못해. 평생 동안.”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실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가 있다. 아무리 안풍 친왕비일지라도 예외는 없었다.안풍 친왕비가 한마디 했다. “앞으로 네 황조부 일행이 다 가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뻔질나게 경호를 통해 돌아가서 그들을 살필걸. 어딘가 숨어서 몰래 흘끔 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정 떼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다가오면 어렵단다.”원경릉의 눈시울이 금새 빨개졌다.원경릉은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간 결국 생길 일이며 시간은 조금씩 앞으로 가고 모든 사람은 다 그날을 맞기 마련일 것이다. 안풍 친왕비 말이 맞다. 정 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거의 모든 사람은 이미 가버린 사람을 보러 돌아갈 수 없지만 넌 그런 능력이 있으니 감사해야해.” 안풍 친왕비가 일어나 원경릉의 어깨를 토닥였다. “돌아가 봐, 준비 잘하고 내일 경호로 가자. 36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이리봉청을 살펴봐야지!”원경릉은 마음이 상당이 무거워졌다.사실 원경릉은 앞으로
Read more

제 3007화

경호에 도착한 안풍 친왕은 전서구가 가져온 서신을 읽자마자 낫빛이 어두워졌다. 안풍 친왕비가 이것을 보고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서신을 건네는 안풍 친왕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봐 봐!”안풍 친왕비가 펼쳐 보니 아주 작은 글씨로 몇 줄만 적혀 있는 게 급하게 상황을 보고한 모양이었다. 안풍 친왕비는 다 읽고 크게 화를 냈다. “안지여, 이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옆에 있던 원경릉도 가슴이 철렁해져 얼른 봤다. 다 읽고 나자 그녀 역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신에서는 어떤 대사가 안지여에게 서산의 천문 세가의 묘에 불을 질러 싹 없애면 올해 풍도성에 수해가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과거에 천문 세가 사람이 전부 죽임을 당하던 때 안지여는 사람들의 책망을 받지 않기 위해 가주 신분으로 그들의 시체를 거둬 매장했었다. 자기가 떼죽음을 시켜놓은 것인데, 마치 선행을 베푸는 양 날조했다. 그들을 매장한 지 36년이 된 마당에 갑자기 지금 와서 유골을 몽땅 불태우겠다니..말 그대로 죽은 자의 뼈를 가루로 갈아버리겠다는 것인지, 화가 날 만했다. 이 쓰레기 같은 안지여는 18층 지옥 맨 밑바닥에 떨어뜨려도 분이 안 풀릴 것이다. 이때 안풍 친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섬전위가 그저께 보고했을 때 안지여가 사람을 불러 점을 쳤는데 36년 전 뿌린 죄업의 대가를 올해 받는다며, 안 씨 집안은 인과응보를 받을 거라고 했다는군. 안지여가 천문 세가의 무덤을 불태우는 건 아마 이 죄업을 피하고 싶어서겠지.”안풍 친왕비가 차갑게 말했다. “하늘이 아무리 무심해도 그렇지, 안지여 같이 털끝만치도 양심도 없는 놈을 가만둘 리가 없어요. 그 대사라는 인간이 점은 제대로 맞췄네요. 확실히 그때의 인과응보를 받을 겁니다.”안풍 친왕비가 원경릉을 돌아보는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네가 돌아오면 이리율이 직접 풍도성에 가서 그들을 결판낼 거야. 넌 반드시 성공해야 해.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안지여 놈을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아
Read more

제 3008화

안풍 친왕은 자지 않고 계속 경호를 주시했다. 소용돌이가 변화하는 규칙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는데, 바로 판별할 수 있는 소용돌이도 있었지만, 36년 전인지 확신할 수 없거나 36년 전인 건 알아도 이리봉청이 눈늑대봉에 올라간 시간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었다. 이리봉청이 눈늑대봉에 가기 전이면 그나마 기다릴 수는 있지만, 늦었을 경우엔 도로 아미타불로 경호로 돌아와서 다시 시간 이동을 해야 했다.이건 미래로 가는 것과 달랐다. 미래 영상에는 가끔 시간을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미래를 보면 소용돌이의 변화가 그다지 빠르지 않고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소용돌이도 이렇게 인간 친화적이니 창조주께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원경릉은 도장에 머물면서 안풍 친왕비와 그다지 한담을 나누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어서 과거로 돌아가 영석을 깨트리고 싶을 뿐, 하루가 늦어지니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게 일이 잘못되는 건 아닌가 불안했다.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원경릉도 직접 경호 호숫가에 엎드려서 안풍 친왕과 같이 소용돌이를 봤다.안풍 친왕 눈이 충혈된 것이 밤새 못 잔 게 확연해 보였다. 검은 옷은 입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데 수십 년을 따라다녀도 경호의 기현상을 볼 수 없으니 도울 수 없었다. 가끔 차나 가져다주고 물을 따라주기만 할 뿐이었다.그래도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는 힘이 됐다. 이것이 안풍 친왕 부부가 지금까지 이들을 떼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이때 인풍 친왕이 자신은 보는 걸 책임지고 원경릉이 계산을 담당하자며 제안을 했다. 소용돌이가 변할 때 광경이 변하는데 속도가 하도 빠른 탓에 원경릉이 소용돌이 광경의 변화 속도 및 소용돌이의 각도를 계산하는 것이 더 나았다. 원경릉은 계산에 능통해, 이틀간 계속된 관찰 끝에 마침내 소용돌이의 루트를 집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로 돌아가는지는 확정할 수 없어기에 그 부분은 운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소용돌이 변화는 1분에서 심하면 몇십 초 만에 일어나기 때문에 정확
Read more

제 3009화

원경릉은 해가 뜨기도 전에 눈늑대봉 득랑요에 도착할 것 같아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어쨌든 대낮이어야 정확하게 볼 수 있으므로 원경릉은 서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해가 뜬 뒤 비상식량과 두꺼운 옷을 좀 산 뒤 독랑요로 올라갔다. 시간을 앞당겨 왔으면 원경릉은 독랑요에서 며칠간 잠복하고 있어야 해서 비상식량이 필요했다.독랑요에 도착하니 날씨가 심하게 추웠다. 원경릉은 후각이 굉장히 민감한 상태라 피비린내가 날 경우 맡을 수 있었다.원경릉은 이리봉청이 출산한 곳에 앉았다. 하지만 이곳은 눈만 하얗게 덮여있었을 뿐, 피냄새는 나지 않았다. 확실하게 확인하고자 원경릉은 아래로 한 층을 파 보았는데, 혈액으로 오염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리봉청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원래 계획대로 원경릉은 이곳에서 잠복해야 한다. 며칠이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 왔다갔다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다시 온다고 해도 시간이 지금보다 더 정확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산 아래서 잠복하고 있을까도 생각했으나 산 아래는 보초병들이 있어 눈에 띄지 않으려면 이리봉청은 큰길로 올 리 없었다. 원경릉도 속도가 매우 빨라 보초병의 주의를 끌지 않았기에 몰래 올라올 수 있었다. 어차피 이리봉청이 어디로 올라올지 모르니 여기서 잠복하고 있는 게 만에 하나 실수하지 않는 길이었다.날씨는 정말 추웠다. 원경릉이 북당에 온 지 꽤 됐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은 처음이었다. 산꼭대기는 기온이 더욱 낮아서 사 온 두꺼운 옷도 찬 기운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찬 바람을 막아주고 오는 사람을 숨어서 볼 수 있는 곳을 찾는게 시급했다.원경릉은 최대한 멀리까지 내다보았지만, 온통 흰 설원을 반나절이나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초조해질 뿐이였다.원경릉이 이렇게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며칠 밤을 새우고 잠이 부족한 데다 비극이 일어난 바로 그해에 와 있다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이 든 것 같았다. ‘오늘 풍도성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천문 세가가 다 죽임을 당한
Read more

제 3010화

원경릉은 다시 올라가면서도 잡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바꿨다가 그 결과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았다. 사흘째가 지나고 닷새째가 되자 원경릉은 오히려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한마음으로 이리봉청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그렇다. 제일 참기 힘든 건 처음 며칠일 때이다. 이 순간만 버티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아마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다 비슷할 것이다.여섯째 날은 흐렸다. 아침 일찍부터 북풍이 몰아치더니 독랑요에 일찍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날이 흐리자 원경릉은 흥분됐으나 눈이 내리는 걸 보고 다시 울적해졌다.그날은 추웠지만 눈이 내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일곱째 날,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어 다른 잘 곳을 찾아 폭설을 피하기로 했다.여덟째 날 아침이 되자, 드디어 눈이 그쳤다.원경릉은 독랑요에서 8일을 있었는데 마치 8년이나 지난 기분이 들었다.날씨가 너무 흐려 찬바람이 살을 베는듯한 고통이 있었고, 눈이 상당히 깊이 쌓였다. 원경릉이 원래 있던 곳으로 가자 눈이 거의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눈밭에서 한 발 한 발 발을 빼는데 심장이 벌렁거렸다. 순간 머릿속 영상에서 이리봉청이 산을 오를 때 바로 이렇게 힘들어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종의 예감이 들었다. 이리봉청이 올라온다고 있다는 것! 원경릉은 비상식량을 먹고 눈을 한 움큼 쥐어 입에 넣은 채 바람을 등지는 위치에 앉아 계속 기다렸다.숨어 있는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서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임산부가 힘겹게 눈밭을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걸음마다 힘에 겨운 듯 씩씩거리며 한 손으로 배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검을 지팡이 삼았는데 칼집은 눈에 쌓여 이미 보이지 않았다. 검신이 눈에 비쳐 차가운 빛을 반사했다.하지만 검은 눈에 묻혀 있고 다리를 빼는 것도 검을 뽑는 것도 전부 힘이 필요한데 그녀는 너무 지친 나머지 그럴 수 없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선홍빛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이리봉청은 절망으로 가득차버린 것 같았다.
Read more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