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111 - 챕터 1120

1699 챕터

1112화

여름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나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목소리 들었으니 됐다. 깜짝 놀랐네.”윤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 나가자마자 연회장 엘리베이터가 사고 났어.”여름은 그 말을 듣자 심장이 철렁했다.“무슨 사고?”“엘리베이터가 추락했어. 여기 직원이 남자 하나랑 여자 하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는데 엘리베이터가 20층에서 1층으로 떨어졌거든. 얼마나 소리가 컸는지 몰라.”윤서의 목소리가 떨렸다.“분명 우리 연회에 참석했던 손님일 거야. 난 왜 이렇게 운이 없니? 날 위한 파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지금 경찰이랑 구급대원들이 오는 중이야. 안에 탄 사람들은 죽었을 거야. 그래서 네가 무사한지 확인해 보려고 전화 걸었어. 너랑 유진 씨가 안에 있었다면 난 완전 미쳐버렸을 거야.”여름은 얼이 빠졌다.어쩐 일인지 아까 하준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 때문에 연회장에 왔다고 했었는데.그러면 내가 가고 나면?남아 있었을 리가 없어.설마… 그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을까?’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여름아, 여기 너무 시끄럽다. 일단 무사한 거 확인했으니 됐어.”그러더니 윤서가 전화를 끊었다.여름은 휴대 전화를 꽉 쥐었다. 양유진이 여름의 손을 꼭 잡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이 있나요?”“윤서가 그러는데 아까 우리가 있던 호텔에서 엘리베이터가 떨어졌대요. 우리가 그 안에 있었을까 봐 걱정돼서 전화했대요.”여름은 정신은 다른 데 팔린 채로 대답했다.여름이 말을 들은 양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누가 안에 있었답니까?”“네. 오늘 연회에 참석했던 손님인 것 같대요.”여름이 간신히 대답했다.“아직 누군지는 모르나 봐요. 아직 경찰이 도착하지 않아서 아무도 문을 못 열고 있겠죠.”“어떻게 그런 일이….”양유진이 중얼거렸다.“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네요.”“윤서 말로는 남자 하나랑 여자 하나래요.여름이 말했다.양유진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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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화

‘그 남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신이 되었다고?’여름은 누군가 심장을 확 움켜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머릿속은 하얗게 백지가 되었다.휴대 전화를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섬에 갇혀 있을 때만 해도 너무나 미워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그러나 최하준이 진짜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막상 왜 이렇게도 황망한지….윤서의 톡이 계속 날아왔다.-너, 괜찮아?여름은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톡을 보냈다.-확실해?윤서에게서 답이 왔다.-확실해. 내가 직접 CCTV 확인했어. 최하준이랑 맹 의원 딸이랑 같이 내려갔어. 엘리베이터가 2층쯤 내려가다가 잠깐 멈춰있더니 갑자기 확 떨어지더라고.그 톡이 마치 너무나 낯선 문자로 보였다. 이때 야유진도 톡을 하나 받았다. 확인한 양유진의 동공이 확장되었다.‘맹 의원의 딸이 같이 있었다고?이런 젠장!’그러나 양유진은 직접 손을 댄 게 아니라 아이디어만 제공한 것이라 아무리 해도 자기에게까지 의혹이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맹 의원의 딸이 죽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최하준이 죽기만 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흘끗 옆에서 완전이 멘붕이 된 여름을 흘끗 보았다. 어둠 속에서 양유진의 한쪽 입꼬리가 음험하게 올라갔다.‘최하준이 죽었다는 임윤서의 톡이겠지.늘 말로는 최하준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최하준의 사망 소식을 받은 표정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군.’******차는 다시 호텔 입구로 돌아갔다.여름은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호텔 안으로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가는데 구급대원들도 막 도착했다.다들 1층에 몰려있었다. 윤서는 여름을 보더니 다가왔다.“어떻게 왔어?”“시신은… 수습했어?”여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제 꺼내려고.”임윤서가 한숨을 쉬더니 여름이 손을 잡았다. 여름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좋게 생각해.”“좋게 생각하고 있어. 그냥 전남편인걸. 뭐. 나한테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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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화

여름의 동공이 확 커졌다.하준의 얼굴은 다 타서 재가 된대도 알아볼 수 있었다.‘최하준이야?안 죽었어?’머리가 윙윙 울렸다. 하준이 이쪽을 바라보는데 시선을 피할 정신도 없을 정도였다.그렇게 딱 시선을 걸려서 사이에 그 수많은 사람을 두고도 두 사람은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하준은 여름의 눈이 부은 것이 보였다.하준의 섹시한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지금 막 생사를 헤치고 나온 사람인데 어쩐지 기분은 썩 좋아 보였다.“지연아….”이때 맹 의원의 부인이 외마디를 외쳤다. 마구 달려가 딸을 부둥켜안았다.“세상에, 살아 있었구나. 엄마가 너무 놀라서 죽는 줄 알았다. 난 네가 저 안에 있는 줄 알았어.”“어떻게 된 일이냐? CCTV에는 네가 엘리베이터를 탄 것으로 보이던데?”맹 의원이 눈시울을 붉히며 달려왔다. 하나뿐인 외동딸이 어떻게 된 줄 알고 방금 전에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죽을뻔하기는 했어요.”맹지연이 엄마, 아빠를 부둥켜안고 울먹였다.“다행히도 최하준 씨가 구해주었어요.”그러더니 부끄러운 듯 하준을 흘끗 바라보았다.“있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엘리베이터가 몇 층 내려가다가 갑자기 뚝 서버렸거든요. 외부랑 통화도 안 되고 스피커고 망가졌고, 버튼도 하나도 안 먹히는 거예요. 다행히도 하준 씨가 엘리베이터 지붕을 열고 나랑 같이 밖으로 나가서 벽에 매달렸어요. 그러고 나서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우리는 가까운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겨우 나왔어요.”이야기를 하면서 맹지연이 하준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정말 딱 몇 초 사이로 죽을 뻔했어요. 다행히도 하준 씨가 너무나 침착하더라고요. 혼자서 탈출했을 수도 있을 텐데, 나 때문에 탈출이 지체되는데도 끝까지 날 데리고 같이 나왔어요. 날 잡아주느라고 로프에 팔이 걸려서 팔도 다쳤어요.”그러면서 하준의 팔을 잡았지만 하준은 바로 손을 빼냈다.하준은 담담한 눈으로 맹 의원을 바라보았다.“저만 살아서 나오고 따님은 사고를 당했다면 저야말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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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화

“의원님, 이번 일은 너무 이상합니다.”하준이 입을 열었다.“호텔에서는 보통 정기적으로 엘리베이터 안전 점검을 합니다. 게다가 여기는 7성급 호텔입니다. 사고가 벌어지더라도 다중 안전장치가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그렇게 수십 층을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그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조사를 지시할 걸세.”송태구의 얼굴이 굳어졌다.“물론 저는 누군가가 저를 노렸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최하준이 문득 말했다.“저 때문에 맹 의원님 따님이 말려든 건지도 모릅니다.”다들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하준을 노리고 이번 일을 벌였다면 십중팔구 추신 쪽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연회장에서 추신과 하진이 하준을 모함하려고 했던 것을 다들 보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다들 하준을 우습게 보고 추신을 두려워하여 차마 그에 관해 아무 말도 못 했을 뿐이다.맹 의원과 송태구는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한참 만에야 송태구가 입을 열었다.“이번 일은 반드시 끝까지 조사하겠네. 지연이가 자네 팔을 다쳤다던데,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먼저….”“아뇨, 전 괜찮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최하준은 냉랭하게 말하더니 자리를 떴다.여름은 내내 사라져가는 하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때 임미정이 와서 말을 건넸다.“윤서야, 이제 일이 해결된 것 같으니 너랑 여름 씨는 가서 좀 쉬지 그러니?”“네, 그러네요. 누가 엘리베이터에 손을 쓸 걸까요?”임윤서의 입에서 질문이 터져 나왔다.임미정이 인상을 찡그렸다.“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최 회장 말이 맞아. 엘리베이터가 그렇게 쉽게 사고가 나지 않거든. 이 일은 신경 쓰지 말렴. 그나마 최하준 회장을 노린 거라면 일이 간간한데, 누구 다른 사람을 노린 것이라면… 그때는 정말 큰 일이긴 하지.”감히 정재계 요원에게 손을 쓸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윤서는 그런 세상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아 얼른 여름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가는 길에 윤서가 결국 물었다.“맹지연이 최하준에게 빠져버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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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화

임윤서는 입이 떡 벌어졌다.서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당당할 일인가!발기가 안 되면 움츠러들 것 같은데 최하준은 완전히 온 세계 사람들에게 다 까발리겠다는 기세였다.“그건 당신도 증명해 줄 수 있잖아?”하준이 여름을 똑바로 쳐다보며 유유히 덧붙였다.“……”‘뭘?안 서도 성폭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임윤서는 귀까지 빨개졌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윤서는 하준의 수위 높은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가 않았다.“저기… 둘이 천천히 얘기하고 와. 나 먼저 차에 타고 있을게.”몇 걸음 걸어가더니 안심이 되지 않는 얼굴로 덧붙였다.“저기, 빨리 와. 기다릴게.”윤서는 후다닥 자기 차로 들어갔다. 여름은 완전히 당황했다. 최하준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호텔로 돌아온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여름을 바라보는 하준의 시선은 사람을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아까 보니까 운 것 같던데, 내가 죽었을까 봐 마음이 아파서…”“망상증이 있으신가 본데, 비대한 자아도 정도가 있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 거거든.”여름이 고개를 쳐들고 싸늘하게 웃었다.“날 몇 년이나 괴롭히던 인간이 마침내 이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얼마나 기쁜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걸.”“거짓말.”하준의 얇은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미소를 만들었다.“사실은 당신이 호텔에 들어설 때 난 이미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해 있었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디. 그때 완전히 당황해서 넋이 나간 모습을 보니까 좋아서 우는 거 아니던데.”“……”여름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이 자식, 컴컴한 데서 숨어서 날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야?일부러 그런 거지?자기가 죽은 줄 알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다 보고 있었다고?’여름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역시나 이런 악마를 상대하려면 완전히 냉혈 동물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자기는 여전히 날 신경 쓰고 있었잖아.”하준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가만히 손을 잡더니 빠져 죽을 것 같은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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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화

그냥 엘리베이터 칸에서 기어 나온다고 바로 괜찮은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곳이 승강로였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 하준이 이렇게 살아서 나온 것이 놀라운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다른 사람까지 구해서 나왔다니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그러나 막상 입에서는 여전히 싸늘한 말이 흘러나왔다.“하여간 대단하셔,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도 영웅 놀이는 하시고 말이야.”‘게다가 구해준 여자가 홀딱 반하게 만들고, 아주 언제 어디에서라도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인간이라니까.’하준은 그 말을 듣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자기 지금 질투 하는 거야?”“질투는 개뿔!”나름 재계에서 한자리하는 여름이지만 하준 때문에 열 받은 나머지 자꾸 천박한 말이 튀어나왔다.“당신은 유진 씨가 음흉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당신도 똑같아. 맹 의원의 딸을 구했으니 앞으로 맹 의원 일가가 당신을 생명의 은인으로 모시면서 엄청 감사해 할 거 아냐? 어쩌면 맹지연이랑 결혼해서 재기의 기회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것까지 다 계산 한 거 아니야?”하준의 눈에서 빛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여름의 마음속에 자신이 그런 이미지라니 실망스러웠다.하준의 눈에 자조의 빛이 떠올랐다.‘하긴, 내가 누굴 탓하겠어? 다 내 손으로 여름이 마음속의 내 이미지를 하나하나 파괴한 거지.’“그런 거 아니야.”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내가 맹지연을 구해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살아서 나왔어도 맹 의원은 나더러 나가 죽으라고 했을 거야. 맹 의원은 내가 자기 딸을 해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도 구해주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날 가만히 두지 않을 사람이라고. 내 딸은 죽었는데 넌 왜 살아 나왔냐며. 내가 거기서 살아 나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거기서 자기 딸을 구해서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따위는 자기 알 바가 아닌 거지.”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확실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독하고 이기적이기 쉽다.그저 제 식구 목숨만 소중하고 남의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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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화

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망부석이라니 뭔 소리야?”“전 남편도 남편은 남편이지.”윤서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거든.”여름이 변명을 늘어놓으며 보조석에 앉았다.“운전 내가 할까? 임산부에게 운전을 맡기기에는…”“이제 겨우 몇 주밖에 안 됐거든. 산달 멀었다고.”윤서가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최하준이 뭐래? 설마 생사의 갈림길에서 널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널 되찾아 와야겠어, 뭐 그러디?”“……”여름은 당황했다. 방금 윤서가 차를 몰고 오지 않았다면 옆에서 듣고 있었다고 의심할 지경이었다.아무 말이 없자 윤서가 ‘그럴 줄 알았어’ 얼굴을 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적당히 해라. 나 유부녀거든.”여름이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어허, 저기 좀 봐라.”윤서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길가를 턱으로 가리켰다. 최하준의 커다란 덩치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다가 흘깃 차를 돌아보았다.파티가 열렸던 7성급 호텔은 너무 구석진 곳에 있어서 택시는 물론이고 파티에 참석하는 차가 아니고는 지나다니는 일반 차량도 거의 없었다.터덜터덜 걸어가는 하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심경이었다.그 우아하고 거만하던 남자가 차도 없이 히치하이크도 할 수 없는 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다니….‘상혁 씨는? 기사는 어쩌고?’“어떡해? 좀 태워줄까?”윤서가 여름의 의견을 물었다.여름은 콧방귀를 뀌었다.“태워주긴 뭘 태워줘? 최하준이 기사도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지금 고육계를 쓰는 거라고.”“그런가….”윤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나 몇십m를 가기도 전에 여름이 소리를 질렀다.“아니, 잠깐….”“왜 그래?”윤서가 속도를 더 올렸다.“세우라고!”여름이 어이 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윤서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차를 세웠다.여름은 헛기침을 하더니 목소리를 돋웠다.“아까 팔을 보니까 엄청 심하게 다쳤더라고. 역시 병원에 데리고 가야겠어. 어쨌든 네 연회에 참석했던 손님이 다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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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화

윤서는 여름과 십 년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는 처음 알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계속 뒤를 보고 있더니….“그래요.”하준이 씩 웃더니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윤서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차 안의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견일 수가 없어진 윤서가 이야기 거리를 찾아냈다.“왜 혼자서 걸어갔어요? 기사는요?”“찾을 수가 없어서요.”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폰은 아까 승강로를 기어오르다가 떨어트렸거든요. 그래서 연락처가 하나도 없어요.”“그러면 내 전화로 식구들한테 연락해 봐요. 병원 근처에 내려 줄 테니까 식구들에게 데리러 오라고 해요.”그렇게 말하면서 윤서는 여름을 흘끗 쳐다보았다. 여름은 여전히 진지하게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됐어요. 아무 데나 내려 주세요. 가족들하고 그렇게 친하지 않아요. 친한 사람은 너무 나이 든 분이거나 너무 어리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하고 결혼해 버려서요….”하준이 한껏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한창 게임에 열중하던 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아니, 내가 언제부터 자기랑 그렇게 사이가 좋았다고?’윤서는 당황한 나머지 입을 닫아버렸다.20분쯤 지나서 마침내 하준을 병원에 내려줄 수 있었다. 하준은 차 문을 열고 내리다 말고 돌아보았다. 조각 같은 얼굴이 병원 특유의 창백한 조명을 받아 한껏 가련한 느낌을 주었다.“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지갑도 아까 떨어트려서 진료비 낼 돈도 없는데, 아침 지금 주혁이도 병원에 없거든. 지금 학회 참석 중이라서.”이제 여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우리가 무슨 바보인 줄 알아?”“정말이야. 오늘 송 의원이 주혁이도 초대했었는데 오늘 학회 참석해야 해서 못 왔다니까”하준이 억울하다는 듯 설명했다.그 점은 윤서가 확언할 수 있었다.“어, 진짜야.”하준이 바로 말을 이었다.“내 형편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치료비를 못 갚을 정도는 아니야. 못 믿겠으면 뒤져보던지.”여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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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화

“……”여름은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다.처음 하준을 만났을 때 입만 열면 플러팅을 위한 말을 날렸던 자신에게 하준이 정신 나간 거 아니냐며 험한 소리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그때 여름은 이런 미녀가 유혹하는 것도 못 알아본다며 최하준이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지금은 하준이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응급실로 들어가니 접수하기 위해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야 했다.하준은 다친 자기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난 못쓰는데.”할 수 없이 여름은 하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주고 접수했다.하준은 내내 여름을 졸졸 따라다녔다. 의사는 X레이를 찍어주고 마지막에는 링거를 하나 처방해 주었다.간호사가 바늘을 꽂을 때 시간을 보니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여름과 더 있고 싶었지만 자기 때문에 여름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전화기 좀 빌려줘. 김 실장에게 전화 한 통화 하게.”여름은 상혁을 불러 간호를 시키려는 줄 알고 전화기를 건넸다.그런데 상혁과 통화가 되자 하준이 말했다.“나 병원인데, 지금 이쪽으로 와서 여름이 좀 데려다줘.”하준의 통화가 끝나가 여름은 인상을 썼다.“상혁 씨가 데려다 줄 필요 없어. 택시 타고 가면 되는데.”“안 돼. 이 오밤중에 혼자서 택시를 타다니 너무 위험해.”하준이 고개를 저었다.“영수증은 주고 가. 내일 바로 보내줄게.”여름이 하준을 흘겨보았다.오늘은 병상이 다 차서 하준은 의자에 앉아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창백한 병원 조명을 받으며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하준을 보자니 그 귀족적인 분위기와 난장판이 응급실의 분위기가 너무나 안 어울렸다. 아무리 봐도 너무 처량했다.여름은 눈을 감았다. ‘아니야. 독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됐어. 돈 돌려준다는 핑계로 또 만나려고 하는 거 모를 줄 알아?”진짜 목적을 간파당한 하준은 피식 웃었다.“됐다니 그러면 받아둘게. 그래, 주머닛돈이 쌈짓돈이지. 알아, 알아.”“누구더러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래?”여름은 하준의 뻔뻔함에 할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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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화

여름은 벨레스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김상혁에게 톡을 보냈다.-도착했어요.바로 답이 왔다.-잘됐네. 얼른 쉬어. 하준.보아하니 하준이 상혁에게서 핸드폰을 빼앗아 들고 있었던 모양이다.여름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에는 온통 하준의 그 뻔뻔한 모습이 반복해서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같은 시간 양유진은 추성호에게서 전화를 받고 화가 나서 휴대 전화를 집어 던질 지경이었다.추성호는 통화가 되자 대뜸 욕지거리부터 내뱉었다.“이게 무슨 거지 같은 계획입니까? 최하준을 죽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최하준이 맹지연을 구하게 만들었잖습니까? 이제 최하준이 아주 맹 의원네 생명의 은인이 되어 버렸다고. 오늘 맹 의원 부부가 계속 최하준을 잡고 고맙다고 난리였던 모양이던데.”양유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엘리베이터가 20층에서 떨어지는데 최하준이 살아서 맹지연까지 데리고 기어 나올 줄 알았겠습니까?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어쨌든 내가 당신의 충동질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최하준에게만 사고가 났다면 모를까, 맹지연까지 엮여 버렸으니 이제 송 의원과 맹 의원이 다들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나섰소. 이게 나에게까지 닿아버리면 어쩔 거야?”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더니 추성호가 전화를 끊었다.어둠 속에서 양유진은 음험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갑자기 웃었다.최하준을 죽이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었다.그러나 만약 추성호를 엮어 넣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어쨌거나 죽을 때까지 추신의 개로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않은가?******한편 추성호는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추동현을 찾아갔다.추동현은 말을 듣더니 바로 욕을 퍼부었다.“이 멍청한 놈! 대체 누가 송 의원 집 파티에서 그따위 짓을 하라고 했어!”추동현도 안타까움에 고개를 저었다.“넌 정말이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나는 정계 인사들과 어떻게든 엮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는데 넌 뒤에서 사고나 치고 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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