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미령은 출혈이 심했다.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고석근은 줄곧 아기가 세상에 나오길 고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또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방금까지 참아왔던 불안한 마음이 순간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는 의사의 멱살을 쥐면서 소리를 질렀다."어서 지혈부터 해! 어서! 만약 산모한테 무슨 일 생긴다면 이 병원에 있는 모두가 죽을 줄 알아!"의사는 놀라서 벌벌 떨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고석근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보기만 해도 음산하고 무서웠다. 그때 귓가에 미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석근..."고석근은 온 몸이 굳어져 지금 이 순간 마치 환청이 들려 온 것 같았다.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여미령의 얼굴을 보았다. 눈물범벅이 된 여미령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하수마냥 그를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석근, 고석근..."그녀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를 기억했다!그자리에 굳어 버린 고석근의 충혈된 눈가에는 놀라움과 망연자실함, 그리고 기쁨, 불안함, 두려움 등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이런 감정이 한데 뒤섞여 그로 하여금 한동안 반응을 못하게 했다. 그의 귓가에는 그녀가 부른 고석근이란 이름 석자만 메아리처럼 들려 오기 시작했다.이때 산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하 교수님이 오셨습니다!"드디어 하서관이 도착했다.고석근이 몸을 돌리자 흰 가운을 입은 하서관이 보였다. 비록 급히 달려왔지만 한결같이 침작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하서관의 등장에 모두가 기쁨을 금치 못했다. 구세주가 왔기 때문이다."하 교수님, 산모의 출혈이 심합니다."의사가 서둘러 상황을 보고했다.하서관은 흰색 마스크를 쓰고 여미령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여미령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미령아, 이제 순산은 안 될 것 같으니 반드시 절개 수술을 해야 돼. 내가 직접 수술을 집도할 거니까 안심해도 돼. 너와 아기를 나한테 맡겨.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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