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계속해서 발버둥 쳤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남자는 그녀를 직접 어깨에 메고 나갔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강이한, 너 미쳤어! 날 놔줘!” 이제 퇴근 시간이라 회사 직원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말하지 않아도 지금쯤 뒤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가고 있을지 뻔했다.이전에는 항상 박연준이 이 회사에 드나들곤 했다.지금, 이 소문 속의 남자가...!하지만 적어도 지금 회사 직원들은 이 뻔뻔한 남자가 자신을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차 안에서!“윙윙윙.”강이한의 전화가 울렸다. 이유영은 한눈을 팔아 보더니 그를 비난하려 했다. 아마도 한지음이 또 전화한 것일 것이다.왜냐하면 강이한이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마다 한지음의 전화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전화 화면에 뜬 것이 외삼촌의 전화라는 사실이었다.강이한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정 선생님.”“네가 아직 그녀에게 마음이 있다면 지금부터는 계속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한다.”“외삼촌!” 이유영은 다급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다.분명 정국진이 강이한에게 전화를 걸 줄은 몰랐다. 왜... 박연준이 아닌가!?이유영의 생각 속에서는 박연준이 외삼촌의 마음속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었고 박연준에게 그녀를 더 보호해 달라고 부탁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왜 지금은 강이한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저는 지금 이미 그녀를 데리러 왔습니다.”“좋다. 모든 것은 내가 돌아간 후에 얘기하자!” 전화 속의 정국진은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영을 무시하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이유영이 이번에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것은 파리에서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남자를 건드린 것이다.전화가 끊어졌다.강이한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매우 엄숙했다.“......”강이한이 말했다. “다 들었지?”“흥!”외삼촌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녀가 더 할 말이 있겠는가?강이한은 그녀가 화난 모습을 보며 눈빛이 조
온몸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유씨 아주머니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지금은 여기서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냉랭했고 나이든 사람의 온화함은 전혀 없었다.한지음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유씨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 “보아하니, 선생님께서 당신에게 약간의 교훈을 주셔야 당신이 말을 잘 들을 것 같군요?”말 속의 위협은 너무나도 분명했다!한지음의 원래 창백한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결국 전화를 받았다.유씨 아주머니는 그녀가 마지못해 전화를 받는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사모님이 당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들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즉시 잊어버리세요!”“......”“결국 당신은 이미 자신의 선택을 했잖아요?”선택?그래, 자신 인생의 선택!그때 한지석이 그렇게 막았는데도 그녀는 이유영을 증오하고 어머니를 위해 복수하기로 선택했다.특히 한지석이 강이한을 구하러 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가 강이한을 구하고 결국이득을 보는 것은 이유영이다.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원래부터 이유영을 증오했는데!더욱 증오하게 되었다.그녀가 강이한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밖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씨 아주머니, 성이 ‘조’인 분이 아가씨를 만나러 왔다고 합니다.”조?이 성씨는 유씨 아주머니와 한지음에게 낯선 성씨였다.잠시 생각한 후, 유씨 아주머니는 그가 강이한의 옛 비서였다는 것을 기억해냈다.“그는 강이한의 이전 비서입니다.”지금 왜 이시욱이 강이한을 따라다니는지 그녀들도 대략적으로 들었다. 그 이유는 그가 한지음을 위해서였다...!오랜 시간 동안 사라졌던 그가 이제 찾아왔다는 것이 놀라웠다.“보아하니 우리를 도울 사람이 생긴 것 같네요.” 유씨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한지음의 손에서 전화를 빼앗아 갔다.그리고는 엄숙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기억해요, 잘 잡아야 해요!”말이 끝나자마자 한지음이 반응할 틈도 없이 돌아서 나갔다.한지음은 온몸이
이유영의 부모님!그래, 그건 바로 이유영의 아버지였다. 한때는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었다. 사랑했기에, 아버지가 남긴 모든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진영숙이 전해준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난 당신이 나에게 같이 가자고 애원할 줄 알았어요.” 조형욱의 눈빛은 어두워지며 한지음의 눈을 바라보며 더 날카로워졌다.같이 가자고?전에 조형욱도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었지만 그때 그녀는 거절했다. 사실 조형욱은 아직도 왜 그녀가 거절했는지 모른다!강이한이 들어갔을 때, 그는 그녀가 의지할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 같이 가자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다.한지음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물었다. “날 도와줄 수 있어요?”조형욱이 말했다.“좋아요!”“고마워요.”“고맙다고요?”조형욱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눈빛이 더 진지해졌다.생각하다가 그는 물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거예요?”포기? 그래, 그녀의 주변 사람들,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복수의 과정에서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모든 것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조형욱, 당신이 생각하기에 내가 정말 그 사람에게 그렇게 이기적이었을까요?” 이 순간, 한지음은 씁쓸한 어조로 물었다.조형욱은 침묵을 지켰다. 분명, 이 문제에 대해 이전에 얽혀 있던 사람들,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조형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한지음의 입가의 씁쓸함은 더 짙어졌다.“먼저 이 일을 도와줘요, 고마워요.” 그녀는 말을 돌렸다.조형욱은 떠났다!유씨 아주머니가 들어왔다.그녀는 한지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되었나요?”“무슨 일이요?”“그가 당신을 도와주기로 했나요?”“......” 한지음은 조금 차가워졌다.그녀는 억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유씨 아주머니.”“좋은 소식인가요?”“당신은 왜 그를 그렇게까지 믿고 있는 거예요
평온하게 국물을 먹고 있는 이유영의 모습을 본 강이한은 가슴이 쿵쾅쿵쾅 미친 듯이 날뛰었다.“유영아.”강이한은 입술을 버금 거리며 뭘 물어보고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힐끔 보고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들을 다시 다 삼켜버렸다.이유영이 물었다.“안 좋아해?”“아니야!”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생의 강이한 취향이랑 완전히 달랐다.‘유영이는 내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특히 강이한은 매운 음식을 먹긴 하지만 음식의 매운맛에 요구가 많았다.강이한은 매운 음식을 다 먹는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매콤한 음식에 대해서는 살짝 좋아하는 정도였지 자주 먹지는 않았다.“그럼 된 거 아니야? 당신도 어떻게 보면 반산월의 손님인데 손님을 굶길 수는 없잖아.”강이한은 말문이 막혔다.“…”‘손님이라고!?’이유영이 손님 이 두 글자에 강조를 더하며 말하자, 강이한의 얼굴색은 바로 굳어져 버렸다.하지만 그는 결코 뭐라 하지는 않았다.그저 고개를 숙이는 그의 눈 밑에는 거센 파도가 출렁이었다.‘유영이… 설마 유영이도 진짜로?’진짜 무엇인지에 대해 강이한은 더 이상 추측을 하기 두려웠다.만약 이유영도 다른 세상에서 온 것이라면 지금 이런 상황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지잉 지잉 지잉.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강이한을 사색에서 불러일으켰다.핸드폰에 뜬 전화번호를 보니 발신자가 이시욱이었다.강이한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도련님,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사모님!이유영은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진영숙…!’강이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이유영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평온하게 식사하고 있었다.마치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이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편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우지가 이유영에게 다가와 투덜거렸다.“아가씨.”“왜요?”“아까 사모님께서 전화했는데 저 사람에게 식사를 너무 잘해줄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우지의 말을 들은 이
특히 이유영이 박연준한테 전화하는 그 다정함,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미소는 정말 강이한을 화나게 했다!대략 5분 뒤에, 이유영은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이때 강이한 몸의 분노도 극한에 달할 정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그는 붉은 눈시울 하고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그놈 이쪽을 온대?”강이한은 거의 이를 갈며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아니.”“그럼, 다행이네!”강이한의 기운은 여전히 위험했다.하지만 분명한 건 박연준이 온다고 해도 강이한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을 보며 눈썹을 치켜세우고 냉소를 지었다.지금 쌀쌀함은 아까의 부드러움과 선명한 대비가 되었다. 강이한은 이런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두 손에 주먹을 꼭 쥐었다.이유영이 입을 열고 물었다.“당신 어머님이 뭐라고 했어?”한참이나 나타나지 않던 진영숙이 이 시점에 나타난 건 이유영에게 있어서 좋은 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한지음의 두 눈, 고칠 수 있는 든든한 의사를 찾으셨대.”“시력 회복?”“그래.”“참 재주도 좋으셔!”이유영도 한지음의 두 눈을 본 적이 있었다.시력 회복에 관해서, 그때 당시 강이한 곁에 있던 아주 유능한 배준석마저도 어쩔 수 없다고 사형을 내렸었다.하지만 진영숙이 배준석보다도 더 능력 있는 의사 선생님을 찾았다는 게 이유영은 믿기지 않았다.“각막은?”이유영은 비꼬며 물었다.각막, 이 세 글자는 마치 그들에게 있어서 금지어가 된 것 같았다. 예전에 한지음의 이 두 눈 때문에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이유영은 지금까지도 전생에 자기가 어떻게 수술대에서 일어났는지 생생히 기억한다.자신의 각막은 결국 성공적으로 한지음의 눈에 들어갔고 그 대신 이유영은… 무궁무진하고 영원한 어둠 속에 빠졌다.이번 생도 똑같이…강이한은 한지음의 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유영이랑 옥신각신 다퉜다.아까처럼 강이한이 한지음의 시력 회복 얘기를 이토록 평온하게 꺼내는 건 상상도 못 했다.“기증자를 벌써 다 찾아놓으셨다.”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딱딱
그 대신, 이유영의 눈에는 끝없는 풍자가 실려있었다.“깔깔, 깔깔깔.”이유영은 입술을 막고 깔깔 웃어댔다.분명한 건 아주 진지한 모습을 하고 그저 강이한과 농담을 한 것이었다.이유영의 두 눈, 수술할 수 있었으면 벌써 이 2년 동안에 했을 것이었다. 강이한이 나타나길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을까?진영숙이 찾은 의사한테서 이유영은 더욱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이유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강이한을 쳐다보며 말했다.“뭐가 그렇게 놀랄 일이야. 당신한테 장난친 것뿐이야.”‘장난? 그저 장난이라고?’장난이긴 했지만, 이유영에게 있어서 물론 강이한을 떠보는 것이었다! 강이한의 머뭇거림과 망설임, 그리고 눈 밑에 드리운 발버둥 치는 모습, 이유영은 다 똑똑히 보았다.이런 사람이 자기를 쫓아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이유영은 한심했다.“우지 님, 시간도 늦었는데 강 도련님에게 좋은 객실을 마련해 주세요.”“네. 아가씨.”우지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아까 이유영과 강이한이 나눈 대화를 곁에 있던 사람들도 다 확실하게 들었다. 하지만 들은 사람들도 몹시 실망하였다.이유영 주변의 사람들은 강이한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이유영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오늘 그들의 인식을 더욱 갱신하였다.전에도 한지음이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강이한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이유영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 그는 덥석 이유영의 손목을 잡았다.이유영이 물었다.“왜?”“당신의 눈에 대해 나도 이미 방법을 생각 중이야.”강이한의 한 말은 사실이었다!이유영 몸의 피부든 아니면 그녀의 두 눈이든, 전에 유신부를 불렀을 때 이미 강이한은 손 놓고 있지만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안과 전문의도 지금 알아보는 중이었다.이유영에 상관되는 일이라서 강이한은 제일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찾아야 했다.이유영은 얼굴의 미소를 거두면서 고개를 숙
이번에 이유영은 소은지를 위해 정말 아주 큰 배팅을 하였다. 이유영의 행동은 온 파리를 뒤흔들었다.지금 이 바닥에는 로열 글로벌의 대표가 아주 혈기 왕성한 여자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건드린 사람이 하필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그 뒤로 다들 이유영은 젊어서 눈에 뵈는 게 없다고, 경망스럽다고 말했다.아침 식사 자리에서, 어제저녁의 일이 있으니, 이유영과 강이한도 서로 말이 없었다.강이한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다.이유영의 핸드폰이 진동하여 확인해 보니 안민이 걸어온 전화였다. 이유영은 전화를 받았다.“안민 씨.”“대표님,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이 이미 사무실에 도착하셨습니다.”이유영은 침묵했다.“...”“...”순간 강이한 몸의 기운도 싸늘해졌다. 그는 손안에 든 우유 잔을 내려놓고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눈 밑에는 한시름을 놓은 듯한 뿌듯함이 스쳐 지나갔다.“네. 알겠어요. 저도 바로 갈게요.”‘이 여자는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돌아오기만 하면 소은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참 순진하기도 하지!’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이 누군가를 만나주는 건 그 사람의 악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마치... 소은지처럼!안민의 전화를 끊은 이유영은 바로 일어서며 말했다.“우지 님, 차 대기시켜 주세요.”“네. 아가씨.”“그 사람을 만나서 뭐 어떻게 하려고?”강이한은 일어서면서 이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일에 있어서 줄곧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강이한은 이유영이 조금 침착하게 대응하기를 바랐다.“당신은 내가 어떻게 했으면 하는데?”이유영은 비꼬며 강이한에게 되물었다.두 사람의 분위기는 조금 얼어있었다. 특히 지금,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유영의 말투에는 갑자기 총을 든 느낌이 있었다.강이한이 입을 열었다.“당신이 지금 소은지를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소은지가 그 사람의 곁에 있는 상황은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허!”
이유영의 기세를 보아하니 막 나갈 사람은 같아 보이지 않았다.강이한은 도통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유영을 따라갔다.차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가는 길에, 이유영은 노트북을 꺼내서 아주 숙련하게 상관 업무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오늘날의 이유영은 마치 전에 일하던 강이한처럼, 차 안에서의 시간마저 헛되게 흘려보내지 않았다.하지만 이유영은 달랐다!강이한은 그녀의 노트북을 뺏고 말했다.“눈도 안 좋은데 차에서 서류 보면 안 되지.”이유영은 확하고 노트북을 다시 뺏어왔다!“자꾸 선 넘지 마.”이 말의 뜻은 강이한을 곁에 두는 것마저 이미 이유영의 한계인데 그가 너무 오지랖을 부리지 말라는 말이었다.강이한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두 사람의 몸에서 내뿜는 기운은 다 별로 좋지 않았다. 이 시각, 분위기도 팽팽하게 얼어붙었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린 강이한은 이유영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잊지 마. 절대로 그 사람이랑 횡포하게 굴지 마.”“강이한.”“응?”“어쨌든 나도 이제 로열 글로벌 2년이나 관리한 사람이야. 당신은 아직도 나를 당신 곁에 있던 가정주부로 생각하지?”“...”이유영의 가시 달린 말에 강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이유영은 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강이한의 손을 뿌리치고는 갔다.강이한은 제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린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유영이 무모할 리가!?이번의 일은 그저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을 찾지 못해서 벌인 일이고 지금 사람을 돌아오게 했으니, 목적에 달성하긴 했다.이유영도 더 이상 강이한 곁에 있던 가정주부가 아니며 심지어 이제는 강이한의 비호도 필요 없었다.전에 강이한의 머릿속에 있던 모든 인식은 이유영의 말 한마디에 다 산산이 부서졌다.이때에야 강이한은 전생에 이유영이 자기에게 이혼을 제기했을 때 그녀는 두 눈이 실명을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그는 아주 자신 있게 이유영은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일단 자기의 곁을 떠나면 이유영은 생활조차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이한은 조용히 이유영을 방으로 데려다주었다.방 안에서는 이미 우지와 우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한이 문밖으로 나가자, 이유영이 차분히 물었다.“연락해 봤어요?”정국진과 임소미와의 연락을 의미했다.“아가씨, 모르셨나요? 우리가 여기로 올 때 강 선생님이 우리의 휴대폰을 전부 통제하셨어요!”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조금 전까지 차분하던 이유영의 표정은 우지와 우현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굳어졌다.강이한, 제정신이 아니구나!우지가 말을 이었다.“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아가씨의 눈이 나아질 때까지는 외부와의 연락을 금지하라고 하셨어요!”이유영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이 강이한!이게 대체 뭐야? 늘 그랬듯이 언제 어디서든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거야?지금 상황에서 강이한이 정말 몰래 이유영을 데려온 거라면 백산 별장 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게 뻔했다.그렇다면 부모님 쪽은...!이유영이 생각했던 대로였다.아침부터 지금까지, 임소미와 정국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특히 임소미는 계속해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정국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이때, 여진우가 돌아왔다.임소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어때? 소식 있어?”‘소식’은 이유영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임소미는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애초에 강이한은 그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임소미와 정국진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강이한 옆에 있으면 사건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말이다.“없어요.”하지만 여진우가 가져온 소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그 말은 임소미의 이미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어떻게 없을 수가 있어?”강이한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춘 거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실 강이한이라는 인물은 누구에게나 항상 베일에 싸여 있었다.임소미의 초조함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여진
전생에서 이유영은 손을 뻗기만 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곤 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어둠이 여전히 두렵고 무섭지만, 전생의 기억 탓인지 어딘가 익숙하기도 했다.어둠 속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던 덕분일까? 기본적인 생활은 오히려 이유영이 가장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그런 이유영을 바라보며 강이한의 마음은 아픔으로 물들었다.강이한은 깊은숨을 고르며 조용히 말했다.“내가 참을성이 부족한 게 아니야. 지금은 이런 문제를 다룰 때가 아니야.”“...”“네 눈을 치료하고 나서, 우리 사이의 문제는 네 뜻대로 해결해.”강이한의 말은 하나하나 무겁고 또렷했다.이유영의 뜻대로?“나는 너를 천 번이라도 갈기갈기 찢고 싶을 만큼 증오해.”“좋아. 그럼 내가 칼을 네 손에 쥐여줄게. 어때?”그렇게 하면 되는 걸까? 이렇게 하면 이유영이 치료에 협조해 줄까?“...”온몸이 얼어붙은 듯했고 답답했던 가슴은 더욱 숨이 막혔다.강이한의 말은 언제나 마치 주먹을 솜에 내리친 듯 공허하고 숨 막히게 했다.“흥.”이유영이 더는 따지지 않자 강이한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유영의 시력 문제였다.다른 문제는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 이유영의 뜻에 따라 다시 다뤄도 늦지 않았다.저녁 식사가 끝났다.이유영은 작은 그릇을 내려놓으며 살짝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식들은 이유영의 입맛에 잘 맞는 듯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표정을 보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이유영은 사실 음식에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이유영과 함께했던 시간 동안에도 강이한은 이유영의 입맛에 맞추느라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각하기만 하면 답답한 마음에 참을 수 없었다.그때 이유영이 물었다.“언제 돌아갈 거야?”이유영의 물음은 여전히 단도직입적이었다. 강이한과 이곳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강이한은 잠시 망설인 뒤,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네 눈이 회복되면, 그때 떠날게.”이유영은
과거의 강이한에게는 이유영과 함께 이런 여유로운 장소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이유영은 음식을 특별히 거부하지 않았다. 파리로 돌아갔을 때, 그곳 음식이 전혀 입에 맞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그 후 서주에 머물던 동안에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지만, 다행히 박연준이 정성을 다해 챙겨줬다.한지음과 이온유가 없을 때는 강이한의 관심이 온전히 이유영에게 향했었다.하지만 그 둘이 함께 있었을 때는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남는 관심을 겨우 받을 뿐이었다.이유영은 문득 생각했다.“얼마나 됐지?”이유영의 예기치 않은 질문이 강이한의 가슴을 세차게 조였다.강이한은 이유영의 질문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챘다.“유영아, 미안해.”강이한의 목소리는 낮고 진중했다.강이한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자신이 얼마나 이유영을 외면해 왔는지를. 연서의 사건이 터진 후, 강이한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지나간 감정.이 단어는 언제나 무겁게 느껴진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지나간 감정이 상처를 더 깊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그러나 그가 이유영과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것은 상처투성이였을 뿐이다.“흥!”이유영은 강이한의 사과에 차가운 냉소로 응답했다.유천의 음식은 대체로 매콤한 편이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눈 상태를 염려해 매운 음식을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음식을 담백하고 특별하게 준비했는데 그럼에도 맛있는 요리였다.저녁 식사.테이블에는 이유영과 강이한 단둘만이 있었다.“우지 씨는?”이유영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우지와 우현의 부재를 눈치챘다.“장거리 이동으로 피곤했을 것 같아 따로 식사하게 했어.”이유영은 강이한의 대답을 듣고 더 차갑게 굳어갔다.강이한은 이유영의 이런 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보였다.“이 국물 좀 먹어봐. 족발이 들어갔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아. 너 예전에 이거 먹고 싶다고 계속 말했잖아.”이유영이 우천에서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은 아주 많았었다. 다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이유영은 손을 뻗었다.강이
차에서 내릴 때, 강이한이 자연스레 이유영을 안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유영의 단호한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우지 씨.”“네, 아가씨.”강이한의 손이 닿기 전, 우지가 서둘러 다가와 이유영의 곁에 섰다. 우지는 이유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차에서 내리도록 도왔다.이유영은 귀를 기울이며, 주변의 적막함과 선선한 바람 속에서 지금이 밤임을 직감했다.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공기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부드러웠다.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어떤 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향기는 달콤하면서도 상쾌했다.입구에서.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을 부축하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문턱이 있어요.”문턱? 강이한이 데려온 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이유영의 마음속에 의문이 떠올랐다.집 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나무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그리고 은은한 페인트 냄새도 섞여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였지만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향이었다.“선생님, 돌아오셨군요.”집사가 다가와 공손히 강이한에게 인사했다.강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분간 여기서 머물 거예요.”“예,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집사는 공손히 대답했다.강이한은 이미 도착 전에 이곳을 정리하도록 지시했던 듯했다.전통 가옥의 집은 제대로 청소하고 정돈해야 비로소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집사는 강이한과 이유영을 방으로 안내했다.우지는 정원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아늑했고 작은 정원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심겨 있었다.그 덕분에 공기마저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이유영은 방 안에 들어와 단단한 나무 의자에 앉으며 손끝으로 그 감촉을 느꼈다.이곳 환경에 궁금했다.“우지 씨.”“네, 아가씨. 물 드실래요?”“여기는 어디예요?”이유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물었다.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은 이유영에게 항상 큰 공포를 주었다. 주변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참기 어려웠다.“여긴 전통 가옥이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차 안의 공기가 한순간 얼어붙었다.차 안에 있던 강이한과 이유영 외의 모든 사람, 특히 우지와 우현은 숨조차 삼가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모두가 이유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을 선명히 느꼈다.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 연서라는 사람이 강이한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 문서를 보게 된 이유영도 잘 알고 있었다.연서는 강이한에게 있어 한지음이나 이온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였다.그 오랜 세월 동안, 강이한은 오늘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입 밖에 내었다. 그만큼 그 이름은 강이한의 마음속 깊이 봉인된 듯한 존재였다.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휩싸였다.그 이름만 떠올려도 그의 가슴은 터질 듯한 고통으로 무너졌다.그리고 지금, 연서의 이름을 다시 언급하자 강이한의 마음은 다시금 옥죄어왔다.연서...“하하.”이유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차가운 비웃음이었다.그 비웃음은 강이한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유영아...”“강이한, 만약 연서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 여자가 너에게 날 죽이라고 하면, 너는 그렇게 할 거야?”“...”강이한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한지음을 위해서도 이유영에게 그렇게 잔혹하게 굴었던 강이한이다. 만약 그것이 연서라면? 이유영에게는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이유영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 태도는 강이한의 숨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유영아, 사실은...”“그럴 거야, 맞지?”“아니!”강이한은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그의 부정에도 이유영의 냉소는 더욱 짙어졌다.“한지음을 위해서 넌 강무혁을 감옥에 보냈잖아. 연서는 한지음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 아닌가?”지금 와서 아니라고? 누가 믿겠는가!강이한은 몸이 굳어버렸다.강이한이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의미 없어.”“홍문동 그 화재에 대해 난 전혀 몰랐어!”이유영이 예전에 말
이유영은 이미 강이한에 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전에도 강이한은 이미 이유영이 모든 걸 놓아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연서라는 이름을 알고 난 후, 그건 단순히 내려놓은 정도를 넘어선 감정이었다.“강 선생님, 아가씨를 내려놓으세요.”우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서 강이한 앞을 가로막았다.지금 상황에서 우지가 이런 용기를 낸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상황이 어떻든, 이유영을 지키려는 우지의 태도는 꽤 인상적이었다.강이한은 앞을 막아선 우지를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비켜.”짧은 두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차가움과 위협이 짙게 묻어 있었다.“아가씨께서는 강 선생님께 안기는 걸 원하지 않으십니다.”우지는 단호하게 말했다.“...”원하지 않는다고그 말은 강이한의 차가운 분위기를 한층 더 얼어붙게 했다.하지만 우지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강 선생님, 아가씨께서 함께 유천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아가씨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최대한의 배려?그래, 이유영의 본래 뜻은 파리로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지금 이유영은 강이한과 함께 어떤 곳으로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이유영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는 단 하나, 우지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임소미가 걱정할 것이라고 했던 말 때문이었다.그렇다. 임소미가 걱정할 것 같아 이유영은 잠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뜻을 접었다.이유영은 아직 어둠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백산 별장으로 돌아가 임소미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임소미의 마음은 걱정과 슬픔으로 가득 찰 것이다.이유영은 가족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억지로나마 머물러 있는 것이다.결국 강이한은 우지의 말을 무시한 채, 이유영을 안은 그대로 차로 걸음을 옮겼다.우지와 우현은 할 수 없이 뒤따라갔다.차 안.“그 사람, 믿을 만해?”강이한이 자신을 데리고 유천까지 온 것만 봐도 그 의사는 분명 특별한 인물임이 틀림없었다.“걱정하지 마. 철
이유영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이 굳어버렸다.어머니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크게 걱정하실 것이 분명했다.마음속에서 요동치던 불안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간절함은 이 순간 잠잠해지며 차분함이 찾아왔다.“아가씨.”“우지 씨, 물 좀 가져다주세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우지는 서둘러 나갔다가 금방 물을 들고 돌아왔다.강이한은 밖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 안이 차분해진 모습을 보며 강이한의 눈에 안도감이 비쳤다.역시, 익숙한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상황이 달랐다.지금 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강이한을 가장 답답하게 했다.하지만 지금은 우지와 우현이 함께 있으니, 이유영도 차분해진 것 같았다.비행기가 유천에 착륙했다.그 순간, 마치 공기까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파리와 서주의 날씨는 좋지 않은 날이 많았지만 유천은 달랐다.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불리며 은퇴한 사람들이 여생을 즐기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었다.독특한 지역 문화를 담은 공항의 건축 양식을 바라보며 강이한은 그곳에 한눈에 반한 듯했다.“나 혼자 갈 수 있어.”이유영은 강이한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그가 느끼는 편안함을 감지하고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그는 이곳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이유영도 과거 유천의 특별한 매력을 들었을 때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유영과 강이한은 늘 긴박한 환경 속에서 지내왔기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유영아, 조금만 얌전히 있어. 여긴 낯선 곳이니 내 옆에 있는 게 안전해.”강이한은 이유영이 어둠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민감해도 지금 있는 이곳은 완전히 낯선 환경이었다.그가 기억하는 지난 생애에서 이유영이 시력을 잃은 뒤 거의 홍문동을 벗어나지 않았다.그곳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은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
한때 이유영은 강이한과의 갈등이나 의견 차이가 있을 때마다 둘 사이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에 기대어 버텼다.이유영은 자신과 강이한의 만남은 아름답고 추억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아무리 아름다웠던 기억도 이유영의 마음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그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를 일찌감치 떠나온 것을.만약 아직도 미련을 붙잡고 있었다면, 가장 소중했던 추억들이 거대한 음모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유영은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도 이유영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다른 건 모두 네 뜻대로 해도 돼. 하지만 유천에 가는 건 반드시 내 말대로 해!”강이한의 목소리는 한층 더 단호해졌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조심스레 침대 위로 눕혔다. 지금 강이한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은 너무나 강압적이었다. 이유영은 그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그 감각은...이유영의 마음을 한없이 불안하게 했다.이유영은 깨달았다. 마치 자신이 지난 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시절, 이유영은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며 어둠에 대한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었다.그리고 그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이유영의 머릿속으로 몰려들었다.강이한이 방을 나갔다.잠시 후, 우지와 우현이 방으로 들어왔다.“아가씨.”우지가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왔다.우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유영은 온몸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우지 씨,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아가씨… 혹시, 눈이...”우지는 이유영의 두 눈을 보고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조차 초점 없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순간, 우지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이유영은 예상하지 못했다. 강이한이 이유영을 여기로 데려온 것도 모자라 반산월에서 우지까지 데려올 줄은.“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강이한은 이유영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이유영은 이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미칠 듯 서글펐고 동시에 눈물까지 흘러내릴 만큼 절망적이었다.“유영아...”강이한은 이유영의 웃음에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됐다. 왜 꼭 이런 지경까지 와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게, 과연 누구 탓인가?이유영은 광기가 폭발하듯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평온을 되찾았다.하지만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이유영의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강이한은 그 떨림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이유영이 입을 열었다.“강이한, 네 인생에서 나는 언제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아.”한때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전생의 기억까지 모두 떠올랐다...사람들은 말했다. 이유영은 복 받은 여자라고. 강이한에게 아낌없이 사랑받으며, 그저 강씨 가문의 작은 부인으로 편안히 지내기만 하면 되는 인생이라고.강이한과 함께하는 동안,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유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무엇을 하든, 무엇을 선택하든, 항상 강이한이 결정했고 이유영은 강이한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이유영이 혼자 선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이제 와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을 때, 강이한 역시 깨달았다. 자신이 이유영의 삶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를.그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그래서 무엇이든 그의 결정이 절대적이었다.이유영의 삶을 세세히 돌보는 데도 강이한의 성격이 드러났다.작은 것 하나까지 강이한의 뜻에 따라야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이유영은 그에게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었다.“유영아...”과거, 모두 이유영을 위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알아?”“...”이유영이 계속해서 강이한에게 상기시켰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이유영이 다시금 이혼 이야기를 꺼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