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번거로운 거 아니에요?”이유영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렇게 되면 차라리 독립 안 하고 말지!’이유영은 강이한이 지금 자기에 대한 집착을 생각해서라도 이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면 계속 백산 별장에서 지내면 안 되었다.하지만 이유영이 반산월에서 지내면 외숙모가 이렇게 고생할 걸 생각하니 이유영도 속이 말이 아니었다.“괜찮아. 아야, 나 오늘 저녁에 중요한 연회가 있어서 난 이만 먼저 가볼게. 저 국 꼭 챙겨 먹어!”“네! 그럴게요.”임소미는 급히 떠났다.그리고 우지랑 우현을 보고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감동이 가득했다.아까 돌아왔을 때부터 이유영은 이 주변의 보안 시스템을 보았다. 이로써 이유영이 여기로 이사 오는데 외숙모랑 외삼촌이 신경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알 수 있었다.“아가씨, 이 국은 사모님이 오후부터 정성 들여 끊인 겁니다. 꼭 챙겨 드셔야 합니다.”“네.”“…”“다른 건 필요 없어요.”비록 이 국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유영은 원래 입맛이 별로 없었다.특히 이런 국물 앞에서라면.매번 외숙모가 국을 끓였다는 것을 들으면 이유영은 다른 걸 별로 먹지 않았다. 이유 영은 외숙모가 자기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엄청나게 아꼈다.외숙모가 엄청나게 고생하며 준비해 줬다는 것을 알면 이유영은 노력해서라도 국을 먹곤 하였다.“네! 좋아요.”우지랑 우현은 이유영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 국도 충분하게 영양가 높았다.그리고 이 반산월에 우지랑 우현 두 사람이 있는 한 이유영이 식사를 거를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그들이 돌아서면 바로 외숙모한테 이를 게 뻔했다. 그러면 이유영의 귀가 또 아프게 된다.핸드폰의 지잉 지잉 진동 소리에 이유영은 손에 든 국그릇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한눈 보고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 반대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유영은 듣자마자 얼굴색이 순간 변했다.그리고 이유영은 바짝 긴장한 말투로, 심지어 떨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요. 일단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
심지어 박연준도 뒤늦게 마지막에야 소식을 들었다. 박연준은 문 비서를 바라보며 눈 밑은 그윽함이 가득했다.“어디로 갔어?”“정국진 회장님 쪽에서 하도 두 분의 종적을 감쪽같이 숨기고 있습니다.”그 말인즉 이유영과 임소미가 도대체 어디에 갔는지 문 비서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말이었다.문 비서의 말이 끝나자, 박연준 눈 밑의 그윽함은 더 진해졌다.입가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문기원은 박연준을 한눈 보고 말을 이었다.“요즈음, 정국진 회장님 쪽에서 대표님과 이유영 아가씨 사의를 별로 지지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어디 지지하지 않는 것뿐이야!”박연준은 엄청나게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심지어 박연준과 정국진 원래의 믿음도 그 순간에 다 깨져버렸다.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정국진 쪽에서는 박연준을 엄청나게 방비하고 있다.원래는 박연준이랑 이유영이 잘 되게 밀어주고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는 데서 안 보이는 데서 다 박연준과 이유영 사이의 발전을 막고 있었다.“그럼, 임소미 사모님과 이유영 아가씨가 파리를 떠난 건 정국진 회장님 쪽에서 무슨 일을 벌리시려고 하는 걸까요?”“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워!”지금의 파리에서 정국진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뭘 하려고 하는 건 다 너무 정상적인 일이었다.로열 글로벌이 오늘 같은 위치에 오른 건 중간에 여러 차례의 큰 변동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 정국진은 모든 것을 다 이유영에게 넘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뒤에서 뭘 준비하고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이유영이 갑작스럽게 떠났으니 정국진 쪽에서 무슨 큰 동작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럼, 우리 쪽에서는요?”문기원도 박연준의 불확실한 답을 듣고 표정이 심각해졌다.“일단 조용히 지켜보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닌 이상 우리는 정국진이랑 적이 되어서는 안 돼.”“네.”문기원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박연준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리듬 있게 의자를 톡톡 두드렸다.갑자기 박연준은 고개를 돌려 문 비서에게 물었다.“유영이 곁에 있던 지현우, 지금 어디
이 말을 들은 이시욱은 어리둥절했다.‘아이?’그날 이후, 이시욱은 전력을 다해 아이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강이한의 강력한 태도를 봐서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반드시 애를 낳았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하지만 근 2년 동안 이유영은 아무런 진료기록이 없어서 이시욱은 아이의 일에 대해 전혀 손을 댈 곳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강이한의 뜻은 이유영과 임소미가 갑작스럽게 떠난 건 아이를 보러 가기 위해서라고!?’“그런 거라면 이렇게 급하게 갈 필요가 없잖아요!”이시욱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맞는 말이었다. 만약 아이를 보러 가는 거라면 이유영은 이렇게 급하게 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하지만 만약 아이한테 문제가 생겼다면?”강이한은 더욱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수 있겠네요.”이시욱은 이 말을 하면서 말투도 따라서 바짝 긴장해졌다.만약 무슨 아이한테 문제가 생겨서 이유영이 이렇게 급하게 가는 거라면 너무나도 말이 되었다.이시욱의 말이 끝나자, 베란다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강이한이 쌀쌀한 말투로 말했다.“지금 당장 유영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차가운 말투 속에는 심지어 분노를 참고 있었다.이 시각, 강이한과 박연준의 분석은 완전히 서로 다른 쪽을 향했다. 박연준은 정국진 쪽에서 무슨 일을 벌일 것으로 생각했고, 강이한은 급하게 떠난 이유영을 보고 유일한 해석은 아이한테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다.‘그게 아니면 임소미가 따라갈 게 뭐가 있어?’필경 그들이 알아낸 데 따르면 임소미는 절대로 회사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일과 관련된 문제로 이유영이 이렇게 급하게 출장을 가는 거라면 임소미는 절대로 따라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유일한 해석은 아이였다.“네.”이시욱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얼른 가서 조사했다.이번에 이유영이 간 곳에 아이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그리고 이 시점에서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게 더 사람 마음을 쪼이게 했다.아이…!
박연준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유영이 정국진과 함께 비행장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정국진과 이유영은 박연준을 보고 다 깜짝 놀랐다. 특히 정국진의 눈 밑에는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네가 연준이한테 전화했었어?”“아니, 아니요!”이유영은 허리가 경직되는 것 같았다. 이유영도 박연준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생각 중이었다.이유영과 외삼촌 사이의 케미에 따르면 외삼촌은 그녀가 사라진 이 반 달 동안의 행방을 절대로 아주 꼭꼭 감추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박연준을 보면, 그는 이유영이 오늘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뻔했다.“난 외삼촌이 유영 씨 데리러 안 오는 줄 알고 데리러 왔어요.”박연준은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였다.검은 바바리코트를 입은 박연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청량하고 멋있었다. 비행장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많은 사람 중에서 그를 위해 눈길을 멈추는 여인이 적지 않았다.이유영은 외삼촌을 한눈 보고는 입을 열었다.“외삼촌?”“유영이 넌 연준이 차를 타.”정국진은 전혀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감정을 아주 깊게 잘 숨기며 말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필경 이렇게 늦은 시간에 데리러 온 박연준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그동안 이유영은 온갖 방법을 써서 박연준을 피했다.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람 면전에 대고 대놓고 피하는 건, 이유영은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없었다.결국, 이유영은 박연준의 차에 올라탔다.뒷좌석에서 박연준은 이유영의 차가운 손을 붙잡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비행기 안의 에어컨이 좀 낮았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이유영은 아주 밋밋한 말투로 말했다.그러고는 바로 주제를 따른 데로 돌렸다.“제가 오늘 돌아올 걸 어떻게 알았어요?”“이곳 파리에서 내가 그 정도 알아내는 건 몹시 어려운 일 아니에요.”“…”박연준의 말에 이유영은 말문이 막혔다.파리에서 박연준은 항상 겸손하게 지냈지만, 박연준의 숨은 힘은 심지어 몇
박연준이 입을 열었다.“됐어요. 당신을 강요하진 않을게요.”“연준 씨,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해요.”“…”박연준의 얼굴색은 더 어두워졌다.이유영은 고개를 틀어 창밖을 내다보며 더 이상 박연준을 보지 않았다. 지금 이때 그에게 눈길을 한 개 주는 것마저도 이유영에게 아주 큰 죄책감을 가져다주었다.전에는 외삼촌의 부추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유영은 자기와 박연준 사이에 대해 걱정이 태산이었다.박연준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아직 과거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그리고 이번에 다시 퀘벡에 다녀온 후 이유영은 자기와 박연준의 관계에 대해 더욱 확고한 생각이 들었다.이유영과 박연준이 함께 하는 길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유영은 이전에 가시밭길을 겪은 적이 있어서 이젠 더 이상 용기가 없었다.앞날이 꽃길만은 아닌 걸 알게 된 이상, 이유영은 그 한 발짝을 내디딜 용기가 있을까?답은 없었다!지금의 그녀는 결국 예전이랑 달랐다.“유영 씨 지금 절 확실하게 거절하는 거예요?”박연준의 엄숙한 말투 속에는 몇 푼의 냉랭함이 추가되어 있었다.‘거절?’이유영은 두 눈을 감았다.머릿속에서 반짝이는 그 주먹만 한 작은 얼굴을 생각하며 결국 마음을 굳게 먹었다.“저는 연준 씨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요.”“강이한 때문인가요?”박연준의 말투는 더욱 차가워졌다.“아니요!”사실이었다. 강이한 때문에 그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었다.이 순간, 이 답을 하는 이유영의 태도는 아주 굳건했다. 하지만 그녀의 거절은 강이한과 한 톨의 상관도 없었다.“유영 씨, 저랑 완전히 선을 긋는 후의 결과가 어떤지 알고 있죠?”박연준은 ‘결과’ 이 두 글자에 강조를 주며 말했다.아주 평온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자동으로 그 두 글자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이유영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연준 씨 지금 저를 협박하는 거예요?”이유영은 박연준의 말을 듣고 한 첫 반응이 바로 이거였다.‘날 협박하는 건가
우지와 우현은 돌아온 이유영을 보고 얼른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넘겨받았다. 특히 우지는 입을 열고 말했다.“아가씨가 자리를 비운 반 달 동안에, 반산월의 가로등 전부를 다 아가씨 눈에 제일 적합한 색으로 바꿨습니다.”“네. 수고했어요.”“국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사모님의 지시대로 준비했는데 아가씨는 지금 마시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씻고 나오시겠습니까?”“먼저 씻고 다시 나올게요!”이유영도 확실히 피곤했다.외숙모가 그렇게 먼 곳에 있으면서까지 자기를 신경 쓸 줄 이유영은 생각도 못 했다.이 반 달 동안, 이유영은 정말 힘들게 지냈다. 그래도 외숙모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지 외숙모마저 없었더라면 이유영은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지금 외숙모가 거기에 남아계시니 이유영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샤워하고 나온 이유영은 기다란 로브 가운을 입고 늘씬하고 흰 다리를 드러내고 계단을 내려왔다. 이에 우지랑 우현은 넋을 놓고 이유영을 보았다.정말이지 비록 이유영은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 다리는 정말 눈이 엄청 많이 갔다. 날씬하고 꼿꼿한 다리 때문에 전체적인 신체 비례도 좋아 보였다.“뭘 그렇게 봐요?”두 사람의 얼굴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이유영은 이상하다는 듯 두 사람을 보며 투덜거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아가씨는 갈수록 이뻐지는 것 같아요.”“…”“그러고 보니 사모님의 2년 동안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이유영은 이 말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우지의 말은 진심이었다. 외숙모는 몸조리에 아주 일가견이 있어서 이유영에게 여러 가지 보양식 국을 끓여주었다.보기에는 영양가 높은 음식이지만 사실은 다 피부에 좋은, 여자의 몸에 좋은 국들이었다.이유영은 식탁에 앉았다.우지는 이유영이 이 반달 동안 제대로 잘 먹지 못한 것을 알고 특별히 이유영이 좋아하는 음식들만 가득 준비했다.“사실 이렇게 많이 준비 안 해도 되는데, 저는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이유영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그저 마음이 아플
하지만 강이한의 생각 밖인 건 이유영이 떠난 이후로 꼬박 반 달 동안 그녀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다.정말 오늘날의 이유영은 재주가 조금 있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에서 그제야 통제 불능이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배웠다.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조롱의 미소였다.“당신은 날 참 “바로 묻는 말에나 대답해!”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세졌다.“내가 당신한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어?”“아이를 보러 간 거야?”이유영이 시종 정면으로 물음에 대답하지 않자 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더 거세졌다.“…”강이한의 물음에 이유영은 표정이 굳어졌다.그리고 바로 안색을 회복하였다.하지만 이유영의 이런 미세한 표정 변화도 강이한의 눈을 빠져나가진 못했다.강이한은 빠른 걸음으로 이유영에게 다가가 그녀를 식탁에서 끌어냈다. 이유영 앞에 놓였던 국물은 강이한 때문에 떨어져 바닥에 튀었다.외숙모가 주방에 당부해 놓은, 자기를 위해 만든 국물이 이렇게 낭비가 된 것을 본 이유영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짝!”이유영은 강이한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강이한은 그저 국물 한 그릇 때문에 이유영이 이렇게 자기한테 손찌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걸 따질 틈이 없었다.강이한은 한 손으로 이유영의 잘록한 허리를 감쌌다.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 때문에는 강이한은 이유영 목 아래의 흉터들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강이한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지난번 차에서 강이한은 이미 이런 대면적의 화상 흉터들을 한번 보았었다. 하지만 이런 밝은 조명 아래서 이렇게 다시 보니, 그의 마음은 여전히 호되게 아팠다.강이한은 깊게 한숨을 들이쉬고 물었다.“아이, 아직 살아있지?”“아니! 오래전에 죽었어!”“이유영!”“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물어?”‘자격도 없는 놈!’이유영의 이런 날카로운 말에 강이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실… 아이에 관해 물을 자격이 없었다.하지만 반드시 물어야 했다.“소은지 소식이랑 바꿀게. 응?”“
그리고 아이가 살아있다고 해도 강이한은 지금 소은지의 소식으로도 아이의 소식을 얻어낼 수 없었다.이로써 이유영의 마음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강이한에 대해 일말의 미움도 남아있지 않는 게 아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이 미웠다. 아주 미웠다.강이한 몸에 있는 뼈를 다 부수고 싶을 만큼 그가 미웠다.그리고 이유영이 강이한을 미워하는 건... 마땅한 일이었다. 지난번 생으로부터 지금의 생까지, 이유영이 강이한 때문에 잃은 게 얼마나 많은지 강이한이 제일 잘 알았다.“가자.”결국 강이한은 몸을 돌렸다.강이한의 말에 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렸다.‘가자고? 어딜?’“설마 그새 까먹었어? 반 달 전에 말했잖아. 이 2년 동안 당신이 박연준이랑 만난 시간만큼 나랑 같이 있어 주기로.”이렇게 하면 이유영은 소은지의 소식을 얻을 수 있었다.이 반달 동안, 이유영은 아주 바빴고 잘 지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이한이랑 떨어져서 지낸 연유로 많이 냉정해졌다.“당신이 갖고 있는 소은지 소식, 정말 확실해?”이유영은 애써 평정심을 잡으며 물었다.다시 말해서 이유영은 그저 이 남자랑 계속 엮이고 싶지 않았다.강이한은 바로 이유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핸드폰을 꺼내서 뒤적뒤적하고는 핸드폰을 이유영에게 건넸다.이유영은 그가 넘겨주는 핸드폰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이유영의 인식 속에 강이한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시각에 강이한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것은 분명 소은지랑 상관이 있는 것이라고 이유영은 생각했다.결국 이유영은 강이한의 핸드폰을 넘겨받아 손에 들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가슴은 다시 한번 조여들었다.“은지 왜 이래?”전에 강이한이 보여준 소은지의 낭패한 사진 때문에, 특히 소은지의 아주 넋이 나간 두 눈은 시시각각 이유영의 신경을 건드렸다.하지만 지금, 강이한의 핸드폰에는 소은지가 두 눈을 꼭 감고 병원의 병상에 누워있는 사진이었다. 핼쑥해진 얼굴만 보아도 소은지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을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
송연미는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께서 아직 현우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으셨어.”그 말을 하면서 송연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그 무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소은지가 송연미를 바라보는 눈빛은 침묵 속에서 날카로움을 띠고 있었다.“네가 아직 여기 있기 때문이야.”송연미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어느 정도 압박감이 배어 있었다.소은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송연미는 오늘 밤 소은지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소은지는 품에서 잠든 고양이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송연미가 그 고양이를 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왜냐하면, 송연미도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아마 현우는 그것을 잊었을 것이다. 송연미와 현우의 사이가 좋았을 때, 송연미는 현우에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좋아, 예쁜 고양이 한 마리 찾아 줄게.”그의 말은 여전히 소은지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그때 그들은 정말 행복했다. 그 누구도 그때가 마지막 평화로운 순간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갔고 서로 다른 인생의 궤도로 나아갔다.송연미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기다린 것은 현우가 약속한 예쁜 고양이가 아니라 아버지가 그녀를 엔데스 운빈에게 시집보내려는 계획이었다.송연미는 강하게 반항했다. 미친 듯이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가문 내의 압박과 협박에 못 이겨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송연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하루를 겪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모든 것이 단번에 깨져버렸고 그녀는 고통과 분노 속에서 절망했다.그래서 그녀는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미워하게 된 것이다.“너랑 엔데스 운빈의 관계 때문에 네 아버지가...”소은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연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이 가문은 어떤 집안인 걸까?소은지가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송연미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하지만 소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딘가 고독한 기운이 스며드는 걸 느끼며,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넌 어떻게 생각해? 나와 현우 씨, 나름 함께 고난을 겪어온 사이 아닌가?”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시선을 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소은지의 말에 송연미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송연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고 눈 속에는 질투의 불씨가 번뜩였다.하지만 송연미는 엔데스 가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인 만큼 그런 감정들은 금세 억누를 수 있었다.“엔데스 가문이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어.”중대하다?소은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우가 자신을 이렇게 급하게 파리에서 떠나게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려갔어.”“...”그 말을 듣고 소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송연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송연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소은지, 너 모르지?”“뭘 말하는 거야?”“예전에 회장님 세대 때, 집안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소은지는 조용히 송연미의 말을 들었다.송연미가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송연미 말대로 소은지는 그들의 권력 다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아버지가 그러셨어. 그 당시 엔데스 회장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었다고. 지금의 여섯째 도련님보다 훨씬 더 무서웠대.”“...”그 말을 들은 소은지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졌다.소은지는 가족 모임 때 한 번 마주쳤던 차가운 눈빛의 백발 회장님을 떠올렸다.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그녀를 얼어붙게 할 만큼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분이었다.엔데스 명우조차 이미 충분히 무서운 존재였는데, 회장님은 그보다 더했다니. 엔데스 가문이란 현우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끝없는 심연이었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리고 간 이유는 미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큰형이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야.”단서 하나로
한때 청하시에 머물던 시절.소은지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아온 탓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다.남자를 광적으로 사랑한다는 것 역시 그녀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불같이 뜨거운 사랑이 결국 아픔으로 끝난다면, 그런 사랑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특히 현우의 내면을 어느 정도 들여다본 지금, 그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하지만 여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순진하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과거에 소은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그래, 여자가 순진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마지막에 우는 건 그 여자가 아닐 수도 있어.”소은지의 말은 냉소적이었고 태도는 언제나 가벼워 보였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소은지는 여자가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왜 굳이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 모를 그런 감정에 휘말려야 할까?사랑은 진심을 다한 사람이 결국 패배자가 되는 잔인한 게임 같았다.소은지는 너무 많은 상처받은 여자들을 보아왔다.그리고, 너무나 많은 상처받은 남자들도 보아왔다.하지만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던 소은지는, 현우를 마주하는 순간 이미 마음이 깊이 흔들리고 있었다.“얼마나 걸릴까요?”소은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우천시로 떠나는 것에 관한 질문이었다.현우가 소은지를 우천시로 보내려 한다는 건, 현재 파리의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었다.시간은 얼마나 필요한 걸까?“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한 달 정도 걸릴 거예요.”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소은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엔데스 가문이 정말로 벼랑 끝에 다다른 걸까?소은지는 깊은숨을 내쉬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을 억눌렀다.“네.”짧은 한마디.그러나 그 짧은 대답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은 오직 소은지만이 느낄 수 있었다....소은지에게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