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진이 물었을 때 소만리는 이미 답을 예상한 듯했다.아니나 다를까, 전화기 너머로 간호사가 대답했다. "네? 폐암 이요? 정신적인 문제 말고 몸은 건강한데 무슨 폐암에 걸려요?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정적이 흐르고, 소만리는 순간 몸이 굳었다.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시윤 할아버지 저번에 한 번 없어진 적은 있었어요, 근데 손녀가 숨바꼭질 하자고 숨으라고 했다고 그랬어요.”여기까지 듣자 소만리는 이미 다 알아차렸다.외할아버지는 폐암에 걸리지도 않았고, 납치된 적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소만영이 꾸민 짓이었다."만리야, 이제야 알겠다. 네가 외할아버지를 일부러 숨기고 또 내가 납치했다고 모함했구나.”소만영은 선수 쳐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만리야, 너 도대체 나에게 왜 그래, 난 너를 내 친동생으로 여기는데, 네가 어떻게 이런 짓으로 나를 모함할 수 있어, 네가 정말 그렇게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할아버지 목숨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지.”"왜 그러겠어! 모진이가 너를 미워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 전예는 소만영과 같이 거짓 연기를 했다. "소만리 너 정말 가증스럽구나! 우리 소 씨네 집에서 대학까지 보내주면서 키워줬더니 네가 은혜를 원수로 갚어? 만영이 남자친구를 뺏는 것도 모자라서 이런 악랄한 짓까지 해? 넌 정말 사람도 아니야!”두 모녀가 번갈아 가며 소만리에게 죄를 뒤집어 씌었다.소만리는 갑자기 무력감을 느꼈고,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다 소만영이 꾸민 음모였다. 소만리는 기모진이 자신의 변명을 믿지 않는 걸 알면서도 기모진에게 마지막 기대를 가졌다. “기모진, 네가 믿은 안 믿든 상관 없어, 하지만 난 이런 비열한 짓 한 적 없어.”“찰싹!”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만리 얼굴에 뺨을 날아와 입에 피가 났다.화끈거리는 볼의 통증 보다 기모진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 아팠다."소만리, 더럽기만 한 게 아니라 양심도 없구나,
소구와 전예는 소만리가 피를 토하자 의외였지만 통쾌했다.전예와 소구는 문을 닫고 소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차라리 그녀가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소만리는 온몸이 흙으로 뒤덮였다. 빗물이 가득한 화단 옆에 웅크려 복부를 움켜쥐고 소만영을 안고 차에 올라타는 기모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모진은 백미러로 보이는 소만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소만리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만영은 그런 소만리를 쳐다보며 승리의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소만리는 절망에 찬 눈으로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실낱 같은 도움의 손길을 포기하지 않았다.소나기처럼 많은 눈물이 흘러 소만리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았다.기모진은 소만영 뱃속의 아이를 그토록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아이를 가진 소만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 소만리는 자신이 가여워서 쓴 웃음이 났다. 언제부터 소만리의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는 사랑하지 말았어야 할 남자 사랑한 그 순간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소만리는 심각한 내상과 외상을 입고 며칠간 병원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다. 소만리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오직 소군연만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다. 소만리는 소군연과 기모진이 더 이상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소만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통화를 했다. 퇴원하는 날, 의사는 그녀의 현재 상태로는 유산을 하고 종양 절제를 할 수 없다며 유감스럽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감정 변화 없이 평온하게 웃었다.소만리는 퇴원하고 병원을 나섰다. 겨울의 따뜻한 햇살이 그녀를 반겼다. 하지만 그녀는 그 따뜻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특히 기모진이 자신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니 심장이 찢어지듯 아팠다.소만리가 택시를 잡으러 가는 던 중 병원 옆 문에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소만리가 자세히 보니 사화정과 그의 남편 모현
소만리는 별장에 돌아와 몇 벌의 옷만 챙겨 가려다 소파 위에 있는 아기 옷을 보았다. 그녀는 옷을 손에 쥐고 그리움을 금치 못했다. 이 아기 옷들이 모두 기모진이 소만영에게 사준 거라고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미어졌다.소만리가 삼 개월이 된 배를 쓰다듬자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소만리는 이내 눈물을 훔쳤다.소만리는 자신에게 그토록 냉철하게 대하는 기모진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소만리는 아기 옷 한 벌을 들고 내려왔다. 그리고 뜻밖에도 문 앞에서 기모진과 소만영을 만났다. 소만영과 기모진이 팔짱 끼고 걸어오는 것을 보자 소만리의 마음이 바늘에 찔리듯 아팠다."만리야 어디 가?" 소만영은 소만리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보고 알면서도 물었다. “어? 만리야 너 언제 그 아기 옷 가게 갔어? 그 옷 우리 아기 선물이야?”소만리는 소만영처럼 당당한 내연녀를 본 적이 없다.소만리는 소만영을 혐오하듯 노려봤다. "유부남 아이 임신하고도 그렇게 떳떳하다니, 소만영, 너 낯짝 정말 두껍구나.”소만영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소만영은 억울한 눈으로 기모진을 바라보았다.“모진아, 나 그냥 갈게, 만리가 또 질투할까 봐 겁나, 나를 다치게 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우리 아이까지 다치게 될까 무서워.”소만영의 말에 기모진은 화가 났다.“네가 왜 가.” 기모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만리를 노려봤다."꺼져, 앞으로 절대 만영이 눈에 띄지 마.”기모진이 냉담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리고 소만리가 들고 있는 아기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그 옷, 내가 만영한테 선물한 거야, 누가 만지래? 너 네가 얼마나 더러운지 모르지? 네가 만진 옷을 우리 아들이 어떻게 입어!”기모진은 소만리를 더럽다고 말 하며 소만영의 아들을 말했다.소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아픈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 12년 동안 사랑했던 기모진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기모진, 나한테 왜 그렇게 독하게 굴어? 내가 너랑 자려고 계획한 거라고 생각해? 그래
소만리가 고른 옷은 뱃속의 아이의 성별과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옷 이였다.소만리가 계산을 하려고 하는 순간, 뒤를 돌자 소만영이 있었다.소만영은 혼자 온 것 같았다. 소만영이 웃자 소만리는 그녀를 피해가려 했다. 하지만 소만영이 그녀를 막아섰다."만리야, 그렇게 심각한 일을 저지르고 쇼핑할 정신이 있어? 경찰이 아직 안 찾아왔어?소만리는 소만영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너도 참… 재능이 없으면 하지 말지 왜 남의 작품을 베끼고 그래? 지금 창우 회사에서 네가 회사 명예에 손해를 끼치고 다른 사람 저작권 침해했다고 고발한데, 이 죄가 성립되면 너 감옥 갈 거야.”소만리는 어리둥절했다. 소만영이 말한 창우 회사는 바로 그녀에게 커플링 초안을 의뢰했던 회사이다.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소만리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표절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베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소만영, 헛소리하지 마! 네가 이렇게 나를 모함하는 게 바로 내 명예를 훼손하는 거야!”"만리야, 억지로 버티지 마, 이런 일 처음 겪는 것도 아니잖아." 소만영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소만리는 소만영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손해를 많이 봤기 때문에 소만영이 다시는 그녀를 모함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소만리가 소만영을 지나쳐갔다. 그러자 소만영이 황급히 달려와 그녀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만리야, 네가 날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제발 내 아이까지 죽이려 하지 마,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니!”소만영은 또 이런 식이었다.소만리는 소만영에게 한 번 속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소만영에게 속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그러나 소만영의 간사함은 소만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소만영은 갑자기 소만리의 손을 끌어당겨 중심을 잃은 듯 뒤로 넘어졌다."아!"소만영이 비명을 지르자, 옷 가게의 직원과 손님들이 뛰쳐나왔다.그리고 때마침 기모진이 나타났다. 소만영이 땅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배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모진이 그
소만리는 구치소에 갇히고 이틀 후에야 기모진을 보았다. 저번과 똑같은 면회실이었지만 그녀는 전보다 더 처참했다. 그리 눈앞의 기모진의 악기도 더 심했다.기모진은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들어와 소만리의 옷깃을 잡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질 듯 노려봤다."소만리, 내가 경고했지. 조용히 사는 게 그렇게 어려워? 죽고 싶어서 안달 났지?"기무진, 내가 밀지 않았어! 소만영이 잡고 있던 손을 고의로 놓은 거야! 못 믿겠으면 CCTV 확인해봐! 옷 가게에 분명 CCTV 있어! 모진아, CCTV 보면 진실을 알게 될 거야!" 소만리는 마지막 희망을 잡듯 악착같이 말했다. "네가 밀었잖아! CCTV에 분명히 찍혔어!”“뭐?”소만리는 멍해지며 머리속이 하얗게 변했다.기모진이 그녀에게 CCTV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 속 장면은 소만리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CCTV 각도에서 봤을 때 마치 자신이 소만영이 밀친 것처럼 보였다. 기모진에게 소만리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CCTV 속 증거 앞에 그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기모진 분노가 소만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소만리, 이 증거를 보고도 아직 할 말이 남았니? 만영이 아기 유산 됐어? 좋아?소만리는 소만영이 유산됐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다. 소만리는 의식적으로 아랫배를 감쌌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기모진의 화난 얼굴을 보며 다시 해명 했다.“모진아, 나 진짜 소만영 밀지 않았어, 이번에도, 저번에도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이게 다 소만영이 꾸민 짓이야!”"하." 기모진이 차가운 웃음이 소만리를 떨게 만들었다. “만영이 아기 유산됐다고! 그런데 아직도 만영이가 모함해서 너를 해치게 했다고? 소만리, 세상에 어떻게 너같이 더럽고 천하고 악랄한 여자가 있니!" 기모진은 이를 갈았다. 그의 깊은 증오와 원망은 명백히 알 수 있었다."너는 만영이를 다치게 하고, 작품도 베껴서 속이고 돈 벌었잖아. 소만리, 앞으로 내일의 태양은 볼 생
소만리는 항소가 기각되면서 이 험난한 역경을 피할 수 없었다.3년.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소만리의 아이가 태어나는 날까지 그녀가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다.소만리는 저번에 감옥 갔을 때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구타를 당한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교도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악몽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날 저녁 소만리는 삭발한 여자 죄수 무리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소만리는 저항할 힘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종양이 아프기 시작하며 온몸이 떨렸다. 소만리는 피할 방법이 없어 자신의 몸을 꼭 껴안아 배를 보호했다.그리고 소만리는 몇일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죄수 무리들은 소만리의 배를 때리지 않았다.소만리는 교도관에게 구타당한 일을 몇 차례 말했지만 모두 흐지부지했다.소만리는 매일 밤이 절망적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뱃속에 있는 소중한 작은 생명을 생각하며 꿋꿋이 살아갈 수 있었다. 그저 기모진이 너무 잔인했다.소만리는 기모진과 다시 만나면 기모진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12년 동안 소만리 혼자만의 집념이었다.소만리는 소군연이 보낸 약으로 통증을 달랬다. 하지만 여전히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그녀의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되어줬다.아이가 열 달이 가까이 돼 출산 예정일이 왔다. 소만리는 살아 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했다초여름 밤 천둥·번개가 쳤다. 소만리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 죄수 무리들이 또 그녀를 찾아왔다. 주먹과 발길질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번엔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두 여자가 그녀의 두 손을 꽉 눌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소만리의 바지를 거칠게 찢어 벗기고 그녀의 다리를 올렸다.소만리는 죄수들이 뱃속의 아이에게 어떤 짓을 할 것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놔!"그러나 죄수들은 그녀의 몸부림을 무시했다. 그러자 소만리는 배에서
소만리는 교도관의 반문에 깜짝 놀라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 사전에 계획하고 그들이 서로 꾸민 일이다. 그녀가 사랑해서는 안 될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소만리는 차가운 철창을 붙잡고 절망적으로 무릎을 꿇었다.기모진,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을래…소만리는 자신이 출소하는 날까지 살아있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소군연 보내준 약이 종양에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출산한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였는지 결국 소만리는 기적처럼 살아났다.소만리가 출소하는 날은 화창했다. 하지만 소만리의 지난 3년 동안의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감옥에 갇힌 그 천 일 동안 생긴 상처가 그녀의 마음에 곳곳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았다.소군연과 예선은 소만리에게 달려갔다. 예선이 깡마르고 넋이 나간 소만리를 보고 꼭 껴안아줬다. "만리야, 이제 걱정 마, 앞으로 나랑 같이 살자."소만리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가슴이 찌릿했다.소군연은 초췌하고 정신 못 차리는 소만리를 보며 미안함과 후회의 마음이 생겼다.만약 소만리가 그 일을 당했을 때 소군연이 해외를 가지 않았다면 소만리 혼자 그런 일을 겪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군연은 소만리에게 연신 사과했다. 소군연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그녀에게 변호사 구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소만리는 미안해하는 소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 고마워요, 근데 저한테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선배 저한테 잘못한 거 없어요.”소만리에게 잘못한 사람은 소만영 그 독한 내연녀, 그리고 그녀가 12년간 사랑했던 냉혈한 기모진이다.간단하게 정리하고 소군연은 제일 먼저 소만리를 데리고 남사택에게 찾아가 종합검진을 받았다. 남사택은 검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라 소만리를 쳐다봤다. "제가 새로 개발한 약이 정말 종양 진행과 악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줄 몰랐어요.”“그럼 이제 수술 가능한가요?” 소군연은
다음날 소만리는 과일과 외할아버지가 즐겨 드시는 간식을 사서 정신병원에 갔다.그녀는 곧장 외할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병실 안의 환자는 외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소만리는 즉시 데스크로 가서 물었다. 소만리가 자신이 시윤 할아버지 가족이라고 말하자 간호사가 미묘하게 쳐다보며 퉁명하게 말했다. “시윤 할아버지 외손녀예요? 외손녀라면서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왜 이제 오셨어요? 장례식장으로 가보세요, 할아버지 유골 그곳에 있어요.""툭." 소만리는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바닥에 떨어트렸다.소만리는 넋이 나간 공허한 눈에서 순간 따가운 아픔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마음이 죽고 마비되어 다시는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외할아버지가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소만리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소만리는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가 외할아버지의 유골과 유품을 전달받았다. 겨울 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소만리는 비바람에 무릎을 꿇고 외할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녀의 마음속 상처와 아쉬움은 메울 수 없이 슬펐다.예선은 달려와 소만리를 안아주며 위로했다.“울지 마 만리야, 모두 다 지나갈 거야.”예선의 도움으로 소만리는 할아버지에게 묘소를 마련해 드렸다.제사를 지내고 정신병원으로 돌아와 외할아버지 사망 이유를 묻자 간호사는 얼렁뚱땅 대답했다.“나이 들어서 돌아가신 거예요"나이 들어서? 소만리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 외할아버지를 만나 뵈었다. 그때 할아버지의 정신 상태는 멀쩡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소만리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할 수 없었다.소만리는 외할아버지의 유품에서 나비 모양의 작은 옥 목걸이를 발견했다. 목걸이에는 소만리의 본명 ‘천리’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소만리는 이 목걸이는 외할아버지가 외손녀에게 주는 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