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가 입밖으로 꺼내는 매 한마디의 말을 듣자 기모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심장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기모진, 오늘 네가 날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널 죽 일거야. 내 아이를 위한 복수야." 그녀의 눈빛은 처음보다 맑았고 무척이나 단호했다. 기모진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피식 웃었다. "기다릴게." 그는 말을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떠났다. 소만리는 검은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눈에서 사라지자 마치 모든 힘과 기력이 다 빠진 듯했다. 맥이 풀린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유골함에 기대었다. 뜨거운 눈물이 또 한번 그녀의 눈에서 터져버렸다. 그녀의 마음이 마비가 될 정도로 아파왔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소만영이 나타났다. 유골함을 끌어안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소만리를 보는 소만영의 손에는 과도가 하나 들려있었다. 그녀는 소만리의 앞으로 다가가 쭈그린 후 손을 뻗어 그녀의 단발머리를 잡아당겼다. "쯧쯧, 그러게 나한테 대들더니. 이제야 좀 무서워?" "풉!" 소만리는 냉소했다. 그녀는 더이상 소만영과 말씨름 하면서 체력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소만영 너 이 독한 년 그렇게 대답하면 한번 죽여보든가!" "하…죽고싶어? 미안하지만 난 그렇게 잔인하진 않거든." 소만영은 거드름을 피우며 가볍게 웃었다. "근데 말이야. 니가 자기 귀한 아들 얼굴 망쳐놨다고 모진이가 너한테 두배로 돌려 줄거라는데. " 소만영의 음험한 목소리와 함께 소만리의 오른 쪽 얼굴에 살이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다. 살이 찢기는 고통에 온몸에 소름이 돌았지만 소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억지로 그 고통을 참아냈다. "쨍그랑." 소만영이 과도를 소만리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소만리의 복부를 향해 발을 들어 거세게 차버렸다. "퉤! 염치없는 년! 넌 벌써 죽었어야 했어! "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떠났다. 소만리가 힘겹게
소만리가 그렇게 말하자 이설만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마치 자신과 다른 생물체를 보는 듯 소만리를 쳐다보았다. "너 정말 독한 년이구나." 몇명의 여자동기들이 비아냥거렸다. "소만영은 무슨 재수로 저런 정신병자를 만났을가. 유독 쟤한테만 더 심한것 같아." "그러게나 말이야. 남의 남자친구 뺏은 것도 모자라서 아직도 소만영이 하는일에 방해를 하질 않나. 죽인다고 하질 않나. 어디 아픈거 아니야?" "우린 쟤랑 좀 멀리 떨어져 있자. 괜히 미쳐서 우리한테까지 불똥 튈라." 소만리한테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하며 그녀는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일어나기만 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움직이는걸 보자 술렁거리던 여자 동기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행여나 소만리가 그들에게 뭔 짓이라도 할가봐. 이 장면이 웃긴지 소만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기묵비를 찾으러 간것이었다. 소만리가 찾아온걸 보자 기묵비는 반갑게 그녀를 맞아주었다. 소만리의 초췌한 얼굴색과 오른쪽 얼굴에 남겨있는 선명한 칼자국을 보자 기묵비는 깜짝 놀랐다. "무슨 일 있었어?"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였다. 소만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기대표님 전 괜찮아요. 사직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사직이요? " 기묵비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소만리를 쳐다보았다. "왜?" "제 존재로 인해서 부서 전체가 영향받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아요. 요즘 인터넷에서 떠도는 저에 대한 나쁜 여론들 당연히 기대표님도 보셨겠죠?" 소만리가 하는 말을 듣자 기묵비는 뭔가 알아들은 듯하였다. "기대표님, 그동안 챙겨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짐싸서 바로 떠나겠습니다." "만리야." 기묵비는 몸을 돌려 나서려는 소만리를 불러세웠다. "난 너를 믿어. 그러니까 다시 사직할 필요 없어." 소만리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만리는 바람에 부들부들 떨면서, 피가 얼어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황급히 자택으로 돌아와서 여벌의 옷과짐을 싸고밤새 이사했다.더 이상 이 악마보다 더 무서운 남자를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의 점점 독해지는 수단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가 그녀 앞에서 그녀의 가장 친한 사람들을불행하게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아파오는 상처를 만지고 눈을 감았다.기모진, 널 사랑한 결과가 이거라니………연말 이 다가오자 많은 회사들이 이 시기에 송년회를 진행한다.기묵비는 소만리에게 자신의 여자 파트너로 송년회에 참석하라고 고집했지만, 소만리는 끝내 거절했다.식사자리가 끝난 뒤, 소만리는 같은 부서의 동료들과 겉이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의 있는 룸은 매우 컸다. 회사 사람들은 모두 모여 술을 마시고 게임을 즐기고 있었지만 소만리만 안 껴주었고 그녀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다.연신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그렇게 흥겹고 행복한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소만리는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기는커녕 슬픔만 느껴졌다.그녀는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뜻밖에 기모진을 보았다. 기모진도 여기에 있을 줄 몰랐다. 소만리는 놀라서 가슴이 뛰었고 안절부절하며 뒤돌아 도망쳤다.기모진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어렴풋이 낯이 익은 뒷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따라갔다. 소만리는황급히 룸으로 달려왔지만 놀란 가슴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직장 동료들은 여전히 재미나게 장난을 치고 있고 몇 명은 이미 술에 취해 소파 위에 쓰러져 있었다. 아무도 소만리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였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자 스피커에서는 사랑에 관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는 그녀도 아주 잘 아는 노래 ‘천진유사’ 였다.전주가 흐르자 그녀는 스크린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래의 가사는 그녀가 여태까지 걸어오면서
소만리의 손이 떨리자 손에 쥐고 있었던 열쇠가 “딸그락” 하고 그녀의 발에 떨어졌다.몸과 마음속의 있는 상처들이 한순간에 깨어난 거 같았다. 살이 베이는듯한 고통이 그녀의 몸을 덮치자 그녀는 통증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 해졌다. 머릿속에는 온통 기모진이 그녀의 눈 앞에서유골함을 떨어트리는 장면뿐이었다.어두운 복도 불빛과 함께 그녀의 마음도 어두워졌다.“소만리 지금너한테 말하고 있잖아.” 기모진의 차갑고 포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만리는 반사적으로 몸서리를 쳤다. 기모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자 그녀는놀라서 뒤 걸음을 쳤다. 그러자 그녀는 기모진의 발 옆에서 무릎을 꿇고 계속 빌었다.“기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 대표님을 사랑하면 안 됐었고 소만영을 건들면 안 되는 거였는데.”“제 잘못을 제가 꼭 뉘우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놔두세요.”“우리의 아기도 이미 하늘나라로 떠났고유골마저 처참하게 땅에 흙과 함께 섞여졌어. 그 아이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지워졌어. 그러니까 제발 외할아버지의유골만큼은 건들지 말아 줘. 다시는 너의 대해 아무런 생각도 안 할게. 이혼 합의서에도 사인할게. 기가 사모님 노릇 안 할래. 이번 생, 다음 생 그 이후의 생도 너랑 결혼 안 할래.”기모진은 멍하니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복도의 불빛이깜빡거렸다. 기모진은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사람이 소만리인게 믿기지 않았다. 고개를 절대 숙이지 않고기모진이 소만영을 죽이지 않으면 그녀가 소만영을 죽이겠다고평생 쫓아다닌다고 했던 소만리는 어디에 갔지? 기모진은 가슴이철렁 내려앉아 소만리를 부축하며 일어났다.“소만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죄송합니다, 기모진씨. 또 화나게 했죠. 제가 사라질게요.”소만리는 고개를 숙인 채 그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에서 그녀는 못생겼고 비참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뒤도 안 돌고 거리로 뛰어갔다. 그녀 마음속의 빙산이 녹고 까만 파도가 그녀의마음을 뒤덮었다. 그녀는 기모진을 다시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의 점점 잔인해지는 수단은 이미 빈털터리가 된 그녀의 몸과 마음으로 감당이 불가능하였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그저 도망가고 싶었다.하늘에서 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소만리는 흐릿한 정신 상태로 횡단보도에 뛰어갔다. 그녀가 길을 건너려고 할 때 그녀를 향해빠르게 달려오는 있는 차 한 대가 보였다. 강렬한 차의 불빛이 그녀를 향해 비추고 있자 소만리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횡단보도 중앙에 서고 있었다.번화가의 가로등을 보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리셋 하고 싶다. 소만리가 눈을 감자 귀를 때리는 경적소리가 울렸다. 이 아슬아슬한 순간에 소만리는 기모진의 강한 힘에 이끌려 그의 품에 안겼다. 차랑 부딪치려고 하자 그녀를 안고 기모진은 길옆으로넘어졌다.“소만리 잘 들어! 진짜 죽는다고해도 내 손에서만 죽을 수 있어.”기모진의 분노가 찬 목소리가들렸다. 소만리는 정신을차리고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그녀가 기모진을 마주치는 게 무서워 죽을 생각까지 했다니.. 기모진은 소만리를 데리고그녀가 살고 있는집으로 돌아왔다. 겨울의 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기모진은 한기와 빗물로 젖어진 코트를 벗고 소만리에게 명령을 했다. “따뜻한 물 준비해놔.”소만리는 의아해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내 말 안 들려?” 기모진은 짜증을 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네가 미친 듯이 죽으려고 뛰어들지만 않았어도 내가 지금 이 꼬라지 일까?”그는 모든 책임을 소만리에게 전가했다.소만리는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기모진은 유난히 그녀의 얼굴에 있는 선명한 x자 칼자국이 신경 쓰였다.기모진이 그녀의 집을 둘러보자 그의 집 화장실이 이집 보다 더 넓었다.소만리가 기모진을 피하기 위해 고작 이런 곳에 숨어있었다니…기모진은 차갑게 웃었다. 그러자 시선이
일기장이 그녀의 얼굴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긁었다. 순식간에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피를 흘렸다. 하지만 기모진은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가 그녀의 옆으로 스쳐지나자 듬직한 어깨가 그녀의 연약한 몸에 부딪혔다. 그녀는 침대 옆으로 넘어지고 앞에는 그가 던져 흩어진 일기장이 있었다. 소만리가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썼던 문장이 보였다. “모진오빠, 아리 드디어 오빠를 다시 만났어요...”소만리는 일기장에 썼던 문장을 읽고 자신을 비웃었다. 웃다가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려왔다.따뜻한 눈물이 그녀의 상처를 지나가고 턱 선을 타고 내리자 피눈물이 되어 일기장에 떨어졌다.모진오빠…그녀가 사모했던 오빠는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서 죽었다. 밝고 상냥하며 그녀와 평생을 약속한 남자아이는 그녀의 마음속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소만리 얼굴에 상처는 농이 져서 병원에 갈수 밖에 없었다. 상처를 처리하고 병원을 나서려고 하자 간호사 두 명이 그녀의 옆을 황급히 지나갔다.“모 사모님 수술해야 되는데 병원의 있는 RHAB형의 피는 이미 다 썼는데 수술하다 무슨 일 생기면 누가 책임져!!”“맹장염수술은 보편적으로 피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은 이상… 설마 그렇게 재수 없겠어? 근데 사모님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빨리 수술해야 되는데”소만리는 그 두 간호사를 따라갔다. “죄송하지만 혹시 사화정 말씀하시는 건가요?”“맞아요, 누구세요? 물어보실 거 있으면 데스크로 가세요, 저희 지금 바빠요” 간호사는 소만리를 위 아래로 훑었다.”” 간호사들이 빠르게 뛰어나갔다.소만리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수혈처로 뛰어갔다. 그러자 멀리서 소만영의 욕설이 들렸다.”무슨 병원이 맨날 피가 부족해!! 저번에는 내 아들이고 이번에는 엄마고!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야??” 그녀는 간호사들을 질책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간호사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사울이 붉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소만영의 옆에는 소만영의 엄마 전예가 있었다. 아니다,
그 남자는 사화정의 남편 모현이였다. 듬직하고 차분한 그의 뒷모습을 보자 소만리는 왜 인지는 모르는 슬픈 마음이 생겼다.그녀도 아빠가 있었으면 하는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부모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엄마 상태는 어때? “모현은 사화정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가봐 무서웠다.소만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수술 중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 같아요. 피를 많이 흘려서 지금 응급처치 중이에요.”“뭐?” 모현의 안색이 변하고 수술실로 뛰어갔다. 소만리의 심장도 멈칫했다. 왜 문제가 생겼지..? 그녀는 초조하게 손가락을 잡았다. 그러자 소만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RHAB형이 사람이 나타난 거야!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소만영의 말투에는 수혈을 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커녕 불만이 가득 찬 모습이었다.하긴 소만영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칼로 상처를 내는 독한 짓까지 한 년이니까. 양심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소만리는 지금 사화정의 상태가 제일 걱정스러웠다. 기다리는 도중에 그녀는 다시 몸이 불편해지고 종양의 위치가 신경을 건드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그녀는 의식적으로 가방에서 진통제를 꺼내 먹으려고 할 때 간호사 한 분이 그녀한테 뛰어왔다. “아가씨 덕분에 사모님이 살았어요! 수혈을 못했다면 사모님은 아마 혼수상태에 있을 거예요.”소만리는 고개를 들고 아픔을 참고 일어났다.”사모님 지금 상태는 어때요?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나요?”“맹장염은 원래 간단한 수술이에요. 중간에 살짝 문제가 문제가 생겨서 그렇지 아니면 벌써 끝났어요. 안심하셔도 되세요.”간호사의 말을 듣고 소만리의 마음이 내려 앉았다.다행이다. 무사하시구나.“소만리 너였구나!” 소만영의 불만이 담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소만리는 고개를 돌자 소만영의 의기양양한 얼굴이 보였다.“누가 오지랖 피우래.” 소만영은 화를 내면서 욕했다.”네가 얼마나 더러운지 몰라? 그딴 피로 엄마 수혈해
모현은 화를 내며 욕을 했다. “네가 이러니까 너의 부모님도 너를 버리지. 너같이 악독한 년은 태어났으면 안 됐어!”소만리의 호흡이 급해졌다. 지금 모현이 그녀를 욕하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살을 베는듯한 고통이었다.“아빠, 됐어요…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모진이를 사랑했으면 안됐어요…”소만영은 잘못을 다 자기 탓이라고 하였다. 모현이 듣자 자신의 귀한 딸이 더 가여워 보였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어! 이 염치없는 년이 잘못했지.”모현은 사나운 눈으로 소만리를 째려봤다.”이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그게 아니면 너희는 벌써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야.”“아빠…”“가자, 엄마 보러 가자.” 모현은 친근하게 소만영을 끌어안았다. 소만영은 아버지라는 날개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모현은 소만리에게 경고를 했다.”내 딸 괴롭히는 모습 한번 만 더 걸리기만 해, 네가 여자여도 가만 두지 않을거야.” 그의 말이 끝나자 소만리는 맞은 듯이 아파졌다.소만리는 소만영의 고개를 돌리고 사악한 미소를 띤 얼굴을 봤다. 소만영이 또 이겼다. 이 여자는 위선이라는 가면을 성공적으로 그녀의 추악한 얼굴에 썼다.어둠이 내리기 전에 소만리는 모호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밥을 하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소만리가 문을 열자 기묵비가 문 앞에 서있었다. 그는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에는 눈이 묻어 있었다. 그의 모습은 여전히 멋있었다. “기 대표님, 여긴 무슨 일이에요?” 소만리는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기묵비는 신사적인 미소를 띠었다. “어젯밤에 혼자 들어왔다고 하길래 걱정돼서 한번 와봤어.”소만리는 멈칫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기 대표님의 관심 감사합니다. 저는 괜찮아요. 밖에 날씨도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세요.”그녀는 물을 열고 통 크게 보일러를 키고 기묵비에게 따듯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이런 데에 살고 있어?”기묵비은 주위를 훑어보았다.소만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충분해요.”“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