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 왜 그만 도망치는 거야.”“그만 반항하고 얌전히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잘 해줄게.”장소월은 발밑의 돌멩이가 떨어져 순식간에 거친 파도에 삼켜져 버린걸 보았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나?장소월은 아마 두려워하고 있을 수 있다.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나?그녀는 잘 모르겠다.장소월은 가장 힘들고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을 이미 모두 느껴봤다...주변의 모든 가족들은 뜻밖의 재난으로 죽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한때 그녀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든 것들은 그녀를 떠났다.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이 모든 것은 한 사람 때문에 꾸며진 아름다운 꿈이고,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나중에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끝없는 어둠의 심연, 고통과 시달림이 남게 되었다.그녀는 이번 생에 그런 일과 사람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전생에 일어난 모든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틀렸다고 느꼈다.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비극이 될 운명이었다.하느님은 장해진이 진 모든 빚을 그녀더러 짊어지게 하였다.그녀도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그녀도 평온하게 이번 생을 살아가고 싶다...그녀는 지난 생의 모든 것을 바꾸려고 정말 노력했다.이번 생은 좋은 결말을 맞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러나 결국 그녀는 여전히...그녀는 이미 한번 죽어 본 사람이다...죽음은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그녀가 죽어라도...아마... 슬퍼할 사람은 강영수 뿐일 것이다.아쉽네! 한 번 더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인대호:“헐, 설마 정말 뛰어내리려고 하는 거 아니겠지? 만약 정말 뛰어든다면 건지지도 못해...”강용은 점점 더 빨리 걸었고 나중에는 뛰기 시작했다.강용:“너희들 당장 멈춰——”그의 목소리는 천둥소리 사이로 사라졌다.그들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장소월——뛰어내리지 마——”“뛰어내리지 말라고——”“이러다 정말 사
강영수,안녕...그녀는 몸을 뒤로 젖혔다. 그 바람들이 칼처럼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꼈고 매우 아팠다!강용:“장소월——”강지훈: “큰일 났어요, 대표님! 아가씨가...”전연우:“소월——”“헐. 범아, 저 여자 정말로 바다에 뛰어들었어. 우리 때문에. 어떡하지!”“나랑 상관없어. 나 때문에 죽은 거 아니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이범은 밑으로 떨어져 이미 자취를 감추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놀라서 다리가 나른해져 바닥에 주저앉았고 다른 사람들도 이미 놀라서 사방으로 도망친 지 오래다.그때 누군가가 다가왔고 강용은 아무 말 없이 입고 있던 반팔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헐, 용이야. 정말 뛰어든다고?!”장소월은 암초에 부딪혀 붉은 피가 바닷물에 퍼졌고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사지를 얼어붙게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고 마치 곧 사라질 별처럼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로 떨어졌다...너무 어두워. 엄마, 나 너무 추워...인대호는 급한 마음에 바닷가를 계속 맴돌았다.“경찰에 신고해, 빨리 신고해!”한 사람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지금 비 와서 신호가 안 잡혀요.”인대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방을 빙빙 돌았다.“씨...”푸른 머리 남자는 어쩔 바를 몰라 하였다.“어떡하지.”인대호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네가 나한테 물어보면 난 누구한테 물어? 당장 가서 사람 불러. 수영 잘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신호가 좋은 곳을 찾아서 전화해. 일단 경찰에 신고해.”엽시연과 백윤서는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지만 강용 일행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껴 해변가로 왔다.역시나 옆에서 조급한 마음에 자리를 맴돌고 있는 인대호를 보았다.“인대호,강용은?”인대호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방금 강용이 그 여자애를 구하기 위해서 바다로 뛰어 들어갔어.”엽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 또 발로 그를 걷어찼다.“
기성은은 우산을 쓰고 차에서 내려 차 앞을 돌아 뒷좌석 앞에 서 있었다. 문이 열렸고 맞춤제작한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강한 포스를 내뿜고 있는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남자의 검은색 구두가 땅을 밟았고 조각 같은 얼굴에 매서운 눈동자를 소유하고 있는 남자는 어딘가 위험해 보였다.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은 듯,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자동으로 길을 내주었다.강용은 장소월을 안고 있었고 마침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는데, 그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퍼졌다.전연우는 걸어갔고 기성은은 옆에서 우산을 씌워줬다.전연우가 입을 열었다.“생명을 구해 준 이 은혜, 제가 빚진 걸로 하죠.”그는 손을 내밀었지만 강용은 그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이 빚 기억하고 있을게요, 전연우 씨.”전연우는 의식 불명의 장소월을 데려왔다. 도원 어촌의 병원.서울로 돌아가는 도중 도로가 붕괴하였고 유일한 길은 아직 복구 중이고, 통행하려면 며칠이 더 필요하다.“오빠, 미안해요. 숨기려고 한 거 아니에요. 그냥 시험이 다가오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친구들과 가서 놀고 싶은데, 오빠가 싫어할까 봐 얘기하지 않았어요.”백윤서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전연우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엽청하는 그녀가 오빠한테 혼날까 봐 주동적으로 나섰다.“윤서 오빠, 제가 윤서랑 놀고 싶어서 끌고 나온 거예요. 윤서랑 상관 없으니, 혼내실 거면 저를 혼내세요.”전연우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요즘 어디에 살고 있었어?”엽청하가 먼저 대답하였다.“저랑 함께 친구 집에 있었어요.”전연우:“오늘 친구 집에서 나와 일단 민박집에서 지내고 있어. 며칠 뒤 학교에 데려다줄게.”백윤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오빠, 알겠어요.”“먼저 돌아가. 날이 밝아지고 있어. 가서 쉬어.”백윤서:“오빠는?”“소월이 깨나는 거 지켜보고.”백윤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면 내일 다시 보러 올게요. 오빠도 일찍
갑자기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다.전연우는 침대 옆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눌렀는데 3개월 만에 본 그녀는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다음날, 해변에서 아침 햇살 한 줄기가 눈부시게 빛났다.장소월의 목구멍은 불에 타는 듯 아팠고 서서히 머릿속이 맑아졌다. 고약한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찔렀고 그녀는 머리 위의 노란끼가 도는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죽은 건가?’잠깐 기억은 백지상태로 되었지만 그녀는 곧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고 약간 차가웠다. 침대 머리맡의 링거병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눈치챘다.“대표님, 회사 미팅은 이미 연기시켰어요. 회장님이 언제 돌아갈 수 있냐고 묻고 계세요. 고가 쪽 길은 이미 수리를 마쳤습니다.”“소월이가 깨면 돌아갈 거야. 그 몇몇은 잡혔어?”“그냥 이곳의 지역 깡패들이에요. 이곳을 아무도 관할하지 않아서 극악무도하게 법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미 몇몇 정부 관리들에게 연락하여 이곳의 관리를 강화하라고 했습니다. 어젯밤에 도망친 몇몇 사람들도 이미 붙잡혔는데, 어떻게 처리할까요?”“그들 지금 어디에 있어?”“바로 밖에 있습니다.”밖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그쳤고 장소월은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는 다시 빠르게 눈을 감았다.전연우는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나서야 돌아섰다.병원 입구에는 수억 원의 고급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모두 현지에서 본 적이 없는 고급 차들이다.이곳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큰 규모를 본 적이 없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많은 사람은 구경하러 왔다.도원 마을 전체에 병원은 이 작은 병원 하나뿐인데,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병 보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저게 무슨 차야? 저거 사려면 몇천만 원은 하겠지?”“더 할 것 같은데요. 저 차를 티비에서 본 것 같아요.”“무슨 일이야? 나 빨리 우리 와이프 처방 약 받으러 들어가야 하는데!”검은색 천을 뒤집어쓴 다섯 명이 끈에 묶인 채 봉
기성은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제가 어찌 감히.”경호원은 그 몇 명을 붙잡고 있었다.지금 이 시각, 전연우는 지옥에서 온 수라처럼 온몸에서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성미연은 아들한테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빠르게 병원에 도착했고 사람한테 잡혀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아들~”이범은 울면서 애원했다.“엄마, 나 살려줘. 살려줘!”성미연은 달려들었지만 경호원에게 저지당했다.“그만 멈춰요. 멈추라고요!”전연우는 원래부터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독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암흑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 몇명은... 단지 그들에게 작은 교훈을 줄 뿐이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쯤 그들은 이미 물고기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병실에서 장소월은 비명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전연우가 사람을 때렸다는 걸 알았다.그는 그녀를 잡으러 온 것이다.그녀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장소월은 손등에 꽂혀있는 주삿바늘을 뽑고 이불을 젖혔는데, 땅을 밟는 순간 사람은 녹초처럼 바닥에 넘어졌다. 그녀는 손을 침대에 짚고 겨우 일어섰다.마침 이때, 전연우는 문을 밀고 들어왔다. 장소월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다시 맥없이 넘어졌다. 그녀는 순간 백지상태가 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그와 시선을 마주쳤고 장소월은 종래로 이토록 공포스러운 모습의 그를 본 적이 없다.목과 손가락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손끝의 피가 바닥에 떨어져 선홍색의 피꽃으로 피어 눈이 부셨고 가슴이 섬뜩했다.포악함, 잔혹함, 냉혈함...지옥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그는 가까이 다가왔고 장소월은 겁에 질린 듯 몸을 움츠린 채 그를 피하였다.“나 혼자 일어날 수 있어요.”전연우는 그녀가 마음대로 주삿바늘을 뽑아 흘러내는 손등의 피를 보자 시선이 차가워졌다.“상처가 낫자 아픔을 잊어버리는 거야?”그는 장소월의 말을 무시하고 다가가 그녀를 안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돌아가지 않을래요. 이거 놔요!”전연우는 화가 난 듯,
장소월은 눈치 있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지갑을 흘렸어요.”전연우:“운전해.”장소월은 가슴이 아파졌다. 가능하다면 그녀도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안에 엄마 사진이 있어요. 저한테 엄청 중요한 존재예요.”전연우:“알겠어.”이 말 한마디에 장소월은 전연우가 반드시 그녀의 지갑을 찾아 줄 거라고 확신했다.성미연은 차를 쫓아가며 울부짖었다. 방금 이범 일행이 경찰에 연행되었기 때문이다.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놀란 나머지 충격을 받았다. 그 남자가 때린 몇 대에 그들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지경이니 말이다.바닥에 흘린 피들은 깨끗이 씻겨지지도 않았다.이 해프닝에 관하여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건달 몇 명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일을 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인 게 확실하다. 이혜성은 트랙터 뒤에 숨어 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고 다리가 나른하였다.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파란 머리가 물었다.“용이형, 그 계집애 도대체 뭐 하는 애예요? 그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이고? 엄청 대단해요?”엽시연이 입을 열었다.“그 차들은 적어도 몇억씩 하는 차들인데. 강용, 너 뭔가 알고 있지?”강용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에는 금속 라이터를 들고 있었는데 라이터를누르자 청홍색 불꽃이 튀어 올라왔다.“이제부터 걔를 멀리해. 특히 그 전연우, 피할 수 있으면 피해.”장소월은 만만해 보이지만 장가네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이다.전연우의 수법은 예전과 비교해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그 사람 정말 과격하던데. 뼈 부서지는 소리까지 들었어. 오우, 얼마나 아프겠어.”파란 머리의 입이 일그러졌다.강용은 라이터를 끄고 좁고 긴 눈동자로 멀지 않은 곳에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며 발걸음을 내디뎠다.이혜성은 사람이 오는 걸 보고 놀라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녀의 두 다리는 천근만근 된 것처럼 걸을 수가 없었다.강용이 손을 내밀
길이 요동치자 장소월 복부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너무 아팠다.그녀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써 참았다.장소월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시선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문득, 장소월은 몸을 앞으로 숙였고 눈을 감고 있던 전연우가 무엇인가를 느낀 듯 눈을 갑자기 뜨고는 재빨리 한 손으로 그녀를 받았다.그녀의 몸에 손에 닿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녀의 몸은 너무 뜨거웠다.전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병원까지 얼마나 걸려?”“방금 수리를 마친 길이라 지금 좀 막혀요. 최소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아요.”백윤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오빠, 소월이 피 엄청 많이 흘렸어요.”전연우는 그녀에게 양복 외투를 덮어주었다.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옅은 색의 옷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이 지경인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차 세워. 기성은, 약상자 가져와.”기성은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재빨리 트렁크에서 약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자주 사용하는 약들이 담겨 있었다.전연우는 장소월의 옷 단추를 풀고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는 그녀의 복부에 있는 거즈를 바꿔서 한쪽에 버렸다.지혈처리를 해주었다.상처 처리를 마친 뒤, 장소월은 이미 완전히 기절했다.이러다간 출혈이 심해져 쇼크로 인해 죽게 될 것이다...백윤서는 백미러를 통해 뒤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치맛자락을 꽉 잡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드러났다.길이 뚫린 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기성은은 빠르게 운전하여 강남 개인병원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수술실로 들어갔고 기성은은 병원에 남아있었다. 전연우는 백윤서를 데려다주고 겸사겸사 회의 자료도 가지러 갔다. 이따 다시 회사에 돌아가서 회의도 해야 한다.백윤서는 문밖에 서 있었고 전연우는 서재 휴식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촉촉하게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마른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여느 때처럼 검
장소월이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든 것은 확실히 그의 예상 밖이었다.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은 장소월, 도대체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변화를 안겨 주었을까?아니면, 그녀가 무엇인가를 알게 된 걸까?그녀가 이 씨 집안을 반격할 때부터 전연우는 이상함을 감지했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는 그녀를 남겨둘 수 없다.강씨 집안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는 더욱이 주지 않을 것이다.백윤서는 전연우가 자료를 챙겨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그동안 도원 마을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조금도 묻지 않았다.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일수록 백윤서는 전연우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연우의 서재 테이블에서 사진 더미를 볼 때까지 말이다. 사진을 본 백윤서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졌다. 장소월이 장가네를 떠난 시간 동안, 전연우는 장소월에 대하여 결코 무관심한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붙여 그녀를 감시하였다.만약 장소월에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전연우는 친히 도원마을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전연우와 같이 크면서 힘든 일도 같이 겪었다. 그들은 서로 가장 친한 사이이고 유일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가 해외에 있는 몇 년 동안, 백윤서는 전연우가 점점 낯선 존재가 되었고,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그녀는 그를 잃을까 봐 정말 두렵다.전연우는 회사로 돌아가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서자 기성은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기성은은 비용을 지불하고 손에 명세서를 들고 보고했다.“아가씨는 방금 수혈을 마쳤고 복부의 상처도 봉합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내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열이 39.8도까지 올라가 일주일간 입원해야 합니다.”그는 마음속으로 제발 그더러 남아서 장소월을 돌보라고 하지 말라고 기도하였다.그럴바에는 그는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전연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30분이었다.“밤낮으로 돌봐줄 수 있는 간병인을 찾아.”“네.”전화를 끊은 후, 기성은은 자신이 뭔가
소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그래요. 저녁에는 다른 인터넷 소설 사이트 CEO들과 식사 약속이 있어요. 민아 씨도 함께 가요.”“네.”소민아의 기존 사무실은 편집장 사무실 밖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신이랑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부모님께서 웨딩 촬영할 곳을 몇 군데 골라주셨는데, 시간이 좀 촉박해서요. 민아 씨가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말해줘요.]소민아는 메시지를 대충 훑어보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그녀에게 해준 신이랑과의 과거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녀의 꿈속에 나온 남자아이가 혹시 신이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대화창을 열어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세 번째 곳이요. 지금은 일 때문에 바쁘니까 퇴근하고 얘기해요.][그래요.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갈게요.]신이랑의 공무원 합격은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 필기시험에서 10등 안에만 들면, 면접은 두말할 것 없이 통과할 것이다.그때에야 비로소 정계에 진출하는 진정한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신이랑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때, 신군회가 정장 차림에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오늘 별다른 일 없으면, 나랑 같이 사람들 좀 만나러 가자. 나중에 공무원이 되면, 다 너한테 도움이 될 사람들이니까.”신군회는 현재 막강한 실권을 쥐고 있다. 그 자리에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자기만의 인맥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흥미 없어요.”신군회가 그를 불러세웠다. “나중에 넌 틀림없이 내 자리를 이어받아야 할 거야. 이제 물러설 퇴로는 없어. 신이랑, 아버지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마.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권력을 직접 손에 쥐고 있을 때만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거 명심해.”그때 아래층에서 여자의 목소리와 꽃병이 깨지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어제 나 없을 때 오빠랑 소민아 결혼식 상의 한 거예요? 엄마, 나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왜 약속을 안 지켜요. 오빠가 소
결혼식 날짜는 다음 주로 급하게 결정되었다. 소민아는 성대하게 치를 생각도, 외부에 알릴 생각도 없었다. 양가 친척들만 초대해 간단히 식사 한 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모든 상의를 끝낸 뒤 밥을 먹고 돌아갈 때, 엄마 아빠의 눈에는 신이랑에 대한 흐뭇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처음 선을 봤을 때 엄마 아빠가 소개한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흠잡을 데가 없었을 것이었다.고모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와 기성은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명세진은 소민아의 불편함을 눈치채고는 손을 잡고 달랬다.“민아야, 내가 보기에 이랑이도 나쁘지 않아. 나와 네 고모부도 사랑 없이 강제로 정략결혼을 했었어. 처음엔 싫었지만, 고모부가 나한테 잘해주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어. 여자에게는 항상 자신을 생각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남자가 제일이야.”“이랑이는 인물도 좋고, 집안도 좋고, 너한테도 잘하잖아. 어떤 사람들은 평생 죽을 때까지도 그런 남자 못 만나.”소민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아요, 고모. 걱정하지 마세요. 이랑 씨랑 잘 지낼게요.”그녀는 단지 그들을 안심시키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다.차 안, 소민아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그녀에게 기대며 물었다.“엄마, 궁금한 게 있어요. 이랑 씨랑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왜 저한테 그렇게 잘해줬을까요? 이해가 안 돼요. 왜 저에게 무조건적으로 잘해주는 거죠?”소희연이 말했다. “그 일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우리가 너를 구해왔을 때부터, 너와 이랑이는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 하지만 그때 너는 너무 많이 다쳐서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렸어. 그때... 이랑이에 관한 기억도 함께 잊어버린 거야.”그랬던 거야?소민아가 물었다. “엄마, 그럼 저랑 이랑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소민아는 요즘 들어 자주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그녀의 꿈속에서 상처투성이의 거지 소녀가 어두컴컴한 구
소민아가 말했다. “현아 언니는 그냥 치료받으러 간 것뿐이에요. 고모,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지금으로서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현재 소씨 집안 또한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았다.신씨 본가에 도착해보니 소민아의 부모님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신이랑은 소민아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 말했다. “오느라 수고했어요.”소민아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답했다. “괜찮아요. 들어가죠.”그녀는 신이랑이 잡으려고 하는 손을 못 본 척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그녀가 지었던 미소는 어쩔 수 없이 짜낸 억지 미소나 다름없었다.“엄마, 언제 돌아오셨어요? 왜 저한텐 얘기 안 하셨어요?”소희연이 말했다. “네 아빠랑 내가 이랑이한테 전화했어. 너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거든. 네 아빠는 이랑이를 정말 많이 좋아해. 예전에 선봤을 때부터 엄청 기뻤는데 정말 너희 둘이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너희 아빠랑 난 너무 기쁜 마음에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정말 잘했어, 우리 딸.”소민아가 소파에 앉자 도우미가 차를 가져왔다. “사모님, 차 드세요...”갑자기 바뀐 호칭에 소민아는 너무 어색해 대꾸도 하지 않았다.신이랑이 그녀 옆에 앉아 말했다. “내가 작성한 하객 명단이에요. 빠진 사람은 없는지 확인해 봐요.”빠진 사람이라...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그녀가 가장 아끼는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못한다. 소월 언니, 그리고 현아 언니...이런 결혼식이라면, 차라리 오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당신이 결정하면 돼요.”“알겠어요.”“...이번 민아의 결혼식 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할게요.” 송시아는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 한도가 없는 카드예요. 제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오직 민아만을 위해 모아온 결혼 적금이에요.”소민아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소민아는 계속해서 기성은의 목숨을 빌미로 자신에게 신이랑과의 결혼을 강요하는 송시아에게 치를 떨었다. 지난번 면북에 갔을 때, 소민아는 송시아가 그곳에서 누리는 권세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그곳 사람들은 그녀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무서운 상상이지만, 어쩌면 그 폭발 사고가 그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소민아는 답답함에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음속 울렁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집에 도착한 뒤, 소민아는 차에서 내렸고 송시아도 뒤따라 함께 거실로 들어왔다.명세진이 소민아를 맞이했다.“민아야, 이 녀석아, 어디 갔었어? 이랑이는...”소정국은 심장을 움켜쥐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문밖에 나타난 송시아를 보자 모든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소정국이 소민아에게 다가가 말했다. “민아야, 이리 와.”소민아가 그의 말에 따라 걸어가자 명세진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당신이 여긴 왜 온 거예요. 여기엔 당신 반기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당장 나가요.”송시아는 선글라스를 벗고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민아는 제 여동생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언니로서, 여동생 결혼 준비는 당연히 함께해야죠. 물론, 그동안 여동생을 키워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결혼 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결혼 이후 비용까지 모두 책임질게요.”명세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소정국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단란한 한 가족이었다. 송시아는 누가 봐도 낯설기 짝이 없는 외부인이었다.모두가 침묵하며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소민아가 돌연 입을 열었다. 소민아를 꽉 잡고 있던 명세진의 손은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예전엔 당신 협박에 못 이겨서 억지로 신이랑과 결혼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마음을 굳혔어요. 신이랑과 이혼할 거예요. 더 이상 당신 뜻대로 하고 싶지 않아요.”소민아와 신이랑이 사
눈물이 예고도 없이 뚝뚝 흘러내렸다. 소민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닦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거 믿지 않아요. 3년 뒤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기성은 씨 찾으러 갈 거예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어요!”“기성은 씨, 당신이 죽었다는 말은 절대 믿을 수 없어요.”은밀하게 감춰진 공간에서 두 남자가 감시 카메라에 잡힌 화면을 보고 있었다.한 남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진짜 이 여자, 기성은 형 너무 좋아하나 봐. 한 달 동안 열 번 넘게 찾아왔어. 곧 결혼식까지 한다는데,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하나?”다른 남자가 컵라면을 들고 다가와 말했다. “그러게. 성은이 형도 참, 여자를 너무 몰라...”소민아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울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휴대폰에 도착해 있는 수많은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확인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빠 엄마가 왔어. 어디 있어? 민아야, 전화해. 너무 걱정돼.]아빠 엄마가 돌아오셨다고?소민아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아파트를 나섰다.그녀가 막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빨간색 람보르기니 한 대가 그녀 옆에 멈춰 섰다.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고, 송시아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타, 동생.”소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당신 동생이 아니에요.”송시아가 말했다. “이미 소씨 집안에 이야기해 뒀으니까 그쪽 사람들도 내가 간다는 거 알고 있어. 지금 나 말고는 아무도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몰라. 지금 차에 타면 시간 낭비 없이 일찍 도착할 거야.”소민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나 감시하는 거예요?”송시아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일부러 소민아를 유혹하듯 말했다. “차에 타면 기성은에 대해 알려줄게.”그 단 한마디에 소민아는 바로 조수석에 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시선을 떨어뜨리니 약
“민아야, 난 기성은을 제거할 생각은 접었었어. 너 때문에 기성은을 살려두기로 했거든.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영상도 있으니까 봐. 물론 기성은이 죽지 않았을 1퍼 센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소민아는 마치 얼음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이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분명히 약속했잖아, 꼭 돌아오겠다고. 그런데 왜 송시아의 입에서 폭발로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전화기 너머 송시아는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바닥에 무언가 쿵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신이랑이 소민아를 찾아왔을 때, 그의 눈에 손에 휴대폰을 든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가 들어왔다.신이랑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 살펴보니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은 송시아였다.신이랑의 부드럽고 온화하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신이랑은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어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검사를 마친 뒤 간호사가 말했다. “축하드려요. 아내분께서 임신 6주 차예요. 아마 최근에 좀 피곤해서 쓰러지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저혈당 증세도 약간 있기는 하지만 다른 문제는 없으니까 집에 가서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주시면 돼요.”신이랑은 아직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소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는 괜찮나요?”간호사가 말했다. “정확한 상태는 초음파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푹 쉬면 돼요. 아이에겐 별문제 없을 거예요.”신이랑의 눈동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알겠습니다.”소민아가 눈을 떴을 땐 어느새 아침 7시 30분이었다. 생체 시계가 작동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보고는 아무 알 없이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개는 눈물로 흥건히 젖어 들었다. 신이랑은 잡고 있던 소민아의
위층으로 돌아가자, 도우미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아가씨, 방은 이미 정리해 두었습니다.”“네.”도우미는 손님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당연히 두 사람이 함께 잘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소민아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을 보고 입을 열었다.“이랑 씨...” .소민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이랑이 말을 가로챘다. “괜찮아요. 난 바닥에서 자면 돼요.”소민아가 말했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오늘 밤엔 이랑 씨가 이 방에서 자요. 난 현아 언니 방에서 자면 돼요.”소민아는 침대 옆으로 걸어가 자신이 항상 베고 자던 베개를 들었다. 그녀가 신이랑의 옆을 지나칠 때, 그의 입에서 살짝 섭섭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아 씨... 이제 나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은 거예요?”“아니에요, 이랑 씨. 그냥 이랑 씨가 바닥에서 자면 몸에 안 좋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의사 선생님이 냉기를 쐬면 두통이 재발하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요.”신이랑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알잖아요. 난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요. 매일 밤 차가운 바닥에서 자도, 민아 씨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난 행복해요.”소민아는 베개를 안은 손에 꽉 힘을 주었다. 마음이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이랑 씨, 저 아직은 적응이 안 돼서 그래요. 시간을 좀 줄 수 있어요?”신이랑은 잠시 침묵하더니, 작게 한 마디 내뱉었다. “그래요.”“고마...워요...”소민아는 어쩌다 보니 신이랑과의 결혼을 결정했고, 어느새 혼인신고까지 마쳤다.기성은과의 약속을 먼저 어기는 사람이 그녀 자신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3년...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소민아는 옆방 소현아의 방으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침대 끝에 베개를 내려놓고, 발코니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갑자기 방향을 잃은 듯 방황했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너무나도
소민아도 고모의 말씀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미 뼈에 사무치게 경험해봤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녀는 기성은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그와 함께하지 않을 수도 없다.예전 회사에서는 시끄럽게 다투기가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그에게 벌컥 화를 내며 영원히 눈앞에서 꺼져버리라고 소리치곤 했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미 자신의 모든 마음과 몸을 그에게 맡겼다는 것을.그와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다. 앞으로 그 어떤 험난한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예전처럼 그의 옆에서 비서로 일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지금 생각해보니, 예전엔 가장 싫어했던 일들을 지금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기성은 씨,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거예요?3년 뒤면 돌아올 거라고 약속했었잖아요. 기성은 씨는 날 속였어요.할 수만 있다면, 당신과 함께 과거로 돌아가 화도 내지 않고 다정히 잘 지내고 싶어요.명세진이 말했다. “요즘 서울은 너무 흉흉해. 앞으로 밖에 나갈 때 조심해야겠어. 하, 현아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 그 바보 같은 놈이 혹시나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다가 납치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소민아는 명세진으로부터 핸드폰을 건네받고 뉴스를 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인신매매를 하던 암시장 유흥업소 세 곳이 경찰에 발각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대량의 금지된 마약 물품이 발견되었고, 면북으로 팔려갈 뻔한 백여 명의 여자들이 구조되었다고 한다.사진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운전기사는 국경을 넘어 도주하려 했지만, 결국 남운 국경 수비대에 붙잡혔다. 마지막으로 밝혀진 정보로는 약물에 완전히 중독되어 몰래 면북 지대로 넘어갈 계획이었다고 한다.그 아래에는 한 소녀가 길거리에서 납치를 당했는데, 경찰이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장기가 적출된 채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곧이어 휴대폰에 면북 범죄 조직 사이에서 싸움이 발생했고, 납치된 사람들이 본국으로 송환되고 있
명세진이 말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결혼인데, 결혼식을 안 하다니 말이 안 돼. 남들이 알면 비웃을 거야.”신이랑의 입꼬리가 축 내려앉았다. 그가 확연히 실망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 뭐든 민아 씨 뜻에 따를 거예요.”“이게...”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명세진 역시 더는 강요할 수 없었다.“결혼식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양가 식구들이 함께 모이는 식사 자리는 빼놓을 수 없지.”소민아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이미 다음 달로 식사 약속을 잡아놨어요. 그때 아빠 엄마랑 같이 오세요. 그럼 이 일은 일단 이렇게 마무리하죠.”“그래... 너랑 이랑이 둘 다 괜찮으면, 고모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지. 너희 둘이 알아서 결정해.”“참, 민아야, 혹시 현아한테 요즘 전화해 본 적 있어? 이상하네. 평소 같으면 매일 집에 전화했을 텐데, 요즘 들어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 게다가... 예전 전화번호로 전화해 봐도 통화가 안 돼.”소민아가 말했다. “오는 길에 이미 전화해 봤는데 연결이 안 됐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을 거예요. 바쁜 일이 있는 거겠죠.”명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위험하지는 않을 테지만, 현아 몸 상태가 걱정돼. 애가 혹시나 병이 더 악화되면 우리까지 못 알아보게 될까 봐.”소민아는 명세진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중에 어떻게든 현아 언니랑 연락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그래, 오늘 쉬는 날이면 여기서 자고 가. 마침 빈방도 있잖아.”소민아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소민아는 명세진과 함께 뒷마당을 산책했고, 신이랑은 회사에서 돌아온 소정국과 거실에서 장기를 두었다.소민아가 명세진의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다. “넌 기성은이라는 사람을 좋아했잖아?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거야? 혹시 다퉜어?”“민아야, 결혼은 평생을 좌우하는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