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빛은 마치 그녀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사나웠다.장소월은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침대 한 켠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그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오빠의 보살핌 속에서만 살았다는 생각에 집 밖 세계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오빠...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다시는 성질을 부리지도 않을게요.”지금 전연우와 맞서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전연우는 이미 26살인 데다 장해진은 일찍 퇴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가 확실히 회사를 물려받고 권력을 꿰찬다면 그녀는 도마 위의 생선이 되어 절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그녀는 절대 전연우를 이길 수 없다. 장수월은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장씨 가문에서 도망칠 수 없다면 집안의 말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전연우와 결혼하지만 않는다면 전생의 비극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아빠는 저더러 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하라고 하셨어요. 전 그 말씀에 따를 거예요. 하지만 결혼 상대에 대해선... 오빠, 남편감은 제 손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아빠를 설득해 주실 수 있어요?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싶진 않아요.”전연우의 눈동자에 순간 어둠이 비쳤다. 이어 그는 이내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소월아, 넌 아직 어려서 그런 것들은 생각할 필요 없어. 지금은 몸조리나 잘해. 앞으로의 일은 앞으로 다시 얘기하면 돼.”할 수만 있다면 장소월은 정말이지 그의 뺨에 힘껏 따귀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소리쳤다.“이 모든 상황은 다 오빠가 만든 거잖아요. 내 앞에서 뭣 하러 좋은 사람인 척하는 거예요? 내 계획은 모두 오빠로 인해 망가져 버렸단 말이에요.”어린 새가 겨우 날개를 얻었건만, 이제 그 어린 새는 마지막 털 하나까지 깡그리 뽑혀버렸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전연우 씨, 검사는 이미 마쳤습니다. 백윤서 씨는 괜찮으세요. 병원비만 지불하고 가면 될 것 같아요.”장소월의 눈에 간호
다음 날, 장소월의 체온은 내려가기는커녕 더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녀의 맑은 눈에 진주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그녀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만약 간호사가 일찍 발견하지 않았다면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기성은이 고용한 간병인은 오늘 점심에야 도착한다. 장소월을 보살피는 데에 익숙해진 오 아주머니는 이른 아침 그녀에게 깨끗이 세척한 옷을 가져다주러 병원에 도착했다.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 아주머니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장소월을 그곳에 머물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아이는 어릴 적부터 고생이라는 건 모르고 자라지 않았던가. 오 아주머니는 후회를 금할 길이 없었다.링거를 맞고 나서야 체온이 조금 내려갔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의식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오 아주머니는 돌아가야 했기에 병원에서 줄곧 그녀를 보살펴 줄 수 없었다. 하여 조심해야 할 게 무엇인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간병인에게 알려주었다.장소월은 하루 내내 잠을 자고 나서야 의식을 되찾았다.서른 살 남짓한 여자 간병인이 마 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와 장소월에게 먹였다.하지만 몇 입 먹지도 않았음에도 장소월은 돌연 위가 뒤집어지는 듯한 메슥거림에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죽에 넣고 함께 끓은 마가 채 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간병인은 다급히 휴지통을 갖고 와 장소월의 입 쪽에 가져갔다. 손으로 등을 두드려주는 그녀의 얼굴엔 짜증스러움이 가득 섞여 있었다.장소월이 다 토해내자 간병인이 그녀에게 물 한 컵을 건넸다.“이 죽, 더 드실 거예요?”장소월이 기진맥진해져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버리세요.”오 아주머니가 만들어 준 것 외 다른 음식은 쉬이 넘어가지 않는 그녀였다. 아마 위가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다른 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그녀는 돌연 오 아주머니가 해준 쿠키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오 아주머니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그녀를
그 말은 장소월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임신을 못 했던 게 자궁 기형 때문이었단 말인가?장소월은 얼마나 전연우의 아이를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이만 생긴다면 그는 더는 다른 여자를 찾지 않을 테니 말이다.하지만... 아이가 그토록 어렵게 세상에 왔음에도 전연우는 장소월을 수술대에 눕히고 아이를 지워버렸다.전생에서 장소월은 차 사고로 인해 2주 동안 병상에 누워있었다. 몸을 회복한 후 검사를 받았고 그 검사결과는 전연우가 가져갔다.전연우는 왜 그녀에게 모두 다 정상이라고 알려줬을까?만약 전연우가 그녀에게 숨기지 않았다면 그녀는 일찌감치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가 품었던 아이가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전연우의 속셈을 알아차리니 장소월은 손발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가 송시아와 결혼했던 건 후손을 원했던 게 아니었다.전연우가 갖고 싶었던 건... 오직 송시아와 낳은 아이였을 뿐이다.당시 그녀가 위암에 걸렸던 건 자궁암이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암을 발견했을 땐 이미 말기에 다다라 있었다.이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전연우는 사실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암에 걸려 외롭고도 고통스럽게 병원에서 죽어갈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그녀가 죽는다고 해도 시체조차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장소월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며 시들어 가는 걸 지켜보고 싶었을 뿐이다.하여 전생의 결혼기념일 날, 전연우는 송시아와의 관계를 밝히고 두 사람의 아이까지 데려왔다.그녀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전연우... 이 지독한 놈!정말이지... 너무나도 지독하다.전생의 매시간, 매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장소월은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그때의 고통은 이번 생에서도 해소할 길이 없다.전생의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나 살아가는 건 정말 죽는 것보다도 더 고통스럽다.마침 장소월의 병실을 지나가던 간호사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장소월을 보고는 걱정되는 마음에 다가갔다.“장소월 씨, 왜
차라리 이렇게 고통 속에서 죽는 게 나을 것 같다!전생에서 그녀는 어리석어 전연우의 진짜 속셈을 알아채지 못했다.지금 이 시간, 자세히 되돌아볼 때마다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더 깊게 새겨지는 것 같았다.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았다.그녀가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로 눈물을 닦아냈다.“괜찮아요. 조금 전 벌레가 눈에 들어가서요.”간호사는 이상하다는 듯 장소월을 쳐다보았다. 병원에 무슨 벌레가 있단 말인가?설마 미친 건 아니겠지!간호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 절반가량 남은 링거액을 보고는 속도를 늦추었다.간호사는 병실 문을 닫은 뒤 장소월의 주치의에게 달려가 그녀의 정신 상태를 알렸다.군림 공천 회관.여긴 80년대 때부터 운영해 오던 곳이었는데 여전히 8, 90년대의 인테리어를 유지하고 있었다.2층 룸,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커다란 창문을 통해 1층에서 노래를 하는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꽃무늬 붉은 색 원피스를 입고 여우 털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긴 파마머리에, 귀엔 반짝반짝 빛나는 귀걸이를 걸고 있었는데 조명이 비추니 그녀의 백옥같은 피부, 맑은 눈동자, 그리고 매끄럽고 눈부신 몸매가 환히 드러났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만옥이었다.소파 위엔 서철용이 짙게 화장을 덧칠하고 짧은 원피스를 입은 두 미녀를 양팔로 껴안고 앉아있었다. 그의 셔츠는 단추가 몇 개 풀어져 있었는데 가슴팍엔 여자의 빨간 립스틱 자국이 찍혀있었다.“네 동생 말이야.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거의 미쳐가고 있대. 쯧... 너 정말 마음이 아프지도 않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내 수하가 매일 지켜봤는데 혼자 몰래 눈물만 흘린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토록 냉정하게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건 단연코 너밖에 없을 거야!”서철용이 여자가 먹여주는 포도를 먹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 잊었어? 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 모르면 입 다물어.”전연우가 손
“애초에 그 약은 네가 나한테 먹이라고 부탁한 거잖아. 장소월은 네 계획 중 일부분 아니야? 장소월을 무너뜨리고 장해진이 제 손으로 자신의 딸을 감옥에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겠다며. 만약 장소월의 재미를 보려는 거라만 내가 먼저...”서철용이 게걸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너만 괜찮다면 우리 둘이... 같이 해도 돼. 우린 친구잖아. 그런데 말이야... 난 지금까지 네가 여자 몸에 손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너 설마 거기에 문제라도 있는 거야?”전연우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쏘아붙였다.“한마디만 더 하면 벙어리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서철용의 가는 뱀눈에 붉은 핏줄이 서렸고 피라도 물든 듯한 붉은 입술은 비열하게 위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왜? 싫어? 전연우, 너 이런 모습 처음이야!”“...”장소월을 떠올리니 전연우는 손에 움켜쥐었던 모래가 걷잡을 수 없이 유실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마음속 어딘가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어떻게 메워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늘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었다.“10년이나 같이 있더니 정이라도 들었어? 우리 내기 하나 할까? 네가 장소월을 사랑하게 될지 아닐 지로 말이야. 네가 이기면 이 군림 공천 회관의 10퍼센트 주식을 넘겨주고 네가 언제든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부하가 될게.”전연우가 소파 위에 걸쳐놓은 정장 외투를 입은 다음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심심해?”“왜? 무서워?”옷을 다 입은 전연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네 생각에 너와 장소월 중 누가 더 살아있을 가치가 높은 것 같아? 장소월을 건드리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하지만 장해진에게 걸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걸리면 누가 더 비참하게 죽을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전연우가 말을 마친 뒤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살얼음 같은 분위기는 점점 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이 저려오게 만들었다.돌연 그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뒤 서철용을 보며
강만옥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장해진이 그녀의 가늘고 부드러운 다리를 쓰다듬으며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듯 말했다.“마음대로 하라고 해! 회사에서 대부분 일을 연우가 도맡아 하잖아. 가끔 나와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괜찮지 뭐. 왜 갑자기 그놈한테 관심을 갖게 된 거야?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평소 의심이 많은 장해진의 질문에 강만옥이 조심스레 말했다.“전 그저 전연우도 이곳에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혹여 이후 회장님께서 알게 된다면 제 입장이 난처해질까 봐요. 제가 일부러 숨겼다고 오해하시면 어떻게 해요.”장해진이 그제야 찌푸렸던 이마를 폈다. 이어 그녀의 목을 확 끌어안고는 그 위에 진득하게 뽀뽀했다.“알았어! 내일 나랑 같이 쇼핑하러 갈래?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두 사람 대체 뭐라 소곤거리는 거야? 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얘기할 게 뭐가 있겠어. 침대 위 일이겠지!”“아가씨, 시간 있을 때 우리 해진이 몸보신 좀 시켜줘요.”마음속의 말을 장난으로 내뱉는 건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다....복부의 상처에 딱지가 앉아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지는 간지러움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직접 손을 대 긁을 수도 없으니 장소월은 너무나도 괴로웠다.의사가 흉터가 남을 거라고 했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침대에서 내려간 뒤 간병인을 보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다는 생각에 말이다.저번 전연우가 한 번 다녀간 이후 오 아주머니 외에 아무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사람이다. 오 아주머니는 장소월이 바깥 음식을 입에 맞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늦은 시간 집에서 음식을 가져왔다.병원에 입원해 시간을 보내니 움직임 없이 가만히 누워있었음에도 살이 찌기는커녕 몇 킬로나 야위었다.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창가에 앉아 책을 보던 장소월이 자리에 앉은 채 창밖을 쳐다보았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자 검
장소월이 책을 놓고 다가가자 경호원이 도시락을 열었다. 3층 도시락이었다.첫 층은 케이크, 두 번째 층엔 탕수육 몇 조각, 세 번째 층엔 야채 영양죽이 들어있었다.장소월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그날부터 매일 밤 입원 병동 아래 정자에서 홀로 눈물을 훔쳤다.그가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매번 당신을 만날 때마다 울고 있는 거예요?”장소월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녀는 그의 눈동자 속에 어려있는 안타까움을 볼 수 있었다.그가 부드럽고도 조심스레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그는 그녀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따뜻한 사람이다. 비록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장소월은 그녀에게 이런 따뜻함을 안겨주는 사람이 낯선 사람이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날 이후 그는 종종 그녀를 찾아왔고 끼니마다 사람을 보내 그녀를 챙겼다. 가장 신기한 건... 그는 장소월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장소월은 그가 왜 자신에게 이토록 잘해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경호원이 설명했다.“케이크는 도련님께서 아가씨댁 이모님한테 배워 만드신 거예요. 탕수육도 마찬가지고요... 도련님께서 난생처음으로 요리하신 거니 맛이 별로여도 정성만큼은 알아주세요. 만약 정말 넘기기 힘드시다면 억지로 드시지 않아도 됩니다.”장소월이 물었다.“왜 세 조각밖에 없는 거죠?”경호원이 대답했다.“소월 아가씨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기는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다 나으시면 반드시 몸보신을 시켜주겠다고 도련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그랬구나.’장소월은 경호원이 건네준 젓가락을 받아 탕수육을 집어먹었다. 그녀가 입안에서 몇 번 씹더니 돌연 멈추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고 다시 꼭꼭 씹고는 천천히 삼켰다.장소월은 그의 호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오 아주머니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장소월은 죽과 탕수육을 모두 비우고 난 뒤 남은 케이크는 저녁에 먹으려고
백윤서는 몸을 다친 이후엔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 오랫동안 머물렀다.오늘은 보기 드문 전연우의 쉬는 날이다. 하여 백윤서는 그를 졸라 밖에 나왔고 겸사겸사 장소월을 보러 병원에 온 것이다.집에만 박혀있으면 병이 날 수도 있다.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장소월을 찾아오지 않았다. 대부분은 오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와 그녀를 돌봐주었다.그들은 특별히 오 아주머니에게 음식을 많이 준비해달라고 부탁해 병원에 갖고 왔다. 몇 개월 동안 오 아주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야위었던 백윤서의 얼굴에 보기 좋게 살집이 올라 있었다.오늘 백윤서는 일부러 어려 보이게 꾸몄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곱게 땋아 묶었으며 몸엔 옅은 색의 원피스를 입었다. 전연우와 함께 걸으니 커플이 아닌 삼촌과 조카 사이 같아 보였다.문 앞에 도착한 그들은 병실 안에 낯선 사람 몇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베란다 쪽 익숙한 장소월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백윤서는 병실을 잘못 찾은 줄로 알았을 것이다.두 사람을 본 장소월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알겠어요. 입에 맞으면 한 번 더 만들어 드릴게요. 안 드시는 음식이 있다면 저한테 알려주시면 돼요.”“소월 씨가 만든 거라면 전 다 좋아요.”“그럼 이만 끊을게요. 오빠가 절 보러 와서요.”“그래요.”장소월은 전화를 끊은 뒤 베란다에서 나와 핸드폰을 경호원에게 돌려주었다.“죄송해요. 한 번 더 오셔야겠네요.”“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그가 돌아간 뒤에야 장소월은 전연우와 백윤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공허한 눈빛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지은 옅은 미소조차 부자연스러웠다.“오빠, 윤서 언니,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백윤서는 전연우가 말하지 않자 어색함에 앞으로 걸어가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장소월에게 건넸다.“소월아, 이제야 널 보러 와서 미안해. 얼마 전 모의고사가 있어서 공부하느라... 그리고 연우 오빠는 일이 바빠 맨날 야근했어. 부디 이해해 줘.”장소월은 꽃다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