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 달콤하게 잠든 아이가 깰세라, 번개가 치자 장소월은 곧바로 아이의 귀를 막았다.전연우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은 컵을 집어 들자 장소월이 그를 멈춰 세웠다.“별이가 먹는 약을 탄 물이야.”전연우는 멈칫하다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컵을 내려놓았다.“아이한테 약 많이 먹이지 마. 부작용이 있어서 몸에 안 좋아.”“목소리 낮춰. 금방 잠들었어.”오늘 밤엔 전연우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아 장소월은 모처럼 편히 잠들었다. 새벽, 장소월은 돌연 들려온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전연우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무슨 얘기를 하는지 장소월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통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고, 장소월은 이내 다시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꿀꿀했다.그녀는 점심 12시까지 자고서야 깨어났다. 옆자리를 만져보니 차갑게 식어있었다. 깨어난 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장소월이 깨자 별이도 연달아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히 씻은 뒤 아이를 안고 내려가 밥을 먹었다. 집안 어디에도 전연우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아이를 눕혀놓은 뒤 기저귀를 갈았고, 은경애는 분유를 따뜻하게 데워 가져왔다.장소월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나갔어요?”“누구요?”은경애는 곧바로 장소월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렸다.“아, 대표님이요? 아침 일찍 나가신 뒤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비서도 온 걸 보니 회사에 일이 있어 나가신 것 같아요.”장소월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은경애가 한 마디 덧붙였다.“곽씨 아주머니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며칠 휴가를 내고 싶다고 제게 말했어요.”“네.”장소월은 간단히 대답하고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그렇게 떠난 전연우는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안부 전화만 걸어왔다.그가 없으니, 장소월은 한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점심시간, 별이는 찬 바람을 맞아 감기에 걸렸는지 연속 며칠 동안 약을 먹여도 호전될 기
기성은은 검은색 우산을 들고 전연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전연우는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외투를 걸친 채,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장소월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의사가 현관으로 들어왔다.기성은이 우산을 접고, 도우미가 전연우가 벗어 놓은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기성은으로부터 무언가 지시를 들은 도우미는 계단에 서 있는 여자를 향해 걸어갔다.장소월은 그가 오늘 돌아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로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핸드폰을 은경애에게 돌려주고는 아이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별이는 열이 올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서철용은 청진기로 아이의 상태를 점검했다. 어젯밤 별이를 데리고 정원 산책을 했던 탓일까.그저 일반적인 기침이라 생각했으나, 이틀이 지나도 전혀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장소월은 그제야 걱정이 되어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심한 것이다.서철용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전연우를 쳐다보다가 장소월에게 말했다.“아이는 괜찮아요. 보통 감기예요. 열이 내리는 주사를 하나 맞으면 돼요.”서철용은 가는 주삿바늘을 아이의 손등에 꽂아 넣었다.장소월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보통 감기라면 약만 먹이면 되지, 왜 주사까지 맞아요?”서철용은 정신을 고도로 집중했는지 대답하지 않았다.전연우가 장소월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철용인 틀리지 않아.”그때 서철용이 말했다.“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병원에 가도 돼요.”“마침 소월 씨 건강 검진 결과도 3일 뒤면 나오니, 그때 별이도 데려오면 되겠네요.”전연우가 말했다.“짐 챙겨. 병원 가자.”장소월은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두 사람이 무언가 그녀에게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서철용과 전연우 두 사람이 입을 맞춘다면 그 간악함은 아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장소월은 기진맥진한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나한테 집에서 나가지 말라고 한 건 너야. 그런데 이제 와 또 짐을
“움직이지 마.”돌연 전연우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그대로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를 제외하고도... 회의실 안 모든 사람들은 겁을 먹고 고개를 숙인 채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전연우는 직원들에게 엄격하고 냉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다.단 한마디 말로 회사에서 쫓아낼 수도 있는 사람이다별이는 얌전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작은 손으로 전연우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평소엔 웃음기조차 보이지 않던 냉혈한이 조그만 아이에게 잡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라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도 들지 못했고, 어쩌다 한 번 그 광경을 본 사람도 감히 웃지 못했다.단번에 쥐죽은 듯 조용해진 회의실에서 전연우가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계속해!”별이는 젼연우의 목소리에 버튼이 눌렸는지,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전연우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바로 기성은에게 건넸다.기성은 역시 종래로 아이를 달래본 적이 없으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성은에게 안겨 문을 나선 순간, 아이는 급기야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비서 휴게실.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기성은의 귀에 들어왔다.“대표님이 데리고 온 아이는 누구 아이일까요? 설마... 그 꽃뱀 여자가 낳은 건 아니겠죠? 인씨 집안 아가씨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벌써 아이를 낳았을 리는 없잖아요.”“누가 알겠어요. 재벌 집에야 어지러운 일투성이죠. 돈 많은 사람 중에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일한 지 꽤 되었는데도 대표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신 건 정말 처음 보네요.”“아이를 안고 있는 대표님 모습 참 보기 좋던데요? 대표님처럼 차가운 사람에게 그런 부드러운 면도 있는지 몰랐어요.”“맞아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그중 긴 파마머리의 여자가 바쁘게 커피를 타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민아 씨,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커피 몇 잔 타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소민아가 급히 말했다.“다 됐어요. 지금 나가
그렇게 한두 명씩 모두 도망쳐버렸다.소민아는 마주 오는 사람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기 비서님, 저들이 했던 말은 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전 새로 들어온 인턴이라 아무것도 모릅니다.”기성은은 오랜 시간 동안 전연우와 함께 있었던지라 전연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와 흡사한 서늘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기에 회사 사람들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아이 볼 줄 알아요?”“네?”순간 당황한 소민아가 되물었다.기성은의 눈썹이 찌푸려졌다.“아이 볼 줄 아냐고요. 못 알아들어요?”소민아가 곧바로 대답했다.“압니다. 압니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80세 노인까지, 보살피는 건 잘합니다.”그때 기성은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별이는 너무 울어 목소리까지 변해버린 뒤에야 간신히 울음을 그쳤다.소민아가 아이를 받아 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성은은 급히 자리를 떴다.낯선 냄새를 맡고, 낯선 이의 얼굴을 본 별이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젠장, 그녀가 알긴 뭘 안단 말인가. 그저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말일 뿐인 것을.한 시간 뒤, 전연우는 회의를 끝마쳤다.12시 정각이었다.회의 시간은 본래 두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이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단축했다.하지만 전연우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유일하게 저장되어 있는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장소월이 낮잠을 청하려 침대에 누웠을 때, 도우미가 문을 두드리고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다.“아가씨, 대표님이 아가씨와 통화가 되지 않아 집 전화로 연락해 왔어요.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아요.”“무슨 일 있으면 잠시 뒤에 전화하라고 해요. 전 지금 쉬어야 해요.”“하지만...”도우미가 난처한 얼굴로 아직 연결되어 있는 전화기를 바라보았다.장소월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주세요.”“또 무슨 일이야?”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전연우가 대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오늘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분유를 못 가져
검은 구름이 걷히고 차도 양옆 나무 사이사이로 햇빛이 내리쬐었다.장소월은 전연우가 아이로 협박해 목적을 이루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안 오면 굶길 거야.”도우미가 곧이곧대로 그녀에게 전한 전연우의 말이었다.전연우는 그녀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제 이 아이도 전연우가 장소월을 다루는 무기가 되어버렸다.그녀는 옷방에서 가방 하나를 꺼내 아이 물건을 챙겨 넣고는 들고 나왔다.분유를 잊어버린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기저귀까지 가져가지 않으면 어찌한단 말인가...이쯤 되니 그가 일부러 놓고 간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흐렸던 날씨는 점차 맑게 개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장소월은 성세 그룹에 도착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문 앞에 서서 성세 그룹을 올려다보니, 전생과 똑같은 모습이었다.그녀는 도저히 회사에 오고 싶지 않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로즈 가든에 가져다 놓겠다고 했지만, 전연우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프런트에 서 있는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예전 남천 그룹에서 일했던 직원이었다.그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아가씨? 귀국하신 거예요?”장소월은 예의 있게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아가씨, 대표님 만나러 오신 거죠? 대표님께서 아가씨가 도착하시면 모시고 올라오라고 분부하셨어요.”“괜찮아요. 저 혼자 올라가면 돼요. 몇 층이에요?”“99층입니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프런트 직원은 장소월에게 99층 대표실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었다.“아가씨, 잠시만 기다리세요. 엘리베이터가 곧 내려올 겁니다.”“네.”프런트 직원이 자리에 돌아가자 다른 직원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갔다.“아가씨요? 난 왜 한 번도 본 적 없죠?”프런트 직원이 장소월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사람이 바로 제가 저번에 말했던 장씨 집안의 따님이에요. 대표님의 여동생이 되기도 하죠. 그러니까 앞으로 저 사람을 보면 조심해야
장소월은 젓가락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에도 그의 눈동자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장소월은 베이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예쁘게 위로 얹어 가늘고 긴 목을 드러내고는 귀 옆으로 잔머리를 늘어뜨렸다. 사람들로 하여금 부드럽고도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다.그녀가 전연우에게 가져다주는 느낌은 바깥 그 어떤 여자도 줄 수 없는 것이었다.그녀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연우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세심하게 가시를 바른 뒤 그녀의 그릇에 놓아주었다.“밥 먹을 땐 좀 이러지 않으면 안 돼?”장소월이 그를 노려보고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슴에서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전연우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꽤 커졌네.”평소엔 빈틈 하나 없는 고고한 신사인 척하더니, 그녀 앞에선 악랄한 본성을 드러낸다.포장하고 있던 인두겁을 떼어내고 나니, 그저 망둥이처럼 날뛰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전연우, 좀 무겁게 행동하면 안 돼?”전연우가 몸을 가까이 가져가 그녀의 향긋한 머리카락에 코를 파묻었다.“너 침대에선 무거운 거 좋아하던데.”“전연우!”장소월은 혐오가 가득 섞인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꼭 그렇게 역겹게 말을 해야겠어?”장소월은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그녀는 전연우의 손을 뿌리치고 의자에서 일어나 차갑게 말했다.“난 이미 분유 가져왔어. 먹이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 난 집에 갈 거야.”전연우가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는 듯해 보였지만 얼굴엔 어느새 서늘한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자신을 등지고 걸어가는 장소월의 모습에 전연우는 느릿하게 단추 두 개를 풀고는 서랍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물고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장소월은 방에서 나가려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도저히 열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올라 몸을 홱 돌리고는 그를 쳐다보았다.“또 뭘 하려는 거야?”전연우가 퉁명스럽게 몇
차가 CCTV 범위를 벗어나자 돌연 누군가 길옆에서 튀어나왔다. 운전기사는 깜짝 놀라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바람에 장소월의 몸이 앞으로 기울여졌다.운전기사가 곧바로 물었다.“소월 아가씨. 괜찮아요?”장소월이 고개를 들어보니 단발머리에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성세 그룹 사원증을 목에 건 여자였다.두 눈동자가 영리하게 빛나는 수수한 생김새의 사람이었다.그녀가 달려와 창문을 두드리며 뭐라고 입을 벙긋거렸다. 장소월은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아 창문을 열었다.“아가씨, 몇 분만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나요? 급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요.”운전기사가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낯선 사람과 접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장소월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전 소민아라고 해요. 저는 모르실 테지만, 제 언니는 분명 아실 거예요. 소현아요.”“타요.”운전기사가 걱정스레 말했다.“소월 아가씨...”“괜찮아요. 잠깐이면 돼요. 아저씨, 잠시 내려주세요.”소민아가 차에 올라탔다.이토록 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 장소월은 물을 한 병 쥐여주었다. 건물에서 뛰어나오는 건 봤지만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천천히 말해봐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현아 지금 잘 지내죠?”소민아는 눈앞의 여자를 멍하니 살펴보았다. 그녀의 얼굴,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고귀한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언니의 핸드폰 사진 속에서만 보던 장소월을 직접 만나니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소민아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소월 언니, 현아 언니의 생일 파티에 꼭 갈 거죠?”“그것 때문에 날 찾아온 거예요?”소민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현아 언니가 꼭 보고 싶어 해요.”그 말을 들은 장소월은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겼다는 예감이 들었다.“현아한테 무슨 일 있는 거예요?”소민아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15분 뒤, 소민아는 일 때문에 회사에 돌아갔다.운전기사는 어두워진 장소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4년 전 소현아를 그리기 시작했다.“아가씨, 조금 쉬면서 이 죽을 드세요. 곧 식겠어요.”장소월은 머리도 들지 않고 말했다.“거기 놓아두세요.”은경애는 그림에 집중하는 그녀를 보고는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문을 닫고 자리를 비켜주었다.또 몇 시간이 흐른 뒤, 은경애가 식사를 올려갔을 때에도 장소월은 간단한 한 마디로 돌려보냈다.은경애는 여전히 그대로인 죽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들고 내려갔다.저녁 6시 반, 오늘 전연우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롤스로이스가 엔진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전연우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허리를 굽혀 차에서 내렸다.어두운 색 셔츠 한 편이 축축이 젖어있었다.그가 현관에 들어서자 식은 음식을 다시 데울 준비를 하고 있는 도우미들이 보였다.“소월이는 먹었어요?”전연우의 목소리에 도우미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접시를 떨어뜨릴 뻔했다.“대표님, 소월 아가씨는 외출하고 돌아오신 뒤 계속 화실에 들어가 계십니다. 은 아주머니가 모시러 올라갔지만 내려오지 않으셔서 지금 음식을 데우려고 하던 참이었어요.”“네.”전연우의 얼굴에 그림자가 내려앉았다.도우미는 얼른 음식을 들고 주방에 들어갔다.돌아오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 별이는 이제야 평온한 얼굴로 전연우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전연우는 아이를 안고 올라가 화실 문을 열었다. 장소월은 옷 군데군데 물감을 묻히고 그림에 열중하고 있었다.“언제까지 그릴 거야?”전연우의 화난 듯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이 약간 머리를 움직이자 대충 묶어두었던 머리카락이 스르륵 풀려내려왔다.“잠깐이면 돼.”“10분 줄 테니까 준비하고 내려와서 나랑 밥 먹어. 아니면 내일 여기 그림 도구들을 모조리 치워버릴 거야.”그 한 마디를 남긴 뒤 전연우는 방으로 돌아갔다.그는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몇백만 원짜리 셔츠가 가차 없이 휴지통에 버려졌다.장소월은 고민을 거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