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아이의 소변을 확인한 뒤 침대 중앙에 눕히고는 자신은 침대 가장자리에 누웠다. 이 침대는 넓고 편안하여 밤에 마음껏 뒤척여도 아이의 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전연우가 그녀 곁으로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았다. "국수 끓여서 한 그릇 먹을래?"장소월은 침대에 앉아 책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아직 채 읽지 않은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난 배 안 고파. 귀찮게 하지 마."그의 손이 위로 올라간 순간, 장소월은 경계심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전연우와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시선을 피한 뒤 책을 닫아 침대 아래에 넣었다. "먼저 잘게."장소월은 등을 돌리고 누워 눈을 감았다. 전연우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한동안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발코니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만약 정말 상처를 받았다면 장소월도 저렇게 태연하지 못했을 거야.남원 별장 아래에는 아직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인시윤이었다. 엄마와 오빠를 위해...엄마가 홧김에 장소월에게 한 말 때문에, 전연우는 그들이 장소월에게 그에 따른 사과를 하기를 원했다. 엄마는 장소월에게 무릎 꿇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엄마의 지금 건강 상태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인시윤은 머리를 들어 올려 3층 아직 불이 켜져 있는 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그녀는 결국 장소월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와의 결혼도 일찌감치 계획된 일이었다. 많은 일들은 따귀 한 대를 호되게 맞은 후에야 비로소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분명 이런 이치를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마음을 그에게 쏟아부었다. 무려 5년 가까이, 그녀의 청춘을 모두 바쳤다. 그를 위해 필사적으로 헌신했지만 결국 자신의 일방적인 욕망일 뿐, 그는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점점 더 깊어져 가는 밤, 밖에선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도우미들은 일을 마무리한 뒤 조명을 끄고 퇴근할 준비를 했
주룩주룩 거세게 창문에 쏟아지는 빗소리, 하늘에서 번쩍번쩍 사납게 하늘을 가르는 번개... 아이가 놀라 깨어나 울음을 터뜨렸다. 장소월 역시 깊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전연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이마에 얹어놓았다. 장소월은 손을 뻗어 침대 탁자 옆 조명을 켠 후 이불을 걷어 침대에서 일어났다. 남원 별장의 방은 로즈 가든보다 넓었다. 또한 이미 오랜 시간 살아왔던 곳이기에 어둠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걸어 나갈 수 있었다.그녀는 떨어진 어깨끈을 살짝 위로 올리고는 전연우가 깰까 봐 아이를 안고 부엌으로 향했다. "괜찮아, 괜찮아, 별아, 울지 마..."오늘 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 울고 있었다.장소월이 아무리 달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답답함에 창문 쪽으로 걸어가 커튼을 연 순간, 바깥에서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커튼에 닿은 손이 경직되어 멈춰 섰다.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차 조용해지고 있었다.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거지.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귀에 스며들었다. 전연우가 검은색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채 몸을 숙이고 그녀의 어깨에 키스했다. "내가 안고 있을게. 넌 들어가서 자. 응?"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들어온 순간, 장소월은 오싹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시윤이 왜 저기에 있어?"인시윤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당장에라도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나 등을 곧게 펴고 무릎을 꿇었다. "마음이 아프지도 않아?"장소월의 검은 긴 속눈썹이 바르르 떨려왔다.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동자 속에서 아픈 상처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인시윤은 네 와이프야. 저런 모습을 보고도 마음이 하나도 안 아파?"장소월에게는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다. 전생의 그 날도 지금과 같이 비가 내리고,
장소월은 무덤덤하게 그녀 곁을 지나갔다. 송시아의 그녀에 대한 태도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시윤은 지난 생의 소월 씨와 정말 닮았네요? 가엾고도 우스꽝스럽고...""내 자리를 빼앗아 높은 자리에 앉은 느낌 어때요? 인시윤이 비를 맞으며 밤새 무릎 꿇고 있는 걸 보니 흐뭇하죠?""생각해보니... 이 장면, 참 익숙한 느낌이네요!"그녀의 말투엔 조롱이 가득 차 있었다. 또한 장소월이 정말로 전생의 기억을 안고 다시 태어난 건지 넌지시 떠보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이번 생에서 어떻게 전연우를 손에 쥐었겠는가. 지난 생에서 그녀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매번 자신의 발밑에 무릎 꿇고 사정하던 모습을 송시아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장소월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송시아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걸렸다.‘장소월, 저번 생보단 좀 더 똑똑했으면 좋겠네."송시아가 문을 열었을 때, 남자는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연우 씨, 할 말이 있어요."전연우는 침대에 앉아 잠옷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나가."송시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나도 못 들어가요?"음산한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내 말 못 알아들어? 밖에서 기다려!"송시아는 한 발짝 더 다가가려다가 멈춰 섰다. "밖에서 기다릴게요."정보연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장소월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찾았습니다. 그분은 도우미 방에 갇혀있어요. 제가 알아봤는데 몸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의사가 돌보고 있다고 하니 걱정 마세요."다른 도우미들은 일 때문에 바쁘게 돌아치느라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그럼 다행이네요.""식사는요? 약도 먹어야 할 텐데..."정보연은 머리를 저었다. "식사를 가져갔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였어요.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으면 결국 버티지 못할 거예요. 상처는 별로 크지 않기는 하지만요."장소월이 말했다. "아주머니는 들어가
“... 옷이 구겨졌네요. 제가 정리해드릴게요.”송시아는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손짓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은 부엌 쪽으로 향해있었다. 그녀는 계속하여 부엌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전연우의 몸에 걸쳐진 짙은 줄무늬의 잠옷을 정리해주었다.“오늘 밤 늘 보던 곳에서 기다릴게요. 꼭 와야 해요.”송시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치 봄바람처럼 그녀의 귓전을 스쳤지만 장소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장소월은 말없이 계속하여 뒤처리를 하며 마지막으로 냄비를 씻어서 제자리에 놓았다. 이윽고 송시아가 떠난 후, 정보연이 마침 분유를 다 먹이고 트림을 하는 아이를 안고 위층에서 내려왔다.“아가씨, 아이가 깼어요. 우는 것을 보자마자 아가씨를 찾는 것 같아서 바로 데려왔어요.”그러자 장소월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아이를 건네받았다. “주세요. 약은 먹였어요?”“네.”장소월은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남자를 무시한 채 아이를 안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정보연은 눈치껏 전연우를 힐끗 바라보고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전연우도 그녀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다.현재 모든 상황은 전연우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시간이 흐르며 장소월도 반드시 그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장소월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의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이토록 훈훈한 장면은 전연우에게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만족감을 선사했다.오랫동안 비어 있던 마음속의 공허함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장소월도 그의 스킨쉽을 피하지 않았다. 강영수가 그의 손안에 있으니 만약 전연우가 전처럼 다시 한번 정신줄을 놓고 강영수에게 손을 댄다면... 장소월은 더 이상 모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저녁에 연회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장난감을 가지고 아이를 달래주던 장소월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담담히 입을 열었다.“난 안 갈래. 영수는 자고 일어나서 내가 안 보이면 계속 울어. 게다가 아직 병도 낫지 않았잖아.”말하자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 아이는 마치 그녀에게 달라붙어
장소월이 좋아하는 물건이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줄 수 있다.지금처럼 자신에게 선을 긋고 울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는 그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사람은 원래 욕심이 많은 법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한다.그런데 하필이면... 전연우는 그 한 가지도 얻지 못했다.인시윤을 떠나보낸 것도 모자라... 전에 남원별장에서 인시윤을 돌보기 위해 고용한 가사도우미도 모두 함께 꺼지라고 했다.사실 장소월은 이 별장의 소유권이 그녀의 명의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옛 모습을 돌려놓기 위해 전연우는 이곳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도 다시 찾아 데려왔다.그리고... 은경애...은경애가 아직도 시공이 중단된 낡은 건물에서 빨래하고 있을 때, 경호원 몇 명이 그녀를 찾아 나섰지만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빛의 속도로 거절해버렸다.하지만... 월급을 듣자마자 그녀는 결국 발을 가누지 못하고 그 사람들을 따라 차를 탔다.차에 탔을 때, 그곳이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동굴이라도 되는 듯 그녀는 자신의 뺨을 두 대 때렸었다. 당시 그 여자는 인... 뭐였었지, 결국 은경애는 말 한마디에 해고당했고 월급도 절반 이상이 깎였었다.당시 은경애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었다....전연우가 한 모든 행동은 마치 일부러 그녀에게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정보연은 아직도 아이가 실수한 옷을 챙기고 있는데 갑자기 경호원이 들이닥치더니 말없이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이 모든 일은 장소월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아가씨... 전 아무 일도 안 했어요!”“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장소월은 아이를 방에 혼자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그들을 쫓아갔다.홀 안에는 남원별장 내부의 모든 사람이 서 있었다.그리고 모든 사람의 손에는 종이봉투에 담긴 돈이 들려 있었다.“갈 때 자리에 있는 여러분의 입을 깨끗하게 하는
그러자 그때, 경호원 한 명이 텀블러 하나를 손에 들고 문 앞에서 걸어왔다.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장소월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대표님, 강영수를 가둔 방에서 찾은 것입니다.”전연우는 담담히 옆 사람을 흘끗 쳐다보고는 입가에 포악한 곡선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그래? 안에 뭐가 들어 있는데?”그러자 경호원이 곧바로 그에게 보고했다.“갈비죽입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곧바로 텀블러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죽을 절반가량 들이켰다.장소월은 숨통이 조여오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죽? 누가 내 허락 없이 갖다 줬어?”그의 말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아가씨 옆에 있는 하인입니다.”그러자 전연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령을 내렸다.“저년의 손을 잘라버려.”“그리고 마신 만큼 토해내라고 해. 앞으로는 내 허락 없이 먹을 것을 보내지 마.”전연우의 말에 정보연은 즉시 당황하고 말았다.“대표님, 이건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아가씨가 보내 달라고 해서 저도 아가씨의 말을 들었을 뿐이에요.”“대표님, 저에게는 보살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다음에는 절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겠습니다...”정보연은 콧물과 눈물범벅이 되어 하마터면 전연우 앞에서 무릎을 꿇을 뻔했다.“아가씨,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장소월은 얼굴을 찌푸리며 곧바로 그를 말렸다.“내가 시킨 거 맞아. 그러니까 보연 아줌마 그렇게 대하지 마. 영수가 깨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넌 가두어 버렸잖아... 영수는...”“벌써 마음이 아파진 거야?”전연우는 마치 장소월이 성심성의껏 강소영을 감싸주는 것이 질투 난다는 듯 억지로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그의 몸에서 풍기는 싸늘한 기운이 장소월을 스르륵 감싸고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등골에 소름이 돋고 뼈가 사무치게 했다.“그런 거... 그런 거 아니야. 오빠가 오해한 거야.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걸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장소월은 그의 눈을 피하며 계속하여 입을 열었다.
장소월은 전연우의 손에 의해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말았다.그리고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온 강영수는 그동안 한바탕 시달린 듯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마 앞에 늘어뜨린 그의 검은 잔머리는 간신히 허약하고 생기 하나 없는 눈동자를 가려주었고 드러난 팔뚝에는 멍 자국이 가득하고 핏자국이 배어 있었다.전연우는 한쪽에 놓여있던 골프채를 들고 곧바로 강영수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장해진의 밑에서 일하며 영역 다툼을 위해 기타 세력들과 싸우던 시절처럼 흉포한 기세가 역력했다.전연우에게 해낼 수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강영수의 죽음을 원하는 전연우의 눈빛은 쉽사리 숨길 수 없었다.손에 피를 묻힌 적도 있고 게다가 지금은 모든 세상이 그의 말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목숨 하나가 줄어든다고 해도 아무도 감히 그에게 무어라 언질을 줄 수 없다. 그러니 아무도 강영수의 죽음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예전의 전연우는 지금보다 더 무법천지였다.골프채를 휘두르는 그 순간, 장소월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땅에서 벌떡 일어나 강영수의 곁으로 달려와 그를 꼭 껴안고 몸을 감쌌다.순간 뒤쪽 견갑골로부터 찌릿찌릿한 저림이 전해지더니 뒤이어 뻑뻑한 통증과 함께 그녀의 팔 전체에 걸쳐 모든 감각이 없어졌다.순식간의 고통에 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전연우는 장소월이 정말 강영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내세울 줄 몰랐다. 그는 급히 장소월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소월아!”장소월은 엄청난 고통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영수는 네 공격을 참아낼 수 없어. 전연우... 영수를 죽게 하고 싶지 않잖아...”“이 바보야!”전연우는 즉시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집어 던지고는 장소월을 번쩍 안아 들었고 그의 얼굴에는 무시무시하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그는 그녀를 방으로 데려가 다른 것을 신경 쓸 틈도 없이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북북 찢었다. 불과 몇 분 만에 그녀의 등 쪽은 온통 검푸르게 부어올랐다.골프채를
간호사는 장소월의 옆을 지키며 그녀에게 수액을 놓아주었다.“혹시 서철용 의사 선생님 좀 불러 주시겠어요? 볼일이 있어서 그래요.”“서 선생님께서는 지금 수술 중이라 2시간 정도 있다가 수술이 끝나면 전해드릴게요.”“감사합니다.”“천만에요.”장소월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가물가물한 의식을 애써 놓지 않았다. 통증 때문인지 장소월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그때, 전연우가 마침 밖에서 돌아와 병실로 들어왔다. 잠깐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것이다.그는 장소월의 병상 앞에 앉으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의부님은 이틀 후에 돌아오실 거야.”장소월을 대신해 이불을 정리해주는 그의 손길은 뜻밖에도 부드럽기만 했다.일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그의 친절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들 두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침묵을 지켰다.얼마나 지났을까 장소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도대체 언제 영수를 풀어줄 작정이야?”“소월아, 나한테 대들지 말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 안 돼? 순순히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넌 여전히 예전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지낼 수 있어.”그제야 장소월은 지그시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머리 위의 하얀 천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약간 공허하고 멍했다. 그리고 전연우에게 돌아온 대답은 단지 짧디짧은 한마디뿐이었다.“나는 그럴 수 없어.”그는 누구 때문에 변할 일은 없을 것이다.그는 여전히 전생의 전연우와 똑같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한 시간여 뒤, 직접 검사 보고서를 들고 장소월의 병실로 들어선 서철용은 곧바로 조용하지만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장소월은 계속하여 눈을 감은 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연우는 말없이 병실에서 그녀와 함께 앉아 있었다. 옆에 매달린 링거 호스는 한 방울씩 똑똑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고 전연우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고 링거 속도를 늦추었다.그 시간 동안 모두가 원초적인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