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선이 그녀의 몸에 꽂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자신을 꿰뚫어 볼 듯한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피했다. 이토록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고 어떻게 차분히 전연우와 마주한단 말인가.“가고 싶다고 하면 보내줄 거야?”그녀의 말에 전연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도 그놈이 보고 싶어? 4년 전에 혼난 거로도 부족해?”“보고 싶든 아니든 내 일이야. 너와는 상관없어. 아이도 있는 이곳에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넌 네 일에나 신경 써. 내일이 결혼식인데 나랑 같이 있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집에 들어가. 아이는 내가 잘 돌볼게.”장소월이 아이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별이는 분유병을 입에 문 채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그녀가 방 청소를 시작하려 바닥에 있는 남색 작은 양말을 집어 들었을 때, 커다란 손이 그녀를 들어 올려 벽에 밀쳐버렸다.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압박했다. 그는 한 손으로 장소월의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그녀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내가 여러 차례 널 인내해줬다고 해서 내 한계에 도전하려고 하지 마. 강영수는 지금 당장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소월아... 착하게 오빠 곁에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마.”“만약 너한테 다른 속셈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땐 이 오빠가 정말 화낼 거야. 알겠지?”그의 앞에서 장소월은 늘 공격성 하나 없는 나약한 토끼와도 같아 손쉽게 그의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가 이럴수록 장소월의 반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녀는 전연우를 두려워하면서도 하루빨리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다. 그녀는 독립적인 한 사람이지, 그의 소유물이 아니다.더욱이 그는 이미 인시윤과 약혼한 사이다.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계속 곁에 둔단 말인가!장소월은 전연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날 구금하고, 강영수로 협박하는 것
장소월은 전화를 끊은 뒤 병실 안에 있는 두 사람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병실을 정리했다.인시윤이 전연우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연우 씨, 우리 이제 가야 해요. 호텔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장소월의 태연한 모습에 전연우는 어둡게 가라앉았던 시선을 거두었다.인시윤은 전연우와 함께 떠나기 전 고개를 돌려 장소월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몰래 하얀색 쪽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장소월은 두 사람이 떠난 뒤에야 조용히 쪽지를 주웠다.내용은 이러했다. 오빠 쪽은 엄마가 설득했어. 내일 아침 너희들을 공항으로 데려다줄 헬기가 병원 옥상에 도착할 거야.강영수가... 모두 다 안다고?인경아는 그를 어떻게 설득했을까?장소월은 그가 떠나지 않겠다고 할 거라 생각했었다. 사실 그녀가 강영수와 출국하기로 마음먹은 데엔 전연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하지만 내일... 장소월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유 모를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오후 3시, 도우미가 아기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급히 들어왔다.“아가씨, 시키신 일 모두 준비해 왔습니다. 걱정 마세요. 예전 유모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잘 돌볼 수 있을 거예요.”장소월은 측은한 얼굴로 품 안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확실히 건강한 혈색이 돌고 있었다. 약간 저체중인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한동안 잘 보살피면 건강을 회복할 것이다.장소월이 카드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예전 받았던 상금을 모아둔 카드였는데 그녀가 얼마 쓰지 않았기에 아이를 키우는 데엔 충분할 것이다.“내일 제가 떠나면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세요. 멀면 멀수록 좋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입양시켜도 돼요.”“네. 아가씨.”도우미 역시 돈을 받고 장소월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전연우는 내일 결혼식을 치를 것이니 도우미에게까지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도망칠 절호의 기회다.몇 시간 뒤, 매체에서 성세 그룹 대표와 인하 그
다음날 새벽, 장소월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목에서 진동하는 농후한 피 냄새에 그녀는 코를 막고 달려나가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화장실에 들어가 피를 토해냈다.원피스, 바닥... 군데군데 피로 물들었다.물로 씻으려 수도꼭지에 손을 댄 순간, 돌연 눈앞이 컴컴해졌다. 장소월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세면대를 잡고 물로 핏자국을 씻어냈다. 그러고는 벽을 더듬거리며 침대 밑 가장 아래층 서랍을 열어 하얀색 약 두 알을 꺼냈다.장소월은 힘없이 벽에 기댔다. 통증이 가시자 그녀의 시선 속에 다시 빛이 깃들었다. 이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어쩌다 가끔씩 숨 막힐 듯한 고통이 찾아오곤 한다.이건 그녀의 병증이 더욱 심각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간호사가 들어와 바닥에 뿌려진 피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소... 소월 씨... 어떻게 된 거예요?”도우미 아주머니가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틀어막고 어쩔 줄을 몰랐다.“세상에.”장소월은 혈색 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질 거예요.”“아주머니, 지금 몇 시예요?”서보영은 얼른 다가가 장소월을 부축했다.“다섯 시예요. 곧 날이 밝을 거예요.”“네. 잠시 뒤 아이를 데리고 병원 뒷문으로 도망치세요.”서보영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월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강영수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빛 햇살이 구름층을 뚫고 나와 하늘을 반쯤 물들였다.이곳에선 서울시 가장 높은 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성세 그룹이다.강씨 집안은 처참히 무너졌다.사고 후 깨어나 보니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다.강영수는 후회하고 있을까?그의 가슴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다.그에게 있어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 위치보다 예전 실수로 잃었던 장소월이 훨씬 더 소중했다.경호원이 다가와 말했다.“도련님, 헬기가 도착했습니다. 출발하셔야 합니다.”“그
장소월이 경계하며 그를 쳐다보았다.“내가 왜 당신 말을 믿어야 하는데요?”서철용은 고개를 숙이고 주름진 의사 가운을 툭툭 두드렸다.“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했어요. 믿거나 잊어버리거나, 그건 소월 씨의 몫이에요.”“전 확실히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어요. 알다시피 나에겐 망설일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어요. 만약 장씨 집안에 대한 원한을 저에게 풀고 싶거나, 또는 저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예전 일은 더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장해진도 그렇고, 엄마의 사망 원인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안들 뭘 할 수 있겠어요? 살날이 반년도 남지 않은 사람이 뭘 할 거라 기대하는 거예요? 만약 엄마가 계셨다면, 엄마도 제가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전 30세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됐어요. 장해진의 딸로 태어난 벌로 생각하고 있어요.”장소월은 휠체어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지금 제가 원하는 건 바로 제 눈앞에 있어요.”경호원이 재촉했다.“아가씨,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가야 합니다.”장소월의 시선이 다시 서철용에게로 향했다.“아버지가 남긴 엄마 사진첩 속에서... 엄마 옆에 서 있던 그 남자아이 말이에요. 당신이에요?”서철용의 새빨간 입꼬리가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장해진은 그분의 사진을 갖고 있을 자격도 없어요. 또한 그분은 그때 소월 씨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요.”장소월은 누군가 심장을 난타하기라도 한 것처럼 욱신거렸다.“서철용 씨 당신은 몰라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말이에요. 만약 저였어도 흔쾌히 제 목숨을 버리고 아이를 낳았을 거예요.”“아가씨,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장소월은 더는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서철용은 헬기에 오르고 있는 장소월을 향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장소월, 네가 정말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호텔 초원에선 한창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은 수많은 귀빈들로 꽉 차 있었고, 기자들은
오늘은 분명 조용히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헬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개인 전용기를 타려고 준비하던 그때.장소월은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왠지 오늘 이렇게 쉽게 떠나지는 못할 것 같았다.진봉은 강영수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밀고, 장소월은 그들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다.비행기에 발을 들이려던 순간, 돌연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승객 여러분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모든 항공편 출발 시간은 10분 연착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갑작스럽게 불편함을 드려 죄송합니다.”동시에 활주로 안 검은색 개인 비행기 모두가 움직여 그들을 에워쌌다.장소월은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창백해졌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익숙한 그 롤스로이스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어 고급스러운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전연우가 차에서 내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살기는 마치 지옥에서 목숨을 거두러 온 악마의 몸에서 발산되는 것 같았다.오늘은 분명 그와 인시윤의 결혼식 날이다. 그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순간 장소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면에 웃음을 띤 송시아가 몸에 달라붙는 레드 드레스를 입고 전연우의 옆에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득의양양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모양새는 똑 닮아 있었다.전연우는 차가운 얼굴로 손을 뻗어 장소월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장소월, 이쪽으로 와!”전연우의 출현에 공포에 질린 그녀는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송시아는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팔짱을 끼고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강영수가 장소월의 손을 잡았다.“가지 마.”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진봉이 말했다.“소월 씨, 도련님과 함께 먼저 가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막아볼게요.”장소월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봉을 바라보았다.“당해내지 못할 거예요.”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쥐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내가 너랑 가면 영수는 놓아줄 수 있어?”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고 마침 전연
그 한마디 말을 남긴 뒤 전연우는 강제로 장소월을 차 안에 밀어 넣었다.빈틈없이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인 줄 알았으나, 전연우는 이미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장소월은 군말 없이 차에 들어가 애원했다.“전연우, 내가 이렇게 빌게. 영수는 건드리지 마.”“내가 떠나자고 했어. 영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전연우가 돌연 팔을 뻗어 그녀를 확 밀치고는 목을 졸랐다. 얼굴엔 포악함이 가득 이글거렸고 손등엔 퍼런 힘줄이 툭툭 튀어 올랐다. 하지만 장소월은 조금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 장소월은 전생 백윤서가 죽던 그 순간,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전연우의 눈빛이 떠올랐다. “한 번만 더 강영수를 입에 올리면 당장 죽여버릴 거야.”너무나도 싸늘한 그의 모습에 장소월은 깜짝 놀라 바로 입을 다물었다. 온몸이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려왔다.기성은은 운전석에 앉아 차를 운전하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대표님, 도우미 아주머니와 아이는 이미 찾았고, 남원 별장에 데려다주었습니다.”장소월은 가슴이 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그 아이까지 다시 데려오다니.“차 돌려. 남원 별장으로 가.”“네. 대표님.”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아무 말 없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공항에서 남원 별장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차량은 빠르게 달려 40분도 채 되지 않아 남원 별장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전연우의 손에 잡혀 별장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가 너무 힘주어 당긴 탓에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함께 잡혀 온 강영수가 별장에 들어오자 전연우는 단번에 휠체어를 차 엎어버리고는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깨어나자마자 이런 일을 벌여? 이봐, 강 도련님, 대체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걸 좋아하게 된 거야?”“하... 하지 마.”장소월은 힘겨운 몸을 이끌고 기어가 전연우의 발목을 잡고 시뻘게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전연우, 영수는 아직 채 회복되지도 않았어. 이러면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 거야.”“
전연우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장소월의 아래턱을 감싸 쥐었다.“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찌할 건데?”반달 모양으로 길게 뻗은 수려한 눈썹,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물, 벌겋게 물든 두 눈,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그 모습에 당장에라도 침대에 눕히고 괴롭히고 싶었다.“나한텐 어떻게 해도 다 괜찮아. 저 사람들은 놔 줘.”전연우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소월아, 날 뭐라고 불러야 해?”장소월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오... 오빠...”전연우는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눈에 걸려있는 눈물에 살며시 키스했다.“세 번은 없어. 알고 있지?”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연우는 그제야 등 뒤의 경호원에게 손짓했고, 경호원은 아이를 장소월에게 안겨주었다. 살펴보니 다행히 아이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이어 전연우는 그녀와 아이를 함께 안아 올렸다.“저놈은 지하실에 가두고 아무도 못 만나게 해. 그리고 의사를 불러 치료하게 해. 죽으면 안 되니까.”“네. 대표님.”전연우의 주요 목적은 바로 말 안 듣는 장소월을 다시 잡아 오는 것이었다.장소월은 전연우의 품에 안겨 그의 방에 들어갔다. 그는 아이가 있다는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몸을 범하기 시작했다. 장소월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를 견뎌냈다.예전에는 성욕에 대한 굶주림이었다면, 이번엔 그녀가 한 잘못에 대한 처벌이 추가 되었다. 하여 애무도 없이 곧바로 그녀의 몸 안을 파고들었다. 장소월은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고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애써 참아냈다.얼마가 지났을까, 아이는 울다가 지쳐 그녀의 옆에서 잠들었다. 그가 일을 끝내자, 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 한마디도 없이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두 다리 사이에서 끈적한 액체가 씻겨내려 왔다.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욕조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이 모든 고통은 전연우가 초래한 것이다.그가 죽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전연우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가 죽었다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장소월은 재빨리 몸을 씻고 옆에 있는 목욕 가운을 집어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탓에 아이는 이미 배가 고팠다.남원 별장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바로 밖에서 장을 봐와야 했다.장소월이 방으로 돌아가려 하자 문 앞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를 막아 세웠다. 전연우는 방금 통화를 마치고 발코니에서 나와 말했다."필요한 건 한 시간 정도 후에 배달될 거야."장소월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나 방으로 돌아가도 될까?""내 방에서 지내. 당분간은 나도 너랑 같이 남원 별장에서 지낼 거야."같은 방에서?그럼 인시윤은?오늘은 그와 인시윤의 결혼식 날이 아닌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장소월은 두려움에 더는 묻지 못했다.곧 방문이 열리고 도우미가 그녀의 짐을 모두 들고 들어왔다.장소월에게는 옷이 많다. 옷장을 열어보니 전연우가 평소에 입던 파자마가 모두 한쪽으로 몰려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그녀의 옷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그녀의 신발 역시 전연우의 신발과 함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나 혼자 지낼 수 있는데... 아기가 있어서 불편하잖아."전연우는 장소월에게 다가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조만간 익숙해질 거야."그는 아직 마르지 않은 장소월의 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도우미가 말했다."아가씨, 짐은 거의 다 옮겼어요. 더 필요한 게 있나 봐주실래요?""필요 없어요." 장소월의 화장대와 기타 잡동사니는 이미 꽤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다른 한 명의 도우미가 올라와 말했다."대표님, 아가씨, 저녁 다 준비됐으니 내려와서 드세요.""네."전연우가 무심히 대답했다.이야기를 마친 뒤 도우미들은 모두 밖으로 물러났다."아이 이리 줘."장소월은 아무 말 없이 팔을 뻗어 아이를 넘겨주었다. 말려 올라간 옷소매 끝으로 몇 시간 전에 남겨진 상처가 드러났다.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장소월의 손을 잡은 채 세 식구가 위화감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 괴이하고도 화목한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