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불필요한 회의는 뒤로 미뤄.”“네. 대표님.”전연우는 그때에야 장소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경호원이 널 집으로 데려다줄 거야.”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응.”장소월은 전연우가 나간 뒤 눈을 내리뜨리고 한동안 말없이 자리에 서 있었다.그때, 경호원이 들어왔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출발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병원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입니다.”만일을 대비해 차도 바꿔탔다. 전연우가 보내준 차엔 위치 추적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그녀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그의 핸드폰에 전송될 테니 말이다.차 안, 경호원이 회색 유니폼과 마스크를 장소월에게 건넸다.“병원엔 대표님의 사람이 많아요. 때문에 간호사로 변장해야만 들어갈 수 있어요. 이 간호사 증도 목에 거세요.”“알겠어요.”경호원이 자리를 비켜주자 장소월은 개인 공간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장소월은 유니폼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뒤 두 눈만 드러낸 채 마스크를 꼈다.엘리트 개인 병원에 도착하자 경호원이 그녀를 안내했다.그들은 한 VIP 병실에 들어섰다.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리는 소독수 냄새에 심장이 떨려오고 숨이 턱 막혔다.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이 그들을 막아 세웠다.“신분을 확인해야 하니 마스크를 벗어주세요.”“확인할 필요 없어. 내가 모셔 온 간호사야. 들여보내.”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서 들려왔다. 장소월은 문틈으로 인시윤의 엄마인 인경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장소월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인경아의 머리에 얼마나 많은 백발이 자라났는지 40세밖에 되지 않는 그녀가 족히 50세는 되어 보였다.경호원이 길을 비켜주었고 장소월은 그렇게 순조롭게 안으로 들어갔다.장소월이 마스크를 내리지 않아도 인경아는 이내 그녀를 알아보았다.“들어가요. 영수가 계속 기다리고 있어요.”그 말 한마디가 장소월의 코끝을 시큰해지게 만들었다.장소월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 아이... 어디에 갔는지 물어도 될까요?”“시윤이가
장소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한 마음을 안고 강영수의 병실 문을 열었다.코를 찌르는 소독수 냄새가 그녀의 신경까지 자극했다.병실에 들어선 그 순간, 산소호흡기를 단 채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찌나 야위었는지 앙상한 뼈마디가 보일 정도였고, 손등과 다리는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어 멀쩡한 피부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만약 저곳에 누워있는 사람이 강영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장소월은 결코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그의 옆으로 다가가고 싶었으나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그 순간 장소월의 귓가에서 악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영수는 너 때문에 저렇게 된 거야.너 때문에 사고가 난 거라고!만약 네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강영수가 심하게 다치는 일은 없었을 거야.그녀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레 그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장소월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영수야...”얼음장같이 차가운 그의 손등을 만져보니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어서 빨리 깨어나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목구멍이 꽉 막혀버려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그녀가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강영수, 나 돌아왔어!”“네가 들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빨리 깨어나. 응?”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슬프게 흐느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려 바닥에 한 송이의 처량한 꽃을 수놓았다.시청 앞.인시윤이 레드 드레스 차림으로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오늘은 단연 그녀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다. 그녀는 세상에서 최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소녀처럼 꽃보다 환한 미소를 지었다.옆에 서 있던 촬영사가 그 모습을 포착했다. 사진 속에선 전연우가 약간 고개를 숙이고 인시윤을 쳐다보고 있었고, 인시윤은 살짝 쑥스러운 듯 발그레해진 얼굴로 입꼬리를 예쁘게 끌어올리고 있었다.그 모습은 영락없는 사랑이 흘러넘치는 신혼부부 그 자체였다.인시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그럼
전연우는 기성은에게서 펜을 받은 뒤 마지막 페이지에 사인했다.이어 곧바로 기성은에게 건넸다.“법무부에 제출해.”“네. 대표님.”전연우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허울뿐인 결혼 따위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그에게 있어 누구와 결혼하든 전혀 중요하지 않다.“밥은 됐어요.”“왜요? 회사에 가봐야 해요?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법적으로 부부가 된 날이잖아요. 여보... 오늘은 저와 함께 있어 주면 안 돼요? 함께 식사다운 식사를 해본 적도 없잖아요. 절 위해 이번 한 번만 양보해 줘요. 네?”“인시윤 씨, 여기까지예요. 연극에 너무 몰입하지 말아요.”그 한마디에 인시윤은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전연우는 그런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싸늘하게 차에 올라탔다.“대표님, 회사로 갈까요? 아니면 로즈 가든인가요?”전연우는 지그시 눈을 감고 이마를 찌푸렸다. 분명 목적을 이루었건만, 가슴 속의 짜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 이유는 전연우 자신 또한 알 수 없었다.“로즈 가든.”“네. 대표님.”전연우는 핸드폰을 켜고 화면 속 장소월의 위치를 확인했다.로즈 가든에 돌아간 뒤 전연우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곧바로 안방에 들어갔다. 베란다에 멍하니 앉아있는 장소월을 본 그의 눈동자가 한층 어두워졌다.전연우가 한 걸음 한 걸음 장소월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두 다리를 끌어안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다.장소월의 시선이 남자의 긴 두 다리에 부딪혔다. 그녀의 검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나지막한 세 글자가 새어 나왔다.“축하해.”전연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마치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 보아내기라도 한 듯 말이다.“그리고?”“행복한 신혼 생활 보내.”전연우는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아래턱을 잡아 올렸다. 검디검은 눈동자에 한기가 위험하게 일렁거렸다.“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전연우는 인시윤과 혼인신고를 한 이후에도 줄곧 로즈 가든에 머물렀다. 다만 장소월은 더는 그와 함께 회사에 가지 않았다.장소월의 출현은 이미 적잖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었다.인시윤이 성세 그룹의 안주인이 된 지금, 그녀가 또다시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떠들어댈지는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전연우와 인시윤의 결혼식 3일 전부터 서울시 전체는 성세 그룹과 인하 그룹이 사돈을 맺었다는 소식으로 뜨겁게 들끓었다.두 사람의 예식장은 서울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호텔 측에선 아예 3일 동안 문을 닫고 결혼식 준비에 매진했다.장소월은 인시윤이 보낸 경호원의 도움으로 또다시 청연사로 향했다. 오직 강영수를 위해 날씨가 좋지 않은 날 빼고는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산에 올랐다.어젯밤 전연우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여 그녀는 어둑한 새벽 일찍 출발했고 산봉우리에 도착하니 해가 완전히 떠올라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오늘 청연사엔 불경을 드리러 온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장소월은 처음으로 청연사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문이 열리고 회색 승복을 입은 스님이 걸어 나왔다.“아미타불, 장 시주.”장소월이 매일 절에 드나든 탓에 많은 스님들이 그녀를 알아보았다.장소월은 늘 그랬던 것처럼 불상 앞에서 몇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다.두 번째 이곳에 왔을 땐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세 번째,네 번째.다섯 번째...항상 강영수가 하루빨리 의식을 되찾고 몸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그가 깨어날 때까지 매일 매일 이곳에 올 생각이었다.하지만... 강영수의 상황은 하루하루 더 악화 됐다. 신장 등 장기 기능까지 천천히 퇴화하여 갔다. 의사 선생님은 이후 닷새 안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가망이 없으니 치료를 지속해 나갈 필요도 없다고 통보했다.주지 스님이 걸어 나왔다.“장 시주, 애쓰지 말고 그냥 하늘의 뜻에 순응하십시오. 아미타불.”장소월이 간신히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전 예전 운명 같은
그때, 돌연 불어온 바람에 휩쓸려 운을 점치는 대나무가 꽂혀있던 통이 쓰러졌다.주지 스님이 급히 달려가 바닥에 떨어진 대나무를 주워보니 엄청난 길운을 의미하는 대나무였다.장소월은 산에서 내려온 뒤 병원으로 향했다.매번 그녀가 올 때마다 인경아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리를 떴다.하산하던 중 장소월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돌연 피를 토해냈다. 이어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요즘 장소월은 줄곧 자기 몸을 혹사했다. 제대로 잠을 잔 날이 언제였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경호원은 급히 장소월을 업고 아래로 내려가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장소월은 엘리트 개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었다.배드에 누워 응급실로 향하는 순간, 어렴풋이 정신이 돌아왔다.그녀의 눈에 보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서철용!그는 마스크를 하고 그녀의 몸을 검사하고 있었다.“서 선생님, 검사실 준비 마쳤습니다.”“그래요.”서철용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마주하고는 마스크를 내리고 말했다.“소월 씨, 우리 또 만났네요?”간호사는 옆에서 장소월의 몸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고 있었다.그때, 다른 간호사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 선생님, 이제 환자분 들여보내도 됩니다.”배드 바퀴가 굴러감과 동시에 장소월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검사할 필요 없어요. 뇌암 말기예요. 이제 치료도 못 해요.”두 간호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서철용이 요사스러운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말했다.“우리 소월 씨는 농담도 잘한다니까요. 알겠어요... 연우가 모레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니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거죠?”장소월이 그와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며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목숨으로 당신과 장난칠 사람으로 보여요?”그녀는 시선을 돌려 머리 위 하얀색 벽을 보며 말했다.“제 가방에 약이 있어요. 그리고 새 옷 좀 부탁드릴게요. 감사해요.”장소월은 입을 여는 순간 농후한 피 냄새를 느꼈다.그녀는 이런 불쾌한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서철용은 고집대로 그녀
서철용은 전연우를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왔네.”그가 뭐라 말했던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시간 문제라 하지 않았던가.친자 감정서까지 확인했음에도 장소월을 사랑해 버리고 말았다.전연우와 인시윤은 모두 장소월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줄곧 서철용에게 멈춰 있었다. 인시윤이 다가가 장소월의 손을 잡았다.“왜 갑자기 병원에 온 거야? 어디 아파?”인시윤은 장소월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다. 그저 그녀의 병을 숨기려 한 말일 뿐이었다.장소월이 시선을 거두었다. 서철용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장소월은 알고 싶었다. 서철용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가 어떻게 어머니를 아는 걸까?설마 어머니의 무덤 앞에 있던 그 꽃이 서철용이 가져다 놓은 건가?전생에서 장소월은 서철용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녀를 낳을 때 과다 출혈로 돌아가셨다 하지 않았던가?이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엉켜버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전생에선 이런 일들에 대해 아무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었다.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산에서 내려올 때 조심하지 않아 삐끗해서 넘어졌어.”이건 경호원, 인시윤, 그리고 장소월이 사전에 맞춰두었던 이유였다.옆에 있던 서철용은 모든 걸 알아보았는지 혼자 은밀한 웃음을 지었다.전연우의 음산한 눈빛이 서철용에게로 향했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검사 보고서는?”서철용이 아무 일도 없는 척 어깨를 들어 올리며 가볍게 말했다.“소월 씨가 얘기했잖아? 그냥 넘어진 것뿐이니까 별문제 없어. 우리 소월 아가씨는 몸이 너무 약해. 앞으론 얌전히 집에만 있고 어디든 안 나가는 게 좋겠어.”사람들의 말에 장소월은 짜증이 밀려왔다.“난 괜찮으니까 어서 가! 이 링거만 다 맞으면 혼자 집에 갈 수 있어.”인시윤이 걱정스레 말했다.“여보, 먼저 가요. 오후 회의가 있다고 했잖아요. 병원엔 제가 있으면 돼요. 집에 돌아가면
남자는 고분고분 자기 말에 잘 따라주는 여자를 좋아한다. 혼인신고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다 모레면 결혼식까지 해야 하니, 인시윤은 전연우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인시윤이 나가자 병실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장소월은 밀폐된 공간에서 전연우와 단둘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숨 막힐 듯한 침묵이 온몸을 옥죄어왔다.장소월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누가 봐도 넘어져서 입원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전연우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차갑게 말했다.“지금까지 줄곧 그놈과 연락하고 있었던 거야?”“오빠,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에 새언니한테 잘해주는 낫지 않아? 여동생한테 더러운 짓도 그만해. 소문나면 내 이름만 더럽혀져.”전연우가 이마를 찌푸렸다.“꼭 그런 식으로 나한테 말해야겠어?”장소월은 덤덤히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내 말이 틀렸어? 이 세상에 너보다 역겨운 사람은 없어. 전연우!”“네가 내 몸을 만질 때마다 역겨워 미치겠다고.”“걱정하는 척 연기하지 마. 내 몸이 왜 이렇게 됐는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어느 날 내가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건 분명 너 때문일 거야.”전연우가 그녀의 옆으로 성큼 걸어가 손을 들어 올렸다.“내 몸에 손대지 마.”전연우의 손이 경직되어 허공에 멈추었다.“소월아, 인시윤과는 그냥 결혼한 척 연극을 하는 것뿐이야.”“연극이든 뭐든 상관없어. 난 그냥 네가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어.”“됐어. 나가. 더는 널 보고 싶지 않아.”“나가라고!”인시윤은 바깥에서 주름이 생길 정도로 드레스를 꽉 움켜쥐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안에서 전연우가 나오자 그녀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저기...”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연우가 말했다.“잘 보살펴 줘요.”“네.”인시윤이 병실로 들어갔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아직은 장소월 앞에서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었다.더욱이 곧 죽을 사람이 어떻게 그녀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정말
“그건 걱정하지 마. 연우 씨는 절대 오빠를 해치지 못해. 이젠... 내 오빠이자 연우 씨의 형님이기도 하잖아.”인시윤의 확신에 찬 말투에 장소월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안전하게 강영수와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장소월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인시윤은 떠나기 전 약속대로 아래층 약국에서 약을 받아왔다. 장소월은 곧바로 그 약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전연우와 한패인 이 더러운 병원에서 준 약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장소월은 강영수를 보러 위층으로 향했다. 그녀의 몸은 이미 많이 호전되었다.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면봉에 물을 적셔 그의 입술에 발라주고는 죽은 사람과도 같이 생기 하나 없는 강영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소월이 사소한 이야기로 말을 시작했다.“오늘 대사님께서 경서 하나를 주셨어. 넌 부처님의 은총을 받는 관상을 갖고 있어서 머지않아 몸을 회복할 거라고 하셨어.”“넌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있었어. 이제 더는 자지 마. 응?”“영수야, 몇 개월만 더 지나면 서울에도 눈이 내릴 거야...”“학교 조각상 뒷면에 새겨진 글자 봤어. 내 이름이더라고.”장소월이 약간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나 요즘 지난 4년 동안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얘기했어. 너 듣고 있는 거야? 나 정말 네가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어. 예전의 그 강영수를 보고 싶단 말이야.”“김남주와의 일은 더는 문제 삼지 않을게. 그러니까 얼른 깨어나, 응?”장소월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초췌한 얼굴에 떨어졌다. 뜨거운 눈물이 피부에 닿은 순간, 강영수의 몸이 약간 움직이는 것 같았다.그때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월은 빠르게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었다.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아가씨, 이제 가셔야 합니다. 대표님께서 이미 로즈 가든에 도착해 저희더러 아가씨를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알겠어요.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장소월이 창밖을 내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