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이 무용 학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저녁 9시였다. 차에서 내렸을 때 그녀는 다리가 부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절뚝이며 걸어오자 아줌마가 얼른 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이고,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예요? 얼른 소파에 앉아요.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기사님과 아줌마는 그녀를 부축하고 소파에 앉혔고 가방은 옆에 두었다.“이건 분명 근육이 다친 걸 거예요. 제가 물파스 들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집에는 항상 약상자가 구비되어 있었다. 아줌마는 얼른 물파스를 들고 왔다. “아니, 아가씨 선생님은 아가씨가 다친 걸 몰랐대요? 정말 바보 같네요. 봐봐요. 아픈 데는 어디예요?”아줌마는 장소월의 다리를 잡고 자기의 무릎에 올려두며 물었다.장소월은 앉아 있다 보니 이미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선생님을 탓할 건 아니에요. 제가 훈련강도를 좀 높여서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넘어져서 좀 다쳤어요.”장소월은 까만색 스타킹을 벗었고 아줌마는 물파스를 꼼꼼히 발라주며 종아리도 함께 주물러 줬다.“어때요? 많이 낫죠?”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괜찮아졌어요.”거실을 한번 쭉 둘러본 장소월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강만옥 이모는요? 아빠도 집에 안 계시는 거예요?”“강만옥 님은 연우 도련님과 있을 거예요. 연우 도련님도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는데 아마 지금쯤 잠에 드셨을 거예요.”장소월의 얼굴빛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괴이했다. 그녀는 이 일을 장해진한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그녀는 차라리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장소월은 장해진이 그녀를 기숙사로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전연우는 요즘 장가네로 자주 왔다. 장소월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종아리와 허벅지 안쪽까지 모두 물파스를 바르고 난 뒤 장소월은 치마를 내려 다시 정돈했다. “아줌마 내가 이미 약을 다 닦아 놓았으니까 얼른 먼저 들어가 쉬어요.”“저는 선생이 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월은 황급히 4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같은 공간에 더 있다가는 인생이 조기에 종영할 포스였다. 곧이어 위층에서 비명이 들렸다. “앗!”전연우는 소리 나는 방향을 따라 위로 쳐다보며 참 요란하게도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소리를 들어보니 많이 다친듯하다.검은 줄무늬 잠옷을 입고 있는 탓인지 오늘따라 전연우는 더 차가워 보였다. 카리스마가 그를 휘감았다. 위층에서 소리가 더 이상 안 들리자, 강만옥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더니 말했다. “남자 부족해? 없으면 없다고 말하지. 내가 원하는 만큼 준비해 줄 수 있는데.”강만옥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지끈거려 연기고 뭐고 다 집어치웠다. 술에 취하긴커녕 정신이 맑았다. “진심이에요? 이 손을 놓으세요, 너무 아프다고요!”날 선 공기를 감지한 강만옥은 전연우의 손을 잡으면서 그의 기색을 살폈다. 강력한 위압감에서 나오는 포스로 진짜 화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전연우는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척하다가 둘만 들리는 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다시 그 더러운 몸뚱어리로 내 침대에 기어오르기만 하면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몇 명한테 더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경고인지, 협박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상대를 헷갈리는 화법을 구사하며 차갑게 말했다. 강만옥은 그의 어두운 눈동자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다가 문뜩 뭔가 생각난 듯 피식 웃었다. “그러든지요... 근데 그전에 한 번만이라도 나랑 해볼 생각은 없어요? 한 번으로는 부족할 거고... 그때 되면 내 목숨도 당신한테 바칠 수 있는데...”“미쳤구나!” 전연우는 발을 들어 그녀를 옆으로 차버렸다. “정신 차리게 도와줄게.”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미 한 번쯤은 죽었을 것이다. 몸을 풀고 나서 정신이 혼미한 여자를 끌고 방으로 직진했다. 문을 발로 걷어차자 쾅 하고 닫혔다.욕실의 샤워기를 틀고 머리를 물속에 밀어 넣었다.한 번, 두 번......소월은 오늘 어쩜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 있냐며 투덜거리며
10초 정도 지났다. 자고 있던 소월은 밝은 빛에 눈을 찡그렸다.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이고 있는데 앞에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발을 움츠렸다. 빠르게 옷을 정리하고 몸은 어느새 반듯하게 자세를 고쳐 앉은 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연우 오빠께서 이 시간에 어쩐 일로...”‘아놔, 방금 뭐라고 했지?’ 소월은 이불을 꼭 잡고 파르르 떨었다. 전연우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쳐다봤다. 방안에 정적만이 흘렀다. 소월이는 목석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이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소월이가 또 한 번 긴장 서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 언제 들어왔어요?”전연우는 아무 말도 못 들은 듯 그저 손바닥을 보고 있었다. 손에는 아직 바르다만 파스가 남아 있다. “발 내밀어, 마사지 해줄게.”그리고 소월을 쳐다봤다. 그윽한 눈빛, 소월이에게는 너무 따갑게 느껴져 바로 머리를 저으며 거절했다. “괜찮아요, 아줌마가 이미 처리해 줬어요.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예요.”그녀의 생각지 못한 거절에 연우는 인상을 구겼다. “말 들어, 다시 얘기하게 만들지 말고.”소월은 곧 꼬리를 내렸다. 더 이상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타협하는 게 좋다. 이렇게 계속 거절하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감당할 수 없다.전생에서부터 이렇게 지내왔기에 너무나도 익숙했다. 연우의 모든 요구를 소월은 들어줘야 했는데 ‘절대복종’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아무리 떼를 쓰고 아가씨 행세를 부려도 그의 손바닥에서는 꼼짝도 못 한다.수습 불가능한 사태를 방지하려면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게 최선이다. 천천히 이불속에서 발을 꺼내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발은 뽀얗고 관리를 잘 받은 예술품이다. 핑크색 네일아트와도 너무 조화로웠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소월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이 고급스러운 아우라가 풍겼다.연우는 자연스럽게 부어오른 발목을 가져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었다. 신기하게도 발목의 통증은 사라지고 이미 다 나은 듯하다.어제저녁, 전연우가 몇 시에 자기 방에서 나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 잠들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다시 깨어났을 때 이미 다음 날이었다.어젯밤 강만옥이 술에 취해 전연우의 방에서 나온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장면을 생각하니, 소월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방을 메고 위층에서 일부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등교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소월은 그제야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딛는 발은 천근만근 추를 매단 듯 힘겨웠다.소월은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내려왔다. 오늘따라 거실에는 사람이 없었고 고요함만 맴돌았다. 그녀는 서둘러 식탁 위에 놓여있는 토스트 몇 개를 집어 들고 도망칠 준비를 했다. 마침 아줌마가 부엌에서 나왔다. “아가씨, 뭐 하는 거예요? 누가 보면 자기 집 아닌 줄 알겠어요. 먼저 앉아서 아침 드세요. 저는 올라가서 연우 도련님 부를게요.”소월은 재빠르게 받아쳤다. “저를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대충 먹을게요. 못다 한 과제가 있어서 바로 나가봐야 해요. 저 먼저 가요.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아가씨, 그것만 드시면 어떻게 해요. 조금 더 드세요.”“...”“아가씨, 잠시만요. 우유 챙겨 드릴게요.”아줌마가 급히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대문까지 쫓아갔지만, 소월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무슨 일인데요.” 위층에서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우는 넥타이를 매고, 슈트를 팔에 걸친 채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아가씨께서 빵 두 조각만 드시고 가셨어요. 오늘 우유도 안 챙겼는데... 아직 어려서 많이 드셔야 하는데...”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연우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차에 올라타는 소녀의 뒷모습뿐, 짙은 눈동자 속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전연우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다.9시가 다 되어 간다. 강만옥은 아직 식사하러 내려오지 않았다. 아줌마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야. 장소월, 너 그 봉투 새로 산 거 맞아? 내 기억으로는 얼마 전에 죽은 쥐가 들어가 있었는데... 설마 같은 봉투? 그걸 계속 쓴다고? 전염병이라도 걸리겠어.” 여자 세 명이 걸어왔다. 몸매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만 얼굴에 화장품을 몇 층이나 덧발랐는지 본연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그들은 소월 쪽으로 걸어와서 도시락을 한번 보더니 싫은 표정을 지었다.“제운고에서 도시락 싸 오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걸? 그냥 솔직히 말해봐. 설마 돈이 모자라? 돈 없으면 우리한테 얘기해주지. 적어도 사오천 만원은 빌려줄 수 있는데.”다른 두 명도 같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문정아, 너도 참 보기 안쓰럽다. 얘가 너 쳐다도 안 보는데 뭐 하러 옆에서 붙어 있냐. 이런 쓰레기랑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어. 멀리해야 너한테도 좋을 거야. 이 언니의 충고다.”소월은 가방을 다 정리하고 그제야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 “말 다 했어? 너희들 방금 그 쓰레기 소리 다시 말해봐. 나한테 하는 소리야?”소월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가 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세 사람을 한 번씩 훑어봤다. “기회 줄 때 실컷 말해봐. 쓰레기라고? 너희들 온 김에 하나씩 따져보자. 이미주, 너희 집은 건자재사업 하고 있지? 그리고 너. 허여빈, 유진... 너희 셋 다 집안 사업이 엮여있는 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해? 2년 전 도원빌딩 사고 기억하는지 모르겠네. 당시 너희 셋 집안이 손을 잡고 개발한 사업인데... 원가를 줄여보려고 원자재에 손댔잖아. 후에 그 건물들은 전부 부실 공사가 돼버렸고.”“그때 사람 3명이나 죽었는데... 누가 뒤처리해 줬는지 내가 다시 생각나게 도와줘?”소월은 세 사람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계속했다. “어떻게,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도 있는데.”이미주는 자신이 처한 위치를 잘 파악 못하고 있다. “헛소리 그만해. 그 사람들이 실수로 떨어져 죽었는데 우리 책임이라니? 장소월,
강영수가 학교에 오자고 한 이유는 그녀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수술의 성공 여부는 영수한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앞에 서 있는 소녀가 소년이 일어설 수 있는 동력이자 힘이다.강영수는 물끄러미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늘고 긴 머리카락은 바람 속에서 부드럽게 나부끼고 그의 심장을 간질거렸다. 뒷모습마저 눈을 뗄 수가 없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알겠습니다. 도련님,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소월은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틈틈이 호숫가 풍경도 감상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 딱 기분 좋을 만치 불어오는 바람, 상쾌하게 번지는 풀 내음, 아줌마가 정성껏 챙겨주신 도시락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점심이었다. 역시 아줌마 솜씨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감탄한다.누군가 장소월의 신경을 거스르며 검은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제대로 눈여겨보니 지난번 병원에서 만난 잘생긴 ‘만찢남’이었다.하지만 다리가...눈길을 사로잡은 무언가가 더 있었다. 긴 소매 밑에 숨겨진 신비한 푸른 문신이 어렴풋이 보였고, 목깃 밑에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소년의 휠체어가 불과 몇 걸음 거리서 멈춰 섰다. 바람이 불면서 강영수의 갈라진 앞머리 사이로 봉긋하고 반질반질한 이마가 드러났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년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안녕, 이렇게 또 만나네.”차분한 목소리가 듣기 좋은 선율로 들려왔다. 장소월은 입술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멍한 눈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너무 민망해서 재빨리 입속의 밥을 삼켰다. “안녕! 아참, 지난번 옷은 이미 빨아서 집에 널어놨어! 근데 너도 제운고 다녀? 전에 마주친 적 없는 거 같은데...”강영수는 그녀가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입꼬리가 싱긋 올라갔다. “질문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어느 거부터 먼저 대답해 줄까.”그는 몇 초를 생각하더니 차근차근 말했다. “먼저 첫 번째 질문. 옷은 서둘러 돌려주지 않아도 돼. 다음번에 만날 때 직접 돌려줘...”“둘째, 제
호숫가 맞은편에서 서너 명이 걸어오는 중이다.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허철은 한눈에 벤치에 앉아 있는 장소월을 알아봤다. 그녀는 두 발이 불구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단지 장소월의 얼굴에는 때때로 환한 미소를 지었고, 보는 사람을 설레게 했다.백윤서가 그들 사이에서 걷고 있었고, 그 옆에는 룸메이트인 엽청하다. 둘은 팔짱 끼고 앞에서 걷고 뒤에는 강용 등이 따라오고 있었다.엽청하는 처음 보는 광경에 경악하며 주변의 경치를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제운고구나! 너무 예쁘다! 윤서야, 여기 백조 호수는 우리 학교 축구장보다 더 큰 거 같아...”“응, 진짜 크네. 나같은 길치는 여기서 혼자 다니다가 길 잃을지도 몰라.” 백윤서는 짧게 농담했다.허철이 팔꿈치로 방서연을 치며 저쪽을 보라고 손짓했다.방서연은 손길 따라 쳐다봤다. 다름 아닌 장소월이다.근데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다.설마 강용이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대역을 구한 것은 아니겠지?대역을 찾는다고 해도 사지가 멀쩡한 사람을 찾아야지, 어디서 걸을 수도 없고 휠체어를 탄 사람을 찾아왔는지...장소월... 너란 사람 도통 모르겠다....“선배, 오늘 저랑 많은 대화 해줘서 너무 감사해요.”그때 왕집사가 다가와 몸을 굽혀 강영수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말했다. 시선은 어딘가를 향했고 미간을 찌푸렸다. “알겠어...”고개를 들어 장소월을 바라볼 때는 여전히 밝은 얼굴에 환산 미소를 띠었다. 봄날에 창문 따라 비춰 들어온 따스한 햇볕 같았다. “미안,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아.”장명월은 손사래를 쳤다. “에이, 괜찮아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오히려 내가 선배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죠."“그럼... 먼저 갈게...” 영수는 너무 아쉬워했다. 마지막까지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네, 가세요.” 소월은 일어나
“너도 알다시피 내가 반에서의 처지가... 나 때문에 너에게 영향 끼치고 싶지 않아...”서문정이 입을 열었다.“낙성은 작은 도시일 뿐인데 거기에는 뭐 하러 갔어?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거 아니고 소월아 괜찮아. 네가 나의 친구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너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 네가 나를 무시하지 않으면 돼.”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내 공부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널 무시하거나 그러지 않을 거야.”“소월아, 너 정말 너무 좋은 사람이야.”서문정은 기뻐하며 그녀를 껴안았다.실은 장소월도 서문정이 왜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은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 깊은 교집합이 있을 만한 일이 없는 걸로 기억하고 있다.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깊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평범한 사이이다.서로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 하룻밤이 지나면 서로 모르는 척할 수도 있는 사이이다.장소월이 떠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색 데님 쟈켓을 입고 왼손에 깁스를 한 채 서 있는 강용을 보았고 그들에게서 5~600m 떨어진 곳에서 장소월은 발걸음을 멈췄다.강용 무리를 제외하고 장소월은 또 한 명의 오랜 지인‘백윤서’를 봤다. 요즘 백윤서가 그녀 앞에 자주 나타나서 피할 수 조차 없었다.서문정은 그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우리 앞에 있는 저 사람이 바로 제2중학교에 전학 온 퀸카 백윤서야. 온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강용의 마음에 들었대. 지금 둘이 사귀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제2중학교에 강용과 친한 사람 몇 명 있는데 얼마 전에 같이 놀 때 저 백윤서도 함께 갔다고 하더라고. 백윤서에게 꽤 잘 나가는 대표님 오빠도 있다고 하던데 친형제는 아니고. 그런데 오빠가 엄청 무서워서 연애를 못하게 한대. 이번에 제2중학교에서 몰래 나와 우리 학교에 온 걸 아마 그 오빠가 아직 모를 거야.”서문정이 말한 그 오빠는 바로 “전연우”이다.장소월은 궁금해 그녀를 보며 물었다.“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서문정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