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뉴스 헤드라인.「얼마 전, 관계자는 강한 그룹 대표가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자 장씨 가문의 아가씨가 슬픔 때문에 시험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자퇴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오늘 강한 그룹 대표가 직접 운전해서 장씨 가문 아가씨를 학교에 보내준 것이 포착되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강천 뉴스」김남주는 손에 든 신문을 반으로 찢고 힘껏 구겼다. “가짜야, 모두 다 가짜야. 영수가... 그럴 리 없어! 다른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어! 강영수,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야! 네가 좋아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지난 며칠 동안 김남주는 강천에서 강영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녀는 며칠만 지나면 그가 예전처럼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녀가 떠나 있을 때 행방을 조금만 알려주기만 하면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를 찾으러 온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 강영수는 벌써 5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김남주는 설명을 듣고 싶어 휴대폰을 들었는데, 그녀가 누른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였다.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김남주는 갑자기 눈이 번뜩이며 테이블 위의 모든 것을 쓸어 던지고 처참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영수야, 넌 평생 나한테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네가 그랬잖아, 우리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이 순간 김남주는 미친 사람 같았다.그녀는 다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고, 전화를 끊자 다른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상대방은 말을 하지 않았다.김남주가 먼저 말했다.“이번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수를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어야겠어요.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렇게 할 거예요.”상대방은 차갑게 말했다.“너의 목숨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거였어. 그런데 이번엔... 도와줄게. 난 어떤 대가도 필요 없지만 내가 말하는 대로 해줘야겠어...”“좋아요. 약속할게요.”김남주는 조
전연우는 알릴 듯 말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왠지 모르게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기운이 더 차가워진 듯했다.초기에는 광산물 사업에 의존해서 돈을 벌다가 무슨 수단을 썼는지 후에 유전을 얻어서 몸값이 미친 듯이 올랐다. 해외에서 서울로 이민을 온 후 본전만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본전 만으로도 그는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돈을 아무리 써도 재산을 탕진할 리는 없었다.전연우가 말했다.“말로 하는 건 쓸데없어!”황준엽은 한줄기의 희망을 본 듯 전연우 발 옆으로 기어갔다. 그는 지금 일어날 수가 없었다.“토지 소유권 문서를 줄게요. 아니면... 재산 양도 서류도 돼요. 당신이 나를 여기서 꺼내줄 수만 있다면 앞으로 평생 모자라지 않을 돈을 준다고 보증할게요.”“그 조건은 확실히 끌리긴 한데...”전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고 고개를 내려 그를 쳐다봤다.“하지만 난 그렇게 욕심이 많지 않아요. 나는 당신 명의의 모든 유동 자산과 석유 광산 주식의 70 %를 원합니다. 부동산을 포함해서요.”순간 황준엽의 눈이 커졌고 그는 갑자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이 전씨 놈아! X발, 내가 만만하냐. 네가 뭔데! 넌 내 옆에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개에 불과했어. 내가 남해 땅을 개발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으면 네 프로젝트는 그냥 쓰레기가 될 거였어.”전연우는 화를 내지 않고 무덤덤하게 손수건을 꺼내 몸에 튄 황준엽의 침을 닦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갔다.황준엽은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일어났다.“거기 서! 좋아... 동의할게. 그런데 내가 여기서 나가면 날 도와 다시 회사를 일으켜야 해.”전연우는 돌아서서 한 단어를 내뱉었다.“당연하지.”“성은아.”기성은은 걸어 들어와서 손에 든 서류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모두 세 가지 서류였다.하나에는 회사의 주식 26%, 황준엽이 갖고 있는 나머지 0.1%의 주식이 적혀 있었는데, 이 무식만으로도 연간 배당금이 몇 억은 되기 때
다음 날 아침.신문의 모 구석 모퉁이에 황준엽이 감옥을 탈출하려 독을 먹었다가 그 양을 조절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다.시끌벅적 붐비는 거리에선 회사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들의 손엔 모두 같은 신문이 쥐어져 있었지만 그 기사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오늘은 금요일이다. 장소월은 평소보다 비교적 늦게 일어나 밖에 나가지 않았다.도우미는 편지함에서 오늘 아침 신문을 가져와 강영수의 습관대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교복을 입고 오렌지 주스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장소월이 신문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그때, 도우미가 말했다.“도련님.”강영수가 소매 단추를 잠그며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길고 곧게 뻗은 모습이 늘 그렇듯 매력적이었다.“학교에 돌아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내가 좋은 과외선생님을 붙여줄게. 집에서 공부해도 똑같아.”“괜찮아. 집에만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황준엽의 사망 기사를 읽은 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마음의 동요 또한 없었다. 그저 그의 죽음이 조금 의아할 뿐이었다. 그는 예전 호텔에서 강영수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오늘 신문을 통해 그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강영수가 사람을 시켜 손을 쓴 건가?아니, 그는 전연우가 아니다. 장소월은 곧바로 생각을 떨치려 손을 휘저었다.그녀는 강영수에게 다가가 그의 넥타이핀을 정리해 주었다. 다이아몬드 테두리에 중심에 박혀있는 붉은색 보석, 그리고 가슴팍까지 늘어뜨린 순금 체인까지... 모두 남자의 고귀함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강영수가 장소월의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그의 시선이 탁자 위 신문에 닿자 낯빛이 어두워졌다.“아니야. 오늘 학교에 나가자마자 시험이 있어서 걱정하고 있었을 뿐이야. 성적이 잘 안 나올까 봐 좀 무섭네.”강영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너무 스트레스
소현아가 손에 딸기 바구니를 들고 연속 장소월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그녀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반가움에 너무 빠르게 달렸는지 앞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장소월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녀를 기다려주었다.“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까부터 계속 기다렸단 말이야. 우리 집에서 심은 딸기를 먹어봐.”장소월이 입을 열려고 한 순간 딸기 하나가 입안으로 들어왔다.“고마워. 맛있네.”소현아는 장소월에게 달라붙어 끊임없이 그녀의 귓가에서 쫑알거렸다. 수업 시간이 끝나기만 하면 곧바로 그녀를 찾아왔다. 소현아는 장소월과 만나는 것 외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걸까?장소월은 앞만 보고 길을 걸어갈 뿐, 소현아와 대화를 나눈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녀는 소현아가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위험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연우는 이미 소현아로 그녀를 협박한 적이 있다. 때문에 그녀는 감히 그 어떤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장소월은 아무도 자신의 약점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강영수는 그녀가 시야 속에서 사라진 뒤에야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거두었다.“저 여자는 어느 집 아가씨야?”진봉이 대답했다.“소씨 가문입니다.”“어느 소씨 가문?”진봉이 말했다.“저도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요, 노부인께서 목축업 쪽 전문가를 찾아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공교롭게도 소월 아가씨의 옆에 계신 친구분의 부친이셨어요.”강영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화가 났음에도 내색하지 못하고 애써 참아내는 소월이의 모습은 처음 봐. 저 친구는 내가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네.”진봉이 말했다.“대표님, 소월 아가씨 친구분의 뒷조사를 해볼까요? 아가씨한테 접근한 목적이 불순한 것일까 봐 걱정됩니다.”“그럴 필요 없어. 소월이도 그 정도 분별은 할 수 있을 거야.”만약 장소월이 정말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까처럼 화를 삼키진 않았을 것이다.또한 요즘 연속 며칠 동안
남천 그룹.대표 사무실에 들어온 기성은은 전연우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옆쪽으로 물러섰다.남자의 길고 가는 눈엔 냉정함이 깊이 배어있었고 온몸에선 얼어붙을 듯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기성은은 핸드폰 너머 백윤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녀가 당황스러움과 무서움에 울부짖었지만 전연우는 그저 차갑고도 퉁명스럽게 쏘아붙일 뿐이었다.“넌 알 필요 없어.”“연우 오빠, 오빤 변했어요. 난 점점 더 오빠가 무서워져요.”이어 핸드폰에선 통화 연결음만 들려왔다.전연우가 핸드폰을 놓고 몸을 돌렸다.“무슨 일이야?”기성은이 보고했다.“강씨 집안에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전연우는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손깍지를 껴 무릎에 올려놓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강영수가 정말 뭘 알아낸다면 대표님께서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전연우의 입꼬리가 은은히 올라갔다. 그의 눈동자에선 의미를 알 수 없는 광이 뿜어져 나왔다.“난 도리어 그 자식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걸. 이번 일은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넌 나가봐.”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학교.함께 식당에서 걸어 나오던 장소월과 소현아는 눈물범벅이 된 채 위층에서 달려내려오는 백윤서와 마주쳤다.그녀는 장소월을 힐끗 보고는 이내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장소월의 눈에 백윤서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들어왔다.전연우와 통화를 한 건가?전연우를 제외하고는 백윤서를 울릴 사람은 없다.소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윤서 왜 저러는 거야?”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월아, 우유 마셔.”소현아가 호주머니에서 우유 두 병을 꺼내 장소월의 손에 쥐여주었다. 장소월은 도통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소현아는 아예 장소월의 간식 담당이라도 된 것처럼 서랍에 간식거리를 잔뜩 챙겨두었다. 모두 장소월이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장소월이 수업하려 교실에 들어가려고 한 순간 복도 끝 누군가가 그녀를
장소월이 대답했다.“솔직히 해외에 나가는 건 강용한테 나쁘지 않아.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나도 왈가왈부할 수 없어. 강용이 나한테 해준 게 많다는 거 알아. 반드시 천천히 보답해 줄 거야. 그리고 친구로서 나도 강용이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 나가길 바라.”“강영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난 너희들과 어울려선 안 돼. 강용에 관해 이야기하면 더더욱 안 되고. 영수는 이미 날 위해 충분히 양보했어. 더 이상 영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강용이 떠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난 너희들에게 분명 다시 만날 날이 올 거라는 걸 믿어.”“또한 강용도 그곳에서 잘 지낼 거야.”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생각과 입장이 있다. 누군가는 강용을 쫓아낸 강영수를 지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강영수도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가족과 친구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모든 인연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오부연이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 강영수의 옆엔 그녀 한 사람밖에 없다고 말이다.강용과 심유가 해외로 떠난 그날, 강일주는 분노하며 강영수의 따귀를 때렸다.그 후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렸다.다른 누구도 아닌 강영수의 아버지가 말이다...어쩌면 강용 모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두 사람에게 더 강한 가족애를 느꼈을지도 모른다.강일주는 강영수 역시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강영수는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한 그룹도 짊어져야 한다.다른 사람의 눈엔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차마 쳐다볼 수도 없는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는 강영수이다.하지만 그들은 강영수 역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강영수도 사람을 필요로 한다.그녀는 여전히 그날 밤 자신의 품속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였던 강영수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조명은 꺼져있었지만 그녀는 강영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충분히 상상해 낼 수 있었다.“이제
그때 방시연이 장소월에게 말했다.“그날 강용과 설채윤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어. 강용이 고열 때문에 찬물로 샤워를 했을 뿐이야. 넌 두 사람이 무언갈 했다고 오해했겠지.”허철도 말을 보탰다.“맞아. 강용은 그 밤중에 너한테 쫓겨나 우리한테 연락했어. 그래서 우리가 강용을 병원에 데려다줬었어.”확실히 장소월에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듣고도 그녀는 너무나도 평온했다.설채윤이 주먹을 꽉 말아쥐고 말했다.“맞아! 하지만 상관없어. 나한테 이별을 말하지 않았으니 아직 우린 연인이야.”“장소월, 너도 너무 방심하진 마. 너와 강영수도 오래가진 못할 테니까.”그녀가 말을 마친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자리를 떴다.지극히도 침착한 장소월의 모습을 본 방시연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넌 하나도 화가 안 나는 것 같아.”장소월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내가 왜 화내야 하는데?”방시연은 피식 웃기만 할 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다들 돌아가고 장소월 한 사람만 남았다. 그녀도 교실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뗐을 때, 하얀색 셔츠를 입고 이어폰을 목에 건 매끈한 몸매의 소년이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허이준이 목을 긁적였다.“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었어.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야.”안으로 돌아간 뒤 장소월은 한결의 부름으로 교무실에 갔다. 한결이 성적표를 꺼내며 말했다.“이 성적에 대해 나한테 설명할 말 있어?”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없어요.”“선생님도 너의 사생활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넌 어쨌든 내 학생이니까 조언 한마디 할게. 감정은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야. 선생님은 네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아주 작은 시험이라도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이야. 너한테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이번엔 반을 옮기지 마. 대신 앞으론 공부에 집중해야 해.”“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백윤서에게 물어봐. 윤서가 네 언니 맞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씨 저택에 도착하자 차가 멈춰 섰다.강영수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이유인지 오늘 그는 너무나도 냉담했다.장소월은 대체 그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도 차에서 내려 그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안에 들어가자 도우미가 달려와 그들을 맞이했다.“도련님, 소월 아가씨, 식사하세요.”강영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대체 왜 화가 난 걸까.도우미가 장소월의 책가방을 받으며 물었다.“아가씨, 도련님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음식 좀 준비해 주세요. 제가 영수한테 갖고 올라갈게요.”“네.”장소월이 밥과 반찬을 들고 강영수의 서재로 향했다.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어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풍적인 인테리어의 서재는 농후한 담배 연기로 뒤덮였고 그는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들고 창가에 서 있었다.강영수는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장소월이 음식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회사 일로 바쁘면 귀찮게 하지 않고 이만 나갈게. 밥은 꼭 챙겨 먹어.”“거기 서.”그의 목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심장이 떨려왔다.“할 말 있어?”그녀가 깍지를 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말했다.강영수가 들고 있던 담배를 버린 뒤 몸을 돌려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나 네 아버지가 입양한 아들에 대해 뒷조사를 좀 해봤어.”전연우?고요했던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져 파란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그녀의 침묵에 강영수의 몸에서 풍기던 냉기는 그 차가움을 더해갔다.“그 사람에 대해... 나한테 할 얘기 없어?”그가 다가오자 장소월은 자신을 억누르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의 차가운 기운이 장소월을 사로잡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강영수는 그녀의 눈에서 무언갈 알아내려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극히 평온했고 아무것도 보아낼 수 없었다.장소월이 물었다.“뭘 알아냈는데?”강영수는
수술실 문밖에 돌아와 보니, 강용은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었다.“수고했어. 먼저 가서 쉬어. 나랑 현아가 근처에 방 두 개 잡아놨어. 현아는 당분간 나랑 같이 잘 거고, 이건 네 방 카드야. 현아랑 같이 먼저 가 있어.”“됐어, 너도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잖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나중에 그 사람이 나오면 내가 도와야할 일이 있을 거야. 여자인 너 혼자서는 불편해.”장소월은 화장실에서 꾸물거리며 나오는 소현아를 바라보았다. 손에는 간식 두 봉지도 들려 있었다. “그래... 알았어. 나는 옷이라도 좀 사러 가야겠다.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많이 못 챙겨왔거든.”“그래, 갔다 와.” 강용은 정말 배가 고팠는지,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모두 비웠다.장소월이 물었다. “옷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어?”“아무거나, 네 맘대로 해.”강용은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돈 좀 있어. 내 걸로 결제해.”“됐어. 이 돈은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가지고 있어.”“너는 남자니까,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지”무거워진 장소월의 말투를 눈치챈 강용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쳇, 네 그림 한 점이 몇천만 원이나 된다고 지금 날 비웃는 거지? 어휴. 아가씨, 절 키워주시는 건 어때요?“계속 아가씨의 개가 될게요.”장소월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개는 무슨.”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쇼핑몰에 가서 옷을 몇 벌 구매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신분증을 등록하려고 프런트에 선 순간, 장소월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하여 새로운 신분증을 꺼내 등록 정보로 사용했다.“미카엘 씨, 여기 객실 카드입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감사합니다.”원래는 저렴한 호텔에 묵을 생각이었지만, 소현아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어 이곳으로 결정했다. 10층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아름다운 강 풍경이 눈
아이...지금 세 사람은 확실히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다.전 부인이 말했다. “절대 월이 돌려주지 않을 테니까 내 아이 뺏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강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우리 셋 다 당신 아이 봐줄 시간 없어요. 당신이 준다고 해도 우리가 싫어요.”“참, 그리고 전 남편 치료비도 잊지 말고 내줘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때 부부였는데 너무 매정하게 굴지는 말아야죠.”그녀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 던졌다. “그동안 아이를 키워준 양육비와 예전 나한테 줬던 돈 전부 갚았어요. 이제 각자 갈 길 가고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요.”별이는 얼굴이 엉망이 된 채 서럽게 엉엉 울고 있었다. 장소월은 차마 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필경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니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아무에게도 막을 권리가 없다.그들이 위풍당당하게 떠난 후, 강용은 돈을 세어보았다. 몇백 달러 정도였다. “제기랄, 몇만 달러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전 남편에게는 쥐꼬리만큼도 안 주다니. 빨리 죽으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건가. 이 돈으로는 수술도 못 하겠네.”장소월이 말했다. “됐어, 강용.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거야. 일단 이준 씨 어떻게 됐는지부터 알아보자.”“그래.”소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월아, 아기가 배고픈 것 같아. 들어봐... 얘네 둘이 소리치고 있어.”강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배고픈 거면서 무슨 엉뚱한 소리야. 밥 먹을 시간이긴 하네. 넌 소현아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 먹어. 이준 씨한테는 내가 가볼게.”며칠 동안 강용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장소월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빨리 먹고 포장해서 갖다 줄게.”“그래.”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소현아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로 향했다. 30분 후, 결과가 나왔고 예상외로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의사는 검사
바로 맞은편 길에서 또 한 무리의 차량이 웅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규영이 돌연 즉시 차를 세우라며 소리쳤다. “...저... 현아 아가씨 목소리 들은 것 같아요.”강지훈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다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확실해?”규영은 확신할 수는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정말 현아 아가씨 같았어요. 소월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고요. 현아 아가씨 친구분이 장소월 씨잖아요. 그냥 우연인 걸까요?”강지훈은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바닥난 듯 말했다. “얼마나 남았지?”운전석에 묶여 있던 남자는 강지훈이 꽤 많은 힘을 들여서 찾아낸 인물이었다. 소현아의 행방을 쫓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이 남자가 소현아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강지훈의 정보 조직이 오랫동안 소현아의 소식을 찾지 못했던 이유였다.강지훈은 항공편 정보를 토대로 소현아의 사진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그녀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이곳 사막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얼마 전 폭동이 일어났고, 소현아는 무사하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흑인 남자가 한 민박집 앞에 차를 세웠다. “여깁니다, 바로 여기예요.” 사투리가 가득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강지훈이 차에서 내리자, 곧이어 뒤따라오던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에서도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잠겨 있는 대문을 본 강지훈은 그대로 발로 쾅 하고 걷어찼다. 몇몇 사람들이 신속하게 위층으로 올라갔고, 강지훈도 천천히 소파 옆으로 걸어갔다. 규영과 미경은 주방으로 향했다.2분 후, 위층으로 올라갔던 흑인 남자가 보고했다. “위층에는 세 명이 살고 있고, 옷가지도 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떠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규영이 말했다.“주인님, 냉장고에 현아 아가씨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와 포도가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흔적도 있습니다. 나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강지훈은 베개
장소월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드리웠다. “강용, 우리 가보는 게 어때? 아직 상처도 아물지 않았는데, 그 전 부인 쪽 사람들이 또 때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죽을지도 몰라.”“젠장, 그럴 수도 있겠네.” 강용이 곧장 뒤쫓아갔지만, 어디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 앞, 수십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줄지어 정차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거만하고 제멋대로였던 여자가 한없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보스. 제가 힘을 너무 많이 주었어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죠?”그녀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조금 전 사나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잘했어.”“됐어, 그만 울어!” 전연우가 호통을 치자 옆에서 울고 있던 별이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도로록 굴러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을 삐죽 내밀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더니, 바로 꺄르륵 웃고 있었다.“어머, 너무 귀여워. 안아주고 싶네.”“다른 사람들은?”리샬이 대답했다.“안심하세요, 보스. 시장 사람들은 모두 괜찮습니다. 그냥 연기였으니까요. 제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다친 사람은 보스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총까지 맞다니요.”전연우는 팔과 어깨에 일부러 총상을 입었다. 더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진통제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일반인이었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심하게 매질까지 당했으니... 그의 검은색 옷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내 일에 신경 쓰지 마.”그 강인한 의지력은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보스. 사모님이 쫓아오고 있습니다.”장소월과 강용이 걱정되어 달려왔을 때, 손이준은 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장소월이 소리쳤다.“강용, 빨리 저 사람들 말려.”“오빠, 괜찮아요?” 장소월이 상처를 확인하려고 손을 뻗었다. 몸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어 손을
“아주 흥미진진했어. 두 부부가 오붓하게 얘기하는 거 방해하지 않도록 안 가는 게 좋을 거야.”장소월은 평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 사람... 와이프가 돌아왔다고?”강용은 웃으며 말했다. “응. 어젯밤 네가 쓰러졌을 때, 그 사람 보러 병실에 갔다가 부부가 크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어. 아이 양육권 때문인 것 같더라고.”“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어서 가면 괜히 불똥이 튈지도 몰라.”그녀는 결국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 끼어들었다가 전 부인이 오해라도 하면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그래. 남의 일에 우리가 간섭할 수는 없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분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응.”지금은 이게 최선이다.이곳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집에 돌아온 장소월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이 옷 몇 벌과 화구 상자가 전부였다.“내일 차 오는 거 확실하지?”강용이 대답했다. “응, 현지 사람 중 한 명에게 말해놨어. 돈만 주면 내일 아침에 차로 시내까지 데려다줄 거야.”“떠나기 전에 현아를 병원에 데려가 봐야겠어.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현아와 배 속의 아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잖아.”강용은 그녀에게 집중하지 못한 채 딴생각을 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소현아도 마침 잠에서 깨어났다.장소월은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에 내려갔다. 그때 문밖 길 건너편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별이를 안은 채 여행 가방을 끌고 가려고 하고 있었다.입에서는 험한 말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 뒤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은 손이준을 밀쳐 넘어뜨렸다.그녀는 또다시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장소월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남의 집안일에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저 여자가 바로 손이준의 모든 재산을 빼앗고 그를 빈털터리로 만든 사람인 걸까?확실히 좀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1분 1초가 그녀에겐 더없는 고통이었다. 왜 멀쩡하던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날이 거뭇하게 어두워졌을 때, 몽롱한 정신의 장소월의 귀에 강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제 살았다...”장소월이 소리쳤다.“나 여기 있어.”휴대폰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강용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부축해 나왔다.“이준 오빠부터 먼저 살펴봐. 많이 다쳤어.”강용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넌?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장소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으니까 얼른 오빠부터 병원에 데려가. 얼마 버티지 못할지도 몰라.”강용이 손이준을 안에서 끌어냈을 때 그의 몸은 그야말로 온통 피투성이였다. “괜찮아. 과다 출혈일 뿐이야. 밖에 의료진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강용은 그를 업고 나갔다. 장소월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부상자들이 들어왔다. 바닥은 금방 청소를 마쳤는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사방에는 경비대가 배치되어 있었다.눈 앞에 펼쳐진 아찔한 광경에 장소월은 순간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소월아.”장소월이 다시 눈을 뜬 곳은 한 허름한 병실이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옆에는 강용이 지키고 있었다.“깼어? 괜찮아?”장소월은 의식을 되찾자마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강용은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는 것을 알고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안전해.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까지 쉬어 있었다. “손이준 씨는 괜찮아?”강용이 대답했다. “와이프가 데리러 왔으니까 괜찮을 거야.”장소월이 물었다. “죽은 사람 많아?”강용은 그녀가 놀랄까 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회복하는 데만 집중해. 내가 차 불러뒀어. 집에 가면 괜찮아질 거야.”현재 해외 시국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장소월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강지훈이 정말 온다면 그 사람과 함께 떠날 거야?”소현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놈 싫어. 현아는 소월이랑 강용한테 아기도 낳아줘야 해.”“그리고 우리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많잖아.”“소월아, 네가 그랬지, 다음 목적지는 바닷가라고. 나 데리고 상어 보러 갈 거라고 했잖아.”소현아는 양손에 탕후루를 들고 배시시 웃으며 장소월에게 애교를 부렸다. 그녀의 손에는 탕후루 외에도 체리 몇 개가 더 들려 있었다. 새콤한 것을 좋아하는 임산부를 위해 장소월이 사준 것이었다.“그래. 약속 어기지 않을게.”장소월은 저녁 반찬으로 구이용 고기를 조금 구매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입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주변 상인들은 노점도 내팽개치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심지어 칼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장소월은 이런 아수라장을 종래로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는 일찌감치 다른 사람의 발에 걷어차여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녀는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뒤 출구가 모두 막혀버려 도저히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그녀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를 잡아끌었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장소월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준 오빠? 어떻게 여기 계세요?”“시장에서 식재료 사는 것 말고 무슨 할 일이 있겠어요?”장소월은 그의 팔에 흐르는 피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다치셨어요!”얼굴까지 창백한 걸 보니 총상을 입은 것 같았다.“쉿, 조용히 해요.”그들은 어둡고 좁은 틈새에 숨어 몸을 바짝 붙인 채 외부의 공포스러운 총소리를 듣고 있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틈새가 너무 비좁아 쪼그려 앉을 수 없었기에 일어선 채 그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손이준의 옆
장소월은 힘이 풀린 다리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생각이 짧았다. 확실히 부적절한 행동이었다.손이준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식재료도 사다 놓았다.소현아는 어젯밤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에 깨어나는 것은 임산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녀는 냄비에 남은 미음 세 그릇을 어젯밤 먹다 남은 반찬과 함께 야무지게 비벼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위층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소리쳤다.“소월아, 일어났어?”고개를 돌리고 남자의 음산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그녀는 머리를 푹 숙이고는 테이블 밑으로 파고들기라도 할 듯 몸을 잔뜩 움츠렸다.“냄비에 있던 미음 다 먹었는데, 조금만 더 먹고 싶어서요... 혹시 더 있어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였다. 그가 무섭기는 했지만, 식탐을 이기지 못하고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손이준은 그릇을 탁자 위에 놓아주며 말했다.“드세요.”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차갑고 쌀쌀한 목소리였다.‘강지훈은 왜 저 멍청이한테 꽂힌 걸까?’보는 눈이 점점 더 형편없어 지고 있나 보다.별이도 먹고 싶다며 손을 뻗었지만, 전연우에게 곧바로 제지당했다. 맞은편 식당에서 전연우는 노트북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장소월은 아직도 방에서 내려오지 않은 듯했다.전연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이 시간까지도 밥 먹으러 내려오지 않는 거지?아침도 먹지 않았고, 점심시간까지 지났다.장소월의 방에서부터 가게까지의 거리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가게에 도착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또다시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이봐.”덥수룩한 머리숱의 남자가 다가왔다.“형님, 무슨 일이십니까?”“시내에 가서 먹을 것 좀 사와. 10분 준다. 많이 사와.”“알겠습니다, 형님.”“아니야! 저 사람들한테...”“그게 좋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장소월은 방에서 전시회에 내놓을 그림 주제를 구상하고 있었다. 연필로 선을 몇 군데 그
“싫어... 싫어. 나 안 돌아갈 거야.” “안 돼, 잡지 마!” “강용, 나 살려줘!”장소월은 종래로 그토록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전연우는 그런 그녀의 모든 행동을 눈에 담고 있었다. 다만 꿈속에서까지 자신을 그토록 두려워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남자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전생과 이번 생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려놓을 수 없는 복수심 때문에 그녀를 한번 또 한 번 사무치는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소월아... 내 아내! 넌 영원히 내 여자야...’전연우는 내면의 욕망을 애써 억눌러 술 취해 자고 있는 여자를 탐하지 않았다.한 시간 뒤.전연우는 삽입만 하지 않았을 뿐, 욕망을 모두 해소하고는 그녀에게 옷을 입혔다. 그녀의 몸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장소월은 온몸이 파도 속에 잠긴 듯했다. 끔찍하게 숨 막히는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숨통이 트이며 살아나는 것 같았다.술에 취한 탓인지 눈을 떠보면 캄캄한 방에서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저 꿈이라고만 생각했다.잠시 후 눈앞에 흰빛이 번뜩이더니 의식을 잃고 잠들어 버렸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장소월은 온몸이 붕 뜬 듯한 느낌이 들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1시 반이었다.가슴 위에 무언가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 이불을 들춰보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월이가 엎드려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었다.장소월은 아이가 불편할까 봐 조심스럽게 안아 옆에 눕혔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월이를 보고는 이불을 걷어내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었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져버렸다.그때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다름 아닌 손이준이었다. 그는 손에 그릇을 들고 있었다.“오빠,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우리 월이는요?”장소월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자고 있어요.”“왜 그래요?”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