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웃으며 말했다.“하나도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아요.”장소월이 자리를 피해준 건 전연우와 강만옥이 더 편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필요한 거 있으면 오빠랑 말하면 돼.”“네, 알겠어요.”전연우가 나간 후 장소월은 이후부터 물 마시러 아래층까지 내려가는 일을 피하려고 아래층에 놓인 주전자를 위층 방으로 가져갔다. 이 또한 전연우와 강만옥 두 사람과 마주치는 걸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시간은 물 흐르듯 빨리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강만옥이 장가네 집에 머무른 지 벌써 며칠이 지나갔다. 전연우는 완쾌 후 백윤서를 데리고 떠난 뒤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장해진과 강만옥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드물어 장소월은 그들과 만나게 되는 일이 적었다.대부분 시간은 장소월 혼자였다.장소월은 칠팔일 동안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강만옥이 가르치는 수업 시간이 적어졌다. 강만옥은 음악을 가르쳤는데 전업과가 아니다 보니까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만날 일이 드물었다.장소월이 원래 학급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틀 전에 치른 과목별 모의시험 성적도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했다.이번 모의시험 문제들은 전부 선생님들께서 직접 내신 것들이었다.장소월은 이미 세 개 학과에서 이상적인 점수를 따냈다. 문과 평균점수는 백 점, 이과는 90점 정도였다. 서울사범대학교에 입학하기에 아주 충분한 점수였다.장소월에겐 너무 과한 노력도 소용이 없었다. 임시 담임선생님이 학급 등수를 발표할 때 장소월이 학급 5등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모든 학생은 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길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한 학생은 장소월의 학급 등수의 투명성을 의심했다.“선생님, 거짓말이죠? 꼴찌 5등이 아니라 진짜 우리 학급 5등이란 말씀이세요?”임시 담임선생님은 헛기침을 몇 차례 하시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최근에 소월이가 노력하면서 열공하는 모습을 다들 봐왔다시피 5등이 맞아. 나
장소월은 마지막 수업 시간에 조퇴하고 서울강남병원으로 향했다.장소월은 꽃 한 송이를 쥐고 병원 앞에 멈춰선 택시에서 내렸다. 하지만 장소월이 손에 쥔 꽃은 다름이 아닌 하얀 국화꽃이었다. 사실 장소월도 강용이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몰라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골라 들고 왔다.주요하게는 장소월이 꽃집에 들어갔을 땐 하얀 국화꽃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하얀 국화꽃밖에 살 수 없었다.큰맘을 먹은 장소월은 만 원 돈을 내고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사고는 특별히 사장님에게 이쁘게 포장해 달라고까지 부탁했다.병원에 들어간 후 간호사한테서 강용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을 알아낸 장소월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으로 올라갔다.“자기야, 뭘 보는 거야?”선글라스를 쓰고 섹시한 옷차림을 한 강만옥은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물었다.전연우는 아무 말 없이 덤덤하게 시선을 돌리고는 의심했다.‘아까 그 사람 소월인 것 같은데.’장소월은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보면서 긴장되어 떨리는 가슴을 움켜잡고는 생각했다.‘전연우가 날 보지 못했겠지?’‘두 사람 정말 간도 크다니까. 만일의 경우라도 사람이 북적이는 병원에서 저러다가 장해진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저러는 거야. 말썽을 일으키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은 모양인가 봐.’장소월은 전연우가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엘리베이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20층에 도착했다.꽃을 쥐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장소월은 휠체어에 앉은 19살 정도 되는 소년과 휠체어를 밀고 다가오는 한 중년남성과 마주치게 되었다.소년은 만화에서 걸어 나온 것과 같이 잘 생겼고 손등에 새겨진 기이한 청색 문신이 긴소매에 가려진 팔까지 이어졌다.소년은 신비하면서도 고귀한 느낌을 주었고 온몸엔 사람들이 쉽사리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정도의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소년과 남성이 곁을 다 지나갈 때까지 소년을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서로 스쳐지나간 후 휠체어를 밀고 있던 남성은 갑자기 멈춰서고
또 하나의 유리컵이 병실에서부터 던져져 나왔다. 동시에 화가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 너 계속이야?”장소월은 강용이 내던진 유리컵에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끌어당겨 주는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전연우였다. 장소월은 의아한 눈빛으로 전연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오빠, 오빠가 왜 여기에 있어요?”전연우는 장소월이 다친 곳이 없는지 구석구석 훑어보면서 말했다.“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저 괜찮아요.”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쫓겨난지라 장소월은 다칠 일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강용의 상태로서 장소월을 해치려 해도 불가능했다.“오빠는 병원에 무슨 일이세요? 혹시 어디 아프세요?”“별일 아니야. 그냥 위가 좀 불편해서 병원에 잠시 들렀어.”전연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넌 강용 보려고 러 특별히 병원까지 온 거야?”장소월은 말을 더듬거리며 답했다.“오빠...혹시 강용을 저렇게 만든 게 오빠예요?”전연우는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소월이 너도 오빠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전연우가 아니라고?’‘그러면 누구지?’하지만 진짜 전연우가 한 짓이라면 전연우의 성격상 감추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전연우가 아니라면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아니, 저는 그 뜻이 아니라...”장소월은 전연우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자 황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저는 오빠가 저를 위해 복수해주려고 강용을 저렇게 만든 줄로 알고 있었어요. 오빠가 아니라는 걸 저도 이제야 처음 알았어요.”“그럼 소월이 너는 지금 내가 널 위해 복수해주지 않았다고 오빠를 원망하는 거야?”장소월은 놀란 마음과 함께 손까지 흔들어 가며 아니라고 부정했다.“아니요,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에요...”“알았어, 널 놀리는 거야.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학교 데려다줄까? 아니면 그냥 집 돌아갈래?”장소월은 전연우가 바래다주겠다는 호의를 거절했다.“저 조퇴하고 나온 거예요. 게다가 이따가 피아노 수업이 있는데 별로 멀지
전연우가 떠난 후 장소월은 버스정류장 앞에서 정 집사가 오길 기다렸다.장소월은 제운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 쪽에는 금색 방패와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기사의 모습이 새겨진 학교 뱃지가 달려있었다.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옷차림이었다.장소월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거리에 혼자 서있었는데 또 눈에 띄게 이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불법 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바로 이때 길거리를 떠도는 세 명의 불량청년이 장소월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2000년이다 보니 길거리에는 아직 블랙박스가 많이 보급되어 있지 않았고 과학기술도 많이 발전되지 않은 상황이라 2012년의 발전상황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뒤떨어진 상태였다.불법 사건이 발생했다 해도 전혀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고 범죄자가 마음먹고 도망쳐 숨어버린다면 찾아낼 확률이 아주 낮았다.불량청년들이 다가오자 장소월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그들이 그냥 자신을 스쳐 지나가길 바랐다.하지만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그들의 목표는 이미 장소월로 정해져 있었다.“어머, 학생 혼자 어디 가는 거야? 오빠들이 데려다줄까?”“상상도 못 했는데 제운고등학교 학생이네. 이 학교 다니는 학생들 집안 배경 다 어마어마하다던데... 학생, 돈 꽤 있을 것 같은데 오빠들 좀 빌려주지 않을래?”장소월은 세 불량청년한테 둘러싸여 빠져나갈 틈조차 없었다. 걸어가는 행인들도 이런 일에 엮이기 싫어 전부 모른 척하고 지나가 버렸다.장소월은 무서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검정 여성 지갑 하나를 꺼내 들었다.하지만 지갑을 열기도 전에 불량청년들한테 뺏겼다.그들은 지갑 안에 있는 현금을 세어보더니 눈에서 넘쳐나오는 탐욕을 머금지 못했다.“보기와 다르게 너 엄청 부자네!”“여기 학생증도 있어.”세 불량청년 중 한 명이 학생증에 새겨진 이름을 보더니 금세 생각이 바뀌었다.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고민하는 듯하다가 갑자
장소월은 혼자 생각했다.‘무서운 사람이 아니네. 게다가 웃으니까 엄청나게 잘 생겼잖아.’“이젠 괜찮으니까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요. 어디로 가세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장소월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괜찮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집 기사님도 곧 올 거예요.”강영수는 웃으며 답했다.“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도왔을 뿐인데 괜찮습니다. 기사님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 드릴게요. 제운고등학교 학생이세요?”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경호원은 불량청년들에게 빼앗긴 지갑을 되돌려 받고는 장소월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가져다주었다.“아가씨, 여기 지갑 다시 되돌려 받았습니다.”조금 전 장소월은 겁에 질린 바람에 자신을 괴롭히려던 불량청년들이 어디로 잡혀갔는지 눈여겨보지 못했다.강영수가 장소월을 관심하며 물었다.“뭐 없어진 거 없는지 확인해보세요.”장소월은 지갑을 받고 강영수 말대로 확인해보았다. 신분증과 학생증을 포함해서 잃어버린 것이 없이 다 그대로였다.“잃어버린 거 없이 다 그대로예요.”“아까 그 사람들 어디로 갔어요?”“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람 시켜서 경찰서로 넘겼어요.” 강영수는 이제야 장소월의 찢긴 옷을 발견했다.“저기요, 옷들이 다...”장소월은 강영수의 말을 듣고서야 옷이 다 찢겨져 새하얀 피부가 드러나고 속옷도 아슬아슬 보일락 말락 한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황급히 두 손으로 가렸다.장소월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전생과 이번 생의 나이를 합하면 강영수의 할머니가 될 만도 한데 이런 상황에 막상 부딪히니 부끄러워지는 건 마찬가지였다.강영수는 차창 너머로 검은 외투 하나를 건네어 주면서 말했다.“이 옷은 돌발 상황을 위해 차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에요. 한 번도 입지 않은 깨끗한 옷이니 괜찮다면 먼저 입고 계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요?”장소월은 입술을 깨물고 강영수 손에 그려진 문신과 외투를 보면서 고민하다가 끝내는 외투를 받아 걸쳤다.
강영수는 마침 그녀와 반대 방향으로 운전하다가 앞의 신호등에서 유턴했다. 그리고 바로 장소월의 문자를 받았다. 「수야, 너 어디야?」강영수는 그녀의 메시지를 놓칠까 봐 항상 휴대폰을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그녀의 문자를 보자마자 바로 답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휴대폰을 꺼버렸다. 왕 집사는 백미러로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소월 아가씨가 보내온 문자입니까? 소월 아가씨가 눈치채신 걸까요?”“아마도 그럴 거야... 하지만 거짓말을 하긴 싫어.”강영수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 그가 완전히 자기 힘으로 다시 설 수 있을 때 그녀와 만날 것이다. 이렇게 성치 않은 상태로 그녀를 만날 수는 없다. 운전기사가 또 입을 열었다. “혹시, 소월 아가씨께서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내가 신경 쓰여서 안 돼. 먼저 돌아가자.”강영수가 피곤함 속에서 눈을 감았다. 조금 전에는 매우 위험했다. 강영수가 병원 앞에서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가버렸더라면.그렇다면 소월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는 또 천천히 눈을 떴다. 차가운 빛이 맴도는 시선이 한층 더 예리해졌다. “경찰서에 얘기해둬. 그 세 사람, 내 허락 없이는 풀어주지 말라고.”“네, 도련님.”장소월은 답장을 받지 못하자 문자를 더 보내지 않았다. 아까 그 소년은 강영수가 아닌 모양이었다. 강영수였다면 그녀를 모르는 척할 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소월은 천성 빌딩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왔다. 장소월은 1대1 개인 교습을 선택했다. 이 곡은 그녀가 백번은 넘게 친 곡이기에 배우는 것도 빨랐다. 세 시간 정도의 연습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정 집사가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장소월은 그녀를 데리러 온 사람이 정 집사가 아니라 전연우라는 것을 알았다. 피아노를 너무 오랫동안 연습해서 손가락 마디가 조금 아파왔다. 차 창문이 내려간 후 전연우를 본 장소월은 머뭇거리며 차
"그럴 리가요. 오빠가 저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요 뭐." 전연우의 시선은 장소월의 옷으로 향했다. 헐렁한 옷은 눈에 띄게 그녀의 가냘픈 몸에 맞지 않았다. 처음 보는 옷이었는데 딱 봐도 남자 옷이었다."오늘은 웬일로 교복을 안 입었네?" 장소월은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그대로 와버렸었다. "아... 아니... 입었어요. 근데 단추가 떨어지는 바람에 다른 사람 옷을 빌려 입은 것뿐이에요. 나중에 다시 돌려줘야 해요." "남자 거야?" 장소월은 딱히 숨길 마음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네." 전연우는 그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고 말투는 왠지 모르게 차갑고 딱딱했다. “연애하는 거야?" "아니요..." 장소월은 서둘러 부인했다. "걔는 그냥 친구의 친구일 뿐이에요." "네 나이에 연애하는 게 뭐 어때서? 사춘기 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지... 이제 연애 고민 같은 거 생기면 언제든지 오빠를 찾아와.”"네. 알겠어요. 오빠." 전연우와 대화를 할 때마다 그녀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했다. 자칫하면 그의 손에 이끌려 그가 미리 파둔 달콤한 함정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남원 별장.전연우의 차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장소월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어 문을 열어보았지만, 자동차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이때 전연우가 갑자기 확 다가왔고 그의 남성적인 체취가 장소월의 코를 찔렀다.그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동백꽃향이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오빠... 뭐 다른 용건이라도 있어요?" 그러자 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을 치켜들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살살 문댔다. 그의 손가락에 옅은 핑크빛이 묻어났다. 장소월은 잔뜩 겁에 질려 그대로 경직된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립스틱 발랐어?”"아뇨, 아뇨. 제가 전에 산 립글로스가 발색이 되는 거라서요." 장소월은 전연우가 도대체 뭘 어쩌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고 그걸 본 장소월은 정신이 번쩍 들어 그를 밀쳐냈다. "이제 그만 해요!" 그녀는 마음이 몹시도 심란했다. 전연우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고 그녀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젠 오빠도 거부하는 거야?”장소월은 호흡을 가다듬고 그녀의 까만 짧은 치마를 꽉 부여잡으며 말했다. “제가 전에 말했듯이 오빠는 그냥 오빠일 뿐이에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만약 윤서 언니가 알게 된다면 언니가 분명 많이 속상해할 거예요.”‘양다리를 걸치려고 하다니. 전연우, 전생에 내가 집에서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도 다른 여자랑 차 안에서 이딴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장소월은 이미 그에게 일말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그는 백윤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송시아를 놓고 봐도 그랬다. 그녀에겐 백윤서와 비슷한 면이 많았지만, 전연우는 그녀를 단지 아이를 만드는 수단으로만 여겼었다.한때 그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그녀였지만 마지막엔 결국 그에게 비참하게 버려지고 말았다.그녀는 너무나 두려웠다.전연우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눈빛으로 말했다. "철 들었네, 우리 소월이. 미안해. 오빠 때문에 많이 당황했지? 저번 일도 그렇고 다 사과할게.”"괜찮아요... 이미 다 잊어버렸어요!" “그래...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하자." 전연우가 차 문을 열자마자 장소월은 황급히 도망쳐 나왔다.장소월은 현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침 보라색 비단 잠옷을 입고 계단에서 내려오는 강만옥과 마주쳤다. “소월아, 이제 온 거니? 너희 아빠는 저녁에 회식이 있어서 조금 늦게 온다던데. 일단 우리끼리 먼저 밥을 먹자.”장소월은 입맛이 하나도 없었기에 음식 생각이 날 리가 없었다.강만옥을 마주쳤을 때도 장소월의 머릿속에는 온통 오늘 하루 동안 그녀와 전연우가 차 안에서 함께 했던 장면들뿐이었다.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질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다.장소월이 안 먹겠다고 말
어젯밤은 너무나도 뜨겁고 격렬했다.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다만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부끄러워서 입 밖에 내뱉기가 어려울 뿐이었다.“은란아, 깼어?” 서민용은 배은란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배은란에게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여 이런 상황에서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응.” 배은란은 행복한 미소가 번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어젯밤의 일이 없었다면, 언제 서민용과 그런 일을 하겠는가.“너 주려고 아침밥 사 왔는데, 다 식었네.” 서민용이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을 쳐다보며 말했다.“지금 먹을게.” 배은란이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서민용이 아침 일찍 일어나 그녀를 위해 사 온 음식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어젯밤 그가 이곳에 없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은란아, 술집 아르바이트는 그만두는 게 좋겠어.” 서민용이 배은란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어젯밤 내내 술집에서 일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어제 어떤 여자가 그에게도 접근하지 않았던가. 배은란의 안전은 더더욱 장담할 수가 없다.그는 더 이상 어제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배은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이제 더는 술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 만약 서민용이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하지만 다행히 서민용이 적시에 와주었기에, 큰 화는 면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 사장 역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전에는 사장이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여 술집에서 일하는 것이 떳떳하지는 못해도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하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어제 사장이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그녀의 물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그녀는 혹시나 그런 일이 발생할까
“민용아, 난 네가 정말 좋아.” 배은란은 손을 뻗어 서철용의 목을 감싸 안았지만, 입으로는 서민용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서철용은 배은란의 손을 잡고 그녀의 팔을 내려놓으려 했다.하지만 배은란은 예상치도 못한 큰 힘으로 그를 끌어안고 있었다.“민용아, 나 도와준다고 했잖아?” 배은란의 말투에는 약간의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정말 나 좋아하는 거 맞아? 나랑 사귄 지가 언젠데, 왜 한 번도 날 건드리지도 않는 거야.” 그녀는 서철용의 어깨에 기대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있었던지라 서철용은 화들짝 놀랐다.이미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민용이 이토록 보수적이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은란아, 우리는 아직 어리잖아. 나중에 결혼하면 해줄게.”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배은란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챌까 봐 감히 크게 말하지는 못했다.“하지만 나 지금 너무 괴롭단 말이야.” 배은란은 연약한 몸을 서철용의 품에 기댄 채 두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었다.서철용은 처음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단지 이곳에서 그녀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을 뿐이었다.하지만 그 역시 남자인지라 사랑하는 여자의 도발을 참아내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착하지. 잠들면 괜찮아질 거야.” 서철용은 애써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배은란을 눕히려 했다.하지만 배은란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힘을 써도 도저히 그녀를 침대에 눕힐 수가 없었다.몸은 이미 반응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는 간신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녀를 밀어냈다.하지만 배은란의 공격은 너무나 거셌다. 그녀는 곧바로 서철용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은란아, 이러지 마.” 서철용은 그녀의 키스에 숨이 막히는 듯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민용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지금을 즐기면 안 될까?” 배은란은 애틋한 눈빛으로 서철용을 바라보았다.약물의 작용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그녀의 몸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배은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술집에서 일하는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그런 잘생긴 남자랑 사귀어?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나한테 넘겨.” 여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배은란은 화가 치밀어오름과 동시에 더없는 무력감이 느껴졌다.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반항할 조금의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여자는 우쭐한 얼굴로 꼼짝도 하지 못하는 배은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서민용은 내 거야. 다시는 그 남자 앞에 나타나지 마.” 그녀가 배은란을 내버려 두고 자리를 뜨려 한 순간, 누군가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고개를 들어보니 한 남자가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감히 이 여자를 함부로 건드려?” 서철용은 다시 여자를 향해 발길질했다.그는 종래로 여자를 때리지 않는다. 하지만 배은란이 괴롭힘을 당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게 누구든 백 배로 갚아주려는 생각이었다.여자는 서철용의 발로 차여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나뒹굴었다.“꺼져!” 서철용이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여자는 겁에 질려 간신히 바닥을 기어 도망쳤다.그녀는 본래 강약약강의 표본인 사람이었다.“민용아...” 배은란은 서철용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지금의 그녀는 의식이 흐릿한 상태라 눈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선명히 볼 수가 없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서민용이 돌아와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 배은란의 모습에 서철용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배은란은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라줬다.“그래.” 그는 배은란을 품에 안고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이런 상황이 되어서야 배은란을 품에 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서민용 행세를 해야만 배은란의 곁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배은란의 마음속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따뜻한 품에 꼭 안겨 있으니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민용아,
“걱정하지 마. 내 몸은 내가 잘 지켜.” 배은란이 웃으며 말했다. 비록 술집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심지어 술집에 있는 물에조차 입을 대고 싶지 않아 항상 물을 챙겨왔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나한테 전화하고.” 서민용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자꾸 좋지 않은 예감이 엄습했다.“알았어.” 배은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 오늘 왜 이렇게 말이 많단 말인가. “아니면... 오늘은 그냥 쉬면 안 돼? 하루쯤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서민용이 배은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는 조금 전 그 삐딱한 태도의 여자가 마음에 걸렸다. 배은란이 돌아간 뒤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말이다. “안 돼. 쉬는 만큼 월급도 줄어들잖아. 지금 나한테 제일 필요한 건 돈이야.” 배은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 또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민용은 배은란의 결연한 눈빛을 보니 쉬이 결정을 바꿀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알았어. 그럼 꼭 몸조심해야 해.” 서민용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배은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서민용은 길가에 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배은란이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이 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배은란은 바로 돌아와 계속하여 일에 집중했다. 그녀는 각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미소를 띤 채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나도 피로하고 불편했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프로다운 태도를 유지하며 맡겨진 일을 최대한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서철용과 주호걸은 줄곧 몰래 배은란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민용의 등장부터 배은란이 그에게 보이는 태도까지 모두 지켜보았다. 그들
배은란은 난감한 표정으로 놓아달라며 서민용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서철용과 주호걸은 못마땅한 듯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일하는 중이잖아. 이러지 마.” 배은란이 서민용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도 서민용과의 친밀한 스킨십이 싫지는 않았지만, 근무시간이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안전에 주의해야 해.” 서민용은 배은란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또한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배은란이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지금은 그에게도 다른 방법이 없다.“응, 응.” 배은란은 고개를 끄덕였다.“너 먼저 가. 퇴근하면 얘기할게.”서민용도 따로 일하는 곳이 있었다. 배은란은 그가 계속 이곳에 있을 수는 없으니 먼저 그를 보내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일에 방해만 될 것이다.“알았어.” 서민용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떠났다.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막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그를 막아섰다.“잘생긴 오빠, 혹시 전화번호 좀 알려줄 수 있어요?” 껄렁한 여자 한 명이 서민용에게 다가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거의 술집에 살다시피 하는 그녀는 그동안 수많은 남자들과 어울렸었다. 하지만 서민용처럼 선비 같은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하여 서민용을 보자마자 전화번호를 따겠다며 다가온 것이다.서민용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눈앞의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그는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배은란밖에 없었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죄송하지만, 저는 여자친구가 있어요.” 서민용은 정중하게 여자를 거절했다.하지만 여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서민용에게 매달렸다. “에이, 전화번호 알려달라는 것뿐이잖아요.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친구 한 명 더 생긴다고 생각해요.”서민용은 짜증이 밀려왔다. 그는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문 쪽을 바라보며 핑계를 대고 떠나려고 했다.바로 그때, 배은란이 다가왔다.서민용이 웬 여자와 함께
“서철용, 너 진짜 미쳤지!” 술집 문 앞에 서 있던 주호걸은 서철용을 보며 욕설을 퍼부었다.이제 겨우 4시인데, 어떤 술집이 이 시간에 문을 연단 말인가!두 사람은 지방 촌뜨기처럼 멍하니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주호걸은 평생 이렇게 창피한 적이 없었다.“에이, 친구야, 보고 싶어서 그랬지.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서철용은 멋쩍게 말했다.주호걸이 이토록 난처한 상황에 처한 건 오로지 서철용 때문이다.“꺼져.” 주호걸이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말했다.“그럼 밥이라도 사줘. 지금까지 밥도 못 먹었어!”주호걸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서철용에게 불려 이곳에 왔다.“에이, 밥이야 언제든지 먹을 수 있잖아. 지금은 내 일이 더 급한 거 아니야?” 서철용은 주호걸을 쳐다보며 말했다.주호걸에게 밥을 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에 혹시라도 무언가를 놓치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하여 그는 안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먹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나가서 따로 먹을 필요는 없다.“여자가 친구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지.” 주호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서철용이 왜 이렇게까지 안달복달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배은란은 서민용의 여자친구다. 서민용은 가만히 있는데, 그가 혼자 조급해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닥쳐.” 서철용은 주호걸을 옆으로 끌어당겼다.그는 벽 뒤에 웅크리고 앉아 이쪽으로 걸어오는 배은란을 바라보았다.역시 일찍 도착한 건 바람직한 선택이었다.알맞은 시간에 배은란을 보지 않았는가.“쉿, 조용히 해. 조금만 있다가 들어가자.” 지금 배은란에게 들키면 큰일이다.그녀는 술집 문 앞에 도착한 뒤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갔다.그녀 역시 여대생이 술집에서 일하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삶에 쫓기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그녀로
“서민용, 우리 둘 다 성이 서 씨라는 거 잊지 마!”서철용은 서민용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작 남일 뿐이었다니...“서철용, 네가 누구인지는 스스로 잘 알잖아.” 서민용도 차갑게 웃었다.서철용은 서씨 집안 친자식이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가 그를 예뻐해 집에 남겨두었을 뿐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같은 성을 가졌을 리가 없다.“그래, 이럴 땐 확실하게 선을 긋는구나.”서민용이 그토록 매정한 말을 할 줄은 정말이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너랑 이런 이야기 할 기분이 아니야. 내가 서씨 집안 사람이 아니라고 쳐. 그래도 우리 셋은 같은 고등학교 나왔잖아. 또한 나는 배은란을 도우려 하는 거야, 네가 아니라.”서민용의 말에 서철용은 기분이 몹시 상한 듯했다.배은란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는 서민용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은란이도 네 도움 필요 없어.” 서민용이 말했다.그는 배은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그녀는 절대로 서철용의 도움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단념하는 게 좋을 것이다.“난 한번 결정한 일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거 너도 잘 알 거야.”서철용은 그 말을 끝으로 서민용의 기숙사를 나섰다.서민용이 배은란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가 몰래 보호해주면 될 것이다.그날 밤, 서철용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다음 날 수업 시간에도 배은란의 생각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심지어 옆에 있는 사람이 그에게 말을 걸어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드디어 마지막 수업이 끝났고, 그는 곧바로 주호걸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그 술집에 가자.”전화를 받은 주호걸은 깜짝 놀라면서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서철용이 오늘 술집에 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실행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오후 4시밖에 안 되는 시간에 술집에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난처함이 묻어 있었다.서철용이 술집에 가자고 할 거라는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 더 알아낼 방법은 없다.하지만 서철용은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너 먼저 가. 난 기숙사에 들어갈게.” 그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주호걸은 그와 같은 학교가 아니었기에, 함께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단순한 아르바이트일 수도 있어.”그 역시 그리 복잡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배은란이 아르바이트하는 장소가 조금 이상할 뿐이다.하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 그저 돈을 벌고 싶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도 있다.“그래.” 서철용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기숙사로 들어갔다.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민용의 기숙사 문을 걷어찼다.“서민용, 당장 튀어나와!” 그는 문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세수를 하고 있던 서민용은 깜짝 놀라, 입에 칫솔을 문 채로 걸어 나왔다.“왜 그래?” 그는 찡그린 얼굴로 서철용을 쳐다보며 물었다.개강한 지 보름이 넘도록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던 서철용이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얼굴을 보니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왜 그러냐고?” 서철용은 차갑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 이 자식,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그가 서민용을 노려보며 따져 물었다.왜 그러냐니... 정말 자신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걸 모르는 걸까?서민용은 서철용의 태도에 어리둥절해 하며 칫솔을 내려놓고 얼굴의 물기를 닦고 말했다. “서철용,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봐. 내가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해줄게.”서철용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물었다. “배은란 어떻게 된 거야? 왜 술집에서 일하는 거야?”서민용은 그제야 서철용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알아챘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해명했다. “다 내 탓이야. 내가 은란이한테 바에서 일하라고 했어.”“무슨 뜻이야?” 서철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배은란 집에 일이 생겨서 큰돈이 필요하대. 그래서 내
“무슨 일 있으세요, 손님? 저 종업원 불러서 손님에게 서빙하게 할까요?” 웨이터가 서철용에게 물었다. 그는 서철용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서철용은 급히 손을 저었다. 그가 어떻게 배은란에게 서빙하라고 시키겠는가. 오히려 그가 배은란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의 마음속에는 약간의 분노가 일었다. 서민용은 왜 배은란을 이런 곳에서 일하게 내버려 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건 서민용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서철용의 감정은 복잡해졌고, 점차 모순으로 가득 찼다.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배은란을 만나 기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술집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배은란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바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일하는 배은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철용은 만감이 교차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데려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에게는 배은란의 삶에 간섭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주호걸은 서철용의 이상을 눈치채고 물었다. “철용아, 왜 그래?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해졌어?” 서철용은 한숨을 내쉬고 배은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봐봐. 배은란 맞지?” 서철용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린 순간, 주호걸은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럴 수가. 배은란이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거야?” “서민용 이 천벌 받을 놈, 당장 가서 따져야겠어!” 서철용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서민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배은란과 사귀었다면, 적어도 그녀를 이런 곳에서 일하게 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철용아, 일단 진정해.” 주호걸은 서철용이 충동적으로 행동할까 봐 그의 팔을 붙잡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