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반 후, 강용은 발을 튕기더니 말했다.“야, 그만 자. 가자고.”장소월은 편안하게 잠을 잤다.너무 깊이 잠들어서 깨어나 보니 강용은 이미 링거를 다 맞고 손등을 알코올 솜으로 누르고 있었다.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거의 1시가 되어갔다.그녀는 하품을 하고 말했다.“방금 기억하라고 한 거 다 기억했어?”“이 늦은 시간에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어? 내일 다시 얘기해.”강용은 가방을 메고 카운터로 가서 돈을 지불하고 약도 받았다.의사는 돋보기를 쓰고 강용을 보았다.“젊은 친구. 평소 허리와 콩팥을 잘 보양해요. 절대 농담 아니고 심하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요.”“쯧쯧, 영감탱이가 뭔 말이 이렇게 많아?”강용은 좀 사납게 말했다.“어른한테 버릇없게 왜 그래? 선생님, 알겠어요. 제가 약 잘 먹일게요.”“역시 아가씨가 철이 들었어.”장소월은 의사가 한 말이 거짓 같지 않았다.강용은 약봉지를 챙기고, 두 사람은 진료소를 나왔다.“방금 의사 선생님 말 들었지? 평소 담배랑 술을 적게 해. 그리고...”“말해!”“방금 보니까, 허리랑 배에 흉터가 있던데 어디서 났어?”“날 걱정하는 거야?”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고, 마치 아름다운 선율처럼 귓가에 맴돌았다.강용은 그녀를 향해 눈썹을 치켜 올렸고, 그 눈빛은 마치 주파수를 던지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이미 이런 눈빛에 면역력이 생겼고, 두 평생을 산 그녀의 나이를 더하면 강용의 엄마 나이었다.강용을 걱정한다고 해도 그건 모성애 같은 것이었다.“어떻게 돌아갈 거야?”“이 시간에 택시도 안 잡혀. 호텔에 묵을 거야. 넌?”“나 근처에 셋집을 구했어. 바로 앞이야.”강용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민증 안 챙겼어. 오늘은 너희 집에서 묵으면 안 될까?”장소월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왠지 강용의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됐어, 좋은 일 하는 셈 치지 뭐.’장소월은 강용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집에 들어선 후
장소월이 잠에서 깨어나니 7시였다. 아직 30분이 남았지만 장소월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포니테일을 하고, 방문을 나서 소파를 보니 이불은 개어져 있었다.사람이 없는 걸 보니 이미 떠난 모양이다.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검은 외투를 입은 강용이 모자를 쓰고, 어깨에 묻은 눈송이를 털고는 안으로 들어섰다.“깼어? 소월 아가씨?”“어디 갔다 왔어?”강용은 아침 식사 두 봉지를 들고 그녀에게 보여주었다.“밑에 가서 아침 사 왔어. 특별히 네 것까지 챙겨왔다고. 두유 아직 따뜻해.”“하지만 나 지금 나가야 해.”“그래, 그럼 버리지 뭐.”강용은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음식을 낭비하면 어떡해. 가서 씻고 와서 먹을 테니까 기다려.”“그래.”강용은 아침 식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죽 두 그릇, 만둣국, 비빔면 등, 장소월이 뭘 좋아할지 몰라 아예 종류별로 사 왔다.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남은 절반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들은 함께 떠나지 않았고, 장소월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강용은 한약을 먹어야 하니 가스레인지 사용도 허락했다. 집에 돈도 없고, 값나가는 물건도 없으니 강용이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가는 길에 장소월은 컨실러를 꺼내 손가락으로 눈 밑에 살짝 발랐다. 2, 3일 동안 잠을 잘 못 잤더니 다크서클이 나날이 짙어 졌다. 이러다가는 그녀의 생리가 끝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몸도 망가질 것이다.아침 자율학습은 감독하는 선생님도 없었고, 오늘 장소월은 이미 늦었기에, 더 늦어도 상관없었다.“대표님... 소월 아가씨 왔어요.”진봉은 멀지 않은 곳에서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것 같은 장소월을 보았다. 그녀의 안색이 초췌한 듯했다.강영수는 그녀가 걸어오는 방향을 보고, 갈색 눈동자가 짙어지더니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아가씨를 부를까요?”강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인시윤과 사이가 좋지 않은 강영수가 오늘 모처럼 인시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직까지 떠나지 않았으니, 진봉은 강영수의
집사가 장소월을 불렀다. 이 시간에 왜 강영수가 학교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뒷좌석 조수석에 앉았다.차 안은 에어컨을 켜 놓아 따뜻했다.차 안에 앉아 있는 강영수는 창백하고 허약한 얼굴이었고, 주먹을 반쯤 쥐고 입에 대고 기침을 몇 번 하더니 호흡이 흐트러졌는지 좀 괴로운 듯했다.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잠시 후, 장소월이 먼저 적막한 분위기를 깼다.“여긴 어쩐 일이야? 아파 보이는데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장소월이 걱정스레 물었다.“날이 차서 그래, 별것 아니야.”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영수가 나지막이 물었다.“어제 시윤이가 학교 끝나고 널 기다렸는데 만나지 못했다고 했어. 어디 갔었어?”“날 기다렸다고?”강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늦게 끝나서 시윤이가 연우한테 전화했다던데, 못 만났어?”강영수는 장소월의 눈을 주시하며, 그녀에게서 뭔가를 알아채려는 듯했다.‘시윤이가 그렇게 말했구나!’장소월은 한 번도 전연우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한 적이 없었다.인시윤은 그저 장소월을 방패로 삼아, 강영수에게 핑계를 댄 것이다. 장소월에게는 별로 손해가 없는 일이니, 굳이 인시윤의 핑계를 까발릴 필요가 없었다.장소월은 덤덤하게 말했다.“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전화를 못 받았어. 어제 학교 끝나고 친구가 아파서 같이 진료소에 갔어. 그래서 못 마주쳤나 봐.”‘나한테 이거 물어보려고 온 것일까? 이런 사소한 일로 영수가 직접 와서 물을 필요는 없을 텐데. 혹시 어제 강용이랑 함께 가는 걸 인시윤이 보고 영수에게 알려줬나? 영수도 그래서 아침부터 날 찾아왔을까?’“그래서 그 친구는 다 나았어?”“많이 나아졌어.”장소월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강영수는 빙빙 돌려서 용의자를 심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장소월은 자신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몰랐다. 갑자기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숨이 턱 막혔다.“걱정해줘서 고마워. 아, 참. 나 수업 시간이 거의 다 돼서
하지만 인시윤은 이미 대단한 성적이었다. 평소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수업시간에 가끔 오지 않았다.그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험을 이렇게 잘 볼 수 있다니, 역시나 좋은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다.인시윤은 오늘도 올림피아드 팀에 오지 않았고, 고건우도 익숙한 듯 수업을 시작했다.마지막 수업은 학급 회의였다.한결은 이번 주 토요일에 학부모 회의가 있으니 모든 학부모가 참가하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도 겨울 방학 캠프도 있으니 참가하려면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6반뿐만 아니라 제운고등학교 전체를 대상한 활동이었다.장소월은 서류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학부모회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장해진은 한 번도 학부모 회의에 참여한 적이 없었고, 예전에는 장소월이 전연우에게 학부모로 참석하라고 졸랐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겨울 방학 캠프는 생각해볼 만 했다. 캠프 마지막 날이 바로 설 전날이었다.설에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든 말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마지막 수업이 끝났지만, 다른 반처럼 일찍 수업을 마칠 수 있는 특권이 없었다.장소월은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향했다.장소월은 하얀색 롱패딩 점퍼를 입고, 예쁜 얼굴 전체가 추위에 붉게 물들여 모자 속에 숨어있었다.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모자를 벗겼고, 장소월이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곁에 사람이 서 있었다.그를 본 장소월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뭐하러 가?”“밥 먹으러.”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학교 끝났는데 집에 안 가고?”강용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다. 설마 그도 식당으로 가는 길일까?장소월은 갑자기 식당에 가고 싶지 않았다.“이번 겨울 캠프 너 갈 거야?”‘나한테 이런 건 왜 묻는 거야?’장소월은 대충 둘러댔다.“몰라.”“모른다고? 대체 간다는 거야, 안 간다는 거야? 아니면 내가 갈 줄 알고 가기 싫은 거야?”‘이 자식이 지금 잰말놀이 하는 거야?’장소월
“아가씨, 만족하세요?”“난 그런 뜻이 아니야.”장소월은 가득한 닭고기를 보며 말했다. 그녀가 다 먹지도 못할 양이었다.“줘도 싫다는 거야? 쯧쯧, 시중들기 정말 어렵네!”장소월은 단지 자신의 불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강용은 어디서 공부할 힘을 얻었는지 갑자기 과외를 해달라고 했다.평소 이 시간에 그는 술집에서 미녀들과 노래하고 춤추며 유흥을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주동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6시가 되자 날씨는 이미 어두워졌다.그들은 강의동으로 걸어갔다.“그냥 내일 해. 아직 몸도 낫지 않았는데 하루 쉬어.”“10분 줄게. 안 내려오면 내가 직접 올라가서 널 잡아 올 거야.”장소월은 강용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장소월은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책가방을 메고 떠나려 했다. 나가려는데 갑자기 인시윤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가려고? 나 방금 연우 오빠한테 전화했어, 나랑 같이 가.”“집이 아니라 도서관에 자료 찾으러 가는 거야.”인시윤은 그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에이, 너희 오빠한테 이미 같이 저녁 식사하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내가 중간에서 두 사람 사이 갈등을 완화시켜 줄 테니까 걱정 마. 오늘 저녁 내가 너희 오빠 제대로 혼내 줄게. 앞으로 다시는 너 괴롭히지 못하게. 여자 혼자 밖에서 얼마나 위험해? 그냥 집으로 돌아가. 우리 오빠가 알면 얼마나 걱정하겠어?”‘두 사람 벌써 이 정도로 친해진 거야? 전연우가 그것까지 알려줬다고?’장소월과 전연우 사이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었다.장소월은 인시윤의 손을 빼고 말했다.“시윤아, 네가 오해했어. 나랑 오빠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어. 우리 집 아직 인테리어가 끝나지 않았고, 오빠 집에 사는 게 불편해서 따로 집을 잡은 거야. 그냥 며칠만 지낼 거야. 게다가 학교랑도 가까워서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오히려 편해. 이걸 너희 오빠가 아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나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어
“너 설마 우리 오빠와 강용을 모두 네 어장에 넣고 양다리를 걸치려는 거 아니지? 장소월...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차라리 속 시원히 말해보지 그래.”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했던 거였어?그렇다면 어젯밤 그녀와 강용이 함께 있는 걸 보았던 강영수도 그렇게 생각한 걸까? 그녀가 한쪽에 발 하나씩 걸치고 두 사람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말이다.장소월이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네 그 질문에 대해 오늘 이 자리에서 똑똑히 말해줄게.”“내가 누구를 만나 뭘 하든 다 내 개인의 일이야.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네 오빠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는 거 알아. 나도 정말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나에 대한 영수의 마음...”때문은 아니야.“강용을 멀리해야 한다고? 그건 너희 집안일이지 나 같은 외인과는 전혀 상관없어. 만약 네가 나한테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내 결정은 오늘과 똑같을 거야.”지금은 그녀가 강용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다.설사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들에겐 간섭할 권리 따위 없다.사실 알고 보면 강용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강용은 학교에서 돌아다니는 불쌍한 야생 고양이한테도 먹이를 챙겨주고, 음식을 담아주는 식당 아주머니한테도 매번 감사 인사를 하곤 한다.또한 아침에 채소를 팔러 나가는 할머니의 수레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몰래 뒤에서 수레를 밀어 할머니를 돕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홀연히 사라진다...그는 절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안하무인 사고뭉치 망나니가 아니다.“난 두렵지 않으니까 네 오빠한테 얘기해. 시윤아, 난 이미 내 인생의 계획을 세웠어. 그 누구도 내가 나아가는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없어. 서울대에 합격하는 거, 그거야말로 내가 목표로 삼고 해야 하는 일이야.”“난 아무한테도 마음을 주지 않아. 쓸데없는 감정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네 오빠한텐 내가 분명히 얘기할게.”“밥은... 전연우랑 둘이서 먹어! 난 두 사람을 방해
도서관.장소월은 자신이 만든 수학 시험지 한 장을 꺼내 강용에게 건네주었다. 모두 기초적인 문제로 구성되어 있어 30분이면 풀 수 있는 반 장짜리 시험지였다.그녀는 강용이 문제를 푸는 동안 영어 단어를 외우고 논술 문제를 풀었다.강용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중도에 그의 곁으로 가지 않았다.30분이 지난 뒤, 그가 채 풀지 못한 것 같았지만 시험지를 가져와 살펴보았다. 가장 기초적인 공식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모양새였다.채점을 해보니 겨우 20점이었다. 그것도 답안지의 정연함을 높이 사 우정 점수를 준 것이었다.장소월은 점수를 시험지 오른쪽 위에 표기해놓고는 이해할 수 없음에 연속 한숨을 내쉬었다.“저기, 강용, 너 2년 동안 대체 뭘 한 거야?”강용은 펜을 툭 던지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피식 웃으며 말했다.“놀았지!”“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하나도 모를 수가 있어? 너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내준 문제는 모두 수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 있는 문제야. 설마 책을 한 번도 펴보지 않은 거야?”“나랑 2년이나 같은 반에 다녔으면서 아직도 나에 대해 그렇게 몰라?”장소월은 당장에라도 그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애써 참으며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강용은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왼손 손가락을 뻗어 그녀를 톡톡 터치했다.“아직 반년이나 남았으니까 늦지 않았어. 네가 가르쳐줘. 난 최선을 다해 기억해볼게.”지난 2년은 그녀에게 있어 나쁜 기억만 가득할 뿐, 좋았던 기억은 이미 희미하게 사라져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숨겼다. 지금은 지난 일을 따질 때가 아니다.수능시험을 다 보고 나면 그들 사이엔 별다른 교류가 없을 것이다.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너 뭐 천재라도 돼? 지금 고작 이런 문제도 풀지 못하면서 서울대에 가겠다고? 네 성적으론 지방대도 과분해.”그에게 과외를 해주기 위해 그녀는 흥취반 수업도 빠졌다.장해진이 이 일을 안다면 또 욕
도서관에서 일렁이는 오싹함은 다름 아닌 전연우의 몸에서 풍겨 나온 것이었다.인시윤이 못마땅한 얼굴로 강용을 쳐다보았다.“과외는 무슨 과외야.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연애를 하고 있는데. 소월아, 너 설마 정말 이 잡종을 좋아하게 되기라도 한 거야? 너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인시윤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 발까지 동동 굴렀다.그녀는 이어 책상 위 시험지를 보고는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20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강용, 넌 평생 우리 오빠 발아래에 밟혀 버러지로 살 거야.”강용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웃으며 말했다.“적어도 난 아부하며 머리를 조아리다가 도리어 처참히 배신당하진 않아.”“나쁜 놈!”인시윤이 돌연 손을 번쩍 들고 강용의 뺨을 내리쳤다.“철썩!”하는 소리가 도서관에 울려 퍼졌다.도서관엔 아직 몇 사람이 남아있었는데 소리를 듣자마자 모두 그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네까짓 게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고작 딴따라 자식놈이?”인시윤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강용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한없이 얕잡아보는 자세로 말이다.“강용도 똑같은 사람이야!”순간 장소월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강용을 자신의 등 뒤로 잡아당겼다.“이곳은 도서관이야. 너희들은 나한테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공부도 방해했어. 지금 당장 나가!”인시윤이 말했다.“너 이렇게 두둔하며 나설 정도로 강용을 좋아하는 거야? 강용, 너 대체 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그래. 난 강용을 보호하고 싶어.”강용의 옷소매를 잡고 있는 장소월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당당히 한 사람을 지키는 순간이었다.인시윤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지금 네 행동이 나뿐만 아니라 강씨 집안까지도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알아? 너희 장씨 집안은 전연우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몰락하고 말았을 거야. 그러고도 네 부잣집 아가씨 위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난 정말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