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우는 백윤서를 안고 가서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바텐더는 백윤서의 가방을 그에게 건네주었다.“손님, 이 아가씨가 손님 여자친구 맞죠? 혼자서 술을 너무 많이 드시더라고요. 하마터면 이상한 사람들한테 추행당할 뻔했어요. 여자친구분이 너무 예쁜데 앞으로는 혼자 위험하게 나오게 하지 마세요.”전연우는 아무 말 없이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팁으로 줬다. 그리고 바에서 나와 차 앞쪽을 지나 운전석에 앉았고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가든 아파트에 도착하자 전연우는 차에서 내려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 있어서 너무 늦지 않았다.전연우는 백윤서를 부축하여 차에서 내렸고 백윤서는 나른하게 그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나 돌아가지 않을래. 술 더 마실래…”“윤아, 그만해. 너 내일 학교 가야 해.”백윤서는 갑자기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전연우를 밀어내고 휘청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고 전연우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윤아, 오늘 무슨 일 있었지.”백윤서는 고개를 저었지만 전연우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았다.“연우 오빠, 내가 외국에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나요… 아니… 난 애초에 구조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러면… 내 마음이 이렇게 괴롭지 않았을 텐데.”“왜 내가 가는 곳마다 다들 나를 싫어할까요… 연우 오빠, 나한테 뭐가 부족한 게 있나요? 오빠… 난 내가 오빠한테 짐만 되는 것 같아요. 아무 도움이 안 되잖아요.”백윤서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넌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돼. 윤아… 넌 아직 어려서 걔한테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전부 내가 다 너한테 줄게. 다시는 너 혼자 내버려 두지 않아.”“연우 오빠~”백윤서는 앞으로 가서 전연우의 품에 안겼다.“나한테는 이제 오빠밖에 없어요. 나중에 나 버리면 안 돼요, 알았죠? 오빠도 나를 버린다면 윤이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장소월은 전생에 백윤서를 죽게 만들었다.그래서 전연우가 그녀를 그렇게 원망했었다.모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그녀였다…그녀의 잘못이었다…장소월은 졸음을 잊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바람이 불어와 추위에 코트를 단단히 감쌌다…시간이 너무 빨리 지났다! 어느새 6개월이 지났고 한 달 정도 더 지나면 새해가 된다.기사는 백미러로 뒤에 앉은 장소월을 보더니 창문을 닫았다.30분 후 남원별장에 도착했다.앞에 서서 보니 별장은 조금의 빛도 없이 어두웠다.길 한쪽의 희미한 가로등 그늘 아래 날벌레 몇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예전에는 아무리 늦게 집에 돌아와도 누군가 불을 켜놓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이제 그녀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사라졌다.가끔 장소월은 너무 외로워서 세상에 자신만 홀로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다행히도 장소월은 이 모든 것이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입김을 불고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추운 집 안으로 들어갔다.요즘 장소월은 매일 밥 먹고 잠자고 학원 가는 간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집에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장해진을 만날 기회가 적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장해진은 강만옥과 함께 태국으로 휴가를 떠났다.전연우도 해외 출장을 가야 했다.장소월이 집에 돌아올 때면 밤 10시가 거의 다 되었다.심지어 그녀는 이미 지금의 공부 강도에 익숙해졌고 잘 추지 못하던 춤도 이제는 쉽게 따라갔다. 역시 남자는 독기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연습이 끝나면 다음에는 대회와 자격시험들이 이어졌다…그녀가 완성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아직 제운고등학교의 중간고사도 보러 가지 못했다.학교에서 전화가 걸려 와 거실의 유선전화가 울렸다. 청소 중이던 은경애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실례지만 장소월 학생 있나요?”“이리 줘요!”마침 위층에
오늘은 마침 그림 전시회를 보는 날이다.장소월은 잊지 않고 일찍 일어나서 씻고 흰색 캐시미어 울 재킷과 검은색 긴 니트 스커트를 입었다. 오늘은 기온이 0도까지 내려가 추워서 안에 두꺼운 스타킹도 신었다.요즘 서울의 날씨는 롤러코스터처럼 불규칙적이었다. 별장 화단에 서리가 내리고 나뭇잎은 어제까지 푸르렀는데 하룻밤 사이에 벌써 빨갛게 물들었다.장소월은 하얗게 얼어붙은 서리를 보기만 해도 추웠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스카프에 묻었고 뺨은 벌써 약간 붉어졌다.오늘 눈이 올지도 모르겠다.택시가 오자 장소월은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장소월은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싫어서 30분 일찍 출발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이미 전시장 입구에는 긴 줄이 있었고 사람들은 손에 티켓을 들고 있었다. 장소월이 도착한 지 10분 만에 리무진 한 대가 들어왔다.차 안에서 강영수는 창밖으로 하얀 옷을 입은 장소월이 추워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치켜올렸다.“여기서 내릴게요!”진봉이 말했다.“네, 도련님.”발이 얼 정도로 추운 줄 알았으면 그녀는 양말을 한 켤레 더 신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소월아…”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장소월은 고개를 돌렸다. 오 집사와 휠체어에 탄 사람이었다.강영수는 미소를 지었다.“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장소월이 말했다.“아니야, 나도 방금 도착했어. 그럼 우리 들어가자.”“소월 아가씨…“오부연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저희는 들어가지 않을 테니 도련님을 잘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진봉은 눈치를 보고 전화 받는 척 돌아섰고 오 집사도 자리를 떠났다.강영수만 남았다…“부탁해.”“괜찮아. 이렇게 입으면 춥지 않아? 오늘 눈 올 수도 있어! 손이 차갑지?”장소월은 마치 엄마처럼 잔소리를 하며 그의 손을 만졌는데 얼음장 같았다.“장갑 안 했을 줄 알고 내가 하나 더 챙겼어.”장소월은 가방에서 검은색 가죽 장갑을 꺼냈다. 그것은 그녀가 예전에 전연우에게 선물하려고
장소월도 자신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사람들이 지루해할까 봐 걱정할 때도 있었다.전시장 안에는 에어컨이 있어 그리 춥지 않았다.그림을 보면서 장소월은 디테일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에드워드는 그녀에게 기쁨 그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이 그림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듯한 온도를 전달하고 있었다…풍경화든 인물화든 매우 사실적이었다…이 그림들은 모두 액자가 씌워져 있었고 사방에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기 있는 그림들이 걸작이 되어 경매장에서 고가로 경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 화가의 그림들은 전부 다 훌륭하지 않아?”“마음에 들어?”“내가 여덟 살 때 장난치다가 어머니의 책장에 올라갔다가 넘어져 책더미에 파묻혔는데, 그때 책에서 떨어진 그림이 다름 아닌 에드워드 씨의 그림이었어. 지금도 그 그림의 제목이 ‘꿈의 세계’인 것을 선명하게 기억해.”“그건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오로라였어. 밤하늘을 가르는 광선이 극한의 추위 속에서 눈부시게 몽환적이었어. 어떤 붓으로도 극도로 차가운 북극의 공기 속의 그런 장면을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오직 에드워드만이 해냈어. 그분은 정말 놀라워!”“하지만 사진으로만 봤을 뿐,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아쉬워. 정말 훌륭할 것 같아.”강영수가 말했다.“볼 수 있을 거야. 네가 원하는 건 모두 이룰 수 있을 거야.”장소월은 곧바로 생각에서 빠져나왔다.“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젠 상관없어. 전시회에 와서 직접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해.”그들은 1층을 다 둘러보았고 2층에 더 있었다.“화장실 갈래?”“…”강영수는 웃으면서 말했다.“도와주겠다면 난 마다하지 않아.”장소월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장소월은 다급히 말했다.“나, 난… 직원분한테 도… 도와달라고 말할게…”너무 창피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괜찮아. 장난친 거야. 난 아직 괜찮으니까 너 먼저 화장실 다녀와.”강영
장소월은 화장실에서 나와 수돗물을 켜고 손을 씻었다. 강용 옆에 있던 여자를 생각하자 그녀의 얼굴이 낯설지 않은 것 같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그런데 백윤서와 강용은 사귀는 사이 아니던가?강용은 왜 또 새 여자친구를 사귀었지?아니다, 어젯밤 백윤서와 전연우가 껴안고 있던 걸 보아, 두 사람은 아마 사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용이 버림받았다는 뜻이다.도원 어촌에서 강용은 그녀의 맞은편에 머물렀었고 장소월은 두 사람이 키스하는 것을 목격했었다.그런데 장소월도 두 사람이 정말 입술을 닿았는지 알 수 없었다.어쨌든 그녀의 자리에서 봤을 때 정말 키스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장소월도 그들 사이에 또 다른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그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관심 끄고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장소월은 재빨리 손을 씻고 휴지 두 장을 뽑아 손을 닦은 다음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그런 다음 그녀는 휴게실로 갔다.장소월이 문 앞으로 갔을 때 휴게실 안에 사람들이 강영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이 왜 여기 있는 걸까?서문정과 다른 친구들이었다.제운고등학교 6반 학생들.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들이 강영수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강영수는 입꼬리가 올라간 채 그들과 말하고 있었다.서문정은 곧 장소월을 발견하고 놀라서 소리쳤다.“소월아! 여기서 만나네! 너… 너 왜 여기 있어? 부반장한테 들었는데 너 이번 학기에 학교에 안 온다고 하던데, 진짜야?”장소월은 강영수의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느꼈다.장소월은 무심한 듯 걸어가면서 말했다.“그래! 이런 우연이 있네, 여기서 다 만나다니.”서문정만 장소월에게 신경 쓰고 지켜볼 뿐, 다른 학생들은 고개를 돌렸고 아무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장소월은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백윤서에게 인사를 건넸다.“윤서 언니.”백윤서는 어젯밤의 어색한 상황이 떠올라 장소월을 어떻게 대면해야 할지 다소 당황스러워했다.어제 장소월은 그녀가 전연우에게 했
이때 강용의 모습은 마치 자신만만하던 사자가 동물 트레이너를 보고는 사람들이 쓰다듬고 있는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강영수는 사람들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 서서히 강한 그룹의 경영권을 잡고 있지만 외부인들이 보기에 그는 모습을 숨기는 신비한 존재였다.그들은 아마 방금 휠체어를 타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하지만 허철과 방서연은 알고 있었다.그 사람은 서울 강가네에서 배양한 상속자 강영수였다.몇 년 전의 교통사고는 강영수의 다리를 앗아갔고 그 후로 그는 사라졌다.그 해의 강영수는 현재의 강용보다 훨씬 뛰어났다.두 사람은 정말 똑같이 거칠고 오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강영수는 이전보다 못했지만 그들에게 주는 느낌은 이전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눈빛만으로도 강용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강용은 강영수의 배다른 동생이다. 하지만 강가네에서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 누구도 강용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왜냐하면 강용의 어머니는 평범한 신분이었고 예전에는 연기자였다… 연기자 출신이니까 강가네는 그의 어머니를 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그들은 이 사람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알고 있다.지난번에 장소월이 사고를 당했을 때, 강영수는 강용이 사람을 시켜 일을 저지른 줄로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사람을 시켜 바에 있는 강용의 손을 부러트리고 사람을 끌고 차에 올라탔다…당시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때 룸 안에는 그들 세 사람뿐이었다.지금도 허철과 방서연은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장소월과 강영수가 멀리 가고 나서야 허철은 감히 입을 열었다.“장소월은 저 사람과 어떻게 아는 사이야?”“용아, 지난번에 일은 그냥 이렇게 지나갈 거야?”목소리는 낮았지만 휴게실에 있는 사람들도 그 말들을 들었고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강용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라이터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재밌네.”두 사람이 그림 전시회를 다 둘러보고 나니 벌써 오후 한 시였다.장소월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그들이 점심
그림 전시회는 오후 3시에 끝났다.백윤서는 국제전시센터 밖에 주차된 낯익은 차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재빨리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앉았다.“오빠… 언제 왔어요? 왜 전화 안 했어요? 오빠가 온 걸 미리 알았으면 내가 일찍 나왔을 텐데, 그럼 이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 없었는데.”기성은에게 백윤서의 수업 스케줄 사본이 있기 때문에 그는 오늘 그녀가 교외 활동으로 그림 전시회를 보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전연우는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근처를 지나가던 중이었고, 그래서 가는 길에 그녀를 데리러 왔다.전연우가 말했다.“괜찮아.”백윤서가 말했다.“오빠,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요?”전연우가 대답했다.“계약서에 사인했어.”“축하해요! 오빠가 이 프로젝트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잠도 잘 못 자고 고생했잖아요. 드디어 이제 잠시 쉴 수 있게 되었네요.”차가 시동이 걸리고 전연우가 말했다.“윤아, 안전벨트 매.”백윤서는 깜짝 놀라며 그의 말에 얌전하게 말했다.“아, 깜빡했네요.”그녀는 재빨리 안전벨트를 맸다. 예전에는 전연우가 늘 그녀의 안전벨트를 매는 것을 도왔다.백윤서는 그가 피곤해하는 것을 보고 조용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연우는 차를 돌렸고 마치 누군가 길을 건너려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익숙한 모습은 장소월 같았다.그녀는 몸을 숙여 휠체어를 탄 사람의 옷과 스카프를 정리해 주었다. 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약간 곱슬한 긴 머리는 어깨에 흘러내렸다. 장소월은 생수병 뚜껑을 열고 그 남자에게 물을 마시도록 했다.전연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얇고 차가운 입술을 앙다물었는데 그 선은 더욱 차가워 보였다.차 안에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서서히 퍼지면서 불쾌감이 스며들었다.백윤서도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오늘 학교에서 전시회를 보는 활동을 조직했는데 소월이가 친구랑 같이 왔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의 다리를 보니… 장애인 같았어요.”전연우는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장소월을
그가 이 사람들을 데려온 것일까?왜?복수를 위한 그의 계획 때문에… 그래서 미리 그에게 접근한 걸까?전생에 그들은 적어도 결혼까지 했었다.지금은… 전연우는 그녀에게 살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그때 도원 어촌에서 그녀에게 접근한 사람도 그가 찾은 사람이 아니었을까?만약 그가 한 짓이 맞다면 왜 그녀를 도와서 그녀를 괴롭힌 사람들을 혼줄을 내줬던 걸까?지금 그는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이러고 있는 걸까?그래서 오늘 전연우는 그녀가 굴욕적으로 죽는 것을 보려고 하는 걸까?그렇다면.지난번에는 왜 그녀가 바다에서 죽게 내버려 두지 않고 구해준 걸까!전연우, 장해진이 도대체 당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왜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한 증오를 전부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난 분명 아무 짓도 안 했어!그들의 손은 장소월의 옷을 계속 찢고 있었다.흰 재킷은 이미 벗겨져 있었다.장소월의 저항은 그들에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쯧, 두 성인 남자가 여기서 여자를 갖고 즐기고 있는데, 전연우… 넌 아무 반응이 없냐?”서철용의 시선이 그의 하체를 향했고 그는 사악하게 웃고 있었는데 입술은 악마 같은 붉은 핏빛이 번져 있는 듯했다.“유감이야… 오늘 밤이 지나면 이 어린 소녀는 곧 여자가 될 거야!”“하지만 잘했어. 장소월이 강가네 가문으로 들어가면 우리 계획은 더 실행하기 어려워질 거야. 장소월… 같은 여자는 앞으로 많을 거니까 아쉬워할 필요 없어.”전연우의 검은 눈동자는 밤처럼 어두웠다.하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장소월은 힘껏 그들을 밀어냈고, 그중 한 명은 칼을 꺼내 위협하면서 들이대려고 했지만 장소월이 손으로 튕겨내면서 칼은 땅에 떨어졌고 그녀의 팔은 베여 상처가 났다.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장소월은 팔을 가린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두 남자는 그녀를 쫓아 달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쫓아가지 않아도 돼.”장소월은 얼마나 달렸는지 그녀가 누가 아직도 쫓아 오나 황급히 뒤돌아보았을 때
서철용 또한 한때는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토록 서민용의 목숨에 집착했던 것이다.하지만 서민용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 장영우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그동안 배은란은 이미 아이들과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다.주로 서철용이 아이들을 돌보던 예전과는 달랐다. 당시의 배은란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했고 애정 또한 별로 없었다.하지만 그가 떠난 후 아이들은 배은란의 손에 맡겨졌다.그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걱정과 초조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의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다.서철용이 떠나면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이 없기에 배은란은 그들을 위해 남을 수밖에 없다.서철용 또한 감히 그런 위험한 모험을 시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장영우가 독단으로 그를 비행기에 실은 뒤에야 통보했던 것이다.지난 2년간 해외에서 그는 그녀와 아이들의 걱정에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래도 다행히 장영우가 꾸준히 배은란과 아이들의 근황을 알려주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이젠 배은란 나한테 맡겨. 내가 잘 보살필게. 하지만 그 여자가 너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가끔씩 꿈에 보러 가줘. 또 그 토끼 인형처럼 눈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서철용은 후련한 듯 묘비에 새겨진 얼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네가 나보다도 더 그 여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거라고 믿어.”몸을 돌려 떠나려던 찰나, 언제부터 뒤에 서 있었는지 모를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서철용은 난처한 얼굴로 내디뎠던 발을 다시 거두어들였다.“은란아, 언제 왔어?”배은란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엔 아직 당황한 기색이 남아있었지만, 이내 감정을 감추고 그를 지나쳐 묘비 앞으로 걸어갔다.“민용 씨는 당신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다시는 오지 마.”소망이가 머리핀을 떨어뜨렸다며 다시 가지러 가겠다고 떼를 썼었다. 배은란은 아이들을 멀리서 기다리게 하
3년 후.서민용의 무덤 앞.배은란은 그의 묘비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미안해, 민용 씨. 나 약속 못 지켰어. 민용 씨는 이미 떠났겠지? 떠나기 전에 나 원망 안 했어?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3년 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민용을 따라가려고 했었다.다른 데엔 아무런 미련도 없었지만, 죄 없는 두 아이를 차마 혼자 남겨둘 수가 없었다.배은란은 처음에 아이들을 서철용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어쨌든 아이들은 서철용의 핏줄인 데다 그를 많이 따르기도 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병원에 갔다가 서철용이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두 아이를 보낼 곳이 없어졌다.서철용은 서씨 집안 친자식이 아니다. 때문에 그 사람들이 아이들을 키워줄 리 만무했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씨 집안은 이 두 아이를 증오하기도 모자랄 것이다.어린 두 아이가 마음에 걸린 배은란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아 하루하루 정성껏 돌봐주었다. 틈틈이 병원에 가서 서철용이 돌아왔는지도 확인했다.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흘렀지만, 서철용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점점 더 철이 들어갔다.“엄마, 아빠 옛날에 이렇게 생겼었어요?”소망이가 묘비에 붙어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배은란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이분은 너희 아빠가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이란다... 너희는...”그녀는 아이들에게 서민용을 어떻게 부르라고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호칭이 무엇이든 서민용이 싫어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아저씨, 저 기억나요!”소망이의 눈이 반짝였다. “예전에 오빠랑 저와 자주 놀아주셨어요!”배은란은 목이 메었다. 아이가 서민용을 서철용과 헷갈려 하고 있는 것이다.소원이는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아저씨는 저렇게 안 생겼는데...”“아니야! 저 얼굴 맞아! 내가 분명히 봤어! 어제도 꿈에 나왔는데 엄마 잘 돌봐주라고 하
“대체 무슨 일이야! 서 선생님, 미쳤어요? 손 앞으로 안 쓸 거예요?!”배은란은 복도에 서서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듣고 있었다. 간간이 서철용의 분노에 찬 고함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소리는 절망적인 흐느낌으로 변해갔다.이젠 가망이 없다는 것을 배은란도 느낄 수 있었다.그녀의 눈에서 빛이 조금씩 꺼져갔다. 그녀는 맥없이 터덜터덜 응급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민용 씨...”그녀의 눈동자엔 온통 싸늘하게 식어버린 서민용의 모습만 가득 차 있었다.저기에 누워있는 사람이 정말 서민용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그 사람은 분명...배은란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녀는 곧바로 손을 들어 서둘러 눈물을 닦아냈다.울면 안 된다. 서민용은 그녀가 우는 걸 싫어하기에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방 안에서 전해져오는 흐느낌 소리에 배은란은 얼이 빠진 듯한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았다.서철용은 장영우와 남자 간호사에게 붙들린 채 끌려 나오고 있었다.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격렬하게 몸부림치던 서철용의 몸짓이 멈추었다. 그의 눈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서민용의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먹구름이 하늘을 덮친 우중충한 날, 배은란은 두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그를 묻었다.“민용 씨, 기다려. 곧 당신 찾아갈게.”납골당에서 나오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더니 꽃잎 하나가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배은란은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엄마, 우세요?”소원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배은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래.”소원이는 그녀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았다.엄마는 분명 울고 있으면서 왜 인정하지 않는 걸까?“소원아, 소망아, 너희들 철용 삼촌 좋아해?”배은란은 마음속의 죄책감을 억누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두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요. 엄마 다음으로 삼촌이 제일 좋아요.”
“이미 호흡이 멈췄습니다.”장영우는 비교적 침착하게 서민용의 상태를 확인했다.전신 마비인 몸으로 손가락 하나밖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었으면 자신의 목을 졸라 자살할 수 있었겠는가.어쩌면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것일 수도 있다.그 말에 배은란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몸부림치며 울음을 터뜨렸다.“응급실로 옮겨서 CPR 시행해!”서철용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시했다.장영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서 선생님, 고인의 뜻도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옆에 늘어뜨린 서철용의 손에 시퍼런 핏줄이 솟아올랐다.“CPR 준비하라고 했어! 지금 바로 시작해!”그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서민용의 목숨을 거두어 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었다!서민용 자신조차도 안 된다!서철용은 몸을 돌려 빠르게 걸어 나갔다.아직 깁스를 하고 있는 그의 왼손과 흐느껴 울고 있는 배은란을 번갈아 보며, 장영우는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미쳤어, 하나같이 다 미쳤어.’“장 선생님...” 간호사가 망설이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장영우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서 선생님 말씀대로 해.”시도라도 해보지 않는다면, 이 두 사람은 영원히 서민용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보호자분, 부디 힘내세요.”장영우는 병실을 나서며 배은란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했다.응급실 빨간 등은 꼬박 한 시간 동안 켜져 있었다.배은란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복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는 즉시 일어나 달려갔다. 저번처럼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장영우는 난처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보호자분, 들어가서 서 선생님 좀 말려 주세요. 선생님을 말릴 수 있는 분은 보호자분밖에 없습니다.”배은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순간 절망감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너무나도 안타까운 모
장영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서철용의 깁스에 물이 닿아 흐물흐물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깁스를 해야 했다.다행히 두 사람은 모두 의사다. 장영우는 그 자리에서 직접 빠르게 서철용의 팔을 고정해 주었다.“서민용은 회복 잘하고 있어? 수술은 언제쯤 할 수 있을 것 같아?”장영우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고 싶으세요?”서철용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갑자기 죽는 것보단 죽을 날 미리 알아두는 게 낫잖아.”장영우가 대답했다.“안심하세요. 살 시간 많을 것 같아요.”서철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배은란 씨가 간병인까지 고용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데도 서민용 씨의 수치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정말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검사 결과를 보니까 식사는 하지 않고, 영양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그 말에 서철용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장영우는 말을 이어갔다.“그 사람은 이미 살겠다는 의지를 상실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심장을 주신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 겁니다. 다 아시면서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 계속 이러시면 선생님에게도, 배은란 씨에게도, 또 서민용 씨에게도 그저 고통만 안겨줄 뿐입니다.”정영우는 세 사람의 상황을 가장 객관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 역시 서민용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서철용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개를 들고 지시했다. “이틀 더 지켜봐. 계속 음식 거부하면 코로 주입해.”서민용의 목숨은 그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거두어갈 수 없다.서민용 본인조차도 안 되는 일이다.장영우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환자분은 의식을 갖고 계신데, 그렇게 하면...”서철용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에 장영우는 뒷말을 채 잇지 못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사무실 문 앞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서철용의 몸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하반신에 간단히 수건 한 장만 두른 상태였다. 자세 때문인지 멀리서 보면 서철용이 배은란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배은란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녀는 자리에 굳어 선 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그녀는 이미 서철용의 알몸을 수차례 보았었고, 심지어 더 친밀한 행동도 함께 했었다.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지금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제 서민용이 자신의 손바닥에 한 획 한 획 써 내려갔던 글자가 떠올랐다. 그녀의 온몸에선 서철용에 대한 경계심이 감돌고 있었다.“장영우 선생인 줄 알았어. 가져올 필요 없어. 나 다 씻었어.”아침은 남자의 성욕이 가장 왕성해지는 시간이다. 배은란의 향기를 맡으니 저도 모르게 몸이 반응했다. 그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서 휴게실로 돌아가 가운을 걸쳐 입고 나서야 다시 사무실에 나왔다.배은란은 책상 옆에 서 있었다.“무슨 일로 왔어?”서철용은 이마를 짚으며 약간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배은란은 약간 발그스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민용 씨 죽 끓일 때 겸사겸사 갈비탕도 좀 끓였어. 당신 상처에 좋을 것 같아서.”서철용은 그제야 책상 위에 놓인 도시락통 두 개를 발견했다.하나는 그의 갈비탕, 다른 하나는 당연히 서민용의 것이었다.“겸사겸사라...”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알았어. 안심해. 오해하지 않을게. 넌 그저 내가 너 때문에 다친 게 마음에 걸릴 뿐이겠지.”그 말은 오히려 배은란에게 더욱 선명하게 상기시켜 주었다.“당신 상처...”조금 전 듣기론 상처에 물이 닿은 것 같았다. 지금은 서철용이 가운을 입고 있어 확인하기 어려웠다.“안 죽어. 나 의사잖아. 내가 알아서 해.” 서철용은 아래턱을 쳐들고 말했다. “근데 움직이는 건 좀 불편해. 국 좀 따라줘.”배은란은 국을 따른 뒤, 서민용을 오랫동안 간호해왔던 습관대로 저도 모르게 숟가락을 들고 그에게 먹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곧
“민용 씨, 미안해. 내가... 오늘 좀 일이 있어서 늦었어.”배은란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죽 그릇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먹여주었다.“오늘 밸런타인데이래. 이런 날 일찍 와서 당신과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전부 내 잘못이야. 몇 시간 뒤면 밸런타인데이 지나가. 나한테 말 좀 해줄래?”배은란은 그가 자신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 손을 그의 손 옆에 가져갔다.서민용은 손가락 끝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괜찮아.]배은란의 손가락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몇 초 동안 서민용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당황한 듯 재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민용 씨, 뭐라도 좀 먹어. 당신 몸 회복되면 내년에는 우리 같이...”서민용은 평소 같지 않게 식사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죽 한 그릇이 바닥을 보이자 배은란은 너무 기뻐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민용 씨, 당신도 빨리 낫고 싶은 거지? 나도 알아.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정말이야...”배은란의 목소리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서민용의 정서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 그녀는 억지로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아냈다. 이후 마음이 진정되자 미소를 지으며 최근 있었던 소소한 일상들을 그에게 이야기해주었다.서민용은 따뜻하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없이 모두 들어주었다.밤이 깊어졌다. 배은란은 병실에서 그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었다.하지만 서민용은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했다.배은란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서민용은 이제야 간신히 음식을 먹으려 하고 있다. 그녀가 직접 죽을 끓여주면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별장으로 돌아온 배은란은 잠이 든 지 두세 시간 만에 일어나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좁쌀에 으깬 호박을 넣고 약한 불로 천천히 끓였다.냉장고에는 며칠 전에 사놓은 갈비와 옥수수도 조금 남아 있었다. 배은란은 그것들을 모두 꺼내 갈비탕을 끓였다.자신 때문에 다친 서철용을 나 몰라라 할 수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 배은란의 시선은 줄곧 그의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서철용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지만,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니 마음속으로 얄팍한 욕심이 피어올랐다.그녀는 그를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서민용의 수술을 앞두고 있는 그의 팔을 걱정하고 있는 걸까?아마 후자일 것이다.그를 미워할 시간도 모자랄 테니 말이다.병원에 도착하여 치료를 마친 후, 배은란은 긴장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 “얼마나 지나야 회복될까요? 이 사람 의사인데, 나중에 팔을 쓰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요?”“관리만 잘하면 두 달 안에 거의 완전히 회복될 수 있고, 의사 생활에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의사가 설명했다.그 말에 배은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서철용은 팔에 깁스를 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병원을 나서는 길에서도 여전히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는 배은란을 본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안심해. 이 팔 못 쓰게 된다고 해도 서민용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야.”배은란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당신은 내 머릿속에 민용 씨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가 약간 화가 난 듯 물었다.서철용이 되물었다. “그럼 아니야?”서민용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서철용을 쳐다보기라도 했을까?“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지금 돌아가면 서민용이랑 저녁밥 먹을 시간은 충분하겠네. 밸런타인데이라 더욱 같이 있어 주고 싶었을 텐데 잘됐어.”서철용이 비웃음 섞인 어조로 말했다.차는 보험 회사에 견인되어 갔고, 두 사람은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배은란은 입술을 앙다문 채 그의 깁스한 왼손을 바라보았다.“난 단순히 당신 상처 걱정하면 안 되는 거야?”서철용은 분명 그녀를 구하려다 다친 것이다. 그것도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에 말이다.방금 전 그 장면을 떠올리자, 배은란은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서철용은 고개를 돌려 꿰뚫어 보듯 그녀를
배은란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끼가 왜? 귀엽기만 하잖아.”서민용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자기더러 귀엽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배은란은 너무 당황해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서민용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확실히 귀엽긴 해. 울지 않을 때는 토끼보다 더 귀여워.”배은란은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어 새빨개진 얼굴로 인형 가격을 물었다.서민용은 잠시 생각하더니 모른다고 말했다.당시 그녀는 서민용의 다정함에 푹 빠져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했다.하지만 방금 서철용이 했던 말...그때 그 인형 서철용이 샀었나?그렇다면 왜 서민용이 그녀에게 전해준 걸까?그녀는 서철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묻고 싶었지만, 결국 의미 없다는 생각에 말을 삼켰다.쇼핑몰에서 반나절을 보낸 후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서철용은 차를 몰고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서민용 이제 말은 해?”돌아가는 길, 서철용이 갑자기 물었다.그는 줄곧 배은란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서민용의 상태에도 관심을 끊고 모두 장 선생에게 일임했다.배은란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말도 못 하는 사람이 어지간히 속을 썩였나 보네. 왜, 그놈이 너 무시했어?”서철용은 제멋대로 추측하며 서민용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그놈 복에 겨웠네. 누군 아무리 원해도 같이 있지 못하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조만간 내가 그놈 옆에 누워 있으면, 너희 둘...”분명 내 염장 지르겠지?서철용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말을 삼켰다.배은란은 예민한 촉으로 무언가 감지했다.“무슨 말이야?”그가 서민용 옆에 눕는다니?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말에 배은란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서철용의 반응에 짜증이 밀려왔다.서철용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농담한 거야. 몰라서 그래? 내가 매일 서민용을 질투하느라 미칠 지경이라는 거.”그 말은 성공적으로 배은란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