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자 달은 흐린 구름에 가려 밝았다가 어두워졌다.짙은 구름은 장소월의 기분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그녀는 마치 방금 괴롭힘을 당하고 버려진 고양이처럼 갈 곳을 몰라 길거리를 떠도는 것 같았다.이렇게 넓은 곳에서 장소월은 어디가 자신의 집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는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장소월은 그의 대답을 듣지 못했고 휴대폰으로 바람 소리만 들었다.무겁고 힘 있는 발소리를 듣자, 장소월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통해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검은 모습조차도 비현실적이었다.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는데 그가 가까이 오자 장소월은 무력하게 휴대폰을 떨어트렸고 팔의 피도 마른 것 같았다.피를 많이 흘린 탓에 장소월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제 그녀는 절망으로 가득 찼다.장소월은 전연우의 바지를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왜요? 연우 오빠, 제가 뭘 잘못했길래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난 당신을 너무 사랑하는데 당신은 왜 나를 계속 가슴 아프게 만들어?“소월아, 사람은 가끔 너무 똑똑하다고 자신만만하면 안 돼!”전연우는 몸을 숙이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강가네를 이용해서 장씨 가문을 벗어나고 싶었어? 왜 너는 항상 그렇게 순진해?”“전연우, 당신이 나 안 좋아하는 거 알아요. 난 이미 포기했어요. 도대체 나한테 뭘 더 바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내가 죽기를 바랐다면 왜 매번 날 구해준 거예요? 난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워요… 제발 부탁인데 이제 날 그만 괴롭혀요, 네?”전연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차갑게 쏘아붙였다.“오빠라고 불러!”“당신은 내 오빠가 아니에요! 예전에 나한테 잘해준 거 다 가짜잖아요! 당신은 내 오빠가 될 자격이 없어요!”장소월은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질렀다. 두려움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저항할 수 없다는 절망감만이 남아있었다.“앞으로 강가네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지 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알잖아…
그녀를 안은 순간.갑자기 전연우의 코끝에 하얗고 차가운 무언가가 내려와 그의 체온에 녹아내렸다.그가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부터인지 거위 깃털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눈은 땅에 떨어져 한동안 머물다가 녹았다.장소월이 여덟 살 때 전연우는 처음으로 장씨 집안에 들어왔다. “오빠, 봐요. 눈이 내리고 있어요!”열한 살 장소월이 말했다.“오빠, 밖에 나가서 눈사람 만들까요? 소월이는 오빠를 제일 좋아해요!”열여덟 살 장소월.“오빠, 올해도 서울에 눈이 오면 오빠한테 고백할 테니, 나랑 사귀어요!”소월아,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단지 네가 장씨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게 잘못된 거야.지금 네가 겪는 고통은 시작에 불과해......장소월은 얼마나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정처 없이 걸었는지 모른다.영혼이 없는 꼭두각시처럼 느껴지면서 자신의 육체가 조종당하고 있다고 느낀 그녀는 눈앞에 밝은 빛이 나타나자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의식이 천천히 돌아왔다.“습~”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은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눈앞의 회색 천장을 바라보며 낯설지만 익숙한 동백꽃의 은은한 향기를 맡았다.장소월은 침대 왼쪽에 검은 스웨터를 입은 차분한 기질의 전연우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부드러운 선이 선명했고 그의 몸에서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를 보고 있으니 어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환각일까?그는 왜 여기 있는 걸까?“연우 도련님, 소월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멀쩡했는데 어떻게 또 다치셨어요? 어제는 분명 멀쩡했는데?”아줌마의 목소리였다.“일어났네요...”아줌마는 설탕물 한 그릇을 손에 들고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아가씨, 괜찮아요?”“가만히 계세요, 연우 도련님이 상처를 처리하고 계세요.”전연우는 마취제 없이 그녀의 상처를 꿰매고 있었다.백윤서는 그녀가 움직일까 봐 다른 한 손을 누르고 있었다.“오빠, 우리 그냥 소월이를 병원에 데려가요.”장소월의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아파서 팔의 살이
“상처가 이렇게 깊다니... 도련님께서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아가씨가 걱정되어 마중을 나갔으니 망정이지 더 큰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쩔 뻔했어요!”장소월이 웃으며 말했다.“그냥 넘어진 거예요.”“뭐라고요? 고작 넘어진 것뿐인데 이렇게 크게 다쳤다고요?”“춤 연습을 할 때 주의하지 않아 긁혔어요.”아주머니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안 되겠어요. 어르신에게 말씀드려 학원을 바꿔 달라고 해야겠어요. 어떻게 선생님이라는 작자가 책임감 없이 이렇게까지 다칠 때까지 가만히 놔둘 수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무슨 선생이에요!”장소월은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가 다칠 때마다 가장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은 항상 오 아주머니이다.“아주머니, 전 정말 괜찮아요. 집사님께 전화해 절 데리러 오라고 해주세요.”백윤서가 말했다.“소월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가. 널 혼자 이 시간에 보낸다면 나와 오빠가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 같아.”장소월은 설탕물을 반 컵 마시고 나니 한결 괜찮아졌다.“참, 이렇게나 늦은 시간까지 저녁도 안 먹었죠? 배고플 테니까 내가 국수를 말아 줄게요.”장소월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제야 그녀는 여긴 전연우의 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백윤서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소월아, 네 집처럼 편히 있어. 나와 오빠가 널 보살펴 주는 건 당연한 일이야. 국수가 먹고 싶지 않으면 오빠한테 다른 걸 사 오라고 할까?”장소월은 너무 시끄러워 머리가 지끈거렸다.이곳은 그녀의 것이 아닌 백윤서와 전연우의 집이다.때문에 이곳에 머무르는 건 그녀에게 불편함만 안겨줄 뿐이다.장소월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백윤서의 것이었다.언제 그녀에게 옷을 갈아입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녀의 지갑과 핸드폰도 모두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나 좀 쉬면 돼. 나한테 신경 쓸 필요 없어.”전연우가
예전 그녀는 꽤나 오만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바늘이라도 무뎌지는 날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그녀가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은 전생에서 그녀가 백윤서에게 줬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때문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 모두 참아내려 하는 것이다.이게 바로 자업자득이라는 거다.장소월은 굳은 표정으로 창문을 닫았다. 그녀는 앞으로 눈을 보지도,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장소월은 작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저녁 12시 정각, 장소월이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강영수가 보낸 것이었다.「생일 축하해, 공주님.」오늘의 첫 문자였다. 장소월은 깜짝 놀랐다. 강영수가 어떻게 그녀의 생일이 오늘이라는 걸 알고 있단 말인가? 그녀의 생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의 전연우도 알지 못한다. 주민등록증에 쓰인 생일은 틀린 것이다. 그녀의 진짜 생일은 12월 26일, 바로 오늘이다.순간 장소월의 마음을 가득 덮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고 따뜻한 햇볕이 비추어 들어갔다.장소월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내 생일인 걸 어떻게 알았어?」강영수:「비밀이야. 어떤 선물 갖고 싶어?」「엄청나게 큰 핑크색 한정판 곰 인형을 갖고 싶어.」장소월은 이 문자는 보내지 못했다.전연우의 경고 때문이었다...“다시 강씨 집안 사람을 가까이한다면 그 후과는 온전히 네가 감당해야 할 거야.”장소월은 이내 썼던 문자를 지워버렸다.이제 거실에선 더이상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다들 잠든 모양이다.장소월은 정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부탁했다.그녀의 옷은 아마 오 아주머니가 세탁하러 가져갔을 것이다.장소월은 전연우의 옷장에서 곱게 접은 담요를 꺼냈다. 그녀는 오 아주머니의 정리 습관을 알고 있다. 하여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사실 전생에서 오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거의 모든 것들을 가르쳤다. 어떻게 ‘아내’역할을 하는지까지 포함해
“도련님, 조금 전 나간 사람 소월 아가씨예요?”장소월은 문을 닫는 순간 오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지금은 인적이 드문 시간이라 엘리베이터는 짧은 시간 안에 그녀를 아래로 내려다 주었다. 그녀는 오 아주머니가 쫓아와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할까 봐 두려웠다.장소월은 마음이 약해 아주머니가 애원한다면 차마 거절하지 못해 전연우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오늘 저녁, 전연우는 그녀에게 본심을 드러낸 거나 마찬가지였다.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장씨 집안의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다.이제 와 생각해보니 장소월은 전연우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했다.그는 마치 블랙홀과도 같이 자신과 가까워지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킨 뒤 망가뜨리려 한다.하지만 그녀는 토사화처럼 그를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건물 앞, 장소월은 거친 바람 속에서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집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남원 별장에서 출발해 올 것이니 아마 30분,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십여 분 정도 걸릴 것이다.목은 추위에 시뻘겋게 얼어붙었고 팔목에선 찢어질 듯한 고통이 피어올랐다. 장소월은 잠옷을 거두고 간단히 붕대를 감아 응급처치를 한 상처를 바라보았다.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하니 아마 학원에 가지 못할 것이다.전연우가 그녀에게 행한 모든 일에 대해 그녀는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했던 부드럽고 따뜻했던 행동은 모두 거짓이다.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 전연우는 적어도 그녀를 걱정하는 척은 했었다.하지만 이제 그것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눈은 여전히 펑펑 쏟아졌다. 호수와 푸른 나뭇잎에 한 층의 눈송이가 뒤덮였다.등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장소월이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전연우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전연우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여기까지 내려왔단 말인가?전연우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호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낸 뒤 차 문을 열었다.전연우가 찬 타가 그
차가 시동을 걸고 전연우의 집에서 멀어졌다.장소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줄곧 고개를 돌리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고의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연우는 창문을 절반 정도 열어놓았다. 차가운 바람에 그녀는 온몸이 꽁꽁 얼 것 같았으나 불만을 말하지 못하고 억지로 추위를 견뎠다.장소월은 이렇듯 고집에 세다. 전연우가 자신과 결혼을 한 건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절대 자신의 결정을 되돌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집과 반대 방향인 걸 번연히 알면서도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하여 걸어간다.전연우 또한 추운 건 마찬가지였다. 코트 절반이 눈을 맞아 푹 젖어버렸으니 말이다.20분이 지나도 그들 사이엔 아무런 대화도 없었고 장소월은 너무 추워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드디어 남원 별장 입구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차에서 내린 뒤 채 닫히지 않은 거실 커튼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한 줄기의 빛을 발견했다.순간 그녀는 커튼을 잡고 있는 하얀 손과 뒤엉켜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을 보기도 했다.안으로 들어가니 거실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움직임이 느껴졌다.장소월은 즉시 몸을 돌리고 눈을 맞지 않는 곳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곳은 조용해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눈 밟는 소리와 함께 전연우가 가까이 다가왔다.“이곳에서 밤새 쭈그리고 있을 생각이야?”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못마땅한 듯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전연우는 얼마 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녀를 보았었고, 지금은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가엾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때로는 장소월에게 한없이 잘해주면서, 아닐 땐 너무나도 냉담하다...전연우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항상 상처를 입었다.“여긴 제 집이에요. 저 이제 갈 곳이 없어요... 오빠, 나한테 상처 주지 않고 가엾게 여겨주면 안 돼요? 이럴 거면 처음부터 나타나지 말지 그랬어요.”“도와줘서 감사해요. 이제 난 상관하지 말고 돌아가요.”그녀가 전생에서 백윤
“아가씨가 오시니까 잠이 다 깼어요. 우리 노가리나 깔까요?”장소월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노가리... 노가리가 무슨 뜻이죠?”은경애가 허벅지를 탁 치며 말했다.“어머, 그걸 모르는 거예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노가리를 깐다는 건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에요.”장소월이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은경애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까 제가 집을 나설 때에도 소리를 들었어요. 제가 보기에 어르신이 곧 아가씨의 동생을 만들어줄 것 같아요.”은경애는 어느 쪽 사투리를 쓰는지 알 수 없으나 꽤 재밌었다.그녀의 말투는 너무나도 호탕했다.장해진은 적지 않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지만 외부에 아이를 남겨놓는 법이 없었다. 설사 생겼다고 해도 깔끔하게 처리했다.언젠가 서른 살 남짓한 여자가 아이를 안고 찾아와 난리를 피웠지만, 그 후 장소월은 단 한 번도 그녀와 아이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그런 일 또한 한 번밖에 없었다.책상 위에 희미한 등불이 놓여있었고 방 안엔 목탄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은경애의 코 고는 소리와 손목의 통증 때문에 장소월은 전혀 잠들지 못했다.좁은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깨어났을 때 햇빛이 창문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장소월은 은경애를 깨우지 않으려 조용히 일어나 담요를 몸에 덮은 뒤 조심스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밤새 눈이 내린 터라 밖엔 눈이 꽤나 두껍게 쌓여있었다.어젯밤 젖었던 슬리퍼도 이제 완전히 말라 발에 신어보니 보송보송 산뜻한 느낌이었다.사람들에게 자신이 어젯밤 이곳에서 잤다는 걸 숨기기 위해 그녀는 뒷문으로 에돌아 들어갔다.마당에선 도우미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그녀를 본 도우미들이 소리쳤다.“아가씨.”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관으로 들어갔다. 순간 악취가 코를 찔렀고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상처를 피해 샤워를 하고는 목에 난 흔적을 몇 번이고 연속 닦아냈다. 당시 그녀는 남자 두 명에게 모욕
그녀는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또한 반드시 자신의 실력으로 서울 대학교에 입학해야 한다.연성에 가지 못한다고 해도,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장소월은 더는 전생처럼 남자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장소월이 병원에 간다고 하자 정 집사는 그녀를 강남 병원에 데려다주었다.“아가씨, 도착했어요.”“네.”장소월은 차에서 내린 뒤 응급실로 들어갔다.간호사가 손에 감았던 붕대를 풀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불편한 곳 있으세요? 다시 상처를 봉합한다면 감염될 수도 있어요.”장소월이 대답했다.“상처가 좀 간지러워 혹시 다른 원인이 있나 해서 왔어요. 감염된 건 아닐까요?”“그럴 수도 있어요. 붕대가 상처에 붙어버렸어요. 조금만 참으세요.”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장소월 씨? 여긴 무슨 일이에요? 어디 다쳤어요?”시선을 돌려보니 서철용이 두 손을 하얀색 가운 호주머니에 넣고 거들먹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불편했다.전연우와 어울려 다니는 그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다.서철용은 손을 호주머니에서 꺼낸 뒤 간호사의 손에서 가위를 건네받고는 여자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나한테 맡기고 가봐요.”간호사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보며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응급실을 떠났다.서철용은 장소월의 하얗고 가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기름진 눈빛으로 말했다.“소월 씨, 왜 이제야 병원에 온 거예요? 상처에 염증이 생겼잖아요. 오빠가 알았다면 엄청 마음 아파했을 거예요.”장소월은 전생에서도 서철용에게 조금의 호감도 갖지 않았다. 여자만 보면 스킨십을 해대고 군침을 흘리는 그 버릇은 이번 생에도 여전하다.그가 엄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을 문질렀다. 마치 발정 난 짐승처럼 말이다.장소월은 자신의 손을 빼내려 했으나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작업을 마치자 서철용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이렇게 예쁜 손에 앞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