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이 눈을 깜박이며 그들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수백억이 그렇게 입에 올리기 쉬운 금액이었습니까?”“우리한텐 어렵지, 그 쪽한텐 쉽죠.”“죄송합니다만 제 돈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서요. 본인들 여신님 돕고 싶은 건 이해합니다만...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고 계신 걸 보니 결혼하셨을 거라 예상됩니다. 공익사업을 하고 싶으면 정식 루트를 선택하고 아내분과의 공동재산 탕진하지 마세요. 어디 가서 멍청하게 이용당하지도 말고요.”“뭐...”그 사람은 말문이 막혀 얼굴이 벌게졌다.임시연도 흐려진 안색으로 마이크를 움켜쥐고 심지안을 바라보았다았다.“그 말은 제가 지금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건가요?”“그럴 리가.”“그럼 무슨 뜻인데?”“내 말은...”심지안이 말끝을 흐리더니 호쾌한 표정으로 가까운 곳의 단상을 가리키며 살며시 웃었다.“장소 대여비 내고 가라고.”이 부지는 성씨가문이 사들인 땅이었기에 사용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이에 임시연이 급히 얼굴에서 난감한 기색을 지우고 고귀한 듯 우아한 자태를 유지했다.“활동이 끝나면 바로 결제할게.”심지안이 입꼬리를 올려 말았다.“아, 그리고 점심엔 중단해야 해. 직원들 휴식하니까.”“...”말을 마치고 멀어져 가는 심지안을 바라보며보며 임시연은 괘씸한 마음에 자기 손바닥을 힘껏 꼬집었다.그래. 두고 봐. 며칠만 지나면 넌 설설 기게 될거니까...“안녕하세요. 혹시 심지안 씨 맞는가요?”한 대학생 차림의 여자아이가 다가와 물었다.여자아이의 얼굴을 본 심지안은 처음 보는 사람임을 알았다.“누구신지?”“아, 전 고청민 후배예요. 인터넷에서 이상한 소문들 때문에 한 번 보러 왔어요.”심지안을 응시하는 도윤지의 눈에 적의가 숨겨져 있었다.“청민 씨는... 집에 있어요. 연락 안 해보셨어요?”“전화가 안 통해서요. 혹시 무슨 일 생긴 건가요?”도윤지가 관심 있는 듯 물었다.심지안이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아니요. 지금 집에 있고 당분간은 밖에 나다니기 어려워요.”“아, 알겠어요
“지안 씨 만났다고?”고청민은 냉랭한 목소리로 바로 물었고, 그의 지나친 냉담함은 도윤지를 당황케 만들었다.고청민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온화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을 절대 아랫사람으로 보지 않았다.하지만 도윤지는 곧 깨달았다. 무조건 성씨가문이 청민선배를 괴롭히는 바람에 선배가 일자리를 잃고 돌변한 것이다.“만났어요. 스승님 진료를 예약하고 싶다던데 그게 어디 쉽나요.”도윤지는 스승님 곁에 오래 있었다고 자신이 스승이기라도 한 듯 뿌듯하게 말했다.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청민 선배님?”“스승님은 이번 달에 예약 자리 있고?”“없어요. 선배님이 보고 싶다면 제가 바로 말해드릴게요. 스승님도 만나보려 할 거예요.”“아직은 필요 없어.”고청민의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도 읽어낼 수 없다.“나중에 심지안이 또 연구소에 가면 나한테 말 좀 해줘.”“네. 그러죠.”도윤지는 봄날의 소녀애처럼 맑은 목소리로 얼른 대답했다. 그리곤 무언가 떠오른듯 걱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선배님, 정말 성씨 가문과 사이가 틀어졌어요?”“해결할 수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네. 전 선배님 믿어요. 빨리 기운 내요!”고청민의 치켜올린 입꼬리에 조소가 조금 묻어있다.“그래.”통화를 마친 도윤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청민에게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성씨 가문은 청민 선배님을 괴롭히고 있는 게 분명했다.안 되겠다. 자신은 꼭 선배를 위해서라도 심지안 그 쓰레기에게 복수해 주어야 한다.도윤지는 고민 끝에 새 전화번호를 사서 암표상의 신분으로 심지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안녕하십니까. 엄교진 원장님의 예약 표를 판매 중이니 원한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한편 귀족학교 교문 앞.가방을 메고 나온 성우주는 한눈에 심지안을 발견했다.그가 두 눈을 반짝이며 엄마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엄마!”“우리 우주!”심지안은 조금 전까지의 불쾌하던 마음이 아이를 본 순간 기적같이 가라앉음을 느꼈다.“아빠는 요즘 어때?”방매향의 장례식 이후
심지안이 음식을 들고 침실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문을 몇 번 두드리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저예요. 밥 먹게 문 열어봐요.”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것이 마치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심지안은 성연신이 들은 것을 눈치채고 참을성 있게 몇 번을 계속 두드렸다.“안 먹으면 원이랑 오레오한테 줄 거예요.”“벌컥.”문이 열리더니 성연신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깊게 바라보았다. 움푹 패어 보이는 눈두덩이 때문에 눈빛이 더욱 초췌해 보였고 턱은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수염이 짧게 자랐으며 얼굴은 창백했다.그래도 끔찍하리만치 잘생긴 이목구비는 가리지 못했다.심지안은 문득 그의 모습이 웃겼다. 지금 그는 잘생긴 방랑자 같았기 때문이다.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푸하하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우중충한 분위기의 복도에 울려 퍼지면서 약간의 활력을 더했다.성연신은 그녀가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들고 있는 음식을 바라보니 문득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우렁차게 났다.그는 거칠게 음식을 받더니 원망하듯 말했다.“이렇게 늦게 보러 오다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우리가 이혼한 사이란 거 잘 알아둬요. 지금 연신 씨 보러 온 것도 우주 얼굴 봐서 온 거거든요. 정말 마음씨도 착하고 자비도 베풀 줄 아는 전 아내죠?”성연신은 콧방귀를 뀌더니 얼른 밥을 먹는데 몰두했다.“아... 지금이 더 방랑자 같아요.”10분 뒤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은 성연선이 당당하게 말했다.“아직 배가 부르지 않으니 더 해줘요.”심지안은 어이가 없어 그를 응시했다.“가정부나 시켜요. 제가 당신 보모도 아니고.”성연신이 잠시 생각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당신이 해준 밥밖에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는데 어떡해요.”그도 당연히 심지안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위를 속일 순 없었다.밥이라곤 입에 대지도 못하던 그가 심지안이 만들어준 음식은 마치 마력이 있는 것처럼 술술 넘어갔다.비록 산해진미는 아니었지만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이분이 당신이 전에 말한 환자예요?”성연신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치료할 수 있는지 봐주세요.”그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심지안을 훑어보았다.“글쎄요. 일단 앉아서 상황을 좀 보죠.”그가 한쪽의 치료용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누워보세요. 최면을 깊이 걸어야 해요.”성연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심지안을 위안했다.“제가 옆에 있으니까 긴장하지 말고요.”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안 무서워요.”이런 작은 일보다 그녀는 자신이 빨리 건강을 되찾길 바랐다.이번 의사는 지난번 병원에서 진찰을 본 의사보다 조금 더 빨랐다. 그의 지령에 따라 심지안의 신경은 차츰 풀렸고 온몸이 이완되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지난번과 다른 점은 심지안의 이번 꿈은 공포스러웠으며 마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이었다.하늘은 뿌옇고 유난히 어두웠다.그녀는 쉬지 않고 뛰어다녔고 강아지를 품에 꼭 껴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서 숨었습니다.잠시도 쉬지 못하다가 앞의 한 줄기 빛을 보고 나서야 심지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강아지를 다독였다.“괜찮아. 무서워 하지 마. 곧 안전해질 거야.”온몸이 하얀 털로 덮인 강아지의 새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문득 심지안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버젓이 강아지가 마귀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귀는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아악!”심지안이 비명을 지르며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났다.성연신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겁 내지 마요. 다 가짜예요. 제가 있는 한 당신을 건드릴 사람은 없어요.”숨을 크게 몰아쉬던 심지안은 5분쯤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조금 나아졌다.“제가 무슨 꿈을 꾼 건지 아세요?”“네.”그녀가 의사가 건네주는 레몬물을 받았다.“이게 뭘 의미하는 거죠?”의사와 성연신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지안씨가 믿고 있던 강아지가 실은 마귀의 화신이며, 지안 씨 믿음을 저버리고 결국 물었다는 걸 의미하죠.”심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 경험 자체를 모두 잊게 된다면 반드시 고통스러울 것이다.고청민 쪽에서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는 데다 최면술 자체가 해만 되고 유익한 점이 없으니 없앨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없애야 했다.인간의 신체적 능력에는 항상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그의 어머니처럼...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온전한 데가 없습니다.“최면술을 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지금은 좀 어렵잖아요.”의사가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연신 씨 신통력이 대단하니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절 난처하게만 하지 않으면 돼요.”강제적으로 최면을 푸는 것, 그는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만일 뜻밖의 변고라도 생기면, 심지안을 잃으면 본인도 죽을 수 있었다.이때 심지안이 약을 가지고 돌아오자, 성연신은 의사를 슬쩍 흘겨보았다. 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약은 제때 먹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다음 번 재검사는 언제 하나요?”“음... 당분간은 약만 먹고 2주 후에 재검사받으러 오세요.”의사는 압박감에 어정쩡하게 대꾸했다.“제 병이 많이 심각한가요?”심지안의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 아득함이 느껴졌다.“그리고 제 병은 의학용어로 뭐라 부르나요?”의사는 계속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병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면에 걸렸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건 좀 별로겠지? 잊은 것을 기억하려 할 수록 두통이 강해질 테고 악순환이 될 테니까.“글쎄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전국적으로 사례가 비교적 적어서.”손바닥만 한 심지안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성연신은 매서운 눈초리로 의사를 힐끗 쳐다보았고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의사는 그저 억울했다. 최면술은 원래 드문 데다 이렇게 성공한 최면술을 보기는 더더욱 어려웠기에 틀린 말도 아니었다."사례가 적다고 치료가 어려운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사납던 성연신의 훤칠한 얼굴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그는
병원에서 나온 심지안은 세움 그룹 직원에게서 얼른 처리할 일이 있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고청민이 사임한 뒤로 대부분의 무거운 책임이 심지안을 짓누르고 있었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바빠졌다.성연신은 성우주를 데려오러 학교로 향했다.카시트에 앉은 우주는 휴대폰으로 열심히 서류를 확인하는 아빠를 바라보며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아빠, 상의할 게 있어요.”성연신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말해.”“엄마한테 밥 좀 시키지 않으면 안 돼요? 여자한테는 명령하는 게 아니라 아껴줘야 해요.”화면 스크롤을 올리던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난 네 엄마가 해주는 밥이 좋은걸.”“가끔 한 끼 정도는 이해해요. 우리 집에 셰프가 부족한 것 도 아니고 매일 하는 건 얼마나 힘들겠어요.”“매일 시킨 적도 없잖아.”“어쨌든 생각해 보라고요.”점심에 그렇게 평생 밥을 못 먹어본 사람처럼 주접스럽게 먹더니. 그마저 그 모습에 놀란 참이었다.다 머고 나니 접시들은 조금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은 건지 깨끗했다.저한테도 남겨주지 않았다.이기적인 아빠 같으니라고.성연신이 어쩔수 없다는 듯 말했다.“나도 그건 싫지만 네 엄마가 하는 밥이라면 항상 평소보다 더 먹고 싶어져.”3일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음에도 그는 배고픈 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지안이 음식을 차려 대령하면 마치 굶어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흡입하게 되었다.전아내 앞에서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다.우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버지 말씀도 틀린 것이 없었다.엄마가 만든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맛있다.“그럼 이렇게 해요. 가끔 몇 끼 하는 건 괜찮은데 엄마가 요리할 때 아빠가 옆에서 좀 도와줘요.”우주는 마치 애어른인 양 진지하게 훈계했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요리는 요리사가 해야 할 일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요리하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지만,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아직 다시
“세움 그룹의 반은 원래 제 것이었어요.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았는데 안될 이유라도 있나요?”담담한 목소리에 원망이 담겨있다.어쨌든 그는 이방인일 뿐이고,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심지안이다. 옳든 그르든 그 마음은 무조건 편향되어 있다.“우선 마음 가라앉히고 이야기 잘 나눠봐요. 회장님은 당신에게 그렇게 모질게 굴지 않을 거예요. 그저 교훈을 주고 싶은 것일 뿐 정말 회사에서 쫓아낼 생각은 아닐 거예요.”“정말 쫓아내는 게 아니라면 왜 외부 언론에 알렸겠어요?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일종의... 변칙적인 보호일까요?”늙은 비서가 떠보듯 말했다. 사실 지금은 아무도 성동철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심지안까지 포함해서.“필요 없어요. 지금 날 이렇게 대한 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실망했어요.”진심으로 진심을 바꿀 수 없다면, 그럼 차라리 됐다.자기만을 위해 살 것이다.가족에 대한 사랑은 2순위에 두고.이기적으로 살면 많이 생각할 필요도 고통 받을 필요도 없다.고청민이 야윈 손목에서 팔찌를 빼내 갖고 놀았다. 눈빛은 사람 한 명이라도 죽일 것처럼 매서웠다.늙은 비서는 불시에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얼른 물러났다.그녀는 일개 직원일 뿐이다. 성씨 가문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그녀와는 상관도 없었고 그녀가 상관할 바도 아니었다.사실 회장님께 주의를 주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히 그럴 순 없었다... 과도한 개입은 좋은 일이 아니니까.가끔은 모른 척 차갑게 대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밤늦게까지 일에 몰두하던 심지안이 지점장과 화상회의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바깥 하늘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심지안은 의자에 누워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지친 눈을 비비며 책상 옆에 놓인 휴대폰을 가져와 메시지를 확인했다.그중 낯선 번호가 심지안의 관심을 끌었고, 그녀는 중얼중얼 따라 읽었다.“엄교진 원장님의 예약 표를 판매 중...”이전에 암표상이 대신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
심지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맹수같이 매섭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이때 진유진이 깨어났다....심지안이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회식이 끝나고 마주쳤는데 날 못 가게 막고 이상한 음료까지 마시게 했어. 그 이후론 기억이 없어.”“쯧쯧, 조신한 척은. 우리랑 잘만 놀았잖아?”김슬비가 팔짱을 끼며 악의 가득한 얼굴로 비아냥거렸다.심지안이 진유진을 품에 안고 그들을 차갑게 훑어보았다.“임시연이 시킨 거야?”“그래. 꽤 총명하네.”이제 뒷배가 없어진 김슬비는 무어라 반박하지도 않았다.“드디어 미친 거야?”전에 연회에서 임시연과 한바탕 싸우더니, 갑자기 또다시 붙었다.김슬비가 눈을 부라렸다.“네가 뭘 알아?”임시연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이미 패가망신한 데다 수많은 브랜드가 이미 계약을 해지해 버렸고 배상금은 영원히 갚을 수도 없을 만큼 터무니없이 많은데.임시연이 왕후가 되고 자신을 위해 좋은 말 몇 마디만 하면 여론이 뒤바뀌어 다시 예전의 스타가 될 수 있다.이런 저급한 인플루언서들과 어울리며 망신당하는 것이 아니라.하여 그녀는 술집에서 진유진을 보고 바로 임시연에게 연락했다.“내가 알든 말든 큰 의미 없어. 네가 곧 끝장날 거란 것만 알면 돼.”심지안이 유진을 잘 앉혀놓은 뒤, 테이블에 놓여있던 술병을 들고 김슬비를 향해 다가갔다.김슬비는 조금 두려웠지만, 심지안이 자신을 해칠만한 대담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빳빳이 들며 말했다.“뭐 하려고, 설마 그걸로 날 치려는 건--”“퍽.”육중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못다 한 말이 끊기면서 술병은 김슬비의 정수리에 부딪혔다.순간 침묵이 흘렀고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김슬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눈을 부릅떴다.“감히 날 때려?”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사납고 무서운 짓을 할 수가 있지?“내 친구를 건드릴 거였으면 이 정도 후과는 생각했어야지.”심지안의 붉은 입술이 호를 그리며 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