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성연신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도 자신이 왜 침대에 누워있는지 몰랐고 입을 열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심지안이 먼저 말했다.“저는 아니에요. 왜 당신이 내 침대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둘 다 옷을 입고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요!”성연신은 그녀가 다급히 해명하려는 모습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하, 이제야 조신해지네요.”심지안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난 항상 조신했어요.”“당신이랑 조신이라는 단어는 관련이 없어요.”“그건 당신한테 그렇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레 모든 룰을 깨게 돼요.”그녀는 당당하게 듣기 좋은 말을 했다.아직 끝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낯간지러운 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능숙하다고 생각했다.성연신의 기분이 약간 좋아졌고 느긋하게 풀린 단추를 끼웠다. 그 여유로운 움직임은 매우 금욕적이었다.심지안은 갑자기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보면서 슬리퍼를 신었다.감기가 낫지 않은 탓인지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어두워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성연신이 그녀를 붙잡았다.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그의 허리를 안았고 눈을 감고 몇 분 지나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조롱하는 듯한 성연신의 눈빛을 마주했고 입꼬리가 격렬하게 떨렸다.“당신 지금 내가 일부러 넘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아니에요?”심지안은 심호흡을 한 후 바로 잡으려 애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해하면 오해하라지 뭐. 어차피 그도 밀어내지 않았잖아?'“발견했다면 숨기지 않을게요.”그녀는 성연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성연신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어젯밤에 비에 흠뻑 젖은 것도 당신의 계획이였어요?”“...”'내가그렇게 멍청해 보이나?'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아니에요... 택시가 돌아오는 도중에 고장 나서 걸어왔어요. 길에 가로등이 없어서 넘어지기까지 했어요. 흑흑, 연
심지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옅은 메이크업을 했지만 그래도 안색이 안 좋은 것을 알 수 있었다.성연신은 덤덤하게 말했다.“가요.”심지안은 그가 이렇게 바로 동의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깜짝 놀랐다.아마도 일부러 수건을 떨어뜨려 그를 유혹한 그날부터 자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심지안은 조수석에 올라탔다.휴대폰을 꺼내 내비게이션 앱을 열고 부용을 입력했다.“내비게이션 필요 없어요. 나 길 알아요.”“아... 그래요.”부용은 금용 회사이고 성연신도 금융업계에 종사하니 아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한참 가다가 심지안의 상사가 전화를 걸어왔다.“지안 씨, 내가 전에 말했던 보광 경영진과 자원 입찰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거 생각해 봤어요?”스피커를 켜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 성연신도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그는 그 말을 듣고 옆을 흘끗 쳐다봤다.심지안은 그의 눈빛에 신경 쓰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죄송하지만 저는 그 일을 맡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 자원 입찰은 제 전문이 아니에요.”그녀는 이 일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협상이 잘되면 그녀는 보너스를 받게 되겠지만 만약 협상이 결렬되면 그녀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가 없었다.아무튼 손해가 이익보다 컸다.그녀는 지금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도 않았다.전화 건너편은 한참 조용했다.“그래요. 지안 씨가 원하지 않으면 저도 강요하지 않을게요. 그런데 지안 씨가 입사한 지도 오래됐으니 지안 씨와 비슷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추천해 줘요. 그 사람을 보낼게요.”심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약한 게 안먹히자 이제는 세게 나왔다.전화를 끊었고 심지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표정이 혼란스러워 보였다.“그 사람이 말한 보광 중신의 경영진 이름이 뭐예요?”성연신이 물었다.“나도 몰라요. 오 대표님이라고 부르시던데요.”오 대표...성연신은 코웃음을 쳤다. 보광 중신에서 입찰을 책
성연신은 티슈를 받고 얼굴을 세게 문질렀는데, 문제는 심지안의 립스틱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세게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정욱은 달려가서 리무버를 한 병 사와 문제를 해결했다.그래서 성연신은 고위 경영진 회의를 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안색이 암울했다. 그는 큰 아우라를 지니고 있어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 같았고 모두가 감히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었다.회의가 끝났다.성연신은 오중수를 불러 세웠다.십 분 후.오중수는 회의실에서 걸어 나왔고 성연신이 왜 갑자기 부서를 조정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오후에 심지안의 상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청 화가 나 있었고 동료들은 불똥이 자기한테 튈까 봐 무서워서 일부러 길을 에돌아 다녔다.“왜 저러셔요?”심지안은 물을 마시러 다용도실에 갔다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상사의 비서에게 물었다.비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보광 중신의 오 대표님이 오늘 부서 조정을 당하셨대요.”심지안은 놀랐다.“그럼 저희 입찰 건은 가능성이 없지 않아요?”“그러게 말이에요.”’“혹시 보광 중신 쪽에서 뭔가 눈치를 챈 건 아닐까요?”상사가 그녀더러 오 대표에게 자원 입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미리 인사는 했을 것이고 오 대표도 그들의 뜻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비서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그럴 수 있어요.”심지안은 물컵을 꽉 쥐었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저녁에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진찬우는 그녀를 찾아왔다.“퇴근하고 한잔 할래? 새언니랑 진현수도 데려갈게.”그녀는 생각하더니 말했다.“좋아요. 오늘 할 일이 많지 않아요. 우리 어디 가서 먹어요?”“네가 정해. 우리는 가리는 거 없어.”“그래요!”시간이 빨리 흘렀고 심지안은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열심히 일했다.시계의 시침이 6을 가리키자 그녀는 노트북을 닫고 가방을 챙겨 진찬우와 회사 앞에서 모였다.진찬우는 시간을 확인했다.“진현수도 거의 다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서 제가 까먹었나 봐요.”곽준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내일 회사에 출근하고 서류를 잘 검토한 다음 다시 연락드릴게요.”심지안은 그런 곽준위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불과 지난달에 우리 아버지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요?”어떻게 이렇게 빨리 잊을 수가 있지?곽준위가 그 말을 듣더니 잠깐 머뭇거리고는 대답했다.“요즘 일이 바빠서요.”“혹시 친구 추가해도 될까요?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할게요. 될수록 혼수 전달받을 날짜도 빨리 정하고요.”곽준위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하지만 심지안의 강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연락처를 추가하곤 했다.심지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곽준위의 태도가 찝찝하게 느껴졌다. 뭔가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중정원에서.심지안이 집에 도착하자 원이가 바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가고는 반갑게 맞아주었다.“배고프지? 얼른 밥 줄게.”“멍멍멍!”하지만 원이의 강아지 집 앞에 다가간 심지안은 뜻밖에도 그릇에 먹이가 가득 담긴 걸 발견했다.그녀의 뒤에서 성연신이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지안 씨가 밥 줄 때까지 원이가 기다려야 했다면 아마 굶어 죽었을 거예요.”심지안은 어이가 없었다.“오늘 친구랑 밥 먹느라 조금 늦게 돌아왔어요.”“친구랑 밥 먹었다고요?”그는 못마땅해하며 말했다.“남성 친구랑 밥 먹었겠죠?”손남영이 저녁에 그에게 문자를 했는데 어떤 해산물 가게에서 심지안이 어떤 삼십 대 초반의 남자와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심지안을 집으로 데려다주려는 모양인 듯했다고 한다.손남영은 또 동영상까지 찍어서 보내왔다. 동영상에서는 진현수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진현수는 바로 며칠 전 심지안과 저녁에 영상통화를 한 남자였다.‘어쩐지 저녁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니 다른 남자랑 좋은 시간을 보내러 갔네.’“남자도 있었죠. 여러 명이 같이 모였으니까요.”심지안은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눈
“무슨 약혼식이요?”성연신은 어안이 벙벙했다.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눈만 꿈뻑거렸다.‘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강우석이 아직 말을 안 한 건가? 아니면 날짜가 정해지자마자 심연아가 자랑하기 위해 나한테 문자 보낸 건가?’“아니에요, 친구가 주말에 약혼식을 해서요. 나랑 같이 안 갈 거예요?”심지안이 코를 쓱 만지더니 머쓱하게 웃었다.성연신이 짧게 대답했다.“출장 가야 한다고요.”‘그런 이상한 모임에 갈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래.’“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밖에서 밥도 꼭 챙겨 먹고요. 다른 일 없으면 일찍 쉬세요, 사람은 잘 자야 하니까요. 안녕히 주무세요.”성연신은 자신을 급하게 내쫓는 심지안의 모습이 괜히 못마땅했다.그는 손으로 곧 닫힐 문을 다시 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보광 중신 쪽에 알아봤는데 오중수는 이미 부서를 옮긴 듯해요.”심지안은 눈을 반짝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알고 있어요,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어요. 고마워요.”“지안 씨 일자리는...”“부서를 옮긴 건 나랑 상관이 없죠. 상사분이 저에게 뭐라고 하지 못할 거고요. 혼자 처리해야 하니까 당분간은 저를 찾지 않을 거예요.”성연신은 머뭇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기분이 좋은가 봐요?”“딱히 너무 좋은 건 아니고요, 그냥 안도감이 들어서요. 보광은 제가 꿈에 그리던 회사였어요. 부용 그룹은 저를 먹여 살렸고요. 그래서 어느 쪽에도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지경이 되었네요. 그래도 이 일이 드디어 잠잠해졌네요.”‘꿈에 그리던 회사’라는 말에 성연신은 입술을 씰룩거렸다.“그렇게 보광을 꿈꿔왔으면서 왜 그때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어요?”“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연신 씨를 좋아해도 연신 씨와의 사랑이 결국 이뤄지지 않을 거잖아요. 하지만 매일 연신 씨와 함께 있고 연신 씨를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심지안은 사랑에 빠진 여인을 제대로 연기했다.그녀조차도 탄복할 수밖에 없는, 배우 뺨치는 연기를 펼
성연신이 그녀를 한참 지켜보더니 웃음을 머금고는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바보 아니에요?”심지안은 성연신이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역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해 열심히 설명했다.“보광 중신이 바로 부용구 중심에 있어요. 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바보는 내가 아니라 성연신인데 말이야.’성연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봤다.심지안도 그윽한 그의 눈망울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그 순간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갔는데 심지안은 결국 그걸 캐치해 내지 못했다.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방금의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았다....더운 점심, 심지안은 동료들과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휴대폰을 보곤 했다.오전에 곽준위한테 문자를 보낸 지 다섯 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답장이 없었다.그녀는 곽준위한테 전화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참에 곽준위가 방금 인스타그램에 회사를 홍보하는 피드를 올린 걸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답장을 하지 않았다.심지안은 심호흡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곽 변호사님, 혹시 아직도 서류 못 보셨어요?”“워낙 바빠서요. 온 오전 법원에 있었어요.”“제가 어젯밤에 돌아가서 당시 체결한 계약서를 찾아봤는데 그 위에 마감시간이 수요일로 적혀있더라고요. 오늘이 월요일인데 계약서대로라면 이미 저한테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바빠도 업무를 잊어버리면 안 되죠. 어쨌든 내일 점심에 시간을 내세요, 같이 얘기도 해봐야죠. 변호사님 회사에서 만나죠, 제가 찾아갈게요.”심지안은 곽준위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바로 전화를 끊었다.곽준위는 귀찮은 표정으로 담뱃불을 지피고는 심전웅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신 딸이 찾아왔어요, 얼른 해결해요.”“오후에 바로 연락할게요. 하지만 나를 협조해서 연기해야 해요.”심전웅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미 심지안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둔 듯이 말이다.“연기야 할 수 있죠. 하지만 빈틈이 없다는 걸 보장해야 해요. 돈은
얼마 있지 않아 경비원은 심지안더러 들어가라고 했다.창문 너머로 심지안은 주원재가 직접 심연아를 일으켰고 심연아는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안겼다.그 모습을 본 심지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일부러 시간을 끌어 심연아와 주원재가 연락처까지 주고받은 걸 보고, 또 심연아가 자리를 뜨고서야 심지안은 차에서 내렸다.심지안은 전에도 외국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었기에 미팅은 순조롭게 끝나게 되었다.흥신 그룹에서 나올 때는 이미 퇴근 시간이었다.성연신은 외국으로 출장 갔기 때문에 심지안은 혼자 집에서 국수를 삶아 먹었다.그녀는 국수가 담긴 그릇을 테이블에 놓고는 일부러 사진 한 장을 찍어 성연신에게 보냈다.「연신 씨가 없으니 덩달아 저도 입맛이 없네요. 대충 끼니를 때우죠 뭐.」외국에서 미팅하고 있던 성연신의 휴대폰이 울렸다.발표하고 있던 스태프가 바로 말을 멈추고는 성연신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성연신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노트북의 데이터를 바라보며 마우스를 클릭했다.“계속해요.”“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3, 4분기의 중심은 주로 동남아 지역에...”“윙-”“윙-”“윙-”연달아 세 번 울린 휴대폰 진동 소리에 발표가 중단되었다.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노트북에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심지안에게서 연속 세 통의 문자가 왔다.첫 번째 문자는 그녀와 원이가 산책하는 사진이었다.「연신 씨, 나 원이랑 산책 나왔어요.」두 번째 문자는 원이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사진이었다.「연신 씨, 원이가 정말 보더 콜리가 맞아요? 왜 이렇게 안 똑똑해 보이죠...」세 번째 문자는 원이와 심지안이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원이랑 산책 끝나고 집에 돌아가 자려고요. 오늘 일이 바빠서 쉬지도 못했거든요. 그래도 연신 씨 생각은 했어요. 연신 씨도 내 생각 꼭 해요, 잘 자요.」사진 속의 심지안은 하얀색 슬립 잠옷을 입은 채 털북숭이 원이를 안고는 브이 포즈를 하고 있었다.심지안은 생얼이었는데도 피부가 투명했고 두 눈은 반짝반짝 빛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어머, 젊고 돈이 많은 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니. 보광 중신의 여직원들은 좋겠다. 대표님을 자주 볼 수 있으니까. 심지어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도 있잖아...”“여직원들이 오히려 너를 부러워해야지. 네 작은아버지가 보광 중신의 매니저잖아. 나중에 너를 대표님 곁에 꽂아주실지 어떻게 알아. 넌 예쁘게 생겼으니까 조금만 노력해도 대표님이 바로 넘어오실 거야. 앗, 미안. 네 작은아버지가 심지안 때문에 잘렸다는 걸 까먹었네.”“이러고 보니 너야말로 안타깝게 되었네. 좋은 인연을 놓쳤으니 말이야...”연설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년이 뭐가 좋은지 몰라, 자꾸 그년을 감싸는 사람이 있잖아.”“뿐만 아니라 그년을 좋아하는 사람도 엄청 많잖아. 심지안이 대학교 다닐 때의 반장 주호영도 며칠 전에 걔한테 고백했어.”연설아는 분노가 끓어올랐고 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사랑이 고픈 자신에게 관심을 베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오히려 심지안 그 여우 년한테 맨날 남자가 들러붙었으니 말이다.연설아가 씩씩거리며 화내고 있을 때, 심연아가 느긋하게 말했다.“심지안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에게 버림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아마 평생 금관성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될 거야.”“무슨 방법 말하는 거야? 리스크가 있다면 우선 나는 좀 빼줘.”연설아는 손해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바로 승낙하진 않았다.“리스크 아예 없어. 너 혹시 나 대신에 주호영에게 연락해 줄 수 있어? 걔가 대학교 다닐 때 심지안만 따라다녔거든, 그래서 나랑 심지안 사이가 안 좋은 걸 알아. 네가 나 대신 주호영을 불러오면 내가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다음 날 아침 9시.곽준위는 심지안에게 점심에 만나자며 연락했다.심지안은 그가 보내온 주소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변호사님, 회사에서 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왜 주소는 바닷가죠?”“이쪽에 클라이언트가 있어서 점심 전에 못 돌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