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니, 그 원인은 장졸들이 조정에서 내린 미미한 양식과 삯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한 탓이었다. 이에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주국공부가 화를 입었으며, 수많은 백성들이 성을 빠져나왔다.이곳 선성은 남제의 중요한 길목으로, 양식을 운반하고 군대를 이동시키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요충지였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땅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조정과 민간은 큰 충격에 빠졌다.봄날의 찬란한 햇살 아래, 본디 맑고 청명해야 할 하늘은 선성 위로 겹겹이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성문 밖, 오백은 마차를 몰고 가던 중 고삐를 잡아 세웠다. 이윽고 그는 마차 안으로 들리도록 청하며 말했다.“소장군, 선성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길을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마차 안, 봉구안은 그간의 눈병이 이미 나았으나, 며칠 동안 강한 빛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길을 돌아 동쪽으로 가자구나.”세작의 고변에 따르면, 천룡회의 잔당 일부가 방성에 숨어 있다고 하였다. 그녀의 원래 계획은 곧바로 남하하여 방성으로 쳐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러한 전술은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다.천룡회의 잔당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방성의 무리를 제거하더라도 여전히 다른 곳에 남아 있는 세력이 있었다. 특히 교주가 은신한 곳은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으니, 그녀의 이러한 전략은 효과가 크지 않을 터였다.이에 그녀는 우선 무림맹을 찾아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천룡회 같은 집단을 소멸시키려면 무림의 동도들과 함께 논의하여 정파의 힘을 모아야만 완전한 소탕이 가능하리라 판단한 것이다.“비키시오!”밖에서 오백의 격렬한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마차가 갑자기 멈춰섰다. 봉구안이 마차 커튼을 들어올리니 방금 전 마차가 어린 소녀와 부딪힐 뻔한 상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이 급작스러운 일에 오백의 가면마저 거의 떨어질 뻔하였다. 그는 불쾌한 기색으로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림성을 벗어나 동남으로 향하면 동신성에 이르게 된다.무림맹의 본거지는 바로 동신성 내의 심가오에 자리 잡고 있었다.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시골 마을일 뿐이었으나, 그 안에는 강호의 고수들이 즐비하여 그 위세를 가늠하기 어려웠다.마을 어귀에는 큰 돌이 하나 서 있었고, 그 위엔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가면을 쓴 두 남자와 어린 소녀가 함께 등장하자 마을 입구의 수비병들은 즉시 길을 막아섰다.그중 한 수비병이 세 사람을 주시하며 물었다.“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정체를 밝혀라!”오백은 이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분명 암호를 요구하는 거겠지.’그러자마자 그는 주군을 바라보았다.봉구안은 한 발 물러서더니, 강호의 예를 다하여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이어 중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는 길은 황천길, 돌아가는 길도 황천길! 의로 맺은 형제는 영욕을 함께하고, 강호를 손잡고 전설을 쓴다! 뵙소서! 부맹주 만세!”“풉…”오백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암호가 이렇게 촌스럽다니! 도대체 주군 같은 분이 어떻게 이런 걸 받아들이신 거야?’그의 시선이 닿은 봉구안의 표정에는 미세한 굳음이 엿보였다.‘젠장…! 이래서 내가 무림맹을 오는 것을 싫어한단 말이지.’봉구안이 암호를 마치자, 옆의 소녀 ‘소소’ 역시 흉내를 내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뵙소서! 부맹주 만세!”수비병들은 이를 듣고, 즉시 길을 내주었다.…마을 내부는 겉보기엔 여느 평범한 시골과 다를 바 없었다.무림맹의 위세를 상상했던 오백은, 막상 이러한 모습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이게 정말 강호 최강의 본거지란 말인가? 산속 깊숙한 대저택에, 위엄 있는 무자들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봉구안은 앞장서며 한 농가의 문을 두드렸다.문을 연 이는 덩치 큰 사내로, 그를 보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형제여! 너의 서신을 받고부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어서 들어와!”오백은 나중에서야 알게
한 사내가 있었다. 거칠게 만든 청색 옷과 짧은 저고리를 입고, 온몸에 흙이 묻은 채였다. 한 손으로는 닭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과실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엔 풍작의 기쁨이 가득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막 씨를 뿌렸는데, 마침 날씨가 도와주는군.”그 사내는 동방세라 불리며, 준수한 외모와는 달리 검게 그을린 얼굴은 마치 학자 같아 보였으나, 별다른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오백은 막 일어나 예의로 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살기를 느끼고 멈칫했다.그 순간, 무리 속에서 소환을 발견한 동방세의 눈빛이 번뜩이며 날카로워지더니, 손에 들고 있던 닭을 냅다 내던졌다.그 닭은 마치 주인을 알아보듯 날개를 퍼덕이며 봉구안을 향해 날아들었다.“꼬꼬꼬!”동시에 동방세는 바구니 속 과실을 집어 들고는 마치 암기처럼 봉구안을 향해 내던졌다.오백은 그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을 뿐, 피할 생각조차 못했다.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이들은 이미 방비를 갖춘 듯 모두 재빠르게 피했고, 심지어 소소조차 날렵하게 탁자 밑으로 숨어들었다.다시 보니, 소장군은 어느새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이를 방패처럼 사용하여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우산을 거둔 후에도 추호의 흠집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런 와중에 과실에 머리를 맞고 닭의 배설물까지 뒤집어쓴 오백은 속으로 탄식했다.‘결국 당하는 건 나뿐인가?’동방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이쿠, 실수했네. 다들 무사한가?”봉구안은 평온한 모습으로 우산을 옆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무사하다.”그녀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언제나 식사에 목숨을 거는 동방세가 그들을 먼저 먹게 둘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는 분명 그녀의 경계를 풀게 한 후 기습을 가하려는 계략이었다.동방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에게도 권했다.“모두 앉아들 먹게. 소환이 무려 4년 10개월 12일 5시간 만에 돌아왔으니, 참으로 귀한 자리 아닌가.”
“주국공의 딸이라면, 곧 소군주, 지금 황제의 사촌 여동생이란 말인가?!”범진이 크게 놀라 외쳤다.강호의 사람들은 대개 조정, 특히 황실과 얽히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법.소군주가 이곳에서 사고라도 나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다른 이들 또한 궁금해하며 물었다.“부맹주, 그 아이가 스스로 인정하였소?”“단지 내 추측일 뿐이오.” 봉구안이 솔직히 대답했다.“그럼 어찌 알아내셨소?”이때 동방세가 나섰다.“그 아이의 옷차림은 소박하나, 신발은 바꾸는 것을 잊었소.”“황금 실로 짠 비단과 은은히 빛나는 자수… 이는 황실에서만 쓰는 특수한 신발이라오.”“아이의 발은 금세 자라기에, 이렇게 호화롭게 장만해 줄 이는 주국공밖에 없을 것이오.”그가 말을 마치고 봉구안을 바라보며,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사실 그녀는 처음 소군주를 보았을 때부터 소녀의 눈썹과 눈매가 소욱과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범진이 자청하여 말했다.“제가 저 아이를 데려다 주겠소! 내 발은 빠르고 힘도 좋아, 충분히 아이를 업고도 뛸 수 있소.”동방세는 이를 막지 않았다.“그럼 그렇게 하겠소. 그럼 이제 적을 물리칠 방도를 의논하도록 하지.”“그나저나, 구호 몇 마디를 정해 사기를 북돋는 것이 어떻겠소?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소. ‘마귀를 베고 용을 수호하라, 무림맹의 영광이다. 바람이 일고 구름이 몰아치니, 오직 우리 무림맹이 주인이다…’”그녀는 옆에 있던 걸레를 집어 동방세의 입을 향해 던졌다.이마에 몇 가닥의 검은 선이 내려앉은 그녀는 냉랭하게 경고했다.“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소?”입구에 세운 암호 정도가 이미 그녀의 인내심 한계였다.동방세는 살짝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내 구호가 별로였소?”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의 시선을 피하며, 억지로 다른 데를 바라보았다.좋고 나쁨을 떠나, 맹주님은 정말로 눈치가 없구나…그 촌구석에서 접선할 때마다 주고받는 암호… 우리 모두가 얼마나 오래 참아 왔는가…!
동방세는 비록 봉구안이 무림맹을 떠났던 과거를 못내 섭섭히 여겼으나, 그녀가 홀로 적진에 뛰어드는 것을 차마 묵인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한마디 내뱉었다.“변했소. 예전엔 누구보다 자기 목숨을 귀히 여겼었는데... 자네 입으로도 말했지 않소. ‘나만큼 중요한 사람은 없다’고.”봉구안은 팔찌를 단단히 묶으며 담담히 대답했다.“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소.”동방세는 그녀를 막아서며 단호히 말했다.“그러니 모든 일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시오. 자네는 성이 소씨가 아니지 않소.”봉구안은 그의 말을 무심히 흘려듣는 듯 바라보았으나, 동방세는 그녀를 향해 확고히 선언했다.“소환, 자네는 천룡회 일을 조사하는 데 전념하도록 하시오. 선성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봉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네가 어떤 방도로 해결할 셈이오?”동방세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황제로 변장하는 방책은 나도 자네 생각과 같소.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은 아무래도 나보다 적합한 이가 없겠지.”봉구안은 순간 멈칫했다. “자네가 그 일을 하겠다고?”그녀가 뭔가 말하려 했으나, 동방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건 내가 맹주로서 해야 할 일이오. 그러니 더 이상 말리지 마시오. 이런 공훈은 내가 양보할 수 없거든...”농담조로 던진 말이었으나, 그의 태도는 결연했다. 봉구안은 그의 확고한 의지를 깨닫고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방세는 평소 유순해 보였으나 무공 실력과 폭발력만큼은 그녀에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체격상으로도 남자인 동방세가 황제와 더 흡사해 변장에도 유리했다.…보름 뒤, 조정에서 보낸 사자가 무림맹에 도착했다. 동방세는 연회를 준비해 환대했으나, 사자는 연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황제 폐하께서는 귀하들의 제안을 찬성하시어, 황제로 변장해 반군과 담판을 짓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폐하께서는 이 일에 있어 서왕 전하를 주관자로 삼으셨습니다. 전하께서 약 열흘 후 동신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반 시진 후. 서왕과 동방세는 선성 진입 계획을 협의한 뒤, 심가오에 머물기로 하였다. 범진은 그들을 안으로 안내하였다. 그때, 서왕이 뜻밖에 봉구안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부맹주이시군요? 아까는 몰라뵈었습니다.” 봉구안은 담담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때, 활발한 웃음소리를 내며 소소가 달려왔다. 그녀는 익숙한 듯 봉구안의 품에 안겨 부드럽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나 밤이 무서워요. 같이 자요…”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왕 일행을 보고는 놀란 듯 굳어버렸다. 아이답게 숨길 줄 모르는 기쁜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드러났다. ‘서왕 오라버니?’ ‘나를 데리러 온 걸까?’ 소군주는 기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서왕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소소를 바라보았다. 소군주가 황성에 자주 가지 않아, 지난번 만난 게 3년 전이었음에도 서왕은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게다가 얼마 전 무림맹에서 그녀를 구했다는 보고가 황제에게 들어갔으니, 서왕은 이번 동신성 방문 목적 중 하나가 소군주를 보호하는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서왕은 소군주와 바로 신분을 밝히고자 했지만, 그녀의 눈 속에 드러난 불안감을 보고는 즉시 눈치챘다. ‘어라? 설마 소군주가 이 무림맹 사람들이 아직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성품이 부드러운 서왕은 그녀의 의도를 맞춰주기로 하고, 모르는 척 물었다. “이 아이는 부맹주의 여동생입니까?” 봉구안은 망설임 없이 소소를 서왕 앞으로 밀어내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이 아이는 주국공의 따님입니다. 서왕께서도 아는 아이일 것입니다.” 이 말에, 소군주는 깜짝 놀라며 작은 얼굴이 금세 창백해졌다. “오라버니, 그… 그럼 제가…” 소군주는 자신이 황족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던가. 꿈에서조차 입을 다물고 조심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소 오라버니는 어떻게 알게 된 걸까?! 한편, 서왕은 난처한 듯 헛웃음을 터
봉구안과 소군주는 가마 안에 함께 앉아 있었다.그때 벙어리 호위무사가 무심코 몸을 숙여 차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소군주가 단호히 꾸짖었다.“네가 들어오면, 가마는 누가 모는 거야!”벙어리 호위무사는 몸을 잠시 굳혔다가, 결국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봉구안 역시 약간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소군주, 그럼 저는 바깥에서…”소군주는 그의 팔을 힘껏 붙들고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제 곁에서 저를 지켜야 해요.”봉구안은 자신의 팔을 빼내며 진지하게 말했다.“소군주, 남녀유별이라 하였습니다.”소군주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수상쩍은 미소를 띠고 나직이 속삭였다.“전 알고 있어요.”가마는 덜컹거리며 흔들렸고, 소군주는 금세 졸음이 밀려와 잠들었다.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그녀는 배가 고파 딱딱한 마른 음식을 씹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봉구안은 가마의 커튼을 젖히고 벙어리 호위무사에게 말했다.“잠시 멈추고 쉬게나. 내가 대신 가마를 몰겠소.”하지만 벙어리 호위무사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바람 소리가 너무 커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결국 봉구안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그제야 남자의 눈이 잠시 번쩍였다. 이내 가마를 천천히 멈추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았다.그 시선은 마치 왜 자신을 쳤는지 묻고 있는 듯했다. 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내가 대신하겠소.”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표시했다.하지만 그가 이미 반나절 동안 가마를 몰고 있었으니, 체력이 소진되어 소군주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까 우려한 봉구안은 그를 강제로 마차 안으로 끌어들였다.그 순간 봉구안의 힘이 워낙 강했기에, 벙어리 호위무사는 저항할 겨를도 없이 가마 안으로 주저 앉고 말았다.곧이어 그의 눈빛은 차갑게 변하며 살기가 서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를 보지도 않고 가마를 몰러 나섰다.소군주는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마치 벙어리 호위무사를 깔보는 듯한 태도
벙어리 호위가 방으로 돌아오자, 방 대들보 위에 봉구안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방금 뭐 하고 온 거요?”봉구안은 원래 밤을 지키며 낮에 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미 그녀의 눈에 띄었지만, 그가 문밖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그녀도 따로 쫓아가 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서왕의 신뢰를 받는 자였기에, 그녀로서는 나설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다.벙어리 호위는 아무렇지 않게 손짓으로 잠시 산책을 한 것 뿐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봉구안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시 몸을 뉘였다.남자는 그녀를 한 번 흘낏 보고, 깊은 그림자를 품은 눈빛을 떨구었다.다음 날, 일행 셋은 다시 길을 떠났다. 가마 안에서 소군주는 봉구안에게 물었다.“오라버니, 어젯밤 그 괴짜랑 같이 잤어요?”두 사내가 같은 방에 있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터였다. 하지만 봉구안은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대신 소군주의 목에 커다란 빵을 줄로 꿴 채 걸어주었다.소군주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떼어 입으로 가져가며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봉구안은 이어 또 다른 줄에 꿴 빵을 벙어리 호위에게 내밀며 말했다.“그대도 걸어두시오.”“길을 가며 배가 고프면 바로 먹을 수 있지 않겠소.”벙어리 호위의 눈에 한 줄기 싫증과 멸시가 스쳤다. 목에 빵을 단 채로 말이다. 그의 눈빛은 먹구름 낀 하늘처럼 어두웠다.‘선성에 도착하기 전 반드시 소환 널 죽일 거야…’한참 후, 가마는 외진 주점 앞에 멈춰 섰다. 벙어리 호위는 거칠게 가마 문을 열고 손짓으로 그녀들에게 내릴 것을 알렸다.“여기서 식사를 좀 하시오.”앞으로 도달할 곳은 곧 선성이었다. 봉구안은 소군주를 살짝 깨우려 했으나, 벙어리 호위가 먼저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흔들었다.조용한 술집 안, 셋은 소박하게 소고기 한 대야와 술 한 병을 시켰다. 소군주는 얌전히 앉아 작은 입으로 고기를 먹었다. 벙어리 호위 역시 품위를 지키며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봉구
완부옥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살짝 웃고는 소욱을 바라보며 말하였다.“결정했습니다. 두 분과 함께 입궁해야겠어요.”이어서 소욱에게는 태도를 바꿔 말을 이어갔다.“기왕 황제께서 계시니 직설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저를 비로 봉해 주세요. 크고 화려한 궁전은 필요 없습니다. 저희 낭군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해요.”소욱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비로 봉해달라고?”그녀는 머릿속이 대단히 간단한 모양이었다.소욱은 완부옥을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게 어울리는 것은 다만 유골 단지일 뿐이다.”“폐하!” 완부옥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지만, 그를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결국 그녀는 봉구안의 팔을 끌어안고는 누구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매달리며 애교스럽게 말했다.“낭군, 당신은 아직 제게 빚진 것이 있죠?”소욱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완부옥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였다.그녀는 봉구안에게 상기시키듯 말했다.“잊었나요? 남방에서 당신이 제게 무당을 빌려갔을 때, 저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말이에요. 우리 둘이… 음흠?”그녀는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봉구안의 어깨를 콕콕 찌르며 아리따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봉구안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그때 소욱이 독충의 독에 중독되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완부옥을 찾아 도움을 청해야 했다.바로 그때, 봉구안은 완부옥에게 자신이 여성임을 밝히게 되었다.“그만하거라!” 소욱이 봉구안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냉랭한 표정으로 완부옥을 바라보았다.이 여자는 도무지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르는가!그는 곧바로 봉구안을 데리고 자리를 떠나, 완부옥을 멀찍이 떼어놓으려 하였다.그러나 완부옥은 집요하게 그 뒤를 따랐다.뒤따르던 진한길과 오백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었다.진한길이 먼저 입을 열었다.“너희 소장군은 참 꽃을 불러모으
봉구안은 한 채의 집을 빌려 수적들을 그 안에 가두었다.그들은 이미 고문을 당해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오백이 구석에서 거의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한 명을 가리키며 진한길에게 말했다.“저 놈입니다. 방금 도망치려다 소장군께서 친히 붙잡아 오셨던 놈입니다.”수적들은 봉구안을 보자 쥐가 고양이를 본 것처럼 벌벌 떨었다.그들은 한때 강호를 휘어잡던 수적들이었지만, 이제는 젊은 남자 하나에게 얻어맞아 친어머니도 못 알아볼 꼴이 되어 있었다.“제발… 제발 때리지 마십시오! 말할 건 다 말했단 말입니다…”진한길은 한 명을 끌어다가 소욱 앞에 내던졌다.그 자의 열 손가락은 피투성이였고, 고문을 받았음이 분명했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군가 우리에게 큰돈을 주며 그렇게 하라고 시켰습니다.”“우린 돈만 받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게 부잣집 상선이라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아니었으면 우리가 아무리 배짱이 커도 황실의 배를 감히 털 생각은 못 했을 겁니다!”“배가 뒤집혔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쳤고, 그 여자는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녀를 구해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옥패를 주며 그게 아주 값진 거라고 했습니다.”“우리를 설득하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요.”“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처음엔 우리가 강제로 손을 대볼까 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우리가 털었던 배가 황제의 배라는 거 아닙니까! 그 여자는 또 자기가 황제의 여인이라고 하더군요. 우린 그 말에 기겁해 어디 손이라도 댈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정말입니다! 우린 그 여자에게 손끝 하나 댄 적 없습니다!”“다 그 고용한 자가 문제입니다! 그가 우리를 속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그 여자를 그냥 놔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우린 그녀를 풀어주었습니다. 정말 한 손가락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그 일 이후, 우린 몇 년 동안 숨어 지내며 물도둑질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조정에서 우리를 찾는 것도 없었습니다. 작년쯤
봉구안은 궁중에 생일 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저녁 해시로 약속을 잡았다.결과적으로, 해시 전 한 시간 전에 소욱이 도착했다.그는 꽃단장을 한 듯 진홍색 옷을 입고 나타났고, 봉구안은 그의 뒷모습만 보고도 강림 그놈이 나온 줄 알았다.주변 손님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봉구안은 미리 두 각 전에 주점에 도착했는데, 그가 더 일찍 온 것이었다.“2층에 있는 방을 예약했습니다.”소욱이 즉시 그녀의 손을 잡았으나, 본능적으로 봉구안이 손을 뿌리쳤다.왜냐하면 지금 그녀는 남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남자 둘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모양새가 말이 아니었다.소욱의 손이 허공에 멈췄고, 그는 어딘지 모르게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혹시 자신이 며칠 동안 그녀를 못 챙겨준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인가 싶었다.아간에 들어가자마자, 소욱은 다짜고짜 봉구안을 껴안았다.문 밖에서 오백이 재빠르게 손을 놀려 문을 닫았다.그는 고개를 들어 보니, 진한길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뻣뻣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오백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말했다.“자네는 문도 제대로 못 닫는 것이오?”진한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방 안.봉구안이 소욱을 밀어내며 눈살을 찌푸렸다.“제가 지금 몸이 더럽습니다.”그제야 소욱은 그녀의 옷에 뿌연 먼지가 묻어 있는 것을 눈치챘다.마치 좁은 골목길을 헤쳐 나간 듯했고, 머리카락에 거미줄 같은 것도 조금 묻어 있었다.소욱은 웃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에서 그 거미줄을 털어냈다.“무얼 하고 다녔느냐? 내 생일 선물은 준비했느냐?”봉구안은 담담히 대답했다.“그렇습니다.”소욱의 손동작이 잠시 멈췄고, 그의 눈빛이 갑자기 밝아졌다.“참말이더냐?”봉구안은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그날 양연삭을 심문하던 중, 폐하의 모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이 말을 듣자, 소욱의 눈썹이 약간 찌푸려졌다.그는 조묘의 난 때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의 해난은 천룡회의 소행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러나 안다고 해서 무엇이
서왕은 모용란이 임종 직전에 남긴 말을 봉구안에게 전했다.“안타깝게도 약쟁이라는 말만 남기고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서왕의 눈가에는 근심이 서려 있었다.봉구안은 생각에 잠겼다.“천룡회에서 약쟁이들을 기른 적이 있으니, 계속 조사해야겠습니다. 다만, 이 일은 폐하께서 결정하셔야 할 일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공손히 절하고 자리를 물러났다.서왕은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예전 그 당차고 늠름하던 맹 소장군이, 여인이었다니.…모용렴이 고백한 죄행들은 수많은 억울한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었다.여기에 양연삭이 자백한 내용까지 더해지며, 폐태자와 진가의 억울함은 마침내 밝혀졌다.다음 날, 천룡회의 죄행이 천하에 공표되었고, 주범 양연삭은 시장에 끌려 나갔다.사람들이 구경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양연삭은 아직 들을 수 있었다.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존엄을 지키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었다.당당한 진국 황실의 후예가, 이 천한 백성들의 손가락질을 받다니!지금의 양연삭에게 있어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형벌이었다.그 며칠 동안, 옛 사건들이 재심을 받으며 폐태자와 진가 사람들이 명예를 회복했다.이 소식이 후궁 처소에 전해지자, 연상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이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그리고 황제는 그녀의 봉호를 박탈하고 출궁을 허락했으며, 진가의 후손으로서의 보상으로 좋은 농지와 가게를 하사했다. 진가의 오래된 저택까지 모두 돌려주었다.그녀의 인생은 수차례 굴곡을 겪은 끝에 이제야 비로소 땅에 발을 디딘 것 같았다.“황제 폐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연상은 땅에 엎드려 큰절하며 흐느꼈다.그녀는 이 황궁에 단 한 점의 미련도 없었다. 그날로 바로 궁을 떠났다.황궁의 사치스러운 부귀도, 밖의 드넓은 하늘과 바다만큼은 아니었다.…객잔.봉구안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열어보니, 눈물 자국으로 가득한 연상이 서 있었다.“구안 아씨…” 연상은 울먹이며 말했
소욱은 결코 생각하지 못했었다. 자신이 선황의 유언을 잘못 들었을 줄은 말이다.봉구안은 담담히 설명했다.“모호하고 불명확한 말씀이라면 쉽게 혼동될 수 있습니다.”“선황께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일반인처럼 한 번에 말을 마치실 수 없었기에, 긴 여운이 있는 기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곁에서 듣는 사람이 충분히 헷갈릴 수 있습니다…”소욱은 여전히 의심스러워했다.“그렇다면, 왜 직접 명확히 말씀하시지 않았단 말이냐? 곧바로 모용가를 처단하라고 하셨으면 더 분명하지 않았겠느냐.”봉구안의 눈빛에는 약간의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북방에서, 저는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 유언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시간이 촉박함을 자각하여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합니다. 선황께서는 이 모든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모용가였던 것입니다.”“또는 ‘모용란’, ‘모용가’, ‘모용 일족’일 수도 있겠지요. 선황께서는 분명 폐하께 모용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하지만 ‘모용’ 두 글자를 말씀하신 뒤, 기력이 급격히 쇠해지셨지요. 이 점은 선황의 짧은 문장에서 드러납니다. 다음 말이 곧 생애의 마지막 말이 될 것을 염려하여, 말을 줄이고, 마지막 단어 하나로 뜻을 담으셨던 것입니다.”“죽을 사라는 한 글자는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주살, 처단, 그리고 폐하께서 말씀하신 ‘처단’ 같은 의미지요.”“그 말씀을 마친 후, 선황께서는 약간의 기운을 남기고 또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남겨서는 안 된다…”“하지만 결국 이는 하늘의 뜻이 농락한 것일 겁니다. 마지막 한 글자가 부족한 숨결로 인해 온전히 끝까지 전하지 못해, 오해를 사게 된 것이지요.”봉구안의 설명을 들은 후, 소욱은 그녀에 대한 감탄이 더해졌다.그는 냉랭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선황의 임종 직전 마지막 명령은 모용 일족의 여인을 황후로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모용가를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었겠
황궁, 소욱과 맹 부인은 저녁 식사를 막 끝마쳤다.봉구안은 소욱에게 할 말이 있어, 사람을 시켜 맹 부인을 먼저 궁 밖으로 모셨다.소욱은 돌아온 이후로 하루 종일 바빴던 터라, 지금 당장은 정사를 논할 마음이 없었다.맹 부인이 떠난 후 그는 궁인들을 물리고 곧바로 봉구안을 끌어안았다. 피곤함을 떨쳐내려는 듯, 그녀를 품 안에 꼭 안았다.“아주 피곤하구나. 저기 있는 저 상소들을 보거라. 오늘 내가 모두 결재한 것이다.”책상 위에는 두껍게 쌓인 서류가 보였고, 확실히 고된 하루였음이 느껴졌다.봉구안은 그의 품에 안겨 잠시 기대었다. 그러나 이내 냉정하게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정사를 논해야 합니다. 양연삭의 자백서를 읽어보셨습니까?”소욱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이곳엔 너와 나밖에 없는데, 왜 그리도 딱딱하게 구느냐?”봉구안은 그의 말을 흘려듣고 본론으로 들어갔다.“진 대인은 반역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폐태자 또한 무고합니다. 이 모든 것은 천룡회가 꾸민 일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명예를 회복시켜 주셔야 합니다.”소욱은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다.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겠지.”모용렴이 이미 이 사실을 자백했기에, 그는 이미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그는 그녀가 말을 다 끝낸 줄로 알고 다시 그녀를 끌어안고는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었다.그러나 봉구안은 할 말이 더 남아 그를 밀어내려 했고, 소욱이 말했다.“잠시만 나를 안아다오. 내가 오늘 너도 모를 이야기를 하나 해 주마.”소욱이 그녀의 호기심을 얕본 것이었다. 봉구안은 단호하게 그를 밀치며 말했다.“먼저 말씀하세요. 정사가 더 중요합니다.”소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좋다. 먼저 말해 주지. 모용렴의 자백에 따르면, 모용란은 본래 양연삭의 외조카였더구나.”봉구안은 꽤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렇다면 모용란은 정말 철저히 숨긴 것이었다.모용렴이 자백하지 않았다면, 이 비밀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이 이야
봉 대인은 멀리 사라지는 가마를 바라보며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임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대인, 가마가 이미 멀리 갔으니 우리도 들어가시지요. 밥이 다 식겠습니다.”봉 대인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코웃음 치고는 몸을 돌려 정청 안으로 들어갔다.자신이 봉구안의 친부이지 않았던가.황제는 맹 부인만 황궁에 초청하고 그를 부르지도 않았다.이후 봉구안을 맹가 여식의 신분으로 시집가게 하려는 셈일까?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황궁.소욱은 이미 사람을 시켜 만찬을 준비해 두었다.그는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잠시 잊을 뻔했지만 맹 부인이 처음으로 입궐한 만큼 제대로 준비하려 했다.맹 부인은 단정하고 위엄 있게 행동하며 식사 자체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그녀는 황제에게 봉구안의 혼사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소욱 역시 봉구안과 그녀의 의사를 묻고 싶었다.‘봉부에서 시집을 갈 것인지, 아니면…’봉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폐하, 스승님과 사모님께서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그분들은 이미 제 부모님이십니다. 그러니 저는 맹가의 신분으로 황후의 자리에 오르고 싶습니다.”맹 부인은 잠시 놀란 듯했으나, 곧 눈가에 희미한 눈물이 맺혔다.소욱은 그녀가 어느 가문의 딸로 시집을 오든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신부가 그녀라는 사실이었다.그는 깊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 뜻대로 하거라.”“구안아, 너…” 맹 부인은 그녀에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봉구안은 조용히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맹 부인 앞에서 몸을 숙여 정중히 말했다.“사모님,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스승님과 사모님께서 주신 것입니다.”“두 분께서는 제게 단지 이 무공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옳고 그름의 기준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양육의 은혜는 하늘보다 크니, 이것이 제가 맹가의 신분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또한 성주 오라버니께서는 생전에 저를
형장에서, 모용란은 거의 미쳐버린 듯 크게 웃기 시작했다.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내렸다.법에 따라 죄를 확정지었다 하더라도 날짜를 정하고, 정오에 형을 집행해야 했다.그런데 황제는 하루도 기다릴 수 없었다.그녀를 죽이고자 하는 황제의 마음이 이렇게나 강한 것이었다.모용란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아버지, 대체 폐하께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모용렴은 담담히 형벌을 받아들이며 말했다.“사실 그대로 말했다. 너의 신분까지도.”모용란의 심장이 갑자기 철렁 내려앉았다.그렇구나!황제가 이렇게 서둘러 그녀를 죽이려 했던 이유는 그녀가 양연삭의 외조카이며, 진 나라 황실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하하… 아버지! 당신은 정말로 제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어째서 저를 이렇게 해치려 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친딸이 아니어서 그런 것입니까? 왜 저를 끌고 함께 죽으려 하십니까!”그녀는 그를 증오했다!그가 아니었다면 황제가 그녀에게 이토록 무정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그것도 능지처참이라니!모용렴은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생모를 떠올렸다.그녀의 생모 역시 집착이 강하고, 매우 강한 소유욕을 가진 여자였다.그녀와 생모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성격뿐만 아니라 그녀들 또한 양연삭의 말판 위 바둑에 불과했다.모용렴은 무겁게 눈을 감았다.오늘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그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모용란은 그럴 수 없었다.그녀는 감찰관을 향해 소리쳤다.“황제 폐하를 만나고 싶습니다! 서왕 전하도 좋으니 둘 중 한 분이라도 제 앞에 모시고 와주세요…”그러나, 형장에 있던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사람들은 그녀의 입을 막아버려 그녀가 소란을 피우지 못하도록 했다.능지처참은 죄인의 살을 한 조각씩 잘라내며, 형이 진행되는 동안 죄인이 죽지 않도록 하는 형벌이었다. 빠르면 몇 시간, 길면 사흘이 걸렸다.이 형벌은 사람이 도
봉 대인은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입이 비뚤어질 뻔했다. 그는 어리석은 임씨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임씨를 꾸짖었다.“다음번에 또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면 그땐 널 내쫓을 것이다!”임씨는 혼이 나간 듯 멍해졌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채웠던 허영심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그녀는 원래 생각하기를, 그 시골에서 올라온 봉구안이 돌아오면 스스로 안주인의 위세라도 부려볼 요량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전해진 소식은, 그 촌년이 황후가 된다는 것이었다.봉가의 첫째 여식 봉장미도 황후에 오른 적이 있었다.이제는 봉가의 또 다른 여식인 봉구안마저 황후가 된다는 것이다.어떻게 해서 봉 부인의 여식들은 다 황후가 될 수 있었던 걸까!그년이 정말로 엄청난 행운이라도 잡은 게 아닐까!임씨는 고개를 들어 정원에 눈길을 돌렸다.그곳에는 새를 놀리고 있는 자신의 아들 봉명헌이 있었다.봉가의 여식들은 줄줄이 황후가 되는데, 왜 자신은 딸을 낳지 못했을까! 그것도 겨우 아들을 낳았는데, 저렇게 아무 쓸모없는 녀석이라니!임씨의 마음속은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했다.비록 그녀는 질투심이 강했지만, 한편으로는 집 안 사람 중 한 명이 잘되면 모두가 잘된다는 도리를 알고 있었다.곧바로 하녀를 불러 중매쟁이를 보내 퇴짜를 놓으라고 명령했고, 중매쟁이에게 입막음을 위한 돈도 따로 건넸다.그녀는 자신이 그간 들인 돈이 아깝기만 했다.애석하게도 좋은 일을 하고, 욕만 한 바가지 들었으니 말이다.…황궁, 어전.서왕은 무릎을 꿇고 모용렴의 자백서를 올렸다.소욱은 문서를 읽어내려갈수록 미간이 더 깊이 찌푸려졌다.그는 문득 고개를 들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모용렴을 능지처참에 처하라.”사실 능지처참으로도 부족했다!이 자가 저지른 죄는 백 번 죽어도 모자랄 것이다!폐태자를 모함죄로 모함하여 동궁의 공석을 만들었고, 여러 황자들이 서로 싸우고 해치게 만들었다.더구나 진씨 가문 일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