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그날 이후로 병을 앓았다.태의는 고뿔에 걸렸다고 말했으나 소욱은 정무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그렇게 12월이 되던 어느 날, 이혼 교지가 드디어 내려졌다.연상은 기쁨에 겨워 봉구안에게 말했다.“마마, 드디어 떠나실 수 있겠네요!”그녀는 진심으로 황후를 위해 기뻐했다.전에 황제의 행실을 보고 황후가 평생 이 궁에 구금을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그녀였다.다행히도 황제는 결국 생각을 바꿔 황후를 놓아주기로 한 것이다.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폐후가 아닌 이혼이라는 점이었다.역사를 통틀어 황제와 이혼한 황후는 없었다.연상과는 달리, 최 상궁은 구슬피 울었다.“마마, 어찌 이리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 왜 굳이 궁을 떠나시려는 거예요!”최 상궁은 복도에 주저앉아 오열했다.지나가던 궁인들이 그녀를 부축했지만 그녀는 듣지도 않았다.내전 안.봉구안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교지를 빤히 바라보았다.평화로운 이별, 그녀가 바라던 상책이었다.이렇게 되면 봉씨 가문과 연상을 비롯한 궁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소욱과 그녀는 이제 아무 사이라도 아니라는 것을 만 천하가 알게 될 것이고 이는 황후의 실종보다는 귀찮은 일들을 덜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고요하기만 했다. 어쩌면 그녀는 마음을 억누르는데 도가 텄을지도 모른다.봉구안의 짐은 많지 않아서 보따리 하나로 해결되었다.일각이 지난 후, 그녀는 출궁 준비를 마치고 교지를 들고 영화궁을 나왔다.영화궁 밖, 진한길이 굳은 표정을 하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황후를 본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소인 감히, 마마께서 생각을 돌리시기를… 청합니다.”이는 그가 처음으로 황제의 허락을 받지 않고 청한 일이었다.봉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길은 전방에 있다.”그러니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잠깐의 동요는 있었지만 그걸 위해 평생을 헌신할 자신도 없었다.진한길은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바라보며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소욱은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었다.그의 옷매무새는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도 아무렇지 않게 하나로 묶은 모습이었다.그의 입술은 푸른빛을 띄고 있었는데 마치 큰 병을 앓고 일어난 사람처럼 생기 한점 없었다.유사양은 그의 옆에서 조마조마한 얼굴로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반면 진한길은 침착하게 황제를 위해 화살을 건넸다.소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폐하, 아니되옵니다!”뭇 비빈들이 봉구안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죽음을 두려워하는 녕비는 처음에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몰려오는 다른 비빈들에 의해 등 떠밀려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그녀는 짜증이 몰려왔다.사실 가장 짜증 나는 사람은 황제였다.“폐하! 봉장미를 다치게 하면 안 됩니다!”녕비가 목을 놓아 소리질렀다.모용선도 평소의 온화한 목소리 대신, 목에 힘을 주어 소리쳤다.“군주의 약속은 천금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폐하, 이혼 교지를 내리신 마당에 지금 약속을 번복하시려는 겁니까?”가빈은 소욱의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폐하, 신첩이 이렇게 빌게요! 황후마마를 죽이시면 안 됩니다!”누각 위,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소욱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슉!화살이 날아와 그녀의 등 뒤로 뻗은 길에 꽂혔다.황제는 마치 신들린 것처럼 다시 화살을 뽑아들었다.진한길은 황제가 황후를 다치게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이건 어쩌면 황후를 대신해 자신이 무정한 군주라는 것을 모두에게 증명하기 위한 의식일 수도 있었다.또 어쩌면 그만의 특별한 작별 방식일지도 모른다.봉구안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 없는 얼굴로 그를 향해 작별 예를 행했다.“소인, 남제의 태평성세와… 폐하의 안녕을 기원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곧장 앞을 향해 걸어갔다.넓은 복도는 백보도 채 가지 않아 끝이 났다.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있지만 마음은 올 때와 사뭇 달랐다.누각 위.소욱은 공터
봉 부인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너… 뭐라고 했니? 집에 안 가? 그럼 어딜 가려고!”봉 대인은 치미는 화를 못 이겨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가긴 어딜 가겠어? 거기에 돌아가려는 거겠지!”거기란 맹씨 가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봉구안이 담담히 말했다.“천하는 크고 하늘과 땅을 집으로 간주하며 살겠습니다. 예전처럼 저 같은 딸은 없다고 생각해 주세요.”말을 마치 그녀는 바로 등을 돌렸다.그렇게 단호하고 결연할 수가 없었다.등 뒤에서 봉 대인의 욕설과 봉 부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이런 불효녀 같으니라고! 좋아! 어디 나가서 죽든 상관 안 하마!”“나리, 그만하세요!”“뭘 그만해! 일국의 황후 자리를 내치고 떠돌이 생활을 하겠다잖아! 내가 저걸 애당초 물에 빠뜨려 죽였어야 했어!”심장이 안 좋은 봉 대인은 가슴을 붙잡고 통탄했다.“나리! 나리!”봉 부인은 잽싸게 약을 꺼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봉 대인은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불효막심한 것 같으니라고!’황궁 십리 밖.누군가가 봉구안의 앞을 막았다.그녀를 따르던 오백이 검을 빼들었으나, 상대는 공손히 그녀에게 예를 행했다.“봉 낭자, 장공주께서 한번 뵙자고 하십니다.”장공주는 봉구안을 송별하기 위해 정자에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황후를 보내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황후가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에 기뻤다.둘은 정자에 마주앉았고 나머지 인원들은 밖에서 대기했다.“소장군, 한잔 하시게.”장공주는 술 한잔을 따라 봉구안에게 건넸다.봉구안은 습관처럼 술잔을 가져가서 코끝에 대고 향을 맡았다.장공주는 준비한 가야금을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내 소장군을 위해 한곡 연주하겠소.”봉구안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 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장공주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어딜 이리 급하게 가시오? 혹여 내 도움이 필요하진 않소?”자리에서 일어선 봉구
소욱은 문 앞에 서서 내전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마치, 저 문을 열지 않으면 그의 황후가 여전히 안에 있다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연상의 소리를 들은 그가 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너마저도 버리고 갔단 말이냐.”연상은 목소리에 힘이 없는 그를 보고 가슴이 쓰렸다.사랑의 아픔이 이리도 지독하다니.소욱이 영화궁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이, 서재의 상소문은 쌓여만 갔다.그 일을 전해들은 영비는 직접 영화궁으로 찾아왔다.하지만 황제는 창가에 서서 멍하니 마당의 나무만 바라보고 있었다.궁인들 말로는 그는 이미 이곳에 하루를 서 있었다고 한다.이제 저녁식사를 할 시간인데도 그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명을 내렸다.연상은 영비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영비가 어서 황제를 모시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황제가 여기 있으니 모든 게 불편했다.소욱의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말했다.“폐하,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신 것 압니다. 하지만 이제 놓아주기로 하셨으니 마음을 다잡아야지요.”“황후는 이미 떠났는데 이리 옥체를 돌보지 않으신다면…”“네 아이, 짐의 아이가 아니다.”그는 바깥을 바라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영비의 눈가에 당황함이 스치더니 곧이어 무릎을 꿇었다.그녀는 무서웠던 그날이 떠올랐는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폐하께서 출정을 나가시기 전날 밤에 많이 취하신 상태로 자진궁에 돌아가셨습니다. 신첩은 폐하를 밤새 보살폈고요.”“날이 밝은 후 신첩은 자진궁을 나가다가… 어떤 자에게 나쁜 일을 당했습니다.”소욱은 과정을 따지지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침묵만 지켰다.영비는 고개를 들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그자는 미혼향을 사용했습니다. 신첩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로 냉궁에 누워 있었지요.”“나중에 그자를 찾아서 제 손으로 죽여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요.”“신첩 역시 여인입니다. 결백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
10일 후, 남제의 변방.오백은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봉구안에게 조심스레 말했다.“소장군, 지금 돌아가도 늦지 않습니다.”그는 봉구안이 냉혈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정과 의리를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돌아갈 집이 있는데 굳이 방랑할 이유도 없었다.아무도 소장군의 고초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흑포의 말처럼 이미 천용회는 이미 그녀를 오랜 시간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언젠가부터 이미 가면 아래 맹 소장군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었고 지금의 황후가 바로 맹성주라는 사실마저 알고 있었다.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천용회는 이미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고 이제 곧 그들의 교주가 출관할 거라고 했다.맹성주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놈들이고 소환이라는 신분은 과거 천용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인물이니 아마 그쪽에서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나중에 천용회가 복수를 한답시고 달려든다면 봉구안 주변 인물들도 화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봉구안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도 봉가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황제에게도 그랬다. 매정하게 떠났지만 그건 그녀의 진심이 아니었다.사실 그녀가 진심으로 떠나고 싶었다면 황궁의 시위들은 그녀를 막을 능력이 없었다. 굳이 만 천하에 황제와 황후가 감정싸움으로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었다.오백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봉구안은 항상 겉으로는 하나만 보여주고 뒤에서 묵묵히 열을 하는 사람이었다.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한 그마저도 그녀의 진짜 속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다.그가 보기에 봉씨 가문과 절연하고 황제와 그 난리를 피운 수는 너무도 과했다.하지만 그녀는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단 한번이라도 그는 소장군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를 바랐다.오백이 말했다.“폐하께 천용회가 소장군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만 설명하면 폐하께서 지켜주실 겁니다. 그분이 천용회를 소탕하실 텐데 왜 굳이 모든 책임을 혼자서 짊어지시려는 겁니까?”봉구안
밀집된 토용들을 보고 있자니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그들은 위험을 감지했는지 봉구안을 향해 푸른 눈을 번뜩이며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한 마리가 공중에 몸을 솟구치더니 석벽을 타고 그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그것들은 이미 일반적인 토용이 아니라 표피가 울퉁불퉁하게 부어 있었는데 딱 봐도 강한 독성을 갖고 있었다.봉구안은 신속히 해독약을 먹고는 천천히 검을 빼들었다.두 시진 후, 동굴 밖.오백은 조바심에 속을 태우며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혹시라도 소장군이 위험에 처했을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그가 주저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밖으로 나왔다.“소장군!”다급히 다가가던 그는 눈앞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봉구안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후방을 경계했다.봉구안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안에 사람은 없었다.”오백이 물었다.“그럼 이 피는….”그는 그제야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설마 토용입니까? 소장군, 토용이 정말 안에 있어요?”“그래.”봉구안은 토용들을 모조리 죽였다.다행인 점은 그것들은 아직 천수와 같은 극독물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그녀라도 살아서 나오긴 힘들 것이다.그녀는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닦고는 오백에게 분부했다.“여길 지키고 있거라. 내 어디 다녀와야겠다.”“예!”봉구안은 완부옥을 찾아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자초지종을 들은 완부옥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남강 백성을 살해한 놈들이 천용회 사람이라고?”“동굴 안에서 수많은 시신을 발견했어. 아마 천수를 제련하는데 쓰였겠지. 남강 여인들의 죽음은 충독 때문이었다. 아마 그것도 독성을 제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거야.”봉구안이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여전히 남방의 습한 추위에 적응하지 못했다.완부옥은 뜨거운 차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일단 알겠으니까 목부터 축이고 남은 건 나한테 맡겨. 만약 천용회 잔당들이 일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놈들이 살아서 남강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 것이야!”봉구안은 뜨끈한 차를
흑포는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완부옥을 포함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봉구안이 이토록 단호하게 흑포를 제거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오백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공을 들여 잡은 적인데 이대로 죽여버리다니!정녕 그의 입을 통해 진실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일까?완부옥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봉구안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어색하게 말했다.“멋진 검술이었어!”소환은 가끔은 그녀보다도 잔인한 사람이었다.봉구안은 싸늘한 시선으로 흑포의 시신을 힐끗 보았다.그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온 이유가 놈을 죽이기 위함인데 놈의 꼬임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그녀의 복수에서 원수를 죽이는 게 진실보다 먼저였다.하물며 이렇게 입이 무거운 상대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니 차라리 빨리 처단하는 게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었다.봉구안은 뒤돌아서 완부옥에게 말했다.“놈의 오장육부를 도려내고 시체는 남강의 성문에 걸어두어 모두에게 알리도록 해. 만약 놈의 시체를 거두러 오는 놈이 있으면 다 죽여!”완부옥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나한테 맡겨.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거든.”봉구안은 마지막으로 흑포의 시신에 눈길을 돌렸다. 그가 감옥에서 말했던 죽음이 곧 생이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이 떠올랐다.그가 대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 두고볼 것이다!흑포를 죽였으니 완부옥은 저택에서 축하연을 열었다.제대로 된 식사는 정말 오랜만인 오백은 입안 가득 음식을 욱여넣었다.완부옥은 흑포를 죽인 후에도 소환의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음을 주목했다.그녀는 술을 들고 봉구안의 옆으로 가서 직접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왜 안 마셔? 오늘 그믐날이야.”“취할까 봐?”“취하면 내 친히 보살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마셔.”완부옥은 말하는 동시에 봉구안에게 추파를 던졌다.그 말을 들은 봉구안은 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술잔을 밀어놓고 솔직히 말했다.“흑포가 죽었으니
남제의 경내에 도착하자, 봉구안과 오백은 먼저 한 여관을 찾아 들러 음식을 주문하였다.두 사람은 가면을 쓴 채 길가 쪽 자리에 앉았다.여관의 하인은 이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술과 음식을 올리고는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러 갔다.오늘 이 여관은 몹시 떠들썩하여 옆자리의 몇몇 사람이 한담을 나누기 시작하였다.“작년 황성에서 있었던 그 일, 다들 들어보았소?”“무슨 일을 말하는 거요?”“모르시오? 작년에, 황제와 황후가 이혼을 한 일 말이오!”“오오, 생각났소. 그때 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지…”“내 말이, 그 황후라는 사람은 참으로 교만하고 사사로이 문제를 일으키는구려! 보통의 여인들이야 삼종사덕을 지켜야 하거늘, 하물며 일국의 황후가 되어 감히 황제를 공개적으로 나무랐다니! 그것도 무슨 ‘육고’라 하였던가? 자기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니 황제가 벌을 내린 게 무엇이 그리 큰 죄란 말이오?”“그러게 말이오. 내 생각엔 그런 여자는 차라리 버리는 게 나았소! 황제 폐하께서 황후를 내치신 것은 참으로 옳은 일이오!”“맞소! 봉가네 여식들은 이제 혼인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오. 이런 꼴로 집안을 망신시켰으니, 결국 손해 보는 건 본인이 아니겠소. 내게 그런 딸이 있다면 차라리 때려죽였을 것이오. 집안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말이오!”뚱뚱해 보이는 한 남자가 교만한 표정으로 말하였다.“그렇다면 이 시기에 내가 봉가에 가서 혼사를 제안한다면 어찌되겠소? 절호의 기회 아니겠소?”주변의 사람들이 서로 눈짓하며 이내 크게 웃으며 동조하였다.“이보시오, 그대라면 우리가 성심껏 지지할 것이오!”“봉가에서 틀림없이 막대한 사례금을 내걸 것이오. 하하, 그들의 딸이 이미 아무도 원하지 않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오.”그 남자는 이 말을 듣고 더욱 우쭐해졌다.“당연하지 않겠소! 나는 첫 혼사라오! 내가 봉가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면 잘 길들여보겠소. 자네들도 곧 보게 될 것이오!”오백은 이 말들을 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는 갑자기 자리에
대하국의 지원군은 초조함에 휩싸였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옥석비가 있다지만, 겨우 소수 병력만 이끌고 있는 남제 황제가 그들의 10만 대군과 싸우려 하다니, 너무나 오만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그러나 곧 이어진 광경은 그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땅이 갑자기 들썩이며 사방에서 수천의 병사가 솟아나 그들을 포위해 버렸다.대하국 선봉 지휘관은 망연자실했고, 후방 병사들은 무기를 움켜쥔 채 외쳤다.“장군님, 매복입니다!”소욱의 눈은 서늘하게 얼어붙어, 차갑기만 했다.“항복하는 자는 살려줄 것이다.”대하국 병사들은 전투용 쇠뇌를 준비하며 진영을 구축했고, 선봉 장수는 큰 소리로 외쳤다.“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 남제군을 모두 쓸어 버려라!”소욱의 얼굴은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했고, 그는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멀리서 준비를 마친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올렸다.같은 시각, 북부에서는 북연의 10만 대군이 남제군의 기습을 받았다.맹건은 북방군을 이끌고 어디선가 나타났고, 그의 옆에는 옥석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북연 병사들은 맹건을 알아보고 크게 놀랐다.“북방군은 이미 궤멸된 게 아니었나?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거지?”맹건은 흙 언덕 위에 서서 강렬한 눈빛과 함께 살기를 뿜어냈다.남제를 공격하는 여러 나라들이 한창 공세를 펼칠 때, 그는 이미 황제와 봉구안으로부터 비밀 지령을 받아두고 있었다.처음에는 북방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너무 터무니없이 들렸지만, 곧 남제가 이미 ‘거미줄’로 불리는 비밀 통로를 구축해 놓았음을 알게 되었다.북방군은 패한 척하며 은밀히 거미줄 통로 속에서 숨었고, 그동안 백성들을 대피시키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이제야말로 반격의 때가 온 것이다.맹건은 장검을 뽑아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선조의 옥석비가 우리를 지키고 있다! 남제의 국토를 침범한 자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갇혀 있던 늑대처럼 전의를 불태우던 북방군은 순식간에 몰려들어 포효했다.“돌격하라!”북연의 주
단춘의 손이 떨렸다.“뭐라고? 죽였다고?”보고하던 병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는 무릎을 꿇으며 성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음병들이 지나간 후, 병사 수십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너무도 참혹한 광경이었습니다. 장군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단춘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그 자신도 답을 몰랐다.평생 사람과의 전투만 치러왔던 그에게, 이번에는 귀신과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주국공부.시위병이 황제의 침실로 뛰어들어왔다.“폐하! 음병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북연의 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말했지! 귀신이면 귀신도 베란 말이다! 당장 음병들을 모두 없애라!”황제의 광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광기가 귀신을 향해 번졌다.시위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폐하, 그들은 음병입니다. 신출귀몰하며 잡으려 하면 금세 사라집니다.”“야간 경계 중인 우리 병사들이 수십 명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도저히 손쓸 수가 없습니다!”북연 황제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어렸다.설마, 이 선성에 진짜 귀신이 있다는 것인가?그는 고심하며 생각을 이어가다가,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만지더니, 문득 얼굴이 굳어졌다.“내 옥쇄가 어디 갔느냐!”시위병들은 놀라며 어리둥절해했다.황제의 옥쇄가 사라졌다니!제국의 상징이자 중요한 물건이 어째서 사라진 걸까?……다음 날, 선성 밖.남제군은 성 안에서 음병이 나타났다는 사실과, 몇몇 적군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이야기는 너무도 황당해서 믿기 힘들었다.본진 안.장수들은 일제히 갑옷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봉구안도 차분히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머리가 빠른 자들은 이미 이 모든 것이 황후의 계략임을 간파했다.음병들은 분명 살아 있는 병사들이었다.남제군이 비밀 통로를 통해 이동한 전례가 있는 만큼, 선성 내부에도 비밀 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음병으로 적군의 사기를 꺾은 만큼, 이제 공격 명령이 내려질 것이
귀신이 출몰했다는 한 병사의 외침에, 선성을 경계하던 병사들은 순간 굳어버렸다.텅 비었던 선성 내부의 광장에 갑자기 수많은 장병들이 나타난 것이다.그들은 남제 갑옷을 입고, 천둥소리가 어우러진 밤하늘 아래 규칙적으로 걸어갔다.그들 몸에서는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성벽 위, 누군가 공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음병이다! 음병이 나타났다!”음병이 길을 지나간다는 전설은 여러 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사람들은 평소 죄를 짓지 않으면 한밤중에 귀신이 찾아와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흔히 하곤 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비겁한 자들뿐만 아니라 겁이 많은 사람들도 귀신을 무서워했다.세상에는 겁이 많은 사람이 더 많았으니, 음병의 등장에 병사들은 모두 몸을 떨었다.그래도 그나마 용기를 내는 병사들이 장군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러 갔다.음병들의 창백한 얼굴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졌던 그 순간, 단춘 장군은 바로 갑옷을 챙겨 입고 성벽으로 나왔다.그조차도 음병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남제 장병들이 기괴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보자, 단춘은 잠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병사들에게 단호히 명령했다.“고개를 돌려라! 눈을 감아라! 그들을 보지 말아라!”이는 오래된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었다.음병이 길을 지나갈 때 이를 보면, 음병들이 자신도 같은 동료로 착각해 데려간다는 것이다.여기서 데려간다는 건, 결국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었다.귀신과 신령은 가까이하기보다는 멀리해야 했다.단춘 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 역시 병사들에게 같은 지시를 내렸다.천둥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이는 번개의 울림인지 음병들의 말발굽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한편, 북연의 황제는 선성의 국공부에서 자다가 바깥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밖에 무슨 일이냐!”경호병이 급히 보고했다.“폐하, 음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음병?”황제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이건 틀림없이 남제의 계략이다. 무장을 갖춰라! 그 음병들이란 놈들을
성문이 잠긴 것은 자명했지만, 그 열쇠를 쥔 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명백한 것은 이 일이 연합군 내부의 소행일 리 없다는 것이다.즉, 그들 사이에 이미 남제의 첩자가 스며들었다는 뜻이었다.연합군은 차가운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놀람이 가시자마자, 각 군대는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수화부 연합군은 대하국 동부 연합군을 비난하며 말했다.“첩자는 분명 당신들 안에 숨어있을 것이오! 동방군과 교전한 건 당신들밖에 없지 않소!”“우리 수화부는 남부에서 바로 온 병사들이란 말이오!”단춘은 즉각 반박했다.“북연 연합군도 마찬가지로 남제와 싸웠소!”“그리고 남부에서 왔다고 해서 첩자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소?”“오히려 이미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소!”북연 황제는 이때 상대적으로 침착한 태도로 그들의 다툼을 제지했다.“그만하라! 너희의 소리가 귀를 찌르니 멈추거라!”“첩자가 어디에 있든 간에, 지금 중요한 건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성문이 잠겼다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적도 성문을 뚫지 못하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황제의 이 말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단춘 같은 경험 많은 장수에게는 부족함이 있었다.단춘은 그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며 물었다.“폐하, 혹시 아직도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계신 겁니까?”“저희가 성문을 나갈 수 없다는 건, 결국 여기서 갇혀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군대는 순식간에 동요하기 시작했다.포위된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었다.남제군이 서두르지 않고 성을 공격하지 않는 것도, 시간을 두고 연합군의 식량을 고갈시켜 스스로 무너지게 하려는 전략임이 분명했다.……선성 밖.남제군은 자리를 잡고 주둔 중이었다.지휘소에서는 봉구안이 침착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한 장군이 허리를 굽혀 물었다.“황후마마, 병사들이 선성을 언제 공격하냐고 묻고 있습니다.”봉구안은 그
선성 밖에서는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수십만 남제 장병이 다양한 무기를 들고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그 소리는 선성 위를 울려 퍼지며, 마치 갇혀 있던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성 안에서도 그 소리가 선성을 흔들 만큼 강렬하게 울렸다.봉구안은 전마를 타고 성벽을 응시하고 있었다.갑옷 아래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대단한 힘이 느껴졌다.성문은 이미 단단히 닫혀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상태였다.성루 위에서는 단춘이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옆의 부장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장군, 저건 동방군입니다. 대체 어떻게 선성에 나타난 걸까요?! 분명 감주에 있어야 할 자들인데…”하늘에서 날아온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북연의 황제는 성 밖 동방군의 존재에 크게 분노했다.그는 단춘의 옷깃을 움켜잡고 호통을 쳤다.“감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그런데 이게 대체 뭐냐! 단춘, 정말 잘도 해냈구나!”단춘은 당혹스러웠다.본인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기에 황제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그때 수화부 연합군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남제가 당신들을 속인 게 확실하군!”황제는 점점 격분하며 단춘을 더욱 매섭게 쏘아봤다.“동방군이 너희 뒤를 따라왔는데도 모르다니, 이런 실력으로 남제를 우리 북연과 나누겠다고? 정말 가소롭구나!”단춘은 황제의 손을 뿌리치며 반박했다.“폐하, 성 밖에 있는 건 일부 동방군에 불과합니다.”“게다가 우리 동부 연합군만 속은 것도 아닙니다.”“남부 연합군인 수화부는 어땠습니까? 그들이 남제군을 알아챘습니까? 똑같이 속았으면서 왜 저희에게만 책임을 묻습니까?”동부 연합군의 장수들도 이에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남제의 계략은 워낙 교묘합니다. 감주를 언제 빠져나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폐하, 북부 연합군이라고 해서 뒤따라오는 남제군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그만들 하십시오.
강력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어리석은 동맹이었다.단춘은 선성의 옥석비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그는 정정당당히 조유관을 공략하며 남제에 진입했다.그런데 수화부 연합군은 도대체 뭘 하는가?공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동부 연합군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것은 아닐까?그들의 이런 태도는 단춘을 화나게 했다.그렇다고 이미 도착한 연합군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결국 단춘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들어라. 먹을 것도 쉬는 것도 뒤로 미뤄라.”“다른 나라보다 앞서 선성에 도달해야 한다!”“예!”……감주.대하국 연합군은 성 밖에서 남제 동부군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남제 황후 봉구안이 이미 거미줄이라 불리는 비밀 통로를 통해 대군을 이끌고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그녀는 소수의 병력을 남겨 감주에 대규모 병력이 주둔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이 계책에 말려든 동부 연합군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그 사이, 봉구안의 동부군은 비밀 통로를 통해 이미 묵성에 도착해 있었다.그곳에서 그녀는 동방세를 만났다.동방세는 거미줄 비밀 통로의 마지막 관문을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그는 고된 작업 중에도 농담을 잊지 않았다.“이번 거미줄 개조를 위해 황제께서 이 장군의 10만 대군을 내게 맡기셨소.”“덕분에 난 한동안 대장처럼 군림하며 유세를 떨었네.”황제가 보낸 인력 덕분에 그는 북부와 동부의 거미줄 비밀 통로를 효율적으로 개조할 수 있었다.이제 마지막 관문만 마무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봉구안은 그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동방세, 남제 장병들을 대신해 깊이 감사의 뜻을 전하네.”“선성으로 갈 계획이오?”동방세가 웃으며 물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동방세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여기 작업만 끝내면 범진과 함께 선성에서 보도록 하세.”그는 선성에서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을 직감
남강.서왕은 수화부 연합군의 갑작스러운 철수가 단순한 계략일 것이라 의심했다.하지만 밤중에 직접 확인한 결과, 그들의 철수는 패주와 다름없었다.식기조차 챙기지 못하고 떠난 흔적이 역력했으며, 모닥불조차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조사를 거듭한 끝에, 수화부 연합군이 선성의 보물 이야기를 듣고 급히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서왕은 당황스러웠다.적군이 사라졌으니, 그는 계속 방어를 유지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한편, 수화부 연합군은 선성을 향해 급히 북진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병사들은 강추위를 뚫고 말을 달리며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선두에서 말을 탄 장수가 외쳤다.“장군의 명령이다! 속도를 더 내라!”병사들은 지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우리가 가봤자 보물이 우리 손에 들어올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그러게! 선성 보물 얘기를 듣자마자 진지를 철수했지만, 보물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잖아. 그 유명한 옥석비도 하나뿐인데, 그게 우리 차지가 되겠어?”“명령이 내려왔으니 따를 수밖에. 우리가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동산국 황궁.동산국 황제는 어마장에서 여전히 기력이 넘쳤다.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이어 과녁 중심을 명중시켰다.곁에 있던 신하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폐하, 수화부 연합군이 남강 공격을 포기하고 북상하여 조유관으로 향했다고 합니다.”조유관은 대하국 연합군이 최초로 돌파한 약점이었다.더 많은 연합군이 조유관으로 몰려드는 상황은 연합군에게 유리했다.그러나 그로 인해 남부 방면의 공격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황제는 활을 내려놓았다.머리칼에는 은빛이 드리워졌지만, 여전히 강인한 모습이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담대연의 소식은 알아왔느냐?”“담대연은 여전히 남제에 억류되어 천옥에 갇혀 있습니다.”황제는 다시 활을 들어 두 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한 번의 발사로 과녁을 뚫자, 곁에 있던 신하가 찬사를 보냈다.“폐하, 화살로 만물을
남강.서왕의 어깨는 부상으로 아파왔고, 완부옥은 표면적으로는 화목한 부부처럼 행동하며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막상 군막 안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뉜 듯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완부옥은 저녁을 지나치게 많이 먹고 배가 부른 상태였다. 갑작스런 복통에 허리를 구부린 그녀를 보자, 서왕은 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유화! 군의를 데려오라!”그는 완부옥의 뱃속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완부옥은 그저 체한 것일 뿐임을 알고 있었다.“필요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십시오.”내심 불안했던 그녀는 거짓 임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벌레가 최근에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태아의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군의가 와서 진찰을 하면, 모든 게 드러날 위험이 컸다.서왕은 그녀의 상태가 진정되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그녀를 침대에 앉힌 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아이는 괜찮은가?”그의 시선은 그녀의 배로 향했다. 완부옥은 워낙 마른 체형이라 배가 불러도 잘 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느슨한 옷을 입고 그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서왕은 그녀의 진짜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일반적인 임산부라면 나타날 만한 불편함이 완부옥에게는 전혀 없었다. 이런 점들이 서왕에게 의심을 품게 했다.그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우리 아이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드디어 이 남자가 의심하기 시작한 걸까? 완부옥은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초조해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어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이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어미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겠어요?”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옷깃을 살짝 건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솔직히 말해라.”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완부옥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평소에는 성격이 부드럽던 이
대하 연합군은 묵성을 함락한 뒤, 곧바로 선성을 향해 진격했다.장수들 중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 말했다.“단 장군, 지금까지의 남제 원정이 너무 순조롭습니다.”“선성에서 매복을 준비한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단춘 역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부군은 현재 감주에 주둔 중이었다.그는 전력을 선성으로 보내면서도 일부 병력을 감주로 보내 허위 공격을 감행하고, 동부군을 묶어두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만약 선성에 매복이 있다 해도, 우리의 10만 대군에 북부 연합군까지 합하면 수십만 병력인데, 선성 하나를 못 뚫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그럼에도 신중한 장수는 여전히 망설였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남제의 전략은 적을 깊이 유인하려는 술책 같습니다.”“단 장군, 처음 계획대로 동부군을 견제하며 진격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단춘은 인내심이 바닥난 듯 짜증을 드러냈다.“유인이라니? 남제가 그렇게 어리석어 감주를 내놓고 선성에 매복을 펼친다는 말인가?”“만약 남제가 유인책을 쓴다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감주로 끌어들이는 것이겠지!”“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둬라. 만약 북연이 먼저 선성에 도달해 옥석비를 차지한다면, 우리는 북연의 손발 노릇을 하게 될 거야!”“북연이 동부를 맡으라고 한 것은 그들이 다 해먹으려는 술책일 뿐이다.”“기다릴 테면 기다려 봐. 하지만 대하는 그렇게 바보처럼 속지 않는다!”선성은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북연 황제 역시 선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그들은 남하하는 도중 남제 잔병들에게 여러 차례 매복 공격을 받았으나, 모두 격퇴시키며 계속해서 진격했다.남제군이 계속 후퇴하면서, 연합군의 사기는 높아졌다.그러다 어느덧 설날 전야가 되었다.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정적이 감돌았다.백성들은 해가 지자마자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설날을 맞이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전란을 피해 숨으려는 모습이었다.황성.궁궐 안, 후궁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밤을 지새웠다.그들은 한 손에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