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진왕이 군량을 빼돌렸다는 죄목으로 붙잡혔다. 증거가 명백했으므로, 서왕은 황제의 밀명을 받아 진왕을 감옥에 가두었다.진왕은 억울함을 외치며, 서왕이 자신을 모함한 것이라 주장했다.이 일은 태황태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하지만 태황태후가 나서도 서왕은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한편, 황제가 이끄는 대군은 반송길에 접어들었고, 사수성을 나선 후 여정이 험해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군은 야영을 선택했다.봉구안은 말했다.“소첩은 마차 안에서 지내겠사옵니다.”같은 자리에서 소욱과 함께 지내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요며칠 밤에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니 매우 불편했다.소욱은 억지로 그녀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지치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들 부부의 냉랭한 분위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요 며칠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자주 다투시는 듯하네.”“그러게. 얼마 전까지는 화목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그중 한 병사가 조심스레 말했다.“내가 들은 게 있네. 황제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잘못한 일이 있는 모양이야.”모두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서 말해 보게.”병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말에 물을 먹이러 갔는데, 마차 안에서 황제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사과하는 소리를 들었지.”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폐하께서 그런 말씀을? 거짓말 말게나.”병사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짜라니까! 폐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네. ‘아직도 화났느냐? 어서 이리 와서 네 작은 손을…’”“닥치게!” 다른 병사가 발로 찼다.농담이라며 대꾸할 필요 없다는 태도였다.그 병사는 엉덩이를 만지며 헤헤 웃었다.사실 그들 간의 대화는 그 병사가 지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실제로 황제가 황후에게 사과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였다.…마차 안.봉구안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한밤중, 누군가 마차에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긴장하며 몸을
쾅!봉구안의 주먹이 날아들자, 소욱의 턱이 빠져버리고 말았다.맞고도 정신을 못 차린 그는 다음 날 밤, 또다시 장막을 버려두고 봉구안의 곁으로 몰래 들어왔다.이번에는 행동을 조심하여 그녀에게 손을 대거나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그 덕에 봉구안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묵인하였다.하지만, 이내 그의 본성이 또 드러나고 말았다.며칠 뒤, 그들이 묵은 역참에서 사건이 벌어졌다.밖에서는 두 사람이 화목한 부부처럼 보였으나, 문이 닫히자 봉구안은 바로 바닥에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그러나 소욱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며 말했다.“내가 바닥에서 잘 테니, 너는 침상에서 자거라.”봉구안은 단호히 거절했다.“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황제이십니다. 당연히 침상에서 주무셔야 합니다.”그러자 소욱은 느긋하게 반박하였다.“황제와 황후라면 본디 같은 침상을 쓰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후 이 나라를 위해 힘을 써야되겠구나…”이 말에 봉구안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러자 그녀는 냉랭하게 말했다.“그러하오면, 이 바닥은 폐하께 양보하겠나이다.”소욱은 잠시 벽 쪽을 보더니 천천히 바닥에 누웠다.그는 조용히 누웠으나, 몸을 옆으로 돌려 침상 위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침상에 올라가자, 곧바로 비단 장막이 내려졌다.밤이 깊었고, 봉구안은 편히 잠들었다.그러나 한밤중, 그녀는 누군가 곁에 있음을 느끼고 눈을 떴다.그곳에 누워 있던 이는 다름 아닌 소욱이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를 밀쳤으나, 그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바닥에 쥐가 있어, 침상에서 자는 것이 안전하겠다.”봉구안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쥐라니요? 이는 분명 폐하께서 지어낸 거짓말이옵니다!”소욱은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정말이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봉구안은 눈살을 찌푸렸다.“쥐가 있더라도, 폐하께서 그것을 무서워하실 리가 없사옵니다.”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무섭
궁중에는 영비와 비슷한 모습의 여인들이 많았다.이 순간, 소욱은 몹시 혼란스러워 보였다.봉구안은 그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다.다른 비빈들에게는 늘 냉담했던 그의 눈에, 눈앞의 여인을 향한 복잡한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영비…”소욱의 미간에는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그 순간, 그 여인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곧장 그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폐하, 소첩입니다. 소첩은 죽지 않았사옵니다. 소첩이 돌아왔나이다!”옆에 있던 녕비는 이를 보며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반면, 현비는 품위 있게 말을 보탰다.“폐하께서 대승을 거두셨고, 영비마마께서도 돌아오셨으니, 이 또한 경사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소욱은 어색한 듯 품에 안긴 여인을 살짝 밀쳐내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곁에 서 있는 황후를 바라보았다.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비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 황후를 바라보며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의식한 듯했다.“황후마마.”봉구안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대꾸했다.“예를 생략하거라.”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본디 불가능한 일이었다.이로 보아 영비의 죽음에는 분명 감춰진 진실이 있는 듯했다.하지만, 봉구안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관한 일이었다.영비보다 그녀가 더 마음에 두고 있는 이는 바로 그 검은 옷을 입은 독인이었다.그녀는 반드시 단회욱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영화궁.봉구안이 돌아오자마자, 최 상궁은 급히 그녀를 따라와 영비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마마, 오늘 영비마마를 보셨사옵니까?”“정말 놀라운 일이 아니겠사옵니까!”“며칠 전부터 영비마마의 소식으로 궁중이 온통 뒤집혔다 하옵니다.”“듣자 하니, 그녀께서 과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태황태후마마의 비밀스러운 보살핌을 받아왔고, 이제야 완쾌되어 돌아오셨다 하옵니다….”봉구안은 마음에 짙은 불쾌함이 스쳤다.“물러가라.”연상은 그녀의 심중을 눈치챘으나, 감히 더 묻
검은 옷을 입은 자는 감옥에 갇혀 철저히 감시를 받고 있었다.혀를 깨물어 자결하거나 독을 먹어 목숨을 끊을까 염려해, 그의 입에는 철제 입막이가 씌워져 있었다.봉구안이 감옥에 들어서자, 검은 옷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마치 웃고 있는 듯 보였다.입막이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가면이 벗겨진 그의 얼굴이 봉구안의 눈에 들어왔다.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나이, 두 눈은 끝이 위로 치켜올라가 날카롭고 사납게 보였다.봉구안은 머릿속으로 무수히 그려보았던 원수의 얼굴을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그녀는 옥졸에게 명령했다.“그 입막이를 벗겨라.”쇠사슬이 풀리자, 검은 옷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소장군, 요즘은 평안한가?”그는 마치 죄인이 아닌 듯,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하듯 가벼운 어조였다.감옥 안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봉구안은 서두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단회욱은 대체 어떻게 죽였지?”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속에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검은 옷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이미 알고 있지 않소? 그는 그대에게 날아든 천수지독을 대신 막아내고, 독이 퍼져 죽었소.”봉구안의 눈빛은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다.“왜 그가 내 목숨으로 5년을 바꾸었다고 말한 거지?”검은 옷은 일부러 기억을 더듬는 척하며 눈을 위로 굴렸다.그리고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그런 일이 있었나? 대체 어디서 들은 이야기요?”봉구안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그의 얼굴을 냉혹하게 내려다보며 단호히 외쳤다.“당장 말하거라!”검은 옷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태연히 답했다.“북대영의 전신의 손에 죽는다면, 영광일 뿐이오.”그 말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았다.봉구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네가 죽음을 원한다면, 내가 네 바람을 절대 들어줄 리 없다.”검은 옷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여기가 천옥이란 걸 알고 있소. 심문이든 고문이든, 하고
영비는 서왕에게 목을 졸렸지만, 여전히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비록 전하께서... 저에게 이렇게 하신다 해도, 저는 여전히 전하를 용서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폐하께 전하께서 저를 궁에서 데리고 나갔고, 이렇게 오랜 세월 저를 가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이지 않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전하는 저를 정말로 해칠 수 없으십니다.”결국 서왕은 손을 풀며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모용란, 너는 후회하게 될 것이야.”영비는 여전히 여린 모습을 보였다.“그 말은 제가 전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입니다.”“저희는 모두 폐하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까?”“어떤 수단을 쓰느냐는 그저 저희의 선택일 뿐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서왕의 앞에 다가가 그의 허리띠에서 옥패를 살짝 빼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기억하십니까? 저희 셋은 서로를 지키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로 했지 않습니까.”서왕은 갑자기 기분 나쁜 한기를 느끼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모용란,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야.”그는 단호히 말을 마친 후, 거침없이 돌담을 빠져나갔다.영비는 어두운 바위 속에 혼자 남아, 서왕의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그녀는 소리 없이 속삭였다.“나는 널 용서했어, 정말로.”…자녕궁.영비가 궁에 돌아온 이후, 태후는 한 번도 편안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영비가 궁으로 돌아온 그날, 태후에게 와서는 여러 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그중에는 과거의 행동을 용서할 것이며, 황제가 태후에게 처벌을 내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태후는 영비의 말 속에서, 언젠가 복수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태후마마, 약을 드셔야 하옵니다. 어의께서 말씀하시길, 약을 드시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으실 거라 하였사옵니다.”태후는 깊은 갈색 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 약을 밀쳐내며 말했다.“아
만수궁.태황태후는 영비에 대한 애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그녀는 의도적으로 영비를 자신 곁 자리에 앉히고, 온갖 말을 다 하며 그녀를 챙겼다.“어젯밤은 잘 잤느냐?”영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세월이 고요히 흐르는 듯한 은은한 우아함을 풍겼다.다른 후궁들은 그 광경을 보며 시기와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더 이상 연극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태후 역시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대극이 시작되기 전, 태황태후는 조용히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영비가 궁에 돌아온 일, 모두 알겠지만... 오늘 나는 옛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그 말에, 그녀는 태후를 바라보았다.“옛날, 영비가 병이 깊어 치료를 받지 못해 급히 장례를 치르다 죽음에 이를 뻔하였다.”“나는 영비가 누군가의 계략에 빠졌다고 의심하였고, 그 시체를 바꿔서 확인하였다.”“다행히 하늘의 은혜로 영비는 살아있었지… 다만 숨결이 너무 약해 죽었다 판단한 것이었어.”모든 후궁들은 놀라긴 했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래서 ‘시체는 최소한 3일을 두고 확인한다’는 규칙이 생긴 것이었다.태황태후는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어의에게 진찰을 받았을 때, 비록 살아있긴 했으나, 숨이 약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네. 그래서 나는 그때 의심했던 것이었어. 궁 안에 영비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숨기고, 영비를 옥양산에 있는 절로 보내 회복될 때까지 지내게 했던 것이었어.”모두 서로를 보며 눈치를 챘다.태황태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몇 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황제가 영비를 너무 아끼고 있었으니, 그런 사실을 바로 황제에게 알릴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궁 안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위에 있는 이가 하는 말에 따라, 그저 따라 말할 뿐이었다.그래서 모두 영비의 귀궁을 축하하였다.태후는 속으로 마음이 불편했다.태황태후가 말한 ‘영비를
소욱은 검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에 잠겼다.방금 태황태후의 말은 그조차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영비가 유산을 했다니!? 그것이 언제 있었던 일이란 말인가?’그때 가빈이 입이 간지러웠던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태황태후마마, 영비마마께서 유산을 하셨던 적이 있사옵니까? 왜 첩은 그런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사옵니까?”그 외의 후궁들 또한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태황태후는 영비의 손을 붙잡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일이야 황상이 출정한 후에 벌어진 일이니라.”“그때 영비는 병중에 있었기에 몸도 마음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자신이 잉태한 줄도 몰랐었지.”“그저….”그 말을 하며 태황태후는 일부러 태후를 흘깃 쳐다보았다.태후는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며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녀는 태황태후의 책망 어린 눈길을 피하며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번졌다.영비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하나였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바로 간접적으로 그 아이를 해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었다.당시 태후가 어의들을 막아 세우지만 않았다면, 영비가 유산이라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이 일은 태후가 단 한 번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었다.황제가 이를 알게 되면, 그가 이 어미를 더욱 미워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하지만, 결국 종이는 불을 덮지 못하는 법. 이 비밀도 드러나기 시작했다.소욱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 있었다.그 틈을 타 봉구안은 그의 손을 놓았다.봉구안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멀리 연극무대를 바라보았다.지금 펼쳐지는 이 장면이 무대 위의 연극보다 훨씬 흥미로워 보였다.이 자리에서 소욱이 더 말을 늘어놓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괜히 말을 덧붙이다가는 자신이 영비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사실을 둘러싼 비밀까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소욱은 늘 그랬듯, 오늘 일은 오늘 해결하는 법이라 믿었다.만수궁의 연극이 끝나자마자, 그는 봉구안을 강제로 끌어내어
소욱은 확신하고 있었다.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면 절대로 잊지 않는다.그는 결코 영비를 건드린 적이 없었다!아무리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할 리 없었다.하지만, 영비에게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다.그가 황위에 오를 때 그녀는 전력을 다해 그를 도왔다.그런 그녀가 어찌 이런 어마어마한 거짓을 꾸며낼 수 있겠는가?영비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눈 속엔 깨진 슬픔이 가득했다.“폐하께서 기억 못 하셔도 괜찮사옵니다.”“그날 밤의 일은 본디 하나의 실수였사옵니다.”“소첩은 그것을 잊을 것이옵고, 폐하께서도 잊으시어 그것이 황후마마와 폐하 사이의 가시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소욱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며, 좁아진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모용란, 그간의 십 수 년의 정을 봐서라도, 거짓으로 나를 속이지 마라. 그 아이가 정말로 나의 아이란 말이냐?”영비는 입술 안쪽을 꽉 깨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욱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기분이었다.주먹을 꽉 쥐었다.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한참 침묵 끝에, 그는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이 일은, 절대 황후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영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랐다.“소첩은 비록 황후마마와 오래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마마께서 폐하와 소첩 사이에 무언가 있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사실 그날 밤의 실수를 제외하고는, 저희 사이는 깨끗하고 명백하옵니다.”소욱은 턱을 단단히 다물고, 얼굴에는 엄한 표정이 가득했다.그날 밤의 일이라면, 그는 단 한 마디도 듣고 싶지 않았다.그는 영비를 물리고 난 뒤, 말없이 앉아 있었다.책상 위의 상소문 속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술이 사람을 망치는구나!’“여봐라 거기 있느냐.”“신 진한길, 여기 있사옵니다!”비록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조사해 보면 반드시 무언가 드러날 것이다.
새해가 밝자마자, 남제 대군은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이번 반격은 본격적인 전투가 아니라 도발 수준에 그쳤다.겉보기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듯했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복된 도발은 북연군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겼다.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밤, 북연군 대영에서 치명적인 사건이 터졌다.“장군! 장군! 영내 폭동이 일어났습니다!”영내 폭동은 군영 내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를 말한다.이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군대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진 장군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어서 장군을 호위하라!”이 폭동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한 병사가 무심코 “적이다!”라고 외친 것이 발단이 되어 전군이 서로를 적으로 착각하며 싸우는 대참사로 번진 것이다.북연군 대영은 한순간에 혼돈에 휩싸였다.병사들은 허둥지둥 일어나 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는 무작정 외쳤다.캄캄한 밤중이라 서로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적이 이미 진영 안으로 침입했다고 믿은 병사들은 무기를 휘둘렀다.그들 모두는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싸웠고,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진영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특히 전쟁에 처음 나서는 신병들은 상황을 이해할 새도 없이 무조건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를 공격했다.순식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군영 안에는 시신이 가득했다.조유관 내, 남제 대군 본영.남제 대군 본영의 장막 안, 한 병사가 황급히 달려와 기쁜 얼굴로 외쳤다.“폐하! 북연군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관 장군은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잘됐다!”그는 곧장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맹 소장군, 과연 그대의 예상대로 되었습니다!”다른 장군들 역시 봉구안에게 경의를 표하는 눈길을 보냈다.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단순한 계략으로 북연군 내부를 서로 물고 뜯게 만들다니,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이었다.영내 폭동은 양군이 정면으로 맞붙는 전투보다 훨씬 참혹하다.병사들은 히스테릭 상태에 빠져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서로 죽였다.
남제에서 내놓은 화룡은 북북연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북연군은 그동안 남제의 죽화총을 모방해 제작한 무기를 통해 천하무적이라 자부했건만, 남제가 이를 역으로 배워 화룡까지 만들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북연군의 주군인 진 장군은 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남제군이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그는 화룡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고는 기가 찼다. 남제군의 화룡은 북연의 것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남제군은 소규모 병력을 내보내 화룡을 북연군 쪽으로 밀어 보이며 여유롭게 시위를 벌였다. 두 나라의 화룡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그러자 남제군 쪽에서 도발을 이어갔다.“우리 폐하께서 말씀하셨소! 북연이 선물한 화룡탄에 깊이 감사드린다고!”진 장군은 그 말을 듣자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그 화룡탄은 그가 천룡회 반역자들에게 넘겨줘 혼란을 일으키고 군왕을 죽이는 데 사용하라 한 것이었다.그런데 그 화룡탄이 여기 나타나다니!만약 남제군이 화룡을 진짜로 가지고 있다면 그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된다.북연군뿐만 아니라 조유관에 있는 남제군 병사들까지도 그 광경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관 장군 역시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옆에 있던 부장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참 통쾌하군요!”이 느낌은 마치 거지였던 자신이 갑자기 재산을 상속받아 거리에서 어깨를 펴고 다니게 된 듯했다.남제군 병사들은 하나같이 당당한 자세로 북연군을 향해 외쳤다.“와보시지! 누가 겁내는지 보자고!”북연군은 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즉각 철수를 명령하며 화룡을 회수하기 시작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럴수록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진 장군이 소리를 질렀다.“뭣들 하는 게냐! 빨리 움직이지 못하고!”한편, 후방.양연삭은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남제가 화룡을 만들어냈다고? 이건 분명히 거짓말이다!”…남제군 내부에서도 화룡의 진위에
봉구안은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소욱은 그녀를 보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게 무슨 짓이냐? 내가 너한테 상처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던 거 기억 못 하느냐.”봉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제 상처는 별일 아닙니다. 계속 여기 안에만 있으면 오히려 몸이 더 불편합니다.”“적군을 몰아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게다가 양연삭도 그들 편에 있으니, 그들을 빨리 처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소욱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안 된다. 네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또 다치게 할 수는 없다.”봉구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제 몸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구안아, 너…”소욱은 그녀를 더 설득하려 했지만, 그 순간 밖에서 보고가 들어왔다.“폐하, 적군이 소환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동부 변경조유관 성벽 바깥. 적군이 검은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전장을 압도했다.양측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북연군의 진 장군은 기세등등했다.그의 뒤에는 ‘화룡’과 새롭게 개발된 죽화총이 줄지어 있었다.남제에 있는 것은 북연에도 있었고, 남제에 없는 것조차 북연은 가지고 있었다.전력 차는 명확했다.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는 데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큰 나라끼리의 전쟁이라면 명분이 필요했다.북연군은 소환이라는 대마두를 내놓지 않으면 ‘화룡’을 발사해 강공하겠다고 협박했다.오랜 기다림에도 남제 측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점차 북연군은 참을성이 바닥났다.많은 병사가 소리쳤다.“공격하라!”“공격하라!”그들에게는 장거리용 화룡과 근접전을 위한 죽화총이 있었다.남제 따위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남제군은 화룡을 보자 심장이 내려앉았다.그 위력을 익히 들어온 터였다.그러나 소환은 맹 소장군이란 신분이자 미래에 황후가 될 자였다.그런 그녀를 적군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장군들은 성벽 위에 서서 북연의 대군을
소욱은 품 안에 있는 사람을 껴안고 자신의 통제되지 않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젠장!”남자는 눈물을 쉽게 흘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기가 이렇게 울고 있다니! 정말 체면이 없었다. 하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봉구안이 드디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니까 말이다.소욱의 마음은 수없이 흔들리며 설레었고, 그는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뭐라 했느냐? 듣지 못했다.”봉구안은 진지하게 말했다.“안 들리셨다면, 그냥 넘어가시지요.”소욱은 즉시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말했다.“구안아, 일부러 그러는 것이냐? 난 그저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건데, 그것도 안 되겠느냐?”봉구안은 그의 손을 떼어내고는 고개를 들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예, 제가 폐하를 좋아합니다...”소욱의 머릿속에서는 불꽃놀이 터지듯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났다. 그는 봉구안을 꼭 껴안고 마치 꿀을 들이킨 듯 달달한 마음에 젖었다.“구안아, 정말 기쁘구나. 네가 이렇게 말해 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그녀가 겪은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마음은 아프고도 놀라웠다.눈사태가 닥쳤을 때, 상식적으로라면 측면으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당시 눈사태는 너무 빠르고, 그녀는 부상당해 경공을 펼치기 어려웠다. 눈사태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곳에는 봉구안을 죽이기 위해 달려온 살수들도 있었다.그녀는 달아나는 척하며 결사적으로 싸웠다. 실상은 눈사태가 발 밑에 닥치기 직전, 한 산돌을 찾아 몸을 숨겼다. 그녀는 몸에 있던 채찍으로 몸을 돌과 묶어 눈사태의 충격을 피했다.그 돌은 그녀가 눈사태에 휩쓸리지 않고 묻히지 않도록 막아줬다.눈사태가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속도가 느려졌고, 그녀는 최대한 수영하듯 몸을 떠올려 눈 위로 나오려 애썼다.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구조대가 그녀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그녀는 체력을 모두 소진하여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눈을 떴을 때는 늙은 의원이 그녀를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맹 부인이 나오는 것을 본 후, 완부옥이 곧바로 다가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사모님, 그 천한… 아니, 그 폐하께서 소환을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몇 번이나 맹 부인이 그녀를 타일렀지만, 여전히 ‘사모님’이라 부르는 것을 고집했다.맹 부인은 황제가 밤새지 못하고 지친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래.”완부옥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그럼 폐하께서 소환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나요?”맹 부인은 그녀를 곁눈질하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완전히 불가능한 게 아니라 어려운 것뿐이다.”완부옥은 마치 구실을 찾은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사모님 말씀 맞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나요?”맹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황제에게 소환이 이 사실을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황실은 자손을 중시한다. 황후가 아이를 갖기 어렵다면 이는 큰 문제였다.완부옥은 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럼 내가 황제에게 알려야겠군! 황제만 없어지면 소환은 내 것이 될 거야…’다음 날 아침.소욱은 아침 일찍 세수를 마치고 곧장 본진으로 향해 장군들과 함께 적을 맞설 전략을 논의했다.“폐하, 지난 밤에 북연군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됩니다. 이미 정찰병을 보냈습니다.”“폐하, 맹 소장군의 몸 상태는 어떠하십니까?”모두 이미 맹 소장군이 여인이고, 앞으로 황후가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폐하, 지난번 맹 소장군이 경량 기병대를 이끌고 적진을 급습하지 않았다면 시간을 벌 수 없었을 겁니다…”소욱은 그 말을 듣고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그녀가 돌아오자마자 전투에 나섰단 말인가?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구나!소욱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바로 봉구안이 있는 장막으로 돌아갔다.그런데 완부옥이 안에 앉아 그녀의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약을 직접 먹이겠다고 고집하고 있었다.“제가 직접 먹여줄 테니 입 벌리십시오! 어서 마시란 말입니다!”봉구안은 손을 쓸
봉구안은 담담히 소욱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고, 그저 한결같이 맑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창백한 얼굴은 이전보다 더 야위어 있었다.“폐하께서 이 일을 마음에 두신다면,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그는 몇 번이고 황자를 원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에게 그 바람을 채워줄 수 없을지도 몰랐다.이 사실은 명확히 이야기해야 했다. 그의 선택이 어떻든, 그녀는 원망하지 않을 작정이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붙이며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무엇을 마음에 두겠느냐?”“내가 마음에 두는 건 오직 네가 내 곁에 있느냐 뿐이다.”“구안아, 내가 바라는 건 너뿐이다.”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기댄 채 가볍게 비비며, 마치 길 잃은 외로운 늑대가 연인을 찾은 것처럼, 혹은 황폐한 땅에서 방황하던 사자가 가족을 발견한 것처럼, 거칠고 불안하던 기운이 순종적이고 평온하게 바뀌었다.그는 계속해서 반복했다.“내가 바라는 건 너뿐이다…”그녀가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그녀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그의 아내이며,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그가 인정한 황후였다.그는 그녀에게 미안했고, 그녀가 고통받는 것이 마음이 아팠으며, 그녀를 잃을 뻔했다가 되찾은 기쁨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녀를 나무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녀가 몸을 다쳐버린 건, 소욱의 동생인 소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위험에 내몰았기 때문이다.그녀를 거의 잃을 뻔했는데, 그에게 다른 것을 더 바랄 자격이 있을 리 없었다.“구안아, 북연군을 물리치고 나면 우리 돌아가서 혼인하자. 무슨 길일 같은 건 상관없다. 난 당장이라도 너와 혼인하고 싶다.”그는 단 한 순간도 더 그녀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봉구안은 그의 품에 안겨 있으니 몸이 한결 따뜻해졌다.그녀는 고개를 그의 가슴에 기대어 올리고, 잠이 쏟아졌다.귀에는 그의
주요 장막 안에서는 각 장군들이 하나씩 보고를 올렸다.“폐하, 북연군의 병력은 20만 명입니다. 그들이 이전에 비밀리에 선성 일대 방어선을 돌파하여 원군의 경로를 차단했으며, 자칫하면 황성을 위태롭게 할 뻔했습니다.”“맹 소장군의 전략이 빼어나고, 주국공이 신속히 귀환하여 대군을 이끌고 선성을 지켜낸 덕분에 북연군의 계략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며칠 동안, 저희는 이미 북연군을 동방 너머로 몰아냈습니다.”“폐하, 겉보기에는 북연군이 동방 밖으로 물러가 남제에 당장 위협은 없어 보이나, 실상은 다릅니다. 여기 보십시오…”그 장군이 모래판 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선성 일대의 중부 방어선은 선성, 묵성, 감주, 조유관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연결된 방어선입니다. 북연군이 이전에 조유관을 돌파했으며, 이곳 방어는 이미 붕괴된 상태입니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조유관은 필시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주 전장이 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거의 방어 불가 지역이라 보시면 됩니다.”소욱은 모래판 위에 작은 깃발을 조유관 위치에 꽂으며 말했다.“어찌 됐든 간주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더는 방어선을 뚫리게 해선 안 된다. 조유관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폐하, 맹 소장군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만 동부군은 이미 군심이 흩어져 북연군과 다시 싸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렇다면 다시 모아라. 모으지 못하겠거든 모두 물러나게 하거라!”“남제의 병사들이 싸우고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동부의 주장 관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공손히 아뢰었다.“폐하, 북연군의 이번 심리전으로 인해 병사들이 전투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재난은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신 등은 맹 소장군과 여러 날 의논했지만, 합당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관래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한길이 급히 들어와 보고했다.“폐하, 소장군의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소욱은 그 말을
태황태후는 결국 천옥에 갇히고 말았다. 겉으로는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녀를 지켜보는 왕자들은 입이 떡 벌어질 뿐이었다.태황태후도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니…왕자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이 크게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혹시 자신들도 정말 태황태후를 따라 반역에 가담한 게 아닐까?절망스러운 탄식과 함께 왕자들의 눈빛이 서로 교차했다.이 노망난 노인이 왕자들의 인생을 모조리 망친 것이다.왕자들은 뒤늦게 이를 갈며 속으로 분노했다.바로 그때, 천옥 밖에서 터져 나오는 폭죽 소리가 들렸다. 새해를 맞아 터진 폭죽 소리였지만, 그들에게는 차라리 통곡 소리처럼 들렸다."좋은 섣달그믐밤에, 우리는 여기서 지내야 하다니. 정말 이게 무슨 꼴이람!"태황태후는 천옥에 갇히자마자 감옥 구석에서 기댄 채 희미한 숨소리만 내뱉고 있는 모용란과 그의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태황태후가 뒤를 돌아보자, 은위의 비웃음 섞인 시선과 마주쳤다."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사시다니, 태황태후마마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그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말하는 동안 손에 쥔 강아지풀을 흔들며, 대놓고 도발의 뜻을 내비쳤다.태황태후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다.모용란은 심하게 다친 상태로 감옥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겨우 숨을 쉬고 있었으며, 의식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그 아이는 태황태후에게 다가와 그녀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며 매달렸다."할마마마, 여긴 대체 어디죠? 너무 무서워요…”아이는 태황태후의 다리를 붙잡고 울며 매달렸다. 그러나 태황태후는 아이의 울음에도 불구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리를 뿌리쳤다."아가야, 나는 네 할머니가 아니다."태황태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이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모용란은 이미 중상을 입어, 감옥 구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태황태후는 이 모자를 바라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현재의 천옥에는 반란군들이 이미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다.더 이상 모용란을 구할 자는 없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 소욱은 확실히 보았다.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는 바로 봉구안이었다!그가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사람이었다!소욱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옭아매던 눈밭에서 벗어났다.그를 잡아끌던 보이지 않는 갈고리와 족쇄를 끊어내며 벗어났다.그는 낮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이것이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다그쳤다.동시에 봉구안 역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두 사람은 눈발이 휘몰아치는 한복판에서 서로를 향해 달렸다.마침내, 눈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서로를 끌어안는 그 순간에야 현실로 돌아왔다.소욱은 품 안의 사람을 꼭 껴안았다.눈보라가 몰아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따스함을 느꼈다.한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받치며, 그녀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숨결이 뒤엉켰다.귀에는 바람소리가 휘몰아쳤지만,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폐하…”소욱은 자신의 얼굴이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그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그녀가 다시 돌아와 주었음에 감사했다.하늘이 그리도 무심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그의 몸은 감각을 잃었지만, 그의 심장은 불타오르고 있었다.그 뜨거움이 그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그대로 쓰러졌다.…소욱은 그 이후의 일은 알지 못했다.두 시진 후,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따뜻한 장막 안이었다.눈을 뜨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구안아!”혹여나 이것이 꿈이었을까 두려워 그의 표정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그때 조용히 들려오는 한 마디.“여기 있습니다.”그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봉구안임을 확인했다!그녀 곁에는 맹 부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