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영.대군들은 황성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손덕방은 속으로 하늘에 감사하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폐하께서 군영에서 무사히 돌아가시니, 하늘이 도우셨사옵니다!”그는 격하게 경례하며 소리쳤다.“장수 손덕방, 폐하와 황후마마의 출발을 배웅하겠습니다!”소욱은 올 때는 말을 탔으나, 돌아갈 때는 마차를 타기로 했다.마차 안에서 그는 손수 귤 하나를 까서 반으로 나눠 봉구안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이리 좀 먹어보거라.”봉구안은 아무런 표정 없이 얼굴을 돌리며 답했다.“먹고싶지 않사옵니다.”소욱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그래, 짐도 사실 귤 따위는 좋아하지 않지. 시큼한 것은 줄곧 입맛에 맞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황후와 짐의 입맛이 참으로…”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봉구안은 갑자기 탁자 위에 놓인 귤을 집어들더니 한 입에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과 맞서려 한다는 걸 알고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오히려 흥미를 느낀 듯, 미소를 지었다.최소한 어젯밤처럼 냉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때, 마차 밖에서 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급히 전해드릴 밀서가 있사옵니다!”소욱은 손을 내밀어 밀서를 받아들었다.그러면서 봉구안을 힐끗 바라보며 밀서를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네가 먼저 보겠느냐?”봉구안은 눈을 살짝 찌푸리며, 무뚝뚝하게 답했다.“그런 농은 그만두십시오. 어찌 중요한 정무를 두고 저와 농을 하는 것입니까?”소욱은 밀서를 열어 훑어본 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그는 곧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젯밤 짐이 네게 약조했던 큰 선물, 이미 준비해 두었다.”봉구안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는 그런 건 필요 없사옵니다.”소욱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그녀를 제 앞으로 잡아끌더니, 허리를 가로잡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짐의 사람들이 독을 쓴 그 검은 옷을 붙잡았는데, 이 선물도 필요 없다 하겠느냐?”봉구안은 순간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십니까?”“짐이 거짓을 말하
황성.진왕이 군량을 빼돌렸다는 죄목으로 붙잡혔다. 증거가 명백했으므로, 서왕은 황제의 밀명을 받아 진왕을 감옥에 가두었다.진왕은 억울함을 외치며, 서왕이 자신을 모함한 것이라 주장했다.이 일은 태황태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하지만 태황태후가 나서도 서왕은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한편, 황제가 이끄는 대군은 반송길에 접어들었고, 사수성을 나선 후 여정이 험해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군은 야영을 선택했다.봉구안은 말했다.“소첩은 마차 안에서 지내겠사옵니다.”같은 자리에서 소욱과 함께 지내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요며칠 밤에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니 매우 불편했다.소욱은 억지로 그녀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지치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들 부부의 냉랭한 분위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요 며칠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자주 다투시는 듯하네.”“그러게. 얼마 전까지는 화목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그중 한 병사가 조심스레 말했다.“내가 들은 게 있네. 황제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잘못한 일이 있는 모양이야.”모두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서 말해 보게.”병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말에 물을 먹이러 갔는데, 마차 안에서 황제 폐하께서 황후마마께 사과하는 소리를 들었지.”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폐하께서 그런 말씀을? 거짓말 말게나.”병사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짜라니까! 폐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네. ‘아직도 화났느냐? 어서 이리 와서 네 작은 손을…’”“닥치게!” 다른 병사가 발로 찼다.농담이라며 대꾸할 필요 없다는 태도였다.그 병사는 엉덩이를 만지며 헤헤 웃었다.사실 그들 간의 대화는 그 병사가 지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실제로 황제가 황후에게 사과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였다.…마차 안.봉구안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한밤중, 누군가 마차에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긴장하며 몸을
쾅!봉구안의 주먹이 날아들자, 소욱의 턱이 빠져버리고 말았다.맞고도 정신을 못 차린 그는 다음 날 밤, 또다시 장막을 버려두고 봉구안의 곁으로 몰래 들어왔다.이번에는 행동을 조심하여 그녀에게 손을 대거나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그 덕에 봉구안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묵인하였다.하지만, 이내 그의 본성이 또 드러나고 말았다.며칠 뒤, 그들이 묵은 역참에서 사건이 벌어졌다.밖에서는 두 사람이 화목한 부부처럼 보였으나, 문이 닫히자 봉구안은 바로 바닥에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그러나 소욱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며 말했다.“내가 바닥에서 잘 테니, 너는 침상에서 자거라.”봉구안은 단호히 거절했다.“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황제이십니다. 당연히 침상에서 주무셔야 합니다.”그러자 소욱은 느긋하게 반박하였다.“황제와 황후라면 본디 같은 침상을 쓰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후 이 나라를 위해 힘을 써야되겠구나…”이 말에 봉구안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러자 그녀는 냉랭하게 말했다.“그러하오면, 이 바닥은 폐하께 양보하겠나이다.”소욱은 잠시 벽 쪽을 보더니 천천히 바닥에 누웠다.그는 조용히 누웠으나, 몸을 옆으로 돌려 침상 위의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침상에 올라가자, 곧바로 비단 장막이 내려졌다.밤이 깊었고, 봉구안은 편히 잠들었다.그러나 한밤중, 그녀는 누군가 곁에 있음을 느끼고 눈을 떴다.그곳에 누워 있던 이는 다름 아닌 소욱이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를 밀쳤으나, 그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바닥에 쥐가 있어, 침상에서 자는 것이 안전하겠다.”봉구안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쥐라니요? 이는 분명 폐하께서 지어낸 거짓말이옵니다!”소욱은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정말이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봉구안은 눈살을 찌푸렸다.“쥐가 있더라도, 폐하께서 그것을 무서워하실 리가 없사옵니다.”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무섭
궁중에는 영비와 비슷한 모습의 여인들이 많았다.이 순간, 소욱은 몹시 혼란스러워 보였다.봉구안은 그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다.다른 비빈들에게는 늘 냉담했던 그의 눈에, 눈앞의 여인을 향한 복잡한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영비…”소욱의 미간에는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그 순간, 그 여인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곧장 그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폐하, 소첩입니다. 소첩은 죽지 않았사옵니다. 소첩이 돌아왔나이다!”옆에 있던 녕비는 이를 보며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반면, 현비는 품위 있게 말을 보탰다.“폐하께서 대승을 거두셨고, 영비마마께서도 돌아오셨으니, 이 또한 경사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소욱은 어색한 듯 품에 안긴 여인을 살짝 밀쳐내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곁에 서 있는 황후를 바라보았다.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비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 황후를 바라보며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의식한 듯했다.“황후마마.”봉구안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대꾸했다.“예를 생략하거라.”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본디 불가능한 일이었다.이로 보아 영비의 죽음에는 분명 감춰진 진실이 있는 듯했다.하지만, 봉구안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관한 일이었다.영비보다 그녀가 더 마음에 두고 있는 이는 바로 그 검은 옷을 입은 독인이었다.그녀는 반드시 단회욱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영화궁.봉구안이 돌아오자마자, 최 상궁은 급히 그녀를 따라와 영비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마마, 오늘 영비마마를 보셨사옵니까?”“정말 놀라운 일이 아니겠사옵니까!”“며칠 전부터 영비마마의 소식으로 궁중이 온통 뒤집혔다 하옵니다.”“듣자 하니, 그녀께서 과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태황태후마마의 비밀스러운 보살핌을 받아왔고, 이제야 완쾌되어 돌아오셨다 하옵니다….”봉구안은 마음에 짙은 불쾌함이 스쳤다.“물러가라.”연상은 그녀의 심중을 눈치챘으나, 감히 더 묻
검은 옷을 입은 자는 감옥에 갇혀 철저히 감시를 받고 있었다.혀를 깨물어 자결하거나 독을 먹어 목숨을 끊을까 염려해, 그의 입에는 철제 입막이가 씌워져 있었다.봉구안이 감옥에 들어서자, 검은 옷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마치 웃고 있는 듯 보였다.입막이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가면이 벗겨진 그의 얼굴이 봉구안의 눈에 들어왔다.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나이, 두 눈은 끝이 위로 치켜올라가 날카롭고 사납게 보였다.봉구안은 머릿속으로 무수히 그려보았던 원수의 얼굴을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그녀는 옥졸에게 명령했다.“그 입막이를 벗겨라.”쇠사슬이 풀리자, 검은 옷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소장군, 요즘은 평안한가?”그는 마치 죄인이 아닌 듯,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하듯 가벼운 어조였다.감옥 안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봉구안은 서두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단회욱은 대체 어떻게 죽였지?”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속에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검은 옷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이미 알고 있지 않소? 그는 그대에게 날아든 천수지독을 대신 막아내고, 독이 퍼져 죽었소.”봉구안의 눈빛은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다.“왜 그가 내 목숨으로 5년을 바꾸었다고 말한 거지?”검은 옷은 일부러 기억을 더듬는 척하며 눈을 위로 굴렸다.그리고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그런 일이 있었나? 대체 어디서 들은 이야기요?”봉구안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그의 얼굴을 냉혹하게 내려다보며 단호히 외쳤다.“당장 말하거라!”검은 옷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태연히 답했다.“북대영의 전신의 손에 죽는다면, 영광일 뿐이오.”그 말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았다.봉구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네가 죽음을 원한다면, 내가 네 바람을 절대 들어줄 리 없다.”검은 옷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여기가 천옥이란 걸 알고 있소. 심문이든 고문이든, 하고
영비는 서왕에게 목을 졸렸지만, 여전히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비록 전하께서... 저에게 이렇게 하신다 해도, 저는 여전히 전하를 용서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폐하께 전하께서 저를 궁에서 데리고 나갔고, 이렇게 오랜 세월 저를 가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이지 않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전하는 저를 정말로 해칠 수 없으십니다.”결국 서왕은 손을 풀며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모용란, 너는 후회하게 될 것이야.”영비는 여전히 여린 모습을 보였다.“그 말은 제가 전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입니다.”“저희는 모두 폐하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까?”“어떤 수단을 쓰느냐는 그저 저희의 선택일 뿐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서왕의 앞에 다가가 그의 허리띠에서 옥패를 살짝 빼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기억하십니까? 저희 셋은 서로를 지키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로 했지 않습니까.”서왕은 갑자기 기분 나쁜 한기를 느끼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모용란,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야.”그는 단호히 말을 마친 후, 거침없이 돌담을 빠져나갔다.영비는 어두운 바위 속에 혼자 남아, 서왕의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그녀는 소리 없이 속삭였다.“나는 널 용서했어, 정말로.”…자녕궁.영비가 궁에 돌아온 이후, 태후는 한 번도 편안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영비가 궁으로 돌아온 그날, 태후에게 와서는 여러 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그중에는 과거의 행동을 용서할 것이며, 황제가 태후에게 처벌을 내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태후는 영비의 말 속에서, 언젠가 복수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태후마마, 약을 드셔야 하옵니다. 어의께서 말씀하시길, 약을 드시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으실 거라 하였사옵니다.”태후는 깊은 갈색 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 약을 밀쳐내며 말했다.“아
만수궁.태황태후는 영비에 대한 애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그녀는 의도적으로 영비를 자신 곁 자리에 앉히고, 온갖 말을 다 하며 그녀를 챙겼다.“어젯밤은 잘 잤느냐?”영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세월이 고요히 흐르는 듯한 은은한 우아함을 풍겼다.다른 후궁들은 그 광경을 보며 시기와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더 이상 연극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태후 역시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대극이 시작되기 전, 태황태후는 조용히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영비가 궁에 돌아온 일, 모두 알겠지만... 오늘 나는 옛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그 말에, 그녀는 태후를 바라보았다.“옛날, 영비가 병이 깊어 치료를 받지 못해 급히 장례를 치르다 죽음에 이를 뻔하였다.”“나는 영비가 누군가의 계략에 빠졌다고 의심하였고, 그 시체를 바꿔서 확인하였다.”“다행히 하늘의 은혜로 영비는 살아있었지… 다만 숨결이 너무 약해 죽었다 판단한 것이었어.”모든 후궁들은 놀라긴 했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래서 ‘시체는 최소한 3일을 두고 확인한다’는 규칙이 생긴 것이었다.태황태후는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어의에게 진찰을 받았을 때, 비록 살아있긴 했으나, 숨이 약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네. 그래서 나는 그때 의심했던 것이었어. 궁 안에 영비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숨기고, 영비를 옥양산에 있는 절로 보내 회복될 때까지 지내게 했던 것이었어.”모두 서로를 보며 눈치를 챘다.태황태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몇 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황제가 영비를 너무 아끼고 있었으니, 그런 사실을 바로 황제에게 알릴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궁 안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위에 있는 이가 하는 말에 따라, 그저 따라 말할 뿐이었다.그래서 모두 영비의 귀궁을 축하하였다.태후는 속으로 마음이 불편했다.태황태후가 말한 ‘영비를
소욱은 검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에 잠겼다.방금 태황태후의 말은 그조차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영비가 유산을 했다니!? 그것이 언제 있었던 일이란 말인가?’그때 가빈이 입이 간지러웠던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태황태후마마, 영비마마께서 유산을 하셨던 적이 있사옵니까? 왜 첩은 그런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사옵니까?”그 외의 후궁들 또한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태황태후는 영비의 손을 붙잡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일이야 황상이 출정한 후에 벌어진 일이니라.”“그때 영비는 병중에 있었기에 몸도 마음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자신이 잉태한 줄도 몰랐었지.”“그저….”그 말을 하며 태황태후는 일부러 태후를 흘깃 쳐다보았다.태후는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며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녀는 태황태후의 책망 어린 눈길을 피하며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번졌다.영비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하나였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바로 간접적으로 그 아이를 해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었다.당시 태후가 어의들을 막아 세우지만 않았다면, 영비가 유산이라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이 일은 태후가 단 한 번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었다.황제가 이를 알게 되면, 그가 이 어미를 더욱 미워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하지만, 결국 종이는 불을 덮지 못하는 법. 이 비밀도 드러나기 시작했다.소욱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 있었다.그 틈을 타 봉구안은 그의 손을 놓았다.봉구안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멀리 연극무대를 바라보았다.지금 펼쳐지는 이 장면이 무대 위의 연극보다 훨씬 흥미로워 보였다.이 자리에서 소욱이 더 말을 늘어놓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괜히 말을 덧붙이다가는 자신이 영비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사실을 둘러싼 비밀까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소욱은 늘 그랬듯, 오늘 일은 오늘 해결하는 법이라 믿었다.만수궁의 연극이 끝나자마자, 그는 봉구안을 강제로 끌어내어
우상은 봉구안의 신념을 한 걸음씩 부수기 시작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소환, 넌 세상의 악인을 다 없애고 싶다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야.”“너는 이 지하 투기장이 존재하는 걸 조정이 정말 모를 거라 믿어? 여기 관할하는 관리 중에서 이걸 묵인하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느냐? 왜 그럴까?”“그들은 돈과 권력을 원하니까, 그리고 치적을 쌓고 싶으니까.”“그럼 넌? 넌 또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데? 너 우리를 다 반짝이는 너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라고 생각하지? 우리를 이겨서 더 많은 사람들이 너를 대영웅이라 칭송하기를 바라는 거겠지.”“하지만 내가 묻겠다.”“그렇게 말하는 정의란 도대체 뭐냐? 악인은 또 누구냐?”“내가 악인이라면, 죄악을 방조하는 조정은 악인이 아니겠냐?”“그래, 넌 날 죽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사람 마음속의 악념까지 죽일 수 있겠느냐?”“내가 너한테 알려주지. 악념이 존재하는 한, 죄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너 따위 필부가 뭔데 사람 본성을 상대로 싸운다는 거냐?”“넌 내가 악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선행을 해본 적 있다.”“예를 들면, 화살에 맞아 죽어가던 산토끼를 살려준 적도 있지.”“네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냐?”“악념 하나 품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 칠정육욕 아래 완벽한 인간이란 없단다.”“소환, 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엄격해. 그건 정의가 아니야…”철창 밖, 차선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소환, 제발 이겨야 해!’강림은 돈주머니를 단단히 움켜쥐고 속으로 빌고 있었다.‘제발, 소환만 무사하면 십 년 동안 뭐든 다 망해도 상관없어!’소환에게 돈을 건 관중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는 지금 우상에게 짓밟힐 위기였고, 사람들은 소리쳤다.“내가 쟤한테 돈을 걸었으면 안 됐어!”“야, 네가 이기라고 했잖아! 빨리 일어나라고!”“야, 이기든 지든 너무 보기 안 좋잖아!”“잠깐… 뭐야? 무슨 일이
우상이 철창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자신의 집 마당이라도 되는 양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곳을 시합장으로 여기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철창 문이 닫히고서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봉구안에게 물었다.“소환, 저것들 봐라. 니가 이길 거라 믿는 사람이 있긴 한 거지?”봉구안은 냉정한 얼굴로 대답을 삼켰다.그 순간, 철창이 천천히 끌어올려졌다. 땅에서 떨어진 철창은 하늘 중간쯤에 멈췄다.그 후에도 우상은 움직이지 않았다.두 손을 등 뒤로 깍지 낀 채,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설교하듯 말했다.“소환, 넌 여전하구나. 아직도 저렇게 젊은 혈기로 설쳐대다니.”“이런 식으로 싸우면 안 되잖아.”“내가 네 속셈 모를 줄 아나? 네가 원하는 건 입맞춤 따위가 아니잖아. 너는 이 기회를 틈타 정원아란 계집을 구하려는 거겠지.”봉구안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둘이 철창 안에서 주고받는 말은 관중들에겐 들리지 않았다.우상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속삭였다.“걱정 마라. 내가 굳이 이걸 폭로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싸움이 뭐가 재밌겠어? 반 시진 동안, 내가 쓰러지든지, 아니면 네가 죽든지... 난 이곳에서 너와 끝장을 볼 거야.”그가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웃음을 지은 순간, 손에 힘을 모아 공격을 날렸다.봉구안은 날렵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우상의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오… 좀 실력이 늘었네?”이어지는 두 번째 공격.이번엔 번개같이 빠르고 맹렬했다.봉구안이 또 한 번 피했지만, 이번엔 처음처럼 여유롭지 않았다.우상은 여전히 웃었다.“보아하니, 실력이 꽤 늘었구먼.”그는 마음을 무너뜨리는 데서부터 싸움을 시작했다.관중석은 숨을 죽인 채 철창을 응시했다.봉구안은 우상을 보며 그가 저지른 모든 악행들을 떠올렸다.그녀의 분노가 타올랐다. 주먹을 꽉 쥐며 공격에 나섰다.그러나, 그녀의 주먹이 그의 몸에 닿자, 아파한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이었다.
강림은 멍하니 우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평범하게 생긴 남자, 군중 속에 섞이면 금세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남자를…“무림맹이 처음 설립될 당시, 강호에 세 명의 악귀가 나타났는데, 우상이 바로 그들 중 우두머리였소.”“그들은 소림의 속가 제자로, 방화와 약탈, 강탈, 살인을 일삼으며 악행을 저질렀지. 무림맹은 이 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숭화산에서의 결전을 벌였소.”“그 전투에서 무림맹은 합심하여 두 명의 악귀를 처치했지만, 우상의 무공은 너무 강해서 그만 도망치고 말았소.”“소환은 그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상은 동방세의 신부를 납치했소…”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강림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몸이 오싹해졌다.평소 장난스럽고 가벼운 그의 태도와는 달리, 그는 잠시 멈칫하며 목이 메인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놈은 동방세의 부인을 토막으로 나눠서 매일 한 조각씩 보냈었소. 그 일로 동방세는 거의 미쳐버릴 뻔하였소.”“나중에 소환이 우상을 찾아내 결투를 벌였지만, 그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다만, 그 싸움에서 소환이 패배했다는 것만 알려졌소.”“소환은 원래도 부맹주라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싸움 이후로는 아예 무림맹을 떠나버렸소.”“그 후 몇 년 동안 동방세는 계속 우상을 찾아다녔는데, 오늘 여기서 저 놈을 보게 될 줄이야.”강림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그는 그 시절 겨우 열몇 살의 어린 소년으로, 무공도 대단치 않았고, 고작 곁에서 한마디 거들며 허세나 부리던 아이에 불과했다.그러나 우상의 잔혹함은 그의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었다.동방세의 부인의 죽음은 지금도 무림맹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그것은 분명히 소환의 가슴 속 깊이 박힌 한 가시일 터였다.강림은 지금이라도 소환과 함께 우상을 죽이고 싶었다.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소욱의 마음도 무거워졌다.그는 봉구안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 모든 풍류와 연애는 그녀가 겪은 수많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함을 쳤다.“보여줘! 보여주라고!”“제기랄, 우리 이렇게 많이 네 승리에 돈을 걸었는데 네가 기권하면 우린 다 쫄딱 망한다고!”“정원아를 어서 끌어내! 나도 그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고 싶으니 말이야!”봉구안의 한 마디가 사람들을 불안하고 동요하게 만들었다.사회자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조용, 조용! 다들 조용하시오!”“여러분에게 보장하겠소. 정원아는 분명 살아 있으니 어서 진정하시오…”봉구안은 단호하고 냉랭하게 말했다.“정원아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저는 경기를 포기하겠습니다.”그녀가 두 판을 연달아 이긴 후, 그녀에게 돈을 건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포기한다면 그들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셈이었다.사람들은 그녀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정원아를 끌어내라!”“맞아, 안 그러면 우린 돈 돌려달라고 할 거야!”천 명에 가까운 관중들이 외치는 소리에 사회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그는 슬며시 자리를 떠나 비밀문으로 들어가 안쪽에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나타났다.“좋소. 우리 주인께서 말씀하시길, 정원아를 먼저 데리고 나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소.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실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다만, 여러분들은 추가로 돈을 더 걸어야 할 것이오!”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좋아!”전진파의 사람들은 얼굴이 굳었다.그들 또한 정원아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곳에서 다시 철창 하나가 내려왔다.이번 철창은 조금 작았다.안에는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있었고, 그녀는 힘없이 구석에 기대어 있었다.철창이 땅에 닿자, 전진파의 제자들이 애타게 그녀를 불렀다.“원아! 정원아!”“사매님!”희미하게 정신이 든 정원아가 눈을 떴다.“다행이다, 부관장님! 사매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사회자는 봉구안을 향해 물었다.“어떻소?”그는 곧바로 신호를 보내 철창을 다시 올리려
봉구안은 더 이상 방어에만 치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갑자기 이전에 ‘피박쥐’ 고원처럼 철장에 매달려 위로 올라갔다.상대가 주먹을 위로 치켜올리자, 봉구안은 그의 손목을 움켜쥐고 몸 전체의 무게를 실어 내리눌렀다.그 과정에서 상대의 권법을 깨부수고 손목뼈까지 탈구시켰다.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살인 실을 빼앗아 목에 감았다.봉구안은 실을 세게 조여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찰나의 순간, 관중석에서는 모두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누군가의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간절히 기다리는 눈빛이었다.그러나 봉구안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상대를 간신히 기절시키는 선에서 멈췄다.“죽여라! 죽여!”“내 돈 걸었어!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줘야 할 거 아냐!”관중들의 불만 섞인 고함이 철장을 울렸다.하지만 봉구안은 그 모든 소음을 무시하고, 차갑게 무대의 주최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다음 상대를 내놔.”주최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수환 승!”소욱은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숨을 내쉬었다.이제 다음 도전자를 선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강림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전진파 제자들에게 외쳤다.“뭐하고 있어? 빨리 나가야지! 너희는 남은 수들이 많잖아!”전진파 제자들은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그러나 명문 정파로서 그들은 정정당당히 싸우고 이기고 싶었고, 속임수를 쓰거나 억지로 나서기를 꺼려했다.하지만 이들이 반드시 봉구안을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시간을 충분히 끌며 그녀를 더 강력한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표였다.그 순간, 진한길이 황제와 함께 도전자 대열로 나서는 것을 보았다.그는 황제의 의도를 즉각 파악하고 그를 따라갔다.강림도 망설이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죽으면 죽지! 최악의 경우 소환에게 지는 거겠지!”“부관장!”차선아 역시 앞으로 나섰다.그러나 주최자는 여러 사람 중 몇 명만 선발했고, 소욱은 결국 선택되
차선아는 누군가에게 안긴 채로 몸을 안정적으로 기댔다.그녀는 곧바로 뒤돌아섰다.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녀는 경계하며 손을 칼처럼 세워 방어 태세를 갖췄다.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는 상대를 보고 그 손칼을 순식간에 거뒀다.“소환! 네가 왜 여기에!”봉구안이 그녀의 등을 받쳐주며 바닥에 안전히 착지하도록 도왔다.차선아의 눈가가 순간 붉어졌다.그녀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소환이 하늘에서 내려올 줄은 말이다.차선아만이 아니었다.소욱과 강림 역시 깜짝 놀랐다.분명 바로 옆에 있던 소환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소욱은 곧바로 몸을 날려 봉구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무대 위, 향은 이제 겨우 절반이 타들어간 상태였다.도전자들은 마치 홍수처럼, 또는 메뚜기 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그들을 멈출 수는 없었다.전진파의 제자들은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이 모든 것을 반드시 멈춰야 했다!봉구안은 차선아를 내려놓고 소욱의 제지를 무릅쓰고 무대로 날아올랐다.차선아는 눈을 크게 뜨며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그러나 소욱은 알고 있었다.봉구안이 결국 참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봉구안은 차갑게 선언했다.“도전하겠소!”그 말이 떨어지자,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싸움을 멈추고 주목했다.전진파의 제자들은 신속히 차선아 곁으로 몰려들어 그녀를 보호했다.“부관장님, 괜찮으십니까!”그들은 봉구안을 경계하며 무대를 바라봤다.무대 위.철장이 열리자 봉구안은 안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고 나서도 방민은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알아보겠어. 당신이 바로 소환이군.”그녀가 아직 부관장이 되기 전, 단 한 번 마음을 두었던 남자.방금 그녀는 소환이 차선아를 구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봉구안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절 믿으십시오.”방민은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정원아는 여전히 그들의 손에 있었다.전진파의 제자들이 이 순간
봉구안은 강림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오?”강림은 그녀가 손찌검할까 두려워 얼른 소욱 쪽으로 몸을 돌렸다.“대체 왜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오? 차선아랑 완부옥,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다퉜던 이야기를 누가 모르겠소?”“만약 완부옥이 차선아의 행적을 전진파의 장문인에게 고자질하지 않았다면, 장문인이 그녀를 직접 데리러 오지도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자네는 지금쯤 두 여자를 모두 품에 안고 살고 있었을 것이오!”“이렇게 젊은 나이에 부관장이 되다니, 참 대단하지 않소?”소욱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주먹을 살짝 쥐었다.‘참으로,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다투었다니.’그는 속으로 비웃었다. 그의 소장군이란 사람은 정말 매력적이구나.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이미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아니, 잠깐.만약 그녀가 남자라면, 그는 오히려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소욱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가 정신을 가다듬었다.봉구안은 낮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강림, 남의 집 아씨 명예를 자네 같은 놈이 망쳐놓은 것이오. 입 놀리는 걸 멈추지 않으면, 자네 입을 찢어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줄 아시오.”강림은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속으로는 억울함이 가득했다.틀린 말도 아니지 않는가?차선아는 당시에 소환 때문에 전진파를 떠나려 했고, 그녀가 소환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그는 문득 소욱과 소환이 손을 맞잡고 다정하게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설마...!’강림은 한순간 깨달음을 얻었다.‘이거였군! 소환은 이미 새 연인을 찾았고, 그래서 소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거였어!’‘그렇다면... 둘이 정말 그렇고 그런 사이란 말인가?’‘소환이 언제부터 남자를 좋아했지?’강림은 머릿속이 온갖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한편, 차선아는 여전히 허리를 굽힌 채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그녀의 몸은 낮췄지만, 이는 결코 굴욕적인 태도가 아니었다.그녀 뒤에 서 있던
향 하나가 다 타려고 할 때, 전정파는 제자 한 명을 파견하여 패검을 벗고 단상에 오르게 하였다.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바였다.강림은 무대 위 올라온 사람에 대해 견식이 좀 있는지 봉구안과 소욱에게 그녀를 소개했다.“저 자는 전정파 사람 중 하나인 방민이오. 그녀의 검수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바람처럼 빠르지...”봉구안도 방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속공을 요령으로 하여 검객의 체형,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 모두 극히 큰 입문요구를 갖고있었다.소욱은 방민을 좋게 보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저 무대 위에서는 무기를 휴대하고 겨루어 볼 수 없으니,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강림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고원이 여인에게 약한 사람이길 바랄 수밖에 없겠군.”방민은 걸음걸이가 침착하여 철장에 들어갔을 때 전정파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스승님, 저 악당을 죽이십시오!”“사매, 우선 저 놈의 수법을 먼저 간파하셔야 합니다!”방민은 베일을 쓰고 손에 칼을 꽂지 않았더라도 두 눈은 여전히 확고하고 힘이 있었다.철장 속에서, 고원의 눈빛은 마치 입에 닿을 고기를 훑어보는 것처럼 그녀를 음산하게 훑어보고 있었다.“과연 미인이군... 헤헤, 난 미인을 좋아하지…”방민의 동공이 움찔하며 수축되었다.고원이 다가오는 순간, 그녀는 손에 내공을 급히 모아 한 줄기의 내공을 만들어내었다.내공은 순식간에 고원을 강타하며 그를 쓰러뜨렸다.봉구안은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전진파의 내공은 참으로 깊구나. 방민이 침착함만 유지한다면, 고원이 결코 어려운 상대는 아닐거야.’몇 번의 격렬한 공방 끝에, 방민은 점차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고원은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약점을 찾으려 애썼다.“미인들은 참으로 향기로워...”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철창을 붙잡았다.순간, 마치 벽을 타듯 몸을 날려 철창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그리고는 재빠르
봉구안의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철창 안, 그 마른 사내는 상대의 얼굴에서 살점을 뜯어냈다. 상대가 몸부림을 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상대 위에 올라타서는 내려오지 않았다. 얼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귀, 코, 심지어는 눈까지 파내어 생으로 삼켜버렸다.이토록 피비린내 나는 광경은 단지 한 잔의 차를 마실 정도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동안 관중석의 환호는 끊이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듯, 봉구안 일행을 완전히 삼켜버린 듯했다.주변의 함성과 휘파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 봉구안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들리는 것은 광기에 찬 박수와 환호성뿐이었다.소욱은 이미 전쟁터의 잔혹함을 본 적이 있었다. 기근 속에서 서로의 자식을 바꿔 먹는 광경도 목격했다. 구중탑 안에서 약쟁이들이 시체를 뜯어 먹는 장면조차 익숙했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 아니라 단지 ‘승리’를 위해 상대를 뜯어먹는 이 마른 사내의 모습은 그조차도 경악하게 만들었다.더욱 소욱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은, 그런 장면을 보고 환호하는 관중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이런 광기를 만들어낸 자들이다.소욱은 점점 더 봉구안의 손을 꽉 쥐었다.“네가 저곳에 들어갈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정원아도, 양연삭도 데려올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놈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 너만 안전하면 돼.”소욱은 당장이라도 봉구안을 이 자리에서 끌고 나가고 싶었다.하지만 봉구안은 여전히 침착했다.그녀는 소욱의 손을 부드럽게 풀어내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소욱은 잠시 혼란스러웠다.‘지금… 나를 위로하는 건가?’철창 안에서 울려 퍼진 것은 커다란 비명소리였다. 그 덩치 큰 사내는 이제 눈알까지 잃었고, 피가 흐르는 눈구멍이 참혹했다. 그는 철창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기어나오려 했지만, 목청껏 외칠 수 있는 말이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