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시진 후, 밀실 밖으로 나온 서왕의 표정은 음울했고 목덜미에 여인의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유화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서왕은 구겨진 옷매무시를 정돈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입맛이 없다고 하니 이틀 정도 굶기거라.”“예.”남부.오백은 몰래 북연군 진영에 들어갔지만 화룡의 위치를 알아내지는 못했다.더 있다가는 들통날 수 있기에 그는 일단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봉구안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북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태자가 아니라 화룡을 가진 태자였다.남제가 지금까지 그들의 압박을 참아주면서 소규모의 역공만 하고 있는 것도 정말 큰 전쟁을 치를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화룡 때문이었다.봉구안은 대담한 의견을 내놓았다.“안 된다!”그녀의 계획을 들은 소욱은 당장에서 반대했다.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네가 위험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허용할 수 없다!”봉구안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의견을 피력했다.“북연이 강대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화룡 때문입니다. 전에는 줄곧 꽁꽁 숨기고 있어서 아무도 그 실체를 보지 못했지요. 만약 가능하다면 그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소욱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내 화룡은 없지만 북연이 두렵지 않다!”봉구안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그 말이 진심이십니까? 멀리까진 아니더라도 현재 상황만 놓고 보아도 결국에 압박을 못이긴 북연 태자는 화룡을 사용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저희가 그것을 파괴해야 합니다.”비록 그녀가 북연에 사람을 보내 북연 황제가 이 전쟁에 간섭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성사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러니 한곳에 모든 희망을 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소욱도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위험을 자처하는 걸 허용할 수는 없었다.봉구안은 결연한 표정으로 그에게 약속했다.“저를 믿어주십시오. 꼭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그가 여전히 말이 없자, 그녀는 강조해서 말했다.“폐하, 전시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폐
연나라 태자의 한마디에 호위들은 곧바로 봉구안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그러나 막 공격하려던 순간, 봉구안이 땅에 무언가를 던졌다. 곧이어 하얀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이 연기는 그들의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였다.연기를 겨우 걷어내고 보니, 봉구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태자 전하께서 화룡을 놓고 동맹할 뜻이 없으시니, 이 화룡은 저희도 사양치 않겠습니다."연나라 태자는 찬바람이 이는 듯한 음산한 눈빛으로 장막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방 어둠 속을 헤집었으나, 남강 사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는 눈을 부릅뜨며 크게 외쳤다.“쫓아라! 그 자를 잡아 오라! 산 채로든, 아니면 시체로라도!”"예!"그는 곧바로 자신의 심복 호위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너는 직접 화룡을 살펴보고 오너라. 만약 화룡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네 가족들을 모두 멸할 것이다!"호위는 즉시 명을 받들어 떠났다.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발이 떠나자마자 봉구안이 몰래 그의 뒤를 따랐다.사실 봉구안은 애초부터 떠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이 봉구안의 계책은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조금 뒤, 봉구안은 그 호위를 따라 연나라 군대의 대진 후방에 있는 울창한 숲에 들어섰다.여러 차례 굽이돌아 마침내 거대한 바위 앞에 도착했다.그 바위는 사람 둘이 겨우 닿을 만한 높이였으며, 달빛 아래 이끼와 낙엽으로 덮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봉구안은 암흑 속에 몸을 숨기고 그 바위 뒤에 무엇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추측했다.곧이어 바위 곁에 서 있는 연군 병사들을 보자마자 깨달았다.이 바위는 가짜군!그때 한 병사가 명령을 전했다."모두 듣거라! 태자 전하께서 명하시길, 며칠간 근무 인원을 늘려 이곳을 철저히 지키라 하셨다!""알겠습니다!"그 병사가 자리를 떠난 뒤, 봉구안은 소매에서 화살을 꺼내 그들을 향해 쏘았다.두 명의 병사가 소리 지를 틈도 없이
원래 멀쩡하던 ‘화룡’이 절반 이상 망가져 버렸다.가장 약한 지지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고, 비록 포신은 남아 있지만, 이미 쓸모가 없었다.연나라 태자의 비장한 병기, 그 무기가 이렇게 허망하게 파괴되고 말았다.연나라 태자는 분노에 휩싸였고, 그의 곁에 있던 호위무사에게 명령을 내렸다.“저 여인을 쫓아라!”봉구안은 경공이 뛰어나 빠르게 달렸으나, 강한 자 위에 더 강한 자가 있다더니, 그 호위는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국경을 넘으려는 찰나, 살기 가득한 호위가 그녀에게 점점 더 가까워졌다.그때였다.쉭!멀리서 날아온 화살 한 발이 그 호위의 이마를 정통으로 꿰뚫었다.이 화살은 예리하고 정확하여, 호위는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즉사하고 말았다.봉구안은 뒤를 돌아 시체를 한 번 보고, 곧이어 고개를 돌려 활을 내린 인물을 보았다.그는 죽음의 계곡 고지에서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는 바로 소욱이었다.그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에 든 화살을 내려놓았다.…남대영.황제와 황후의 장막 밖에는 오백과 진한길이 각각 경비를 서고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견제하며 끝내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장막 안에서는, 봉구안이 서둘러 머릿속의 설계도를 꺼내 종이에 옮기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말할 겨를도 없이 설계도를 베끼는 데 급급하였다.소욱은 그녀의 몸에서 나는 유황 냄새를 지적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그의 걱정은 단 하나였다. 그녀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 것.그녀가 그리는 것은 바로 ‘화룡’의 병기 설계도였기 때문이다.한 시진이 지나자, 봉구안은 간신히 완성된 설계도를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소욱이 조심스레 물었다.“다 그린 것이냐?”봉구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직 모자랍니다.”그녀는 특히 지지대와 포신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당시 연나라 태자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바람에 끝까지 살펴보지 못했던 것이다.안타깝게도, ‘화룡’은
양나라와 비교하자면, 북연의 병사들은 훨씬 용맹하였다.이번 전투는 무려 보름 이상 이어졌다.연나라 태자는 ‘화룡’이 파괴된 이후로 마음이 흐트러져 전쟁을 지휘하는 데 있어 전혀 체계가 없었다.그는 다른 이의 조언조차 용납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휘두르는 칼날의 쾌감에만 몰두하였다.겉보기엔 북연군이 진지를 굳건히 지키는 듯하였으나, 실상은 매일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있었다.이에 반해 남제는 대체로 승리를 거두었다.그러나 전투가 날이 갈수록 길어지자, 소욱조차도 눈에 띄게 초조함을 보였다.북연군은 끝까지 저항하며, 이번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한편, 남제 황궁에서는 진왕이 또 다른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그는 여러 사람을 동원하였으나, 황후의 밀실 통로를 끝내 찾지 못했다.남방으로 꾸준히 양식이 운반되는 것을 보고 그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찾아라! 땅이라도 뒤엎어서 남은 양식을 전부 찾아내라! 나는 믿을 수 없다! 그들이 정말 땅굴로 운반한 것이란 말인가!!”진왕은 히스테릭하게 분노하며 외쳤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는 점점 초라해지고 있었다.…10월 말.북연군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그 와중에도 연나라 태자는 미쳐 날뛰며, 병사들에게 진천뢰를 몸에 묶고 남제군을 향해 자폭하라 명령하였다.그 순간, 황제의 칙서가 도착했다.칙서와 함께 황궁의 고수들이 나타나, 연나라 태자를 강제로 결박하여 마차에 던져 넣었다.“태자 전하, 무례를 용서하소서! 폐하께서 내리신 명령이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진천뢰를 몸에 묶은 병사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로 칙서를 낭독하는 환관을 바라보았다.한 신참 병사는 두려움에 떨며 흐느꼈다.“흑흑… 드디어 폐하께서 깨어나셨구나. 이 칙서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 거야…”그가 처음 전장에 나섰는데, 이런 광기의 군주를 만나다니, 누가 이런 상황을 예상했으랴.연나라 태자는 마차에 실린 후에도 끊임없이 외쳤다.“이 몸을 당장 풀거
남방, 군영 안.소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강서를 봉구안에게 건넸다.“연나라 황제의 글씨가 제법 괜찮구나.”그는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강서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녀가 스스로 알아차리길 원했다.그러나 봉구안은 문서를 흘긋 보고는 담담히 물었다.“폐하, 전쟁이 끝났사옵니다. 언제 귀경할 계획이시옵니까?”소욱은 미간을 찌푸렸다.그와 황후 간의 혼인 계약은 1년으로 정해져 있었다.이번 전쟁으로 인해 이미 몇 달이란 시간이 흘렀으나, 황후가 그의 곁을 지켜준 덕분에 그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연나라 황제의 강서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연태자의 목숨까지 요구했을 터였다!황성.객잔에서 진왕의 호위가이 급히 방으로 들어왔다.“나으리… 북연이 항복하였습니다!”이것은 분명 좋은 소식이어야 했다.그러나 진왕에게 있어 이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이렇게 끝난단 말인가…”끝난 것은 단지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황제에 대한 꿈도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진왕은 이를 갈며 후회했다.“그 내기 따위에 집착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문득 깨달은 듯, 그는 호위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내가 어리석었구나. 양식을 탈취하려고만 하였거늘… 차라리 황궁을 바로 공격했어야 했다!”호위는 그의 점점 험악해지는 표정을 보고 불안에 떨었다.“나으리, 폐하께서 곧 돌아오십니다. 차라리 서주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진왕은 그제야 표정이 풀리더니, 곧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래야겠다. 소욱이 곧 돌아오겠구나. 내가 무엇을 하려 해도 이미 늦었을 것이다.”그는 차마 황제를 시해할 수도 없었다.황후가 숨긴 양식조차 찾아내지 못한 무능한 자들이 어찌 황제를 시해할 수 있으랴!모두 쓸모없었다!진왕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짐을 챙겨라. 서주성으로 돌아간다!”호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그의 주군이 충동적이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만약 연태자 같은 군주
봉구안은 소욱을 뒤로한 채 검은 옷을 입은 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죽음의 계곡 바깥까지 나아갔다.그녀는 마침내 그와 맞닥뜨렸고, 힘을 써서 그의 넓은 검은 옷을 잡아당겨 벗겼다.그러나 그는 가면을 쓰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었다.검은 옷을 입은 자는 몇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다시금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중, 봉구안은 그의 손가락이 여섯 개인 점을 발견하였다.‘그 자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바로 그날 천수지독의 주인임이 분명했다!봉구안의 눈에 살기가 짙게 피어올랐고, 그녀의 공격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그러나 그 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대체 너를 황후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맹 소장군이라 불러야 할까?”“단회욱이 자신의 목숨으로 너의 운명을 바꾸지 않았다면, 오늘 밤 너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익숙한 이름을 들은 순간, 봉구안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그가 단회욱의 이름을 아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으나, 그녀의 정체까지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 틈을 타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뒤로 물러나더니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그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냉소를 지었다.“보아하니, 너는 단회욱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모양이군.”봉구안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어서 말하거라…!”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한 그림자가 그녀를 덮쳐왔다.그림자는 그녀를 껴안고 빙글 돌았고, 봉구안이 뒤를 돌아보니, 소욱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마주쳤다.“걱정했다.”소욱은 차갑게 말했다.그제야 봉구안은 검은 옷을 입은 자 외에 또 다른 인물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그 역시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훨씬 젊어 보였다.그는 나뭇가지 위에 가볍게 몸을 얹고, 활과 화살을 들고 있었다.달빛 아래 그의 흰옷은 눈부시게 빛났고, 입가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연극을 보고 있는 듯했다.그가 두 번째 화살을 쏘려 하자, 검은 옷을 입은 자가 그를 단호하게 꾸짖었다.“물러가거라!”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어둠
소욱의 팔 상처는 깊지 않아 살갗만 약간 벗겨진 정도였다.그러나 지금 그는 고통을 억누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가 진짜 아파하는지, 아니면 연기인지 봉구안은 금세 분간할 수 있었다.지금은 전자였다.봉구안은 곧바로 군의관을 불러들였다.그러나 소욱은 여전히 강한 척하며 말했다.“짐은 아무렇지도 않다…”군의관은 그의 맥을 짚고, 상처를 다시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이상을 찾지 못했다.봉구안은 군의관을 움켜쥐고 단호히 물었다.“그 화살은! 제대로 보았느냐?”군의관은 잠시 얼어붙었다.“화, 화살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사옵니다…”봉구안은 그를 놓아주고 소욱에게로 눈길을 돌렸다.소욱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꽉 쥐고 있었다.이마와 목덜미의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이 역력했다.그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숨기려 했지만, 제왕의 위엄이 손상될까 걱정되는 기색이 역력했다.군의관이 더 있어 봐야 무용하다고 판단한 봉구안은 그를 물러가게 했다.군의관이 나가자, 소욱은 고개를 들어올렸다.그의 눈에는 붉은 핏발이 서려 있었다.“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그가 이제 믿을 수 있는 이는 봉구안과 진한길뿐이었다.봉구안도 한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그는 분명 중독되지 않았는데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러던 중 봉구안은 문득 남강의 여자들이 죽어갔던 일이 떠올랐다.그녀는 소욱을 향해 불쑥 물었다.“전하, 저를… 원하십니까?”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봉구안의 눈빛은 엄숙하고 단호했다.그 어떠한 정욕적 뉘앙스도 없었다.“제가 의심하기로, 전하께서는 남강의 여자들처럼 진단이 어려운 독에 중독된 것이옵니다.”소욱은 몸속에서 밀려드는 격통을 참고 있었다.마치 뜨거운 쇳덩이를 삼킨 듯 목이 타들어 갔다.“화살에 독이… 있었던 것이로구나…”소욱이 힘겹게 말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하옵니다.”그녀는 바로 진한길을 불러들이고 당부했다.“폐하를 잘 지키시오!”진한길은 사태를 파악하지
이 순간, 완부옥은 혈기가 잔뜩 끓어올랐다.그녀는 소환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평소에는 입으로만 희롱하며 진정으로 강제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이번에 그녀는 은혜를 빌미 삼아 소환을 곁에 붙잡아두려 했는데, 뜻밖에도 소환이 정말로 응한 것이다.“너…”완부옥은 침을 삼키며 말을 더 잇지 못했다.그러나 봉구안이 허리띠를 풀고 옷깃을 여미자, 그녀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가슴싸개?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이… 세상에, 여인이었던 것이다!완부옥의 얼굴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 가득했다.“아… 아니, 어찌…”봉구안은 가짜 목젖을 떼어내고 태연히 인정했다.“맞아. 사실 난 여인이었어.”완부옥은 몸이 굳어져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다.“여인… 네가 여인이라니!”그녀의 손은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봉구안은 다시 옷을 정돈하고 진지하게 강호의 예를 올려 사죄했다.그녀가 진실을 고백한 것은 완부옥의 요구 때문만이 아니었다.완부옥의 진심 어린 집착을 깨닫고 더 이상 그녀를 속이며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여러 번 자신이 완부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완부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제야 그녀가 완전히 체념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너와 나는 오랜 벗이었지. 너에 대한 나의 진심은 결코 거짓이 아니야.”“그러나 짐짓 너를 기만하여 오해를 안긴 것은 내 잘못이 맞아.”“오늘 내가 여인임을 밝힌 것은 용서를 바라서가 아니야. 단지, 네게 무의를 빌리기 위함이지.”“일이 끝난 뒤 마땅히 매를 맞을 테니, 지금 당장은 화를 가라앉히도록 해…”봉구안은 완부옥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완부옥이 이 기만을 용서할 리는 없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완부옥은 뻣뻣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리고 가짜 목젖을 만지며 이를 악물었다.“네가 여인이라니, 정말…”갑자기,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잘됐구나!”“??!!”완부옥의 웃음소리는 매우 기괴했다.그 소리에 봉구안
우상은 봉구안의 신념을 한 걸음씩 부수기 시작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소환, 넌 세상의 악인을 다 없애고 싶다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야.”“너는 이 지하 투기장이 존재하는 걸 조정이 정말 모를 거라 믿어? 여기 관할하는 관리 중에서 이걸 묵인하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느냐? 왜 그럴까?”“그들은 돈과 권력을 원하니까, 그리고 치적을 쌓고 싶으니까.”“그럼 넌? 넌 또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데? 너 우리를 다 반짝이는 너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라고 생각하지? 우리를 이겨서 더 많은 사람들이 너를 대영웅이라 칭송하기를 바라는 거겠지.”“하지만 내가 묻겠다.”“그렇게 말하는 정의란 도대체 뭐냐? 악인은 또 누구냐?”“내가 악인이라면, 죄악을 방조하는 조정은 악인이 아니겠냐?”“그래, 넌 날 죽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사람 마음속의 악념까지 죽일 수 있겠느냐?”“내가 너한테 알려주지. 악념이 존재하는 한, 죄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너 따위 필부가 뭔데 사람 본성을 상대로 싸운다는 거냐?”“넌 내가 악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선행을 해본 적 있다.”“예를 들면, 화살에 맞아 죽어가던 산토끼를 살려준 적도 있지.”“네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냐?”“악념 하나 품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 칠정육욕 아래 완벽한 인간이란 없단다.”“소환, 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엄격해. 그건 정의가 아니야…”철창 밖, 차선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소환, 제발 이겨야 해!’강림은 돈주머니를 단단히 움켜쥐고 속으로 빌고 있었다.‘제발, 소환만 무사하면 십 년 동안 뭐든 다 망해도 상관없어!’소환에게 돈을 건 관중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는 지금 우상에게 짓밟힐 위기였고, 사람들은 소리쳤다.“내가 쟤한테 돈을 걸었으면 안 됐어!”“야, 네가 이기라고 했잖아! 빨리 일어나라고!”“야, 이기든 지든 너무 보기 안 좋잖아!”“잠깐… 뭐야? 무슨 일이
우상이 철창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자신의 집 마당이라도 되는 양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곳을 시합장으로 여기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철창 문이 닫히고서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봉구안에게 물었다.“소환, 저것들 봐라. 니가 이길 거라 믿는 사람이 있긴 한 거지?”봉구안은 냉정한 얼굴로 대답을 삼켰다.그 순간, 철창이 천천히 끌어올려졌다. 땅에서 떨어진 철창은 하늘 중간쯤에 멈췄다.그 후에도 우상은 움직이지 않았다.두 손을 등 뒤로 깍지 낀 채,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설교하듯 말했다.“소환, 넌 여전하구나. 아직도 저렇게 젊은 혈기로 설쳐대다니.”“이런 식으로 싸우면 안 되잖아.”“내가 네 속셈 모를 줄 아나? 네가 원하는 건 입맞춤 따위가 아니잖아. 너는 이 기회를 틈타 정원아란 계집을 구하려는 거겠지.”봉구안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둘이 철창 안에서 주고받는 말은 관중들에겐 들리지 않았다.우상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속삭였다.“걱정 마라. 내가 굳이 이걸 폭로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싸움이 뭐가 재밌겠어? 반 시진 동안, 내가 쓰러지든지, 아니면 네가 죽든지... 난 이곳에서 너와 끝장을 볼 거야.”그가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웃음을 지은 순간, 손에 힘을 모아 공격을 날렸다.봉구안은 날렵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우상의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오… 좀 실력이 늘었네?”이어지는 두 번째 공격.이번엔 번개같이 빠르고 맹렬했다.봉구안이 또 한 번 피했지만, 이번엔 처음처럼 여유롭지 않았다.우상은 여전히 웃었다.“보아하니, 실력이 꽤 늘었구먼.”그는 마음을 무너뜨리는 데서부터 싸움을 시작했다.관중석은 숨을 죽인 채 철창을 응시했다.봉구안은 우상을 보며 그가 저지른 모든 악행들을 떠올렸다.그녀의 분노가 타올랐다. 주먹을 꽉 쥐며 공격에 나섰다.그러나, 그녀의 주먹이 그의 몸에 닿자, 아파한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이었다.
강림은 멍하니 우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평범하게 생긴 남자, 군중 속에 섞이면 금세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남자를…“무림맹이 처음 설립될 당시, 강호에 세 명의 악귀가 나타났는데, 우상이 바로 그들 중 우두머리였소.”“그들은 소림의 속가 제자로, 방화와 약탈, 강탈, 살인을 일삼으며 악행을 저질렀지. 무림맹은 이 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숭화산에서의 결전을 벌였소.”“그 전투에서 무림맹은 합심하여 두 명의 악귀를 처치했지만, 우상의 무공은 너무 강해서 그만 도망치고 말았소.”“소환은 그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상은 동방세의 신부를 납치했소…”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강림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몸이 오싹해졌다.평소 장난스럽고 가벼운 그의 태도와는 달리, 그는 잠시 멈칫하며 목이 메인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놈은 동방세의 부인을 토막으로 나눠서 매일 한 조각씩 보냈었소. 그 일로 동방세는 거의 미쳐버릴 뻔하였소.”“나중에 소환이 우상을 찾아내 결투를 벌였지만, 그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다만, 그 싸움에서 소환이 패배했다는 것만 알려졌소.”“소환은 원래도 부맹주라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싸움 이후로는 아예 무림맹을 떠나버렸소.”“그 후 몇 년 동안 동방세는 계속 우상을 찾아다녔는데, 오늘 여기서 저 놈을 보게 될 줄이야.”강림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그는 그 시절 겨우 열몇 살의 어린 소년으로, 무공도 대단치 않았고, 고작 곁에서 한마디 거들며 허세나 부리던 아이에 불과했다.그러나 우상의 잔혹함은 그의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었다.동방세의 부인의 죽음은 지금도 무림맹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그것은 분명히 소환의 가슴 속 깊이 박힌 한 가시일 터였다.강림은 지금이라도 소환과 함께 우상을 죽이고 싶었다.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소욱의 마음도 무거워졌다.그는 봉구안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 모든 풍류와 연애는 그녀가 겪은 수많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함을 쳤다.“보여줘! 보여주라고!”“제기랄, 우리 이렇게 많이 네 승리에 돈을 걸었는데 네가 기권하면 우린 다 쫄딱 망한다고!”“정원아를 어서 끌어내! 나도 그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고 싶으니 말이야!”봉구안의 한 마디가 사람들을 불안하고 동요하게 만들었다.사회자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조용, 조용! 다들 조용하시오!”“여러분에게 보장하겠소. 정원아는 분명 살아 있으니 어서 진정하시오…”봉구안은 단호하고 냉랭하게 말했다.“정원아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저는 경기를 포기하겠습니다.”그녀가 두 판을 연달아 이긴 후, 그녀에게 돈을 건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포기한다면 그들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셈이었다.사람들은 그녀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정원아를 끌어내라!”“맞아, 안 그러면 우린 돈 돌려달라고 할 거야!”천 명에 가까운 관중들이 외치는 소리에 사회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그는 슬며시 자리를 떠나 비밀문으로 들어가 안쪽에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나타났다.“좋소. 우리 주인께서 말씀하시길, 정원아를 먼저 데리고 나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소.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실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다만, 여러분들은 추가로 돈을 더 걸어야 할 것이오!”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좋아!”전진파의 사람들은 얼굴이 굳었다.그들 또한 정원아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곳에서 다시 철창 하나가 내려왔다.이번 철창은 조금 작았다.안에는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있었고, 그녀는 힘없이 구석에 기대어 있었다.철창이 땅에 닿자, 전진파의 제자들이 애타게 그녀를 불렀다.“원아! 정원아!”“사매님!”희미하게 정신이 든 정원아가 눈을 떴다.“다행이다, 부관장님! 사매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사회자는 봉구안을 향해 물었다.“어떻소?”그는 곧바로 신호를 보내 철창을 다시 올리려
봉구안은 더 이상 방어에만 치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갑자기 이전에 ‘피박쥐’ 고원처럼 철장에 매달려 위로 올라갔다.상대가 주먹을 위로 치켜올리자, 봉구안은 그의 손목을 움켜쥐고 몸 전체의 무게를 실어 내리눌렀다.그 과정에서 상대의 권법을 깨부수고 손목뼈까지 탈구시켰다.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살인 실을 빼앗아 목에 감았다.봉구안은 실을 세게 조여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찰나의 순간, 관중석에서는 모두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누군가의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간절히 기다리는 눈빛이었다.그러나 봉구안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상대를 간신히 기절시키는 선에서 멈췄다.“죽여라! 죽여!”“내 돈 걸었어!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줘야 할 거 아냐!”관중들의 불만 섞인 고함이 철장을 울렸다.하지만 봉구안은 그 모든 소음을 무시하고, 차갑게 무대의 주최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다음 상대를 내놔.”주최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수환 승!”소욱은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숨을 내쉬었다.이제 다음 도전자를 선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강림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전진파 제자들에게 외쳤다.“뭐하고 있어? 빨리 나가야지! 너희는 남은 수들이 많잖아!”전진파 제자들은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그러나 명문 정파로서 그들은 정정당당히 싸우고 이기고 싶었고, 속임수를 쓰거나 억지로 나서기를 꺼려했다.하지만 이들이 반드시 봉구안을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시간을 충분히 끌며 그녀를 더 강력한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표였다.그 순간, 진한길이 황제와 함께 도전자 대열로 나서는 것을 보았다.그는 황제의 의도를 즉각 파악하고 그를 따라갔다.강림도 망설이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죽으면 죽지! 최악의 경우 소환에게 지는 거겠지!”“부관장!”차선아 역시 앞으로 나섰다.그러나 주최자는 여러 사람 중 몇 명만 선발했고, 소욱은 결국 선택되
차선아는 누군가에게 안긴 채로 몸을 안정적으로 기댔다.그녀는 곧바로 뒤돌아섰다.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녀는 경계하며 손을 칼처럼 세워 방어 태세를 갖췄다.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는 상대를 보고 그 손칼을 순식간에 거뒀다.“소환! 네가 왜 여기에!”봉구안이 그녀의 등을 받쳐주며 바닥에 안전히 착지하도록 도왔다.차선아의 눈가가 순간 붉어졌다.그녀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소환이 하늘에서 내려올 줄은 말이다.차선아만이 아니었다.소욱과 강림 역시 깜짝 놀랐다.분명 바로 옆에 있던 소환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소욱은 곧바로 몸을 날려 봉구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무대 위, 향은 이제 겨우 절반이 타들어간 상태였다.도전자들은 마치 홍수처럼, 또는 메뚜기 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그들을 멈출 수는 없었다.전진파의 제자들은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이 모든 것을 반드시 멈춰야 했다!봉구안은 차선아를 내려놓고 소욱의 제지를 무릅쓰고 무대로 날아올랐다.차선아는 눈을 크게 뜨며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그러나 소욱은 알고 있었다.봉구안이 결국 참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봉구안은 차갑게 선언했다.“도전하겠소!”그 말이 떨어지자,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싸움을 멈추고 주목했다.전진파의 제자들은 신속히 차선아 곁으로 몰려들어 그녀를 보호했다.“부관장님, 괜찮으십니까!”그들은 봉구안을 경계하며 무대를 바라봤다.무대 위.철장이 열리자 봉구안은 안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고 나서도 방민은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알아보겠어. 당신이 바로 소환이군.”그녀가 아직 부관장이 되기 전, 단 한 번 마음을 두었던 남자.방금 그녀는 소환이 차선아를 구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봉구안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절 믿으십시오.”방민은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정원아는 여전히 그들의 손에 있었다.전진파의 제자들이 이 순간
봉구안은 강림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오?”강림은 그녀가 손찌검할까 두려워 얼른 소욱 쪽으로 몸을 돌렸다.“대체 왜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오? 차선아랑 완부옥,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다퉜던 이야기를 누가 모르겠소?”“만약 완부옥이 차선아의 행적을 전진파의 장문인에게 고자질하지 않았다면, 장문인이 그녀를 직접 데리러 오지도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자네는 지금쯤 두 여자를 모두 품에 안고 살고 있었을 것이오!”“이렇게 젊은 나이에 부관장이 되다니, 참 대단하지 않소?”소욱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주먹을 살짝 쥐었다.‘참으로,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다투었다니.’그는 속으로 비웃었다. 그의 소장군이란 사람은 정말 매력적이구나.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이미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아니, 잠깐.만약 그녀가 남자라면, 그는 오히려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소욱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가 정신을 가다듬었다.봉구안은 낮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강림, 남의 집 아씨 명예를 자네 같은 놈이 망쳐놓은 것이오. 입 놀리는 걸 멈추지 않으면, 자네 입을 찢어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줄 아시오.”강림은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속으로는 억울함이 가득했다.틀린 말도 아니지 않는가?차선아는 당시에 소환 때문에 전진파를 떠나려 했고, 그녀가 소환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그는 문득 소욱과 소환이 손을 맞잡고 다정하게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설마...!’강림은 한순간 깨달음을 얻었다.‘이거였군! 소환은 이미 새 연인을 찾았고, 그래서 소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거였어!’‘그렇다면... 둘이 정말 그렇고 그런 사이란 말인가?’‘소환이 언제부터 남자를 좋아했지?’강림은 머릿속이 온갖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한편, 차선아는 여전히 허리를 굽힌 채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그녀의 몸은 낮췄지만, 이는 결코 굴욕적인 태도가 아니었다.그녀 뒤에 서 있던
향 하나가 다 타려고 할 때, 전정파는 제자 한 명을 파견하여 패검을 벗고 단상에 오르게 하였다.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바였다.강림은 무대 위 올라온 사람에 대해 견식이 좀 있는지 봉구안과 소욱에게 그녀를 소개했다.“저 자는 전정파 사람 중 하나인 방민이오. 그녀의 검수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바람처럼 빠르지...”봉구안도 방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속공을 요령으로 하여 검객의 체형,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 모두 극히 큰 입문요구를 갖고있었다.소욱은 방민을 좋게 보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저 무대 위에서는 무기를 휴대하고 겨루어 볼 수 없으니,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강림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고원이 여인에게 약한 사람이길 바랄 수밖에 없겠군.”방민은 걸음걸이가 침착하여 철장에 들어갔을 때 전정파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스승님, 저 악당을 죽이십시오!”“사매, 우선 저 놈의 수법을 먼저 간파하셔야 합니다!”방민은 베일을 쓰고 손에 칼을 꽂지 않았더라도 두 눈은 여전히 확고하고 힘이 있었다.철장 속에서, 고원의 눈빛은 마치 입에 닿을 고기를 훑어보는 것처럼 그녀를 음산하게 훑어보고 있었다.“과연 미인이군... 헤헤, 난 미인을 좋아하지…”방민의 동공이 움찔하며 수축되었다.고원이 다가오는 순간, 그녀는 손에 내공을 급히 모아 한 줄기의 내공을 만들어내었다.내공은 순식간에 고원을 강타하며 그를 쓰러뜨렸다.봉구안은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전진파의 내공은 참으로 깊구나. 방민이 침착함만 유지한다면, 고원이 결코 어려운 상대는 아닐거야.’몇 번의 격렬한 공방 끝에, 방민은 점차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고원은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약점을 찾으려 애썼다.“미인들은 참으로 향기로워...”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철창을 붙잡았다.순간, 마치 벽을 타듯 몸을 날려 철창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그리고는 재빠르
봉구안의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철창 안, 그 마른 사내는 상대의 얼굴에서 살점을 뜯어냈다. 상대가 몸부림을 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상대 위에 올라타서는 내려오지 않았다. 얼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귀, 코, 심지어는 눈까지 파내어 생으로 삼켜버렸다.이토록 피비린내 나는 광경은 단지 한 잔의 차를 마실 정도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동안 관중석의 환호는 끊이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듯, 봉구안 일행을 완전히 삼켜버린 듯했다.주변의 함성과 휘파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 봉구안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들리는 것은 광기에 찬 박수와 환호성뿐이었다.소욱은 이미 전쟁터의 잔혹함을 본 적이 있었다. 기근 속에서 서로의 자식을 바꿔 먹는 광경도 목격했다. 구중탑 안에서 약쟁이들이 시체를 뜯어 먹는 장면조차 익숙했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 아니라 단지 ‘승리’를 위해 상대를 뜯어먹는 이 마른 사내의 모습은 그조차도 경악하게 만들었다.더욱 소욱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은, 그런 장면을 보고 환호하는 관중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이런 광기를 만들어낸 자들이다.소욱은 점점 더 봉구안의 손을 꽉 쥐었다.“네가 저곳에 들어갈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정원아도, 양연삭도 데려올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놈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 너만 안전하면 돼.”소욱은 당장이라도 봉구안을 이 자리에서 끌고 나가고 싶었다.하지만 봉구안은 여전히 침착했다.그녀는 소욱의 손을 부드럽게 풀어내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소욱은 잠시 혼란스러웠다.‘지금… 나를 위로하는 건가?’철창 안에서 울려 퍼진 것은 커다란 비명소리였다. 그 덩치 큰 사내는 이제 눈알까지 잃었고, 피가 흐르는 눈구멍이 참혹했다. 그는 철창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기어나오려 했지만, 목청껏 외칠 수 있는 말이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