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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작가: 일설연우
봉구안은 소욱을 뒤로한 채 검은 옷을 입은 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죽음의 계곡 바깥까지 나아갔다.

그녀는 마침내 그와 맞닥뜨렸고, 힘을 써서 그의 넓은 검은 옷을 잡아당겨 벗겼다.

그러나 그는 가면을 쓰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몇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다시금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중, 봉구안은 그의 손가락이 여섯 개인 점을 발견하였다.

‘그 자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바로 그날 천수지독의 주인임이 분명했다!

봉구안의 눈에 살기가 짙게 피어올랐고, 그녀의 공격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 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체 너를 황후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맹 소장군이라 불러야 할까?”

“단회욱이 자신의 목숨으로 너의 운명을 바꾸지 않았다면, 오늘 밤 너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익숙한 이름을 들은 순간, 봉구안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가 단회욱의 이름을 아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으나, 그녀의 정체까지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틈을 타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뒤로 물러나더니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그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너는 단회욱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봉구안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어서 말하거라…!”

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한 그림자가 그녀를 덮쳐왔다.

그림자는 그녀를 껴안고 빙글 돌았고, 봉구안이 뒤를 돌아보니, 소욱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마주쳤다.

“걱정했다.”

소욱은 차갑게 말했다.

그제야 봉구안은 검은 옷을 입은 자 외에 또 다른 인물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그 역시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훨씬 젊어 보였다.

그는 나뭇가지 위에 가볍게 몸을 얹고, 활과 화살을 들고 있었다.

달빛 아래 그의 흰옷은 눈부시게 빛났고, 입가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연극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가 두 번째 화살을 쏘려 하자, 검은 옷을 입은 자가 그를 단호하게 꾸짖었다.

“물러가거라!”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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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냥이
도대체 단회욱이 누구지.,? 소욱이 단회욱이었으면 서로 몰 라볼 리 없고. 진짜 전혀 다른 사람 인데 죽은거 맞나.,? 아니면 소욱이 황제되기전이었는데 기억을 잃었나.,? 얼굴이 다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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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가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모용가를 은밀히 조사하라고 했을 때,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들었느냐.”“갑자기 왜 그 얘길 꺼낸 것이냐? 혹시…”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봉구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그녀는 모용가가 약쟁이 사건과 얽혀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봉구안은 단정한 목소리로 답했다.“사형이 약쟁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입니다.”“그 말은 곧 선황제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미 약쟁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뜻이지요.”“그 시점을 고려하면, 선황제께서 무언가 눈치채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소첩은 그래서 모용가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다만 어디까지나 제 추측일 뿐, 아직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그녀의 말에 담긴 확신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소욱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지금 네 말은… 모용가를 억지로 몰아세우겠다는 것이냐.”농담조였지만, 소욱 역시 마음속으로 봉구안의 의심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선황제의 유언은 분명 모용가를 경계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껏 감찰을 맡은 자들이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 은밀하게 움직였다는 뜻이었다.그런 점에서 모용가의 행적은 약쟁이들의 수법과 닮아 있었다.그 생각에 이르자 소욱의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사람을 더 붙이도록 하마. 이번엔 제대로 조사하게 하자.”그날 밤 소욱은 평소처럼 자유각에 머물렀다.궁 안의 일은 이미 손을 놓아도 될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후궁의 일은 태후가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빈들 또한 조용한 편이었으나, 단 하나. 약쟁이 사건만큼은 태후의 골칫거리였다.태후는 후궁들에게 자중할 것을 명하며, 그 본보기로 현비를 들었다.그날 밤 현비의 시녀 동하가 태후를 찾아와 다급히 울부짖었다.“태후마마, 제발 저희 마마를 살려주십시오!”이미 잠자리에 들었던 태후는 몸을 일으키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10화

    봉구안은 자신이 직접 그려둔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펼쳐 보였다.“황성을 총타로 삼아 사방에 명령을 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지령 경로입니다.”“그들의 평소 수법을 보면, 지금처럼 조정과 무림이 손잡고 그들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모든 연락선을 끊고 총타부터 지키는 것이겠지요.”“그러기 위해서는 내부 인물들을 정리하는 게 먼저입니다.”소욱이 그녀의 말을 받아 이었다.“그렇다면 우리가 그 틈을 노려 분타부터 하나씩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로군.”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녀는 지도 위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여기 표시된 곳들이 현재 저희가 확인한 그들의 은신처입니다.”“대부분 외진 산골이나 황량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요. 죽산진 근처 산속 동굴처럼 말이지요.”“폐하께서도 기억하시겠지요. 예전에 황성 도관 아래에서 많은 약쟁이들을 발견했을 때를요.”소욱은 그 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봉구안은 약쟁이에게 상처를 입었고, 그가 그녀를 등에 업고 간신히 빠져나왔었다.봉구안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도관 자체가 약쟁이의 은신처였을지도 몰라요.”“그리고 기억하시겠지요. 천룡회가 황성을 공격했을 때 약쟁이 대군을 풀었는데, 그 시각이 바로 늦은 밤이었어요.”소욱은 그녀가 전하려는 의미를 곧장 알아차렸다.그는 지도 위에 찍힌 지점들을 살펴보았다.“은신처의 위치와 약쟁이들의 활동 시각을 보면, 그 자들은 어둠 속 환경에 익숙한 존재들이겠구나.”봉구안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어둡고 외진 곳이야말로 약쟁이들의 은신처로는 가장 알맞은 곳일 거예요.”“저희가 죽산진에서 약쟁이 소굴을 조사했을 때도, 산속 동굴 안은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지요.”“강주에서 발견한 은신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겹치는 것들이 많아요.”소욱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느냐?”봉구안은 냉정한 눈빛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9화

    봉구안은 놀란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에도 홍련초가 자란다고요?"소욱은 곧바로 진지하게 대답했다."누가 심었는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서쪽 교외에 사람을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거야."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소욱은 그녀의 그릇에 반찬을 더 담으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으렴. 요즘 부쩍 더욱 말라 보이는구나. 아이를 품은 몸이라면 더 잘 챙겨야 하지."하지만 봉구안의 눈빛은 여전히 다른 데 머물러 있었다."혹시… 열무신의 소식은 아직도 없는거죠?"소욱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둘러 그녀가 더 걱정하지 않도록 화제를 돌렸다.소탁을 황성으로 데려온 뒤 그는 곧장 태의원을 불러 진찰을 받게 했다. 하지만 상처가 눈에 있는 탓에 회복이 쉽지 않았고 지금은 사실상 눈이 먼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하녀를 붙여 주겠다는 제안도 번번이 거절했다.봉구안은 차분하게 물었다."폐태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마땅한 집을 하나 찾아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혹시나 있을 위험을 대비해 그림자 호위도 붙여 두었다."그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소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예전에 널 시중들던 연상을 혹시 기억하느냐?"봉구안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연상… 기억하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여쭤 보시는 거죠?"소욱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요 며칠 사이 그 아이가 소탁을 여러 번 찾아갔다는구나. 꽤 신경을 쓰는 듯했다."봉구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그렇게 문제될 일인가요?""그 아이는 아직 시집을 안 가지 않았느냐."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곧장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론 연상은 궁을 떠난 뒤 곧장 진가 저택으로 돌아갔습니다. 혼자서 글씨와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 왔고요. 살림은 넉넉지 않지만 나름대로 삶의 방향은 확실합니다. 진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8화

    녕비는 자기가 무슨 심각한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현비를 바라보았다.“언니, 우리 자매처럼 지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남한테 덜미 잡히기 전에 차라리 폐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결백한 사람은 당당해도 되는 법이지 않겠어요?”“홍련초는 그 자체로는 죄가 없는 약초예요. 죄가 있는 건 그걸로 독을 만든 자들이죠.”“언니처럼 착한 분이 약쟁이랑 엮일 리가 없잖아요, 그쵸?”그녀의 웃음은 현비의 눈에 유난히 싸늘하고 따갑게 느껴졌다.현비는 얼굴이 희미하게 질려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녕비, 네가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맹세컨대 내가 마시는 약은 약쟁이 사건과는 정말 아무 관련도 없어.”녕비는 굳이 대꾸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제가 언니를 믿느냐 마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폐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죠.”현비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깊은 숨을 고르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야.”“자,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전 이만 자녕궁으로 가볼게요. 태후마마께 기도드릴 시간이네요. 굳이 배웅하지 않으셔도 돼요.”녕비가 자리를 뜬 뒤, 곁에 있던 시녀 동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마마, 녕비 마마 말씀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폐하께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계시다 하니, 홍련초가 얽히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커요.”현비의 눈빛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그녀는 그저 이 궁 안에서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녀는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잘못도 없었다.“…종이랑 붓을 준비하거라. 폐하를 뵙기 전에 아버지께 먼저 편지를 써야겠다.”“예, 마마.”……그날 밤.자유각.소욱은 이날 밤도 자유각에 머물며 봉구안과 시간을 보내려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상소문을 검토하는 데 쓰였고 그녀 곁에 있어도 여유를 누릴 틈은 많지 않았다.그는 문서를 펼쳐든 채 농담처럼 말했다.“황제가 된 건, 아마 전생의 업보였던 모양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7화

    그해 봉구안은 스스로 천지설산에 올라 자욱화를 채취하려다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때 그녀를 구해준 이가 바로 염 신의였다.그 후 인연이 닿아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무렵 염 신의는 약쟁이 독의 해독제를 연구하고 있었다.이에 봉구안은 그를 황성으로 데려왔다.그는 예전에도 한 차례 해독제를 만들어낸 바 있었으나, 중독자들에게 써보았을 때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정한 해독제가 완성된 것이다.분명 기쁜 소식이었다.“염 신의 말로는, 홍련초 덕분에 그동안 풀지 못했던 원리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이미 중독자들에게 해독제를 복용시켰고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장순의 어머니까지도요.”장순은 아직 어린 유생이었으나, 과거 제후국들이 남제를 포위했을 당시 봉구안이 특별히 데려갔던 소년이었다.그는 적국을 향한 설전에서 통쾌한 활약을 펼친 바 있었다.그의 어머니는 오래전 약쟁이 독에 중독되어, 살아 있으되 정신이 나간 채 살아온 사람이었다.해독제가 생겼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경사였다.허나 좋은 일과 화는 언제나 함께 오는 법. 봉구안이 눈짓 하나만 보내도 소욱은 그녀의 속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 소욱은 그녀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오백에게 명을 내렸다.“사람을 붙여 염 신의를 철저히 보호하라. 해독제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오백은 곧장 명을 따랐다.밖에서 듣고 있던 진한길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폐하께서는 왜 이렇게 오백을 쓰시는 걸까?’오백이 물러난 뒤, 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해독제가 완성되었으니 약쟁이 독이 아무리 퍼져도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해독제는 결정적인 열쇠예요. 폐하, 문득 떠올랐는데… 담대연도 약쟁이 독에 중독된 사람이었죠?”소욱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그 자에게도 해독제를 줄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지?”“네.”봉구안도 지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6화

    황제는 용좌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문무백관을 훑었다.“과인이 황성을 비운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사이 그대들은 더욱 해이해졌구나.”문무백관들은 몸을 낮추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소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조정에서 명하여 각지에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 했거늘. 과인이 묻겠다. 너희는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대부분의 신하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사건 수사는 지방 관아의 일 아닌가.그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되는 줄 알았다.그중 몇몇 관료만이 그나마 성의를 보이며 대답했다.“폐하, 신이 아는 바에 따르면 이 약쟁이 사건은 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독에 중독되면 사람은 이성을 잃고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 천용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약쟁이로 구성된 군단이 실제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할 사안입니다.”“폐하, 신이 들은 바에 따르면 동산국이 비밀리에 약쟁이를 양성하고 있으며, 병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약쟁이 독도 동산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소욱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눈빛을 더욱 날카롭게 세웠다.“약쟁이 사건은 백성의 생사뿐 아니라 나라의 존망에도 관련된 일이다. 너희 가문의 안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이리 무감각할 수 있느냐.”꾸짖음을 들은 관료들은 줄줄이 엎드려 스스로 죄를 청했다.“부끄럽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소욱은 그들을 곧장 벌하지는 않았다.대신 명을 내렸다.“과인이 너희들에게 직접 수사하라 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약쟁이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다면 스스로 고하라. 훗날 과인이 직접 밝혀낸다면 그 자는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며 구족이 멸문당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그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고,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그중 몇몇은 속삭였다.“폐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5화

    봉구안이 약쟁이의 본거지가 황성에 있을 것이라 단언한 것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남제 전역의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설명했다.“정말 막다른 길에 몰려야 그들도 허점을 보입니다.”“이번에 문제가 생긴 도시들. 그 위치와 거리로 계산해 보면, 명령이 어디에서 내려졌는지 역산할 수 있어요.”지도 위에는 이미 여러 곳의 약쟁이 거점이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최근 발생한 약쟁이의 운송 경로와 이동 시간, 중간에서 방향을 바꾼 흔적까지 더하면 본거지가 어느 지역인지 대략 짚어낼 수 있었다.이런 판단력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었다.봉구안은 시간과 거리의 계산만으로도 적의 주둔지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그래야 곧장 본진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이라니… 정말 그곳인가.”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그들은 황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죽산진을 들렸다.황성으로 돌아가기 전 소탁을 보기 위함이었다.보아하니 소탁은 눈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의원의 치료에도 차도가 없어 실명에 위험까지 있었다.소욱은 그를 데리고 황성으로 돌아가 태의에게 맡기기로 했다.이 작은 죽산진에서는 명의라 할 만한 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자객의 습격을 떠올린 소탁은 마음이 무거웠다.그는 형인 소욱을 걱정하며 말했다.“약쟁이 때문에 미쳐 돌아가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폐하께선 이번 여정 내내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결국 피를 나눈 형제였기에 자신의 상처보다 제왕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봉구안은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소탁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이 유난히 연약해 보였다.그녀가 물었다.“열무신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소탁은 고개를 저었다.“그 자객을 쫓아 한참을 달아났습니다. 호위들도 따라잡지 못했지요. 혼자서 움직였으니, 살아있다면 다행이고… 혹시 도중에 남긴 흔적이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봉구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라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4화

    그 닭장수들은 고문을 당해 사람 꼴이 아니었다.그들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 그 닭들을 거래한 뒤, 그걸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습니다.”“누가 높은 값을 제시하길래,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열무신은 무고한 이를 죽이지 않았다.그들이 실토한 이상 그는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마침 소탁과 마주쳤다.소탁은 내내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소탁은 성품이 부드럽고 인자했다.이런 고문이나 심문 같은 일은 애초에 잘하지 못했다.황제가 곁에 붙여준 암위들도 제법 실력은 있었지만, 닭장수들을 떨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열무신은 달랐다.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지옥불에서 기어나온 귀신 같았다.맑은 날임에도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존재감 하나로 공포를 자아냈다.소탁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저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군요.”열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손에 묻은 피를 닦고, 수건을 바닥에 던지듯 놓으며 말했다.“잔챙이들이지. 아무리 캐물어도 쓸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닭장수 몇 명을 잡아봤자 소용없었다.열무신의 마음엔 짙은 짜증이 피어올랐다.약쟁이의 수법은 치밀하고 조심스러웠다.겹겹이 함정을 깔아놓은 듯, 쉽게 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어둡게 눈을 떴다.속이 타들어갔고, 분노를 쏟아낼 데도 없었다.소탁은 그의 좌절과 혼란을 읽고 조심스레 말했다.“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집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드시고 길을 나서시지요.”그의 말 뜻은, 강주로 돌아가 황제와 황후에게 상황을 전하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권하는 것처럼 들렸다.열무신은 입꼬리를 비뚤게 올렸다.“이런 와중에도 밥이 넘어간단 말입니까.”소탁은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3화

    봉구안은 자신의 친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녀는 몰랐다.그가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지녔고, 내용을 명확히 꿰뚫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그런 재능이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었다.지나치게 총명하면 오래 못 간다.그래서 그는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억눌렀고, 남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다만 집중만 한다면, 단 한 번 본 것도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이 십수 년간 강성에 들어온 외지인들의 성씨, 이름,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머문 날짜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우선 가족을 동반하거나, 노약자와 함께 들어온 이들은 제외했습니다. 대부분은 친척을 만나거나 생계를 위해 온 이들이니까요.”“그리고 또 걸러냈습니다. 강주에 지인이 있는 사람들 말이예요. 그런 이들은 약쟁이와 같은 은밀한 조직과는 어울리지 않지요. 저들은 언제나 혼자 움직이니까요.”봉 대인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결국 그의 탁월한 기억력이 있었기에, 수많은 인원을 기억하고 하나하나 대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최근 2년간 입성한 외지인에 대해서는 여관마다 숙박 기록이 남아 있어, 그것도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었다.물론 개인적인 판단이 섞이긴 했지만, 봉구안은 이 명부가 충분히 쓸 만하다고 보았다.봉 대인은 말을 덧붙였다.“폐하, 특히 수상하다 여겨지는 인물들은 모두 붉게 표시해 두었습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알겠다. 만약 이 명부에서 약쟁이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자네는 큰 공을 세운 셈이니라.”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나섰다.“설령 단서가 나온다 해도,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이전에 잡은 자들도 그랬지만, 약쟁이는 각자 다른 방식과 규율을 따르고 있어, 흔적을 따라간다 해도 본거지에 닿기는 어렵습니다.”소욱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장인어른에게는 현재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봉구안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봉 대인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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