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주가 간곡히 말했다.“맹교먹은 중용을 받아야 할 인재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낱 감찰위로 있으니 낭비가 아닙니까.”소욱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단지 여군을 창설하고 군권을 준다면 그것 역시 재능 낭비지요.”장공주가 물었다.“그럼 폐하는 맹교먹에게 어떤 직위를 내리실 생각인가요?”감찰사.맹교먹에게 중임을 맡긴다는 황제의 성지가 도착했다.교먹은 환희에 들떴다.황제가 그녀에게 황성 수비사 장군의 직책을 내린 것이다.감찰사에서 일년을 채워야 전직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드디어 고생 끝에 낙이 온 걸까?“맹 장군, 성지를 받으시지요!”교먹은 활짝 웃는 얼굴로 성지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그 날, 장공주는 친히 축하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난 폐하께 여군을 창설해 너에게 맡기라는 제안을 한 것뿐이었는데 폐하께서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실 줄은 몰랐어. 바로 황성 수비사 장군의 직책을 내리다니!”“폐하는 널 아주 신임하고 계셨던 거였어. 감찰위로 봉한 것은 네가 황성의 생활에 적응하도록 시간을 준 것이었어.”“앞으로 황후도 쉽게 너를 건드리지 못할 거야.”교먹은 정중히 장공주에게 예를 행했다.“소신, 장공주 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수비사 장군의 관직은 소장군보다 높고 전장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다소 북대영 쪽이 아쉽기는 했다.그녀는 이 소식을 서신을 써서 사부와 사모에게 전하리라 마음먹었다.‘이러면 그분들도 내가 언니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아시겠지.’장공주가 말했다.“입궁하여 폐하께 감사인사를 올리는 것도 잊지 말거라.”교먹이 황제를 알현하러 입궁하였을 때, 소욱은 한창 어마장에 있었다.어마장.서왕은 황제와 함께 말을 타고 어마장을 돌며 사냥을 즐겼다.예민한 그는 황제의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정비가 시침한 일은 그 역시 전해듣기는 했지만 미인을 품은 황제가 왜 기분이 안 좋은지는 알 수 없었다.슉!산토끼를 향해 날아가던 화살이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소욱은 활을 내려놓고 음침한
봉 대인은 울분을 오백에게 풀었다.“너, 당장 꺼져! 네가 살던 북부로 돌아가! 맹건 그 자식한테 가서 전해! 자꾸 사람을 보내 내 딸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라고!”황후가 되어서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고 소장군 자리에 미련을 두고 있으니 봉 대인은 갑갑할 노릇이었다.그는 이 모든 게 다 맹건이 잘못 가르쳐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애초에 굶어 죽이더라도 맹건에게 보내는 게 아니었어!’봉 대인은 봉구안을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 봉 부인을 궁으로 보냈다.하지만 입궁한 봉 부인은 황후를 만날 수 없었다.봉구안은 일부러 가족들을 피하는 게 틀림없었다.그녀는 몰래 사모에게 서신을 썼고 며칠 후에 북부에서는 그녀의 서신을 받을 수 있었다.맹 장군은 걱정 어린 어투로 물었다.“구안이가 서신에서 뭐라고 썼소?”“시신과 은침을 황성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부를 바꿔치기 한 사실을 누가 물어보면 절대 모른다고 답하라고 하더군요.”“그럼 나는?”맹 장군이 자신을 가리키며 다급히 물었다.“부군을 위해 면죄부 금패를 확보했다고 했습니다.”맹 장군 부부는 봉구안이 하려는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맹 부인은 한숨을 쉬며 안타깝게 말했다.“매사에 조심하는 아이니 모든 준비를 끝낸 뒤에 움직이겠지요. 오히려 우리가 그 아이의 짐이 된 건 아닌가 싶습니다.”맹 장군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위로했다.“정이 깊은 아이니 당연히 그러겠지. 그 아이가 우리의 친딸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맹 부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반박했다.“제 마음에서 그 아이는 진작에 제 아이였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일가족이 뜻을 함께할 것입니다!”맹 장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부인 말이 맞소. 내가 괜한 말을 하였군.”그렇게 시간은 흘러 3월, 조 나라는 다른 5개국과 연합하여 남제의 변방에서 시비를 걸어왔다.조 나라 황제는 남제의 황궁으로 국서를 보냈다.남제가 타국에게 현영석 채굴권을 허락한다면 군사를 철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조정의 대신들은 분노를
황성.사방에서 육속으로 전쟁이 일자, 소욱은 후궁에 들를 시간이 없었다.정비는 서재를 자주 찾아갔지만 황제의 얼굴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3월 중순이 되어 봉구안은 오백에게서 소식을 받았다.그녀가 원한 물건이 이미 북부에서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용호군 장령의 시신은 잠시 의장에 안치되었다.그날 저녁, 봉구안은 직접 출궁하여 의장을 찾았다.그녀의 얼굴은 시종일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교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그들 중 대부분은 양 나라 군대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라 교먹의 간계에 당해서 죽었다.진실을 아는 오백도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소장군, 억울하게 죽어간 형제들을 위해서 교먹도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봉구안은 음침한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며 물었다.“북부의 전장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오백이 답했다.“걱정 마십시오. 조 나라는 가짜 방어도를 쥐고 있으니 우리의 상대가 안 됩니다. 이미 연속 패배하고 물러가는 추세라고 합니다.”봉구안이 물었다.“장기양은?”“녀석, 아버지를 닮아서 참으로 용맹무쌍하더군요. 이번 조 나라와의 전장에서 빛나는 공을 세웠습니다. 다만…”오백은 난감한 표정으로 봉구안의 눈치를 살폈다.봉구안이 차갑게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해보거라.”“사실 큰일은 아니고… 장기양은 금방 북대양에 입성했을 때 그 아이를 괴롭히는 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맹 장군께서 잘 지켜주셔서 경미한 부상만 입었습니다.”봉구안은 어쩜 장기양을 괴롭힌 자들도 교먹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장기양은 황성을 떠나자마자 암살자들에게 포위되지 않았는가.교먹은 아마 장기양이 용호군 죽음의 진실을 파헤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소장군, 연상 쪽은 언제 움직이는 게 좋을까요?”오백이 물었다.연상이 궁을 떠나기 전에 오백은 이미 봉구안의 지시에 따라 경로와 위중한 아버지 역할까지 전부 준비해 놓았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연상은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마차를 타고 다른
“뭐? 황후가 진짜 황후가 아니라고?”장공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교먹은 정숙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음산하고 사나웠다.“저도 얼마전에 알아낸 사실입니다. 사실 봉가에서 쌍둥이 여아가 태어났었는데 언니는 줄곧 밖에서 길러졌다고 합니다.”“진짜로 황후가 되었어야 할 사람은 동생 봉장미였죠.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동생은 실종되고 봉가는 밖에서 자란 언니를 데려다가 혼례식을 올렸습니다.”장공주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는 황가의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이런 허무맹랑한 일이 황실에서 벌어지다니!“이건 군주를 기만하는 행위 아니더냐! 봉가는 어찌 감히!”장공주는 황실 사람이자, 황제의 누이로서 이런 기만을 용서할 수 없었다.교먹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봉가가 이런 짓을 행한데는 분명 뭔가 음모가 있었을 겁니다.”장공주의 눈가에 서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당장 폐하께 이 일을 고해야겠다!”그런 그녀를 교먹이 막았다.“안 됩니다, 장공주 전하.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폐하께서도 믿지 않으실 겁니다.”“일단은 증거를 찾고 봉가의 추악한 본모습을 까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장공주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교먹이 계속해서 말했다.“공주께서는 봉씨 저택에 사람을 보내십시오. 어쩌면 남은 서신들을 발견하거나 진실을 아는 자가 저택에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밀 리에 끌어다가 심문을 하면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도 몰라요.”장공주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자!”만약 황후의 정체가 가짜라면 아무도 그녀를 지켜줄 수 없을 것이다.장공주의 도움이 있으니 교먹은 많은 수고를 덜은 것 같아서 좋았다.마음속에 꿈틀거리던 어두운 욕구는 점점 눈덩이 굴러가듯이 커져서 마지막 남은 양심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처음에 그녀가 원했던 것은 봉구안을 영원히 궁 안에 묶어 놓는 것이었다.그런데 봉구안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몰랐다.‘언니, 이제
정비는 아직도 물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아무도 내려가서 구해주지 않았다.장공주는 봉구안의 팔목을 잡고 강압적으로 말했다.“빠뜨린 사람이 구하러 가셔야지요!”이곳은 자녕궁이고 주변 시위, 궁녀들 모두 장공주의 사람들이었다.말을 마친 장공주가 봉구안을 밀치려 손을 뻗었다.아직 눈도 채 녹지 않은 3월이라 호숫물은 차디찼다.봉구안은 몸을 비틀어 장공주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장공주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황후! 어찌…”이때, 봉구안은 고개를 돌리고 물에 뛰어들었다.장공주는 순간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사… 살려주세요…”헤엄칠 줄 모르는 정비는 옷이 물에 젖어 점점 물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죽음이 앞으로 다가오자 더 이상은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살려주세요!”절망의 순간에 누군가의 손길이 나타나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 순간은 마치 따뜻한 햇살이 싸늘한 호수를 비추는 기분이었다.정비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고개를 수면 위로 내민 그녀는 뒤늦게 황후를 알아보았다.황후가 그녀를 구한 것이다!장공주는 싸늘하게 식은 눈을 하고 수면 위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지시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아무도 다가가서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현장에 있던 녕비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권유했다.“언니, 적당히 하고 끝내는 게 좋겠어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나요…”그녀는 장공주가 자신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상, 장공주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알아본 바에 의하면 귀족가에서 곱게 자란 봉장미는 헤엄칠 줄 모른다고 했다.하지만 눈앞의 황후는 능숙하게 헤엄을 치고 있으니 봉장미가 절대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장공주도 진짜 인명사고를 바라진 않았기에 황후가 정비를 끌고 뭍으로 나오는 순간에 사람을 시켜 도와주게 했다.정비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오들오들 떨며 장공주와 녕비를 바라봤다.사람이 죽어가는데 도움의 손길 한번 펼치지 않은 그들이었다.‘이 원한, 기억해 두겠어!’시종인
봉구안은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리를 그대로 틀어올렸다.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치마가 흩날렸다.최 상궁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마마, 폐하께 변명이라도 해보지 그러셨습니까?”“이대로 폐하께서 마마를 오해하시게 그냥 둘 생각이십니까?”봉구안은 공허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답했다.“상관없다.”어차피 그녀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편전.태의가 정비의 진맥을 보고 있었다.창가에 선 황제는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다.정비는 착잡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황후가 떠난 후, 황제는 줄곧 거기 서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진맥을 마친 태의가 황제에게 아뢰었다.“폐하, 마마께선 찬 기운이 몸에 침입하여 많이 허약해진 상태입니다. 소신은 한기를 쫓는 약을 처방할 테니 절대 다시 바람을 맞거나 하시면 안 됩니다.”“그래, 알았다.”소욱은 뒤돌아서 정비를 바라봤다.똑같이 물에 빠졌는데 한 사람은 이처럼 허약하고 황후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무공을 연마한 자라서 다르다는 건가.태의를 물린 후, 정비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폐하, 황후께서는…”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추홍이 마음에 걸렸다.두 사람의 말이 다르면 추홍은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말을 돌렸다.“호수가가 미끄러웠으니 황후께서 고의로 저를 민 것은 아닐 겁니다.”소욱은 이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싸늘한 눈으로 정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넌 몸을 추스르는데만 집중하거라.”정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황제가 떠난 후, 추홍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마마, 왜 황후의 편을 들려 하셨습니까? 사실 장공주께서 직접 지목하셨으니 마마께선 모른 척만 하시면…”정비는 고개를 들고 싸늘한 눈으로 시종을 바라보았다.“폐하께서 그리 쉽게 속아넘어갈 것 같으냐? 정말 장공주의 말을 믿었다면 진작에 황후를 처벌하였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황후를 지목한다면 폐하께선 날 어떻게
영화궁.최 상궁은 깨 고소한 얼굴로 들어와서 아뢰었다.“마마, 흥혜궁 쪽에 큰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오랜만에 후궁을 찾으셔서 흥혜궁에 머물기로 하였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폐하께서 크게 화를 내고 돌아가셨답니다. 게다가 정비마마께 금족령까지 내리셨다는군요!”최 상궁은 신이 나서 말했지만 봉구안은 골치가 아팠다.그녀는 마지막으로 후궁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최 상궁이 옆에서 떠들고 있으니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나가 있거라.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이지 말고.”최 상궁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연상이 떠난 후로 줄곧 옆에서 정성껏 시중을 들었는데 자신을 봐주지 않는 상전에게 서운하기도 했다.봉구안은 그런 최 상궁을 무시하고 그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았다.“안 나가?”뒤돌아선 최 상궁은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근엄한 표정을 황제가 그곳에 서 있었다.그녀는 재빨리 예를 행했다.“소인, 폐하를 뵙습니다!”봉구안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봤다.소욱의 기억에 영화궁은 항상 적막한 곳이었다.의자에 앉은 그는 탁자에 놓인 온갖 간식들을 바라보았다.아마 최 상궁이 준비했을 것이다.최 상궁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황제의 옆에서 주절주절 떠들었다.그에 반해 황후는 지시를 기다리는 궁녀처럼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최 상궁이 말이 많을수록 황후의 과묵함이 더욱 도드라졌다.결국 짜증을 못 이긴 소욱이 차갑게 호통쳤다.“물러가거라.”최 상궁은 그제야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내전을 나가 문을 닫았다.소욱이 앞에 와서 앉은 뒤로 봉구안은 조용히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소욱은 펼쳐져 있는 후궁 장부를 보고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이 늦은 시간에 아직도 이런 것들을 보고 있느냐?”봉구안은 공손히 답했다.“예.”그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황후, 입궁한 이유가 무엇이냐?”봉구안의 눈가에 약간은 다른 감
소욱은 요즘 사방의 전란으로 인해 쉴 틈조차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궁의 침상에서 그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흥혜궁.같은 시각, 정비는 욕조 안에 우두커니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녀의 눈가는 이미 붉게 부어오른 상태였다.“결국, 나는…해내지 못했어.”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황제에게 깊은 총애를 받는다고 믿었으나, 사실 황제는 단 한 번도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황자를 가질 수 있겠는가! 오늘 밤, 그녀는 용기를 내어 황제에게 승은을 청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황제의 냉랭한 눈빛뿐이었다.황제는 그녀의 청을 단칼에 거절하였다.“분수에 맞지 않는 망상을 하지 말거라.” ‘분수에 맞지 않다…’ 그 말은 즉슨 정비는 황자를 낳을 자격조차 없다는 뜻이 아닌가?“하하...” 그녀는 분노 끝에 그만 냉소를 터뜨렸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황제를 향한 분노와 원망을 애써 억눌렀다.‘폐하께서는 정말로 무정하시구나…’ 욕실 밖에서 시중들던 추홍은 내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오늘 밤, 그녀가 모시던 정비는 승은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황제는 단호히 돌아서고 말았던 것이다. … 영화궁.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봉구안은 잠을 청할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침상 위에는 이미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탓에 그녀는 작은 침상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한밤중에, 궁 밖에서 긴급한 전갈이 전해졌다. “폐하, 북방으로부터 전갈이 왔사옵니다!”봉구안은 순간적으로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침상 위의 소욱 또한 눈을 떴다. 그는 한 손으로 휘장을 걷어내며, 맑고도 날카로운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작은 침상에서 잠들어 있던 봉구안을 발견하였다. 그는 다소 쉰 듯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침상에서 자거라.” 이후, 그는 이내 밖으로 나
황성.오늘의 망강루는 유난히 북적거렸다.소욱은 황후가 서여국에 출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녀의 가짜 회임에 대해 사람들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그 때문에 그는 궁 안에서 비응군을 위한 축하 연회를 열 수 없었다. 대신 궁 밖의 망강루를 빌려 연회를 준비했다. 1층에는 수십 개의 식탁이 놓였고, 비응군은 나눠 앉아 있었다.한편, 은위들은 따로 두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그 누구도 은칠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그가 워낙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남제로 오는 길 내내 그는 멈추지 않고 글을 써댔다. 그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매를 맞기까지 했다.은칠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황후의 출사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것은 자신인데, 얻어맞는 것도 자신이었다.이제야 깨달았다. 사관 노릇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이런 미움을 사는 역할도… 그는 여전히 감당해야 했다.2층, 별실.문 밖에서는 진한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방 안에서는 황제와 황후가 단둘이 고요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강을 내려다보며 멀리까지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봉구안은 서여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서여국 황제에게는 몇십 년 전에 잃어버린 여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게 유일한 단서인데, 부러진 옥비녀 반쪽입니다."소욱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사람을 찾는 일이면 본국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서여국에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그는 그저 황후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그러나 봉구안의 마음은 여전히 국사에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남제의 상황을 물었다."제가 없는 동안 담대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소욱은 차분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첩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남제를 도와 적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소욱
봉구안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인 것은 온몸에 보랏빛 옷을 차려입고 눈에 띄게 화려한 소욱이었다.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어 질끈 눈을 감았다.저 사람이 정말 자기 서방이 맞단 말인가? 그 위엄 넘치는 한 나라의 황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봉구안은 못 본 척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고 싶었다.하지만 소욱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렸다.비응군은 눈치 있게 물러나 황후와 황제가 단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취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황후가 살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부인!”소욱은 흥분한 얼굴로 봉구안을 와락 끌어안았다.공공장소에서 그는 그녀를 황후라 부를 수 없었다.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봉구안은 그의 옷에서 풍기는 강한 향을 느꼈다. 그 향은 다소 자극적이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당장 제 몸에서 떨어지세요.”“구안아, 방금 뭐라고 했느냐?”그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봉구안은 억지로 웃으며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아무것도 아닙니다.”차마 그에게 귀신에게 씌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왜 이렇게 요란한 옷을 입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이토록 화려하게 차려입다니,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골라준 옷 색감은 아주 훌륭했다. 허나 정작 왜 본인은 이런 그릇된 선택을 하는 걸까.봉구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했다.소욱은 그녀를 데리고 서둘러 가마에 올랐다.가마 안에서 그는 봉구안의 손을 꼭 붙잡고 입을 맞추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봉구안은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까지 의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사람이 진짜 소욱이 맞는지,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얼굴로 변장한 것은 아
그 손님은 소년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이 어린놈아! 돈을 냈으면 일을 해야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어가리라'라고 써달랬으면, 그대로 쓰면 될 걸 왜 이리 말이 많아!” 소년은 창백하고 여위었지만, 붓을 움켜쥔 손과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군가라고요. 전우들끼리 사용하는 것을 어찌 애첩에게 주는 시에 사용을 한단 말입니까!” “그 군가는 이리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님은 이를 갈며 격분했다. “애첩? 지금 내 부인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린 게 버릇없이! 오냐, 좋다! 오늘 내 널 죽여버릴 것이다!” 소년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절 죽인다 해도 나으리께서는 간부음녀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통한 남자와 음란한 여자라는 뜻이죠. 이미 아내가 있는 주제에 기생과 혼인하려고 하다니, 대장부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차라리 환관이 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못 낳을 테니 말입니다!” 그의 말은 사람에게 짐승을 비유하는 것처럼 모욕적이고 날카로웠다. “이 꼬맹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손님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손을 올렸지만, 갑자기 그의 귀를 누군가 잡아챘다. “누구야! 감히 내 귀를…”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정실 부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내가 널 먹여 살리고, 궁 안에 들어가 시험 보라고 뒷바라지했더니… 감히 기방에서 여인을 만나러 다녀?” 그러고는 그녀는 소년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보게, 정말 고맙네. 자네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끝내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걸세. 이 사람이 이렇게 간악한 줄도 모르고 정말 당할 뻔했네.” 소년은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인사했다. “별말씀을요. 악을 벌하고 선을 드러내는 건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봉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취사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아마 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제의 황후가 되었고, 다시 군대를 이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취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죽을 각오로 한 이야기였다. "저희는 황후마마께서 조직하시고,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황궁 금군에 편입된 뒤로, 형제들은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마께서 소장군이 아니시지만,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무당에서 직책을 맡으실 수 있을 정도인데, 어찌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황후마마, 불경한 말인 줄 알지만, 서여국 황제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와 혼인하신 뒤로 실권이 없으시니, 이제 남은 건 자녀를 돌보고 내조하는 일뿐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무예를 그냥 묵히시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봉구안은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서여국 황제가 너를 찾아온 적이 있느냐?" 취사는 순간 얼어붙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습니다. 저를 찾아와 설득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여국에 남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마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마마께서 권력을 가지실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하셨습니다."봉구안은 손에 들고 있던 구운 생선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술주머니를 들어 몇 모금 마셨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공허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남제와 서여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황후가 군대를 이끌다니? 이 소식이 알려지면 조정의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뻔했다. 설령 소욱이 그녀를 아무리 용인한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 또한 소욱에게 부담이 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고인이 된 친부 이야기가 나오자, 서여국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어릴 적에, 아바마마께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궁 안에는 아바마마의 용모파기조차 남아 있지 않다.”“나도 그분의 얼굴이 어떤지 기억나지 않는다. 꼭 용모파기가 필요하다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봉구안은 난처해졌다.용모파기가 없다는 건 외모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서여국 황제가 말을 이었다.“그때 나는 숙연과 겨우 두세 살이었다.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으로 들이닥쳤고, 어마마마께서는 혈통을 지키기 위해 나와 숙연을 궁 밖으로 내보내 숨기셨다.”“훗날 자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옥비녀를 반으로 나누셨지.”“이것이 내가 가진 옥비녀의 반쪽이다.”황제는 흰 옥비녀의 반쪽을 꺼내 보였다. 비녀 머리와 일부 자루만 남은 상태였다.봉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진짜 여동생 분께서 나머지 비녀 조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서여국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반쪽 옥비녀와 비단 상자를 봉구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을 너에게 맡기마.”이는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였다.봉구안은 두 손으로 옥비녀를 받으며 차분한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믿음직스러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서여국 황제가 손목을 붙잡았다.봉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소장군, 정말로 서여국에 남을 마음이 없느냐?”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듯 물었다.봉구안이 서여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섭정왕의 자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내어줄 의사가 있었다.멀리서 은칠이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 했지만, 은이가 이를 눈치채고는 단숨에 붓을 빼앗아 부러뜨렸다.은이는 부러진 붓을 내던지며 말없이 은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
비록 봉구안이 은위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서여국 황제가 자신의 암위들을 향해 말했다. “물러나라.” 그녀의 단호한 한마디에 암위들은 즉시 자취를 감췄다. 이제 곁에는 모신만 남았지만, 황제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녀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은근히 이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보아하니, 그들은 네 명령을 따르는 척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제국 황제의 명령을 따르며 너를 감시하는구나. 네가 서여국에 머물고 싶어도 결국 넌 남제로 끌려가겠지.” 은칠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마, 저희는…”하지만 봉구안은 은칠의 말을 무시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차분하고 당당하게 서여국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 굳이 저와 남제 폐하를 이간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적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지,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할 때가 아닙니다.” 서여국 황제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국 우리는 길이 다르구나. 나는 네가 남제 남성들의 권력 아래 있는 걸 싫어해, 여인들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봉구안은 담담히 답했다. “서여국의 여인이나 남제의 남성이나 다르지 않습니다.”“길은 같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천하 대동, 남녀가 평등한 길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억누른다면 그 길은 기울고 불공평하며,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서여국의 내란도 조여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가 혼란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가 군사들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남녀 간 불공평 때문이었습니다. 외지인으로서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부디 절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여국이 남성에게 불공평한 나라이고, 남제가 여성에게 불공평한 나라라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 봉구안은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길이 멀고 험해 천 년이 지나도 답을 내릴 수
봉구안은 눈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서여국의 미남들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저들을 처리하기 전에, 약은 남겨 두십시오.” 그들은 속으로 탄식했다. 앞에 있는 귀인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정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녀는 약만 걱정하는 듯했다. 모신은 곁에서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 맹 소장군은 남색에 전혀 관심이 없군.’….한편, 서여국 황제가 보낸 미남들을 몰아낸 것을 지켜본 봉구안의 호위들은 눈빛에 살기를 띄우며 말했다.“저따위로 우리 황후마마를 유혹하려 들다니, 당장 찾아가 처리해야겠습니다.”다른 곳에 숨어 있던 은이 역시 이 상황을 보고 머리를 저었다. “형님, 서여국 황제가 대체 무슨 속셈으로 미남들을 보낸 걸까요?”은이는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풀을 살짝 씹으며 비웃었다. “뻔하지. 서여국 황제는 황후마마를 남겨두고 싶어 하는 거다.” “뭐라고요?!” 호위들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만약 서여국 황제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우리 황제 폐하는 어찌 된단 말인가!”그러나 다행히도, 황후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미남들을 거절하고,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한 시진 후. 서여국 황제는 봉구안이 머물고 있는 편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구안은 태연한 얼굴로 황제를 마주했다. “내 듣자 하니, 맹 소장군은 내가 준비한 사람들에게 불만이 있다 하더구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황제가 보낸 미남들은 단순히 약을 발라주는 임무를 맡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봉구안이 이들에게 미남계를 쓴 것이라 비난한다면, 황제는 오히려 그녀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고 역이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폐하의 깊은 뜻과 서여국 남자들의 준수한 외모를 보아 외신이 불만을 가질 리 없지요.” “다만… 제가 서여국으로 출사하기 전, 불전에 서약을 한 바 있습니다.”“
서여국 황궁, 천택궁 별채.은위 몇 명이 전각 밖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안에서는 어의가 봉구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봉구안은 내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치명적이지 않았다.어의가 물러나려 하자 봉구안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 순간, 서여국 황제가 그녀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가만히 앉아 있거라. 내가 명을 내려 어혈을 풀고 멍을 가라앉히는 약을 바르게 하겠다.”봉구안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다.“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할 사람은 내가 아니겠느냐.”“그대의 계책이 아니었다면 내 계획대로 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많은 무고한 병사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이번 작전으로 피해를 줄였고, 조여란과 가짜 숙연까지 명분 있게 제거했으니 일석삼조가 아니겠느냐.”봉구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조여란이 동산국과 손잡고 남제를 멸하려 한 만큼, 동산국으로부터 적잖은 지원을 받았을 것입니다.”“그 자를 처단하기 전에 이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서여국 황제의 눈빛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이 번뜩였다.“그 말이 맞다. 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파헤칠 것이다.”서여국에서 반역과 군주 시해는 이미 죽음에 값하는 죄였다.게다가 외국과 결탁한 죄는 나라를 배신한 중죄였다.그녀는 이 중죄를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서여국 천옥.조여란은 형틀에 묶인 채 기운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녀는 감옥을 직접 찾은 서여국 황제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폐하, 이렇게 무정하실 수 있습니까?”“제가 잘못한 건 많지만, 전장에서 함께 싸우며 폐하의 목숨을 구해드린 적도 있지 않습니까?”“또한,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드린 것도 저입니다! 이런 공로를 생각하신다면 제 죄를 덜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서여국 황제는 냉소하며 말했다.“여동생이라니? 네가 조종하여 내 여동생 행세를 하게 만든 창부를 말하는 것이냐? 그런 자가 내 혈육이라 할
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잠시 후 궁으로 돌아가거라. 어의에게 너의 상태를 잘 살피게 하겠다."봉구안은 서여국으로 비밀 사절로 파견된 상태였고, 황제와 그녀의 심복 모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황제의 호위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제의 배려에 봉구안은 사양하려 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모신이 먼저 물었다."폐하, 저 관료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황제는 조여란이 화살로 모두를 살해하려 했던 순간, 관료들 중 일부가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조여란의 동조자는 모두 체포하고, 나머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라.""예, 폐하!"그 순간, 반역죄가 자신들에게 닥쳤음을 깨달은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폐하, 살려주십시오!""폐하! 순간의 실수였습니다!""폐하, 조여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습니다!""폐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그러나 서여국 황제는 이들의 간청을 전혀 듣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했다."끌고 가거라!"그렇게 조여란의 동조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아아…" 숙연은 조여란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는 급히 몸을 떨며 말했다."저는 조여란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억울하게 끌려온 것뿐입니다."서여국 황제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억울하다고? 내가 본 건 너와 조여란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서여국 황제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숙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저었다."아닙니다! 언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여란이 반역자인 줄도 몰랐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여국 황제는 검을 뽑아 숙연의 목에 겨누며 비웃듯 말했다."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구나?"숙연의 동공이 흔들리며 그녀는 급히 외쳤다."언니, 저… 저는 언니의 친동생입니다…!"그 순간, 황제는 매섭게 칼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