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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당신이 바라던 대로 죽었어

Author: 연의 수정
“손 부어오르잖아, 움직이지 마!”

미간을 찌푸리며 민여진에게로 다가간 박진성이 그녀의 손목을 그러쥐자 민여진은 또 발작이라도 하듯 발버둥 쳤다.

“한 번만 더 움직이면 나도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몰라.”

그 말에 겁을 집어먹은 민여진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다 쉬어버린 목소리를 쥐어짜 내고 있었다.

“도대체 뭘 원해서 이러는 거야 당신...”

이미 저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유일하게 문채연과 닮은 얼굴까지 망가뜨려 놓고서 뭘 더 원하는지 민여진은 알 수가 없었다.

“민여진, 너 거울 볼 줄 몰라? 내가 너 같은 애한테 왜 질척거리겠어? 난 내 아이를 되찾고 싶을 뿐이야. 제 핏줄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거니까 아이만 주면 다신 네 앞에 얼씬도 안 해.”

“아이를... 달라고?”

박진성의 어이없는 말에 악몽으로 고달팠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민여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이는 진작에 감옥에서 1년 전 민여진과 함께 죽어버렸는데, 그 죽음을 사주한 사람이 이제 와서 아이를 집에 데려간다니,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웃음을 터뜨리던 민여진이 눈물까지 흘리자 미간을 찌푸린 박진성은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리며 물었다.

“왜 웃어? 내가 내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게 웃겨?”

눈물을 흘리던 민여진은 이 순간 만큼은 눈이 멀어버린 게 참 다행스러웠다.

눈이 멀쩡했다면 저 가증스러운 얼굴을 마주해야만 했을 텐데 그보다 더 곤욕스러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박진성, 날 괴롭히고 싶은 거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말도 안 되는 이유 들먹이지 말고.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당신이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이불을 부여잡으며 목놓아 울었다.

“죽었다고! 당신이 바라던 대로 죽었어! 나한테 얼굴 한번 보여주지 못하고 죽어버렸다고... 이제 만족해?!”

누군가 제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은 듯한 멍한 느낌에 벙쪄있던 박진성은 애써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죽었다고? 민여진, 내가 그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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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박진성은 차라리 이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계속 아파야 한다. 그래야 그가 얼마나 잔인하게 한 사람을 망가뜨렸는지 잊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박진성은 떨리는 눈을 감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떴다.“돌아가자.”서원이 차를 몰아 박진성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그런데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문 앞에 서 있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박진성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흐려졌고 눈앞이 아득해졌다.‘민여진인가? 민여진이 날 찾아온 건가?’그는 본능적으로 차에서 내려 몇 걸음 성급하게 내디뎠다.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고서야 깨달았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문채연이었다.“진성 씨!”그녀가 다가왔는데 손을 꼭 쥔 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박진성이 양경호를 찾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었다.문채연은 조심스럽게 박진성을 살폈다. 다행히 양경호가 입을 다물고 있었던 모양이다.박진성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물었다.“왜 왔어? 날씨도 추운데 그냥 돌아가.”“내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요? 민여진 씨 때문에 진성 씨까지 망가져 가는 걸 두고 볼 순 없었어요!”문채연의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그리고 박진성도 표정이 굳어졌다.그녀의 입에서 ‘민여진’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의 심장이 강하게 조여왔다. 그 고통에 박진성은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그러나 문채연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팔을 더욱 세게 붙잡으며 말했다.“진성 씨 벌써 일주일째 회사에도 안 나가고 있잖아요. 아무리 민여진 씨의 일이 충격적이라도 이건 아니에요. 진성 씨는 보스 그룹의 대표예요!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모든 걸 내팽개쳐도 돼요?”박진성은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고 숨을 가다듬으며 차갑게 말했다.“나도 알아. 회사가 언제 내 도움이 필요한지.”“그런데도 진성 씨는 이렇게 무너지고 있잖아요! 민여진 씨는 이미 떠났어요! 계속 찾는다고 돌아올 사람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9화 죽음으로 몰아가다

    “누가 한 짓이야? 언제 벌어진 거야?”서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민여진 씨가 수감되기 전날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민영미 씨가 대표님께 쫓겨난 날이기도 합니다. 민영미 씨가 병원에서 쫓겨난 직후 한 대의 차가 민영미 씨를 데려갔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습니다. 영상도 그날 유출되었고요... 어쩌면 민여진 씨도 이미 봤을지 모릅니다.”박진성의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그리고 민여진이 전화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그녀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박진성, 네가 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어.”그러나 그때 그는 코웃음을 쳤고 민여진이 동정심을 사려고 쇼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에게 줬던 모든 것을 도로 가져온 것뿐인데.민여진은 마치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울부짖었고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박진성은 그 이유가 그녀가 누리던 풍족한 삶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고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민여진은 이미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는 것을.그 순간 박진성의 뺨을 세게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자신의 태도가,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던 그녀의 모습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너무 아팠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그런데 민여진은 얼마나 더 아팠을까? 사랑했던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내몰렸던 그녀가 그를 보고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지, 왜 그렇게 절박하게 도망치려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박진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그리고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누가 한 짓이야?”“양경호 씨입니다.”서원이 그 이름을 말하자 박진성은 정신이 혼미해졌다.“그 자식이 왜?”“아마 대표님을 위해서겠죠. 아니면 문채연 씨를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양경호 씨는 대표님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대표님이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대신 처리해 줄 사람입니다.”서원의 주먹이 떨렸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8화 정말 떠난 걸까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해도 박진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미 사흘이 지났고 아무리 찾아도 민여진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도 수색을 중단했다.민여진에게 남은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1년 전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그녀와 법적으로 연결된 사람은 오직 남편인 박진성뿐이었다.경찰이 찾아와 사망 확인서에 서명하라고 했다.그 순간 박진성은 손에 쥔 펜을 바닥에 내던졌다.“말도 안 돼요!”그의 태도는 단호했다.“죽었으면 시신이라도 확인 시켜줘요! 민여진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사망했다고 단정 짓는 거예요? 어쩌면 아예 그 차에 타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조사가 잘못된 거라고요!”경찰은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고 한숨을 쉬었다.“목격자도 있고 CCTV에도 분명히 찍혔습니다. 민여진 씨는 차 안에 있었습니다.”“중간에 내렸을 가능성은요?”박진성은 핏발 선 눈으로 경찰을 향해 번뜩였다.“시신을 직접 보기 전까지 서명하지 않을 거예요!”그는 결국 서명하지 않았고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사고 현장인 남산교로 향했다.가드레일은 부서져 있었고 차가 돌진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 앞에 서자 싸늘한 겨울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박진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그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민여진이 정말 여기서 떨어졌다고?’믿을 수 없는 그는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쥐었다.박진성은 다시 힘을 내어 몸을 일으키고 철제 가드레일이 없는 바위 절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그만해!”이정화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녀는 그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이제 됐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미쳐 있을 거야!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야. 사람이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민여진은 죽지 않았어요.”박진성은 이를 악물었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그는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민여진은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자신을 벌주려고 숨어 있는 것뿐이라고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7화 길들어지다

    “닥쳐요!”박진성이 미친 듯이 고함쳤다.순간 배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고 눈앞이 흐려지면서 그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민여진이 탄 차가 바다로 추락했다고? 죽었다는 말이야? 말도 안 돼...’어제까지만 해도 그를 저주하던 여자였다. 그를 끌어내고 어머니 대신 복수를 하겠다며 맹렬히 달려들던 여자였다. 그리고 그를 죽이라고 외치던 여자였다.그런 여자가 이제 생사조차 알 수 없다고?박진성은 눈앞이 새까매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민여진... 민여진...”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는 그녀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간호사의 비명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고 그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박진성은 꿈을 꾸었고 다시 민여진이 교도소에 갇혔던 그 해로 돌아갔다.그는 별장으로 돌아오면 항상 무의식적으로 말했다.“민여진, 표고버섯죽 끓여줘.”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깨달았다. 이제 민여진은 없다고.새로 고용된 가정부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 혹시 그분이 아주 소중한 분이셨나요? 이미 떠난 지 꽤 되셨잖아요. 표고버섯죽은 제가 끓일게요!”민여진은 감옥에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늦은 밤 업무를 마치고 머리가 지끈거리면 박진성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방을 찾았다.“민여진, 마사지 좀 해줘.”그러나 돌아온 것은 어둠뿐. 그는 찌푸린 얼굴로 문을 닫았다.처음에는 단순한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2년 동안 민여진이 그의 모든 순간에 함께했으니까. 그러니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그 빈자리가 쉽게 채워질 리 없었다.하지만 습관은 바뀌는 법. 그 자리에 다른 습관이 들어오면 그는 민여진을 잊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는 민여진을 그리워했다.그녀의 영리함을, 그녀의 눈치 빠름을, 그녀의 순응적인 태도를. 민여진은 항상 마치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듯했다. 그렇게 그는 그녀에게 ‘길들여져’ 있었다.민여진이 실종되었을 때도 박진성은 확신했다. 그녀가 돌아올 것이라고.왜냐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6화 생사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강렬한 후회와 두려움이 박진성을 휘감자 그는 머리가 어지러웠다.숨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었을 때 서원이 여전히 그의 곁에 있었다.박진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한 번 더 만나서 설득해 볼게.”그는 민여진을 보낼 수 없었다. 절대로.그러나 박진성이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경찰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민여진이 입장을 바꿔 사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박진성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경찰은 병원까지 찾아와 확인했다. 민여진이 고의로 그를 해한 것이 아니었으며 박진성 역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자 이 일은 그대로 종결되었다.경찰이 떠나자마자 박진성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대표님!”서원이 다급하게 뛰어왔다.“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상처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어요!”하지만 박진성은 수많은 감정이 얽혀서 몰려와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그는 서원의 손을 꽉 붙잡고 말했다.“경찰서로 가서 민여진을 데려와.”서원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죽음을 불사할 듯하던 민여진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사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할 줄은.박진성은 생각했다.‘혹시 민여진이 날 용서한 걸까? 혹시 내 변명을 들어줄 마음이 생긴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걸 뒤로하고 그냥 끝내려는 걸까?’그렇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박진성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눈앞이 어두워질 만큼 피곤했음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그는 묵묵히 기다렸고 마침내 서원의 전화가 걸려왔다.“대표님...”그런데 서원의 목소리가 낮았고 뭔가 이상했다.박진성은 눈썹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 민여진은? 병원으로 데려오라고 했잖아!”잠시 정적이 흘렀고 서원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민여진 씨가... 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뭐?”박진성의 가슴 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심장을 찔렀다.그는 황급히 소리쳤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5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역겨워요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이 방법밖에 없었다.“민여진은 평소에 너랑 접촉이 제일 많았잖아. 네가 가면 적어도 거부하진 않겠지. 가서 민여진을 설득해. 이대로 계속 버티면 아무도 구해 줄 수 없다고.”민여진이 경찰서에 있는 동안 박진성은 단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그리고 서원은 결국 그녀를 만났다.유치장에서 마주한 그녀는 저번보다도 더 초라했다. 시력을 잃은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외형을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옷도 얼룩져 있었으며 마치 미치광이 같았다.서원은 유리창 너머로 그녀를 보자 가슴이 저릿해졌다.그는 천천히 수화기를 들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민여진 씨,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전에 겪어보셨으니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이 사건이 어떻게 끝날지. 교도소에 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그러나 민여진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서원 씨가 날 설득하러 온 거면 더 이상 할 얘기 없어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일어서려 했다.그 순간 서원은 가슴이 찢어질 듯했고 다급히 외쳤다.“죄송합니다!”민여진은 그 말을 듣고 움직임을 멈췄다.서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억눌려 있던 후회가 터져 나왔다.“전 진실을 알고 있었어요. 민여진 씨가 만났던 민영미 씨가 가짜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기회는 많았어요. 민여진 씨에게 말할 수도 있었고 도울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속였습니다. 민여진 씨는 절 믿어주셨는데... 제가 민여진 씨를 배신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민여진은 가만히 그의 고백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서원 씨.”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했다.“난 서원 씨를 탓한 적 없어요. 서원 씨는 박진성의 부하일 뿐이잖아요. 날 위해 박진성에게 맞설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요.”그러나 오히려 민여진의 이렇게 담담한 태도가 서원의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곧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4화 넌 정말 사람을 짓밟는 데 능숙하구나

    민여진은 미친 듯이 몸부림쳤고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박진성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통증도 잊은 채 소리쳤다.“그만해요! 안 보여요? 지금 얼마나 아파하는지!”경찰들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결국 손을 놓았다.그 순간 힘이 풀린 민여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온몸은 거대한 슬픔을 짊어진 듯 무거웠다.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박진성, 넌 정말 사람을 짓밟는 데 능숙하구나.”박진성은 그녀의 마음을 이용했다. 그의 잘못을 덮기 위해 그녀의 감정을 내던졌다.‘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자’, 그 한마디로 그는 모든 걸 지우려 했다.과거에도 그녀의 마음을 우습게 여기더니 지금도 변함없었다. 사람을 철저히 짓밟는 데 있어 박진성보다 더한 이는 없었다.이에 민여진은 완전히 무너졌다. 마치 심장이 바닥에 내던져져 짓밟히고 부서져 가루가 된 기분이었다.그리고 이제는 모든 감정조차 희미해졌다. 주변 소리가 멀어져 갔고 그녀는 벽을 더듬으며 일어섰다.박진성이 여전히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문을 나섰다.그 순간 박진성은 힘없이 자리에 쓰러졌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러자 경찰이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119에 신고했다.병원으로 실려 가는 동안 그의 눈꺼풀은 천천히 감겼다.이정화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아들이 수혈을 마친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넌 정말 목숨이 아깝지도 않니?”그녀는 화가 나 손가락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그 여자는 널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발악하는데 너는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또 찾아가? 죽으려고 작정했어? 내가 도대체 뭘 낳은 거야!”박진성은 눈을 감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입술이 새하얗게 바싹 말라 있었다.문채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몸을 내던지면서 경찰서까지 찾아갔다는 사실을.이정화는 이를 악물었다.“너는 일이 조용히 끝나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3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감각을 잃은 듯 가만히 앉아 있던 민여진의 눈동자가 갑자기 미세하게 흔들렸다.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우물처럼 메마른 눈빛에 갑자기 증오가 물들었다.“상관없어.”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거기에 서늘한 조소까지 섞여 있었다.“감옥에 가는 게 뭐 어때서. 처음도 아닌데, 이미 익숙해. 난 얼마든지 다시 갈 수 있어. 하지만 넌...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야.”그녀의 눈동자 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증오가 박진성의 가슴을 송곳처럼 찔러왔다.“날 무너뜨리려고 네 인생까지 던질 거란 말이야?”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민여진을 바라보았다.“너의 꿈은? 너의 미래는? 그렇게 다 버릴 수 있어?”“미래?”민여진은 순간 피식하고 웃었다.그러나 그 웃음은 너무나 아팠고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그건 네가 이미 망쳐 놓았잖아.”박진성이 어떻게 그녀 앞에서 꿈과 미래를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민여진은 원래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었다. 대단한 연주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며 어머니와 함께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그러나 박진성이 그녀의 두 눈을 앗아갔고 유일한 가족마저 잔인하게 빼앗았다.그런데 그런 놈이 이제 와서 미래를 말한다고?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민여진, 흥분하지 마...”박진성은 배를 감싼 채 깊이 숨을 들이마셨고 입술이 창백해졌다.“진정하고 생각해 봐. 너한테는 아무 증거도 없어. 네가 혼자서 박씨 가문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네 앞에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 감옥에 가든가, 아니면 내 말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든가.”“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라고?”눈물이 민여진의 두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우리 엄마가 죽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라고?”“나도 많이 놀랐어. 하지만 아주머니는 원래 상태가 불안정했잖아. 최선을 다해 대비했지만 삼 층에서 뛰어내릴 줄은...”“그래서 날 속였어? 다른 여자를 데려와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282화 물러설 곳 없는 싸움

    민여진은 힘겹게 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몸을 가누었다. 하지만 눈은 이미 핏발이 서 있었다.그녀는 변호사와 경찰들을 노려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왜 나를 속였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 내 사건을 다시 조사해 준다고!”경찰서장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수사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해요. 민여진 씨 혼자서 살인미수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1년 전 결과가 갑자기 바뀔 것 같아요?”“그만해요...”서원이 민여진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그는 알았다.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민여진 씨, 이제 그만해요. 대표님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나머지는 대표님께 맡겨요. 그러면 민여진 씨는 무사히 경찰서에서 나갈 수 있어요!”“고소를 취하하라고요?”민여진의 텅 빈 듯한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러나 곧이어 그 눈빛에 뼛속까지 스며든 증오가 서렸다.“내가 감옥에 가게 생겼고 우리 엄마가 처참하게 죽었는데... 이 모든 게 그냥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아요? 서원 씨, 역시 박진성의 부하다운 발상을 하는군요. 박진성한테 전해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다시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난 끝까지 박진성을 고발할 거예요.”그 말에 서원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민여진 씨...”“날 데려가 줘요.”민여진은 옆에 있는 경찰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표정은 차갑고 결연했다.그녀는 살인미수를 인정한 순간부터 이곳을 멀쩡히 걸어 나갈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만약 박진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면 적어도 그의 통제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뭐?”병실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박진성은 순간 눈앞이 흐려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방금 꿰맨 상처에서 다시 통증이 밀려왔다.“민여진이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날 고소하려 했단 말이야?”“네...”서원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경찰서 밖에 서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평온하게 유지되던 관계가 결국 이 지경까지 와 버릴 줄은.“게다가 민여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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