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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Author: 꿈을 좇는 나비
고하린은 친어머니의 반응을 보자 마음 한켠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자신이 얼마나 지독하게 냄새나는지,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삼 년을 버티며, 그 눅진한 악취가 피부속 깊이까지 스며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함께 온 여자 경찰관이 머리도 감겨주고 몸도 씻겨줬지만, 그 냄새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저 비누향과 섞인 채, 더 묘하게 사람의 코를 찌를 뿐이었다.

양서정은 잠시 코를 손으로 막고 있다가, 결국 조심스레 손을 내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돌아와줘서 다행이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어머니의 말을 들은 고하린은 조금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억울함이 밀려와 눈가가 벌게졌다.

이때 경찰이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자, 가족분들이랑 같이 서서 사진 한 장 찍으시죠. 그래야 사건도 정리할 수 있거든요.”

옆에 있던 여자 경찰관도 고하린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말했다.

“가족이랑 사진 한 장 남겨요. 이제 악몽은 끝났어요. 앞으로는 뭐든 다 잘될 거예요.”

고하린이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둘러서 있던 하객들이 무의식중에 한 발짝씩 물러났다.

고태진 부부는 딸이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자 온몸이 굳어졌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경찰 두 명이 좌우로 서서 그들을 에워싸 몸을 옮기지 못하게 막았다.

“다른 가족들도 더 있잖아요? 자, 다 같이 한 장 찍어요. 오늘은 그래도 ‘가족의 날’ 아닙니까?”

경찰은 예비 신랑 신부를 향해 오라고 손짓했다.

고유진은 진우석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오빠, 나 무서워...”

진우석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괜찮아, 접촉만 안 하면 아무 문제 없어. 경찰분들도 계시잖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억지로 몸을 빼는 약혼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마주한 옛 연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자 진우석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짙고 깊은 눈빛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더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낯섦이었다.

예전의 고하린은 그를 보기만 하면 마치 나비처럼 날아가 안길 듯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고 자신감 넘치고 눈부셨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촌스러운 차림에 마른 얼굴, 그리고 살이 빠져 더 커 보이는 눈동자엔 생기가 없었다.

소문이 다 사실이었나 보다. 고하린은 납치된 지난 삼 년 동안 온갖 학대를 받으며 정신까지 망가진 게 분명했다.

방금 찍은 가족사진을 보니 누구 하나 진심으로 웃는 이가 없었다.

경찰은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 떠났다.

고태진과 양서정 부부는 경찰을 배웅하고 나서 돌아온 장녀를 다시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딸이 살아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고하린을 어떻게 다시 집으로 들일지, 그것이 최대의 고민거리였다.

“그... 하린아,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양서정은 억지로 웃으며 딸을 부르긴 했지만 마음속에서 반가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고하린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친딸을 내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 법적으로 유기죄가 될 수도 있으니까.

고하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 안으로 향했다. 그러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고유진 앞을 지나치며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눈길을 천상의 여신처럼 치장한 동생 고유진에게로 돌렸다.

“언니...”

고유진은 조심스럽게 고하린을 불렀지만 왠지 눈빛이 불안했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고하린은 그런 동생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오늘 참 예쁘네. 축하해.”

“고마워, 언니.”

“내가 돌아와서 많이 무섭지?”

그 말에 고유진은 표정이 굳어졌고 눈빛은 더욱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서 물어?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친동생처럼 대해줬는데, 네가 날 이렇게 만들 줄은 몰랐어.”

고하린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눈빛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녀는 매일 생각했다. 대체 동생이 왜 자신을 그 지옥으로 보냈는지.

처음엔 슬프고 충격에 빠져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감정은 증오로 바뀌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그 증오는 그녀가 탈출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언니... 나는 정말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고유진은 억울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떨구었다.

두 자매의 불편한 대화에 하객들은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양서정이 다급히 다가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린아, 왜 유진이한테 그런 말을 하니? 네가 실종됐던 그날 밤부터 유진이는 네가 자기 대신 납치당했다고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몰라. 그 충격으로 심리치료도 몇 년이나 받았어.”

“엄마, 그날은 분명히...”

고하린이 설명하려는 찰나 고유진이 갑자기 ‘아야’ 하고 배를 움켜쥐었다.

진우석이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유진아, 왜 그래?”

“나... 배가 아파...”

고유진은 힘없이 신음했다.

양서정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술 마시지 말랬잖아! 너 또 장염이 도진 거야. 어서 들어가서 쉬자.”

고태진은 하객들에게 소리쳤다.

“자, 다들 안으로 들어가시죠! 곧 예식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몇몇 하객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하나둘 자리를 떴다.

아무리 약혼식을 축하해 주러 축의금 들고 왔다지만 고하린이 몸이 더러운 걸 보고, 거기에 전염병도 걸렸다는 소문을 들은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음식을 먹을 용자는 없었다.

양서정은 원래 둘째 딸과 함께 안에 들어가려 했지만 하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돌아섰다. 어떻게든 붙잡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하객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고하린은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고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세상의 정이라는 게 이런 것이던가, 가족이든 남이든 결국은 다 똑같구나.’

그녀는 알아차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니, 자신을 가장 사랑하던 부모님조차도 지금은 그녀를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고하린은 아이를 낳은 적도 없고 병도 걸린 적이 없었다. 이 모든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설마 이것도 고유진이 퍼뜨린 건가? 고유진이 그녀의 명예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하려는 의도였던 건가?

고유진은 계단을 오르다 말고 손님들이 떠나는 걸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열심히 준비했던 약혼식이 이렇게 망가지자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양서정은 둘째 딸이 억지로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고 다시 달려가 품에 안았다.

“유진아, 울지 마. 약혼식은 나중에 다시 크게 치르면 되잖니.”

고유진은 눈물을 닦으며 진우석 품에 기대어 말했다.

“괜찮아요... 언니가 돌아온 게 중요하죠. 오늘은 겹경사라고 생각할게요. 저는 조금 억울해도 참을 수 있어요...”

“아이고, 우리 유진이는 정말 속이 깊네.”

양서정은 그 말을 듣고 다시 고하린을 바라보았는데 고유진을 바라보던 눈빛과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하린아, 너 돌아올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어?”

고하린은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나?’

그녀는 경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경찰관님들이 몇 번이나 연락했었는데 엄마 아빠가 사기 전화인 줄 알고 끊으셨다던데요?”

“...”

양서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진우석이 풀어보려 입을 열었다.

“유진이 말이 맞아요. 하린이가 돌아온 건 좋은 일이죠. 어머님, 약혼식은 미뤄도 되니까 하린이를 탓하지 마세요.”

“맞아요. 언니가 몇 년간 겪은 일 생각하면 지금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고유진도 착한 여동생인 척 나긋하게 말을 보탰다. 그러고는 일부러 무심한 척 주제를 돌렸다.

“근데... 언니 병 걸렸으니까 앞으로 어디서 지낼지는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모두 감염 위험을 안고 살 순 없잖아요.”

그러자 고하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병이 있다고? 증거 가져와 봐.”

고유진은 눈썹을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그런 곳에 있다가 왔는데 설마 병이 없겠어? 우리가 경찰서에 찾아갔을 때 분명...”

“제가 애 낳았다고 한 사람들도 애를 데려와 봐요.”

고하린은 고유진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고씨 가문의 장남 고재헌마저 나섰다.

“하린아, 네가 밖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우리도 다 들었어. 정말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거짓말은 하지 말자.”

오빠를 바라보는 고하린의 눈빛엔 절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예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편이던 오빠가 지금은 그녀를 독사처럼 취급하고 있다.

“내가 말한 건 다 사실이야. 집에 돌아오기 전에 경찰관님들이랑 병원 가서 다 검사받았어. 못 믿겠으면 다시 검사할게.”

고하린은 가족들을 돌아보며 다시금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녀를 의심하는 차가운 시선들뿐이었다.

그때 고유진이 뭔가 떠오른 듯 진우석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삼촌이 의사잖아? 그분한테 언니 좀 봐달라고 하자.”

“맞다! 넌 진짜 똑똑해. 난 그 생각도 못 했네.”

진우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둘러보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삼촌!”

고하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우석에게 삼촌이 있었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한 남자가 조용히 안쪽에서 걸어나왔다.

뚜렷하고 정제된 이목구비, 날카로운 눈매에 서늘한 분위기까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의 차가운 아우라를 풍기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고하린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지워졌던 기억이 스르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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