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고유진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목에 걸린 붉은 루비 목걸이를 만지며 어쩔 줄 몰라 양서정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언니, 미안해... 내가 아까워서 안 주는 게 아니라... 이건 우석 오빠가 나한테 약혼하자면서 준 선물이야.”고유진은 힘없이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옆에 있던 양서정도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린아, 남의 물건 탐내는 거 아니야.”그러자 고하린은 무심하게 되물었다.“그럼 유진이는 왜 내 거였던 걸 차지했어요?”이 한마디
고하린은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에 접속했다. 3년 전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게 제일 최근의 활동이었고 그 주식 분석 글로 ‘우수 게시물’로 등록돼 있었다.댓글을 살펴보자 처음엔 주식 얘기로 시작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물었다.[요즘 이 여사님은 왜 안 보이시죠?][이 여사님, 어디 편찮으신가요?][이 여사님께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어제도 누군가가 그녀를 찾는 댓글을 남겼다.그것들을 보고 고하린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무려 3
윤준서의 말은 고하린의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 윤준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했고 얼굴은 무표정했다.그 말 한마디로 그녀는 이 남자와 바로 원수가 되었다.어차피 서로 남인데 대화 안 통하면 말 안 하면 그만이지, 굳이 남의 상처를 골라 찌르다니. 게다가 윤준서는 경한시에서 가장 권세 높은 윤씨 가문에서 자란 자식인데 인성이 이 모양이라니, 참담했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고하린은 시선을 거두고 말없이 내렸다. 윤준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금 전 그녀의 반응이 머릿속을 스치자 살짝 후회가 밀려왔
가방 안에 아직 1억 원에 가까운 현금이 있었기에 그녀는 고민 없이 바로 마세라티를 한 대 예약했다.차가 없으니 외출하기 너무 불편했던 것이다.“차량 총가격은 4억 원입니다. 먼저 계약금 8천만 원 내시고 나머지 3억 2천만 원은 차량 인수 시 내시면 됩니다.”고하린이 가방에서 현금을 꺼내자 매장 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곧 매장 점장이 직접 나와 직원들과 함께 90도로 허리를 굽혀 그녀를 배웅했다.고하린은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 집에 돌아왔다.양서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고하린은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새
고유진은 여전히 구역질했고 진우석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양서정은 마음이 아파서 따라갔다.그러자 도우미 방에 공간이 생겨 고태진이 걸어 들어왔다.“고하린!”그는 큰딸의 반항적인 행동에 화를 못 참고 손을 들어 따귀를 때리려 했다.“아버님, 안 됩니다...”진우석은 놀라서 황급히 뛰어가 고하린을 품에 안았다.그러자 고태진의 손이 그대로 진우석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퍽 하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아플 것 같았다.“우석아,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어서 나가!”고태진은 손바닥이 얼얼했고 화가 나 얼굴도 빨갛게
이때 고하린은 침대 시트를 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 문이 쾅 하고 걷어차지며 열리자 그녀는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야, 오빠? 아, 아까 유진이가 소리 지르던데. 무슨 일 있었어?”고재헌은 방 안으로 들어가 고하린을 호되게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생각하니 괜히 겁이 덜컥 났고 결국 그 자리에서 뒷걸음질 쳤다.“하린아, 너 진짜 너무하잖아! 네가 유진이 침대에 개똥 놓은 거지?”고재헌은 기세는 등등한데 정작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고태
“...”윤준서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요즘 장 괜찮던데? 나 이번 달에만 거의 수억 원 벌었어. 넌 어떻게 그렇게 안 좋은 종목들만 골라 잡냐?”“운전이나 똑바로 해!”윤준서는 목소리에서 화가 난 게 느껴졌다.하지만 주남호는 겁도 없이 계속 놀렸다.“진짜 사람은 완벽할 수 없나 봐. 넌 어려서부터 줄곧 일 등 했고 의대에서도 천재 소리를 들었잖아. 우리 아빠는 지금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널 칭찬하셔. 자기 40년 교수 인생 중 너처럼 재능 있고 성실한 제자는 처음이라나.”그는 칭찬을 퍼붓고 나서 윤준서를 바라보며 웃
[김하나: 꺄! 백의 남신이 등장했네! 역시 이 여사의 매력은 대단해.][정훈: 나도 진작 눈치챘어. 이 단톡방에서 백의 남신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은 이 여사뿐이야.][유지훈: 두 사람 은근히 티격태격하는 거 좋아하더라.]윤준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나랑 싸우고 싶은 거야?][유지훈: 아냐 아냐, 난 사양할게. 이 여사랑 티격태격해줘.]고하린은 침대에 기댄 채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백의 남신’이 나타난 걸 보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백의 남신, 지난
고하린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위에는 루비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고유진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하던 눈빛이 다시 활활 타올랐고 흥분한 그녀는 거의 펄쩍 뛸 뻔했다."엄마! 보세요! 역시 언니가 훔친 거였어요!"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며불며 망가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고하린은 그 놀라운 변신을 보고 피식 웃었다."유진아, 너 진짜 충무로 가야겠다. 연기대상은 네 꺼야."양서정은 딸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보고 깊은 실망에 빠졌다."하린아, 넌 왜 이런 짓을 해? 손에 들고
고하린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유진아, 네가 그때 인신매매범이랑 짜고 날 팔아넘긴 거 인정하면 그 목걸이 찾는 거 도와줄게. 어때?”이 말은 고유진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 네가 한 짓 인정해. 그럼 네가 내 방에 몰래 숨겨놨던 그 물건, 돌려줄게.’협박이자 거래였고 고유진은 놀라고 당황해 말까지 더듬었다.“언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나, 나 정말 여러 번 말했잖아. 나 그 인간들 모른다고... 짜고 그런 적 없다고... 언니가 자꾸 이렇게 억울하게 몰아가면 너무하잖아...”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유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1층 가정부 방문 앞에 도착하자, 양서정은 문을 쾅 두드렸다. 안에서 반응이 없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고하린은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가족이 허락 없이 들어온 상황에도 놀라거나 화내지 않고 차분히 고개를 돌려 한마디 했다.“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고유진은 엄마 뒤에 서서 몸을 반쯤 숨긴 채, 자신이 직접 나서진 않고 엄마가 먼저 나서길 기다리는 눈치였다.양서정 역시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하린을 노려보며 바로 물었다.
“그럼! 남자가 뭐 대단한 존재라고.”두 사람은 깔깔 웃으며 새로 산 집을 신나게 정리했고 이제 이사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집에 돌아온 고하린은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섰고 거실에는 양서정과 고유진이 함께 있었다.큰딸이 들어오는 걸 본 양서정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을 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하린아, 몸도 안 좋은데 맨날 밖에 나돌아서 뭐 하니? 집에서 좀 쉬면 안 돼?”고하린은 고개도 안 돌리고 한마디 툭 던졌다.“괜히 집에 있다가 눈에 거슬릴까 봐요.”양서정은 말문이 막혔다.고하린은 그대로
“누가 갑자기 안 판다고 했는데요?”고하린이 조용히 던진 한마디에 윤준서는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고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 정말 전액 일시불로 결제하신다면 2억 깎아드리죠.”허리연이 기뻐서 고하린의 팔을 덥석 잡았다.“대박이야, 하린아! 이건 사야 돼!”겉으론 무표정한 고하린도 속으론 은근히 들떴다. 설 2억이나 깎을 줄은 몰랐다. 이 사람, 혹시 아까 욕먹고 정신이 번쩍 든 건가? 갑자기 착해지기로 한 건가?서로 조건이 맞았으니 곧바로 계약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개인은 신이 나서 이
고하린이 윤준서에게 직설을 날리는 내내, 옆에 있던 허리연은 끊임없이 고하린의 소매를 붙잡고 속삭였다.“하린아, 제발 그만 좀 해...”윤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온갖 쏟아지는 욕설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미 화가 극에 달해 무감각해졌는지, 아니면 마음을 비운 건지, 그는 갑자기 느긋하게 의자를 당겨 앉더니 한쪽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앉은 얼굴엔 담담한 미소까지 떠올랐다.“다 말했어요?”“아직요. 당신도 진우석이랑 똑같아. 겉과 속이 다르고 가식에...”“악!”고하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허리연이 놀라서 벌떡
“제가 제 집 안 판다는데 그게 불법인가요?” 윤준서는 중개업자의 말을 단호히 끊으며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훑어봤다.중개업자는 전신이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그건... 물론 불법은 아니죠. 다만 지금처럼 좋은 기회를 놓치시면 나중에 좀 아쉬울 수도 있어서요...”그러나 윤준서는 그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그때 고하린이 천천히 두 팔을 교차하더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윤준서 씨, 돌팔이에다가, 쪼잔한 거북이에 속 좁기까지 하신 줄은 몰랐네요.”허리연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그녀
고하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허리연을 바라봤다.“너... 설마 걔한테 반한 거 아냐?”“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좀 감탄했을 뿐이야. 내가 감히 넘볼 급은 아니지.”“감탄도 하지 마. 너 윤씨 가문이 뭐 하는 집안인지 까먹었어? 그 인간이 의학 연구에 투자하는 거, 성공만 하면 어마어마한 이익이야. 업계 독점도 가능하다고.”허리연의 얼굴은 갑자기 시든 꽃처럼 축 처졌다.“원래는 좋은 얘기였는데 네가 말하니까 갑자기 이상하게 들리잖아...”고하린은 고개를 숙인 채 폰을 꺼내 윤씨 가문의 사업 구조를 대충 검색해 보더니
윤준서가 말했다.[다음 주 봐서 시간 되면 갈게.]그 시각, 고하린은 영화를 보던 중이었고 자꾸만 반짝이는 알림에 결국 앱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오프라인에서 만남?”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지만 잠시 고민한 끝에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몸이 좀 안 좋아서 빠질게. 괜히 분위기 망치기 싫어서. 너희끼리 재밌게 놀고 밥값은 내가 낼게. 그때 단톡방에 선물 쏠게.]이 여섯 명 중 자기가 제일 돈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가지는 못해도 밥값 정도는 당연히 부담해야 할 예의였다.이때 유지훈이 물었다.[이 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