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순간 그 날밤으로 다시 돌아간 듯했다.그날, 겉으로 보기에는 유월영이 급하게 절벽으로 쫓기고 놈들에게 굴하지 않기 위해 아래로 뛰어내린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곳은 그들이 미리 정해둔 지점이었다.그 지점 아래에는 유월영을 받쳐줄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가 뛰어내려도 거의 위험이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연재준도 함께 뛰어내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안전하게 그물에 걸린 유월영이 막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월영아!”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재준이 형!”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았다.유월영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이어 구출팀의 상황을 보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젠장! 방향을 잘못 잡았어!”준비한 그물로는 그를 받쳐줄 수 없었다!예상대로 연재준은 그물 가장자리에 떨어졌고 이내 곧 끝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유월영의 몸이 머리보다 먼저 반응하여 연재준의 손을 잡았다!연재준은 가파른 절벽에 매달린 채 그녀가 잡고 있는 손 하나에만 의지하고 있었다.그때가 연재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순간이었다.그의 발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였고 그는 그 절벽 속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유월영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연재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연재준은 그것이 두려움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산바람에 시달려 하얗게 질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녀의 머리 위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고 연재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녀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월영아...”유월영의 부하들은 재빨리 연재준을 끌어올렸다. 그들은 함께 산속 움푹 파인 곳에 숨은 채 위쪽에서 비추는 손전등 불빛을 피할 수 있었다.유월영은 산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 내쉬었다. 방금 생사를 오가는 순간을 겪은 후 그녀의 손과 발은 약간 저려 왔고 맞
연재준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 인정하며 말했다.“더 이상 궁금하게 하지 말고 알려줘.”유월영은 그의 ‘애교'에 넘어가지 않고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띠며 뒤돌아 계단을 내려갔다.“연 대표님, 상처나 잘 치료하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연재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마를 찌푸리며 여전히 누구를 얘기하는지 알지 못했다.강수영은 유월영이 가져온 ‘병문안 선물'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며 불평했다.“보나 마나, 동네 슈퍼에서 대충 산 거겠지? 추석 선물 세트도 아니고.”연재준도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과연 유월영 답 다는 생각 했다.강수영은 그 물건들을 가정부에게 건네주며 물었다.“근데 오빠, 그렇게 그냥 보내버린 거야?”연재준은 방으로 돌아가며 말했다.“그럼 뭐? 남아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할까?”강수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두 사람 관계가 너무 애매하네, 누군가 옆에서 조금만 더 밀어주면 될 것 같은데.”연재준은 사촌 동생의 말을 무시한 채 핸드폰을 들어 하정은한테 전화를 걸었다.“하 비서, 혹시 내가 누군가를 해외로 보낸 적 있어?”하정은은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연재준은 코를 살짝 만지며 말했다.“그게 기억이 안 나. 내가 누구를 해외로 보낸 적 있는지.”하정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백유진 씨요. 3년 전쯤, 대표님께서 그분을 스위스로 보내셨죠. 대표님 어머님같이 지내시라고요.”연재준은 그 순간 머릿속에서 불현듯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그는 깨달은 듯 바로 물었다.“월영 씨의 출국 정지는 풀렸나?”하정은이 대답했다.“풀렸습니다. 최광일이 인정했거든요. 그때 조우재가 유월영 씨한테 한 대 맞았을 때 그 일당들이 조우재 때문에 일이 그렇게 된 거라고 본때를 보여준다고 구타를 했는데 실수로 죽인 거라고 합니다.”그 운전기사는 이미 자백했지만 유월영은 방금까지도 그가 입을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그러니까,
운전기사와 한세인은 유월영을 따라오지 않았다. 유월영은 두 사람에게 다른 일을 준비시키고 혼자 길을 나섰다.“내가 어디로 가는지 연 대표님께 보고해야 하나요?”“출국 금지가 풀렸다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유월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되물었다.“내가 왜 연 대표님께 알려야 하죠?”연재준의 질문이 이어졌다.“당신은 내 이름을 대고 백유진을 속여서 귀국시켰어. 그녀에게 뭘 하려고 하는 거지?”유월영의 눈빛이 순간 번뜩이면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 따라오는지 했는데, 백유진 씨 때문이었군요. 그 여자는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특별한 사람인가 보네요.”연재준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나랑 백유진의 일은 당신에게 충분히 설명했어. 일부러 날 자극하려 하지 마.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한 가지야. 백유진을 속여서 귀국시킨 이유가 뭐야?”유월영은 느긋한 말투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서서히 거두고 연재준의 추궁하는 듯한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두 사람이 서 있는 데는 고속도로 옆 자갈길로, 평소에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멀리 기차 철로가 보였고 기차가 소리를 내며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소음이 잠잠해지자 유월영은 갑작스럽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배속에 있던 아이를 위해 복수할 거예요.”해가 지고 있던 하늘은 순간 갑자기 회색으로 물들었다.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 있었고 주변에는 허리 높이의 잡초가 바람에 밀려 밀물처럼 출렁였다.유월영의 눈 속에 서린 증오는 가식이 아니었다.“나는 그 여자처럼 악독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예전에는 그녀의 작은 장난을 그냥 넘어가려 했죠. 그런데 그녀가 바로 그 납치 사건의 주동자였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숨어 지냈고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연재준이 무겁게 물었다.“그래서 그 여자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유월영이 부정하지 않자 연재준의 턱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성큼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네가 다른 건
연재준은 유월영의 행동을 이미 예측한 듯 재빨리 그녀의 팔을 반대로 잡았다. 균형을 잃은 그는 땅에 쓰러지면서도 그녀를 함께 끌어내렸다!두 사람은 풀밭에 떨어져 서로 엉켜버렸다.유월영은 곧바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연재준은 먼저 몸을 돌려 그녀 위에 올라탔고 아무 말도 없이 그녀의 입술에 강제로 키스했다!유월영의 머리가 하얗게 질려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연재준은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입안을 휘저었다. 간신히 그를 떼어내자마자 그녀는 손을 올려 그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외쳤다.“연재준!”연재준은 날아오는 그 따귀를 고스란히 맞았지만 여전히 그녀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마에 흩날린 머리카락이 그의 눈을 가렸고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우울하고 집착적인 기운이 느껴졌다.연재준은 고개를 숙여 다시 그녀에게 키스를 했고 유월영은 그가 풍기는 한약 냄새에 싸여 치를 떨며 또 한 번 그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연재준은 같은 자리에 연속으로 두 번 뺨을 맞았다. 그의 하얗고 잘생긴 얼굴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반항하는 손을 붙잡아 머리 위로 고정했다.그의 가슴이 유월영의 가슴을 눌러왔고 그의 다리가 유월영의 다리를 꼼짝 못 하게 했다.두 사람의 코끝이 서로 스치며,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창백했던 입술은 짙은 붉은빛으로 변했다.유월영은 그의 압박에 숨이 막힐 것 같았고 그의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연재준은 갑자기 그녀의 셔츠 단추를 뜯기 시작했고 유월영은 그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두려웠다. 그가 정말 더 강제로 탐하려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그의 숨통을 끊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연재준은 그녀의 쇄골을 깨물어 왔다. 마치 살점을 뜯어내려는 듯이.유월영은 온몸에 전해지는 고통에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고 숨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의 미친 듯한 심장박동 소리도 들려왔다.연재준은 지금 마치 그날 호텔에서처럼 미쳐버린 듯했다....그는 분명히 제정신이 아닌
유월영은 결국 고속도로에 오르지 않고 차를 돌려 빠르게 돌아왔다.신현우의 차는 사실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지만 유월영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신현우는 백미러로 멀어져 가는 유월영의 차를 한 번 보고 자갈길에 있는 연재준을 다시 한번 보았다.그는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은 눈에 보였고 한바탕 몸싸움을 한 상황임을 알아차렸다.신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굳이 연재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강수영이 카톡으로 연재준의 상태를 물었다.신현우는 방금 찍어둔 사진을 그녀에게 보냈다.풀밭에서 두 사람이 뒤엉킨 사진을 보고 강수영은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정말 격렬하네...”그녀는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그래 내가 말했잖아, 그들은 단지 밀어주는 사람이 부족했을 뿐이라고...결국에는 내가 나서야 해.”3년 전과 똑같이, 그녀가 도와 이 관계를 뜨겁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강수영은 신현우와의 대화창을 나와 ‘화학과 우수 졸업생'이라고 저장된 연락처를 열고, 40만원으로 송금한 후 메시지를 보냈다.[그 약 좀 보내줘]상대는 돈을 받고 답장했다.[OK]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강수영은 아직 계획을 더 세워야 했다....유월영은 곧바로 옛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왔다.그녀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고 특히 옷이 더럽혀진 것을 보자마자 방금 연재준이 했던 짓이 떠올라 더 화가 났다.유월영은 차에서 내려 냉랭한 얼굴로 집에 들어서서, 거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1층의 오픈형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던 현시우가 인기척을 듣고 나와 말했다.“월영아.”하지만 유월영은 못 들은 척 더 빨리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현시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이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유월영은 방에 들어가 문을 재빨리 닫았다. 현시우가 문밖에서 두 번 두드렸다.“월영아?”유월영은 방 안에서 답했다.“잠깐만.”
현시우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유월영이 그에게 건네는 “고마워”와 “미안해”였다.그런말은 어색함과 거리감을 주는 것 같았고 그들 사이에서는 굳이 그런 말이 필요 없었다.현시우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유월영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빈 컵을 받아 들고 부엌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세척기에 깨끗이 씻겨나가는 컵을 보면 생각에 잠겼다.현시우는 이제 연재준을 만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다음 날 유월영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 무렵이었다.그녀는 침대 옆 가습기를 껐다. 어젯밤 잠을 설친 그녀는 가습기를 틀었고 그 안에는 숙면을 위한 에센셜 오일도 들어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깊이 잠들 수 있었다.유월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론 내려갔다. 한세인은 이미 일을 마치고 돌아와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유월영을 보자 한세인이 일어나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아가씨.”“네. 어젯밤 고생했어요.”유월영은 물컵 두 개를 들고 따뜻한 물을 따라 그녀에게 한 잔을 건넸다.“어떻게 됐어요?”한세인은 두 손으로 컵을 받으며 먼저 결과를 말했다.“별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유월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앉아서 이야기하라고 손짓했다.“왜요?”한세인이 자세히 설명했다.“저와 지남 씨가 여행 온 커플로 위장해 우선 호텔에 체크인했습니다. 안내 데스크에서 저희한테 어떻게 이 호텔을 알게 되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자신들의 호텔은 온라인에도 소개가 없고 주변에도 유명한 다른 온천 호텔도 많다면서 저희가 이 호텔을 선택한 것이 이상하다고 여긴 거죠.”“저희가 배낭여행 위주로 해서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가는 곳마다 즉흥적으로 호텔을 정해서 묵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고 혹시 방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죠.”유월영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아주 잘 넘어갔어요. 그리고 나서는요?”“직원이 위에 보고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허락을
“...아마도 기회가 없어서 말씀드리지 못했을 겁니다.”한세인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하지만 레온 그룹과 해성 그룹은 협력 관계이고, 현 대표님께서도 마침 신주시에 계시니 해성을 방문하는 게 당연하지요.”“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나도 옷을 갈아입고 가볼게요.”유월영은 말하고는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가벼운 화장을 했다.그리고 다시 내려오며 물었다.“어디 있어요?”한세인이 대답했다.“알아냈습니다. 현 대표님 일행은 해성 그룹 방문을 마친 후 연 대표님의 초대로 지금 해운 그룹으로 갔습니다.”유월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발걸음을 서둘렀다.그 시각, 해운 그룹.연재준과 현시우는 둘 다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각자 팀을 이끌고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두 사람은 회사의 발전, 제품의 장단점, 시장 전망, 업계 동향 등 다양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화는 유쾌하고 끊임없었으며 마치 오랜 협력 파트너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불과 며칠 전, 이 두 사람이 신연아의 결혼식에서 큰 다툼을 벌일 뻔했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여기는 마케팅 부서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별로 없네요. 아마 회의 중일 겁니다. 원래라면 크로노스 씨한테 이들의 데이터 분석 능력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월가의 전문 분석가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아요.”연재준은 부서를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소개했다.현시우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명성은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해운 그룹 마케팅팀에서 아무 사람만 데려가도 회사를 꾸릴 수 있다고들 하죠.”연재준도 드물게 농담을 주고받았다.“그래서 연봉도 가장 높습니다.”두 사람은 계속 걸으며 마케팅 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듯했지만 현시우가 갑자기 이야기를 이어갔다.“마케팅 부서는 회사에서 가장 바쁜 부서 중 하나죠.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과분하지 않을 겁니다. 월영이도 처음 레온 그룹에 들어갔을 때 마케팅 부서로 갔는데, 그때는 밤낮없이 바빴어요. 제가 그녀를 보려면 회의
연재준이 하정은에게 눈짓을 하자 하정은은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모든 사람에게 물러나라고 신호를 보냈다.따라오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 없는 거리까지 물러났다.연재준의 표정은 한층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얇은 입술을 꽉 깨물다 조용히 물었다.“월영이 많이 아픈가요? 육체적인 건가요, 아니면 심리적인 것인가요?”평일의 회사 건물 안은 고요했고 햇살만이 거울처럼 빛나는 하얀 타일 바닥에 비췄다.두 남자는 서로 마주 서 있었다. 둘 다 훤칠한 키에 무심하게 서로를 바라봤지만 누구도 밀리지 않았다.현시우가 그에게 말했다.“그날 밤, 월영이는 회사에서 야근을 했어요. 고열이 났지만 말하지 않고 참고 견딘 거죠. 그러다가 열이 난 채 물을 마시려다가 탕비실에서 기절했어요.”“빌딩의 보안 요원은 탕비실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줄 알고 불을 끄고 문을 잠근 후 퇴근했죠.”연재준의 눈에 깊은 파도가 일렁였다.“난 아무리 연락해도 월영이를 찾을 수 없었고 사람들을 보내 곳곳에서 찾아봤어요. 거의 동이 틀 때쯤 월영이를 찾았는데 그때는 이미 깨어있었더랬죠. 월영이가 혼수 상태에서 악몽을 꾸다 깨어난 거라고 했는데 나중에 무슨 꿈을 꿨는지 물어보니...꿈에서 예전의 일들을 떠올렸다고 하더라고요.”연재준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현시우는 차갑게 말했다.“월영이는 그 동안 회사에서의 일도 잘 풀리지 않았어요. 항상 전 직장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일들을 떠올렸죠. 그리고 그런 것들이 월영의 억눌린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어요.”유월영의 이전 직장이란 정확히 말하면 신현우의 회사에서 그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을 때였다.하지만 연재준은 알고 있었다. 유월영에게 악몽을 꾸게 한 것은 분명 자신이 원인이라는 것을.그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의 밑에서 일했던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월영이는 이미 그때 벼랑 끝에 서 있었어요. 악몽에서 깨어나 어둠 속에서 혼자 갇혀 있으면서 월영이의 슬픔과 분노는 절정에